고전(古典)을 통해 알아보는 선조들의 낚시문화

고전(古典)을 통해 알아보는 선조들의 낚시문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으로는 소동파로 널리 알려진 북송시대의 문인 소식(蘇軾)이 쓴 동파전집 23권 강교(江郊)에 나오는 아래의 구절을 들 수 있다.

의조망어(意釣忘魚), 악차간선(樂此竿綫), 優哉悠哉(우재유재), 玩物之變(완물지변)이 그것으로 “고기는 잊고서 낚시만 생각하며, 낚싯대와 낚싯줄만 즐기노라. 조용하고도 한가로이, 사물의 변화를 즐겨 구경하노라.”라는 말이다.

이는 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낚시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오늘은 우리의 고전 속에 나오는 선조(先祖)들의 낚시문화를 알아보도록 하자.

■ 조선왕조의 시조회(始釣會)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 19년, 1759년 3월 10일에 내원(內苑)에서 모두 54명이 모여 꽃구경을 하며 낚시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조가 네 마리를 잡았고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음악을 연주하고 잡은 고기는 다시 놓아주었으며 이 행사는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고 한다.

원문의 내용을 일부분만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경인(庚寅)/소제각신(召諸閣臣), 상화균어우내원(賞花鈞魚于內苑).

여러 각신들을 불러 내원(內苑)에서 꽃구경과 낚시를 하였다.

上曰(상왈). 여자설치내각이래(予自設置內閣以來), 범재시직자(凡在是職者), 시동가인(視同家人), 금일지회(今日之會), 당용가인지례(當用家人之例). 각신자제(閣臣子弟), 개허여연(皆許與筵).

임금이 이르기를 짐이 규장각을 설치한 이래로 이 직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집안사람처럼 생각하였으니, 오늘의 모임도 마땅히 집안사람의 준례를 적용하여 각신의 자제들도 모두 이 자리에 참여하기를 허락하노라.

정조가 만든 규장각(奎章閣)은 송나라의 천장각(天章閣)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천장각에서 매년 봄과 여름에 후원에서 꽃구경을 하고 낚시를 했던 것을 따온 것이다.

 

■ 문종은 낚시동호회의 회장?

예종실록 3권에는 예종 1년이던 1469년 1월 22일 당시 세자의 신분이었던 문종이 밤에 신하들을 불러 경회루(慶會樓) 연못에서 낚시를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문종은 조선왕조의 낚시동호회를 만들었던 것일까?(ㅎ)

원문: 시문종위세자(時文宗爲世子), 야여제군(夜與諸君), 조경회루지(釣慶會樓池), 소사복관원형입견(召司僕官元亨入見).

 

■ 성종도 릴낚시를 즐겼을까?

“낚시용 릴의 역사”에서 잠깐 살펴보았던 조거(釣車)는 원래 조어거(釣魚車)라고 하는 것으로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송시대의 화가 마원(馬遠)이 그린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낚시에 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시문을 모아놓은 열성어제(列聖御製)에도 성종(成宗)이 쓴 소상팔경(瀟湘八景)에써 조거(釣車)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半碎收漁網(반쇄수어망): 반쯤 부서진 어망을 거두며

長歌揮釣車(장가휘조거): 크게 노래하고 낚싯줄을 당긴다.

乾坤無特緖(건곤무특서): 세상에 특별한 마음이 없어

風月自然斜(풍월자연사): 바람과 달에 자연히 기우는도다.

■ 최초의 선상낚시 실족사

안전한 낚시는 시대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직이 쓴 점필재집(佔畢齋集)에는 선상낚시를 하다 실족하여 익사한 한권(韓卷)이란 분의 기록이 있다.

원문: 한권위인불기(韓卷爲人不羈). 유문무재(有文武材). 역대간(歷臺諫). 만위소산군사(晩爲所山郡事). 승주조어익사(乘舟釣魚溺死).

한권은 됨됨이가 무엇에도 얾매이지 않았으며 문무를 겸비하였는데 대간(臺諫)의 직을 역임한 뒤 만년에 소산군사가 되어, 배를 타고 낚시를 하다가 익사하였다.

 

■ 선조들도 밑밥을 사용하였다.

조선후기의 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35에는 궁궁이를 사용하여 낚시를 한 모습이 엿보인다.

책에 따르면 “궁궁자석민하어(芎窮自昔憫河魚)”라는 구절이 있는데 궁궁(芎窮)은 천궁(川芎)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동물을 통한 약리작용실험에서 중추신경계통에 작용하여 진정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식물로 냄새가 좋아 선조들은 이것을 가루로 만들어 물속에 뿌리고 고기가 모이게 하여 낚시를 했다고 한다.

 

■ 농어낚시의 달인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전기의 남효온(南孝溫)이 쓴 시문집인 추강집(秋江集)에는 농어낚시의 달인에 관한 아래의 내용이 나온다.

세종 24년과 25년이던 1442년과 1443년에 한 남자가 천민복장을 하고 벼랑 아래에서 낚시를 하였는데, 그가 잡은 것은 모두 농어였다. 그는 잡은 고기를 음식과 바꾸었고, 이튿날 또 잡으면 다른 집으로 가서 역시 그렇게 했으나 굳이 제값을 다 받지는 않았다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물으면 “나는 농어 아비다.”라고 하였다.

원문: 世宗壬戌(세종임술),癸亥年間(계해년간). 有一男子(유일남자). 위천자복(爲賤者服). 조어어석벽하(釣魚於石壁下). 기소조필로어(其所釣必鱸魚). 득칙지왕인가이역식(得則持往人家以易食). 명일우득측우지타가역여시(明日又得則又之他家亦如是). 불필진기직(不必盡其直). 인문기명측왈(人問其名則曰). 아로어부야(我鱸魚父也).

 

■ 생선회를 즐겼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

조선중기의 학자 권호문(權好文)이 쓴 송암집(松巖集)에는 권호문이 24살 되던 1555년 7월 5일에 물고기를 잡아 회를 뜨고 국을 끓여 퇴계(退溪) 선생과 함께 먹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안동시 도산면 온계천(溫溪川) 하류에 있는 섬처럼 큰 반석(盤石)인 청음석(淸吟石)에 올라 물고기를 잡았다고 하니 혹시 쏘가리를 드셨던 것은 아닐까?

원문: 칠월오일 선생승황묵지가 소계상조어청음석 호호문등거망이어득 일반혹회혹갱요찰방급온계사오인공향(七月五日 先生乘黃墨之暇 溯溪上釣於淸吟石 呼好文等擧網而漁得 一盤或膾或羹邀察訪及溫溪四五人共餉)

7월 5일, 퇴계 선생께서 글을 읽으시는 도중에 여가를 내어 온계천을 거슬러 올라 청음석에서 낚시를 하셨다. 호문 등을 불러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으라고 이르시기에, 한 소반의 분량을 잡은 다음 회를 뜨고 국을 끓여 찰방과 온계사람 4~5명을 불러 함께 먹었다.

 

■ 낚시터의 음주는 반드시 절제를…

특히 밤낚시를 하는 경우에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낚시인들도 있는데 물가에서는 안전을 위하여 지나친 음주는 반드시 삼가야 하는 일이지만 선조들도 낚시를 하면서 술을 즐겼던 모습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중기의 학자였던 홍여하(洪汝河)가 쓴 목재집(木齋集)을 보면 이웃이 가져온 술을 마시며 함께 낚시를 한다는 “파주동린래조반(把酒東隣來釣伴)”이란 내용이 있고 조선후기의 학자 조임도(趙任道)가 쓴 간송집(澗松集)에는 아래의 원문과 같이 아예 동이채 술을 마시는 모습이 나온다.

원문: 세우기두주일준(細雨磯頭酒一罇)-가랑비 내리는 낚시터에서 술 한 동이를 비웠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낚싯바늘에 관한 이야기를 “찌낚시 이야기-찌의 역사”를 통해 잠깐 소개했던 남구만이 쓴 조설(釣說)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냉동새우를 미끼로 사용할 때 주의할 점

냉동새우를 미끼로 사용할 때 주의할 점

수도권의 대부도와 인천권을 중심으로 많이 산재해 있는 유료낚시터는 잠깐 짬을 내어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면서 손맛도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으며, 일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유료낚시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끼는 지렁이와 냉동새우인데 특히 ‘지새조합’이라고 불리우는 지렁이와 새우를 함께 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해서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오늘은 이 점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렁이와 새우를 함께 낄 때, 또는 냉동새우 만을 단독으로 낄 때 모두 새우의 껍질을 벗기고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은 정말 참돔의 본능과는 거리가 먼 미끼의 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돔을 공략할 때 냉동새우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은 일본에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일본에서는 참돔을 공략하는 낚시 방법으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타이라바’라고 하는 방법과 ‘텐야낚시’의 하나로써 새우를 미끼로 사용하는 ‘참돔텐야’ 또는 ‘히토츠텐야’ 라는 방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참돔을 잡기 위해 냉동새우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을 알아보기 이전에 의미도 잘 모른 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텐야낚시’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텐야낚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우선 갈치낚시를 떠올리고 갈치낚시에 사용하는 채비가 텐야라고들 알고 있지만 텐야낚시의 시작은 참돔낚시부터입니다.

텐야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루어낚시에서 사용하는 지그헤드처럼 봉돌과 바늘이 하나로 연결된 채비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 것을 말하며 특히 참돔을 잡는 것을 일컫는 ‘히토츠텐야’라고 하는 것은 새우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서 참돔낚시에 언제부터 새우를 미끼로 사용하였는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그리 오래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유료낚시터에서 비책처럼 여겨지는 지렁이와 새우를 함께 사용하는 ‘지새조합’에서 잡은 참돔은 과연 지렁이에 반응을 한 것인지? 냉동새우에 반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지렁이와 새우를 함께 사용하면서 나오는 특이한 무엇인가에 대한 반응인지? 그 실체를 모르고서 지렁이와 새우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낚시의 방법은 아니라고 할 것이며 참돔의 특성을 모르고 낚시를 하는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텐야낚시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루어낚시로써 사용하는 새우미끼가 바닥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연출하여 참돔을 유인하기 위한 것인데 새우의 껍질도 벗기고 머리와 꼬리도 떼어낸 후 미끼로 사용하는 것은 새우가 참돔을 유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돔이 좋아하는 먹잇감인 새우를 살아있는 것이 아닌 냉동을 사용할 때에는 어떻게 운용해야 좋은 조과를 올릴 수 있을까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유료낚시터에서 냉동새우를 해동시키면서 자외선에 노출되도록 하는 바람에 열화에 의해서 색깔이 검게 변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첫 번째로 해서는 안 되는 점이며 다음으로는 열화에 의해서 쉽게 새우의 머리가 떨어지게 되는데 이처럼 머리가 떨어지거나 떼어내게 되면 참돔은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두 번째 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 포스팅한 “치어방류사업,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양식으로 태어나는 치어들은 종의 유전자 다양성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양식 되는 과정에서의 먹이활동으로 인해 껍질을 제거한 새우를 먹잇감으로 삼을 수는 있겠으나 참돔의 본능은 살아있는 새우나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더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새우나 냉동새우를 미끼로 사용할 때 왜 머리는 그대로 두고 꼬리는 반드시 떼어내고 사용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이유는 살아있는 새우를 미끼로 사용하면 꼬리지느러미에 목줄이 엉키는 현상이 생기기 쉬운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특히 선상낚시의 경우 고패질을 하게 되면 새우가 회전을 하면서 상하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목줄에 엉키는 현상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제거를 해주는 것인데 이런 내용을 모른 채 새우미끼는 무조건 꼬리와 머리는 제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냉동새우를 미끼로 사용할 때에는 쿨러에 담아 사용할 양만 꺼내어 조금씩 해동시키며 낚시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유료낚시터에는 가벼운 차림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쿨러를 가지고 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해동할 때, 가급적이면 냉동새우가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으며 성급한 마음에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해동시키는 것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찌낚시 이야기-찌의 역사

찌낚시 이야기-찌의 역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파장이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요즘, 일본산 낚시용품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낚시인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전부터 나는 낚시용품의 대일본 무역역조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제품명에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안일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국내 조구업체들 및 낚시를 주제로 하는 무분별한 방송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오고 있었다.

낚시용품의 생산과 공급은 단지 한 가지 재화의 생산과 공급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는다는 점 때문에 특히 낚시용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문화를 창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삼성이나 LG 것을 사용하라거나 BMW나 벤츠를 모는 사람에게 현기차를 타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낚시용품의 사용도 강제하거나 애국심에만 기댈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이러한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내 낚시용품 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것이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제품의 출시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

차제에 일부 연예인들이 협찬이라는 미명하에 온통 도배하다시피 외국 브랜드의 용품을 입고, 들고 나오는 낚시를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들도 사회적 공익에 대하여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짐과 아울러 우리 낚시인들이 국내업체의 제품에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국내기업들에게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찌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의 서론이 너무 길어진 것 같지만 낚시용품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은 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찌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 사설이 길어진 이유이다.

찌낚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얼마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를 알아보는 것이 오늘의 주제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하여 미리 말씀을 드리고 시작할까 한다.

낚시의 역사, 그 중에서도 찌낚시의 역사는 서양보다 동양이 앞선다고 생각하거나 서양에서는 찌낚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어로 찌는 미국에서는 바버(bobber), 영국에서는 플로트(float)로 부르며 일본어로는 우키(浮き), 중국어로는 유퍄오(鱼漂)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모두 물에 뜬다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낚시에 사용하는 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질과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천차만별인데 오히려 그 명칭의 다양성은 동양보다 서양이 더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새의 깃털이나 나뭇가지 등을 찌로 사용하였다는 정보들은 전해지고 있으나 그 근거를 명확하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문헌으로 나타난 것을 근거로 동서양의 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찌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문헌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우리나라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영국인데, 글을 통해서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란 수녀가 1496년에 쓴 낚시에 관한 논문(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에 찌에 대한 얘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뒤로 제럴드 벤틀리의 책과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에도 찌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는데 주로 개인들이 자작(自作)하여 사용하던 것이 1920년경에 와서는 대량으로 생산한 제품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찌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문헌 상으로 찌가 처음 나타난 것은 1670년(현종 11년)에 지은 남구만(南九萬)의 문집 약천집(藥泉集) 권28 조설(釣說)이다.

그 책을 보면 부륜지유계개야(夫綸之有繫䕸也), 소이정부침이지탄토(所以定浮沈而知吞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해석하면 “낚싯줄에 찌를 다는 것은 떠오르고 가라앉는 것을 일정하게 하여 물고기가 바늘을 삼켰는지 뱉었는지를 알기 위함”이란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륜(綸)은 낚싯줄을 가리키는 것이고 겨릅대(䕸: 껍질을 벗긴 삼대)를 낚싯줄에 묶는다(䕸)는 것에서 이것이 찌를 말함이라는 것과 1670년대 이전부터 찌낚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찌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820년경 조선후기의 실학자 유희(柳僖)가 여러 가지 사물을 한글과 한문으로 풀이한 일종의 사전인 유씨물명고(柳氏物名攷)다.

한편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 초기에 물에 뜨는 돌인 경석(輕石)에 구멍을 뚫은 다음 실을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이것을 찌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는 있으나 이는 신뢰도가 현저히 낮은 것이며 현재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찌가 생산된 것은 1931년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교토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던 스가하라 쿠루마토라지로우(菅原寅次郎)란 사람이 이전까지 사용되던 누울찌가 아닌 자립형의 찌를 취미로 만들고 있었는데 1931년에 그가 사망하자 아들인 스가하라 요이치(菅原与一)가 본격적으로 이것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면서 바이스케(馬井助)란 이름의 찌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관동에서까지 큰 인기를 끌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1931년이란 연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02년에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고 1904년 2월 8일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으로부터 전쟁물자를 수송하기 위하여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신의주까지의 철도 건설을 계획하게 되는데 선로의 폭, 즉 궤간(軌間)을 일본 내에서와는 달리 동맹을 맺었던 영국이 청나라에 건설한 표준궤와 동일한 선로를 건설하는 것이 군수물자의 수송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1,435mm의 표준궤로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8년 10월 17일에는 영국이 개발한 “마크Ⅳ”전차가 일본 고베항에 도착하게 됨으로써 일본의 전차개발 100년의 역사가 시작됨과 함께 그들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KTX의 궤간(軌間)

※ 일본의 전차(戰車) 개발사

 

이처럼 조선침탈이 극에 달했던 시기의 일본은 영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였고 이것은 민간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바, 1920년경부터는 영국의 유명한 하디(Hardy)에서는 낚싯줄의 소재로 사용하기 위한 비단(실크)을 일본에서 대량으로 수입하였고 고베에 그들의 대리점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하디의 역사를 소개한 책을 보면 1937년에 고베에 설치했던 대리점에 관한 정보가 나오는데 이 시기를 통해 영국에서 생산한 찌들이 일본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럼으로써 이전까지는 없었던 지금의 구멍찌와 유사한 형태의 찌들이 일본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577년 제럴드 벤틀리(Gerald Eades Bentley)가 쓴 책 아트 오브 앵글러(Arte of Angling)에는 백조의 깃털을 이용하여 찌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는데 키스 하우드(Keith Harwood)의 책(The Float)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찌의 보급이 대중화 되었던 것으로 나온다.

서양의 찌를 소개하고 있는 위키피디어의 글을 보면 찌의 종류로 워글러(waggler)라는 것이 있는데 이 이름은 딕 보우커 주니어(Dick Bowker Junior)란 사람이 붙인 것으로 1975년에 빌리 레인(Billy Lane)이 쓴 책 ‘Match Fishing to Win’을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씩 알려졌다.

 

왜 워글러(waggler)를 꼬집어 얘기하는가 하면 수많은 찌의 종류들 중에서 워글러(waggler)를 사용하는 낚시를 ‘워글러 피싱(waggler fishing)’이라고 부르며 이를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려는 영국의 시도를 우리나라의 조구사들도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2007년 한국다이와의 대표이사였던 아베 코이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한국 조구업체는 단순히 경쟁사보다 한두 가지 기능을 향상시킨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말처럼 일본제품을 능가하는 것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낚시문화를 창달(暢達)하려는 시도가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언젠가 대한민국(Korea)에서 만든 찌(Float)가 코플로트(Kofloat)란 이름의 새로운 낚시문화를 창조하지 못하란 법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 일고 있는 일본불매운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강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에 기대어 안주한다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오징어를 대신할 표현을 찾지 못해 이카란 단어를 제품명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창의력 부족의 몽매한 마케팅으로는 절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아니 국내 낚시인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제품을 만들 수 없음을 대한민국의 조구사들은 알아야만 할 것이다.

군함도에서의 낚시, 보기가 불편하다.

군함도에서의 낚시, 보기가 불편하다.

2017년 영화의 개봉과 함께 널리 알려지게 된 일본의 군함도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인의 강제노역 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라는 조건부 등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도 전혀 관련내용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 포스팅은 전범국가 일본의 과거사 지우기와 역사왜곡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라 군함도의 실상이 알려지게 된 이면을 한 번 들여다보기 위해서이다. 사실 영화 ‘군함도’가 개봉된 2017년 이전에 이미 2012년에 개봉한 ‘007 스카이폴’을 통해서 우리는 군함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강제징용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활동해온 사진작가 이재갑씨와 그를 도왔던 일본인 조력자 기무라 히데토씨가 재조명 받기도 했는데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사진작가인 이재갑씨는 기무라씨의 도움으로 2008년 낚시인으로 위장하여 군함도를 촬영했다고 한다.

※ 관련기사: 연합뉴스-강제징용 실태 세상에 알린 한일 십년지기…”우리는 동지”

 

그런데 이재갑 작가가 낚시인으로 가장하여 군함도 내부를 촬영했던 2008년 당시에는 군함도는 입도하는 것조차도 금지되고 있었지만 낚시인들의 입도는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다.

군함도가 속해 있던 나가사키 현의 다카시마정(高島町)은 2005년에 나가사키시에 편입이 되었고 이미 그 이전에 무인도로서 섬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던 것이 시유지가 되면서도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에 일본정부가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하면서 2009년 나가사키시는 조례(나가사키시 군함도 견학시설 조례)를 만들어 견학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정비한 산책로와 광장은 출입을 허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2009년 4월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군함도에서의 낚시행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나가사키시의 답변은 관리책임이 시가 아닌 나가사키 현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군함도에서의 낚시행위를 방관 내지는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는 것이기에 군함도를 촬영하기 위해 낚시인으로 가장했던 이재갑씨도 군함도에 입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5년 세계문화유산의 등재와 함께 낚시행위에 대한 비판이 일본 내에서 제기되자 나가사키시는 2015년 7월에 낚시인들을 실어 나르는 배의 선장에게 이를 중지할 것을 명령이 아니고 요청(?)했다고 하나 “선대부터 40년 이상을 하고 있는 이 일은 소득의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다.”며 선장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나가사키시에서는 “현재로서는 군함도의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것에 대한 처벌조항은 없으나 엄연한 조례위반에 해당하므로 지속적으로 선장에게 낚시인들의 수송을 중지하도록 부탁(?)할 것이다.”라고만 밝혔다고 한다.

군함도에서의 낚시행위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글은 군함도를 방문했던 분들의 블로그를 보면 쉽게 볼 수가 있으며 이러한 행위를 마뜩찮게 여기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고 일본인들 중에도 있는 모양인데 의역하면 “군함도에서의 낚시인을 보고 분노한다.(怒!軍艦島に釣り人)”는 포스팅을 예로 들어본다.(그러나 불편해 하는 이면의 생각은 우리와 일본은 차이가 있다.)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인 아침, 올해로 3·1운동의 100주년을 맞지만 여전히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는 일본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저수온기에는 수온변화의 폭이 큰 시간대를 공략하자.

저수온기에는 수온변화의 폭이 큰 시간대를 공략하자.

이제 서서히 수온이 내려가기 시작하여 오늘자(11월 10일)로 제주 서귀포의 수온이 20℃를 기록하였고, 겨울철 감성돔 원투낚시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울진 후정해변의 수온은 17℃, 수도권의 낚시인들이 자주 찾는 제부도권역의 수온은 15~16℃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흔히 낚시인들은 수온이 내려가면 물고기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낚시가 잘 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고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전체적인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물고기들의 활성도도 높아지는 것은 맞지만 노리는 대상어종을 정확하게 잡아내기 위해서는 수온과 낚시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 한 가지를 더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수온과 물고기의 먹이활동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들이 행해져왔는데 그 중에서 자동으로 먹이를 공급하면서 금붕어를 1년간 연못에서 키우며 관찰한 결과를 게재한 일본의 1960년도의 수산학회지의 내용을 참고로 수온의 변화에서도 낚시인들은 특히 어떤 점에 주의하여야 하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림 1을 보면 같은 달 수온이 같은 날이라도 먹이활동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림 2는 하루 중의 온도변화에 따라 먹이활동은 어떻게 차이를 나는가를 알아본 것입니다. 즉, 그림 2를 보면 평균수온이 같은 날이라도 하루 중 수온의 변화가 심한 날일수록 물고기의 먹이활동이 활발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먹이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간은 수온이 최고를 기록하는 시간대가 아니라 수온이 가장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간대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낚시와 수온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 1일 평균수온이 같아도 수온의 변동이 심한 날일수록 먹이활동이 활발하고

– 하루 중 가장 높은 수온을 기록하는 시간대가 아니라 수온의 상승폭이 가장 큰 시간대가 먹이활동이 가장 활발하다는 것입니다.

즉, 수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이라도 수온의 상승폭이 큰 시간대를 공략한다면 조과를 올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출조 전에 수온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가장 크게 수온이 오를 것인가를 대략적으로 예측하고 그 시간대에 맞추어 출조를 나서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맑은 날은 아침부터 이른 오전 시간대를 노리는 것이 좋고 흐린 날은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를 공략하는 것이 좋은데 이것은 물이 공기보다 늦게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낚시는 수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맞습니다. 저수온기에는 물고기의 눈앞에 미끼를 가져다 놓아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절대적인 수온도 중요하지만 조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루 중에서 수온의 변화가 가장 큰 시간대를 예측하여 그 시간대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낚시는 강과 바다를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낚시는 강과 바다를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려 한다는 뜻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 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것이 있다.

심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주변의 초보낚시인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한데, 낚시의 조과를 결정짓는 요인으로는 적합한 장비와 채비를 사용하는 것도 있겠으나 그보다 선행하여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노리는 포인트에 물고기들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무리 고가의 장비를 가지고 낚시를 한다 하더라도 물고기들이 없는 곳에서는 좋은 조과를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에 “낚시를 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3가지”라는 글을 통해서 낚시인들의 바람직한 자세는 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이기에 낚시를 꼭 잘해야만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잡는 즐거움으로 만족하고 놓아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① 포인트를 찾는 방법의 터득 ② 물고기의 습성 이해 ③ 조행 후의 분석이란 세 가지는 낚싯대와 사용하는 장비에 대한 이해와 숙달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여기서 지적한 세 가지 사항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강과 바다를 읽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강과 바다로 낚시를 하러 가더라도 물고기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포인트를 정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모습을 경계하여 숨어버리는 물고기들의 습성을 비롯하여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물고기들의 존재여부를 파악하여 조금이라도 좋은 조과를 올릴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기 위한 요건이 바로 강과 바다를 읽는 것인데 이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reading the river”, “river reading”, “watercraft”라는 것들이 우리가 말하는 강과 바다를 읽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reading the river”과 “river reading”은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만 “watercraft”란 단어는 사전을 보면 이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나오는데 “watercraft”란 단어가 강과 바다를 읽는다는 의미로 낚시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영국 카디프 대학교(Cardiff University)의 크리스토퍼 베어(Christopher Bear) 교수가 샐리 에덴(Sally Eden)과 공동으로 집필한 논문인 ‘Reading the river through watercraft’에서 낚시인들과의 대면 인터뷰를 통해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표현이란 것을 밝힌 바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낚시인들이 물을 관찰하는 것은 그냥 물의 표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 표면의 움직임을 보고서 물고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판단하는데,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서 알아보기로 하자.

강과 바다는 물이 항상 흐르고 있으며 그 흐름에는 유속이 빠름과 느림이 항상 공존하고 있고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느린 유속에서 활동하면서 빠른 흐름으로 인해 밀려오는 먹잇감들을 순간적으로 포식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물이 흐르는 속도는 수초나 물거품 등으로 판단하는데 흐르는 속도의 차이가 생기는 경계지점이 반드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농어를 대상어종으로 강에서 낚시를 하는 경우에는 교각 주변이 좋은 포인트가 되는데 이때에도 아래의 사진과 같이 교각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물흐름 속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런 경계지점을 공략하는 것이 조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면, 바다에서 농어를 노릴 때에 많은 사람들이 파도가 육지에 부딪히면서 하얗게 거품이 발생하는 곳을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 또한 충분히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파도가 치지만 오른쪽에 있는 큰 바위의 앞쪽은 물색이 짙고 물흐름이 느린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장소에서 농어가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곳에는 무슨 이유로 농어의 먹잇감이 되는 베이트 피시들이 모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강이나 바다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의 양인 용존산소량(溶存酸素量)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파도가 육지에 부딪혀 포말이 부서지는 곳이 산소의 농도가 높기 때문으로 이런 곳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모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는 한류와 난류같이 성질이 다른 두 해류의 경계를 따라 띠 모양으로 잔물결이 이는 부분인 조목(潮目)이 있는데 영어권의 낚시인들은 이것을 주름이 진다는 뜻을 가진 ‘crease’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조목은 연안어업인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좋은 어장이 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아쉽게도 일본인이다.

이것은 카타하라 타사쿠(北原多作)라고 하는 일본의 해양수산학자가 규명한 키타하라의 법칙이란 것으로 어군(魚群)은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서로 다른 조류가 만나는 곳에서 형성된다고 하는 것인데 이런 어장을 조경어장(潮境漁場)이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은어낚시에서 훌륭한 포인트가 되는 여울이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지점 또한 영어권의 낚시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포인트로 인식되고 있는데 특히 여울이 끝나면서 수심이 깊어지는 곳을 ‘ripply’ 또는 ‘throat of a pool’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낚시인들은 강과 바다의 물흐름과 주변환경을 파악하여 물고기들이 있는 곳을 찾는, 이른바 강과 바다를 읽는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낚시를 시작하는 분들은, 이보다는 장비의 선택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으로, 초보 낚시인들이 많이 찾는 어항(漁港)의 방파제에서도 내항에서는 배들이 다니는 뱃길이 포인트가 된다는 등과 같은 지식의 터득에는 소홀함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추운 겨울, 낚시를 하러 나서기가 망설여질 때에는 이런 기본적인 지식들을 글과 영상으로 익혀두는 것도 좋은 간접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글을 마친다.

어종별 선호하는 수온과 먹이활동을 멈추는 온도

어종별 선호하는 수온과 먹이활동을 멈추는 온도

겨울도 이제 끝을 향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다음 주에는 마지막 추위가 봄을 시샘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낚시인들은 하루빨리 수온이 올라 물고기들의 활성도가 증가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변온동물인 물고기들은 수온이 내려가면서 먹이활동이 감소하기 시작하고 일정 온도 이하가 되면 아예 먹이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낚시인들이 즐겨 노리는 참돔의 경우에는 수온이 17℃ 이하가 되면 먹이활동이 감소하기 시작하고 더 내려가서 10℃ 아래로 떨어지면 먹이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수심층에 따라서 수온도 다르겠지만 그 외에도 물고기의 서식에 필요한 산소의 양도 달라지기 때문에 무조건 수온과 물고기들의 활동성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참고하면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어서 공유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일본의 공익재단법인인 해양생물환경연구소에서 공개한 것으로 원문은 아래에 링크하는 곳에서 볼 수가 있다.

※ 공익재단법인인 해양생물환경연구소

여기서는 원문에 있는 물고기의 이름만 한글로 바꾸었는데 잠깐 부연설명을 하자면 성어가 아닌 어린물고기들을 인공적으로 사육하면서 관찰한 것이란 점을 감안하여 판단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사용된 용어 중 순치온도라는 표현은 사육하고 있는 온도라고 보면 되고, 평형상실온도라는 것은 순치온도에서 수온을 1시간마다 5℃를 높이거나 낮추었을 때 물고기들이 균형감각을 잃어버려 제대로 자세를 가누지 못하게 된 시점의 온도를 말하는 것으로 먹이활동을 하기 어려운 온도라고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며 그림에서는 빨간색 막대로 표시되어 있다.

※ 표에서 와 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해당어종이 가장 좋아하는 수온을 나타내고 있다.

표의 위에서부터 9번째에 있는 우럭을 보면 대략 5℃ 이하와 30℃ 이상에서는 먹이활동을 못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국내 언론사의 기사를 비교하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18년 7월 27일자 중앙일보의 “통영시 해역 조피볼락 생존 한계수온 넘겨 어류폐사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한편 고수온에 취약한 수산생물의 한계수온은 조피볼락 27도, 멍게 26도, 전복 30도, 참가리비 27도 등이다.”는 내용이 있는데 위에서 인용한 일본해양생물환경연구소의 연구자료와 크게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23일부터 1월 29일까지 일주일간의 우리나라 바다의 수온은 아래와 같은데 아직도 마릿수 조황을 올리기 위해서는 따뜻한 봄이 오기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10만 원짜리 장비로 미국의 낚시대회를 휩쓸었던 사람

10만 원짜리 장비로 미국의 낚시대회를 휩쓸었던 사람

낚시인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지만 개중에는 카더라 통신에 현혹되어 잘못된 구매를 하거나 고가의 장비가 무조건 좋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일들도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작년,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개발했다고 홍보하는 원투낚시용 릴을 보고 내가 한 첫마디는 “무슨 기념수건 찍은 것도 아니고~”였다. 그런데 이 제품이 제법 판매가 된 것은 정확하지 않은 카더라~ 통신에 현혹된 군중심리 때문이었음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왜 그 스피닝 릴을 보고 ‘기념수건’이란 표현을 썼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크기가 비슷한 중국산 스피닝 릴의 핸들을 뺀 다음 바꿔 끼워보면 답을 얻으시리라 본다.

이런 장삿속에 눈이 먼 행태가 국산 스피닝 릴에 대한 불신만 높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당업체는 각성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가 하면 스피닝 릴은 일제가 무조건 최고라는 인식을 많은 낚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도 현실인데 이런 모습은 불편함을 넘어서 위험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 “경쟁하면서 발전해온 시마노와 다이와”란 포스팅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서 낚시용품의 현명한 소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시마노와 다이와가 본격적으로 스피닝 릴의 생산과 수출에 나섰던 1970년대는 영어로는 스커티드 스풀(skirted spool)이라고 하는 아웃 스풀 방식의 스피닝 릴이 루어낚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아웃 스풀 방식의 스피닝 릴은 루어낚시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해 대부분 아부 가르시아나 미첼에서 만든 베이트 릴을 사용하였고 이런 풍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일본의 낚시인 중에는 아부나 미첼 매니아가 많다.

그러면 베이트 릴을 주로 사용하는 미국에서 일본 시마노와 다이와의 스피닝 릴들은 어떻게 시장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물론 제품의 우수성과 가격의 저렴함도 원인이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낚시인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졌던 것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당시 다이와와 시마노는 스피닝 릴뿐만 아니라 베이트 릴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었으나 미국 낚시인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마는데 그 이면에는 프로 낚시인들의 평가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의 포스팅에서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게리 클라인(Gary Klein)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 프로들은 일제 베이트 릴이 가볍고 잘 날아가기는 하지만 내구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면서 일본의 개발자들은 평균적인 배스의 크기(40cm 정도)를 상정하고 릴을 만드는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무겁고 잘 날아가지도 않는 아부 가르시아의 4600이나 5500 시리즈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들은 연어낚시용으로 만들어져 대형 배스를 잡아도 손상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일제 스피닝 릴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본의 스피닝 릴들은 기본적으로 바다낚시를 상정하고 만든 것이어서 성능과 내구성이 모두 우수함으로 대형 배스를 낚아도 전혀 손상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일제 베이트 릴들은 1980년대 말 시마노가 출시한 캘커타와 1990년대 초 이탈리아의 산업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디자인한 TD(Team Daiwa)릴이 다이와에서 출시되면서부터 빠르게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해나가게 되었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산업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는 현대자동차의 포니, 쌍용자동차의 렉스턴을 비롯하여 대우자동차의 마티스 등 많은 차량을 디자인한 인물이다.

다시 스피닝 릴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면 일제 스피닝 릴이 미국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1956년도에 설립된 만스 베이트 회사(Mann’s Bait Company)의 사장 톰 만(Tom Mann)이 온갖 잡지에 “일제 스피닝 릴은 아주 우수하다.”는 도배를 해주었던 덕분이기도 한데 그가 무보수로 그런 일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루어낚시에 적합하지 않다고 낚시인들의 외면을 받았던 일본의 스피닝 릴들이 정작 루어낚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루어낚시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낚시용품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앞에서 언급했던 미국의 프로 낚시인 게리 클라인(Gary Klein)으로 화제를 돌려보도록 하자.

 

내가 게리 클라인(Gary Klein)을 언급하는 이유는 취미생활인 낚시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고급이라고 해서 자신이 고품격의 인간이란 착각을 해선 안 된다는 것과 고가의 장비가 조과를 좌우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진정한 낚시인이라면 고가의 장비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예를 들기 위함이다.

MLF(Major League Fishing)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주요대회에서 우승 10회, 탑 10에 든 것만 94회 등 괄목할 성적을 거둔 사람이지만 정작 사용한 로드는 10만 원도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창 활약할 당시 게리 클라인(Gary Klein)이 사용했던 로드를 보면 톱워터 플러그용은 펜윅(Fenwick)의 6피트 글래스 로드였고, 크랭크 베이트용으로는 다이와의 7피트 글래스 로드, 러버 지그용으로는 버클리(Berkley)의 7피트 카본 로드를 사용하였으며 그 외에 스피닝 로드로는 올 스타(All Star)와 루(Lew’s)의 6피트 미만의 카본 로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로드의 가격은 당시에 30달러~8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1980년대 달러화에 대한 한화의 환율이 대략 770원대 선이었기 때문에 비싼 것이 6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의 6만 원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으로 미국의 달러화에 대한 인플레율을 계산하여 2020년 현재 가치로 당시의 30달러를 환산하면 85달러 정도가 되는데 지금의 환율인 1,200원으로 계산하더라도 10만 원~27만 원 정도의 장비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지만 지나친 과소비는 취미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분명하지 않을까?

비가 내리는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했던 주절거림을 끝낸다.

우승상금이 가장 많은 낚시대회와 프로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우승상금이 가장 많은 낚시대회와 프로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 이 글은 2018년 4월 24일에 작성한 것을 블로그를 이전하면서 다시 올리는 것이므로 현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국내에서도 낚시 시즌이 되면 많은 지자체와 조구사들이 주최하는 낚시대회가 열리곤 합니다.

이런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하는 사람들이나 언론에 이름이 알려진 낚시인들의 이름 앞에는 흔히들 “프로”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프로의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기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전업프로로서 낚시만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낚시대회는 어떤 대회이며 이런 대회를 통해서 벌어들인 전업프로 낚시인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낚시가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은 미국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배스마스터 클래식(Bassmaster Classic)” 대회가 현존하는 낚시대회 중에서는 가장 많은 우승상금(30만$)을 지급하고 있으며 총 상금규모는 100만$(10억 원)를 넘는 정도입니다.(편의상 환율을 1: 1,000으로 계산하고 천만 원 이하 버림)

 

이것은 e스포츠대회와 비교하면 역대 상금규모 10위인 “Dota2-The International 2013”의 총상금 2,874,407$(28억 원), 우승상금 1,437,204$(14억 원)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이며 역대 가장 큰 상금규모를 기록한 “Dota2-The International 2016”의 총상금 20,770,640$(200억 원), 우승상금 9,139,002$(90억 원)과 비교하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스마스터 클래식(Bassmaster Classic)”대회의 우승자로 최종 선정되기 위해서는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통과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만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스포츠에서 도핑테스트를 하거나 자동차경기대회에서 차량검사를 하는 것처럼 혹시라도 잡은 배스의 몸속에 중량을 늘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넣지는 않았는지, 사용하는 장비와 채비는 적합한 것이었는지 등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최종우승자로 판정된다고 합니다.

“배스마스터 클래식(Bassmaster Classic)”대회에는 아쉽지만 아직까지 한국인이 출전한 적은 없고(제가 알기로는) 동양권에서는 유일하게 2004년 대회에 참가한 일본인 타카히로 오모리(Takahiro Omori)가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타카히로 오모리는 2016년에 열렸던 “배스마스트 엘리트”시리즈에서 72위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통해서 낚시인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런 타카히로씨도 출전경비를 제하고 나면 미국 일반인의 평균연봉 정도에 해당하는 수입을 거두었다고 하니 낚시로만 생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방송출연이나 CF촬영 등을 통한 기타소득이 있을 수는 하겠지만 낚시대회의 상금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렵다는,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2015년 시즌을 보면 세금을 공제하기 전에 참가비용을 상회하는 소득을 올린 낚시인이 모두 39명이었고, 이마저도 세금을 제한 후에는 12명밖에 없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위의 자료는 미국에 자료가 신고된 사람들만 해당)

결국 대회에 참가하고 좋은 결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후원하는 기업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데 대회 자체의 관심도가 크지 않고 일반의 주목을 끌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낚시대회에서 벌어들인 누적상금의 순위를 10위부터 1위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의 타카히로씨는 16위에 랭크되었고 누적수입은 1,900,947.33$(19억 원)이라고 합니다.

▶ 10위 Todd Faircloth: 2,139,362.31$(21억 원)

 

▶ 9위 Tommy Biffle: 2,233,106.80$(22억 원)

 

▶ 8위 Rick Clunn: 2,406,709.53$(24억 원)

 

▶ 7위 Michael Iaconelli: 2,432,492.00$(24억 원)

 

▶ 6위 Alton Jones: 2,579,541.17$(25억 원)

 

▶ 5위 Denny Brauer: 2,584,823.71$(25억 원)

 

▶ 4위 Aaron Martens: 2,759,228.19$(27억 원)

 

▶ 3위 Edwin Evers: 2,907,378.00$(29억 원)

 

▶ 2위 Skeet Reese: 3,176,353.64$(31억 원)

 

▶ 1위 Kevin VanDam: 6,038,976.33$(60억 원)

 

1위인 케빈 반담의 수입은 2위인 스키트 리스씨에 비해 2배 가까운 금액이라 아마도 당분간은 이 기록이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배스마스터 클래식(Bassmaster Classic)”에서 2017년과 2018년을 이어서 석권한 조던 리(Jordan Lee)의 경우에는 아직 상금랭킹 순위에는 들지 못하였지만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머잖아 순위권에 진입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1991년에 알라바마에서 태어난 조던 리는 아직 3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여서 앞으로 이 선수의 모습을 주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낚시인 중에서도 “배스마스터 클래식(Bassmaster Classic)”에 참가하여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여름철 갯지렁이를 미끼로 사용할 때 주의할 점

여름철 갯지렁이를 미끼로 사용할 때 주의할 점

사용의 편리성과 가격의 저렴함으로 인해 바다낚시에서 미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갯지렁이는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는 관리를 잘못하면 조과에도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름철 갯지렁이를 사용할 때 주의하여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렁이를 구입하면 모래나 질석이 들어있는 이유는?

특히 참갯지렁이를 구입하면 대부분 질석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청갯지렁이는 질석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포장용기에 질석이 들어있는 이유는 산소공급이 쉽도록 하기 위함이 제일 큰 이유이고, 다음으로는 지렁이만 있으면 몸이 굳어지기 쉬운데 질석(인조질석)이 들어있으면 이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상처 입은 지렁이로부터 나오는 체액은 다른 지렁이를 상하게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질석이 하고 있습니다.

 

 

▶ 갯지렁이 운반방법

갯지렁이를 구입하고 바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쿨러에 넣어서 운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보냉제나 얼음에 직접 닿지 않도록 사이에 수건을 넣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간격을 만들도록 합니다.

 

 

▶ 갯지렁이 운반방법

갯지렁이를 구입하고 바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쿨러에 넣어서 운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보냉제나 얼음에 직접 닿지 않도록 사이에 수건을 넣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간격을 만들도록 합니다.

 

 

▶ 낚시를 하는 도중에 주의할 사항

이것이 갯지렁이를 사용할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점인데, 바늘에 끼기 위해 지렁이를 잘라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바늘에 끼면서 갯지렁이가 끊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때 끊어진 것을 그대로 지렁이통에 넣게 되면 다른 지렁이들까지 약화시키게 되므로 반드시 다른 곳에 보관하거나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지렁이를 쿨러에 넣어서 사용하는 경우는 갯바위 등에서 낚시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기가 어려운데 더운 여름철이면 지렁이도 약해지기 쉬우므로 가능하면 쿨러에 담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계속해서 낚시를 즐기려 계획하고 있다면 통기성이 좋은 나무로 된 미끼통을 하나쯤은 준비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원투낚시에서는 나무상자에 지렁이를 담아 하루 정도 보관하였다가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수분이 적당히 빠져나감으로써 캐스팅할 때 잘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관하였다가 사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6~10℃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