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월튼이 전하는 말-Study to be quiet

아이작 월튼이 전하는 말-Study to be quiet

원제는 The Compleat Angler, 한국판은 조어대전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을 쓴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쓴 표현이 바로 오늘 포스팅의 제목인 “Study to be quiet”다.

낚시를 통해 고요함을 배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이 표현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창작물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례명이 안드레아인 사람으로서 성경의 구절을 잠깐 인용하자면 이 표현은 신약성경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제4장 11절에 나오는 것으로 아래와 같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Make it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to mind your own business and to work with your hands, just as we told you.)”

책의 말미에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적었던 “Study to be quiet”란 표현은 현대를 살아가는 낚시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당시 편집자들에 의해서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라 해석되었고, 그 해석은 지금까지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란 인물을 조금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자.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동상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쓴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이 출판된 것은 1683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서 출판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책이 출판된 곳이 어디인지를 알면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에 대하여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헤밍웨이가 지은 것이 아니라 17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인 존 던(John Donne) 신부가 쓴 아래의 시를 인용한 것이었다.

For Whom The Bell Tolls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s tolls; it tolls for thee.”

그리고 성공회 사제였던 존 던(John Donne)과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아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연말 아이작 월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런던에서 사업을 하였다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존 던(John Donne)도 그때 만난 사람 중의 한 명이었으며 그를 만난 이후로 아이작 월튼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1624년부터 1631년에 사망할 때까지 존 던(John Donne)은 성 던스턴 서부교회(St Dunstan-in-the-West)의 교구신부(Rector)를 맡았었는데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1629년부터 1644년까지 이 교회에서 간사를 비롯한 여러 직책을 역임하였다.

존 던(John Donne)

존 던

그리고 존 던(John Donne)의 보좌신부였던 헨리 발렌타인(Henry Valentine)이 아이작의 조카 사라 그린젤(Sarah Grinsell)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존 던(John Donne)과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며 이러한 관계를 기반으로 그의 명저(名著)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을 편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에는 책을 인쇄하는 기계는 아주 귀한 것이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인쇄기를 성 던스턴 서부교회(St Dunstan-in-the-West)가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아이작은 그의 저서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존 밀턴의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도 성 던스턴 서부교회(St Dunstan-in-the-West)에서 인쇄가 되었다.

조어대전의 말미에 밑도 끝도 없이 적은 ‘Study to be quiet’는 어떻게 해석해야 정확하게 아이작 월튼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을까?

1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잉글랜드 내전을 겪으며 두 명의 아내와 대부분의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냈던 그가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했던 묵상(默想)은 영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서적 치유를 통한 평화를 얻기 위한 휴식이었을까?

최근 들어 1인 미디어의 유행으로 조용해야 할 낚시터에서 소란을 넘어 보기 민망할 정도의 광경이 연출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낚시의 바이블이라는 아이작 월튼이 쓴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려보았다.

아직도 그가 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그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앤 월튼(Anne Walton)의 비문에 ‘Study to be like her’란 글을 남겼다.

Study to be quiet와 Study to be like her이란 표현에 담긴 뜻은 아이작 외에는 그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이 출판되고 10년 뒤인 1662년 4월 17일,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리는 비문에 적힌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Study to be like her’이란 표현에서, 아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넘은 존경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 어제는 사랑하는 내 아내의 생일이기도 했다.

끝으로 코로나가 종식되고 영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는 낚시인들은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잠들어 있는 윈체스터 대성당(Winchester Cathedral)을 방문하게 된다면 영국의 낚시인들이 기증하여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에 있는 아이작의 모습을 꼭 보고 오시길 바란다.

윈체스터 대성당(Winchester Cathedral)

이첸강(River Itchen)을 배경으로 낚시장비를 옆에 두고 책을 읽고 있는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모습 아래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 같은 ‘Study to be quiet’가 새겨져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절친이자 낚시제자인 찰스 코튼(Charles Cotton)과 함께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으로, 그들의 옆에는 당연히 낚시도구가 놓여있으며 그런 그들의 아래에는 성경의 한 구절인 범사에 감사하라(In everything give thanks)는 말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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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대전에 나오는 물고기 종류

조어대전에 나오는 물고기 종류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쓴 ‘The Complete Angler(일명 조어대전)’의 제1부는 모두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오는 물고기의 종류는 모두 14가지이다.

이 중에서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거나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송어, 연어, 잉어, 장어를 제외한 10종류의 물고기는 우리에겐 생소한 어종(魚種)으로 ‘조어대전(The Complete Angler)에 숨어있는 신분제도’에서 설명한 콜스 피시(coarse fish)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본인이 번역하면서 붙인 물고기의 이름을 국내 번역본들이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원본과는 다른 물고기가 되어버린 점은 기존 번역본들에서 느끼는 아쉬움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오류가 큰 처브(Chub), 퍼치(Perch), 바벨(Barbel) 3종류의 물고기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조어대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차벤더 또는 처브(Chavender or Chub)라는 물고기는 일본인이 황어(鯎)라고 번역한 것을 국내에서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황어와 처브는 전혀 다른 어종이다.

처브(Chub)

황어아과의 민물고기로 흐름이 완만한 강과 운하에 서식하며 자갈이 많은 곳을 선호하며, 5월부터 9월까지가 산란기로 성어의 평균적인 체중과 크기는 1.4~2.3㎏, 30㎝정도이다.

 

처브는 2021년 3월 29일 환경부가 배포한 ‘유입주의 생물 300종 현황’에도 포함되어있는 물고기로 이름을 유럽몰개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황어와 유사한 습성을 가진 것은 맞지만 황어와는 다른 종류란 걸 알 수 있는데, 낚시를 좋아하고, 물고기 연구를 즐겨 하는 사람으로서 기존의 번역본에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점이었다.

다음으로는 일본의 물고기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돌잉어로 소개하고 있는 바벨(Barbel)이란 이름의 물고기다.

바벨(Barbel)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바벨이란 이름은 물고기의 수염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4개의 수염이 있다. 물흐름이 빠른 곳에서 서식하며 5~6월 사이에 산란하고, 다 자란 성어의 평균 체중과 크기는 50~80㎝, 2.5~4㎏ 정도이다.

 

일본판 조어대전에서는 바벨의 이름을 니고이(似鯉)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을 국내 번역본들은 돌잉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두 어종은 학명이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벨은 잉어아과, 돌잉어는 모래무지아과에 속하여 달라도 너무 다른 물고기다.

이처럼, 낚시의 바이블이라고도 하고, 낚시인의 필독서라고도 하는 아이작 월턴의 The Complete Angler(일명 조어대전)에도 존재하는 일본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었다는 것이 직접 번역에 나서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

일본 고유어종으로 잉어와 닮았다는 뜻으로 니고이(似鯉)라 이름 붙인 바벨은 수염이 2쌍(4개)인 반면, 니고이(似鯉)는 수염이 1쌍(2개)으로 외모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다음은 농어(鱸)라고 소개하는 퍼치(Perch)이다. 퍼치(Perch) 역시 환경부가 배포한 ‘유입주의 생물 300종 현황’에도 포함되어있으며, 이름은 ‘유라시아민물농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농어와 퍼치는 모두 농어목의 물고기이지만 농어는 농어과, 퍼치는 페르카과(Percidae)의 물고기로 전혀 다른 어종이기 때문에 농어로 소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퍼치(Perch)

속명인 페르카(Perca)는 얼룩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perke가 어원이다. 다 자란 성어라고 해도 25㎝와 750g을 넘기가 어려우며, 겨울낚시의 대상어종으로 인기가 높다.

 

그 밖에 우리에게 생소한 어종으로, 아이작 월턴의 ‘The Complete Angler(일명 조어대전)’에 나오는 7종류의 물고기는 아래와 같다.

 

그레일링(Grayling)

연어과의 민물고기로 몸 전체에 검은 반점이 있으며, 등지느러미가 돛처럼 아주 큰 것이 특징으로, 수온이 8℃에 도달하는 3월초에 산란하며 성어는 평균 0.3~0.5㎏, 20~30㎝ 정도로 작은 편이다.

 

강꼬치고기(Pike)

민물꼬치고기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큰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성어의 평균 크기는 2.5~4㎏, 60~80㎝ 정도이다. 얼음이 채 녹기도 전인 초봄에 산란하며, 산란 후에는 알을 돌보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브림(Bream)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며 4월과 6월 사이에 산란하는데, 실버브림과 커먼브림의 두 종류가 있다. 실버브림은 다 자란 성어일지라도 평균 450g 정도밖에 안 되고 커먼브림은 2㎏를 넘으며 강의 하구와 진흙이 많은 곳에 서식한다.

 

텐치(Tench)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닥터피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여름철에 산란한다. 성어의 평균 체중과 크기는 1.5㎏, 30~50㎝ 정도이며, 진흙 바닥의 수초에 숨어서 활동하고 경계심이 많아 낚시로 잡기가 어려운 편이다.

 

모샘치(Gudgeon)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모래나 자갈바닥을 좋아하고, 수온이 13℃를 넘는 4월부터 8월까지 산란한다. 성어의 평균 체중과 크기는 30~60g, 7~12㎝ 정도로 아주 작은 편이며 물총새가 아주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로치(Roach)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흐름이 완만한 하천과 연못에 서식하며 수온이 18℃ 정도가 되는 4월과 6월 초 사이에 산란한다. 성어는 평균 35㎝를 넘지 않으며 무게는 1㎏ 정도로, 주로 생미끼를 사용한 찌낚시로 잡는다.

 

데이스(Dace)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자갈이 많은 곳을 선호하며 맑고 깊은 곳에 주로 서식하지만, 기수역에서도 서식한다. 3월과 4월에 산란하며 성어의 크기는 10~15㎝에 불과해 육식성 어종을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기도 하며, 주로 생미끼를 이용한 찌낚시로 잡는다.

조어대전 제1장 낚시꾼과 매사냥꾼 그리고 사냥꾼의 이야기

조어대전 제1장 낚시꾼과 매사냥꾼 그리고 사냥꾼의 이야기

낚시꾼: 안녕하십니까? 이제야 두 분을 따라잡았습니다. 아마도 하트퍼드셔의 웨어로 가시는 것 같아서 함께 가려고 토트넘 언덕을 넘어 뒤쫓아왔습니다. 정말 상쾌한 5월의 아침이군요.

 

사냥꾼: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는 호즈덴의 초가집에서 아침 해장술을 마실 생각입니다. 그리고 친구 한두 명을 만날 예정이라 쉬지 않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분은 동행하고부터 어디까지 가시는지 물어보지도 못했을 정도입니다.

 

매사냥꾼: 제가 테오발드의 집까지 동행하겠습니다. 그 뒤에 털갈이를 위해 매를 맡긴 친구 집에 들러 조금이라도 빨리 매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입니다.

 

사냥꾼: 우리 모두 맑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어 무척 행복하고 여러분들과 함께여서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계획은 차치하고 두 분과 함께 여행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탈리아 속담에도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게 느껴진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매사냥꾼: 그럼요. 좋은 대화가 있으면 더욱 좋겠죠. 당신의 표정과 말투가 흥겨운 것을 보니 즐거운 얘기가 오갈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저도 선생님께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흉금을 터놓고 편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냥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낚시꾼: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시다면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급하게 서두르시는 것은 일 때문입니까? 아니면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입니까? 매사냥꾼님은 매를 맡긴 친구 집에 들러 조금이라도 빨리 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아직 당신께는 듣지 못해서 여쭤보는 것입니다.

 

사냥꾼: 둘 다입니다만 즐기려는 쪽이 더 큽니다. 오늘은 한 잔 마시면서 일을 마치고, 나머지 하루나 이틀은 수달 사냥을 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만날 친구가 다른 어떤 사냥보다도 수달 사냥이 재미있다고 하기 때문에 꼭 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암웰 언덕에서 새들러씨와 그의 수달 사냥개들을 만날 예정인데 너무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일출을 보는 것을 방해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낚시꾼: 고마운 일입니다. 저도 이전부터 수달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 정도 그 일에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달은 물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멸종시킬 정도로 해로운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달 사냥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정부에서 장려금을 지급하여 수달을 멸종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냥꾼: 그러면 우리나라의 여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우도 수달과 마찬가지로 큰 해를 끼치니까 없애야 하지 않을까요?

 

낚시꾼: 여우가 해롭다고는 해도 저와 제 동료들에게는 수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냥꾼: 선생님의 친구분들은 어떤 분들이길래 불쌍한 수달을 그토록 미워하는 것입니까?

 

낚시꾼: 저는 낚시인의 한 사람입니다. 즉, 수달은 낚시인의 적이란 것입니다. 낚시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낚시인들을 위해서도 수달을 싫어하는 것이랍니다.

 

사냥꾼: 저는 사냥개를 좋아하기 때문에 몇 마일을 사냥개들과 뛰어다니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많은 사냥꾼들이 낚시꾼을 비웃는 것을 듣곤 합니다.

 

매사냥꾼: 저는 매사냥꾼이지만 대부분의 성실하고 신사적인 사람들이 낚시를 시시하고 지루한 취미라고 비웃는 것을 들었습니다.

 

낚시꾼: 어떤 예술이든 취미든 비웃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천하고 상스러운 자만과 악의 섞인 약간의 재치만 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냉소주의 아버지 격인 루키아노스(Lucian of Samosata)의 시처럼 종종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건 조소에 능한 당신을 위한 시다

솜씨를 재치라고 생각하는 그대의 어리석음

네가 자주 범하는 깊은 생각 없는 조소야말로

스스로를 비웃는 것이다.

 

솔로몬 왕의 말을 덧붙이면 비웃는 자들은 인간을 혐오하는 자들이니 비웃고 싶으면 비웃도록 내버려 두면 됩니다. 저는 그들을 도덕과 낚시를 사랑하는 우리의 적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착하고 올곧은 사람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인들을 경멸하지만 우리야말로 그런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선천적으로 근엄하게 생긴 것 때문에 성실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여 열심히 돈을 벌고, 번 돈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부자이면서도 언제나 돈이 없어지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우리 낚시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엾게는 여길지언정 그들의 지혜를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스스로가 충분히 행복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유명한 몽테뉴(Montaigne)는 “내가 고양이와 아무것도 아닌 스타킹 밴드로 장난치고 있다면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더 놀고 싶으면 계속하고, 싫어지면 그만둘 권리를 고양이도 가지고 있으므로 무조건 고양이를 바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고양이가 어리석고 불쌍하다고 여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고 말을 했습니다.

몽테뉴가 고양이를 예로 들어 말한 것은 어떤 사람도 인간을 비웃을 권리는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낚시인을 비웃는 사람들은 낚시가 어떤 예술인지,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므로 그런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냥꾼: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저는 빈정거리는 사람이 아니니 부디 나쁘게 생각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낚시인들이란 인내력이 강하면서도 단순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낚시꾼: 저의 진지함 때문에 저를 인내력이 없는 사람으로는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단순함이란 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거나 초기 기독교인들(그들의 대부분은 어부였습니다)처럼 과묵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저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돈벌이나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심을 파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없던 그 시대에는 손바닥만한 양피지 한 장이면 유산을 상속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몇 장의 서류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안심하지 못합니다. 이런 단순함이 진정한 낚시인의 단순함이며 이런 의미에서 낚시인들을 단순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단순하다는 표현으로써 낚시라고 하는 예술을 깎아내리려 한다면 오히려 정반대이기 때문에 저는 그 편견을 없애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께서 참고 들어주신다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낚시라는 훌륭한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없애 드리겠습니다.

두 분 중 한 분은 매사냥을 좋아하시고 다른 한 분은 사냥을 좋아하신다니 먼저 두 분의 얘기를 듣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면 저는 일방적으로 제 얘기만 하는 비신사적인 행동은 하지 않으니까요.

두 분의 얘기를 듣고 나서 낚시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을 것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매사냥꾼님부터 말씀해 주시죠.

 

매사냥꾼: 예, 좋습니다. 그럼 저부터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상대하는 것은 공기라는 것으로 이것은 물과 흙보다는 위에 있습니다. 때론 저도 흙이나 물을 다루기도 하지만 제겐 공기가 가장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저의 매들도 공기 속에서 생활하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공기는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짐승과 물고기는 비상하기에는 몸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도저히 닿을 수가 없지요. 저의 매들은 인간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올라 신들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래서 저는 매들이 다이달로스의 아들(이카로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보러 가는 매는 그보다도 더 뛰어나며 이카로스처럼 날개가 태양에 탈 때까지 계속 비상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매는 하늘을 나는 것 외에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야지만 높은 산과 깊은 강 위를 날면서 첨탑과 웅장한 성곽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부르면 내려와서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매는 저를 주인으로 받들고 있으며 하루의 즐거움이 끝나면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간답니다. 또 내일을 즐기기 위해서요.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제가 얘기하는 공기의 혜택은 지상과 물속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명체들에게도 미칩니다. 공기 없는 물속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데 추위로 강이 얼어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즉 호흡을 하지 못하면 어떤 동물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공기가 있어야 살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어 만들어진 인간의 생명은 호흡을 멈추면 함께 끝나고 맙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앞에서 슬픈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며 그 다음엔 썩어서 사라지는 것이지요.

하늘을 나는 새는 매 외에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간에게도 유용한 가치가 있으므로 그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새들은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고 아름다운 지저귐은 우리의 청각을 즐겁게 해주며, 밤이면 부드러운 깃털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새들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예술가 못지않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종달새는 자신이 기쁘거나 자기 자신과 자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때, 땅에서 날아오르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입을 닫고는 땅에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슬픔에 잠깁니다.

블랙버드와 개똥지빠귀는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요? 봄을 알리는 저 소리는 어떤 예술도 어떤 악기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밭종다리나 작은 종달새와 홍방울새와 살아있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정직한 울새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계절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나이팅게일을 비롯한 여러 새들은 작은 목에서 내는 멋진 소리로 우리 인간에게 기적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낮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밤에 잠을 잘 때 밤공기 속에서 새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하느님, 인간에게조차 이런 음악을 주신다면 하늘에 계시는 성인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음악을 들려주시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탈리아에 있는 많은 새장이나 지금도 로마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 바로(Marcus Terentius Varro)의 새장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새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새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제비가 부대 간의 연락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며, 몰타였는지 로도스였는지는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터키군이 포위했을 때 서신을 전달한 것은 분명히 비둘기였습니다.

또한 조지 샌디스(George Sandys)는 여행기에서 알레포와 바빌론 사이에도 비둘기를 이용하여 서신을 교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믿지 못한다고 해도 노아가 방주에서 비둘기를 보내 육지를 찾게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율법으로 정해진 제물에도 멧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비둘기가 값비싼 황소나 양과 동일하게 여겨졌으며 하느님께서 예언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실 때도 까마귀를 이용하여 아침저녁으로 고기를 나르도록 시키셨지요.

마지막으로 성령이 구세주에게 내려올 때도 비둘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경이로운 일들이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새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새에게는 조금 뒤떨어지지만 역시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작은 생물인 부지런한 벌이 있습니다. 벌들은 신중하고 조직적이며 사회를 관장하는 정부와 같은 것이 있고, 또 벌들이 만드는 꿀과 밀랍은 식용이나 약용으로 매우 유용하다는 등 할 얘기가 많지만 5월의 이른 아침에 분명히 약초와 꽃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일을 하고 있을 테니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매 얘기로 돌아갑시다. 아시다시피 매는 날개가 긴 것과 짧은 것의 두 종류가 있는데 매사냥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날개가 긴 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백송고리와 저킨,

팔콘과 태슬 젠틀,

래너와 래너렛,

보케럴과 보케럿,

세이커와 세이커렛,

멀린과 잭 멀린,

하비와 잭

스페인산 스텔레토,

터키산 블러드 레드 룩,

버지니아산 와스카이트.

그리고 날개가 짧은 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글과 아이언,

고쇼크와 타셀,

스파호크와 머스킷,

두 종류의 프렌치 파이.

그 다음은 매로 간주되고 있지만 조금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스타넬과 링테일,

레이븐, 버저드,

포크트 카이트, 볼드 버저드,

헨 드라이버 등등이 있습니다.

 

저는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서 에이레나 브랜처, 래미쉬호크, 하가드와 두 종류의 렌터너 및 몇 종류의 에이리 등에 대해서 그들의 울음소리, 털갈이할 때의 모습, 바뀐 먹이를 먹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제게 주어진 시간을 넘어버리기에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사냥꾼: 드디어 제 차례가 왔군요. 먼저 땅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이 공기의 가치를 훌륭하게 설명해주신 것처럼.

제게 즐거움과 건강을 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대지는 반석과 같이 흔들림이 없으며 인간과 짐승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인간은 땅에서 여러 종류의 놀이를 즐기는데 경마, 사냥, 또는 좋은 향기와 쾌적한 산책 등이 모두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대지는 인간에게 소중한 식량원을 제공합니다. 땅 위의 짐승들은 우리의 배를 채워주는 동시에 놀이를 즐길 수 있게도 해줍니다. 당당한 수사슴이나 온화한 모습의 암사슴, 멧돼지와 교활한 수달과 여우, 겁 많은 토끼를 사냥하는 것은 우리의 큰 기쁨입니다.

또 더 열등한 동물들, 예를 들면 피체트나 풀리마트, 페럿, 긴털족제비, 두더지라는 지상과 지하를 기어가는 동물이라고 하더라고 덫을 놓아 잡는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땅은 어떻게 풀과 꽃과 열매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가운데에서도 포도주를 마실 때면 나는 머리가 맑아져서 더욱더 땅에 감사한 마음이 든답니다. 만일 풍요로운 대지가 없었더라면 클레오파트라가 어떻게 8마리의 멧돼지를 통째로 구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k Antony)를 대접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 거대한 코끼리를 비롯하여 겨울을 위해 여름에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 죽음은 없으며, 대지는 우리가 타고 달리는 말을 길러주기도 합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두 분도 지루함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 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땅은 성난 바다를 다스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과 동물을 보호하며 파괴로부터 지켜주고 있습니다.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사람들이 바다에서 난파되고 물에 빠져 대구의 먹이가 되는 일들이 매일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을 지키는 사람들은 대지를 거닐고 생활하면서 먹고 마시며 사냥의 즐거움을 누리기도 합니다. 사냥의 즐거움에 대해서 몇 가지만 얘기하고 낚시꾼 선생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사냥은 원래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던 것으로 어느 시대에나 사랑받아왔지요. 크세노폰이 자기의 사냥기술을 키로스 2세에게 보여주고 자기의 자격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무튼, 사냥은 귀족의 자제들을 남자답게 성장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멧돼지와 수사슴과 암사슴, 여우와 토끼를 사냥하는 것보다 힘과 활동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개들은 훌륭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사냥개는 처음 맡은 냄새를 절대 잊지 않으며 다른 냄새가 섞인 속에서도 추적하고, 심지어는 물속이나 땅속까지 추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냥개는 명곡을 연주하는 명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우수한 그레이하운드는 한 무리의 사슴 떼를 쫓을 때도 가장 최고의 사슴을 골라 끝까지 쫓은 다음 숨통을 끊을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우수한 개라고 하면 사냥개를 말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사람들이 매일 대화하는 것처럼.

만약 시간이 있다면 사냥과 사냥개의 장점과 우수함, 특히 얼마나 잘 훈련 받는지도 얘기하고 싶고, 체질과 골격이나 다른 어떤 것들도 결코 인간에 뒤지지 않는 동물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고, 특히 모세가 유태인들이 먹어도 된다고 정한 규칙(레위기 2장 8절)에 따른 발굽이 갈라진 반추동물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낚시꾼 선생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모자라면 안 되니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마는 낚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쉬운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너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매사냥꾼: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만 결국은 긴 얘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낚시꾼: 여러분, 편견은 갖지 마십시오. 제가 앞으로 할 이야기는 저의 취미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조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좀처럼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만일 오락을 즐기는 도중에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의 관습도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제 말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저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고 과장된 이야기를 할 생각도 없으며 아는 것을 깎아내려 낚시라는 예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속셈도 없습니다. 서론은 이쯤에서 마치죠.

이제 원소 중의 하나인 물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물은 하느님이 만든 최초의 것으로 만물의 맏딸이자 다른 창조물들이 풍부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없어선 안 되는 것으로 물이 없이 살 수 있는 생물체는 없고, 물이 없으면 금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위대한 법률가이자 철학자이면서 이집트의 모든 학문에도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친구라 불리며 하느님의 마음을 알았다는 모세는, 물이 하느님의 첫 번째 창조물이고 모든 것의 근원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물로 이뤄져 있고 다시 물로 환원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나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준비하여 상자에 흙을 담아 뿌리를 묻은 다음, 각각의 상자마다 무게를 측정해두고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합니다.

아마도 무게는 상당히 늘어났을 테지만 흙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나무가 성장하는 것은 비나 이슬 혹은 땅속의 수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다시 물로 환원된다는 것도 단언할 수 있으며 이 원칙은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적용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물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은 흙보다 생산적이며 비와 이슬이 없이는 흙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모든 약초와 꽃과 열매는 물이 있기 때문에 성장하며 광물도 지하수에 의해서 유지가 된다는 것은 산꼭대기에서 솟아나는 샘에서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광부들의 체험담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속에서 자라고 번식하는 생물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에게는 고마운 일로써 인간의 수명을 유지해줄 뿐 아니라 질병을 예방해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다음의 사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순절과 금육기간을 지키는 것을 소홀히 함으로써 여러 가지 질환에 걸리는 것이며 특히 우리 영국에서는 채소와 샐러드 및 생선을 먹는 다른 현명한 나라들과는 달리 유명한 의사들이 물고기를 먹는 것은 피해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도 사람들은 생선을 주식으로 삼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 11장 9절의 “물에 사는 모든 것 가운데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수 있다. 물에 살면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바다에서 살든 개울에서 살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말씀과 신명기 14장 9절의 “물에 사는 모든 것 가운데에서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수 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예로부터 생선을 최고의 성찬으로 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고기라 해도 코끼리보다 세 배나 큰 고래도 있는데, 고래는 클 뿐만 용맹스럽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호화로운 향연은 생선요리로 이루어졌었는데 절정기의 로마인들은 철갑상어, 칠성장어, 숭어를 연회석에 내놓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물고기들을 사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크로비우스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가 쓴 책을 보면 로마인들이 생선과 물고기를 키우는 양어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얘기를 하면 논지와는 다른 얘기를 하게 되는데 제가 그만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낚시를 이해하는 좋은 친구인 와튼 박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었는데, 어려운 얘기는 그만두고, 논지를 벗어나지 않는 좀 더 편안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물에 대한 얘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제일 먼저 목욕의 효과를 필두로 바다의 이용가치는 열거하기도 어려운데 교통이란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바다가 없으면 살아나갈 수가 없을 정도이며 바다는 인간에게 식량과 약품을 제공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주기도 합니다.

피렌체의 아름다움과 기념비들과 골동품과 그 밖의 많은 진귀한 것들도 바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모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아직도 로마 근처에 남아있으며 너무 많아서 전부를 보려면 1년이나 걸릴 정도인데 그것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독실한 성 예로니모의 첫 번째 소원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뵙는 것이었고, 두 번째 소원은 성 바오로의 설교를 듣는 것이며, 세 번째 소원은 로마의 영광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로마의 영광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역사학자 리비우스와 최고의 웅변가인 키케로의 비석과 베르길리우스의 무덤에 우거진 월계수를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학문에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겐 성 바오로가 살았던 초라한 집과 그를 기념하여 만든 조각상들을 보는 것 이상으로 성 베드로가 잠들어 있는 장소를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실제로 로마 근처에 있으며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았고 시온 산과 예루살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묻힌 그곳에서 매일 바쳐지는 예배에 참가하고 싶지 않은 기독교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논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여기서 멈추지만, 영국이란 섬나라는 바다가 없었더라면 제가 얘기한 것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논의라면 오래도록 계속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저 자신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물고기에게는 말을 하신 적이 있으나 짐승에게는 단 한 번도 말을 건네신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요나를 니네베로 보내기 위해 고래를 배처럼 이용하셨습니다. 얘기하고픈 것은 많지만 마침 테오발드의 집도 보이므로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사냥꾼: 천만에요. 모두가 동감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유감이지만 당신과 같은 낚시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작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두 분 모두 안녕히 가십시오.

낚시꾼: 그럼 이제 사냥꾼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사냥꾼: 아닙니다. 낚시는 예로부터 내려온 완벽한 예술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쉽게 이르기는 어렵다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얘기를 계속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낚시꾼: 예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요. 만약 몇 시간만이라도 선생과 더 얘기할 수 있다면 낚시의 오랜 역사와 기예를 연마하는 예술로서의 낚시에 대한 얘기를 해드릴 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낚시를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냥꾼: 그렇게 하시죠. 초가집까지는 아직 5마일이나 남았으니 선생께서 하시고 싶은 얘기를 계속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는 동안 선생의 말씀을 잘 듣고 낚시가 배울만한 예술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면 하루나 이틀을 선생의 제자로서 함께하면서 낚시를 배우고 싶습니다.

 

낚시꾼: 낚시가 배울만한 예술이란 점은 분명하며 인조미끼로 송어를 낚는 것은 훌륭한 기예일 것입니다. 송어는 어떤 매보다 눈이 좋고, 기운차고 용맹한 쇠황조롱이보다도 조심성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친구의 아침식사를 위해 몇 마리는 문제없이 잡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낚시란 선생이 배울만한 것임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배울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낚시는 시를 짓는 것과 같아서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낚시를 하거나 시를 짓는 것은 모두 토론과 경험을 쌓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발전하지만 훌륭한 낚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탐구심과 관찰력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인내심과 낚시에 대한 애정과 강한 호기심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즐거움으로 인해 멈출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낚시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냥꾼: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그럼 예술로서의 낚시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주십시오.

 

낚시꾼: 바라시는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낚시의 역사에 대해서 긴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이것만은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데우칼리온의 홍수가 있던 날 포세이돈의 아들인 벨로스가 이 놀이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아담의 아들 셋(Seth)이 후손들에게 낚시를 가르쳐 오늘에 이르렀다고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 따르면 셋(Seth)이 수학과 음악, 기타 귀중한 지식과 함께 그가 세운 기둥에 새겨서 남겨두었는데 그것이 하느님의 가호로 노아의 홍수 때에도 유실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설들은 낚시를 입증할 수 있는 것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낚시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탄생보다도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아모스서에는 낚싯바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살았던 모세가 마지막 부분을 썼다는 욥기에도 낚싯바늘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 아모스서 4장 2절: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셨다. “보라, 정녕 그때가 너희에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너희를 갈고리로 끌어가고 너희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마저 낚시로 채 가리라.”

※ 욥기 40장 25절: 너는 갈고리로 레비아탄을 낚을 수 있으며 줄로 그 혀를 내리누를 수 있느냐?

누구나 자기의 조상을 자랑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적이고 겸손하면서 용감하고, 예절 바르고 덕이 있는 신사임을 자랑하고 싶어하듯이 제가 낚시에 대해서 그 오랜 역사의 존엄성을 말씀드리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대로부터 인간의 행복은 명상에 있는가, 행동에 있는가 하는 논쟁이 이루어져 왔지만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행복은 명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모방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행복해진다고 말하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무한함과 영원함, 전지전능한 능력과 선량함과 같은 것들을 명상함으로써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식이 많은 수도승들은 행동보다 명상을 중시하는 것 같고, 그리스도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신 것에서 보듯이 많은 성직자들도 이 주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루카복음서 10장 41, 42절: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행동에 중점을 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의약의 효과를 시험해 보고 그것으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여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라 말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행동은 예술과 덕을 가르치는 교리이자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므로 명상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견해에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진 않겠지만 두 가지 설 모두가 모순되는 것이 아니므로 낚시도 명상이자 행동이라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조용한 강가는 명상에 빠지지 않는 장소이며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피터 뒤 물랭(Peter du Moulin)은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무언가 계시하고자 하실 때, 반드시 그들을 사막이나 해변으로 부르시는 이유는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오면 마음의 평안을 얻어 계시를 받기가 쉽다고 그의 저서 ‘예언의 실현’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37절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얘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흥겨운 음악과 소란을 멀리하고 바빌론 강가의 버드나무에 걸어놓은 비파를 조용히 연주하면서 폐허가 된 시온과 자신들의 슬픈 처지를 깊이 명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치 넘치는 스페인 사람은 “강과 물은 현자(賢者)를 명상하게 만들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지나친다.”고 말합니다. 저는 현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선 강과 물고기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 테니, 당신이 이것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강에 대해 말하면, 강에 관한 경이로운 일들과 그곳에 서식하는 여러 생물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술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후세에 몰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피루스에 있는 강은 이름 그대로 켜진 횃불은 끄고, 꺼진 횃불에는 불을 밝힌다고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강은 그 물을 마신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어떤 강물은 취하게 하며, 또 어떤 강물은 웃음병에 걸리게 만들어 미쳐서 죽게 만든다고도 합니다.

셀라루스 강물은 몇 시간이면 막대기나 지팡이를 돌멩이로 만들어 버린다고 하며 우리의 캠던 강도 이와 비슷한 일이 아일랜드의 로크미어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라비아의 어떤 강에서는 그 물을 마신 양의 털이 주홍색으로 변했다고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견되는 현인에 의하면 엘루시나란 유쾌한 강이 있다고 하는데 그 강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거품을 내면서 모래를 휘젓다가도 음악이 끝나면 춤도 멈춘다고 합니다.

게다가 캠던은 웨스트모얼랜드의 커비 근처에 있는 우물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는 우물이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세푸스 못지않게 박학한 유대인이 얘기하는 강은 일주일 동안 6일은 대단한 기세로 흐르지만 안식일에는 하루 종일 고요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강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은 그곳에 사는 괴물이나 물고기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철학자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그의 9번째 저서의 제3장에서 인도양에는 발라에나 또는 월풀이라고 불리는 고래가 산다고 하는데 그 체표의 면적이 2,500여 평이나 된다고 하며 갠지스강에는 9미터나 되는 장어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큰 장어는 평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폭풍우가 급류를 몰아칠 때만 바닥에서 모습을 보인다고 하며, 이 강 근처에 사는 카다라 섬의 사람들은 이 물고기의 뼈로 집을 짓는다고 하며 엄청나게 큰 장어 수천 마리가 나타나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편, 돌고래는 음악을 좋아해서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면 그 음악만 듣고도 다가오며, 화살처럼 빨리 헤엄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은 1670년경에 출간된 카조봉 박사의 ‘믿거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Of Credulity and Incredulity)’에도 실려있습니다.

우리 영국 사람들은 이런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존 트러데스컨트나 제 친구인 엘리아스 애쉬몰 같은 사람들은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엘리아스 애쉬몰은 런던에서 가까운 램버스에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데 그곳에 오시면 그 불가사의한 사실에 대한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놀래기, 돔발상어, 돌고래, 코니피쉬, 비늘돔, 상어, 독이 있는 물고기, 황새치와 같은 신기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롱뇽, 여러 종류의 따개비와 북방가넷, 극락조와 희귀한 뱀과 새의 둥지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신다면 제가 하는 말도 저절로 믿게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물이란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니까요. 지루하시다면 이쯤에서 시인 조지 허버트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사색’을 인용하여 정리해보지요.

 

주여 누구의 찬송이 충분합니까?

주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 외에는,

주님의 심오함을 완전히 아는 사람 외에는,

이 땅의 인간들은 모두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나약할 뿐이며,

주님의 기적은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주님 우리의 찬미를 들어주소서.

그것이야말로 주님을 향한 사랑의 증거요,

주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또 바다와 강에 사는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서는 예언자 다윗도 시편에서 온갖 표현의 기교를 사용하여 시편(104장)에서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고, 위대한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도 자연의 위대하고 놀라운 힘은 육지보다도 바다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물과 물속에 사는 모든 생물의 신비로움에 대해서는 게스너, 롱델레, 플라이니, 아우소니우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여기서 뒤 바르타스의 시 한 편을 소개하여 제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신은 바다에 활력을 주었고

수많은 고기떼가 헤엄치게 하고

물속에는 온갖 생물들이 모여들어

마치 육지가 바닷속에 휩쓸리듯

신비로운 나라가 된다.

하늘처럼 바다엔 해도 달도 별도 있고

대기와 같이 제비도 까마귀도 찌르레기도 있으며

땅과 같이 포도와 장미와 쐐기풀과 멜론,

버섯, 패랭이꽃, 카네이션과

수만 가지의 진귀한 식물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은 물고기의 모습을 빌어

양과 송아지와 말과 토끼와 돼지,

늑대와 쥐와 사자, 코끼리와 개가 되기도 하고

때론 남자와 여자로 살기도 한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주교관을 쓴 주교와 승모를 쓴 수사의 모습으로 살기도 한다.

그 증거가 되는 물건이 몇 년 전에

노르웨이와 폴란드의 왕에게 바쳐졌도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덕망 높은 학자들이 확인한 것이므로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물고기의 숫자보다도 그 형태와 습성과 행동 등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징어는 낚시꾼이 낚싯줄을 푸는 것처럼 자기의 창자를 목에서 길게 뽑아내고 물고기가 옆에 오면 그것을 줄였다 늘였다 하면서 모래 속에 숨어있던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조금씩 물도록 해주고 유인한 다음에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오징어를 바다의 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은자(隱者)라 불리는 물고기고 있는데 이 물고기는 어느 시기가 되면 죽은 물고기의 껍질 속으로 들어가서 바람과 날씨를 주의 깊게 살피며 가만히 있는데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지요.

게다가 아에리아누스의 ‘동물의 본성’ 제16장에는 바다의 아도니스 또는 바다의 인기인으로 불리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이 물고기는 사랑스럽고 순진하여 바다에 사는 생물은 어떤 것도 해치지 않으며 누구나와 친하게 지내는데 낚시인도 이 물고기처럼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밖에도 난봉꾼과 같은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정숙한 물고기도 있는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바르타스가 사거스라고 불렀던 백색참돔에 대해 쓴 시가 있는데 황당무계한 내용은 아니므로 소개해보겠습니다.

 

그 이름도 드높은 난봉꾼

백색참돔은 밤마다 아내를 바꾸고

끝내는 풀이 무성한 해안에 있는 암염소에게 추파를 던진다.

질투에 불타는 숫염소는 뿔을 휘두르는구나.

이 시를 쓴 사람은 감성돔에 대해서도 적고 있으므로 그대로 들려드리겠습니다.

이와는 달리 정직한 감성돔은

암컷과 영원한 사랑을 나눈다.

암컷에게 한 맹세를 굳게 지켜

밤마다 의무를 다한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제 얘기가 끝납니다.

 

사냥꾼: 아주 재미있으니 계속 얘기해주십시오.

낚시꾼: 그러면 이번엔 멧비둘기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멧비둘기는 묵묵히 약혼하고 이어서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남은 쪽은 트라키아 여인들이 그러하듯이 죽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만일 살아남은 쪽이 재혼을 하면 수컷이건 암컷이건 멧비둘기의 명예를 박탈당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바오로가 로마서 제2장 14~16절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최후의 심판일에는 모두 드러날 것이라 말한 것처럼 하느님을 입에 올리면서도 물고기나 새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인간을 경계하고, 인간사회에 도덕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저는 바르타스의 시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뭐라 해도 부부간의 애정을 노래한 것보다 좋은 음악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바르타스가 숭어를 노래한 것을 소개하려 합니다.

 

순결한 사랑으론

숭어를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리

수컷이 어부에게 잡혀가면

슬픔에 잠긴 암컷은

죽음을 무릅쓰고 물 밖까지 쫓아가

수컷과 운명을 함께 하는구나

 

반면에 수탉은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요? 수탉은 백조나 자고새와 비둘기와는 달리 어떤 암탉이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수탉은 알을 부화시키거나 병아리를 키우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다 병아리가 죽어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암탉 또한 어떤 수탉과도 사랑을 나누지만, 수탉이 병아리를 돌봐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수탉의 몫 이상의 애정으로 병아리를 보살핍니다. 이런 암탉의 도덕적인 행동을 보고 구세주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애정을 암탉을 예로 들어 말씀하고 계십니다.(마태오복음서 23장 37절)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욥을 인내력의 모범으로 삼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수탉처럼 새끼를 돌보지 않는 물고기들도 있답니다. 이 물고기들은 알을 부들이나 돌에다 산란하고서는 덮지도 않고 내버려 두어 알들이 해충이나 다른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벨(Barbel)과 같은 물고기들은 수탉이나 뻐꾸기와는 달리 암컷과 수컷이 함께 산란하고, 산란이 끝난 뒤에는 함께 모래를 덮어주고 알을 지키면서 다른 해충이나 물고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감추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성을 다해 보호합니다.

이런 얘기가 선생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리니우스, 게스너와 그 밖의 많은 훌륭한 사람들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며 지식과 경험을 갖춘 잠수부들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러한 것들은 진지하고 독실한 사람들이 명상하기에 알맞은 것들이랍니다.

예언자 다윗이(시편 107편 23, 24) “물의 깊이를 살피는 사람은 하느님의 위업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이러한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땅이 감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낚시는 신중하고 독실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명상에 적합한 것이라는 사실은 고대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예언자들과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12명의 제자를 사도로 뽑았는데, 그중의 4명은 순박한 어부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축복하고, 그리스도의 축복을 이방인에게도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으며 그것을 통하여 믿음이 약한 유대인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결국엔 그들 자신이 고통받았던 것이며 그 고통을 통해 방해받는 율법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새 생명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어부들에게 부과된 사명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법률가와 대금업자는 비난했어도 어부의 직업을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낚시인들 대부분이 마음씨 좋고 부드럽고 친절하며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신 것처럼 어부들도 원래부터 명상이나 평온함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소박한 어부들을 특별히 선택해서 자신의 사도로 삼으시고 자신을 따라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는데, 어부는 열두 명의 사도들 중에 모두 네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네 명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12 사도(마태오 복음서 10장 2-4절, 사도행전 13장)의 윗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첫째가 성 베드로, 다음이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의 순서이고 나머지 제자들은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런데 주목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산에 올라 모습이 변하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산 밑에 있게 하시고 3명의 제자만 데리고 가셨는데 그들 3명이 모두 어부였다는 것입니다.(마태오 복음서 17장)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던 다른 사도들은 모두 어부가 되어 함께 낚시를 하던 모습이 부활하신 주님의 눈에 띄었다는 것은 요한복음서 3절과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얘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신다고 하셨으니 계속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뜻을 스스로 선택하신 자들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하도록 하셨는데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실천해온 일을 비유하여 쓸 수 있도록 허락하셨으니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솔로몬입니다.

회개하기 전의 솔로몬은 호색한이었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뒤로는 하느님과 교회 사이의 영적인 대화를 노래한 구약성경의 아가(雅歌: Song of Songs)를 지었는데 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헤스본의 연못 같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같은 얘기가 사실이라면 앞에서 말했던 욥기를 지은 모세와 양치기였던 예언가 아모스도 어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구약성서에 낚싯바늘에 관한 얘기는 단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하느님의 벗이라 불리는 온화한 모세와 겸손한 예언자 아모스가 쓴 것이 그것입니다.

예언자 아모스의 겸손하고 꾸밈없는 문장과 예언자 이사야의 자신감 넘치고 화려한 문장으로 된 예언서를 비교해 보면 두 사람 모두 진실한 예언자였지만, 아모스가 얼마나 착한 어부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두 어부였던 성 베드로, 성 야고보, 성 요한 등이 쓴 애정이 깊고 겸손한 편지와, 어부가 아니었던 성 바오로의 화려하고 격조 띤 은유와 비교하면 그들이 순박한 어부였음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낚시의 정당성은 구세주께서 성 베드로에게 내리신 명령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시킨 대로 낚싯바늘을 물에 던져 잡은 물고기를 카이사르에게 공물로 바쳤습니다. 그런 식으로 낚시는 어느 국민에게나 높은 평가를 받고, 또 현실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인 페르낭 멘드스 핀투의 항해기에는 국왕과 성직자들이 낚시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또한 플루타르코스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마크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시절에도 낚시는 멸시받지 않았으며 오락으로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낚시가 항상 최고라고 했습니다. 사냥도 좋은 것이라곤 하지만 최고라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지요. 덧붙여 말하면 고대의 교회법에 따르면 사냥은 소란스럽고 비효율적이며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라 하여 성직자들에게는 금지되어 있었던 반면에 낚시는 명상과 고요함으로 이끄는 것이라 하여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면 교양 있는 퍼킨스씨는 낚시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있고, 윌리엄 휘태커 박사도 낚시를 정말 좋아하고 실제로도 즐기셨습니다. 그밖에도 낚시를 즐기는 저명한 분들이 많지만, 낚시의 대가라 불리며 얼마 전까지 생존해계셨던 두 분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는 런던에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주임사제를 지낸 바가 있는 알렉산더 노웰 박사인데 그곳에는 그의 기념비가 남아있습니다. 헨리 8세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여왕의 종교개혁 당시, 의회와 성직자회는 노웰 박사의 온건한 사상과 깊은 학문과 높은 신앙심을 평가하여 그에게 후세까지 믿음과 의례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교리문답서를 만들도록 의뢰하였습니다.

노웰 박사는 어려운 교리(敎理)를 많이 안다고 해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평이한 문체로 어렵지 않게 교리문답서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또한 어느 시대에나 있는 낚시 애호가이자 실제로도 낚시를 즐기셨습니다.

노웰 박사는 정해진 기도시간을 제외한 자신의 시간 중, 10분의 1시간 동안 낚시를 하였으며, 수입의 10분의 1과 잡은 물고기 전부를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자비야말로 종교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리고 귀가하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세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성직자로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박사는 브레이지노스 대학의 후원자이기도 했는데 이 대학에는 그의 초상화가 잘 보존되었습니다. 그걸 보면 알겠지만 노웰 박사는 후세사람들에게 자신이 낚시꾼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그림에서 박사는 성경책을 앞에 두고 책상에 기대어 한 손에는 낚싯줄과 낚싯바늘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여러 종류의 낚싯대를 잡고 있습니다.

그는 1601년 2월 13일에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44년 동안 세인트 폴 대성당의 주임사제로 봉직했는데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억력도 좋고 정신력도 약해지지 않았다고 하며, 그 비결은 낚시와 절제된 생활 덕분이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훌륭한 분을 기리고 닮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이젠 고인이 되신 분으로, 이튼 대학의 학장을 지냈으며 물욕이 없었던 헨리 와튼 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저와 와튼 경은 낚시를 함께 다니며 대화를 나누곤 하는 사이였으며, 그분은 외교관으로 일한 적도 있는데 그 경험에서 나오는 재치와 교양과 쾌활함은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와튼 경을 만난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로 기쁜 것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하게 할 정도입니다.

그분은 낚시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고 실제로도 아주 많이 출조하는 분이기도 하셨는데 낚시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무심코 끌려들 정도였답니다.

그분은 “낚시는 내가 여가시간에 하는 직업이지 결코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에 지친 뒤 하는 낚시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다잡는 것이며, 슬픔을 잊게 하고, 흐트러진 사고를 잠재우며, 과도한 욕정을 가라앉히고,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평화와 인내의 습관을 길러준다. 낚시는 겸양의 미덕으로 정신을 가다듬게 해주는 축복임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지요.

이런 와튼 경의 말을 들으면 그분의 마음속은 평화와 인내와 만족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믿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나이 일흔이 넘은 어느 여름날 저녁, 강가에 앉아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때의 마음을 표현한 시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는 봄을 노래한 것인데 거침없으면서도 부드럽게 흐르는 강물처럼 그의 표현도 매끄러우면서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자연은 지금 사랑에 빠진 듯

신선한 수액(樹液)이 흘러

뒤엉킨 덩굴을 촉촉이 적신다.

새들도 짝을 찾고

경계심이 얕아진 송어는

교묘하게 만들어진 플라이를 향해

넋을 잃고 달려든다.

거기에 서 있는 참을성 많은 내 친구는

깃털 찌의 움직임을 응시한다.

처마엔 벌써 제비가 집을 지었고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 온 숲에 울린다.

소나기 지나간 하늘은 맑고

아침은 상쾌하고 밤은 미소 짓는다.

조안은 깨끗이 닦은 통을 들고 우유를 짠다.

공을 차는 듬직한 애인을 위해 와인크림을 만들려,

꽃밭은 튤립과 크로커스와 제비꽃이 만발하고

이제야 늦게 피는 부끄러운 장미는

발그레한 얼굴을 살짝 내미는구나.

모든 것이 즐거움과 환호로 가득 차

새롭게 단장한 새해를 반긴다.

이것이 바로 와튼 경의 심경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낚시꾼의 시를 들어보실래요? 낚시꾼의 희망과 행복한 생활에 대한 찬가로 조 다보스씨가 쓴 것입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리라

트렌트 강이나 에이번 강가에 집을 지으리

퍼치와 블리크, 데이스의 힘센 입질에

물속으로 가라앉은 찌를 볼 수 있는 그곳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경외하며 살고파라.

누군가는 불법으로 돈을 모으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싸움과 여자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때

나 홀로

푸른 들과 목장을 바라보고

원할 때면 강가를 거닐면서

데이지와 제비꽃

파랗고 빨간 히아신스와 노란 수선화,

아침 햇살 같은 보라색 수선화와

창백한 갠더풀과 하늘색 컬버키를 보리라.

높은 하늘의 웅장함을 보는 것은

나의 큰 기쁨,

하늘 가운데

세상의 나침반처럼, 불타는 황금처럼

불길에 쌓인 전차 같이 떠 있는 태양은

세상의 커다란 눈동자.

하늘 높이 올라간 비구름은

화려하게 수를 놓고

아름다운 오로라는 볼을 붉히며

티토누스의 침대에서 일어난다.

언덕과 산은 평원에서 솟아오르고

평원은 대지와 수평을 이룬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대지는

구릉으로 나뉘고

그 사이를 강이 흐른다.

거세게 흐르는 강물은

바다로 쏟아지고

혹은 낮은 골짜기로 흘러

골짜기엔 호수와 시냇물이 흐른다.

밝고 푸르른 잎사귀로 장식된 나무는

우뚝 솟아 울창한 숲을 만들고

새들은 즐겁게 노래를 불러

여름의 여왕을 반기는도다.

아름다운 목장의 푸른 목초는

꽃의 여신 플로라의 선물이어라.

수정처럼 맑은 시내엔

부드럽게 헤엄치는 은빛 물고기,

이 모든 것들과

하늘과 더 많은 하느님의 창조물들을 쳐다보면서

그 신기함과 경이로움에

낚시꾼은 설레며 깊은 명상에 잠긴다.

번뇌를 떨친 낚시꾼의 마음은 자유롭고,

기쁨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황홀함에

낚시꾼의 마음은 하늘을 날 것 같구나.

 

마지막 구절을 잊지 않아 다행입니다. 저의 어설픈 이야기보다도 이 시가 훨씬 더 화창한 5월에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루함을 견디고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얘기하다 보니 벌써 초가집이 보이는군요. 나머지 이야기는 언젠가 오늘같이 좋은 기회가 생긴 때 계속하기로 하지요.

사냥꾼: 선생의 얘기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초가집에 도착했습니다.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게 느껴진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초가집까지 3마일이나 남았었는데 벌써 도착했으니까요. 이제 한잔 마시면서 쉬도록 하시죠.

낚시꾼: 좋습니다. 내일 만날 수달 사냥꾼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사냥꾼: 그러시죠. 그리고 낚시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도 건배합시다. 저는 선생의 얘기를 듣고 나서 낚시라는 예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제가 말씀드리는 장소에서 제 친구들과 함께 수달사냥을 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다음에 이틀 동안은 고스란히 선생과 함께 보내면서 낚시에만 전념하고, 물고기와 낚시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낚시꾼: 좋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암웰 언덕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문어도 통각(痛覺)을 가지고 있답니다.

문어도 통각(痛覺)을 가지고 있답니다.

문어는 반려견과 비슷한 정도인 5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신경계가 발달해 있는 생물이다. 그러나 신경세포의 대부분이 뇌에 있는 개와는 달리 문어의 신경세포 중 3분의 2 이상은 다리와 몸통에 분포되어 있다.

비엔나 동물원에 근무하다 지금은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에 근무하고 있는 타마르 구트닉 박사(Dr. Tamar Gutnick)는 실험을 통하여 문어의 다리는 독립적인 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만들어진 학습정보가 각각의 다리로 전달된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문어는 중추뇌 1개와 각각의 다리에 소뇌가 1개씩, 총 9개의 뇌를 가진 생물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실시한 타마르 구트닉 박사(Dr. Tamar Gutnick)의 논문은 Current Biology에서 볼 수 있으나 아쉽게도 약간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타마르 구트닉 박사(Dr. Tamar Gutnick)가 실시한 실험의 핵심내용은 아래의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밑의 사진을 보면 아! 이 사람이 타마르 박사였구나 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타마르 구트닉 박사 (Dr. Tamar Gutnick)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금년 2월 22일자로 iScience에 게재된 것으로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로빈 크룩(Robyn J. Crook)씨가 발표한 것이며, 논문의 제목을 번역하면 “문어가 통증을 느낀다는 행동학적, 신경생리학적인 증거” 정도가 되겠으며 원제는 ‘Behavioral and neurophysiological evidence suggests affective pain experience in octopus’이다.

낚시를 좋아하기도 하고, 수산물을 즐겨 먹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으로 요리를 하자는 것이 블로그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바이기 때문에 오늘 소개하는 논문도, 읽으시는 분들이 그런 연장선의 하나임을 알아주신다면 고맙겠다.

로빈 크룩(Robyn J. Crook) 교수는 실험을 위해 일정 시간 동안 문어를 수조에 넣고 적응시킨 다음, 칸막이로 나눈 2개의 방을 준비하고 각 칸막이에는 문어가 식별할 수 있는 특정한 무늬를 그려 넣은 다음 어느 한쪽 방에 문어를 넣었다.

 

2개로 나누어진 각각의 방은 문어에게 무언가를 투여하는 방과, 아무것도 투여하지 않는 방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무늬만 보고 문어가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투여한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핵심내용이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무언가를 투여하는 쪽에 넣은 문어에게는 통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세트산(acetic acid)을 주사하여 그 행동을 관찰하였다는 것이다.

실험결과, 아세트산(acetic acid) 주사를 맞은 문어는 주사를 맞을 때 있던 칸막이의 특정 무늬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생리식염수를 주사했을 때의 반응과는 대조를 보임으로써 통각(痛覺)을 자극하는 아세트산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한편 이 실험과 더불어 아세트산을 주사한 직후, 즉시 리도카인(마취제)을 주사하면 특정 무늬가 있더라도 그 방(칸막이)을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어는 아픔을 완화시키는 쪽을 선호하며 이것은 다시 말해 문어는 통증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실험의 결과를 요약한 것으로서, 가로축은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생리식염수를 투여한 그룹(Saline paired), 아세트산을 투여한 그룹(AA paired), 생리식염수를 투여한 다음 마취제를 투여한 그룹(Analgesic control), 아세트산을 투여한 다음 마취제를 투여한 그룹(Analgesic paired)을 나타내고, 세로축은 +가 무언가를 투여하는 방으로 이동한 횟수를, -는 아무것도 투여하지 않는 방으로 이동한 횟수를 나타내고 있다.

결과를 보면, 아세트산을 주사한 문어는 아세트산 주사를 맞을 때 있었던 방을 회피하고, 아세트산 주사 직후에 마취제를 주사했을 때에는 마취제를 주사할 때 있었던 방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로빈 크룩(Robyn J. Crook) 교수는 생리식염수를 투여한 다음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는 그룹(S)과 아세트산을 투여한 다음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는 그룹(AA), 아세트산을 투여한 다음 마취제도 투여한 그룹(L) 및 생리식염수를 투여하고 마취제도 투여한 그룹(LC) 등 4개로 나누어 24시간 동안 행동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아세트산을 투여한 다음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는 그룹(AA)에서 아세트산이 주사된 부위를 입으로 물어뜯는 행동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그림은 전기생리학적인 실험결과로써 아세트산을 투여한 문어에게서 특정 반응이 나타났으나 마취제를 주사하면 그 반응이 억제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논문의 마지막에서 로빈 크룩(Robyn J. Crook) 교수는 실험의 한계로써 두족류가 의식이나 통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지만, 실험을 통해 문어가 보인 반응은 포유류가 통증을 느꼈을 때 보이는 반응과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두족류를 산채 요리하더라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하자는 것이 오늘 포스팅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핵심이며, 많은 분들이 함께 해줄 것을 부탁드린다.

특별법에 의한 바다낚시 금지구역(도서지역)

특별법에 의한 바다낚시 금지구역(도서지역)

안전문제와 무분별한 쓰레기의 투기, 어촌계와의 갈등 등에 의하여 점차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되는 장소가 확대되고 있는 형편이기에 다시 한 번 환경을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낚시인의 모습을 갖기를 바라며, 아래에 적는 글은 낚시금지구역 중에서 도서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임을 밝힌다.

바다낚시 금지구역 안내

특정 도서는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 제4조에 따라 자연생태계, 지형, 지질, 자연환경이 우수한 무인도서를 보전하기 위해 환경부장관이 보호지역으로 지정, 관리하는 섬을 말한다. 특정도서로 지정되면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건축물, 공작물의 신증축, 야생 동, 식물의 포획 또는 채취 등이 금지되며, 필요 시 도서의 출입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 제14조(벌칙), 제16조(과태료)에 의해 과태료 또는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경상북도(1개 도서)

울릉군
울릉읍
독도

경상남도(39개 도서)

거제시
남부면
송도, 갈도(갈곳도), 소병대도, 대병대도, 소다포도
고성군
삼산면
상비사도, 하비사도, 윗대호섬, 문래섬
남해군
미조면
사도, 죽암도(미도), 고도, 소목과도, 마안도
상주면
세존도, 소치도, 목도(부도)
설천면
상장도
사천시
신수동
솔섬(악도)
늑도동
학섬(학도)
서포면
우무섬(우무도), 향기도
통영시
한산면
홍도, 어유도, 소매물도일부(등대도), 소지도
산양읍
외부지도
욕지면
막도, 좌사리도(자사리도)
하동군
금남면
장도, 혈도, 채도, 악도(장구섬), 토도(토끼섬)
금성면
마도, 오동도
진교면
소첨도
마산시
구산면
곰섬(웅도)

부산광역시(3개 도서)

사하구
다대동
남형제섬, 북형제섬
영도구
동삼동
주전자섬(생도)

제주특별자치도(2개 도서)

북제주군
추자면
흑검도, 청도

전라북도(13개 도서)

군산시
옥도면
보농도, 소횡경도, 횡경도, 십이동파도1, 2, 4, 9
부안군
위도면
내조도, 딴정금도, 달루도, 대형제도, 외치도(큰딴치도)

전라남도(75개 도서)

고흥군
과역면
아랫돈배섬, 진지외도
도화면
목도
봉래면
대항도, 곡두도
영남면
내매물도
보성군
벌교읍
해1도, 해2도
신안군
암태면
왼섬, 진목도
압해면
소정섬, 대정섬, 역도
임자면
매섬, 소허사도, 바람막이도, 육각도
자은면
오도, 두리도, 죽도, 원도, 둔북섬
장산면
족도, 구도
증도면
부남섬, 대섬, 호감섬, 갈매섬
지도읍
법고섬, 밖다리섬
팔금면
화도, 불무기도
흑산면
개린도, 국흘섬(국혈도), 외엽산도(무명도), 대술개도, 다라도
하의면
저도
여수시
돌산읍
소송도
삼산면
지마도, 소평여도, 안목섬, 밖목섬, 보든아기섬
소호동
가덕도
화양면
죽도
화정면
고여, 토도(증도), 부도, 장구도
진도군
의신면
대삼도, 갈매기섬, 밀매도, 중갈매기섬
조도면
행금도, 탄항도, 병퉁도, 납태기도(서대기도), 백야도, 상방고도,
하방고도, 중방고도
지산면
각흘도, 솔섬
진도읍
골도
해남군
북평면
소연포초도
송지면
갈도
황산면
송도
완도군
고금면
원도2(두롱섬)
금당면
재도, 중화도, 소화도
노화읍
장구섬, 잠도, 문어북도, 문어남도, 가덕도
신지면
혈도, 갈마도, 진섬
약산면
섬어두지(어두도)
청산면
불근도
금일읍
대병풍도, 소다랑도, 다라지도(낙타섬), 대칠기도, 중칠기도, 소칠기도, 비도, 송도, 소사도(거북섬), 대사도, 대마도, 안매도
생일면
구도, 소덕우도, 매물도, 송도, 형제도

충청남도(19개 도서)

보령시
오천면
대길산도, 추도(기름암 포함), 납작도, 오도(조도), 무명도(불안도),
대청도, 오도, 횡견도, 외횡견도, 변도, 석도, 나무섬(상목도)
서산시
대산읍
흑어도, 옥도
부석면
묘도
태안군
근흥면
북격렬비도
소원면
곳도(화창도)
안면읍
묘도(토끼섬)
이원면
솔섬

인천광역시(25개 도서)

강화군
삼산면
소송도, 대송도
서도면
우도, 비도, 수리봉, 석도, 수시도, 분지도
옹진군
북도면
서만도, 신도
자월면
뭉퉁도, 초지도, 할미염
덕적면
부도, 토끼섬, 광대도, 멍애섬, 각흘도, 통각흘도, 소통각흘도,
중톡각흘도, 상바지섬, 중바지섬, 하바지섬
영흥면
항도, 어평도

이 글은 국립해양조사원의 요트/낚시정보도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http://www.khoa.go.kr/)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부산광역시 영도구 해양로 351(동삼동 1125-38) Tel. 051-400-4400

죽음을 부르는 고스트 네트(Ghost Net)

죽음을 부르는 고스트 네트(Ghost Net)

고스트 네트(Ghost Net)는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한 것이건 고의로 바다에 투기한 것이건 간에 바다에 버려진 어망을 말합니다. 이렇게 버려진 어망이 유령처럼 바다를 떠돌면서 해양동물들을 휘감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근래에 들어서는 “Drift Net”이란 단어 대신에 고스트 네트(Ghost Net)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스트 네트에 의해서 피해를 입는 동물은 고래, 바다표범, 돌고래, 상어, 산호 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현재까지 보고된 바로는 344종류 이상의 동물들이 3만 건이 넘게 피해를 당했다고 하며 버려진 그물에 얽혀버린 동물들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고통을 받으며 상처부위의 감염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아 서서히 죽어간다고 합니다.

※ The impact of debris on marine life

 

아시겠지만 그물은 모두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런 그물이 얼마나 바다에 버려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세계에서 고스트 네트가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한 호주 북부해안의 경우를 예로 들면 1km당 연간 3톤의 그물이 버려지고 있다고 하며 북부 하와이에서는 매년 52톤 이상의 고스트 네트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호주 북부에서 고스트 네트에 의해 사망한 바다거북의 숫자는 14,600마리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Ghostnet impacts on globally threatened turtles, a spatial risk analysis for northern Australia

※ Marine species mortality in derelict fishing nets in Puget Sound, WA and the cost/benefits of derelict net removal

고스트 네트가 해양쓰레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라고 하지만 해양동물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피해는 막대하여 북대서양에서는 1970년~2009년 사이(대부분은 1990년 이후)에 300여 마리의 대형 고래가 고스트 네트에 얽혀 사망했다고 하고 미국에서 고래의 상처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상처 입은 고래의 50%가 고스트 네트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새끼고래들이 피해를 입는 숫자가 많아 개체수 감소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아래의 유튜브 영상에서 버려진 그물이 몸을 휘감고 있는 혹등고래와 고래상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깊은 바다일수록 그물에 부착되는 생물의 내성이 강해서 고스트 네트가 더 오래도록 지속한다고 합니다.

Tangled Mother Humpback Whale Needs Help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에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한 쓰레기의 영상을 공개한 것이 바로 아래의 영상이며, 영국의 연구팀들은 마리아나 해구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아주 높은 농도의 유해 화학물질에 오염된 사실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중국에서 가장 심하게 오염된 강에 서식하는 생물보다 50배나 높은 오염도를 나타내었다고 하니 이제는 바다의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나를 전 세계인 모두가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Bioaccumulation of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in the deepest ocean fauna

 

Deepwater Exploration of the Marianas: Earth Day – Encounters with Trash

 

제가 가끔씩 짬이 날 때면 찾는 시화방조제에서도 함부로 폐기된 그물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때로는 바닥에 있는 폐그물에 채비가 걸려 라인을 끊어야만 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무단으로 그물을 폐기하는 행동은 절대 없어야 하겠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건 아니건 간에 낚싯줄을 바다에 버리게 되는 것도 해양동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해양동물들이 고스트 네트에 의해서 피해를 당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양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가를 바다에서 생산되거나 포획된 것들이나 그 가공품들 중에서 식탁에 올라온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해양플라스틱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핀란드의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

핀란드의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

2017년 기준으로 3,32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 4위의 낚시용품업체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핀란드의 라팔라(Rapala)란 기업의 사명(社名)은 1905년에 태어난 창업자인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낚시용품 업체들 중에서 라팔라를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먹먹할 때가 가끔씩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어깨를 짓눌렀을 가장이라는 책임을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하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총을 들고 싸웠던 평범하면서도 책임감 강한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인생역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세계적인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1905년에 핀란드의 쉬스메(Sysmä)에서 태어난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7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아시칼라(Asikkala)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으며 이사를 할 때에도 어머니와 단 둘이만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아버지에 대한 것이라고는 이름이 칼레 스텐(Kalle Sten)이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으로 이마저도 정확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하며 그의 생애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어머니는 부유층의 하녀로 일을 하면서 그를 키웠고 처음에는 성도 없이 그냥 라우리로만 불렸던 그가 라팔라(Rapala)란 성을 얻었던 것도 그에게는 행복한 기억이진 않았을 것 같다.

새롭게 이사를 한 아시칼라(Asikkala)로 교적(敎籍)을 옮기면서 이름을 기록할 때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어머니(Maria Eerikintytar)의 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성직자가 그들이 떠나온 마을의 이름인 라팔라(Rapala)를 성으로 기록함으로써 라우리는 뜻하지 않게 라팔라(Rapala)를 성으로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핀란드어로 진흙을 뜻하는 라팔라(Rapala)를 성으로 갖게 된 라우리(Lauri)는 평범한 당시의 여느 아이들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삶의 전선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육체노동 밖에는 없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남성들의 의무복무를 규정하고 있는 핀란드의 법률에 따라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1925년 9월 11일에 군에 입대하여 1926년 9월 3일에 제대를 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고, 복귀 후 힘든 일상 속에서도 엘마 레파넨(Elma Leppanen)이란 여성을 만나 사랑을 꽃피우고 마침내 1928년 9월 29일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가 신혼의 단꿈을 꾸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유럽 전체에 불어 닥친 경기침체와 미국의 대공황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기에 라우리는 겨울에는 벌목공으로, 여름에는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면서 힘든 삶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

 

결혼 후 모두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던 라우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본격적으로 낚시용품의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던 이유도 바로 금전적인 것이 가장 컸다.

어느 날 자신이 잡은 3.5㎏ 정도가 되는 송어 3마리를 판매한 금액이 2주일 동안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받는 금액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에 아마도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옳다구니 하면서 무릎을 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라우리는 물고기가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 다양한 관찰과 연구를 거듭하였고 마침내 1936년에 코르크에 은박지를 감싸서 만든 최초의 라팔라 루어를 만들게 된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

 

한편 1939년이 되면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핀란드는 소련의 침공으로 겨울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전쟁 이전부터 식량난이 심각했던 핀란드의 일반가정과는 달리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그가 만든 루어를 이용하여 많이 잡은 날은 270㎏에 달하는 물고기들을 낚시로 잡을 수 있어서 식량문제를 별로 겪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루어를 제작하는데 사용했던 코르크가 부족하게 되자 라우리는 벌목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소나무껍질을 사용하여 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전쟁의 위기는 라우리를 다시 군에 입대하게 만들었는데 군에서도 루어의 연구에 몰두했던 라우리는 직접 만든 루어를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다가 어느 날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루어를 이용하여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내기에서 훨씬 많은 78마리를 잡으면서부터 이 소문이 핀란드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알지만 겨울전쟁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여 발발한 겨울전쟁은 모두 542명의 소련군을 저격하여 세계최고의 저격수로 이름을 남기며 하얀 사신(White Death)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시모 해위해’가 활약한 바로 그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겨울전쟁은 1940년 3월, 평화협정의 체결로 끝을 맺고 나치가 소련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핀란드는 다시 독일과의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라우리는 몇 년을 더 복무한 뒤 6년 만에야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가 만든 루어의 인기가 핀란드에 널리 퍼져 주문이 쇄도하고 있어서 라우리는 그의 아들들에게 루어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게 되었는데 3남 엔시오(Ensio)가 만든 것은 핀란드 최고의 장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팔라(Rapala)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업체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최대의 시장인 미국에서의 높은 인기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고 그 이면에는 물론 좋은 루어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으나 운이 크게 작용했던 것도 부인할 수만은 없다.

1952년은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제15회 하계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참가한 미국선수단 중에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페이옌네 호수(Lake Päijänne)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 방문한 낚시점에서 라팔라 루어를 구입하여 써본 결과 아주 좋은 조과를 올리는 바람에 귀국하면서도 많이들 사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핀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제품들은 라팔라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냥 ‘핀란드 플러그’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지금의 라팔라가 있게 만든 주인공의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론 웨버(Ron Weber)라는 미국인이 낚시여행을 하던 도중 미네소타 주의 덜루스에서 라팔라 루어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 사람이 아주 쉽게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론 웨버(Ron Weber)

 

낚시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론 웨버는 낚시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던 친구 레이 오스트롬(Ray Ostrom)에게 그가 발견한 라팔라 제품을 보여주면서 함께 테스트를 했고 “이것은 반드시 대박이 날 것이다.”는 확신으로 1959년 9월 23일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에게 정식으로 수입을 의뢰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 2월, 첫 번째 주문으로 2,400개의 루어를 수입한 것을 시작으로 1961년까지 모두 31,135개의 제품을 수입하였으나 이 양은 대박났다고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정도의 대박은 1962년 여름에 그들 곁으로 다가오는데, 1962년은 유명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36세의 나이에 자살함으로써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해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다룬 기사가 당시 최고의 잡지인 라이프지 8월호에 게재가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 라팔라의 제품을 소개하는 기사가 ‘A Lure the Fish Can’t Pass Up’란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한글로 번역하면 물고기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도 뛰어난 루어란 의미)

1960년부터 1961년까지 2년 동안 미국으로 수입한 라팔라 루어를 모두 합쳐야 고작 3만 개를 조금 넘었는데 마릴린 먼로의 기사가 실린 잡지에 함께 소개됨으로써 론 웨버(Ron Weber)와 레이 오스트롬(Ray Ostrom)이 받은 주문량은 2년간 수입한 양의 100배에 달하는 3백만 개였다고 한다.

 

 

이에 론 웨버(Ron Weber)는 핀란드로 쫓아가 생산량을 늘여줄 것을 부탁하면서 너무도 큰 주문량에 놀란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가 원활하게 공급하기에는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재정지원을 제안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라팔라 루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면서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고향마을인 라팔라에는 은행의 지점이 개설되었다고 하니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1974년에 세상을 떠났고, 론 웨버(Ron Weber)는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 라팔라(Rapala)제품의 시장성을 발견하고 미국으로 수입했던 론 웨버(Ron Weber)는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번 돈을 좋은 곳에 기부하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 오늘은 라팔라의 역사를 알아보는 첫 순서이니 이쯤에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다.

낚시금지구역 지정의 남발은 낚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낚시금지구역 지정의 남발은 낚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낚시금지구역을 지정하는 지자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수반하여 법률적 절차상의 하자를 지닌 낚금지역의 지정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정기관이 새롭게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가장 큰 사유로는 환경문제와 해당 주민들과의 마찰을 들 수 있을 것인데 과연 낚시금지구역의 지정 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일까요?

몇 년 전 낚시를 주제로 하는 프로들이 인기리에 연이어 방송되면서부터 낚시 붐이 조성되었고 이에 편승하여 많은 기업들이 새롭게 낚시용품과 관련한 산업으로 신규진입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캠핑용품으로 유명한 기업에서 낚싯대를 출시한 것을 꼽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처럼 낚시인구의 증가는 낚시와 관련한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낚시인구의 감소는 낚시용품산업의 쇠퇴를 가져옵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정부기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하는 각종 보고서를 보면 특히 경제성 평가에서는 현실과 엄청난 괴리감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민자로 건설되는 도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낚시와 관련해서도 존재합니다.

몇 년 전 제가 목소리를 높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들었던 보고서의 내용 중에는 낚시인들은 1회 출조에 평균 6.5kg의 물고기를 잡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허황된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해외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도 이처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로 결론을 맺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저도 그들처럼 해외의 사례를 들어 낚금지역의 지정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해보겠습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잠재수요를 포함하면 낚시인구가 3,000만 명에 이를 정도였지만 2021년에 이르러서는 67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서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역시 유식한 분들은 가처분소득의 감소 때문이라거나 근래 들어서는 코로나로 인해 낚시인구가 다소 증가했다는 등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이 모두는 일시적인 것으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거나 아니면 모르고 있습니다.

낚시인구의 감소를 가져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족자원의 감소이며 어족자원이 감소하는 상태에서 낚시금지구역을 확대·지정하는 것은 더 많은 낚시인구의 감소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은 일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역민들과 낚시인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고 있으나 지방경제의 활성화에 낚시인들이 도움이 되고 향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당국의 설득과 안전에 관한 규칙을 엄격히 제정하고 단속하는 것이 방파제나 항만에서의 낚시를 금지하는 정책보다 사고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조사결과에 따라 모두 13개의 항만을 낚시금지구역에서 해제하고 ‘낚시문화진흥촉진모델항(釣り文化振興促進モデル港)’으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한편 일본생산성본부에서는 1977년부터 레저백서를 발행하고 있으며 이 백서에는 낚시에 관한 통계도 수록되어 있는데 1984년부터 일본의 낚시인구 추이는 지금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나름 한 분야에서 권위가 있다는 분들의 주장대로 경기변동에 따른 낚시인구의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일본의 경기동향지수를 그래프에 도입해보면 지금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버블경제가 붕괴되던 시기에도 일본의 낚시인구는 오히려 증가했으며 IT버블이 한창일 때는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고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전년도 대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의 낚시인구 감소에는 경기변동보다는 어족자원의 감소와 낚시금지구역의 확대지정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낚시 인구가 감소하면, 낚시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써 야노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스포츠용품 시장에 관한 조사 결과 2015’에 따르면 2014년 일본의 국내 낚시용품시장 규모는 1,251억 7,000만 엔으로 전성기의 1/3까지 축소되어 버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낚싯대를 들고 나가봐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고 그마저도 낚시할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면 낚시인구의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을 저들만 모르는 걸까요?

낚시금지구역의 지정만이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지역경제의 쇠퇴와 관련산업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당국자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볼락의 종류와 구별법

볼락의 종류와 구별법

구이로 만들면 어떤 생선보다도 맛있는 볼락은 한 자리에서 10마리까지는 먹어봤을 정도로 잡는 것도 좋아하지만 먹는 것도 좋아하는 대표적인 어종이다.

낚시인들 사이에서는 볼락이라고 이름 부르는 어종이 많지만 어류학적으로는 2008년 이전까지는 1종으로 분류되었던 것이 2008년부터는 3종으로 분류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에서부터 비롯되다 보니 볼락을 구분하여 부르는 이름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볼락의 종류를 검색하면 “흰 볼락, 붉은 볼락, 검은 볼락”의 3가지로 구분한다는 글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분류한 시로메바루(シロメバル), 아카메바루(アカメバル), 쿠로메바루(クロメバル)를 그대로 번역하여 부르고 있는 것이란 점은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야 이름을 별도로 만들어 붙이고 싶지만 이미 낚시인들과 현지의 어민들은 3종의 볼락을 순서대로 갈볼락, 금볼락, 청볼락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의 볼락의 몸 색깔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두에서 2008년부터 볼락을 3종으로 구분하게 되었다고 한 것부터 알아보면 그 이전까지는 일본의 어류학자 마츠바라 키요마츠(松原喜代松)가 볼락의 종류는 1가지라고 주장하면서부터 붉은 볼락의 학명(Sebastes inermis Cuvier, 1829)을 그대로 사용하여 왔는데 그 이후 대만의 첸러차이(陳樂才) 교수가 1985년에 처음으로 볼락은 여러 종으로 나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후 볼락은 1종이 아니라 여러 종으로 구분된다는 주장들이 잇달아 제기되었고 2008년 8월, 일본은 일본어류학회의 영문기관지인 Ichthyological Research를 통해서 지금까지 동일한 종으로 알려진 볼락은 DNA 분석을 통해 3종으로 나뉜다고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이런 발표를 하게 된 근거가 되었던 것은 교토대학의 나카보우 테츠지(中坊徹次) 명예교수와 연구원인 카이 요시아키(甲斐嘉晃)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볼락은 모두 3종으로 나뉘게 되었지만 이전까지 학자들도 구분하기 어려웠을 정도이니 일반인들이 볼락을 구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3종의 볼락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이전에 “우럭과 볼락을 구별하는 방법”에서 볼락의 생김새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았던 것처럼 3종의 볼락 모두 뺨 부위에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는 점을 알아두도록 하자.

■ 흰 볼락(일본어: 시로메바루)

학명: Sebastes cheni Barsukov, 1988

가장 개체수가 많은 종으로 몸 색깔은 밝은 갈색, 갈색, 암갈색을 하고 있다.

다른 종과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점은 가슴지느러미의 연조(軟条)가 대부분 17개란 것으로서 15개인 붉은 볼락과 16개인 검은 볼락보다 많다.

 

완전히 성장한 개체가 아닌 경우에는 갈색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3종의 볼락 중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흰 볼락은 성어가 되면서 몸 색깔은 짙어지고 갈색의 줄무늬는 옅어지는 경향이 있다.

 

■ 붉은 볼락(일본어: 아카메바루)

학명: Sebastes inermis Cuvier, 1829

몸 색깔은 적색을 하고 있으며 3종 중에서는 가장 소형이다.

가슴지느러미의 연조(軟条)는 대부분 15개이며 배지느러미의 색깔도 붉은 것이 특징이다.

 

성어가 되면 몸 색깔과 지느러미의 색깔이 더욱 붉게 변하는데 더러는 검정색을 띠는 개체도 있다.

 

어린 붉은 볼락은 흰 볼락과 비슷하기는 해도 지느러미의 색깔이 붉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 검은 볼락(일본어: 쿠로메바루)

학명: Sebastes ventricosus Temminck and Schlegel, 1843

몸 색깔은 검정색, 짙은 녹색, 감색을 띠고 있으며 가장 체고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가슴지느러미의 연조(軟条)는 대부분 16개를 보인다.

 

완전히 성장한 개체가 아닌 경우에는 갈색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이고 검은 볼락은 등지느러미가 대부분 푸른색을 띠고 있다.

 

이밖에 3종의 공통적인 점으로는 낚시로 잡은 다음 살림통 안에 보관하면 피부의 색깔이 옅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럭과 볼락을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

우럭과 볼락을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

월드컵 개막전을 보기 위해 아직도 2시간여를 기다려야 하는지라 오늘 어느 분께서 문의하신 “볼락과 우럭을 어떻게 구별하는지?”란 것에 대해 간단하게 적어볼까 합니다.

흔히 우리가 애럭(애기 우럭)이라고 부르는 우럭의 새끼는 볼락과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으며 특히 야간에는 더욱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볼락과 우럭을 아주 간단하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으니 이제부터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럭(조피볼락)의 눈 밑에는 날카로운 뼈가 3개 있는데 이것을 눈물뼈(누골)라고 합니다. 이처럼 눈물뼈가 있는 우럭과는 달리 볼락은 이런 눈물뼈가 없답니다.

 

먼저 우럭의 사진을 보면 눈밑에 3개의 날카로운 뼈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우리가 애럭이라고 부르는 새끼 우럭의 경우에도 눈물뼈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애럭의 눈물뼈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확대해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새끼우럭도 눈물뼈가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와는 달리 아래의 사진처럼 볼락의 경우에는 눈밑에 누골이라고 하는 눈물뼈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볼락이나 우리가 흔히 참우럭이라고 부르는 띠볼락도 마찬가지로 눈물뼈가 없으며, 볼락의 일부 종류에는 눈물뼈가 있는 것도 있지만 그 형태가 우럭과 같이 날카롭지 않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볼락도 아가미 앞쪽, 즉 뺨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래 2장의 사진에서는 아주 작은 애럭(새끼 우럭)도 누골이라고 하는 눈물뼈의 형태가 뾰족하지는 않지만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에 비하여 볼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볼락과 우럭을 확실하게 구별하실 수 있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