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낚시를 좋아하는 러시아의 푸틴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일반에게도 알려진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는 용운공방을 운영하는 송용운씨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송용운씨는 자신의 이름을 딴 “용운작”이란 낚싯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나무 낚싯대를 만드는 사람으로는 용운공방의 송용운씨와 순천에서 “승작대나무낚시대제작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문석씨가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한국 대나무 낚싯대의 명맥을 유지하고 계시는 두 분은 모두 방기섭이란 분에게서 전수를 받았는데 작고하신 방기섭선생은 낚싯대 기능보유자였던 임근수씨로부터 그 기술을 전수받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낚시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의 침략기를 거치면서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낚시도구와 장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안타깝기는 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이음식 낚싯대가 보급되면서 한국에서도 이전의 제작방식을 버리고 이음식으로 만드는 것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지금부터 그 발자취를 한 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에서 황동파이프를 낚싯대의 이음 부분에 넣고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만든 것은 1793년 도쿠가와 가문의 무사였던 마츠모토 토오사쿠(松本東作)이며 그의 이름을 따서 동작(東作)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츠모토 토오사쿠(松本東作)가 무사의 신분을 버리고 낚시점을 개업하게 된 데에는 이전부터 낚시를 조도(釣道)라고 부르며 체력과 심신의 단련을 위한 것으로 낚시를 즐겨하던 사무라이들의 문화가 바탕에 있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다룬 책을 보면 “명간(名竿)은 명검(名劍)보다 구하기 어려우니 자손들은 이것을 소홀하게 다루지 말라.”고 하는 말까지 나오니 말입니다.
당시 일본의 무사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거기다 3칸 5척(6.9m)에 달하는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낚시를 다녔다고 하는데 이동의 불편함 때문에 이음식 낚싯대가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개발된 이음식 대나무 낚싯대가 한국에 보급된 것은 1939년 동작(東作)의 기술을 전수받은 제자 요시오 쿠마가이(熊谷義雄: 책에서는 구마타니로 읽고 있다?)가 미도파백화점의 전신인 조지아(丁字屋)백화점에서 전시회를 연 것이 처음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낚싯대뿐만 아니라 낚싯대를 제조하는 기계도 전시를 했다고 하나, 낚싯대만 크게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년 뒤 1940년에 히라타(平田)백화점(현재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서 수작(寿作: 壽作의 일본식 표기)이라는 상표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는 최초의 이음식 대나무 낚시대였던 것입니다.
요시오 쿠마가이가 1942년 태평양전쟁의 소집을 받아 한국을 떠나기 전, 낚싯대를 제작하는 기술을 전수받은 사람이 주정기(朱政基)란 분이었고 자신의 성(姓)을 따서 주작(朱作)이란 이름의 낚싯대를 만든 것이 한국인 최초의 이음식 대나무 낚싯대였던 것입니다.
다시 주정기씨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김영배씨가 영작(英作)이란 이름의 낚싯대를 만들었으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윤준배라는 분이 윤작(尹作)이라는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주작(朱作)으로부터 시작되는 것뿐만 아니라 평안도 출신의 한승진, 한승권 형제가 용인에서 한작(韓作)이라는 낚싯대를 만들고 있었고 6·25전쟁을 지나면서 형 한승권씨는 서울에서 1957년부터 1974년까지 “서울한작”을 만들고 동생 한승진씨는 수원에서 “수원한작”이라는 이름의 낚싯대를 제작하였습니다.
한작(韓作)은 그뒤 조철연씨가 용인에서 용인작(龍仁作: 1957~1972)이라는 이름으로, 임승문씨가 용인한작(龍仁韓作: 1959~1971)이란 이름으로, 임근수씨가 ‘용림작'(1959~1971)이라는 이름으로 계승하였으며 강재원씨가 ‘용작'(1964~1976)이라는 이름의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에 세상을 떠나신 방기섭 선생이 임근수씨로부터 제작기술을 전수받고 ‘승작(昇作)’이라는 이름의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었으며 방기섭 선생이 설립한 ‘승작대나무낚싯대제작소’라는 공방은 현재 이문석씨에 의해서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대나무 낚싯대의 명맥을 잇고 있는 두 분께 감사를 드리며, 국내의 낚시용품 제작사들도 한국의 낚시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제품의 출시에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