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코로나 19의 확진자가 현지시간으로 3월 15일 오후 6시 현재 24,747명, 누적 사망자는 1,809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관광산업의 비중이 높은 곳으로 전체 GDP의 13.2%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번 코로나 19의 여파로 관광산업의 매출이 우리 돈으로 6조 8천억~9조 5천억 정도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치료제가 개발되어 팬데믹(Pandemic)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찾는 명소로 콜로세움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과 이어지는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의 숨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

 

카피톨리노(Capitolino)라고도 불리는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에 오르면 나오는 광장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중앙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캄피돌리오(Campidoglio)란 이름은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을 건립할 때 카풋(caput: 고대어로 사람의 머리를 뜻한다)이 발견된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바로 카풋과 관련이 있으며 죽음의 계단이라고 불리고 있는 제모니안 계단(Gemonian stairs: 이태리어로는 스칼레 게모니에(Scale Gemonie))이다.

 

기원전 7세기 경의 고대 로마에는 메르티네 감옥(Mamertine Prison: 이태리어로는 Carcere Mamertino)이 있었는데 이곳에 수감되었던 사형수들은 스칼레 게모니에(Scale Gemonie)에서 처형된 다음 그 시체를 계단에 던져 떨어뜨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미켈란젤로의 예술성과 로마의 건축양식을 감상하고 있는 이면에는 이같은 어두운 역사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기원전 640년에서 616년경에 만들어진 메르티네 감옥(Mamertine Prison)은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나의 세례명이기도 한 안드레아와 형제지간인 성 베드로가 순교 전에 수감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스칼레 게모니에(Scale Gemonie)라는 계단은 1세기 무렵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처형장으로 사용되면서 죽음의 계단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제2대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때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정적이 많았던 티베리우스는 그의 측근이었던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세이아누스( Lucius Aelius Seianus)를 사형에 처하게 되는데 그를 교수형에 처했던 장소가 바로 죽음의 계단이라고 하는 제모니안 계단(Gemonian stairs: 이태리어로는 스칼레 게모니에(Scale Gemonie))이다.

세이아누스의 죽음은 그의 급성장에 두려움을 느꼈던 티베리우스의 견제가 원인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티베리우스의 며느리와 불륜을 맺고 그의 아들 드루수스 카이사르(Drusus Julius Caesar)를 암살했다는 것이었다.

드루수스의 죽음은 당시에는 병사로 알려졌으나 그가 죽고 8년이 지나서 세이아누스의 전처 아피카타(Apicata)에 의해서 드루수스의 아내인 리비아 율리아( Livia Julia)와 불륜관계였던 세이아누스가 그녀와 공모하여 드루수스를 독살하였다고 밝힘으로써 티베리우스는 일사천리로 세이아누스의 교수형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죽음의 계단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세이아누스( Lucius Aelius Seianus)의 시신은 계단에 던져져 성난 군중들에 의해 토막이 나고 수많은 모욕을 당한 뒤 테베레강에 버려지고 말았다.

 

공포정치를 일삼던 티베리우스가 서기 37년에 사망하고 나서는 죽음의 계단에서 처형되는 사람은 크게 줄어들었으나 서기 68년 네로가 죽고 나서 4명의 황제가 차례로 즉위했던 혼란기를 말하는 ‘4황제의 해’에 세 번째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아울루스 비텔리우스(Aulus Vitellius)가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에 의해 황제의 자리를 뺏기고 처형당함으로써 역사적인 장소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죽음의 계단인 스칼레 게모니에(Scale Gemonie)에서 교수형이 아닌 참수형을 당한 비텔리우스(Vitellius)의 시신은 로마시민들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되었는데 당시의 모습은 프랑스 화가 조르쥬 로슈그로스(Georges Rochegrosse)의 1883년 작품에 잘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계단에서 시신을 유린하는 행위는 서기 81년에 로마의 제11대 황제에 재위한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에 의해 금지되었으며 스칼레 게모니에(Scale Gemonie)는 현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