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사이에 발발하여 미국으로서는 승리도 패배도 하지 못한, 국지전 정도로 생각되었던 한국전쟁은 미국이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논의하면서 그 이전의 전쟁에 대하여 소급해서 적용하지 않았던 까닭에 미국의 언론에서 처음으로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부터 6·25전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며 잊을 수도 없는 비극입니다.

세계의 저격병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 하면서 세계 10위 안에 랭크된 스나이퍼 에 포함되어 있는 중국이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까 고민하다가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오늘은 중국이 자랑하는 스나이퍼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에 대하여 알아볼까 합니다.

먼저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을 알아보기에 앞서 한국전쟁에서 치러졌던 “저격능선 전투”를 살펴보는 것이 좋으며 다음으로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이 32일 동안 214명의 유엔군을 사살하였다는 정보에 대한 오류를 정확히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이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214명의 유엔군의 목숨을 앗은 것은 그들에게는 영웅적인 일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32일 동안에 거둔 전과가 아니고 3개월 26일간 32회의 작전에서 거둔 전과라고 표현해야 맞습니다.

저격능선은 철의 삼각지대에 있는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에서 김화 지역을 향해 뻗어 있는 능선을 말하는데 6·25전쟁 당시 국군 제2사단과 중공군 제15군이 6주간이나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중공군의 저격병들에 의해서 미군 제25사단이 상당한 피해를 입으면서 미군들이 이 능선을 “저격능선(Sniper Ridge)”이라고 불렀고 그럼에 따라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저격능선전투(Battle of Sniper ridge)”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1961년작 영화 저격능선(sniper’s ridge)의 포스터

1961년작 영화 저격능선(sniper’s ridge)의 한 장면

 

그런데 중국은 저격능선전투와 삼각고지전투를 합해서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라고 부르며 이곳을 끝까지 방어함으로써 북한을 지킬 수 있었다고 자평하면서 1956년에는 이것을 “상감령(上甘嶺)”이라는 영화로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 참고: 주간조선-김정은이 오성산 찾은 것은 ‘상감령전역’ 추억 때문?

북한과 중국은 ‘상감령전역’을 6·25전쟁 중 가장 주요한 전투로 꼽는 데 거리낌이 없다. 중국에서 쓰는 ‘전역(戰役)’이란 말은 ‘전투(戰鬪)’보다 크고 ‘전쟁(戰爭)’보다는 작은 개념이다. 대개 전쟁의 국면을 뒤엎는 ‘결정적 한판’을 일컫는데, 한국과 미국이 6·25의 가장 ‘결정적 한판’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꼽는 것과 비슷하다.

 

중국이 이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을 얼마나 신성시 하는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에 영화 “상감령(上甘嶺)”의 주제곡인 “나의 조국”을 사용한 것에서도 엿볼 수가 있는데 “친구가 오면 좋은 술을 대접하고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으로 맞아줄 것이다.”라는 가사를 가진 이 노래가 2011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장에서 연주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중국과 북한이 성지처럼 여기는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에 오늘의 주인공인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도 참가를 하였습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

1951년 3월, 20세의 나이로 지원하여 군에 입대한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은 1952년 9월 한국전쟁에 투입되었고, 1953년 1월 29일 제24군 72사단 214연대 소속으로 597.9고지(삼각고지)에서 같은 해 5월 25일까지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데 3개월 26일 동안 442발(436발이라는 주장도 있음)의 탄환을 사용하여 214명의 유엔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며 48.4%의 명중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2차 대전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물론 조준사격이 아닌 경우도 포함되겠지만- 25,000발의 탄환을 사용하여 사살한 적군의 숫자가 1.3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48.4%에 달하는 명중률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공군으로부터는 “이등 저격영웅” 훈장을 받았으며 북한군으로부터는 “일급 국기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CCTV-1에서 “스나이퍼 히어로”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여기에 출연한 그녀의 동료였던 여장청(呂長青: Lu Changqing)의 증언에 의하면 저격거리는 보통 100미터에서 200미터인 경우가 많았으며 40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800미터 이상 먼 거리에 있는 경우에는 성공한 적이 불과 몇 번에 불과하였다고 합니다.

여장청(呂長青: Lu Changqing)

또한 전장에서 저격에 성공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통상 저격 후 15분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였다고 하며 214명이란 숫자도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적군이었지만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은 총의 반동을 이기기 위해 10kg에 달하는 모래주머니를 이용하여 팔의 근육을 단련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하기도 하였으며 1954년 19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투기 조종사에 선발되어 공군예비학교와 항공학교에서 과정을 이수한 끝에 공군이 되어 방공부대의 지휘관을 맡기도 하였는데 1980년 퇴역하고 2007년 10월 29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근래 들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미투운동과 관련하여 군에서도 성폭력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거나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군 사관생도가 동료들에게 무참히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그녀의 부친인 장군에 의해 사실이 은폐되는 내용을 그린 영화 “장군의 딸(The General’s Daughter)”이 떠오릅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과 같이 능력과 노력을 겸비한 많은 이 땅의 여군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받지 못하거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