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일본에서는 미국 이외의 군대가 일본에 최초로 상륙하여 합동훈련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자위대의 발전과 조선침략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잊을래야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 그 나라는 1902년에 일본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영국이고 영국의 군대가 일본의 육상자위대와 합동훈련을 하였던 것입니다.

 

명분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었지만 일본은 이외에도 같은 날짜인 10월 2일에는 필리핀에서 있었던 두 번째 Kamandag훈련에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자위대의 수륙기동단(Amphibious Rapid Deployment Brigade) 병력과 장비를 파견하였는데 그 당시 내세웠던 명분 중의 하나는 미군의 함정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연습을 함과 동시에 수륙양용작전 수행방법을 배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내세우는 이런 명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일본자위대가 영국군과 합동훈련을 가진 것은 많은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이 전차를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영국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10월 17일, 영국이 개발한 “마크Ⅳ”전차가 일본 고베항에 도착하게 됨으로써 일본의 전차개발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크Ⅳ 전차

 

영국이 개발한 이 전차는 제1차 세계대전에 등장한 이후 각국의 전차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준 “마크Ⅰ”의 개량형인데 일본은 1917년에 영국에 “마크Ⅴ”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지만 최신형을 줄 수는 없다는 영국의 의사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마크Ⅳ”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된 “마크Ⅳ”는 영국인 장교 1명과 사병 4명의 지원병력과 함께 1918년 10월 17일 고베항에 도착하여 환적된 다음 10월 24일에 요코하마에 도착하고 거기서부터 동경까지는 영국군이 운전하여 아오야마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시연을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1915년을 기준으로 전체 차량의 대수가 897대에 불과할 정도로 차량의 제작기술은 낙후된 수준이었고, 1907년에 최초로 설립된 자동차공장도 서양의 것들을 모방하여 군용차를 생산하는 “오사카포병공창”이 유일하였는데 이런 “오사카포병공창”에 일본군은 전차의 개발을 맡기게 됩니다.

원래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완제품을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최신형 전차를 구입할 수 없거나 영국의 경우에는 자국군에 보급할 정도의 여력 밖에 없어서 부득이 계획을 변경하여 자체생산을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사카포병공창”은 1925년 6월 설계에 착수하여 1년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인 1927년 2월에 시제품을 생산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3개월 후인 1927년 6월 하순에는 후지산에서 가진 주행시험과 주행사격에서 육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만족시켰습니다.

이렇게 국산전차의 개발에 나섰던 일본이지만 태평양전쟁에서는 함정과 항공기의 생산에 중점을 기울이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서양의 전차는 급속하게 발전하여 일본의 전차는 구식이 되었으며 일본의 패전으로 전차의 개발은 중단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재군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미국에 의해 개발은 저지되고 대신에 2차 대전에서 사용하던 “M4 셔먼”과 “M24 채피”가 보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전차는 일본인의 체형에는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최신예 전차의 도입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우선순위는 유럽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국산전차의 개발에 다시 나서게 됩니다.

결국 1952년에 점령상태가 종결되면서 주둔하는 미군의 경비임무가 일본에 귀속됨에 따라 미국의 원조를 받아 전차의 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차가 바로 61식 전차였던 것입니다.

61식 전차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에는 한참 모자라는 것이었기에 일본은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74식 전차를 만들면서 세계수준을 따라잡았다고 자평했고 90식 전차는 세계수준을 일부 앞섰으며 10식 전차는 세계최고라는 자뻑에 가까운 평을 했습니다.

74식 전차

 

90식 전차

 

10식 전차

 

“일본육상자위대가 전차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언론 중에는 “만일 자위대가 적의 전차보다 우수한 전차의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을 침략하는 적에게 전멸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비롯하여 “중국의 지상군이 일본의 본토에 상륙할 것에 대비한 작전의 수립이 필요하고 이 작전에는 반드시 전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주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려던 것이 우리의 반대여론에 밀려 참가를 포기하게 되었던 최근의 일을 포함해서, 조선침략에 가장 큰 힘을 주었던 영일동맹의 당사국들이 합동으로 훈련을 하고, 일본헌법 제9조의 “교전권, 정규군 보유의 금지” 조항과, 자국 내의 방어만을 수행한다는 “전수방위”의 원칙에 따라 일본의 자위대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는 일본의 영토 내로 국한되어 있는 것을 헌법까지 개정하여 군사활동의 영역을 해외로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마음이 편치 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