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왕이 즉위함에 따라 사용하던 연호도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게 된 일본!
일본인들이 정신적인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만엽집(萬葉集) 제5권에 나오는 매화를 노래한 시가에서 따왔다고 하는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 자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한겨울 추위를 이기고 피는 매화처럼 일본국민 모두가 각자의 꽃을 피우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새로운 왕의 즉위를 앞두고 있는 일본에 축하하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나는 아베 총리가 한 말과 만엽집(萬葉集)에 나오는 표현을 한 번 곱씹어보려 한다.
일본이 이번에 새롭게 정한 연호인 ‘레이와(令和)’는 만엽집(萬葉集) 제5권의 ‘매화를 노래한 32수(梅花謌卅二首并序)에 나오는 아래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于時, 初春令月, 氣淑風和, 梅披鏡前之粉, 蘭薫珮後之香.
이것을 약간의 의역을 덧붙여서 풀어보면 “때는 음력 2월(令月)이라, (새롭게) 무슨 일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달이로구나.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바람은 온화한데 매화잎은 거울 앞의 여인이 분을 바르듯이 흩날리며 난초는 몸을 치장하는 향수처럼 향기롭구나!” 하는 내용이다.
각기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는 추운 날씨를 이겨내는 기개를 상징하고 더불어 난초는, 줄기는 청초하고 향기가 그윽하여 고고한 선비의 모습에 비유되곤 한다.
즉 일본의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는 패전의 고통을 이겨내고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리는 난초처럼 세계를 향한 일본의 마음이 고스라니 담겨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매피경전지분(梅披鏡前之粉), 난훈패후지향(蘭薫珮後之香)’의 표현과 같이 일본이 하려는 치장과 뿜으려고 하는 향기가 세계에 아름답고 향기롭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하여야만 하지 그렇지 않고, 지난 과오를 역사왜곡이나 인위적으로(향수) 덮으려 한다면 종국에는 그 향기는 악취로 변하고 말 것이다.
일본의 새로운 ‘레이와(令和)’는 만엽집(萬葉集)의 ‘초춘영월, 기숙풍화(初春令月, 氣淑風和)’란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본 이와나미서점에서는 이 구절은 중국 후한시대의 장형(張衡)이 쓴 귀전부(帰田賦)에 나오는 ‘중춘영월, 시화기청(仲春令月, 時和氣淸)’이란 표현이 원형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주장은 선인(先人)들의 시가 중에서 일부를 인용하여 글을 짓는 것은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이와나미서점의 이 같은 주장은 조금 지나친 해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기회에 만엽집(萬葉集) 제5권의 ‘매화를 노래한 32수 서문(梅花謌卅二首并序)’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매화를 노래한 32수 서문(梅花謌卅二首并序)’에서 32수란 말은 한 사람이 32수의 시를 지은 것이 아니라 모두 32명의 사람들이 각각 1수 씩 노래를 지은 것을 모아놓은 것이란 말이며 32명의 사람들이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노래를 지었던 것을 모아놓았다는 것이다.
일본 나라시대의 율령제도에 따라서 북큐슈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기관인 ‘다이자이후(大宰府)’의 장관인 ‘다자이노소치(大宰帥)’는 외교와 군사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나라시대 ‘덴표(天平) 2년’인 730년 정월 13일 당시의 장관(다자이노소치: 大宰帥)이었던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가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그 때 참가한 32명이 각자 1수 씩의 매화를 주제로 시를 지었던 것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매화를 노래한 32수(梅花謌卅二首)’란 것이다.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연호로 지정된 ‘레이와(令和)’를 따온 구절은 참가했던 32명 중의 한 명인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가 지은 것이며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빈궁문답가(貧窮問答歌)’가 있다.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가 지은 ‘매화를 노래한 32수 서문(梅花謌卅二首并序)’이 바로 아래 사진의 네모 칸 부분에 노란색으로 표시한 “天平二年正月十三日に, 師の老の宅に萃まりて, 宴会を申ぶ. 時に初春令月, 気淑く風和らぎ, 梅鏡前の粉を披き, 蘭珮後の香を薫す.”로 시작하는 구절이다.
서두에서 풀이했던 내용에 추가하여 다시 한 번 그 뜻을 풀어보면 “730년(천평 2년) 1월 13일에 노스승의 댁에 모여 연회를 열었다. 때는 이른 봄인 음력 2월(令月)이라, 무슨 일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달이로구나.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바람은 온화한데 매화잎은 거울 앞의 여인이 분을 바르듯이 흩날리며 난초는 몸을 치장하는 향수처럼 향기롭구나!” 하는 뜻이다.
그런데 시를 자세히 보면 첫머리에서 분명히 정월 13일에 연회를 열었다고 하고 있는데 정작 그 다음에는 “때는 음력 2월 이른 봄(時に初春令月)”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무언가 모순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표현은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음력 2월이란 해석보다는 어떤 일을 하기에도 좋은 달을 뜻하는 길월(吉月) 또는 새해를 맞은 희망이 들어있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 같다.
한편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가 노스승이라고 칭했던 인물이 바로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였는데 그의 시가는 모두 78편이 만엽집(萬葉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술을 찬미하는 ‘찬주가(讚酒歌)가 13수나 될 정도로 평소에도 술을 아주 즐긴 인물이라고 한다.
사족(蛇足)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큐슈 남부의 지역적인 특색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율령제에 반발하는 쿠마소(熊襲) 혹은 하야토(隼人)라고 불리우던 원주민들이 720년 3월 29일, 조정에서 보낸 조사관 ‘야코노마루(陽侯麻呂)’를 살해한 사건을 빌미로 장관이었던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는 중앙의 명령에 따라 1만 명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원정길에 오르게 되는데 진압 도중이던, 8월 12일에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는 도읍으로 돌아가지만 도합 1년 반에 걸친 진압기간 동안 포로를 포함하여 원주민 전사자가 1,4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만엽집에 나오는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의 또 다른 노래를 보면 “하야토(隼人)에서 은어(銀魚)를 보면 고향의 은어가 떠오른다. 이 땅도 그들에겐 고향이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오오토모 노타비토(大伴旅人)’가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귀환해버린 것은 어쩌면 무인이라기보다는 문인에 가까운 그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극단적인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이런 숨은 의미를 알고서 ‘레이와(令和)’란 연호를 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이웃에게 그저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향기)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것은 결코 환영받지 못할 일임을 일본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에 걸맞는 아름다운 모습을 일본에서 보고 싶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웃들은 결코 웃으며 일본을 맞아주지는 않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