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 1일에는 미국을 출발하여 김포로 오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에서 수호이 15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면서 269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1987년 11월 29일에는 아직도 정부의 공식발표를 그대로 믿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는 북한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이라크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항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추락하면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편 1983년 2월 25일에는 고 이웅평 대령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면서 실제로 대한민국 전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기도 했었는데 전투기가 아닌 소련의 전폭기가 1987년 12월 9일 일본의 상공에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그야말로 일본은 난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투폴레프 Tu-16
1980년대는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시기로서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1984년에만 항공자위대의 전투기가 긴급발진(스크램블 발진)을 944회나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1987년 12월 9일 오전 10시 30분 경 항공자위대는 소련의 비행기 4대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넘어 오키나와로 접근하는 것을 레이더로 탐지하여 총 6기의 F-4EJ를 출동시켜 경고와 함께 돌아갈 것을 지시했는데 3대는 기수를 돌려 돌아갔지만 1대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오키나와로 향해 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키나와가 어떤 곳입니까? 미군기지와 함께 항공자위대의 나하기지가 있는 곳 아닙니까? 게다가 경고를 무시하고 비행하는 소련의 비행기는 전투기도 아닌 “투폴레프 Tu-16” 전략폭격기였으니 일본으로서는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결국 20㎜ 발칸포의 경고사격으로 소련의 “투폴레프 Tu-16”는 기수를 돌려 일본의 영공을 빠져나갔지만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오전 11시 41분 “투폴레프 Tu-16”이 다시 일본 영공을 침범하여 재차 이어진 경고사격을 받고 영공을 벗어나 북한의 평양에 착륙하면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일본의 항의로 소련은 “일본 영공을 침범했던 것은 기기고장에 의한 것이었다.”는 변명과 함께 “투폴레프 Tu-16”의 기장을 일계급 강등시키고 승무원 2명에게는 탑승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무마하려 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의 항공자위대에서는 자기들의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자랑질을 열심히 해대기 시작했으며 당시 F-4EJ를 스크램블 발진시킨 곳은 항공자위대 소속의 제302비행대로서 그동안 부대마크로 흰꼬리수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도입될 F-35A기종부터는 마크를 변경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미공군에서도 이것을 탐지하고 F-15를 이미 출동시키고 있었고 항공자위대의 전투기는 당시 일본주둔 미군사령관을 겸직하던 미 제5공군사령관의 명령을 따라야 했는데도 항공자위대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인 양 경고사격만으로 소련의 전략폭격기를 몰아낸 것은 3차 대전을 막아낸 것이라고 자랑질 해대는 것은 솔직히 보기가 조금 거시기 합니다.
하지만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비해 2016년의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전투기의 긴급발진 횟수가 1,000회를 돌파하였다는 사실은 극동지역에서의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