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3일 영국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여 홍콩으로 출국하려던 길버터 쿠란 67세의 남성이 스페인에서 구입한 어떤 물건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스페인의 과르디아 시빌은 산탄데르에 있는 한 창고를 급습하였는데, 창고의 내부에는 여행용 가방들이 수북이 쌓여있었죠.

길버터씨가 스페인에서 구입했던 물건은 무엇이었고, 과르디아 시빌은 무슨 이유로 여행용 가방이 잔뜩 쌓여있는 창고를 급습했던 것일까요?

 

언제나 봄철이면 실장어 또는 실뱀장어라고 부르는 장어의 치어를 불법으로 포획하는 일이 횡행한다는 기사와 함께 가격이 한 마리에 얼마라는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두 사건은 이처럼 값비싼 실뱀장어를 밀수하려던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며 유럽에서 어획되는 실뱀장어의 25% 정도가 매년 아시아로 밀수출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국과 홍콩이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가 먹고 있는 장어도 유럽에서 밀수한 것을 키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실뱀장어라고 부르는 장어의 치어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와 많게는 5년에서 10년간 성장한 다음, 다시 산란을 위해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바다로 돌아간 이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산란은 어디서 하는지, 치어들은 어떻게 하구까지 오는지 등 장어의 생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양식한 것들을 포함해 강이나 호수에서 성장한 장어들이 산란하는 모습을 보거나 장어의 치어를 본 적이 없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는 암수가 따로 없고 진흙에서 탄생한다고 했을 정도로 장어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물고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명하면서도 버드나무잎처럼 생긴 장어의 유생인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가 뱀장어와는 다른 어종이 아니란 것도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한 덴마크의 해양학자 요하네스 슈미트(Johannes Schmidt)에 의해 북미 대륙의 동쪽에 있는 사르가소 해(Sargasso Sea)가 미국뱀장어와 유럽뱀장어의 산란장소라는 것이 1922년에야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먹는 장어는 대부분이 양식한 것이고 장어의 양식은 치어를 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장어의 가격은 매년 포획되는 실뱀장어의 양에 따른 변동의 폭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명이 앙귈라 앙귈라(Anguilla anguilla)인 유럽뱀장어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자 2007년에 워싱턴조약의 부속서 II에 등재되었고, 이로 인해 이전과는 달리 수출허가를 받아야만 유럽 뱀장어의 치어를 아시아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말이 좋아 허가지, 사실상의 수출금지라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유럽 각국에서 취해짐에 따라 밀수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죠.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1kg에 3천 5백 마리를 기준으로 300유로, 한화 40만 원 정도에 구할 수 있었던 유럽 실뱀장어를 국외로 반출하기만 해도 3배 이상인 1천 유로를 받을 수 있었고, 1년 정도 성장시키면 아시아에서 소매가로 26,000 유로, 한화로는 3천 5백만 원에 팔 수 있었으니, 중국인들이 밀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죠.

 

게다가 실뱀장어는 부피도 작아서 지금 보시는 것처럼 여행용 가방에 넣어서 운반하면 세관 검색에도 잘 걸리지 않았고, 유럽연합이 유럽 뱀장어의 수출입을 금지한 2010년 이후부터는 모든 역내거래가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장어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아시아로 밀수출된 것들이 우리가 즐겨 먹는 종인 앙귈라 자포니카(anguilla japonica)로 둔갑하여 판매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다고 알고 있는 자포니카종 장어는 2005년이 되어서야 도쿄대학 해양연구소에 의해 서 마리아나해령에서 산란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아직도 정확한 지역을 특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산란한 뒤의 이동경로는 규명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장어의 렙토세팔루스는 어디서 어떻게 실뱀장어로 성장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북적도해류와 쿠로시오해류를 타고 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유엔식량농업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는 매년 28만 톤 이상의 장어가 생산된다고 하며 아시아에서 장어양식이 시작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자포니카종 장어의 생산량이 유럽장어의 생산량을 뛰어넘게 되었고 지금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프를 보시면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장어양식은 자연에서 태어난 실뱀장어를 얼마나 잡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은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 자포니카종 장어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연간 2만 톤 내외의 장어를 양식한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1억 마리 정도의 실뱀장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만 일본에서 잡히는 실뱀장어의 양은 50년 전에 비해 20분의 1 수준인 형편이어서 많은 양을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입하는 실정이지요.

그런데 중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장어를 양식하는 양만장(養鰻場) 중에서 규모가 큰 한 곳에서만 연간 1만 톤 이상을 생산한다고 하고 2020년 중국에서 어획하거나 양식한 장어의 생산량이 250,740톤이라고 하니 이를 단순하게 계산하면 연간 12억 5천 마리의 실뱀장어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북적도해류와 쿠로시오해류를 타고 극동지역으로 이동하는 실뱀장어의 이동경로와는 달리 중국의 장어 양식장들은 대부분 홍콩과 가까운 남동부 지역에 몰려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실뱀장어가 밀수되는 중요한 루트가 바로 홍콩이고,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실뱀장어의 대부분도 홍콩에서 수입되고 있죠.

해마다 3억 5천 마리 이상의 유럽실뱀장어가 아시아로 밀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홍콩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며, 홍콩에 도착한 실뱀장어 중 일부는 중국 본토의 양만장에서 키워진 다음 자포니카종으로 탈바꿈되어 수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수출하는 장어가 유럽뱀장어와 같은 종이라고 하면 유럽 실뱀장어를 밀수입한 것임을 실토하는 꼴일 테니 중국으로서는 자포니카종이라 우길 수밖에 없겠지만 밀수한 것을 다시 수입해서 소비하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닐까요?

2021년 우리나라는 모두 3.1톤의 실뱀장어를 수출하고 6.4톤을 수입하였는데, 수출물량은 모두 미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수입물량의 50%가 넘는 3.4톤을 홍콩에서 수입하였고, 필리핀에서 1.5톤, 중국에서 1.2톤을 수입하여 3개국의 수입량이 6.1톤에 달해 95%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활어 상태의 장어는 2021년에 모두 1,337.4톤을 수입하였으며 그중 1,096.8톤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는데, 과연 중국에서 수입한 장어는 모두 자포니카 종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1970년대 이후 유럽으로 유입되는 장어의 개체수는 약 9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며 밀수에 강력하게 대처하면서부터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하며 2014년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자포니카종 장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였으나 멸종위기종의 지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적도 해류가 남북으로 나뉘는 분기점의 위도가 변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극동지역으로 회귀하는 실뱀장어의 숫자는 더 크게 감소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밀수를 전 세계적인 노력으로 근절시키지 못한다면 장어의 멸종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어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특히 불법행위로 생산된 장어의 수입과 유통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양식하는 장어의 치어량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본, 대만, 중국의 4개국이 참여하는 국제협의체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중국은 아직까지 참가를 미루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정부에서도 대만산 실뱀장어가 중국을 거쳐 홍콩으로 밀수출되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고 유럽산 실뱀장어가 홍콩으로 밀수출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통되는 장어는 자포니카종 외에도 몇 종류가 더 있음을 알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지만 어쩐 일인지 정부당국은 이런 사실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일명 홍콩루트라 불리는 실뱀장어의 유통경로에는 자포니카종 이외의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어서 생소하지도 않습니다. 2017년 우리나라는 총 11.2톤의 실뱀장어를 양식장에 입식하였으며 그 중 74%인 8.3톤의 수입 실뱀장으로를 입식하였는데 수입한 실뱀장어의 93%인 7.7톤을 홍콩으로부터 수입한 것을 입식하였죠.

그러나 홍콩에는 실뱀장어가 회귀할만한 강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대만이 실뱀장어의 수출규제를 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실뱀장어의 90% 이상을 대만산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유럽에서 홍콩으로 밀수출된 실뱀장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도 자포니카종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정부당국도 외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회유하는 실뱀장어의 어획량은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국내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관리가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자원관리를 향해 내딛는 한걸음은 그리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