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잉어튀김 거리가 있다.

프랑스에는 잉어튀김 거리가 있다.

잉어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하는 유럽에서, 그것도 프랑스에서 잉어를 튀김으로 먹는다고? 게다가 그런 거리가 있다고?

지금부터 유럽형 잉어낚시의 번외편으로 유럽의 잉어요리와 잉어와 관련한 한 편의 전설에 대해 얘길 해볼까 한다.

서유럽과는 달리 동유럽에서는 잉어를 먹는 나라들이 많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체코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잉어 튀김과 감자 샐러드를 먹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해마다 12월 20일을 전후하여 체코의 거리에는 잉어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늘어서고 산 채로 잉어를 사가는 사람도 있고 손질해달라고 해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에서 잉어를 식용하는 문화는 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체코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밤에 황금돼지를 만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파평윤씨 문중에서는 시조설화와 관련이 있는 잉어를 먹지 않는데 2007년 파평윤씨 대종회에서는 선조에 대한 보은과 자연생태계 보존의 일환으로 잉어를 대량 방류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잉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the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이 규정한 세계의 침략적 외래종 100가지의 하나로 선정된 어종이다.

국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배스와 같이 저온에 대한 내성과 잡식성을 가진 잉어는 60㎝가 넘으면 천적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의 알이나 치어를 대량으로 포식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시아로부터 들어온 잉어(아시아 잉어)를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하고 있다.(아래의 그림은 아시아 잉어의 미국 분포상황)

 

오늘의 주제는 환경과 관련한 것이 아니니 다시 프랑스의 잉어튀김 요리로 돌아가도록 하자.

프랑스의 알자스를 차로 달리면 송고(Sundgau)라는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송고(Sundgau)는 남쪽의 행정구역을 뜻하는 독일어인 준트가우(Sundgau)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행정구역이 아닌 지방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곳에 오늘의 주제인 잉어튀김 거리(Routes de la Carpe Frite)가 있고 특히 프랑스와 인접한 스위스 쥬라주의 코르놀(Cornol) 마을이 잉어튀김 요리로 유명하다.

 

 

알자스에서 잉어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중세부터라고 하는데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는 46일간의 사순절 동안 수도사들은 기도와 함께 금식을 하는데 하루에 1번은 식사를 하고 나머지 두 끼는 아주 적은 양을 먹는 금식 기간에 잉어는 수도사들의 중요한 단백질원이 되었던 것이다.

잉어튀김으로 유명한 코르놀(Cornol) 마을에서 가까운 립스도르프(Liebsdorf)에는 잉어튀김에 얽힌 사랑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옛날 준트가우(Sundgau)를 다스리던 영주의 아들이 립스도르프(Liebsdorf) 부근을 지나다가 아름다운 여성 목자를 보았으나 끝내 고백을 하지 못하고 그녀가 즐겨가는 곳에 있는 바위에 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를 새겨넣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시를 발견한 여성목자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나 백작의 아들과 목자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화가 난 영주는 “결혼을 허락할 수 있을 정도로 무엇인가 좋은 것을 해보라.”고 그녀에게 요구하였다.

이에 여성 목자는 신비한 황금물고기라고 잉어를 칭송하면서 튀긴 잉어를 영주에게 바쳤고 그 맛에 흠뻑 취한 영주는 결혼을 승낙하였으며 자신의 아들이 여성 목자를 향해 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를 새겨넣었던 바위 위에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그 성이 바로 리벤슈타인성(Liebenstein Castle)이다.

 

또한 립스도르프(Liebsdorf)는 제1차,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두 번이나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모두 탈옥에 성공했던 프랑스의 앙리 지로(Henri Giraud) 장군이 1942년 탈옥에 성공하고 은신했던 곳이기도 한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현재는 지로장군길(Rue du Général Giraud)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잉어요리와 함께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잉어낚시가 성행하였는데 “세인트 올번스의 책(The Book of Saint Albans 또는 Boke of Seynt Albans)” 중 낚시에 관한 논문(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에서 세계최초로 낚시에 관한 글을 썼던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 수녀는 논문에서 잉어낚시에 대하여 적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선 크리스마스에 장어를 먹는다.

이탈리아에선 크리스마스에 장어를 먹는다.

유튜브채널 중에 에스토니아 출신인 여자분이 한복을 입고 나와 방송하는 김치귀신 마이란 채널이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어를 먹는다는 영상을 올리면서 장어는 “뭔가 크리스마스 요리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유럽인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 수가 있겠으나 특히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85% 이상이나 되는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식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장어요리이다.

물론 최근에 오면서는 칠면조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장어가 대표적인 성탄음식인 것은 틀림없는데 장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카피토네(capitón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장어란 뜻 외에도 성탄절의 전통적인 요리를 말한다고 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가 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 육식을 하지 않으려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생선을 먹는 문화가 생기기도 했지만 카톨릭에서 악의 상징과도 같은 뱀과 비슷하게 생긴 장어를 먹음으로써 악을 멀리한다는 의미로 장어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까지 생각하면서 장어를 먹는 이탈리아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반드시 장어를 산채로 구입하여 장어의 머리를 직접 잘라 요리하는 것이 악을 멀리한다는 의미로 관습적으로 행해져 왔으나 지금은 직접 손질해서 요리하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아래의 사진과 같이 나폴리에서도 살아있는 장어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집에서 직접 장어를 요리할 때에도 하와가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의미로 주부가 장어의 머리를 자르는 것이 이탈리아의 전통이라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지금은 유명무실하며 최근에 와서는 장어보다는 바칼라(baccalà)라고 하는 소금에 절인 염대구와 칠면조를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한편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양식장어 생산량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어획량으로는 2020년 기준 47톤의 어획고를 올림으로써 우리나라보다 1계단 적은 18위를 차지하였으며 이탈리아의 코마키오(Comacchio)에서는 매년 사그라 델랑귈라(Sagra dell’Anguilla)라는 장어축제가 열리는데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사그라 델랑귈라(Sagra dell’Anguilla)

 

참고로 프랑스에는 잉어튀김 거리가 있다는 제목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체코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잉어튀김을 먹는 문화가 있으며 끝으로 이 글을 보시는 모든 구독자님들께 성탄의 인사를 전하면서 글을 마친다.

즐겁고 뜻깊은 성탄 보내시고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낚만지월 드림

빵집이란 표현은 비도덕적이다?

빵집이란 표현은 비도덕적이다?

우리나라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논란이 일었었는데 이웃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일본이 1997년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를 결성하고부터 역사의 왜곡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이제는 아예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검정교과서를 출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 얘기할 주제는 역사문제가 아니라 도덕에 관한 얘기이다.

문제가 된 것은 도쿄 키타구의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릴 “일요일의 산책”이란 부분이다. 원래의 내용은 주인공 ‘켄타’가 할아버지와 함께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산책을 하면서 익숙한 마을의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다는 내용인데, 이 안에 빵집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이 빵집이란 표현을 두고 “학습지도 요령, 즉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배우는 규정에 비추어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검정의견이 나오고, 문부과학성의 “일본의 문화와 생활에 애착을 갖게 하는 표현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이 교과서를 출간한 도쿄서적은 고민 끝에 ‘빵집’이란 표현을 ‘제과점’으로 변경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다.

이런 변경에 대한 도쿄서적의 입장은 “지도요령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압박이 심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건에 대한 일본 내에서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예를 들면 “빵집이란 표현과 향토애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라거나 학교급식으로 빵을 공급하는 업자들은 “학교급식을 위해 빵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말들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검정결과를 내놓은 위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도덕교과서의 검정화는 아베정권이 2006년에 1차 시도를 했으나 무산되었던 것이 2014년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원으로 검정위원을 교체한 후 다시 시도하여 2018년부터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시된다고 한다.

일본 내에서도 이런 우경화 문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점고되고 있지만,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일본의 국민들이 이런 불합리한 문제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봄비가 내리는 오늘, 탄핵되어 범죄 피의자로 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의 2차 검찰 조사가 있다고 한다.

봄비를 맞으면 싹이 트는 것도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껍질인 아린(芽鱗: 나무의 겨울눈을 싸고 있으면서 나중에 꽃이나 잎이 될 연한 부분을 보호하고 있는 단단한 비늘 조각)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경제와 사회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국가가 그 아린으로서의 기능을 다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아린(芽鱗)이 되어줄 나라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을 맞게 되었다. 쓰레기 언론의 작태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더욱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야 할 시간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마음이 아리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테팔 매직핸즈의 손잡이가 빠지지 않을 때

테팔 매직핸즈의 손잡이가 빠지지 않을 때

손잡이가 분리되는 테팔의 매직핸즈는 가정용뿐만 아니라 캠핑용도 판매되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용하다 보면 때로는 손잡이가 분리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는데 오늘은 이럴 경우의 대처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프라이팬이나 냄비는 사용함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서 사용한 부품의 물리적 성질이 열화하는 경년열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럴 경우 프라이팬과 냄비는 가장 약한 부분인 손잡이의 연결 부위에서 제일 먼저 열화가 진행된다.

또한 손잡이 내부에 있는 스프링은 세제로 인해 그리스가 제거되어 고착될 수도 있는데 이런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손잡이가 분리되리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럴 때에 당황하지 않고 간단하게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뒤집어 손잡이의 뒷면이 위로 오도록 한다.

그 다음 아래쪽에 있는 덮개를 일자 드라이버를 이용하여 분리한다.

그런 다음 일자 드라이버를 이용하여 아래쪽으로 밀어준다.(사진에서는 오른쪽 방향)

이렇게 하면 손잡이를 분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 아래와 같이 버튼을 눌러도 스프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일어나게 되므로 위에서 설명한 방법으로 조치를 하면 분리할 수는 있으나 계속해서 사용하려면 분해하여 정비를 해주는 것이 좋다.

분해하고 정비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주부님들이 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별도로 판매하는 손잡이를 추가로 구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코로나 19는 미국에서 잉어의 이름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코로나 19는 미국에서 잉어의 이름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코로나 19가 창궐하면서부터,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는 많이 접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란 비판 때문에 잉어의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래 전에 배스는 나쁘고 잉어는 착하다?라는 글을 통해 잉어는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에 포함된 물고기란 것을 알아본 바가 있었습니다.

잉어는 저서생물과 수생식물을 마구 먹어치우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저온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고, 크기가 60cm를 넘으면 천적이 거의 없어지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규정하고 있는 악성 침입 외래종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아시아 잉어라고 불리는 잉어로 인한 생태계의 피해가 커서 이를 퇴치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물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포획하는 것은 물론이고, 켄터키주에서는 음향을 이용하여 잉어의 유입을 차단하는 연구를 하고 있으며, 미육군 공병대에서는 미시시피강에서 미시간호로 유입되는 잉어를 차단하기 위해 전기가 흐르는 장벽을 설치하는 공사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아시아 잉어는 1970년대 아무것이나 먹어치우는 잉어의 습성을 이용하여, 하천이나 양식장의 잡초나 기생충을 제거하고 환경을 정화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그런데, 홍수로 인해 연못에서 기르던 잉어가 강으로 유입되면서 급속하게 개체수가 증가하게 되었고, 미국 지질조사국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조사한 결과가 나오면서부터 대대적인 잉어 퇴치작업에 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아시아 잉어라고 부르는 잉어는 대략 10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초어라고 부르는 그래스 잉어(Grass carp)를 비롯하여 은잉어(Silver carp), 큰머리 잉어(Bighead carp) 및 검은잉어(Black carp)의 4종류입니다.

그래스 잉어 (Grass carp)

 

은잉어 (Silver carp)

 

큰머리 잉어 (Bighead carp)

검은잉어 (Black carp)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시아 잉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코로나를 계기로 아시아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하면서 침략잉어라는 이름도 바꾸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미국 전역에서 이름을 바꿀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펑하위 상원의원이 잉어의 이름을 아시아 잉어에서 침략잉어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한 동기는,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도착한 아시아 경제사절단이 아시아 잉어를 없애자는 뜻의 Kill Asian Carp라는 간판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뉴스보도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미네소타주는 중국계 이민자들의 경제지배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많은 중국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이들에게 밉보이면 좋을 게 없다는 실리적인 판단에 따라 잉어의 이름을 바꾸자는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던 것인데,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호응을 얻어 2014년 5월 16일에 이름이 바뀌게 되었고, 2021년 4월에는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U.S. Fish and Wildlife Service)에서도 공식적으로 침략잉어로 이름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정치적이고 인위적인 균형은 유지하는 미국일지는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아무런 사후조치가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물론, 일부 언론에서는 아직까지도 아시아 잉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바뀐 잉어의 이름에 침략이란 뜻의 단어가 들어간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최근에 제기되기 시작하였으며, 10여 종류의 잉어를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하는 것보다는 개별적인 이름으로 부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년에 비해 출조하는 횟수도 줄었고,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만나서 소주 한 잔 나누는 시간도 줄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 자영업자분들의 고통에야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람과 아울러 이 세상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지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미국에서는 가물치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가물치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가물치는 일본에서도 가물치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가물치를 소재로 만든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절대 놓아줘서는 안 됩니다. 잡으면 즉시 죽이고 얼려야 합니다.

이 슬로건은 미국 조지아주의 야생보호국에서 내건 것으로 이런 내용은 뉴욕타임스와 USA Today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를 통해서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짐작하시는 것처럼 잡는 즉시 죽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가물치를 말하는데 미국에서 가물치가 서식하는 것은 14개 주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15번째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된 것이 바로 조지아주였죠.

가물치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2002년 여름으로, 메릴랜드 주의 크로프턴에 있는 연못에서 최초로 발견되었고, 2004년에는 포토맥강에서도 발견이 되었죠.

가물치는 서식지의 생물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먹는 것은 물론이고, 뭍에서도 며칠 동안 물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메릴랜드주에서는 독극물을 살포하여 500마리 이상의 가물치를 살처분하였으나,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죠.

한류라는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비약이 너무 심했나요?

아무튼 민물의 상어라 불릴 정도로 무서운 넘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자, 영화계가 발빠르게 움직였고, 2004년에는 스네이크헤드 테러(Snakehead Terror)와 프랑켄피쉬(Frankenfish)가 개봉되었고, 2006년에는 가물치 떼의 습격으로 번역할 수 있는 스웜 오브 더 스네이크헤드(Swarm of the Snakehead)가 개봉되었으며 2014년에는 스네이크 스웜프(SnakeHead Swamp)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었지요.

 

대부분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볼 수는 있으나, 보고 나면 시간만 버렸다는 생각을 할 게 뻔하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중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스네이크헤드 테러(Snakehead Terror)는 2002년 6월 말과 7월 초에 메릴랜드 크로프턴에서 노던 스네이크헤드(Northern snakehead)라고 불리는 가물치가 발견된 후 전국에 뉴스를 통해 알려졌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한편 2019년 10월 조지아주에서 15번째로 발견된 가물치는 2021년 8월에는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발견됨에 따라,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동생을 출산한 어머니를 위해 외할머니께서 가마솥에 가물치를 고아주시던 모습이 기억에 선한데, 미쿡인들은 가물치 안 먹겠죠?

캐나다 국기에는 언제부터 단풍잎을 그려 넣었을까?

캐나다 국기에는 언제부터 단풍잎을 그려 넣었을까?

태평양이 보이는 밴쿠버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퀘벡의 몽졸리에 이르기까지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깨끗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제가 가지는 캐나다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캐나다의 국기에는 상징과도 같은 단풍잎이 그려져 있는데 오늘은 언제부터 캐나다의 국기에 단풍잎 그림을 사용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34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발견되어 당시 원주민들이 부르던 호칭(카나타: 마을이란 뜻)을 따라 캐나다로 부른 것이 국명의 유래인 캐나다는 카르티에가 이 땅이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음을 선언하기 위해 만든 아래와 같은 모양인 당시의 프랑스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프랑스인들이 누벨 프랑스(뉴 프랑스)라고 부르며 건너와 무역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그들이 조직한 길드사무소에서는 당시 프랑스의 해군기를 게양하였었는데 1663년 루이 14세가 누벨 프랑스를 국왕의 직할 식민지로 규정하면서 루이 14세의 깃발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영국인들도 캐나다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프랑스 상인들과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고 급기야는 영토분쟁으로 번지게 되었는데 ‘앤여왕전쟁’ ‘조지왕전쟁’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프랑스의 식민지 거점이었던 퀘벡이 함락되고 캐나다는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캐나다는 표면상으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인구는 프랑스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1841년에 영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어퍼 캐나다(Upper Canada)와 프랑스계가 많은 로어 캐나다(Lower Canada)를 통합하기 위해 ‘연합 캐나다의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유니온 잭을 국기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864년 ‘퀘벡결의’를 채택하여 “캐나다를 구성하는 주는 캐나다연방의 식민지이며, 캐나다연방은 영국의 식민지”라고 규정을 하면서 이 세 가지 구조가 반영된 깃발을 1867년부터 국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위의 깃발을 보면 왼쪽 위에 유니온 잭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편 아래에 있는 것이 당시의 캐나다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4개의 주를 나타내고 있는데 좌측 상단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샤, 뉴 브런즈윅 주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특히 온타리오 주를 나타내는 문양을 보면 단풍잎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부터 캐나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단풍잎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 데에는 1848년도에 여러 언론에서 캐나다의 상징으로 단풍잎을 규정하는 기사들이 있었고, 1860년에 창설한 제100연대의 마크에 단풍잎을 그리는 등 많은 계기가 있었지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알렉산더 뮤어(Alexander Muir)가 1867년에 만든 “단풍잎이여 영원하라.(The Maple Leaf forever)”라는 노래이며 이 노래는 당시 캐나다의 국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07년에 만들어진 국기에는 더 많은 주를 표기하게 되었으나 너무 복잡함에 따라서 단순화 시키고 하단에 녹색의 단풍잎을 그려 넣은 깃발이 1921년에 제정되게 됩니다.

1907년 제정

 

1921년 제정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캐나다는 영국연방의 다른 나라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아래와 같은 깃발을 사용했는데 프랑스계의 반발 때문에 백합문양의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is)”를 함께 그려 넣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부터 미국과의 군사적·경제적 관계가 급속도로 강화됨에 따라 캐나다도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총리의 임면권과 국회의 소집 및 해산권을 이양 받게 되는데 이 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캐나다의 독립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1945년에 당시의 총리였던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이 아래와 같이 황금 단풍잎이 그려진 디자인을 국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프랑스계의 반발로 무산이 되고 맙니다.

 

그 후 다시 제정된 국기는 1921년에 만들어진 것과 크게 차이가 없고 단풍잎의 색깔만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0% 이상이 새로운 국기의 제정을 바라고 그 중의 60%는 단풍잎을 사용하기를 원한다는 결과에 따라 1960년에 당시 야당인 자유당의 지도자였던 레스터 피어슨(Lester Pearson)이 “하루빨리 새로운 국기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1963년에 캐나다의 제14대 총리로 취임하고 나서 새로운 국기를 고안했는데 왼쪽의 파란색은 태평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파란색은 대서양을 상징하며 가운데의 단풍잎은 캐나다인과 영토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도 전에 언론에 유출됨으로써 많은 반발을 낳고 말았습니다.(언론 유출 이후 1964년 6월 15일에 국회심의에 회부함)

 

특히 야당에서 “반드시 유니온 잭을 넣어야 한다.”고 반발하면서 역사학자 조지 스탠리가 제안하고 캐나다 왕립군사대학이 디자인한 아래와 같은 것을 국기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게 됩니다.

 

그럼에 따라 1964년 9월 10일 위원회를 만들어 심의·결정하기로 의결하고 여야 1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35회의 심의를 거듭한 끝에 유니온 잭과 백합문양을 빼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 1964년 12월 15일 국회에서 투표를 하여 찬성 163대 반대 78표로 통과함으로써 아래의 디자인이 정식국기로 제정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플라스틱의 생산도 시작되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플라스틱의 생산도 시작되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날은 전 세계적인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던 날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제2차 대전과 같은 전쟁은 인류 역사에 다시는 있어선 안 될 비극이지만 전쟁이 시작된 날, 전쟁을 끝내는데 공헌한 플라스틱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이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 포스팅은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의 기사를 참고로 작성한 것이란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얘기를 시작할까 한다.

플라스틱은 1898년 독일의 화학자 한스 폰 페치만(Hans von Pechmann)이 발견한 것이지만 1933년 영국의 ICI(Imperial Chemical Industries: 임페리얼화학산업)란 회사의 직원이었던 레지날드 깁슨(Reginald Gibson)과 에릭 포셋(Eric Fawcett)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발견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인 1935년에 ICI의 다른 직원인 마이클 페린(Michael Willcox Perrin)에 의해서 생산방법의 특허를 취득하게 되었고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위닝톤(Winnington)에 있던 ICI의 공장은 플라스틱의 생산에 들어갔다.

 

1933년 3월 24일, 레지날드 깁슨(Reginald Gibson)과 에릭 포셋(Eric Fawcett)은 가스 액화 혼합물을 이용한 고압실험을 하던 도중, 기구의 압력이 떨어지면서 누수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고 장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흰색의 왁스 상태의 고체 물질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폴리에틸렌이었다.

그러나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분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폴리에틸렌(Polythene)도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에릭 포셋(Eric Fawcett)은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였고 1935년에는 캠브리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으나 주목을 받지 못했고, 회사에서 지원을 철회하는 바람에 포셋도 마침내 다른 연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는 플라스틱을 세상에 선보이는 쪽을 택했는지는 모르지만 포셋의 뒤를 이어 마이클 페린(Michael Perrin)이란 젊은 연구원이 고압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하게 되었고 그는 레지날드 깁슨(Reginald Gibson)과 에릭 포셋(Eric Fawcett)이 진행했던 연구를 기초부터 다시 검토하면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35년 12월 19일, 성공적으로 몇 그램(g)의 폴리에틸렌을 생산하게 된다.

 

마이클 페린(Michael Willcox Perrin)

 

마이클 페린(Michael Perrin)은 그가 생산한 샘플을 회사에 보고하여 평가를 받았는데 결과는 당시 케이블의 피복용으로 사용되던 구타페르카(Gutta Percha)와 유사하지만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얻는다.

그리고 100톤을 주문받은 ICI는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만들게 되는데 공장이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간 날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9월 1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산되기 시작한 플라스틱은 레이더의 동축케이블의 절연체로 사용되면서 영국군은 레이더를 탑재한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었고 독일의 야간공습을 봉쇄함은 물론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게 됨으로써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데 큰 공을 세운 플라스틱이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기 때문일까? 이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고 말았다.

일본 고베의 스타벅스 이진칸점

일본 고베의 스타벅스 이진칸점

일본 고베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한다는 스타벅스 이진칸점은 고풍스런 건물에서 마시는 커피라는 점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조금 색다르고 오래된 건물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 같아서 오늘은 일본 고베의 스타벅스 이진칸점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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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神戸北野異人館店)에 관한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보면 누구도 입구에 있는 키타노모노타리칸(北野物語館)이란 작은 건조물을 주목하지 않지만 스타벅스 이진칸점이 유명해진 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이진칸(異人館)을 표기하는 한자에서 보듯이 이진칸이란,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서 서양인들이 거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건물로 종래의 일본 가옥과는 다르게 지어져 이방인들이 산다는 뜻에서 이진칸(異人館)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진칸은 고베 외의 다른 지역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고베의 이진칸이 유명한 것은 바로 NHK에서 아침 드라마로 방영했었던 덕이 컸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스타벅스 이진칸점의 입구 우측에 있는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1907년에 지어진 것으로 최초의 소유자는 미국인이었으나 나중에 독일 출신의 제빵사인 하인리히 프로인트리브(Heinrich Freundlieb)가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를 모델로 하여 만든 드라마가 바로 NHK의 연속TV소설 카자미도리(風見鶏)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이진칸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역은 일본인 아라이하루미(新井晴み)가 맡았으며 드라마에서는 남편 역의 이름을 프로인트리브(Freundlieb)가 아니라 브룩마이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도쿠시마의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인리히 프로인트리브(Heinrich Freundlieb)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빵을 만드는 업무에 복무하던 도중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종전 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머물며 일본인과 결혼하였고 그의 아들이 1955년에 베이커리 회사를 만들면서 일본어로 프로인드리브(フロインドリーブ)라고 등록하면서 일본에서는 독일어 발음인 프로인트리브(Freundlieb)보다는 프로인드리브라고 많이들 알고 있다.

이런 역사를 지닌 프로인드리브의 본점은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로 등재되었고 가족들이 살았던 건물 역시 등록유형문화재로써 현재는 스타벅스의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 건물은 1907년 준공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던 건물을 고베시가 기증받은 다음 해체하여 보관하다가 2001년에 지금의 자리에 재건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1월 31일자로 효고현의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3월 27일부터 스타벅스가 입점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유형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나뉘는데 1996년 10월 1일 보존 및 활용에 대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재(건축물)를 문부과학대신이 문화재 등록 원부에 등록하도록 하는 것을 법률로 제정하였는데 이에 의거해 지정된 것이 등록유형문화재로써 보수가 필요한 경우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정유형문화재와는 달리 국가의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외관을 고치지 않고 실내를 개조하는 것은 자신의 부담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와 화려한 사진들이 넘쳐나는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神戸北野異人館店)이지만 그 이면의 얘기들을 소개한 곳을 보기 어려워 몇 자 적어보았다.

커피 맛은? 스벅에선 언제나 샷을 추가하는 내겐 그냥 평범한 스벅맛일 뿐이더라는~

 

일본의 된장절임요리 사이쿄즈케(西京漬け)와 사이쿄야키(西京焼き)

일본의 된장절임요리 사이쿄즈케(西京漬け)와 사이쿄야키(西京焼き)

일식(日食)문화가 낯설지 않은 지금, 서경절임 또는 서경구이라는 말을 간간이 듣거나 보게 되는데 서경절임은 일본어 사이쿄즈케(西京漬け: さいきょうづけ)를, 서경구이는 사이쿄야키(西京焼き: さいきょうやき)를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사이쿄야키(西京焼き)는 사이쿄즈케(西京漬け)를 구운 요리여서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니지만, 오늘은 이 두 가지의 차이와 유래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서경절임, 즉 사이쿄즈케는 사이쿄미소(西京味噌)라는 된장을 사용하여 절이는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요리용 된장을 궁중에 진상했던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서경된장, 즉 사이쿄미소는 교토를 비롯한 간사이 지방에서 만드는 흰된장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의 된장에 비해서 염분이 적고 단맛이 특징으로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수도를 에도(江戸: 지금의 도쿄)로 천도하면서부터 교토(京都)를 사이쿄(西京)라고 부르게 된 것에서 유래하여 사이쿄즈케(西京漬け)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사이쿄미소라고 하면 특정 브랜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며 특히 관서지방에서는 흰된장이나 된장절임(味噌漬け)으로 부른다.

일본 된장의 종류는 크게 쌀된장, 콩된장, 보리된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쌀된장은 쌀로 만들고 보리된장은 보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원료는 콩이지만 발효시키는 누룩의 원료가 무엇인지에 따라 구분된다.(사용하는 누룩의 양에 따라서 된장의 맛을 3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코메코우지(米麹)라는 쌀누룩으로 만드는 쌀된장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보리된장 및 콩된장이 각각 4.5% 정도씩을 차지하며 나머지 10% 정도는 혼합된장이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일본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일본여행객의 숫자는 크게 감소했지만 언젠가 관계가 회복되어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보리된장은 큐슈나 쥬고쿠지방(中国地方)에서, 콩된장은 도카이지방(東海地方)에서 쉽게 맛볼 수 있으며 콩된장은 핫쵸미소(八丁味噌)가 특히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쌀된장을 사용하여 요리의 재료를 절이게 된 것은 헤이안 시대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물고기를 바다에서 먼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저장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나 지금은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 양고기 등 육류(肉類)에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서경된장, 즉 사이쿄미소에 술이나 맛술을 더하여 요리재료를 재운 다음 굽는 것을 서경구이, 일본어로는 사이쿄야키라고 부른다.

사이쿄야키는 보관용기에 담아 하루에서 길게는 사흘 정도를 서경된장에 재운 다음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즉석에서 맛술이나 술을 더한 서경된장을 발라서 굽기도 한다.

 

특별히 주의할 점은 없으나 며칠 재운 다음 요리하는 경우에는 재료의 표면에 묻은 된장을 닦아내지 않고 구우면 겉이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하고 구워야 한다는 점만 주의하면 된다.

   

 

또 한 가지만 덧붙이면 서경절임한 생선을 구울 때는 절이기 전에 소금을 뿌려 생선의 수분을 빼낸 후에 된장에 절이는 것이 좋다는 점만 신경 쓰면, 제법 비싼 요리인 일본의 사이쿄야키를 손쉽게 집에서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