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해상초계기는 현대판 자살특공대?

일본의 해상초계기는 현대판 자살특공대?

우리 해군의 광개토대왕함이 일본의 P-1초계기에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준했다는 증거로 일본이 내놓은 영상을 보면, 지난날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운용하였던 자살특공대(카미카제 특공대)가 생각납니다.

일본은 세키유키오(関行男)를 비롯한 자살특공대 제1진의 참가자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지원하였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으며 1944년 10월 20일, 세키유키오(関行男)를 대장으로 하는 시키시마대(敷島隊) 5명이 최초로 출격하였다고 뉴스로 방영하기도 했는데,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2014년 일본의 문예춘추를 통해서 알려진 바가 있었습니다.

자살특공대 중에서 세키유키오(関行男)가 대장인 시키시마대(敷島隊)도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참여하게 된 것이며, 그 외 야마토대(大和隊)와 아사히대(朝日隊), 야마자쿠라대(山桜隊)의 대원들은 지명에 의해서 모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뉴스 제232호에서 “가미카제특공대 시키시마대 5인”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영상과 사진은 모두 날조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당시 사진을 촬영했던 이나카기 히로쿠니(稲垣浩邦)의 증언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는 “자신이 정성껏 찍은 대원들의 마지막 모습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다른 뉴스와 편집한 누더기 영상을 시키시마대 5인의 최후의 모습이라고 국민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 놀라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는 5명이 아니라 7명이었으며 사진에는 6명이 나온 것이라는 이나카기 히로쿠니(稲垣浩邦)의 증언(사진은 이나카기 히로쿠니가 촬영한 것을 위키피디아에서 퍼옴)

 

그러나 편집하고 날조된 영상과 사진으로 일본국민들의 자부심과 참전의식을 높였기에 그들이 목적했던 것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때와 지금 일본의 아베정권이 하는 짓이 너무도 닮았음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해상자위대의 P-1초계기에 대하여 조준발사하였다고 하는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STIR)는 탑재하고 있는 127㎜포나 “RIM-7 시스패로” 함대공미사일에 특화된 장비라는 것이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의 주된 골자입니다.

 

그런데 일본해상자위대의 P-1과 같은 초계기에는 레이더의 전파를 역으로 탐지하는 ESM(Electronic Support Measures)이라는 장비가 있어서 광개토대왕함에서 발사한 레이더가 사격통제레이더인지 구별할 수가 있는데,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STIR는 일본의 해상자위대에서도 이전에 운용을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더욱 익숙한 장비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가장 큰 차이점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료를 증거로 제시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각국의 해군에서 운용하는 함정에는 탐지거리가 길고 사용하는 주파수가 낮은 대공수색레이더와 수평선 너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짧은 거리의 수상목표를 탐지하는 대수상레이더가 있고, 다른 하나는 미사일이나 함포와 함께 사용하는 사격통제레이더를 갖추고 있는데 일본해상자위대의 호위함에도 1번 대수상레이더, 2번 대공수색레이더, 3번 사격통제레이더를 모두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격통제레이더는 탐지된 목표를 연속적으로 추적하고 포착하여 이동방향과 속도를 산출함으로써 사격에 필요한 수치를 산출하여 사격하도록 하는데 이것을 역으로 탐지할 수 있는 ESM(Electronic Support Measures)을 갖춘 해상자위대의 P-1초계기는 주파수대역만을 보고도 무슨 레이더인지를 판단할 수가 있고, 게다가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STIR을 사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주파수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동일한 주파수대역의 전파를 사용할 수도 있는 대수상레이더를 사격통제레이더라고 우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음을 우리 관계당국에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레이더가 조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조종사들은 긴급하게 교신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고, 광개통대왕함에서 조사한 레이더가 사격통제레이더라면 간단히 주파수만 공개하면 될 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옛날 일본국민들을 기만하고 전쟁을 독려했던 당시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저의 지나친 비약일까요?

일본은 항공모함을 몇 척이나 보유하고 있을까?

일본은 항공모함을 몇 척이나 보유하고 있을까?

일본 아베정권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양국의 대립이 점점 격화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고, 특히 그 중에서도 일본이 보유한 항공모함이 몇 척인지에 대해서 많이들 궁금해 하는 것 같아 이번에는 일본의 항공모함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전에 “일본자위대 항공모함 보유계획의 진실”이란 포스팅을 통해서 일본의 항공모함 개조 계획은 일본이 자체적으로 운용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F-35B를 탑재한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을 보유한 미군의 지원을 상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아사히신문에서는 당초 일본 정부가 밝힌 것과 달리 미군 지원을 전제로 항공모함화를 진행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그런데 일본의 항공모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제약을 받는 일본 해상자위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하는데 아베가 기를 쓰고 추진하려는 개헌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일본은 공격형 항공모함을 보유할 수가 없다.

즉 일본헌법 제9조의 “교전권, 정규군 보유의 금지” 조항과, 자국 내의 방어만을 수행한다는 “전수방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공격을 위한 함정을 보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명칭도 일반적인 순양함, 구축함, 호위함, 경항공모함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이 모두를 통틀어서 호위함으로 부르고 있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호위함이란 개념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보유함정에 관한 정보는 “위키피디아 일본판”을 참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항공모함화 하려는 호위함을 위주로 알아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국제적으로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항공모함은 모두 4척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일본은 항공모함이 아닌 헬기탑재 호위함(DDH: Helicopter Defense Destroyer)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즈모형 2척과 휴가형 2척이 이에 해당한다.

일본은 러시아의 군사위협이 증가하자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배수량 6,800톤의 시라네형 호위함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먼저 휴가형을 건조하는데 이때 일본 제국해군의 함대정비계획이던 88함대에서 따와 각각 8대의 헬기를 8대의 호위함에서 운용한다는 이른바 8.8체제를 도입하고 하루나형 2척과 시라네형 2척을 보유하던 것에서 휴가형 2척과 이즈모형 2척을 추가로 건조하여 모두 8대의 헬기탑재호위함을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즈모형

 

휴가형

 

시라네형

 

그러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하루나형과 시라네형 호위함은 낮은 배수량과 3대의 헬기 밖에는 탑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헬기가 동시에 이륙할 수 없다는 점 등의 문제로 휴가형과 이즈모형만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휴가형의 항공모함화는 전력의 극대화란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다.)

한편 일본은 미국 해군의 편제단위인 항공모함타격단과 유사한 개념으로 호위함대군이란 편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휴가형과 이즈모형의 호위함이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일본이 모두 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경항공모함으로 분류되는 일본의 헬기탑재 호위함(DDH: Helicopter Defense Destroyer) 중에서 휴가형은 만재배수량이 19,000톤으로 모두 11대의 헬기를 탑재할 수 있고 3대를 동시에 가동할 수 있으며, 이즈모형은 만재배수량 26,000톤으로 탑재헬기는 최대 14대, 동시운용이 가능한 대수는 5대이다.

그런데 트럼프 딸랑이 아베가 이즈모형 헬기탑재호위함을 F-35B의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개조하여 미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니 트럼프로서는 대한민국의 독도훈련과 일본과의 지소미아 파기에 관하여 일본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국제사회의 질서와 책임은 외면한 채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저들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번의 기회를 반드시 살려 진정한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룩해야만 할 것이다.

일본자위대 10식전차의 10식은 무슨 뜻일까?

일본자위대 10식전차의 10식은 무슨 뜻일까?

일본자위대의 장비를 보면 “10식 전차”, “90식 전차”, “16식 기동전투차량”과 같이 제식화된 명칭을 사용하는 것들도 있고 “고기동차량”, “경장갑기동차량”처럼 제식화되지 않은 명칭을 사용하는 장비들도 있습니다.

조금은 복잡하고 알쏭달쏭한 일본자위대의 제식제도에 대하여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일본자위대의 제식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7년 8월까지 시행되었던 “제식요강”이 적용되던 시기와 이것이 폐지되고 2007년 9월에 새롭게 도입된 “장비 등의 부대 사용에 관한 훈령”이 적용된 이후의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제식요강”이 적용되던 2007년 8월 이전에는 장비의 주요제원과 구조 및 장비의 형식통일에 필요한 사항을 방위청장관의 결정으로 제식화하여 “○○식”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식”에서 ○○은 예산이 조달된 연도를 말하는데 예를 들어 89식인 경우에는 1989년도의 예산에서 조달하여 도입한 장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989년에 예산을 조달하여 장비를 실제 배치하기까지 몇 년의 기간이 걸리더라도 제식번호는 89식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배치된 연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제식제도가 폐지되고 2007년 9월부터 “장비 등의 부대 사용에 관한 훈령”이 적용된 이후에는 장비를 명명하는 것은 “부대사용승인”이라는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부대사용승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위대가 사용하는 모든 장비를 업무차량과 같은 방어전용차량(전투용을 의미) 이외의 차량과 공병장비 및 군에서 사용하는 각종 비품 등을 “일반장비로” 구분하고 그 외에 항공기, 무기 및 탄약, 방어전용차량, 수중무기, 전파장비, 통신장비 및 시스템, 지휘통제시스템 등과 같은 국방에 필수적인 것들을 “중요장비품”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중요장비품”에 대해서는 육해공 각 막료장(우리의 참모총장에 해당)이 방위청장관에게 장비를 사용하기 위한 승인을 얻기 위한 사용신청을 하는데 신청서에는 장비의 명칭, 제원, 구조 등의 형식을 통일하는데 필요한 항목을 기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방위청장관은 신청내용을 심사하여 “부대사용승인”을 하게 되며 이것은 이전까지의 제식제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2015년 7월에 제작된 “경장갑기동차”의 이름은 2007년 9월 이후의 “부대사용승인”에 의하여 명명된 것이어서 이전의 ○○식이라는 제식번호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장갑기동차 명판

그런데 아래의 “16식 기동전투차”와 같은 명칭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전의 제식제도에 의한 것이라면 2016년 예산에서 조달하여 배치된 장비라는 것이 되지만 2007년 9월 이후에 조달된 것이어서 기존의 제식번호와는 다르기 때문에 혼란을 겪습니다.

16식 기동전투차

2007년 이후의 장비들 중에는 “12식 지대함유도탄”, “16식 기동전투차량”, “13식 낙하산” 등과 같은 이름들도 있는데 이것은 기존의 제식제도를 폐지한 후에도 그 경과조치로써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들입니다.

12식 지대함유도탄

13식 낙하산

16식 기동전투차량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2015년 10월 1일 개정 “장비 등의 부대 사용에 관한 훈령”의 부칙 제3항의 “구 훈령은 이 훈령의 시행 후에도 여전히 그 효력을 가지며, 그 제식의 폐지에 대해서는 종전의 예에 의한다.”는 규정에 따라 기존의 제식제도와 같은 명명을 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적용되는 기준은 있는데 예를 들어 1993년부터 조달된 “고기동차량”이나 2001년부터 조달된 “경장갑기동차”와 같이 장비의 부품을 특별하게 제작하여 사용하지 않고 일반적인 부품, 즉 가전제품에서 사용되는 부품들을 사용하여 비용절감을 도모할 수도 있는 특별히 제식화하여 형식의 통일을 요하지 않는 장비라고 판단되는 것들에는 “○○식 고기동차량”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까지 제식제도에 의거하여 명명한 장비에 대해서는 그 장비의 사용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기존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과규정의 적용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부대사용승인”이라는 제도가 자위대에 완전히 정착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본육상자위대가 전차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일본육상자위대가 전차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현재 일본의 육상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전차는 74식, 90식, 10식의 3가지인데 그 중 1975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74식 전차는 당시에는 “세계최고의 성능”이라고 자랑을 했지만 이미 퇴역한 미국의 M60A3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제3세대 전차라고 하는 90식 전차도 전혀 개량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고 그나마 최신형이라고 하는 10식 전차도 마찬가지다.

※ 일본자위대 10식전차의 10식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면 왜 일본은 전차의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일까? 이제부터 그 이유를 한 번 들여다보자.

먼저 그동안 자위대가 전차의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일본헌법 제9조의 “교전권, 정규군 보유의 금지” 조항과, 자국 내의 방어만을 수행한다는 “전수방위”의 원칙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법률적 규정과 원칙에 의해 자위대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는 일본의 영토 내로 국한되었는데 아베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까지 개정하여 군사활동의 영역을 해외로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위대의 활동영역이 해외로까지 확대되는 것과 전차를 개발하는 것과는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전의 양상을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미국이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는 막강한 10개의 “항공모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과 9개의 “원정타격단(Expeditionary Strike Group)”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우선 항공모함타격단의 주요 목표는 적국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이며 개전 초기에 최대한 군사적인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적국에게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공모함타격단은 적국의 영토를 실효적으로 점령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지상군이 상륙하여 영토를 점령하여야만 하는 마지막 단계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용되는 것이 해병원정대가 소속된 원정타격단인 것이며 이번에 홍콩에 입항을 거부당한 미국의 와스프함이 바로 “와스프원정타격단”의 기함인 USS와스프(LHD-1)이다.

 

이런 항공모함타격단과, 원정타격단을 구성하고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항공모함(또는 강습상륙함)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이 항모를 개발하였다고 해도 전력에서는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현대전의 개념을 이해하였으니 다시 일본 육상자위대의 전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일본의 육상자위대는 2018년 5월말 현재로 약 64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차의 1/4,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에는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다.

 

74식 전차

 

90식 전차

 

10식 전차

 

일본의 육상자위대가 이처럼 적은 숫자의 전차를 보유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못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의 원칙과 함께 이전까지의 자위대의 작전개념은 본토에 적의 지상군이 상륙하기 전에 하늘과 바다에서 섬멸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상전에 필요한 장비보다는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필요한 함정과 항공기의 증강에 더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러한 자위대의 작전개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미쓰비시 F-2” 기종을 들 수 있다. 일본이 도입하려던 F-16은 대함·대지미사일을 탑재하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일본의 작전개념으로는 적의 지상군을 공격하는 기능보다는 함정을 공격하는 능력을 극대화시킨 기종이 더욱 적합하였기 때문에 무수한 잡음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대함미사일 4기를 탑재할 수 있는 F-2를 개발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F-16을 기반으로 대함능력을 키운 까닭에 F-2의 제원은 F-16보다 크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탄소섬유를 사용하여 무게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F-2는 F-16보다 무게는 1.3톤가량 무거워지고 길이는 0.7미터, 폭은 1.3미터, 높이는 0.16미터가 크게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중국의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필수적인 항공기도 스텔스기를 개발하는 등 일본의 능력을 능가하기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미쓰비시 F-2”를 겨냥한 순항미사일과 대공미사일을 차례로 배치하게 됨에 따라 일본은 6세대 전투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 일본의 스텔스기 개발은 왜 중단되었나?

 

중국의 스텔스기 J-20

 

이처럼 일본이 독자적인 스텔스기의 개발에 나섰다는 것은 아시아지역의 군사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일본의 언론에서도 “현대 국제사회에서는 다른 나라가 일본을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며 그러한 움직임을 억제하고 일본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차를 비롯한 장비의 충실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중국의 지상군이 일본의 본토에 상륙할 것에 대비한 작전의 수립이 필요하고 이 작전에는 반드시 전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내용 중 더 격한 것을 보면 “만일 자위대가 적의 전차보다 우수한 전차의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을 침략하는 적에게 전멸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군사력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는 아직도 “미군최고”, “미국장비 최고” 일색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이미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그에 따라 중국군의 본토상륙에 대비하여 전차의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는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이제까지의 자위대의 작전능력과는 다른, 육상자위대의 화력을 증강시키는 방향으로의 선회는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다. 더욱이 2018년 현재 퇴역이 진행 중인 74식 전차의 공백을 10식 전차로 충족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런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F-2의 후계기종인 스텔스기 F-3의 개발을 중단하게 된 이면에는 비용적인 문제와 함께 육상자위대의 화력을 키우는 문제도 고려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아베로서는 미국에도 꼬리를 흔들면서 자위대의 화력도 증강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절묘한 수일 테니까.

일본의 전차(戰車) 개발사

일본의 전차(戰車) 개발사

지난 10월 2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일본에서는 미국 이외의 군대가 일본에 최초로 상륙하여 합동훈련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자위대의 발전과 조선침략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잊을래야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 그 나라는 1902년에 일본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영국이고 영국의 군대가 일본의 육상자위대와 합동훈련을 하였던 것입니다.

 

명분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었지만 일본은 이외에도 같은 날짜인 10월 2일에는 필리핀에서 있었던 두 번째 Kamandag훈련에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자위대의 수륙기동단(Amphibious Rapid Deployment Brigade) 병력과 장비를 파견하였는데 그 당시 내세웠던 명분 중의 하나는 미군의 함정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연습을 함과 동시에 수륙양용작전 수행방법을 배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내세우는 이런 명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일본자위대가 영국군과 합동훈련을 가진 것은 많은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이 전차를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영국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10월 17일, 영국이 개발한 “마크Ⅳ”전차가 일본 고베항에 도착하게 됨으로써 일본의 전차개발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크Ⅳ 전차

 

영국이 개발한 이 전차는 제1차 세계대전에 등장한 이후 각국의 전차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준 “마크Ⅰ”의 개량형인데 일본은 1917년에 영국에 “마크Ⅴ”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지만 최신형을 줄 수는 없다는 영국의 의사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마크Ⅳ”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된 “마크Ⅳ”는 영국인 장교 1명과 사병 4명의 지원병력과 함께 1918년 10월 17일 고베항에 도착하여 환적된 다음 10월 24일에 요코하마에 도착하고 거기서부터 동경까지는 영국군이 운전하여 아오야마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시연을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1915년을 기준으로 전체 차량의 대수가 897대에 불과할 정도로 차량의 제작기술은 낙후된 수준이었고, 1907년에 최초로 설립된 자동차공장도 서양의 것들을 모방하여 군용차를 생산하는 “오사카포병공창”이 유일하였는데 이런 “오사카포병공창”에 일본군은 전차의 개발을 맡기게 됩니다.

원래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완제품을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최신형 전차를 구입할 수 없거나 영국의 경우에는 자국군에 보급할 정도의 여력 밖에 없어서 부득이 계획을 변경하여 자체생산을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사카포병공창”은 1925년 6월 설계에 착수하여 1년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인 1927년 2월에 시제품을 생산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3개월 후인 1927년 6월 하순에는 후지산에서 가진 주행시험과 주행사격에서 육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만족시켰습니다.

이렇게 국산전차의 개발에 나섰던 일본이지만 태평양전쟁에서는 함정과 항공기의 생산에 중점을 기울이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서양의 전차는 급속하게 발전하여 일본의 전차는 구식이 되었으며 일본의 패전으로 전차의 개발은 중단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재군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미국에 의해 개발은 저지되고 대신에 2차 대전에서 사용하던 “M4 셔먼”과 “M24 채피”가 보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전차는 일본인의 체형에는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최신예 전차의 도입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우선순위는 유럽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국산전차의 개발에 다시 나서게 됩니다.

결국 1952년에 점령상태가 종결되면서 주둔하는 미군의 경비임무가 일본에 귀속됨에 따라 미국의 원조를 받아 전차의 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차가 바로 61식 전차였던 것입니다.

61식 전차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에는 한참 모자라는 것이었기에 일본은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74식 전차를 만들면서 세계수준을 따라잡았다고 자평했고 90식 전차는 세계수준을 일부 앞섰으며 10식 전차는 세계최고라는 자뻑에 가까운 평을 했습니다.

74식 전차

 

90식 전차

 

10식 전차

 

“일본육상자위대가 전차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언론 중에는 “만일 자위대가 적의 전차보다 우수한 전차의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을 침략하는 적에게 전멸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비롯하여 “중국의 지상군이 일본의 본토에 상륙할 것에 대비한 작전의 수립이 필요하고 이 작전에는 반드시 전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주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려던 것이 우리의 반대여론에 밀려 참가를 포기하게 되었던 최근의 일을 포함해서, 조선침략에 가장 큰 힘을 주었던 영일동맹의 당사국들이 합동으로 훈련을 하고, 일본헌법 제9조의 “교전권, 정규군 보유의 금지” 조항과, 자국 내의 방어만을 수행한다는 “전수방위”의 원칙에 따라 일본의 자위대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는 일본의 영토 내로 국한되어 있는 것을 헌법까지 개정하여 군사활동의 영역을 해외로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마음이 편치 만은 않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항공모함 및 잠수함 비교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항공모함 및 잠수함 비교

해군력을 비교할 때는 항공모함타격단을 구성하는 함정의 제원과 성능을 함께 고려하여야 할뿐만 아니라 항공기의 이륙이 전자식투석기를 사용하는지,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 고려할 요소가 많지만 여기서는 단순하게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숫자와 기본적인 제원만을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항공모함

▶ 미국

구 분
만재배수량
길이
비행갑판 폭
출격횟수
보유(건조 중)
니미츠급
95,413~102,000톤
330~333m
76.8m
120회/일
10척
제럴드R포드급
101,600톤
333m
78m
160회/일
1척(1척)
합 계
11척(1척)

중국의 항공모함에 탑재하는 항공기의 숫자는 미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니미츠 급에는 70대 제럴드R포드급에는 75대를 탑재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은 최대 30기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습니다.

▶ 중국

구 분
만재배수량
길이
전폭(全幅)
함재기
보유
랴오닝(001형)
67,500톤
305m
78m
20
1척
001A형
60,000톤
315m
72m
20~30
1척
합 계
2척

중국의 랴오닝(001형)

▶ 러시아

러시아는 “쿠즈네초프 항공모함” 1척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 잠수함

▶ 미국

미국이 최초로 실용화한 공격형 원자력잠수함의 함종 분류기호가 SSN이고 이것은 동력만 원자로를 사용하는 것이며 SSN에 핵무기를 장비한 것을 SSBN, 순항미사일 발사를 주목적으로 개조한 것을 SSGN이라고 합니다. 향후 미국은 로스앤젤레스 급 잠수함을 퇴역시키고 버지니아 급을 30척까지 늘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구 분
배수량
길이
잠항심도 (최대)
보유
SSBN
오하이오 급
18,750톤
170.67m.
300m(500m)
14척
SSGN
개량형 오하이오 급
18,750톤
170.67m
300m(500m)
4척
SSN
버지니아 급
7,800톤
114.8m
488m
14척
SSN
시울프 급
9,150톤
107.6m
610m
3척
SSN
로스앤젤레스 급
6,927~7,177톤
109.73m
450m(750m)
35척
합 계
70척

▶ 중국

○ 신형 잠수함

형 식
배수량
길 이
보 유
비고
094형(晋級)
12,000톤
137m
4척(추정)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잠수함
093형(商級)
7,000톤
107m
2척(추정)
공격형원자력 잠수함
킬로 급
약 4,000톤
70~74m
12척
공격형 통상동력 잠수함
039형(宋級)
2,300톤
75m
14척
공격형 통상동력 잠수함
041형, 039A형(元級)
2,400톤
72m
12척
공격형 통상동력 잠수함
합 계
44척

○ 구형 잠수함

형 식
취역연도
배수량
길이
보유
비고
092형(夏級)
1983년
7,000톤
120m
1척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잠수함
091형(漢級)
1974년
5,500톤
98m
3척
공격형원자력 잠수함
035형(明級)
1971년
2,100톤
76m
21척
공격형 통상동력 잠수함
합 계
25척

▶ 러시아

구 분
배수량
길이
잠항심도
보유(건조 중)
SSBN
보레이 급
24,000톤
170m
380m~450m
4척(4척)
델타 급
12,100톤
167m
9척
타이푼 급
48,000톤
175m
500m
1척
SSGN
야센 급
13,800톤
130m
1척(5척)
오스카 급
19,400톤
150m
520m~600m
7척
SSN
아쿨라급
12,700톤
110m
600m
11척
시에라 급
10,400톤
110m
600m
3척
빅터 급
7,900톤
107m
400m~600m
4척
SSK
라다 급
2,700톤
72m
300m
1척(2척)
킬로 급
3,000톤~3,950톤
70m~74m
240m~300m
20척(4척)
합 계
61척(15척)

SSK는 잠수함을 탐색/공격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잠수함으로 “잠수함 킬러”라고 불립니다.(SS는 잠수함을 뜻하고 K는 Hunter-killer를 의미합니다)

F-15, F-35등 전투기 뒤의 숫자는 무엇을 나타낼까?

F-15, F-35등 전투기 뒤의 숫자는 무엇을 나타낼까?

미국에서 운용하는 군용기의 이름을 정하는 명명방법은 육·해·공군이 각기 저마다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던 것을 1961년 국방부장관에 부임한 로버트 맥나마라가 통일시켰는데 이것을 “트라이-서비스(Tri-Service)” 또는 MDS(Mission-Design-Series)라고 부릅니다.

즉 M(임무: Mission), D(디자인: Design), S(시리즈: Series)의 순서로 이름을 정하는 것인데 전투기를 F(Fighter)라 하고 A(Attacker)는 공격기, B는 폭격기(Bomber), C는 수송기(Cargo)를 나타낸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전투기를 나타내는 F의 뒤에 붙는 번호가 참으로 다양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또한 MDS규칙에 따라 시리즈 순서대로 이름이 붙지만 중간에 없는 번호도 있고 갑자기 번호가 크게 높아지는 경우도 있어서 F-22 다음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F-35 사이에는 모델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F-4, F-15, F-22, F-35 등 전투기의 뒤에 붙는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962년에 통일된 “트라이-서비스(Tri-Service)”의 명명규칙에 따라 기존에 존재하던 전투기들의 이름을 새롭게 정하면서 F-1부터 F-11까지의 명칭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모은 방위성금으로 도입했던 “F-4D” 의 경우에는 전투기 중에서 4번째로 만들어진 것으로 뒤의 D는 네 번째 버전이라는 뜻입니다.

“F-4C”는 미공군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F-110A 스펙터”를 새로운 명명규칙에 따라 개칭한 이름인데 그 이유는 해군의 팬텀Ⅱ와 같은 기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F-4C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며 이처럼 기존의 항공기를 새로운 명칭으로 변경한 것들에는 아래와 같은 11가지의 기종들이 있습니다.

F-1 Fury: 기존 이름 FJ

F-2 BANSHEE: 기존 이름 F-2H

F-3 Demon: 기존 이름 F3H

F-4 PhantomⅡ: 기존 이름 F4H

F-5 Freedom Fighter: 최초로 명명

F-6 Skyray: 기존 이름 F4D

F-7 SEA DART: 기존 이름 XF2Y

F-8 Crusader: 기존 이름 F8U

F-9 Panther/Cougar: 기존 이름 F9F

F-10 Skyknight: 기존 이름 F3D

F-11 Tiger: 기존 이름 F11F

이상과 같이 기존의 명칭을 바꾸고 난 후 새롭게 신규모델 중에서 MDS규칙에 따라 처음으로 명명된 모델이 “YF-12 블랙버드”였는데 제일 앞에 붙은 “Y”는 프로토타입이란 것을 의미합니다.

그 뒤를 이어서 “F-14 톰캣”, “F-15 이글”, “F-16 파이팅 팰콘” “YF-17 코브라”와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만든 “F/A-18 호넷” 및 보잉사에서 만든 “F/A-18E/F 슈퍼 호넷”, “F-20 타이거샤크”, 유일한 이스라엘제인 “F-21 크피르”에 이어서 “F-22 랩터”와 “YF-23 블랙윈도우Ⅱ”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중에서 YF-12, YF-17, F-20 및 YF-23은 실용화되지 못하였으며 F-13과 F-19는 결번, F-5와 F-21은 훈련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YF-17 코브라

YF-23 블랙윈도우Ⅱ

특히 F-19는 극비리에 개발 중이었던 스텔스기로 추측되고 있는데 실제로 명명된 이름은 “F-117 나이트호크”가 되면서 기존의 명명규칙에 큰 혼선을 빚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F-117 나이트호크

이어서 나온 가장 신예기종인 “F-35 라이트닝Ⅱ”도 본래의 규칙대로라면 F-24가 되어야 하지만 원형기종인 X-35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F-35로 정하면서 F-24부터 F-34까지는 결번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F-35 라이트닝Ⅱ

마지막으로 F와 A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F/A-18 기종은 원래 YF-17을 원형으로 하여 함상전투기인 F-18과 함상공격기인 A-18을 따로 개발할 예정이었으나 1개의 기종으로 통합하면서 F/A-18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격수용 위장복, 길리 슈트(Ghillie suit)의 기원

저격수용 위장복, 길리 슈트(Ghillie suit)의 기원

저격수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자주 보게 되는 위장복인 길리 슈트(Ghillie suit)는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인지 그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길리 슈트의 영어 스펠링 길리(Ghillie)는 정확한 것이 아니고 철자 표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아두자.

다들 아는 것처럼 길리 슈트는 스코틀랜드의 사냥터 관리인들로부터 유래하였는데 길리라는 단어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사냥터나 낚시터에서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전에 포스팅한 “스코틀랜드의 낚시에 남아 있는 귀족문화 길리(GILLIE)”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본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 “스코틀랜드의 민물낚시는 공공장소에서 하는 것과 사유지에서 낚시를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특히 사유지에서 낚시를 하는 경우에는 규정이 까다롭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격하게 제한되는데 이런 곳에는 길리(GILLIE)라고 하는 일종의 가이드들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길리(Gillie)라는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저격수의 위장복을 가리키는 길리(Ghillie)의 어원이 되는 말인데 이것을 영어로 옮기면서 Gillie가 Ghillie로 잘못 표기된 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Tour Scotland

 

스코틀랜드 게일어인 길리(Gillie)라는 말은 스코틀랜드의 전설 속 요정인 길리 두(Ghillie Dhu)에서 유래된 것으로 길리 두(Ghillie Dhu)를 번역하면 “어둠 속의 젊은이” 정도가 되는데 어두운 곳에서 사는 요정이란 말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바로 이 요정이 자작나무 숲에 살면서 나뭇잎이나 이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하여 천조각이나 나뭇잎 등으로 위장하여 덧입는 것을 길리 슈트(Ghillie suit)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군사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제2차 보어전쟁에서 영국의 로바트 척후대(Lovat Scouts)가 운용했던 저격병들이 착용했던 것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2차 대전 당시의 로바트 척후대(Lovat Scouts) 저격병

전쟁터를 누빈 도넛 걸(DoughGirls)

전쟁터를 누빈 도넛 걸(DoughGirls)

해마다 6월이면 미국에서는 “도넛 데이(National Doughnut Day 또는 National Donut Day)”라고 하는 휴일이 있습니다.

빼○로데이, 삼겹살데이도 있으니 뭐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이 기념일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위한 희생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헬멧과 가스마스크, 그리고 45구경 리볼버로 무장한 여성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터를 누비며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에서부터 기원하여 도넛데이가 만들어졌구요~

그녀들은 과연 전쟁터에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녀들은 어떻게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지금부터 그녀들의 활약상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고 프랑스의 전선에 병력들이 투입되면서 구세군대장이었던 “에반젤린 부스(Evangeline Booth)”는 전선의 장병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11명의 여성대원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고생하는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포탄이 쏟아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폐허가 된 오두막의 한켠에서 프라이팬 대신에 헬멧을 이용하고 반죽을 밀기 위해 빈병을 사용하여 작은 냄비에 한 번에 7개씩의 도넛을 튀겨 첫날에만 150명의 병사들에게 도넛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만든 도넛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으니 그 다음날은 첫 날의 두 배를 만들었고 어느 정도 시설이 구축되고 나서부터는 하루에 9천 개씩의 도넛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차대전 당시에 만들어진 아래의 포스터는 실제 전쟁에 참가한 구세군 봉사자 “스텔라 영(Stella Young)”을 모델로 하여 제작한 것인데 당시 그녀는 16세의 어린 소녀였다고 합니다.

 

 

이런 도넛걸들의 희생과 봉사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구세군 시카고 지부에서는 1938년부터 “도넛 데이(National Doughnut Day 또는 National Donut Day)”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지원한 구세군 자원봉사자들의 숫자는 모두 250명이었으며 그녀들은 매일 평균 2,500개의 도넛과 800개의 팬케이크를 만들어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으며 민간인과 구별하기 위해 미국의 국립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래와 같은 제복을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들의 이런 희생이 얼마나 장병들의 사기를 높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병사가 보스턴의 지역신문에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뜨거운 도넛과 파이를 먹을 수 있다고 상상하십니까? 거기다 예쁜 소녀들이 주는 것을~ 맛은 유명 상점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 후로 도넛 걸(Dough Girls)들의 봉사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1944년 영국에 주둔하고 있던 그녀들의 활동하는 모습이 라이프지의 사진기자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거짓말은 전통인가?

일본 항공자위대의 거짓말은 전통인가?

1983년 9월 1일에는 미국을 출발하여 김포로 오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에서 수호이 15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면서 269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1987년 11월 29일에는 아직도 정부의 공식발표를 그대로 믿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는 북한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이라크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항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추락하면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편 1983년 2월 25일에는 고 이웅평 대령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면서 실제로 대한민국 전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기도 했었는데 전투기가 아닌 소련의 전폭기가 1987년 12월 9일 일본의 상공에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그야말로 일본은 난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투폴레프 Tu-16

 

1980년대는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시기로서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1984년에만 항공자위대의 전투기가 긴급발진(스크램블 발진)을 944회나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1987년 12월 9일 오전 10시 30분 경 항공자위대는 소련의 비행기 4대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넘어 오키나와로 접근하는 것을 레이더로 탐지하여 총 6기의 F-4EJ를 출동시켜 경고와 함께 돌아갈 것을 지시했는데 3대는 기수를 돌려 돌아갔지만 1대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오키나와로 향해 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키나와가 어떤 곳입니까? 미군기지와 함께 항공자위대의 나하기지가 있는 곳 아닙니까? 게다가 경고를 무시하고 비행하는 소련의 비행기는 전투기도 아닌 “투폴레프 Tu-16” 전략폭격기였으니 일본으로서는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결국 20㎜ 발칸포의 경고사격으로 소련의 “투폴레프 Tu-16”는 기수를 돌려 일본의 영공을 빠져나갔지만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오전 11시 41분 “투폴레프 Tu-16”이 다시 일본 영공을 침범하여 재차 이어진 경고사격을 받고 영공을 벗어나 북한의 평양에 착륙하면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일본의 항의로 소련은 “일본 영공을 침범했던 것은 기기고장에 의한 것이었다.”는 변명과 함께 “투폴레프 Tu-16”의 기장을 일계급 강등시키고 승무원 2명에게는 탑승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무마하려 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의 항공자위대에서는 자기들의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자랑질을 열심히 해대기 시작했으며 당시 F-4EJ를 스크램블 발진시킨 곳은 항공자위대 소속의 제302비행대로서 그동안 부대마크로 흰꼬리수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도입될 F-35A기종부터는 마크를 변경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미공군에서도 이것을 탐지하고 F-15를 이미 출동시키고 있었고 항공자위대의 전투기는 당시 일본주둔 미군사령관을 겸직하던 미 제5공군사령관의 명령을 따라야 했는데도 항공자위대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인 양 경고사격만으로 소련의 전략폭격기를 몰아낸 것은 3차 대전을 막아낸 것이라고 자랑질 해대는 것은 솔직히 보기가 조금 거시기 합니다.

하지만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비해 2016년의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전투기의 긴급발진 횟수가 1,000회를 돌파하였다는 사실은 극동지역에서의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