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헌터를 제대로 알아보자

허리케인 헌터를 제대로 알아보자

미국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 플로렌스로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4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들려오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이웃나라 일본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고 지금은 필리핀과 중국이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허리케인에 관한 보도가 나오면 허리케인 헌터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되곤 하는데 인터넷에 나오는 것을 보면 “기상 관측용 항공기로 태풍의 눈을 관통해 비행하며 그 특성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지금부터 “허리케인 헌터”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허리케인 헌터(Hurricane hunters)는 현재 미공군예비사령부(AFRC: Air Force Reserve Command) 소속의 “제53기상정찰비행대대”와 미국상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Commerce) 해양대기청(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소속의 “NOAA 허리케인 헌터”의 2개 조직이 운영되고 있으므로 허리케인 헌터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어디 소속인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허리케인 헌터의 시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3 Surprise Hurricane”이라 불리는 허리케인이 1943년 휴스턴과 텍사스 일대를 강타하자 브라이언 공군기지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영국 조종사들은 훈련기인 “노스아메리칸 T-6 텍산”을 대피시키는 것을 보고 비행기의 안전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노스아메리칸 T-6 텍산

 

이에 교육을 담당하던 조셉 덕워스(Joseph Duckworth) 중령은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내기를 하고 항법사 “랄프 오헤어(Lalph O’Hair)”를 대동하고 허리케인 속을 비행하고 안전하게 돌아오게 됩니다.

조셉 덕워스(Joseph Duckworth)중령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기상청 소속의 “윌리엄 존즈 버딕(William Jones Burdick) 중위”를 태우고 두 번째로 허리케인 속으로 비행을 마치고 안전하게 돌아온 것이 허리케인 헌터의 시작이며 1946년 “제53기상정찰비행대대”가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를 기상정찰용으로 도입하면서부터 허리케인을 정찰하는 임무를 “허리케인 헌터(Hurricane Hunters)”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그렇기 때문에 통상 허리케인 헌터라고 하면 “제53기상정찰비행대대”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며 이와는 반대로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것은 미국해양대기청(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소속의 “NOAA 허리케인 헌터”입니다.

현재 “제53기상정찰비행대대”는 록히드사의 “WC-130J”기종 10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NOAA 허리케인 헌터”는 록히드사의 “WP-3D 오리온” 기종 2대와 “Gulfstream GIV” 1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WC-130J

 

WP-3D 오리온

 

Gulfstream GIV

 

허리케인 헌터로서 태풍 속을 비행하는 조종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과연 안전한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그들은 “비행 중의 기체는 바람이 아무리 강해도 부서지지는 않고 겨울철 미국 상공의 초속 150m를 넘는 제트기류에서도 비행을 할 수는 있으나 난기류의 일종으로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가 갑자기 바뀌는 ‘윈드 시어(Wind Shear)’가 더 무섭다.”고 답합니다.

윈드 시어(Wind Shear)

 

또한 허리케인 속으로 비행하는 느낌은 “자동세차기를 통과하는 동안 차량의 지붕에 고릴라가 몇 마리 뛰어올라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인공위성이 많은 지금도 이런 비행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들의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1989년 허리케인 휴고가 왔을 때 기상위성이 관측한 바에 따라 “카테고리 3”으로 풍속이 초속 50~58미터 정도일 것으로 알고 고도를 1,500피트로 맞추었지만 실제 허리케인은 “카테고리 5”에 해당하는 초속70미터 이상의 강풍을 동반하고 있는 상태여서 기체의 중심을 잃고 비행기가 하강하는 도중에 엔진도 하나가 꺼져버려서 하마터면 큰 화를 입을 뻔했다고 합니다.

1974년 10월 12일 태풍의 눈을 비행하던 항공기(Swan 38호)와 승무원 6명이 무전이 끊기며 실종되어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 마지막 피해라고는 하지만 미국의 민간 기상업체 웨더 언더그라운드(Weather Underground)에 따르면 허리케인 헌터가 활동한 이래로 지금까지 6기의 항공기와 53명의 인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사람이 직접 비행하는 대신에 무인항공기를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낙하존데(Dropsonde)”를 투하하고 발신하는 데이터를 기록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아직은 대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낙하존데(Dropsonde)

현재 “NOAA 허리케인 헌터”가 운용하는 비행기 중에서 허리케인 속으로 비행하는 기종은 각각 “미스 피기(Miss Piggy)”와 “커밋(Kermit)”이라고 불리는 “록히드 WP-3D Orion”으로 한국해군에서 운용 중인 “대잠초계기 P-3C”와 같은 기종입니다.

P-3C 대잠초계기

“NOAA 허리케인 헌터”가 오래 된 “록히드 WP-3D Orion”을 아직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기체의 강도가 높고 내구성이 좋아 허리케인 속으로 비행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조종석의 계기판이 모두 아날로그식입니다^^

“록히드 WP-3D Orion”가 허리케인 속으로 들어가면 기상관측을 담당하는 승무원이 손에 든 “낙하존데(Dropsonde)”를 뒤의 구멍을 통해 투하하고 보내오는 데이터를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허리케인 헌터가 무엇인지 알아본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비상탈출하는 조종사를 공격하는 것은 범죄행위

비상탈출하는 조종사를 공격하는 것은 범죄행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네덜란드 수복작전인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를 보면 미군 제101공수사단의 부대원들이 낙하산으로 강하하는 도중에 독일군의 사격으로 무수히 전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전시와 평시를 불문하고 군용기에서 비상탈출하는 조종사를 공격하는 것은 제네바협약에 의해 범죄행위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1977년 6월 8일 제네바협약에 추가된 제1의정서의 내용에는

1. 조난 항공기에서 낙하산으로 하강 중인 자는 공격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2. 조난 항공기에서 낙하산으로 하강 중인 자는 적대국의 영토 내에 착륙하여 명백한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한 항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3. 공수부대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명은 귀중한 것이지만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도 항공기에서 벗어난 조종사는 전투원이 아닌 비전투원이기 때문에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이런 규정은 미군의 “지상전교범2-10”에서도 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종사는 비전투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규정과 교범이 마련되기 전인 2차 대전 당시에 이와 관련한 “찰리 브라운과 프란츠 스티글러 사건(Charlie Brown and Franz Stigler incident)”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적으로 만났던 미국과 독일의 조종사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전쟁이 끝난 후 40년 만에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고 2008년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인데 오늘을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943년 12월 20일 찰스 브라운(harles “Charlie” Brown)은 B-17폭격기를 조종하여 독일의 브레멘 인근에 있는 포케불프(Focke-Wulf) 제조공장을 폭격하러 출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일조종사 프란츠 스티글러(Franz Stigler)는 메서슈미트(Messerschmitt)Bf-109를 몰고 이를 격추시키러 출동하게 됩니다.

드디어 프란츠 스티글러(Franz Stigler)는 찰스 브라운(harles “Charlie” Brown)이 조종하는 B-17폭격기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격추하게 되면 그날 이미 2대의 B-17을 격추시킨 전과를 올리고 있던 프란츠 스티글러(Franz Stigler)는 독일의 “기사십자 철십자장(Knight’s Cross)”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프란츠 스티글러(Franz Stigler)는 B-17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브라운의 B-17이 이미 대공포의 공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었고, 탑승하고 있는 승무원들도 상태가 좋지 않음을 발견하고 그는 북아프리카에서 근무하는 동안 당시 사령관으로부터 들었던 훈시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령관 구스타브 뢰델(Gustav Rödel)은 “자네는 처음도 전투기 조종사고 마지막도 전투기 조종사다. 그런 자네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을 쏘는 것을 보게 되거나 그런 사실이 있음을 듣게 된다면 내가 자네를 쏠 것이다.”라고 그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글러는 공격을 하는 대신에 브라운에게 착륙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브라운이 거절함에 따라 스티글러는 브라운의 비행기가 무사히 중립지역인 스웨덴으로 갈 수 있도록 독일 영공에서 B-17을 호위해줍니다.

 

그러나 서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브라운은 중립지대인 스웨덴이 아닌 기지가 있는 영국의 시싱비행장(Royal Air Force station Seething)으로 비행기를 몰았고 북해의 해안에서 스티글러는 브라운에게 경례를 하고 돌아갑니다.

스티글러의 배려와 도움으로 무사히 기지로 귀환한 브라운은 전쟁이 끝나고 캐나다에 이주하여 살고 있던 스티글러를 1990년에 극적으로 다시 만나 감사를 전하고 둘은 우정을 나누다가 2008년 심장마비로 3월 22일 스티글러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그 후 11월 24일에 브라운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오른쪽이 브라운, 왼쪽이 스티글러, 가운데는 화가 보이트

러시아 MiG-35 개발의 뒷이야기

러시아 MiG-35 개발의 뒷이야기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는 미그(MiG)기와 수호이(Su)기로 나눌 수 있는데 우스갯소리로는 설계국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도 하지만 러시아의 전투기가 미그기와 수호이기로 양분되게 된 이면에는 미국의 공격을 방어하고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러시아의 전투기는 러시아 본토로 공격해오는 제공전투기가 아닌 공격기를 방어하기 위한 방공전투기인 미그(MiG)기와 적의 제공전투기와 기타의 항공기와 함대를 공격하기 위한 제공전투기인 수호이(Su)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의 전투기가 구분되어 생산되는 계기가 된 것은 미국이 개발한 “SR-71 블랙버드”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록히드사가 개발한 전략정찰기인 “SR-71 블랙버드”는 마하 3.3의 속도로 러시아를 정찰하고 그 정찰정보를 바탕으로 최초의 초음속 폭격기인 “B-58 허슬러”와의 양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던 것입니다.

SR-71 블랙버드

이처럼 미국이 새롭게 만든 공격시스템을 러시아의 기존 전투기로는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서둘러 MiG-25를 개발하게 됩니다. MiG-25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로서 최고속도는 마하 3.2를 낼 수 있었는데 미국의 초음속폭격기 “B-58 허슬러”를 요격하기 위함이 제일 우선순위가 아니라 “SR-71 블랙버드”를 레이더로 탐지한 다음 MiG-25가 추격하여 대공미사일로 파괴하는 것이 제일 우선순위였습니다.

MiG-25

이렇게 러시아가 “B-58 허슬러”의 요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SR-71 블랙버드”를 격추시킬 수도 있는 MiG-25를 개발하게 되자 미국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만 했는데 이렇게 나온 전략이 바로 공중급유를 이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B-58 허슬러

미국은 폭격기의 항속거리는 길지만 이를 호위하는 전투기는 짧기 때문에 공중급유기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영공 밖에서 급유를 한 다음 저공으로 러시아의 본토에 접근하는 작전을 수립하였는데 이는 높은 고도에서 아래를 레이더로 관측할 경우 적을 발견하는 능력, 즉 룩 다운(look down) 능력이 떨어지는 MiG-25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룩 다운(look down)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것은 1976년 MiG-25를 몰고 일본에 착륙하였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던 이른바 “빅토르 벨렌코 망명 사건”으로 인해 일본이 조기경보기 “E-767” 4대를 도입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1976년 9월 6일 러시아로부터 날아오는 항공기를 지상레이더로 탐지한 일본은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F4를 발진시키지만, 이후 지상레이더와 F4에 탑재된 레이더에서 미확인 항공기는 사라지고 일본의 항공자위대가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중에 MiG-25로 밝혀진 미확인 항공기는 홋카이도의 하고다테 상공을 선회한 다음 공항에 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기경보기 4기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767 조기경보

한편 MiG-25의 또 다른 단점으로 드러난 것은 고고도 전용의 엔진설계로 인해 저공비행에서의 연비가 아주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런 저공비행의 능력과 연비를 대폭적으로 향상시킨 MiG-31을 개발하게 되는데, 러시아가 이처럼 방공을 목적으로 하는 전투기와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기로 구분하여 개발하게 된 배경은 EU의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많이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 배경과 미국의 최신폭격기와 전투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공권과 제공권의 개념은 러시아만의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결과 현재의 작전개념으로는 수호이(Su)기 1대와 여러 대의 미그(MiG)기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강화한 전투군을 형성한 다음, 여러 대의 미그(MiG)기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합하여 수호이(Su)기가 최적의 공격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이 수립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전술에 따라 전방에 배치되는 미그(MiG)기도 전투력의 향상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개발된 것이 바로 MiG-35였던 것이며 MiG-35는 스텔스 전용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엔진의 배기가스를 혼입하지 않고 적외선 배기도 최소화하는 등 4세대 전투기에 비해서는 높은 스텔스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이미 MiG-35을 대체할 MiG-41의 개발에 나서고 있고 Su-35의 후계기인 Su-37의 보급에 나서고 있으며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Su-57을 개발하여 개량에 나서고 있고, 중국은 비록 짝퉁이라고 비난은 받지만 J-20과 J-31의 보급과 개발에 경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F-35를 도입함으로써 영공을 수호하고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은 현재 6세대 전투기의 개발에 힘을 쏟고 있고 6세대 전투기는 수출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항공전투능력이 6세대 전투기로 옮아가게 되면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의 호구로 그 역할을 크게 하고 있는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요? 시리아에서의 철군을 발표한 미국을 보면서 자국의 안보를 타국에 의존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국전쟁의 스미스부대와 죽음의 행진

한국전쟁의 스미스부대와 죽음의 행진

해마다 7월이 되면 오산시의 외삼미동에 위치한 유엔군초전기념비 경내에서는 “UN군 초전기념 및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이 열립니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UN군으로는 최초로 배치되었던 미 제24사단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 장병들이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교전을 벌이다 희생된 것을 추도하기 위해 열리는 것인데 참전용사들 중에서 생존하고 계신 분들을 초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미스 부대원 들 중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휴전과 함께 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언론은 보지를 못했고, 그들의 험난하고 견디기 어렸던 이송과정에서의 사실들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작성해봅니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8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장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부대(Task Force Smith)로 불리는 이 부대의 예하부대는 B중대와 C중대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오산전투의 결과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들 중에서 150명이 전사하고 장교 5명과 사병 26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웨인 존슨(Wayne Archer “Johnnie” Johnson)이란 사람에 의해 1996년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민간인을 포함하여 총 835명의 포로들 중에서 496명이 사망하였고 웨인 존슨은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과 출신국가 및 도시와 소속부대 그리고 사망한 날짜를 기록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웨인 존슨(Wayne Archer “Johnnie” Johnson)

 

1931년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웨인 존슨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21연대의 L중대 소속이었고 1950년 7월 11일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이런 그가 작성한 사망자들의 목록 중에는 21연대 소속의 장병들이 모두 182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스미스 부대(Task Force Smith)의 B, C중대 장병들은 각각 3명과 1명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었던 찰스 스미스(Charles Bradford Smith) 중령과 스미스 부대원들의 일부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6월 당시의 대통령이던 트루먼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예방하기도 하였으며 스미스 중령은 1966년 준장으로 전역하고 2004년 5월 23일 사망하였습니다.

가장 오른쪽이 스미스 중령

한편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던 웨인 존슨은 북한으로 끌려가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Death March)”을 하게 되는데 주로 전쟁의 와중에 포로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강행함으로써 많은 사상자를 내는 “죽음의 행진(Death March)”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에 의해 유태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지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표현이며 미국으로서는 “죽음의 바탄 행진”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죽음의 바탄 행진(Bataan Death March)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과 필리핀군 전쟁포로 7만여 명이 이동하는 도중에 구타와 굶주림을 당하고 낙오된 자들은 죽임을 당한 사건으로 사망자의 숫자가 무려 7,000~10,000명에 이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웨인 존슨도 북한으로 끌려가는 죽음의 행진을 하게 되는데 특히 이 행진은 호랑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Tiger Death March”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950년 10월 31일 북한의 만포를 출발하여 중강진을 목적지로 시작된 190km에 이르는 행군은 11월 8일 끝나게 되지만 발이 작은 미군병사들은 군화를 북한군에게 뺏기고 맨발에 행군을 해야 하기도 했었으며 먹을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더 힘들었던 것은 포로들이 호랑이라고 부르던 북한군 소좌 정명실의 잔인한 행동이었습니다.

 

북한군 소좌 정명실은 포로들이 더 이상 행군하기가 힘들어 주저앉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인솔하던 손튼 중위(Cordus Thornton)의 머리에 총을 쏴 죽이는 등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었는데 정명실의 이런 잔인함 때문에 이 행군을 특히 “Tiger Death March”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힘든 행군의 와중에도 웨인 존슨은 사망한 89명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3년 동안의 포로생활 동안 숨져간 사람들을 합하여 모두 496명의 이름과 사망일자 등을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었는데 1953년 휴전과 함께 송환되게 되자 목록이 발각되어 빼앗길 것에 대비하여 사용하던 치약의 내용물을 꺼내고 그 속에 목록을 넣어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Tiger Death March”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임인 “Tiger Survivors”란 단체에 이 목록의 존재를 알렸고 이후 전사/실종자처리국(Defense Prisoner of War / Missing Personnel Office)의 확인과 가족들의 최종확인을 거쳐 세상에 그 명단을 공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존자 Everett T. Endris

 

그러나 외국인 포로들에 대하여는 자료에 다소 오류가 있고, 치약으로 인해 목록을 읽을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전체 496명의 기록을 모두 복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특히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프랑스 국적의 신부에 대하여는 이름이 틀린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웨인 존슨(Wayne Archer “Johnnie” Johnson)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은성무공훈장을 받게 되고 오하이오 주 군사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오르게 되었으며 2011년 6월 1일 사망하고 텍사스 주에 있는 포트 샘 휴스턴 국립 묘지(Fort Sam Houston National Cemetery)에 안장되었습니다.

당시 “Tiger Death March”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은 1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으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83세의 천주교 신부였습니다.

아래에 기재된 사망자들의 명단을 보면 “VILLEMONT, Fr. Paul”이란 이름이 있는데 바로 이 분이 83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포로였습니다.

그런데 “VILLEMONT”이란 이름은 “VILLEMOT”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며 빌모(VILLEMOT)란 이름의 이 신부님은 한국명 “우일모(禹一摸)”로 활동하던 프랑스 국적의 신부님(Marie Pierre Villemot)이시며 국내의 자료에도 “1950년 7월 북한 공산군에 의하여 납북되던 중 11월 11일 옥중에서 순교하였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JOHNNY(Korean Boy)라는 이름의 한국인 사망자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명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며 아마도 미 군속으로 활동하던 사람이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머나먼 나라 한국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끌려가던 도중 죽임을 당해 어딘지 모르는 벌판과 골짜기에 봉분도 없이 버려진 그들의 넋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계속해서 치러질 “UN군 초전기념 및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 행사에는 이 분들과 그들의 죽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만든 웨인 존슨(Wayne Archer “Johnnie” Johnson) 희생을 기리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분들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

참고: “Tiger Death March” 사망자 명단(일자는 사망일)

– A –

ADAMS, Daryl Tine-이등병-사망일자 불명

ADAMS, Robert Irving-중위-1950. 11. 15

AHERN, Gerald, 영국 해군-1951. 05. 07

AKINS, Willis-이등병-사망일자 불명

ALBRECHT, John-일등병-1951. 01. 31

ALEXANDER, Jack Duane-일등병-1950. 11. 19

ALFORD, Raymond-이등병-1951. 02. 27

AMBEAU, Donald-이등병-1950. 11. 01

AMPON, Joseph Obonon-상병-1952. 01. 20

ANDERSON, Douglas-대위-1951. 08. 14

ANDERSON, Larry Joe-이등병-1950. 12. 25

ANDERSON, Omer Lee-상병-1951. 02. 05

ANGELL, Eugene Leroy-상병-1950. 09. 25

ANZALDUA, Baldomero-병장-1951. 04. 17

ATEN, Fred William-일등병-1950. 10. 24

AYO, Albert James-일등병-1951. 01. 10

– B –

BAER, Donald-일등병-1950. 12. 03

BAILEY, Charles-상병-1951. 01. 22

BAKER, Walter-일등병-1951. 01. 12

BAMFORD, Charles-중사-1951. 07. 24

BARNES, Herbert-일등병-1951. 05. 03

BARNETT, Raymond-일등병-1950. 08.

BARON, John-일등병-1951. 01. 25

BARRICK, George-중위-1950. 11. 07

BARTER, Charles Tracy-소령-1951. 05. 03

BASTIN, Sr. Therese-민간인-1950. 11. 30

BAULK, Richard-이등병-1951. 01. 11

BEAHM, Thomas-이등병-1951. 01. 16

BECKHAM, Larry-이등병-1951. 02. 24

BEECHER, Wilbert-이등병-1951. 01. 22

BENNER, Warren-일등병-1951. 01. 08

BERARDI, Thomas Henry-일등병-1951. 07. 11

BERGE, Ralph-이등병-1950. 12. 26

BERGERON, Joseph-일등병-1951. 01. 16

BERGMAN, William-중위-1951. 06. 18

BERRIER, Jackie-이등병-1951. 01. 05

BEVELS, Charles-상병-1950. 12. 24

BILYEU, Michael-이등병-1950. 09. 26

BISHOP, Arthur-이등병-1950. 11. 22

BISSELL, James-병장-1951. 06. 02

BLOCK, Robert-이등병-1950. 11. 04

BLUE, Adelbert-일등병-사망일자 불명

BOLLES, Lloyd J. Jr-이등병-1952. 04. 13

BOOKS, Arthur Howard-중위-1950. 11. 01

BOONE, James-이등병-1950. 11. 03

BOR, Felix-일등병-1950. 11. 12

BORDEAU, Alfred-일등병-1951. 04. 29

BOTSFORD, Philip-일등병-1950. 10. 29

BOWSER, Lemuel-일등병-1951. 02. 22

BOYER, Charles Edwin-상병-1951. 01. 28

BOYIDDLE, Silas-이등병-1950. 10. 27

BRADLEY, Edgar-일등병-1950. 11. 15

BRANDENBURG, Kenneth-상병-1950. 10. 30

BRINGE, Donald-일등병-1951. 03. 18

BROCKMAN, John Joseph-중위-1950. 12. 12

BROWN, Arthur Leroy-일등병-1951. 01. 19

BROWN, David-일등병-1950. 11. 13

BROWN, Joseph-상병-1951. 07.

BROWN, William E. Jr-일등병-1950. 11. 25

BUFF, Jack-상사-1950. 10. 28

BULTEAU, Fr. Joseph-민간인-1951. 01. 06

BUNTING, Worth-상병-1951. 01. 08

BURFORD, Bobby-일등병-1950. 11. 04

BURNS, Francis-상병-1950. 09. 02

BURROUGHS-병장-사망일자 불명

BUSICO, Ernest-일등병-1951. 03. 03

BUSKIRK, George-이등병-1951. 01. 28

BYERS, Charles-이등병-1950. 12. 27

BYRNES, Bishop Patrick-민간인-1950. 11. 25

– C –

CADARS, Fr. Joseph-민간인-1950. 12. 18

CALAWAY, William-일등병-1950. 10. 24

CAMMARANO, Thomas-이등병-1950. 11. 02

CANAVAN, Fr. Francis-민간인-1950. 12. 06

CARMAN, Lyle Harvey-일등병-1950. 12. 07

CARNES, Harry Zane-일등병-1950. 11. 22

CASPER, Charles-일등병-1951. 01. 09

CHARLES, Madison-상병-1950. 11. 03

CHARLES, Raymond-일등병-사망일자 불명

CHEFF, Louis-이등병-1950. 12. 28

CHERRY, Richard-일등병-사망일자 불명

CHOAT, Loyd-이등병-1950. 11. 01

CHRISTENSEN, Jerry-중사-1950. 12. 10

CHRISTIAN, Stuart-일등병-1951. 03. 21

CHRISTOPULOS, Clayton-이등병-1950. 12. 01

CLARE, Sr. Mary-민간인-1950. 11. 06

CLARK, Glenn-이등병-1950. 11. 16

CLARK, O C Jr-이등병-사망일자 불명

CLARKE, Harry Bernard-일등병-1951. 04. 27

CLOSSON, Archie-이등병-사망일자 불명

COLFORD, Wilber-이등병-1950. 10. 31

CONNICK, Karl-일등병-1951. 06. 18

CORONA, Jamie-이등병-1951. 04. 24

COSKEY, John-일등병-사망일자 불명

COUNCIL, William-일등병-1950. 11. 04

COX, Jansen Calvin-중위-1950. 12. 28

COX, Lester-상병-1950. 10. 31

COX, Robert-상병-1951. 01. 08

CROGHAN, Varnold Gene-일등병-1950. 12. 13

CUMMING, Zolton-일등병-1951. 10. 31

– D –

DAGGETT, Calvin-이등병-1950. 11. 09

DANIEL, Richard-이등병-사망일자 불명

DANOWSKI, Alex-중사-1951. 03. 17

DAVIS, George Parker-일등병-1951. 06. 15

DAVIS, Leo Clifford-일등병-1950. 11. 14

DAY, Donald-이등병-1950. 10. 30

DE CICCO, Leo-일등병-1950. 09. 02

DE LUCA, Leslie-일등병-1950. 12. 03

DE VRIESE, Sr. Mechtilde-민간인-1950. 11. 18

DEAN, Alvin Clinton-일등병-1951. 05. 18

DEMMIN, Dale Allen-일등병-1951. 01. 11

DETAMORE, Robert Gail-일등병-1950. 10. 30

DIEKMAN, Lester-상병-1950. 11. 29

DIRKSEN, Abraham Jr-상병-1951. 05. 08

DITMER, Elwood Lewis-상병-1950. 11. 02

DOBBS, J.B-일등병-1950. 11. 05

DOWLING, James Robert-이등병-1950. 10. 15

DOXIE, Paul-병장-1950. 11. 01

DOYLE, Lawrence-일등병-1950. 10. 28

DRISKELL, Herman-중위-1950. 09. 07

DU BOSE, Clyatt-일등병-1951. 05. 27

DUNCAN, Lester-일등병-1951. 04. 08

DUNHAM, Leland-소령-1951. 08. 07

DUNN, Francis-일등병-1950. 10. 27

– E –

EASTERDAY, Charles-일등병-1950. 11. 16

EATON, Edward Drew-상병-1950. 11. 25

EATON, John Omer-일등병-1951. 05. 08

EBENSPERGER, Clarence-상병-1950. 11. 02

EDGE, Edward-일등병-1950. 11. 20

EDOUARD, Sr. Beatrix-민간인-1950. 11. 03

ELTRINGHAM, Walter-민간인-1950. 11. 17

EMMOTT, Robert-상병-1950. 07. 00

ESTES, Edward Eugene-일등병-1951. 02. 07

EVANS, Joseph Kenneth-병장-1951. 01. 02

EVANS, William H. Sr-민간인-1950. 12. 12

– F –

FABBI, Ernest-이등병-1950. 12. 20

FAHRMEYER, Kermit-이등병-1950. 09. 29

FALLON, Richard Lee-이등병-1951. 02. 02

FANCHER, Harold-일등병-1951. 05. 07

FANNIN, Clyde-상병-1951. 11.

FARONE, William-상병-1950. 10. 31

FILLER, Donald-일등병-1951. 01. 08

FINE, John-일등병-1951. 01. 22

FINE, Richard Melvin-일등병-1951. 02. 09

FITZGERALD, Edward-일등병-1950. 12. 12

FLEMING, John-이등병-1951. 01. 12

FLETCHER, Robert-상병-1951. 01. 09

FLOOK, Grady Harold-상병-1950. 11. 14

FLORCZYK, Edward-이등병-1950. 10. 26

FRANKLIN, John D. Jr-일등병-1951. 06. 06

FRANTZ, George Arthur-일등병-1950. 12. 05

FRECHETTE, Charles-일등병-1950. 10. 21

FREUND, Aloysius-병장-1951. 01. 05

FREYTAG, Reuben-병장-1951. 01. 20

FULLER, Donald-이등병-1951. 01. 08

FULLERTON, Harold-일등병-1950. 10. 01

FUNA, John Francis-일등병-1951. 01. 05

FUNDERAT, Mrs-민간인-1950. 11. 03

FURLOW, Robert Daniel-일등병-1951. 05. 03

– G –

GAILEY, Robert George-상병-1951. 02. 12

GARCIA, Roger-일등병-1951. 03. 20

GARZA, Nicolas-이등병-1950. 12. 20

GEARHART, William-이등병-1951. 01. 03

GEDNEY, Robert Earl-이등병-1950. 12. 09

GENDILO, James-일등병-1950. 11. 04

GEORGE, Edward-이등병-1950. 11. 22

GEORGE, Edwin-이등병 -사망일자 불명

GIBSON, Charles-이등병-1950. 12.

GILLETTE, Robert Lee-이등병-1951. 01. 11

GIRONA, Emil-중사-1950. 09. 06

GLASS, Cecil Robert-이등병-1951. 03. 31

GOHL, Lavern-이등병-1950. 10. 21

GOMBERT, Fr. Antoine-민간인(신부)-1950. 11. 12

GOMBERT, Fr. Julien-민간인(신부)-1950. 11. 13

GONZALEZ, Joe-이등병-1950. 12. 29

GRAFF, Herman L. Jr-상병-1950. 11. 17

GRAHAM, William-상병-1951. 11. 27

GRAMBERG, Bernard M. Jr-중위-1950. 12. 10

GRESSENS, Norman-상병-1950. 09. 28

GRIFFITH, William-이등병-1950. 11. 01

GROSS, Myron-이등병-1951. 01. 14

GUIDRY, Joseph-상병-1951. 07. 03

GUSTAFSON, Harold-이등병-1950. 12. 21

– H –

HAGGARD, Billy-일등병-1951. 06. 26

HALBURT, George R. Jr-일등병-1951. 06. 01

HALE, George-민간인-1950.

HALEY, Richard-일등상사-1950. 08. 11

HALLUM, Leonard David-이등병-1951. 06. 09

HAMILTON, Merlin Jack-병장-1952. 02. 05

HAMMOND, Robert-일등병-1950. 11. 02

HANNON, Arthur Thomas-일등병-1950. 11. 23

HANSEN, Dan-이등병-1950. 12. 10

HANSINGER, Nicholas-이등병-1950. 10. 28

HARBOUR, Ronald-일등병-1950. 12. 09

HARDY, Edgar Warren-중사-1951. 05. 11

HARRINGTON, James-이등병-1950. 10. 04

HARRIS, Howard K-상병-1950. 11. 04

HARRIS, Thomas-이등병-사망일자 불명

HART, Michael J. Jr-일등병-1950. 09. 12

HARTMAN, David-이등병-1950. 07. 00

HARTMAN, Roger-중위-1951. 03. 08

HAYMAN, James-일등병-1950. 10. 28

HEATH, Richard-중사-1951. 03. 18

HEFFLEY, Edgar-이등병-1950. 11. 14

HELMES, Eugene-일등병-1950. 10. 29

HENNESS, Jimmy-이등병-1950. 12. 11

HENSLEY, Bird Jr-병장-1950. 10. 31

HENSLEY, Eldred-일등병-1950. 11. 05

HESS, Kenneth Leland-이등병-1951. 02. 07

HICKS, Chester-일등병-1950. 12. 23

HIGGS, William O. Jr-일등병-1950. 11. 02

HILL, Donald-이등병-1951. 01. 24

HILL, James-일등병-1951. 01. 14

HILL, Melvin Jalmer-이등병-1950. 11. 18

HILLEN, James-이등병-1951. 01. 14

HOAK, Charles-일등병-사망일자 불명

HOLENCIK, Joseph-일등병-1951. 03. 16

HOLLAND, William K-일등병-1951. 06. 11

HOLMAN, Albert C. Jr-일등병-1951. 06. 06

HOULIHAN, Patrick-병장-1950. 12. 23

HOWARD, Ralph-일등병-1950. 11. 20

HUDSON, William-이등병-1950. 12. 18 –

HUNT, Rev. Charles-민간인(영국인 신부)-1950. 11. 26

HUTTON, Donald-상병-1950. 11. 04

– I –

IZU, Isamu-일등병-1951. 07. 12

– J –

JESTER, William-중위-1951. 05. 26

JESTER, William-일등병-1951. 06. 16

JIMENEZ, Victor-일등병-1951. 04. 16

JOHNNY(Korean Boy)-민간인(한국인)-1950. 11. 03

JOHNSON, De Witt-일등병-1950. 12. 30

JOHNSON, Harry W. Jr-이등병-1950. 11. 22

JOHNSON, John-병장-1951. 01. 09

JONES, Arthur Macon-상병-1950. 10. 31

JONES, Dale Royce-일등병-1951. 07. 12

JONES, Thomas Dale-일등병-1951. 01. 01

– K –

KACAR, Stanley-이등병-1950. 07. 05

KAILIANU, Robert-일등병-1950. 12. 23

KEKOA, Joseph K-이등병-1950. 09. 26

KELLY, Ernest-중사-1950. 09. 06

KELLY, Robert Thomas-일등병-1951. 01. 16

KENDALL, Richard-이등병-사망일자 불명

KENDIG, John Philip-일등병-1950. 11. 20

KIJIKOFF, Ilian-민간인-1952. 12. 17

KIM, Chan JP Jr (George)-이등병-1950. 12. 14

KING, Ralph-일등병-1952. 02. 06

KINGSLEY, Willie-상사-1950. 11. 17

KISCH, Dr. Ernst-민간인-1951. 06. 29

KISER, Henry Gaines-병장-1951. 06. 25

KIVLEHAN, Allen-일등병-1950. 11. 03

KLIMSEY, Joseph W. Jr-이등병-1951. 01. 02

KNAPKE, Anthony-상병-1950. 11. 04

KOCH, Kermit K-이등병-1951. 05. 03

KOLBERG, William-일등병-1950. 12. 28

KRISTANOFF, George-중위-1951. 04. 29

– L –

LA—-Y, John-일등병-1950. 11. 14

LAESSIG, Kenneth-이등병-1950. 11. 22

LASSITER, Donald-일등병-1950. 11. 20

LAYTON, Robert Hollace-중위-1951. 04. 00

LE MATTY, Donald Gene-일등병-1950. 11. 01

LEBIEDZ, Joseph-상병-1950. 11. 03

LEE, Charles S.A-일등병-1951. 01. 06

LENZ, Robert-일등병-1950. 12. 25

LEONOFF-민간인-1950. 12. 09

LEWIS, Warren Gunn-중위-1950. 12. 06

LIEBEG, Robert-일등병-1951. 03. 01

LINGLE, Keith Le Velle-상병-1951. 01. 01

LIPES, Richard Ray-일등병-1950. 12. 23

LOGSTON, Edward-A2C-1950. 11. 04

LOOMIS, Otis Wayne-상병-1950. 12. 25

LORENZ, Robert Edward-일등병-1950. 10. 28

LOVE, Robert James-이등병-1950. 11. 14

LUKITSCH, John Joseph-일등병-1950. 10. 27Allentown, PA

LYCAN, John Smith Jr-일등병-1950. 12. 05

– M –

MAC GILL,Henry Tomlinson-중위-1950. 07. 16

MAC NAIR-RAGA, Hector-이등병-1951. 01. 16

MACHEN, William Allen-일등병-1950. 11. 04

MACOMBER, Wayne-대위-1951. 07. 19

MAGNUS, Donald-일등병-1951. 01. 04

MAHER, Frank-병장-사망일자 불명

MAHONEY, Kenneth-이등병-1950. 08. 03

MAJESKE, Arthur Jr-이등병-1951. 01. 01

MALDONADO, Victor-이등병-1950. 11. 27

MALONE, Francis P. Jr-상병-1951. 01. 29

MANN, William Cornett-일등병-1951. 03. 03

MANROSS, Thomas-일등병-1950. 11. 14

MARSH, Harold-중사-1950. 08.

MARTIN, Elwin C Jr-상병-사망일자 불명

MARTIN, John-상병-1951. 05. 02

MARTY, Albert-일등병-1950. 07. 17

MARZLITSKY, Andre-민간인-평양 부근에서 실종(일자 미상)

MATHEWSON, Ward-중사-1950. 07. 16

MATTHEWS, Richard-중사-1950. 10. 31

MATTI, Alfred-민간인(스위스)-1950. 11. 30

MAYNARD, Edward Wiley-중위-1951. 06. 20

MC CABE, Donald John-이등병-1950. 11. 04

MC CLAIN, Frederick-병장-1950. 11. 02

MC CORMICK, Billy Gene-이등병-1950. 11. 06.

MC DONNELL, John James-이등병-1950. 11. 14

MC ELROY, Joseph-상병-1950. 12. 13

MC GILL, William-이등병-1950. 12. 18

MC GRATH, Ross Robert-이등병-1950. 11. 02

MC INTYRE, James-일등병-1950. 12. 28

MC KINLEY, Ralph-이등병-1951. 05. 05

MC NARY, Walter David-이등병-1950. 11. 22

MC QUEEN, Norman-중사-1951. 01. 16

MC SHANE, Edward-일등병-1950. 12. 14

MELCHIORRE, Joseph-일등병-1951. 03. 19

MELLINGER, James-일등병-1950. 11. 02

MENTZOS, Paul Gust-병장-1951. 07. 03

MERSHON, David-이등병-1950. 11. 04

MERTH, Philip-상병-1950. 07.

MIELKE, Robert-이등병-1950. 10. 31

MILLER, Paul Luther, A1C-1950. 11. 15

MINER, Donald-이등병-사망일자 불명

MITCHELL, Rudus Jr-일등병-1950. 11. 04.

MITCHELL, William B. Jr-이등병-1950. 07. 29

MITCHELSON, Thomas-일등병-1950. 09. 24

MOMPHER, David-일등병-1950. 10. 29

MONROE, James-일등병-1950. 11. 02

MONTGOMERY, Harold-병장-1951. 01. 03

MORALES, Joseph-이등병-1950. 11. 26

MORENO, Raymond-일등병-1951. 05. 17

MORGAN, Melvin-일등병-1950. 12. 06

MOSS, William-상병-1951. 01. 18

MULOCK, Arthur-중위-사망일자 불명

MURDOCK, Jackie Lee-이등병-1950. 10. 29

MURPHY, Michael-상병-1950. 11. 14

MURPHY, Robert Mervin-일등병-1951. 05. 27

MYERS, Guy K-이등병-1950. 10. 31

– N –

NAZELROD, Earl-일등병-1951. 04. 14

NELSON, Oscar-이등병-1950. 10. 26

NELSON, Woodrow-일등병-1950. 10. 19

NICHOLS, Robert-일등병-1951. 01. 03

NIEMANN, Robert-중위-1950. 08.

– O –

O HARA, William-일등병-1950. 11. 21

OAKS, Joseph Stephen-일등병-1950. 09. 28

OLES, Peter-이등병-1950. 12. 08.

OLLERO, Luciano-일등병-1951. 05. 23

OLSON, Sigurd Carl-이등병-1951. 02. 05

OLTMAN, Charles R.L-이등병-1951. 01. 28

ONION, Vernon James-일등병-1950. 12. 25

ORCHESTRAIA, Helena-민간인-평양 부근에서 실종(일자 미상)

OSTROWSKI, Chester-일등병-1950. 11. 20

OXNER, Harvey-이등병-1950. 07. 28

– P –

PALLESEN, Robert Gene-일등병-1950. 10. 30

PARKS, Ralph Leonard-상병-1951. 03. 15

PASTUSZEK, Walter-이등병-1950. 12. 17

PEARSON, Raymond-중위-1951. 01. 24

PEETERS, Marcel-이등병-1951. 01. 21

PERRY, Fletcher-상병-1950. 09. 07

PETERSON, Donwin Ross-일등병-1951. 08. 05

PETTIS, Gilbert-일등병-1950. 10. 31

PHILLIPS. Elda Jr-일등병-1950. 10. 30

PIERCE, Frederick-일등병-1950. 11. 04

PIERCE, Leonard L. Jr-이등병-사망일자 불명

PITRE, Charles D. Jr-이등병-1950. 11. 30

PITTMAN, Irvin Wilbur-상병-1950. 11. 07

PLOTNER, Gerald-이등병-1951. 03. 06

POLKA, Francis-병장-1951. 01. 11

POSEY, Harold-이등병-1950. 11. 08

POSIVAK, Michael J. Jr-상병-1951. 01. 01

PRATT, Glen Leroy-일등병-1950. 11. 04

PROVOST, Leonard-이등병-1951. 02. 14

– R –

RABORN, Cleon-중사-1950. 12. 26

RABOYE, Ronald-이등병-1951. 01. 01

RADANOVICH, Harry-일등병-1950. 11. 20

RAILLING, Thomas Earl-상병-1951. 01. 14

RAINEY, William-상병-1950. 11.

RANDALL, Elgin Vogala-상병-1951. 07. 05

RARICK, Rolan Deane-병장-1950. 11. 01

REED, Lee Bright-일등병-1950. 11. 30

REED, Ray-이등병-1950. 11. 26

RHODES, Edward-일등병-1952. 01.

RICKENBACH, Adam-일등병-1950. 11. 04

RIVERA, Fernando Jr-이등병-1950. 11. 02

RIVRI—, Dick-일등병-1950. 11. 05

ROBINSON, George-이등병-1950. 09. 12

ROCKWELL, Clyde-일등병-1950. 11. 22

ROGERS, Raymond Jr-일등병-1950. 09.

ROMO, Angel Peter-이등병-1950. 11. 04

ROSE, Albert Eugene-일등병-1950. 12. 15

ROTH, Bernard-중위-1951. 10. 26

ROY, Floyd Alexander-병장-1951. 07. 03

RUDDELL, James C. Jr-중위-1951. 01. 21

RUFENER, John-일등병-1950. 11. 21

RUSSELL, Gordon-병장-1950. 12. 30

RUSSELL, John-중사-1950. 10. 28

– S –

SADDER, William-일등병-1950. 11. 10

SALMON, Donald-이등병-1950. 10. 22

SAMMS, Jack Clinton-일등병-1950. 11. 13

SANDERS, Gene-일등병-1950. 11. 01

SCHMOLLINGER, James-일등병-1950. 11. 02

SCHOULTHIES, George-이등병-1950. 11. 30

SCHRECENGOST, Paul-이등병-1950. 11. 04

SCHUMAN, John Henry-상병-1951. 03. 01

SCOTT, Amos-일등병-1952. 01.

SCOTT, Floyd Edward-일등병-1950. 11. 11

SCOTT, Neil Roger-이등병-1951. 01. 05

SESLER, Philip K-일등병-1950. 11. 17

SEXTON, Talmage-일등병-1950. 11. 03

SHACKELFORD, Howard-일등병-1950. 11. 02

SHARP, Raleigh-상병-1950. 12. 05.

SHORTER, James-일등병-1950. 10. 31

SIEGMUND, Earl-상병-1950. 11. 03

SIMS, Holly-이등병-1951. 02. 02

SIRMAN, Donald-중위-1951. 07. 07

SKEENS, Irvin K-이등병-1951. 03. 20

SKERO, Charles-일등병-1951. 06. 22

SKINNER, Kenneth-이등병-1951. 01. 09

SMIRNOFF-민간인-1950. 06. 01

SMITH, Billy-이등병-1950. 11. 04

SMITH, George-일등병-1950. 12. 12

SMITH, John-상사-1951. 01. 11

SMITH, Leonard J. Jr-상병-1951. 02. 03

SMITH, William-일등병-1951. 02. 20

SMITHSON, Donald-상병-1950. 11. 22

SPARKS, Donald D. Jr-상병-1950. 11. 04

SPECHT, Wilfred-상병-1950. 12. 04

SROGONCIK, George-일등병-1951. 01. 08

STALLINGS, Vernon-이등병-1950. 11. 01

STANSBURY, William H. Jr-일등병-1950. 11. 02

STEELE, Clyde-상병-1950. 12. 10

STEPHENS, Robert-일등병-1951. 01. 14

STEWART, Robert Edwin-일등병-1950. 12. 26

STOUT, Johnnie Oval-일등병-1950. 11. 14

STRAWSER, Paul-일등병-1950. 11. 22

SU해군R, William-상병-1950. 12. 12

SUMPTER, Bill-상병-1950. 11. 07

SUNSDAHL, Roy-이등병-1950. 12. 04

SWANSON, Richard-이등병-1951. 02. 12

SWEET, Richard-일등병-1950. 12. 19

SWEITZER, William-일등병-1950. 11. 11

SZCZEPANSKI, Anthony-일등병-1950. 11. 04

– T –

TATE, Hershel Leon-병장-1951. 01. 12

TAYLOR, William-이등병-1950. 11. 22

TEIXEIRA, James Cunha-중사-1950. 11. 21

THOMPSON, Ronald-일등병-1950.

THOMSON, Keith Edward, ENS-1951. 01. 03

THORNTON, Cordus-중위-1950. 11. 01

TIERNAN, John-이등병-1950. 07. 29

TITUS, Robert Eli-일등병-1950. 11. 23

TODD, Blanton-병장-1951. 02. 03

TOMASZEWSKI, Waclaw-중위-1951. 01. 02

TORHAN, George-이등병-1951. 05. 27

TOTLAND, Mical-이등병-1950. 10. 31

TREXLER, Rayfield-일등병-1950. 11. 02

TROSS, Eugene-일등병-1950. 12. 23

TUGMAN, Richard-이등병-사망일자 불명

TYLER, Charles-일등병-1951. 06. 14

– U –

UNDERHILL, Virgil-상병-1951. 08. 05

– V –

VAN DEWERKER, Patrick-일등병-1950. 11. 04

VAN WINKLE, Calvin-이등병-1951. 02. 16

VANN, Harvey Thomas, 상사-1951. 01. 06

VANNOSDALL, Gilbert-상병-1950. 11. 21

VARNER, Edmund Stanley-이등병-1951. 02. 05

VARNEY, Basil Jr-일등병-1950. 09. 25

VERCOLEN, Albert-병장-1950. 07. 20

VIARS, James-일등병-1950. 11. 27

VILLEMONT, Fr. Paul-민간인(빌모 신부:한국명 우일모)-1950. 11. 11

VINCENT, Albert-일등병-1950. 11. 04

VINCENT, William E.R-일등병-1950. 12. 20

– W –

WAGONER, James-일등병-1950. 12. 17

WALTEN, Thomas-일등병-1950. 11. 04

WANCOSKI, Frank-일등병-사망일자 불명

WARD, Delmer-일등병-1950. 11. 16

WARREN, Everett-일등병-1950. 10. 28

WARRICK, John-상병-사망일자 불명

WENDLING, Ernest-이등병-1950. 11. 04

WILLIAMSON, Claud-이등병-1950. 11. 12

WILNER, William-일등병-1951. 06. 01

WILSON, David-일등병-1950. 11. 26

WILSON, Earl-이등병-1950. 12. 12

WINTER, Gerald-일등병-1950. 11. 03

WISE, Arthur-이등병-1950. 11. 22

WOODRING, Raymond-일등병-1950. 11. 02

WRIGHT, Chester-일등병-1951. 01. 13

– Y –

YOST, Edward-일등병-1950. 11. 02

YUHASZ, Tony-일등병-1950. 11. 02

– Z –

ZAMORA, Anselmo-일등병-1951. 02. 24

ZUVER, Robert-일등병-1950. 12. 10

세계최고의 저격수들을 보유한 PPCLI

세계최고의 저격수들을 보유한 PPCLI

가장 먼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한 세계기록 Top5 중에서 3위와 4위의 기록은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작성한 것입니다.

3위를 한 캐나다의 롭 펄롱(Rob Furlong)과 4위를 한 아론 페리(Arron Perry)는 2002년 부대 동료로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작전명 아나콘다에 투입이 되었는데 그들은 McMillan Tac-50이란 대물(對物)저격총을 사용하여 각각 2,310미터와 2,430미터에서 저격에 성공하여 각각 세계 3위와 4위의 기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참고: 최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 Top5

도대체 어떤 부대이길래 2,000미터 이상의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정확히 명중시키는 저격수를, 그것도 세계적인 기록을 가진 사람을 둘씩이나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제부터 그들의 부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통칭 약자인 PPCLI라고 불리는 그들이 속한 부대의 정식명칭은 패트리샤 공주의 캐나다 경보병연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이며 기계화대대인 제1, 제2대대와 보병대대인 제3대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앨버타(Alberta) 주의 에드먼턴(Edmonton)에 본부를 두고 있는 캐나다 육군서부지역사령부(LFWA: Land Force Western Area) 소속의 The Loyal Edmonton연대가 예비대대로서의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부대의 이름에 패트리샤 공주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된 것은 해밀턴 골트(Andrew Hamilton Gault)가 1914년 자비 10만 달러를 기부하여 부대를 창설할 당시 캐나다의 총독이었던 코노트 공작(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의 딸인 패트리샤 공주(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의 이름을 따서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고 패트리샤 공주는 직접 연대의 깃발을 만들었다고 하며 죽을 때까지 명예연대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 패트리샤 공주의 아버지 코노트 공작의 공식이름은 제1대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입니다.

연대기를 점검하는 패트리샤 공주

 

세계 3위와 4위의 기록을 수립한 롭 펄롱(Rob Furlong)과 아론 페리(Arron Perry)는 이렇게 만들어진 패트리샤 공주의 캐나다 경보병연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의 제3대대 소속의 장병들입니다.

그런데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파주에서 임진각까지의 성화봉송 구간에 벽안의 외국인들이 참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데니스 무어(Dennis Moore)와 클로드 샤클랜드(Claude P.E. Charland)이었는데 아래 사진의 주인공인 데니스 무어(Dennis Moore)씨가 바로 PPCLI의 전직 부대원이었으며 클로드 샤클랜드(Claude P.E. Charland)씨는 왕립22연대 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평창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 선택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상하시는 것처럼 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노병이었기 때문입니다.

1951년 4월 23일에서 25일까지 벌어진 가평전투에서 캐나다,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의 영연방군으로 편성된 제27보병여단의 일원이었던 PPCLI는 677고지를 중공군의 격렬한 공격에도 끝까지 방어하여 중부전선에서 유엔군이 돌파되는 것을 막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사진은 한국전쟁에서 PPCLI의 저격수로 활동했던 팝 휠러와 제이크 휠러 부자(父子)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캐나다 군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얼어붙은 임진강에서 가졌던 아이스하키 경기를 재현하는 행사가 2018년 1월 19일 파주 율곡습지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이것은 “임진클래식(Imjin Hockey Classic)”이라고 명명되어 2013년 이후부터 매년 한국전쟁의 가평전투에 참전하였던 PPCLI와 왕립22연대가 친선경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한국에서 치룬 것인데 특히 이날의 행사에는 두 부대의 현역장병들이 선수로 참가하여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 중에서 세 번째로 많은 2만 6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한 캐나다군의 일원이었던 패트리샤 공주의 캐나다 경보병연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노병 데니스 무어(Dennis Moore)씨가 속했던 제2대대와 뛰어난 저격수를 보유한 제3대대는 모두 한국전쟁에 참가하기 위해서 창설되었습니다.

제2대대는 1950년 8월 15일에 창설되어 12월에 캐나다군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전쟁에 참가하였으며 1950년 11월 30일에 창설한 제3대대는 1952년 가을, 제2대대와 교체하여 전쟁에 참가 중이던 제1대대 병력과 교대함으로써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위하여 창설되었던 제3대대는 1954년 2월 8일 대대를 해체하고 병력은 제2대대 소속으로 재편이 되었고 1970년에 새롭게 제3대대가 창설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스나이퍼를 보유한 PPCLI가 한국전쟁에 참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며, 머나먼 타국에서 피 흘리며 숨져간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

시간당 유지비가 가장 높은 군용기 Top 10

시간당 유지비가 가장 높은 군용기 Top 10

말도 많고 탈도 많은 F35A의 한국인 첫 비행이 2018년 7월 20일 미국 애리조나의 루크 공군기지에서 정기윤 소령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 South Korean Air Force F-35A pilot takes first flight

정기윤 소령

 

F35의 도입을 결정할 당시 경쟁기종이었던 유로파이터의 운용유지비가 훨씬 싸다는 점과 기술이전 문제가 논쟁이 되기도 했었는데 2012년에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IHS Jane’s(제인스 인포메이션 그룹)에서는 유로파이터가 8,200~18,000달러, F35A가 21,000~31,000달러의 시간당 유지비(CPFH: Cost per Flight Hour)가 들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미 상원에서 국방예산과 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일을 하였고 지금은 비영리기구인 정부감시프로젝트(Project On Government Oversight)에서 군사부문의 책임자로 있는 윈슬로우 휠러(Winslow T. Wheeler)씨는 F35A의 시간당 유지비가 IHS Jane’s의 금액보다도 훨씬 많은 5만 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2014회계연도 F35A의 시간당 유지비(CPFH: Cost per Flight Hour)는 67,500달러로 윈슬로우 휠러(Winslow T. Wheeler)와 IHS Jane’s(제인스 인포메이션 그룹)의 추정치를 훨씬 뛰어넘었고 2015회계연도에 와서야 42,200달러로 윈슬로우 휠러(Winslow T. Wheeler)씨의 추정치를 밑돌게 되었습니다.

출처: FlightGlobal

 

그렇다고 하더라도 F35A의 시간당 유지비(CPFH: Cost per Flight Hour)는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F15K보다는 높은 수준입니다. F15K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비교는 불가하지만 2015회계연도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F15E Strike Eagle)의 시간당 유지비(CPFH: Cost per Flight Hour)가 27,203달러고 F15C와 F15D가 38,846달러라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미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항공기들의 시간당 유지비(CPFH: Cost per Flight Hour)는 얼마나 될까요? 2015회계연도를 기준으로 발표한 가장 많은 시간당 유지비가 드는 항공기 Top10을 알아보겠습니다.

▶ 10위: F-22 Raptor(58,059달러)

5세대 전투기로 평가받고 있는 기종으로 2013년에는 이란의 F-4를 요격하였고, 2014년 9월 23일의 시리아공습에서 IS의 지휘부를 공격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 9위: B-1B Lancer(61,027달러)

초음속 전략폭격기로 전략미사일은 B-52보다 더 많이 탑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 8위: CV-22 Osprey(63,792달러)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과 단거리 이착륙(STOL: short takeoff and landing)을 할 수 있으며 작전반경이 미 해병이 운용하는 CH-46 Sea Knight의 296km보다 훨씬 넓은 722km를 자랑합니다.

 

▶ 7위: F-35A LightningⅡ(67,550달러)

 

▶ 6위: B-52 Stratofortress(70,388달러)

1955년부터 운용되고 있는 기종으로 2008년 7월 21일 괌에서의 추락이 있은 다음 퇴역이 결정되었으나 차세대 폭격기사업이 지연됨에 따라 76기가 계속 운용되고 있습니다.

 

▶ 5위: E-8C Joint STARS(70,780달러)

미 육군과 공군이 공동으로 보잉 707을 개조하여 만든 조기경보통제기입니다.

 

▶ 4위: OC-135 Open Skies(99,722달러)

회원국 간에 자유로운 비무장 공중정찰비행을 허용하는 항공자유화조약(Treaty on Open Skies)의 인증을 받은 정찰기로 현재 3대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 3위: C-5 Galaxy(100,941달러)

폭스바겐 비틀 100대를 실을 수 있는 미 공군이 보유한 최대의 전략수송기입니다.

 

▶ 2위: B-2 Spirit(130,159달러)

현재는 생산이 중단된 기종으로 1997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1위: E-4 Nightwatch(159,529달러)

핵전쟁의 대응을 전제로 제작된 기종으로 미국 대통령이 에어 포스 원(VC-25)을 타고 외유하는 경우 반드시 수행하며 현재 4대가 운용 중에 있습니다.

영화 같았던 카바나투안 포로수용소 구출작전

영화 같았던 카바나투안 포로수용소 구출작전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10대 잔악행위” 중에서 1944년 12월 14일에 팔라완 섬을 수비하던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미군포로들의 대학살이 있고나서부터 미군이 일본군의 감옥과 포로수용소를 공격하는 해방작전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고 하는 것을 알아본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를 공격하여 포로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영화에서나 봄직한 방법으로 수행한 것이 있으며 이 작전은 실제로 2005년에 “그레이트 레이드(THE GREAT RAID)”란 제목으로 영화가 개봉되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카바나투안 공습(The Raid at Cabanatuan) 또는 대공습(The Great Raid)이라고도 불리는 필리핀의 카바나투안(Cabanatuan)에 있었던 포로수용소를 공격하여 포로들을 구출하는 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팔라완에서 일본군에 의해 미군들이 살해당한 사실을 보고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팔라완 포로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생존자 중의 한 명인 유진 닐슨(Eugene Nielsen)이 1945년 1월 7일 미육군정보국(US Army Intelligence)에 이 사실을 전달했고 1944년 10월 필리핀 해방을 위하여 레이테섬(Leyte)에 도착해 있던 맥아더 장군이 이 보고를 받으면서 즉시 카바나투안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수립하도록 지시함으로써 마침내 1945년 1월 30일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카바나투안(Cabanatuan) 수용소의 포로들

 

맥아더 장군의 지시를 받은 로버트 프린스(Robert W. Prince) 대령은 헨리 무치(Henry Mucci) 중령이 지휘하는 제6 레인저 대대의 C중대와 F중대를 차출하여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다음, 지원자를 모집하였는데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지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인원을 선별하여 C중대원 90명과 F중대의 병력 30명을 주력으로 80명의 필리핀 게릴라들의 도움을 받아 작전을 감행하기로 하고 2개 팀으로 구성된 14명의 선발대를 먼저 파견하여 정찰임무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14명의 선발대는 알라모 스카우트(Alamo Scouts)라고 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태평양 지역에서 활약한 미 제6군 특수정찰부대(US 6th Army Special Reconnaissance Unit)원들로서 이 부대는 1943년 11월 28일 뉴기니(Fergusson Island, New Guinea)에서 창설되어 남서태평양지역에 대한 침투와 정찰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988년에 미군 특수부대(US Special Forces)로 정식 인정을 받았습니다.

 

헨리 무치 중령과 알라모 대원들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여타의 작전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이 구출작전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였던 것은 구출자의 인원수도 한 요인이지만 일본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감행된 비행기의 저공비행이 큰 이유였습니다.

작전이 감행되는 시간은 해가 지고 나서부터 1시간 정도인데 달이 뜨게 되면 움직임이 일본군에게 노출되어 실패할 우려가 있었고 일본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짜낸 묘안이 바로 비행기를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전에 동원된 비행기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개발한 야간전투기인 P-61 블랙위도우(Black Widow)로써 레이더를 장착한 미국 최초의 전투기이여 당시 미육군항공대가 보유한 전투기 중에서는 가장 큰 기종이었습니다.

 

P-61 블랙위도우(Black Widow)

 

일부 블로그를 보면 2명의 조종사가 출격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정보이며 작전에 동원된 전투기는 1대로써 조종사는 케네스 슈라이버(Kenneth Schreiber) 대위였고 레이더병으로 보니 럭스(Bonnie Rucks) 중위가 탑승하였는데 보니 럭스를 조종사로 오인하여 2대가 출격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곡예비행이 아니라 엔진을 끄고 비행을 함으로써 일본군들의 시선을 모으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종사 케네스 슈라이버(Kenneth Schreiber) 대위는 포로수용소에서 약 45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2개의 엔진 중 1개를 끄고 고도를 낮추어 비행함으로써 추락할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였고 여러 차례의 비행 끝에 고도 61미터 지점에서 수용소로부터 9미터 떨어진 곳에 추락하여 비행기를 화염에 휩싸이게 함으로써 일본군들과 포로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으며 이 기회를 이용하여 주력부대와 필리핀 게릴라들이 통신선을 자르고 가까이 접근하여 공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성공적인 작전의 결과로써 미군 464, 영국군 22, 네덜란드군 3명 등 489명의 군인과, 미국인 28, 노르웨이인 2, 그 외 영국인, 캐나다인, 필리핀인 각 1명씩 모두 33명의 민간인을 구출함으로써 총 522명을 구조하였으며, 2명의 레인저 부대원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필리핀 게릴라 20명이 부상을 당하는 것으로 작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카바나투안 수용소는 1945년 사망한 미군포로들의 사체를 발굴하여 이장한 뒤 필리핀 정부에 의해 1990년대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현재는 당시에 사망한 미국인 수감자 2,656명을 기리는 기념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약으로 물든 베트남전쟁

마약으로 물든 베트남전쟁

버닝썬 사건으로 비롯된 마약범죄에 대한 단속의 손길에 의해 53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입건되었고, 오늘자 뉴스에 의하면 SK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최영근씨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모씨(28)도 대마를 구입한 혐의로 입건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마약을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이 사용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 되었는데 미 국방부의 1971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51%가 마리화나를 피우고 28%는 코카인과 헤로인을 복용했으며 31%는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를 복용했다고 한다.

또한 미하원의 보고서는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모두 2억2천5백만 통의 각성제를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이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긴 전쟁에서 지구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암페타민이 사용되기도 했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각종 진정제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병사들의 마약과 기분전환제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허용되고 있었기에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마리화나는 군대 내에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방임적인 미국정부의 태도를 질타하는 기사를 종군기자였던 존 스타인백 4세가 언론에 기고함으로써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75%가 마약을 복용하였다는 사실이 대중에 알려져 미국정부에서 규제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왼쪽이 존 스타인백 4세

 

여론에 떠밀린 미국정부에서는 마리화나를 소지한 병사 약 1천 명을 체포하고 마리화나 재배지를 파괴하였지만 이것은 오히려 마리화나 대신에 헤로인을 복용하는 병사들을 증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Vietnam War Soldiers Smoking Marijuana

 

미국 내에서의 반전여론이 드높던 시절, 군인들의 마약복용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사회여론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토마스 J. 도드(Thomas J. Dodd)’는 미군들의 잔악행위와 특히 ‘미라이 학살’은 불법약물의 사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참고로 ‘미라이 학살(My Lai Massacre)’은 1968년 3월 16일, 미군들이 베트남 미라이에 거주하던 민간인을 최대 504명이나 학살한 사건으로 희생자들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으며 성폭력과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희생자 중 일부는 신체가 절단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그러나 가담한 26명의 미군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윌리엄 켈리’중위만이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한편 이처럼 마약류와 기분전환제의 복용이 만연했던 베트남전쟁에서 귀국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자 미국정부에서는 1971년부터 ‘골든 플로우 작전’이란 것을 실시하게 된다.

‘골든 플로우 작전(Operation Golden Flow)’은 당시 백악관 마약국장이던 ‘제롬 자페(Jerome Jaffe)’의 지휘로 1971년 9월부터 베트남전쟁에서 귀국하는 병사들의 약물검사를 실시하여 소변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면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베트남에서 해독과정을 거친 후라야만 귀국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런 ‘골든 플로우 작전(Operation Golden Flow)’은 3달 전인 1971년 6월에 발표되었고 실시된 것은 1971년 9월부터였기에 이 작전의 결과 귀국하지 못한 병사들의 비율은 4.5%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출처: CNN(Vietnam, heroin and the lesson of disrupting any addiction)

물론 이러한 결과에 의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많은 군인들이 마약에 중독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과장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병사들의 마약류 복용을 감소시키는 데에는 일조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킬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약물들은 미군지휘부의 조사에 의해 전혀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대신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임이 판명되었다.

버닝썬과 같은 곳에서 사용된 마약류를 무슨 이유에서 복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코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게다가 그들이 사용한 마약의 용도가 불순한 범죄와 연관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기회를 사회에 만연한 마약범죄의 뿌리를 뽑는 계기로 삼아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콘돔(Condoms)

전쟁과 콘돔(Condoms)

피임이나 성병의 예방이 목적인 콘돔(condoms)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11만개나 배포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는 선수 1인당 하루 평균 2개씩 쓸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한다. 조직위원회에서 이처럼 많은 양의 콘돔을 무슨 이유 때문에 배포했는지는 순진한 나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이 어린이와 여성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여성들이 당하는 성폭행 등의 세부적인 내용을 적는 것은 피할까 한다.

베트남전쟁에서는 미군들의 임질 감염률이 낮아졌지만 한국전쟁에서는 훨씬 높았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나무위키의 자료에 의하면 “1951년 5월에 작성된 대비지 2237호 ‘유엔군 위무방식의 건’이란 문건에는 유엔 장병을 위한 댄스홀과 위안소의 설치와 운영에 대해서 정부의 직접 지시가 실려 있다. 최종 결재자는 이승만이고 이승만 자신이 지시사항이나 수정사항을 일일이 적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결재자이자 자필 서명 남긴 사람은 바로 장면이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 성병에 감염된 사례로는 십자군원정대에서 임질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매독은 샤를 8세가 이탈리아전쟁에서 승리하여 나폴리에 입성하고 나폴리의 왕으로 즉위하는 동안에 프랑스 병사들이 감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성병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를 들라면 단연코 미국을 꼽을 수가 있다. 미국은 이미 남북전쟁을 통해 북군에서만 183,000건에 달하는 매독과 임질 감염사례가 있었으나 1차 대전 초기에는 콘돔을 제공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유럽전장에서 영국과 함께 콘돔을 병사들에게 공급하지 않은(전쟁초기에만 해당) 유일한 국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미국은 참전군인들에게 콘돔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애국심과 도덕심에 호소하여 금욕으로 성병을 막으려는 정책을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성병에 걸린 병사가 가장 많은 군대라는 오명과 함께 귀국한 참전군인들로 인해 미국전역에 성병이 만연하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성병예방 포스터(1차 대전)

 

성병예방 포스터(2차 대전)

 

한편 1900년대 초반부터 콘돔을 생산하던 독일은 유럽국가들 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까지 수출을 하고 있었지만 1차 대전에 참전한 병력 중 최소한 2백만이 넘는 숫자가 성병에 걸리는 일이 발생하자 1927년에는 ‘성병퇴치법(Gesetz zur Bekämpfung der Geschlechtskrankheiten)’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에게는 1910년부터 보급되고 있었던 ‘프로 키트(Dough Boy Prophylactic Kit)’가 지급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관계 후에 성기를 소독하는 사후약방문격인 방법이어서 병사들의 성병감염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미군은 1차 대전에 참전한 이후 25%에 달하는 숫자가 성병에 감염되었다는(그들 중 일부는 기존에 성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을 알게 되자 그때서야 뒤늦게 콘돔을 지급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병사들에게 콘돔을 지급하면서도 계속해서 ‘프로 키트’도 지급한 이유는 뒤에서 적기로 한다.

 

프로 키트(Dough Boy Prophylactic Kit)

 

또한 영국도 1주일 동안에 5%에 달하는 병력이 성병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1917년부터 병사들에게 콘돔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요가 폭발적으로 발생하자 미국에서도 콘돔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탄생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줄리어스 슈미트(Julius Schmid)’였다.

‘줄리어스 슈미트(Julius Schmid)’는 뉴욕에 있는 소시지 포장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남는 동물의 창자를 이용하여 콘돔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렇게 만들어진 콘돔은 암시장을 통하여 은밀하게 거래되었다.

‘줄리어스 슈미트(Julius Schmid)’는 그 후 고무로 만든 ‘세이크(Sheik)’와 ‘람세스(Ramses)’ 등의 상표를 단 콘돔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1916년부터 ‘영스 고무회사(Youngs Rubber Corporation)’가 만들고 있었던 ‘트로이(Trojan)’란 상표의 콘돔과 함께 미국과 연합군에게 공급하게 되었다.

 

‘트로이(Trojan)’란 상표의 콘돔은 현재 미국에서 점유율 70%를 기록하는 제품인데 창업자인 ‘메를 리랜드 영스(Merle Leland Youngs)’가 1916년에 설립한 회사 ‘페이 앤드 영스(Fay and Youngs)’의 이름을 1919년에 ‘영스 고무회사(Youngs Rubber Corporation)’로 바꾸었고 ‘트로이(Trojan)’브랜드를 ‘카트-월리스(Carter-Wallace)’에 판매하였다가 2001년에는 ‘처치 앤 드와이트(Church and Dwight)’에 7억3천9백만 달러에 재매각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끝으로 아직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 가증스런 일본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직후부터 군대에 콘돔을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성병으로 인한 전투력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일본군이 보급한 콘돔은 ‘돌격일번(突擊一番)’으로 불리었으며 이와 함께 성병을 예방하기 위한 바르는 연고인 ‘성비고(星秘膏)’도 함께 지급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의 성병감염으로 엄청난 전투력의 손실을 경험했던 미국은 2차 대전에서는 병사 1인당 한 달에 6개씩의 콘돔을 지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병에 걸리는 병사들의 숫자는 크게 줄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성병에 효과적인 페니실린을 이용한 치료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군 당국에서는 콘돔의 보급만으로는 성병을 예방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성병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게 되었고 콘돔과 함께 ‘프로 키트’도 계속해서 지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를 요구한다!

피클 통(Pickle Barrel)을 명중하라.(노든 폭격조준기)

피클 통(Pickle Barrel)을 명중하라.(노든 폭격조준기)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인 칼 노든(Carl Norden)이 개발한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는 미 해군을 위해 개발에 나섰지만 채용은 미국 육군에 의해서 이뤄졌다.

 

칼 노든(Carl Norden)

 

이 과정에서 미국 해군과 육군 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미 육군은 1943년에 와서야 직접 관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생산초기에는 기밀누설을 방지하기 위하여 해군을 통해 조달했지만 수요가 많아지면서 육군은 노든社와 직거래를 통해 생산·관리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해군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가 해군의 승인하에 설계 및 제작 등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빅터라는 회사가 설립된 1943년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금액으로 아이오와급 전함의 건조비용이 1억 달러 정도였고,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 개발비가 약 19억 달러였는데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의 개발비가 이에 버금가는 15억 달러가 들었다니 미국에서 얼마나 크게 심혈을 기울였었는지를 알 수 있다.

1930년대의 15억 달러는 현재가치로 234억 달러 정도가 되는데 매매기준율을 적용한 환율로 계산해도 우리 돈으로 26조 2,852억 5,799만 3,480.50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개발비가 들어간 프로젝트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끝에 개발된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의 개발자 칼 노든(Carl Norden)은 고도 6,000m에서 폭탄을 투하하여 지상의 피클 통(Pickle Barrel)에 넣을 수 있다고 선전하였으나 피클 통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 것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40년에 조건을 갖추고 실시된 테스트에서는 고도 9,100m에서 투하한 폭탄의 원형공산오차가 4.6m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으나 실제로 운용된 폭격대의 실적에서는 고도 4,600m에서 원형공산오차는 120m 수준을 보여 축구장 정도의 범위로 산포되었다.

1945년 8월 6일 고도 9,632m의 B-29에서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를 이용하여 투하한 원폭이 히로시마 상공 570m 지점에서 폭발하였는데 목표지점에서 약 240~250m를 벗어났다고 한다.(사진의 ×표 지점)

 

여담이지만 나는 미국의 원폭투하 목표지점이 아주 절묘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애초의 목표지점은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T자 모양의 다리였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240~2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던 시마병원(島病院)의 상공에서 폭발하였다.(위 사진의 X표 지점)

그런데 이 다리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뜻을 지닌 상생교(相生橋)라고 하니 참 절묘한 목표지점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런 의미로 상생교(相生橋)라고 이름지었던 것이 아니고 두 다리가 만난다는 뜻에서 상생교(相生橋)라고 불렀는데 일본어로는 아이오이바시(あいおいばし)라고 읽는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공중폭격의 방법은 급강하폭격과 수평폭격이 있는데 이 중에서 전략 폭격 등 광범위한 지역에 대량의 폭탄을 투하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전략폭격기에 의한 수평폭격이 사용되었다.

수평폭격은 특정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폭탄을 투하하는 대규모 폭격인 융단폭격(carpet bombing)으로 운용되었으며 적의 대공포와 전투기에 의한 요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높은 고도에서의 폭격이 필수적이었다.

 

높은 고도에서의 폭격은 아군 폭격기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급강하폭격에 비해 명중률은 떨어지고 목표지점 근처에 아군이 주둔하고 있을 경우에는 오폭(誤爆)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폭탄의 투사위치, 투사각도, 고도, 풍향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는 타이밍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를 사용함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완벽하지는 않아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대한 개발비가 들어간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는 최고의 군사비밀로 분류되어 적지에 불시착한 미군 폭격기의 승무원들은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이것을 파괴할 의무가 있었으며 이를 위하여 기내에는 AN-M14 TH3 소이수류탄을 비치해두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미공군은 우수한 전과를 거둔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트로피를 수여하였는데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의 개발자인 칼 노든(Carl Norden)이 고도 6,000m에서 폭탄을 투하하여 지상의 피클 통(Pickle Barrel)에 넣을 수 있다고 선전한 것에서 착안하여 만든 것이 바로 아래의 피클 배럴 트로피(Pickle Barrel Troph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