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온천에는 악어가 산다.

일본의 온천에는 악어가 산다.

2020년에 핀란드식 사우나가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온천문화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도 일본의 온천문화를 등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악어가 살고 있는 온천이다.

일본은 자국의 온천문화를 알림에 있어 피곤한 심신을 회복시키고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평화로운 성역이었으며, 전시(戰時)에는 어린이들을 피난시키는 장소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온천에 서식하는 악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과제의 하나로 대두되었다.

일본의 제43대 겐메이천황(元明天皇)의 명으로 713년에 편찬된 풍토기(風土記)에도 나오는 것처럼 일본에는 천 년 이상 전부터 남녀노소가 함께 혼욕하는 문화가 있었으나 폐쇄된 공간에서 남녀가 함께 있음으로 인해 풍기가 문란해지자 1791년 간세이 개혁(寛政の改革)에서 남녀의 혼욕을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남탕과 여탕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개항임무를 띠고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를 에도막부에 전달했던 매슈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가 쓴 ‘일본원정기’에도 혼욕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에서 보듯이 일본의 혼욕문화는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이와 더불어 수영복을 입고 온천을 즐기는 서양인들의 눈에는 전라의 상태로 혼욕을 즐기는 일본의 문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자 일본은 우선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은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에서는 혼욕을 금지함과 아울러 어린아이들도 7세 이상은 혼욕을 금지하는 법률을 1890년에 제정하였다.

그러나 현재도 료칸과 숙박시설이 운영하는 온천 56곳에는 혼탕을 운영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일본의 혼욕문화는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혼욕에 대한 올바른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혼욕이 가능한 일본의 온천 숙박시설

 

자, 이제 오늘 얘기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의 혼욕온천에는 입욕하는 여성들을 훔쳐보는 쓰레기들이 있는데 물속에서 눈만 내놓고 여성의 신체를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악어와 같다고 해서 이들을 일컬어 악어(와니: ワニ)라고 비하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혼욕 시에는 알몸으로 탕에 들어가는 것이 전통이라 주장하는 일본인들도 있으나 알몸으로 혼욕하는 것보다는 탕에 들어갈 때 특별한 옷을 입고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전통적인 일본의 혼욕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야마나카 온천의 역사를 그린 그림책인 야마나카온센엔기에마키(山中温泉縁起絵巻)에는 남성은 유훈도시(湯ふんどし), 여성은 유모지(湯文字)를 입고 혼욕을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간혹 일본의 혼욕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보면 아래의 이미지를 함께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토요하라 쿠니치카(豊原国周)가 그린 것으로 혼욕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다.

단지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검정색 옷을 입은 남성이 여성의 때를 밀고 있는 것인데, 이런 남성을 일컬어 산스케(三助)라 불렀으며 여성은 유나(湯女)라고 불렀으나 블로그에서 다루기엔 조금 부적절한 듯하여 예서 멈추기로 한다.

아무튼 일본의 혼욕문화는 남녀가 최소한으로 몸을 가리고 온천을 즐기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문화를 부활시키고 정착시키기 위하여 나온 상품이 바로 온천할 때 입도록 만든 옷이다.

특히 여성들이 자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예전의 유모지(湯文字)를 개량하여 만든 유아미(湯あみ)가 요즘은 많이 보급되고 있으며 남성들을 위한 반바지 형태의 것도 유아미라 부르며 다른 말로는 유키(湯着)라고도 부른다.

아래의 사진은 여성의류 전문 브랜드인 와코루와 오카야마현 마니와시가 공동개발한 유아미키(湯あみ着)를 입고 온천을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이며 장소는 오카야마현을 대표하는 온천관광지인 유바라온천(湯原温泉)에 있는 스나유(砂湯)다.

미스터 션사인의 모리 타카시는 실존인물일까?

미스터 션사인의 모리 타카시는 실존인물일까?

배우 김남희씨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군 대좌 “모리 다카시”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옆에 있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를 잘하더군요~

배우 김남희씨는 오는 9월 29일 오랫동안 사귀었던 연인과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니 항상 행복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미스터 션샤인” 18회에서 “모리 다카시”는 이런 말을 매국노 이완익에게 합니다. “나는 임진년에 내 선조들이 조선에게 당했던 수치를 반복할 생각이 없어!”라구요~

그러면 “모리 다카시”의 조상 중에는 임진왜란에 참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극중에서 일본의 힘깨나 쓰는 가문이라는 모리가문은 실제 어떤 가문이고 모리다카시는 실존인물인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김은숙 작가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면 “왜 이름이 모리 다카시인거야? 실존인물이야? 그 이름을 사용한 이유가 있어?”라고 물어보면 가장 빠르고 좋겠지만 알지를 못하니 애써 추론을 해볼 수밖에요^^

그러면, 지금부터 재미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모리 다카시”의 가문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극중 “모리 다카시”는 완전한 허구의 인물이란 것입니다.

아무튼 드라마에서 모리 다카시가 말한 “나는 임진년에 내 선조들이 조선에게 당했던 수치~”라고 하는 대사에 근거하면 그의 조상들 중에 임진왜란에 참전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되는데 한국어로 모리라고 발음하는 인물 중에서 임진왜란에 참가했던 사람 중에는 일본어 모리(森)란 성을 쓰는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란 사람과 모우리라고 발음하는 모우리(毛利)란 성을 사용하는 모우리 테루모토(毛利輝元)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극중에서 열연을 보여주는 김남희씨를 보면 결코 모우리라고 읽는 일본어를 모리라고 발음하지는 않았을 테니 임진왜란에 참가했던 사람의 성은 분명히 모리(森)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 방면에서 남하하여 잔악한 살상을 저지른 왜군 중에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란 자가 있는데 아마도 극중 모리 다카시의 행동으로 보아 분명히 이 자가 다카시의 조상일 가능성이 농후해보입니다.(사실이 아님은 아시죠?^^)

모리 요시나리(森吉成)가 이끄는 일본군 4군이 원주로 침공해오자 당시 원주목사로 있던 김제갑(金悌甲)은 영원산성(鴒原山城)으로 들어가 방어하다가 성이 함락되어 부인과 아들 김시백(金時伯)과 함께 순절하게 됩니다.

이 여세를 몰아 모리 요시나리(森吉成)가 이끄는 일본군은 계속해서 남하를 하게 되고 이 때 봉화에서 의병군들과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의병들은 개전초기에는 600여 명의 병력으로 1,600여 명이나 되는 왜군을 무찌르지만 결국에는 모두 전사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사실을 두고 극중의 모리 다카시는 “선조가 당했던 치욕”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모리 요시나리(森吉成)의 잔인성이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오마이뉴스의 자료를 인용하면(원문보기) “많은 군사를 잃은 일본군은 분풀이를 하느라 류종개, 윤흠신, 윤흠도, 김인상, 권경 등 전사한 아군 장수들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머리를 하늘에 매달았다. 아직 죽지 않은 아군은 불로 몸을 지졌다.(<삼강행실사적>)’ 왜적이 물러간 뒤 김인상의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어서 자신이 지어주었던 옷으로 겨우 분별해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는 창을 잘 썼다고 하며 특히 열십자창의 명수였다고 하는데 아래의 그림은 모리 요시나리(森吉成)가 우사야마전투(宇佐山の戦)에서 부상당한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 오다 노부하라를 엎고 싸우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결국 이 전투에서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도 오다 노부하라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인 자이지만 자기 가족은 중했던 모양인지 애처가로 알려진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는 정실부인과의 사이에 6남3녀의 자식을 두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모리 란마루(森蘭丸)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모리 나리토시(森成利)인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오다 노부나가를 보필하는 시동(侍童)이며 근습(近習)이었으며 오다 노부나가의 남색의 대상이었는데 그의 동생 모리 나가우지(森長氏)의 나이 15세 때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1582년 6월 21일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모리 다카시가 말했던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로 유추되는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는 1570년 10월 9일 사망하여 지금은 기우현의 아츠지성(安土城)에 저택지가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tvN의 인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 “모리 다카시”는 임진왜란 당시 잔인함을 보여준 모리 요시나리(森吉成)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전혀 사실이 아닌

재미로 알아본 내용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의병의 날과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의병의 날과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지난 6월 1일은 2010년에 제정한 의병의 날이 9번째를 맞는 날이었다. 우리는 의병을 생각하면 일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일본에게 있어서도 6월 1일은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날이다.

외적에 항거하여 목숨을 바쳐 싸운 의병들을 기리는 날인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이 일본에서 초연(初演)된 날이란 의의가 있다.

일본의 조선침탈이 기승을 부리던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이기도 한데, 당시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일본은 중국의 칭다오를 조차지로 삼고 있던 독일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병력과 무장에 있어 압도적인 열세에 있었던 독일은 3개월이 되기도 전에 일본에 항복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4,715명의 독일군이 포로로 잡히게 된다.

당시 국제적으로는 전쟁에서 항복한 군인은 죽이지 않는다는 항군불살(降軍不殺)에 관한 제네바협약과, 포로가 되어 치욕을 겪기보다는 차라리 자결을 하는 것이 낫다는 일본의 풍조가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갑자기 수천 명에 달하는 포로가 생기게 되자 일본은 당황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기화 되는 1차 대전으로 인해 포로들을 수용함에 있어서 문제를 겪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은 독일군 포로들을 일본으로 이송하여 1914년 10월부터 일본 각지에 개설한 12개의 포로수용소에 나누어 수용을 하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로 가장 마지막에 설치된 것이 바로 오늘 얘기의 소재인 반도포로수용소(板東俘虜収容所)라는 곳이다.

1917년부터 1920년까지 2년 10개월 동안 1천여 명의 포로들을 수용했던 반도포로수용소(板東俘虜収容所)의 소장은 당시 44세였던 도요히사 마츠에(松江豊寿)란 사람이었다.

일본으로서는 도요히사 마츠에(松江豊寿)에 대한 미화를 할 수밖에 없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가 포로들을 대우한 행동은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극악한 행동에 비해서는 인도주의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수용되었던 독일군들은 대부분 지원병들로써 그들의 이전 직업은 아주 다양했고 수용소 내에서의 행동도 비교적 자유스런 편이어서 독일군 포로들은 채소를 재배함은 물론이고 빵을 만들어 일본인들에게 팔기도 하고 마을사람들과의 교류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수용소의 분위기 탓이었는지 당시 독일 해군의 군악대를 지휘하고 있었던 28세의 음악을 전공한 헤르만 한센(Hermann Hansen)은 악단을 조직하고 1918년 6월 1일에 반도포로수용소(板東俘虜収容所)에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공연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본최초의 베토벤 제9번 교향곡의 연주회였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일본은 발트의 낙원(バルトの樂園)이란 영화를 제작하여 2006년에 개봉하였는데 일본으로서는 그들을 미화하는 이 영화가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소개하는 국내의 포털에 있는 글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 발트의 낙원(バルトの樂園)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본인들이 초대되어 공연을 관람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일본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1920년 1월 10일 베르사유 조약의 발효와 함께 모든 독일군 포로들이 석방되어, 그 해 4월 1일자로 반도포로수용소(板東俘虜収容所)는 폐쇄되었고 현재는 독일마을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 교향곡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으나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들을 때면, 나라가 힘이 없을 때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一念)으로 목숨을 바쳐 싸웠던 의병들을 한 번쯤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에서는 초밥에 사용하는 밥을 사리(舎利)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초밥에 사용하는 밥을 사리(舎利)라고 부른다.

초밥의 나라, 일본에서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는 것 중에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초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것이 있다.

마트에서 구입한 초밥에서 회를 분리하여 차가운 물에 씻어두고, 밥이 있는 부분은 전자레인지에 20초 정도를 데운 다음 다시 회를 덮어 먹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슈퍼에서 사온 초밥에 들어있는 밥을, 밥통에서 막 꺼낸 것처럼 만들어준다는 것으로 밥의 온도가 차가우면 딱딱하게 느껴지고, 너무 뜨거워도 입안에서 쉽게 풀어져 버리는 것을 보완하기 위함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마트에서 초밥을 만들 때 사용하는 생선은 냉동이거나 아니면 상태가 중간 정도 되는 것들이어서 해동되면서 나오는 냄새를 찬물에 씻음으로써 악취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맛이 더 좋아진다고들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회와 밥을 분리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초밥에 사용하는 밥을 샤리(シャリ)라고 부르기 때문에 샤리(シャリ)를 분리한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샤리(シャリ)의 한자표기는 사리(舎利)라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인 사리(舎利)를 초밥에 사용하는 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밥을 뜻하는 은어인 일본어 샤리(シャリ)는 에도시대부터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기원은 작은 수정(水晶)과 같은 부처님의 사리(舍利)가 밥알과 같다고 해서 어떤 승려(僧侶)가 부르면서부터라고 한다.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은 사찰과 불상 외에도 사리탑을 만들었지만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불교경전을 넣어두거나 수정(水晶)을 대신 넣었었다고 하는데 그 수가 밥알처럼 많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샤리(シャリ)라고 하는 것은 식초를 섞은 밥인 스메시(すめし: 酢飯)와 그냥 일반적인 밥(ご飯)을 모두 가리키는데 특히 쌀로만 지은 밥은 긴샤리(銀シャリ: ぎんしゃり)라고 부른다.

은사리(銀舍利)로 부를 수 있는 일본어 긴샤리(銀シャリ: ぎんしゃり)는 전쟁 중에 식량난으로 쌀을 구하기 어려워, 보리나 잡곡을 섞어서 밥을 지는 것은 쌀만으로 지은 밥과는 윤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는 것에서 유래되어 생긴 이름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의 G7 참여를 반대한다고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긴샤리(銀シャリ: ぎんしゃり) 구경을 하지 못하던 패망하기 이전의 모습에서 일본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된다.

한 권의 책, 그리고 위스키와 생굴

한 권의 책, 그리고 위스키와 생굴

이제 가을도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이것은 술을 즐기는 내가 좋아하는 안주인 생굴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계절이 왔다는 말과도 같다.^^

생굴과 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다.

원제는 ‘만일 우리의 말이 위스키였다면’이라는 뜻을 가진 ‘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であったなら(Supposing My Words Are Whiskey)’인데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レストランで生牡蠣の皿といっしょにダブルのシングル・モルトを注文し、殻の中の牡蠣にとくとくと垂らし、そのまま口に運ぶ。うーん。いや、これがたまらなくうまい。牡蠣の潮くささと、アイラ・ウィスキーのあの個性的な、海霧のような煙っぽさが、口の中でとろりと和合するのだ。どちらが寄るでもなく、どちらが受けるでもなく、そう、まるで伝説のトリスタンとイゾルデのように。それから僕は、殻の中に残った汁とウィスキーの混じったものを、ぐいと飲む。

“레스토랑에서 생굴 한 접시와 상글 몰트를 더블로 주문해서, 껍질 속에 든 생굴에 싱글 몰트를 쪼로록 끼얹어서는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정말이지 환상적인 맛이다.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굴맛과 아일레이 위스키의 그 개성 있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톡톡한 맛이 입 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 두 가지 맛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본래의 제 맛을 지키면서도 절묘하게 화합한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그런 다음 나는 껍질 속에 남은 굴즙과 위스키가 섞인 국물을 쭈욱 마셨다.”

 

물론 이전에도 생굴에 위스키를 따라서 먹는 문화가 있기는 했지만 이 책이 발간되고부터 일본의 오이스터 바(Oyster Bar)에서는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그러나 무라카미가 소개한 이 방법은 그 원조를 거슬러가면 ‘굴에는 샤블리’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설과도 같은 굴을 먹는 방법이 있다.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북부에 위치한 와인의 산지로, 여기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즉 생굴에는 와인이 어울린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종류의 굴을 먹는가에 따라서 샤블리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무조건 정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와인과 어울리는 굴은 우리가 이맘때면 쉽게 맛볼 수 있는 굴과는 조금 다른데 우리가 먹는 굴보다는 조금 납작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름도 유러피안 플랫 오이스터(European flat oyster)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프랑스에서 나는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로 진정한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는 벨롱강 하구에서 나오는 것을 일컬으며 여기서 나는 굴은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롤레(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의 인증과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는 1970년대에 멸종되어버렸고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나는 같은 종을 이용하여 전성기의 1% 정도만이 유통되고 있는데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가 얼마나 유명한가는 구글에서 벨롱 리버(Belon River)란 검색어로 이미지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자라지 않고 생명력도 약하며 갯벌에서 키워야 하는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는 양식에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품종이라 원래부터 비쌌지만 멸종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가격이 치솟았는데 지금은 중국에서도 대량으로 수입해가는 바람에 더 크게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거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생굴이라고만 했지 어떤 품종의 굴인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가 먹었던 굴은 귀한 벨롱 오이스터가 아니라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참굴의 한 종류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그런 다음 나는 껍질 속에 남은 굴즙과 위스키가 섞인 국물을 쭈욱 마셨다. 그것을 의식처럼 여섯번 되풀이한다.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인생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それから僕は、殻の中に残った汁とウィスキーの混じったものを、ぐいと飲む。それを儀式のように、六回繰り返す。至福である。人生とはかくも単純なことで、かくも美しく輝くものなのだ。)”라고 찬미한, 위스키를 굴에 따라서 먹는 방법은 이미 아일랜드에서는 오래전부터 먹어오던 방법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위스키 사랑은 커피에 위스키를 넣어 마시는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아일랜드의 위스키를 소개한 책 한 권으로, 일본의 레스토랑에서 위스키를 굴에다 따라서 먹는 새로운 문화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참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나 굳이 위스키를 따라 마실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미 즐겨오던 소라와 멍게껍질에 따라 마시던 것처럼 소주를 따라 마셔도 굴과 환상의 조합을 이루니 말이다~^^

교토 도게츠교(도월교: 渡月橋)의 숨은 이야기들

교토 도게츠교(도월교: 渡月橋)의 숨은 이야기들

일본의 90대 가메야마 천황(亀山天皇)이 만월이 다리를 건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하여 도월교(渡月橋)라 불리게 되었다는 일본 교토의 가쓰라강 좌안과 나카노시마 공원 사이에 있는 도게츠교(渡月橋)는 서기 836년 도창(道昌)이란 스님의 공사지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창 스님의 속세에서의 성은 진(秦)씨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유즈키노키미(弓月君)를 시조로 하는 것으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으나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국내 모 교수의 칼럼에는 신라인 출신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백제계란 설이 우세하고 그밖에 신라계라거나 소수의견으로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설들도 존재하므로 신라계라고 단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한반도 출신의 후손인 도창 스님이 다리를 지었을 당시에는 이름을 호린지교(法輪寺橋)라고 불렀는데 다리의 남쪽에 위치한 호린지(법륜사: 法輪寺)를 참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쥬산마이리(十三詣り)라고 하여 음력 3월 13일에 13세가 되는 아이들이 사찰을 찾아 참배하고 지혜와 복을 구하는 행사를 치르는데 이때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도월교를 건널 때 뒤를 돌아보면 애써 받은 지혜와 복을 모두 잃어버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한편 가쓰라강(가쓰라가와: 桂川)을 따라 걷다 보면 자전거 행렬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총연장 45km에 이르는 교토부도801호(京都府道801号) 자전거도로의 기점이 아라시야마 가미카와라초(嵐山上河原町)이기 때문이다.

루돌프 사슴코의 숨겨진 이야기들

루돌프 사슴코의 숨겨진 이야기들

크리스마스가 되면 들려오는 수많은 캐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곡 중의 하나는 바로 빨간코를 가진 순록 루돌프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루돌프 사슴코”란 캐럴은 1939년, 미국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의 직원이었던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쓴 글이 바탕이 되었는데 이제부터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에서는 “루돌프 사슴코”란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지만 루돌프는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란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원제목을 소개하면 “빨간코를 가진 순록, 루돌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입니다.

1905년 7월 27일,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로버트 메이(Robert May)의 자매들 중 한 사람인 에벌린 메이(Evelyn May)는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의 공동저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Steven Levitt)의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난에 빠지게 되면서 로버트 메이(Robert May)는 뉴욕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의 사내 광고카피라이터로 저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됩니다.

로버트 메이(Robert May)

그의 아내인 에블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아 언제 결혼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사람 사이에 1934년, 혹은 1935년에 딸 바바라가 태어났고 이어서 1937년에 아내인 에블린은 암에 걸렸단 판정을 받게 되는데 아내를 위한 치료비로 박봉을 모두 사용했던 당시의 생활상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39년 초에 고객들에게 나누어줄 색칠공부를 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던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에서는 동물을 주제로 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만들 것을 지시했고 로버트 메이(Robert May)는 그 책에 들어갈 시를 짓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 바바라가 시카고의 링컨 파크 동물원에서 사슴을 좋아하던 모습을 기억한 로버트 메이(Robert May)는 덴버 길런(Denver Gillen)이란 화가에게 빨간코를 가진 순록을 그려줄 것을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빨간코를 가진 사슴 아닌 순록인 루돌프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중, 1937년 7월에 그의 아내는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회사에서는 그에게 이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아내를 떠나보낸 아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그는 더욱 작업에 열중했고 마침내 1939년 8월에 작업을 마치고 그의 딸 바바라와 할머니에게 루돌프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됩니다.

루돌프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은 1939년에 모두 240만 부가 배부될 정도로 고객들의 인기가 높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종이의 사용이 제한되면서 재발간 되지 못하다가 1946년에서야 360만부가 다시 발간되어 배부되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직원의 슬픔을 이해하고 작업을 중단해도 된다고까지 말했던 몽고메리워드의 경영진이 1946년에(1947년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로버트 메이(Robert May)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가져단 준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이기는 하나 다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아내인 에벌린과 사별한 로버트 메이(Robert May)는 1941년에 직장동료였던 버지니아 뉴턴(Virginia Newton)과 재혼하게 되는데 루돌프의 성공으로 수입이 늘었던 그는 시카고 교외의 에번스턴에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고 1946년에 시를 음반으로 제작하자는 제의를 받게 되는데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이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절하는 일이 생깁니다.(이러한 내용은 1963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직접 밝힌 사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던 몽고메리워드의 최고경영자였던 스웰 에이버리 (Sewell Avery)는 루돌프 사슴코에 대한 모든 권리를 로버트 메이(Robert May)에게 양도하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기적과도 같은 선물을 안겨다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모든 권리를 보유하게 되었던 루돌프 사슴코의 이야기는 1949년에 누나의 남편, 그러니까 매부였던 조니 마크스(John Marks)에 의해서 노래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국내에 번안된 노래에는 원곡의 앞부분이 빠져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조니 마크스(John Marks)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밝힌 것과 같이 “빨간코를 가진 순록, 루돌프(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는 어린 시정 왕따를 당한 개인적인 겸험을 바탕으로, 1823년에 발표되었던 “산타클로스가 오셨다(A Visit from St. Nicholas)”는 고전시의 운율과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고전시의 본문 중에는 산타의 썰매를 끄는 8마리의 순록 이름이 등장하고 루돌프 사슴코란 노래의 원곡에도 앞부분에 아래와 같이 8마리의 순록의 이름이 나오지만 국내의 번안곡에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대셔(Dasher)와 댄서(Dancer), 프랜서(Prancer), 빅센(Vixen), 코멧(Comet), 큐피드(Cupid)와 도너(Donner) 그리고 블리첸(Blitzen)을 알지? 하지만 기억하니? 가장 유명한 순록이 무엇인지(You know Dasher and Dancer and Prancer and Vixen Comet and Cupid and Donner and Blitzen. But do you recall The most famous reindeer of all?) 하는 가사로 “루돌프 사슴코”란 노래는 시작합니다.

그런데 1949년 이 노래가 해리 브래넌(Harry Brannon)에 의해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불려진 이후, 조니 마크스(John Marks)는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당대의 유명가수였던 빙 크로스비(Bing Crosby)와 디나 쇼어(Dinah Shore)를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진 오트리(Gene Autry)에 의해서 음반이 취입되게 되었는데 진 오트리(Gene Autry) 역시도 순순히 제작에 응했던 것은 아니었고 거절을 하였으나 그의 아내의 설득으로 음반의 B면에 수록하여 발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A면도 아닌 B면에 실렸던 이 노래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고 말았으니 아내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먹을 것이 생긴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것 같습니다^^ 1949년에 발매된 음반은 모두 1,500만 장이나 판매가 되었고 차트의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루돌프 사슴코란 캐럴의 바탕이 된 이야기를 만들었던 로버트 메이(Robert May)는 1976년 8월 10일에 사망하였고 그가 생전에 세웠던 루돌프의 동상은 그의 모교인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福島)산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

후쿠시마( 福島)산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

이 글은 2019년 4월 24일에 티스토리에 처음으로 게재하였던 것을 이번 윤대통령의 방일외교로 인해 다시금 불거진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이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기에 재업하는 것으로 작성 당시 후쿠시마산 식품의 수입금지를 해제한 나라는 31개국이었으나 2022년 8월 1일 현재로는 모두 43개국이 후쿠시마산 식품의 수입금지를 철회하였다.

이하의 내용은 2019년 당시에 작성한 것이다.

WTO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금지 관련 제소에서 우리나라의 처분이 타당하다는 최종판정을 했으나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계속해서 우리정부에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유독 한국을 상대로 이런 뻔뻔한 요구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금지제도를 실시하는 나라여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로부터 농수산물을 비롯한 각종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던 나라들의 규제가 현재는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고 31개국에서는 수입금지를 완전히 해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완전히 해제하였다는 것은 무조건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며 통상적인 검사과정은 거쳐야만 하기 때문에 일본정부에서 홍보를 위해 사용하는 표현인 철폐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를 완전 해제한 31개국(2019년 기준)
기니, 네팔, 뉴질랜드, 뉴칼레도니아, 말레이시아, 멕시코, 미얀마, 바레인, 베트남, 볼리비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세르비아,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오만, 우크라이나, 이라크, 이란, 모리셔스, 인도, 칠레, 카타르, 캐나다, 콜롬비아, 쿠웨이트, 태국, 터키, 파키스탄, 페루, 호주

※2022년 8월 1일 기준 후쿠시마산 식품의 수입규제를 철폐한 43개 국가(가나다 순)

기니, 네팔, 뉴질랜드, 뉴칼레도니아, 레바논, 말레이시아, 멕시코, 모로코, 모리셔스, 미국, 미얀마, 바레인, 베트남, 볼리비아, 브라질,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세르비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영국(북아일랜드 제외), 오만, 우크라이나,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이집트, 인도, 인도네시아, 칠레, 카타르, 캐나다, 콜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쿠웨이트, 태국, 튀르키에, 파키스탄, 페루, 필리핀, 호주

수입금지조치를 해제한 31개국 외에 EU 전체를 포함한 15개국에서는 증명서 등의 첨부로 수입을 할 수 있는 다소 완화된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가장 강력하게 수입을 금지하는 국가로는 중국, 대만, 마카오가 있으며 이들 세 나라에 비해서 가공식품 등의 수입에 대해서는 허용을 하는 비교적 금지조치가 상대적으로 덜한 나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싱가폴, 러시아 등 3개국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국가로 미국과 필리핀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들 두 나라는 일본정부가 출하의 제한을 해제하면 동시에 수입금지를 해제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수입금지국가로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금지를 가장 강력하게 실시하는 중국과 마카오는 가공식품의 수입까지도 차단하고 있는데 특히 대만의 경우에는 2018년 11월 24일 후쿠시마를 비롯한 5개 현으로부터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을 계속 실시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바가 있었다.

전체 유권자의 54.56%가 투표에 참가하여 찬성 779만 표(약 78%)로 반대 223만 표를 누르고 “찬성표가 전체 유권자의 25%가 넘으면 성립된다.”는 법률에 따라 계속해서 수입금지를 실시하기로 되었다.

중국이야 일본으로선 함부로 하지 못해 눈치를 보는 형편이고, 대만은 아예 국민투표로 정했으니 난감한데다, 러시아와는 영토갈등으로 인한 외교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유화적인 태도를 지속해야 하니 일본으로서는 가장 만만한(?) 한국을 대상으로 WTO에 제소를 한 것일 게다.

게다가 국내의 일부에서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으나 그 점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논외로 하자. 그리고 싱가폴과 마카오가 단지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만 금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후쿠시마를 비롯하여 이바라키(茨城), 도치기(栃木), 군마(群馬), 지바(千葉), 미야기(宮城), 이와테(岩手), 아오모리(青森) 등 8개 현의 수산물을 수입금지하고 있어서 대외적인 파급력이 클 것이란 점도 일본은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일까?

중국은 10개(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지바, 사이타마, 미야기, 니가타, 나가노, 도쿄) 지역에서 나는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도 말을 할 자신이 없고, 러시아는 7개(후쿠시마, 이바라키, 지바, 미야기, 니가타, 야마가타, 이와테), 대만은 5개(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지바) 현에 대해서만 수입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니 8개 현으로부터 수입을 금지하는 대한민국을 제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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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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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
아오모리
효고
에히메
홋카이도
아이치
미에
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마카오
중국
러시아
대만
싱가폴
대한민국

수입금지
일본이 출하를 제한하는 품목만 금지
방사성물질검사증명서
산지에서 증명하는 자료제출로 허가
수입국 검사강화(전수 또는 견본검사)
수입국의 통상적인 수입절차에 따름

일본이 이처럼 한국을 상대로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금지조치를 철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면에는 과연 저들이 믿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는 처음으로 2018년 2월 28일에 광어를 태국에 수출한 사실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수출되었던 광어는 태국 현지에서 초밥전문점이나 일식요리점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마츠카와항을 방문 시찰하고 결정한 것인데, 일본이 믿는 것이 바로 2018년 현재로 전 세계에 진출해 있는 451개의 일본계 백화점과 11만7천여 개소에 달하는 일식당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일본식(日本食) 음식점 숫자

지역
2013년(추산)
2015년(추산)
2017년(추산)
2015년도 대비
아시아
27,000개
45,300개
69,300개
52.9% 증가
중동
250개
600개
950개
58.3% 증가
오세아니아
700개
1,850개
2,400개
29.7% 증가
러시아
1,200개
1,850개
2,400개
29.7% 증가
유럽
5,500개
10,550개
12,200개
15.6% 증가
아프리카
300개
300개
350개
16.6% 증가
북미
17,000개
25,100개
25,300개
중남미
2,900개
3,100개
4,600개
48.3% 증가

국내에서도 몇 년 전에 일본계 외식업체의 원산지표기가 문제되었던 적이 있는데 차제에 일본산 수산물은 후쿠시마를 비롯한 현(縣: 県) 단위까지 표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용자 정치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발의는 해도 통과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용자는 어디 없을까?

※ 수산물을 제외한 일본산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하여는 “각국의 일본산 식품 수입금지 실태”를 참고하십시오.

각국의 일본산 식품 수입금지 실태

각국의 일본산 식품 수입금지 실태

이 글은 2019년 4월 24일에 티스토리에 처음으로 게재하였던 것을 이번 한일정상회담으로 인해 다시금 불거진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이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기에 재업하는 것으로 작성 당시와는 달리 현재는 43개국이 후쿠시마산 식품의 수입금지를 철회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의 5개국은 후쿠시마산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중국, 홍콩, 마카오가 가장 광범위한 규제를 실시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와 대만은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수입규제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산 식품의 수입규제를 철폐한 43개 국가(가나다 순)

기니, 네팔, 뉴질랜드, 뉴칼레도니아, 레바논, 말레이시아, 멕시코, 모로코, 모리셔스, 미국, 미얀마, 바레인, 베트남, 볼리비아, 브라질,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세르비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영국(북아일랜드 제외), 오만, 우크라이나,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이집트, 인도, 인도네시아, 칠레, 카타르, 캐나다, 콜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쿠웨이트, 태국, 튀르키에, 파키스탄, 페루, 필리핀, 호주

이하의 내용은 2019년 당시에 작성한 것이다.

WTO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계속해서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금지 철회를 우리나라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 비해 훨씬 강력한 수입금지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공세를 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항간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이 진짜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든다.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각국의 수입금지 실태는 후쿠시마( 福島)산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알아보았는데 과연 전체 일본산 식품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를 알아보면 일본의 요구가 이상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일본산 식품의 수입금지정책을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지 우리나라와 한 번 비교해보도록 하자.

아래의 범례를 보면 빨간색의 수입금지를 제외하고 그 밑의 주황색은 일본이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출하에 제한을 두지 않는 품목은 수입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의 수입금지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수입금지를 하는 나라들로만 살펴보기로 한다.

■ 범례

수입금지
일본이 출하를 제한하는 품목만 금지
방사성물질검사증명서
산지에서 증명하는 자료제출로 허가
수입국 검사강화(전수 또는 견본검사)
수입국의 통상적인 수입절차에 따름

■ 쌀

중국은 일본의 10개 현에서 생산되는 쌀에 대하여 전면적인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고 대만은 5개 현으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거의 허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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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지바
사이타마
미야기
니가타
나가노
도쿄
야마가타
야마나시
가나가와
시즈오카
이와테
아키타
아오모리
효고
에히메
홋카이도
아이치
미에
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중국
대만
대한민국

■ 과일과 채소

우리나라는 이바라키, 도치가, 군마, 지바현에서 생산되는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후쿠시마 산 쌀은 일본정부가 출하를 제한하지 않는 경우와 방사성물질에 대한 검사를 득한 증명서와 산지의 증명이 있으면 모두 허용하고 있어서 전면 수입해제와 같은 실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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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모리
효고
에히메
홋카이도
아이치
미에
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마카오
중국
홍콩
대만
대한민국

■ 차(茶) 류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차(茶) 류에 대해서는 전면 수입금지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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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
에히메
홋카이도
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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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중국
대만
대한민국

■ 약용식물

일본산 약용식물(藥用植物)의 수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거의 허용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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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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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중국
대만
대한민국

■ 우유 및 유제품

이들 제품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이바라키현에서 생산되는 것 중의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그 외의 나머지 제품은 방사성물질에 대한 증명서만 있으면 수입을 허가하고 있다.

한편 국민의 관심이 높은 후쿠시마산에 대해서는 일본정부가 출하를 제한하지 않거나 방사성물질 증명서가 있으면 허용하고 있어서 일반의 생각과는 많은 괴리감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들 품목의 수입이 많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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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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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기타
마카오
중국
홍콩
대만
대한민국

 

■ 소고기, 돼지고기 및 가금육(家禽肉)

중국과 마카오를 비롯한 대만과는 달리 한국은 이들 품목에 대하여 완화된 정책을 실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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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
에히메
홋카이도
아이치
미에
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마카오
중국
대만
대한민국

 ■ 가공식품

중국과 대만의 경우 ▲로 표시된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일부는 방사성물질검사에 대한 증명서를 요구하고 나머지 품목은 산지의 증명으로 수입을 허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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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아이치
미에
구마모토
가고시마
기타
중국
대만
대한민국

 

 

상기의 표들은 일본의 농림수산성의 식료산업국수출촉진과에서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일본의 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중국이나 대만 등에 비해서 훨씬 완화된 정책을 실시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에만 강력히 요구하는 일본의 저의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수산물을 제외한 다른 품목들에 대하여 우리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정책이 중국이나 대만 등에 비해서 가벼운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만든 정책인지 누구 시원하게 답해줄 사람은 없을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알고 싶다~

중국이 자랑하는 스나이퍼 장다오팡과 저격능선전투

중국이 자랑하는 스나이퍼 장다오팡과 저격능선전투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사이에 발발하여 미국으로서는 승리도 패배도 하지 못한, 국지전 정도로 생각되었던 한국전쟁은 미국이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논의하면서 그 이전의 전쟁에 대하여 소급해서 적용하지 않았던 까닭에 미국의 언론에서 처음으로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부터 6·25전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며 잊을 수도 없는 비극입니다.

세계의 저격병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 하면서 세계 10위 안에 랭크된 스나이퍼 에 포함되어 있는 중국이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까 고민하다가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오늘은 중국이 자랑하는 스나이퍼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에 대하여 알아볼까 합니다.

먼저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을 알아보기에 앞서 한국전쟁에서 치러졌던 “저격능선 전투”를 살펴보는 것이 좋으며 다음으로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이 32일 동안 214명의 유엔군을 사살하였다는 정보에 대한 오류를 정확히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이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214명의 유엔군의 목숨을 앗은 것은 그들에게는 영웅적인 일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32일 동안에 거둔 전과가 아니고 3개월 26일간 32회의 작전에서 거둔 전과라고 표현해야 맞습니다.

저격능선은 철의 삼각지대에 있는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에서 김화 지역을 향해 뻗어 있는 능선을 말하는데 6·25전쟁 당시 국군 제2사단과 중공군 제15군이 6주간이나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중공군의 저격병들에 의해서 미군 제25사단이 상당한 피해를 입으면서 미군들이 이 능선을 “저격능선(Sniper Ridge)”이라고 불렀고 그럼에 따라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저격능선전투(Battle of Sniper ridge)”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1961년작 영화 저격능선(sniper’s ridge)의 포스터

1961년작 영화 저격능선(sniper’s ridge)의 한 장면

 

그런데 중국은 저격능선전투와 삼각고지전투를 합해서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라고 부르며 이곳을 끝까지 방어함으로써 북한을 지킬 수 있었다고 자평하면서 1956년에는 이것을 “상감령(上甘嶺)”이라는 영화로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 참고: 주간조선-김정은이 오성산 찾은 것은 ‘상감령전역’ 추억 때문?

북한과 중국은 ‘상감령전역’을 6·25전쟁 중 가장 주요한 전투로 꼽는 데 거리낌이 없다. 중국에서 쓰는 ‘전역(戰役)’이란 말은 ‘전투(戰鬪)’보다 크고 ‘전쟁(戰爭)’보다는 작은 개념이다. 대개 전쟁의 국면을 뒤엎는 ‘결정적 한판’을 일컫는데, 한국과 미국이 6·25의 가장 ‘결정적 한판’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꼽는 것과 비슷하다.

 

중국이 이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을 얼마나 신성시 하는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에 영화 “상감령(上甘嶺)”의 주제곡인 “나의 조국”을 사용한 것에서도 엿볼 수가 있는데 “친구가 오면 좋은 술을 대접하고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으로 맞아줄 것이다.”라는 가사를 가진 이 노래가 2011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장에서 연주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중국과 북한이 성지처럼 여기는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에 오늘의 주인공인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도 참가를 하였습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

1951년 3월, 20세의 나이로 지원하여 군에 입대한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은 1952년 9월 한국전쟁에 투입되었고, 1953년 1월 29일 제24군 72사단 214연대 소속으로 597.9고지(삼각고지)에서 같은 해 5월 25일까지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데 3개월 26일 동안 442발(436발이라는 주장도 있음)의 탄환을 사용하여 214명의 유엔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며 48.4%의 명중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2차 대전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물론 조준사격이 아닌 경우도 포함되겠지만- 25,000발의 탄환을 사용하여 사살한 적군의 숫자가 1.3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48.4%에 달하는 명중률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공군으로부터는 “이등 저격영웅” 훈장을 받았으며 북한군으로부터는 “일급 국기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CCTV-1에서 “스나이퍼 히어로”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여기에 출연한 그녀의 동료였던 여장청(呂長青: Lu Changqing)의 증언에 의하면 저격거리는 보통 100미터에서 200미터인 경우가 많았으며 40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800미터 이상 먼 거리에 있는 경우에는 성공한 적이 불과 몇 번에 불과하였다고 합니다.

여장청(呂長青: Lu Changqing)

 

또한 전장에서 저격에 성공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통상 저격 후 15분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였다고 하며 214명이란 숫자도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적군이었지만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은 총의 반동을 이기기 위해 10kg에 달하는 모래주머니를 이용하여 팔의 근육을 단련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하기도 하였으며 1954년 19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투기 조종사에 선발되어 공군예비학교와 항공학교에서 과정을 이수한 끝에 공군이 되어 방공부대의 지휘관을 맡기도 하였는데 1980년 퇴역하고 2007년 10월 29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근래 들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미투운동과 관련하여 군에서도 성폭력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거나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군 사관생도가 동료들에게 무참히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그녀의 부친인 장군에 의해 사실이 은폐되는 내용을 그린 영화 “장군의 딸(The General’s Daughter)”이 떠오릅니다.

장다오팡(張桃芳: Zhang Taofang)과 같이 능력과 노력을 겸비한 많은 이 땅의 여군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받지 못하거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