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의 주방용 칼, 밥 크레이머 유로 스테인리스

세계최고의 주방용 칼, 밥 크레이머 유로 스테인리스

낚시를 오래 하다 보면 잡은 물고기를 직접 손질하게 되고 실력이 늘면서는 회를 뜨기도 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칼로는 데바라고 하는 뼈를 자르는데 주로 사용하는 칼과 일명 사시미칼이라고 부르는 회칼이 있다.

일본의 회칼은 관동과 관서지방의 것이 서로 이름과 모양이 다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은 칼끝이 뾰족한 관서지방의 칼로 야나기바(柳刃)라고 부르며, 관동지방의 것은 칼끝이 네모난 것이 특징으로 타코히키(蛸引き)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저렴한 칼을 사용하고 있지만 세계에는 한 자루에 1백만 원이 넘는 주방용 칼도 있어서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요리사들이 세계최고의 칼이라고 뽑는 미국의 밥 크레이머(Bob Kramer)가 만드는 크레이머 칼(KramerKnives)은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가 없고 사전등록을 통한 경매로만 구입할 수 있다고 하는데 밥 크레이머(Bob Kramer)와 독일의 유명한 나이프 제조업체인 쯔윌링(Zwilling JA Henckels)이 손을 잡고 만든 것이 바로 밥 크레이머 유로 스테인리스 시리즈이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에 수십만 원을 훌쩍 넘을 정도의 가격이어서 사볼 엄두는 전혀 나지 않는다^^

 

밥 크레이머(Bob Kramer)

 

요리사 출신의 밥 크레이머(Bob Kramer)와 손잡고 칼을 만드는 독일의 쯔윌링(Zwilling JA Henckels)은 졸링겐(Solingen)에 본사를 두고 있는 1731년에 설립된 기업으로서 회사의 이름은 창업자인 피터 헹켈스(Peter Henckels)와 그가 1731년 6월 13일에 등록한 로고인 쌍둥이를 뜻하는 쯔윌링(Zwilling)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밥 크레이머 유로 스테인리스 시리즈가 만들어지는 곳은 미국도 아니고 독일도 아닌 일본의 기후현 세키시에 있는 쯔윌링(Zwilling)의 일본공장이라고 한다.

기후현 세키시는 가마쿠라 시대에 원조인 모토시게(元重)가 큐슈에서 건너와 칼을 만들면서부터 칼을 만들기에 이상적인 풍토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수많은 도공(刀工)들이 모여들었고 무로마치 시대에는 그 숫자가 3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유서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쯔윌링(Zwilling)의 일본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밥 크레이머 유로 스테인리스 시리즈에도 밥 크레이머(Bob Kramer)가 만드는 칼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쉐브론 다마스커스 패턴이라고 하는 물결무늬가 있다.

이것은 101겹으로 층을 쌓으며 만든 스테인리스의 적층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하며 칼의 손잡이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에서 개발한 마이카르타(Micarta)를 사용하여 만든다고 하는데 이 칼의 손잡이에 새겨진 일본문양과 칼에 각인되어 있는 Made in Japan이란 문구를 보니 샘이 나는 것은 숨기지를 못하겠다.

전투기에는 무기를 얼마나 탑재할 수 있을까?

전투기에는 무기를 얼마나 탑재할 수 있을까?

F-35가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발생한 추락사고로 인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스텔스 기능을 가진 “F-35 LightningⅡ”의 무장탑재량은 스텔스 기능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인 “비스트 모드”가 거의 4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F-35는 제공권을 장악하기 이전에는 스텔스 모드로 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무기를 탑재할 수가 없지만 비스트 모드에서는 4배 이상의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무기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투기는 대부분 날개의 아래쪽에 폭탄을 탑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미사일이나 폭탄을 외부에 탑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을 “하드포인트(Hardpoint)”라고 부르거나 “무장스테이션(Weapon Station)” 또는 줄여서 “스테이션(St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투기의 외부에 무기를 탑재하게 되면 당연히 공기의 저항이 증가하게 되고 따라서 연료소비량도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투기에는 “이 정도 이상을 탑재하면 공기의 저항이 이 만큼 발생한다.”고 하는 일명 “드랙 인덱스(Drag index)”를 사전에 계산하여 매뉴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기체의 외부에 무장을 할 때에는 공기의 저항으로 속도가 떨어지고 연비가 나빠지기 때문에 무장을 많이 한 전투기가 원활하게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중급유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장스테이션(Weapon Station)

 

그러면 이러한 제약을 가지고 있는 전투기의 무장은 얼마까지 할 수 있는지를 F-15와 F-35를 예로 들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F-15E의 무게에 관한 것을 정리해보면 파운드를 kg으로 환산한 것이라 약간의 차이는 날 수가 있지만 기본중량에 조종사의 무게를 합친 운용중량은 16,798kg입니다.

다음 F-15E의 표준이륙중량은 30,872kg이고 여기에 추가연료탱크(드롭 탱크) 2개를 연결하면 표준이륙중량은 34,731kg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F-15E의 최대이륙중량인 36,774kg에서 2개의 드롭탱크를 추가한 중량을 뺀 2,043kg이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무게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F-15E의 전투기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대이륙중량(36,774kg)에서 운용중량(16,798kg)을 뺀 무게(19.976kg)의 범위 안에서 작전거리와 기타 제반조건을 고려하여 “컨포멀 탱크(Conformal fuel tank)”에도 연료를 채우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4.379kg의 중량을 이용할 것인지 등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것입니다.

※ 전투기의 컨포멀 연료탱크

 

또한 전투기에 요구되는 사항은 단순히 항속거리와 속도만이 아니라 적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한다든지 애프터 버너를 ○분간 사용하여 이륙 후 고도 ○○피트의 저공으로 ○○km를 비행한 다음 다시 애프터 버너를 ○분간 사용하여 작전을 수행하고 10,000피트에서 ○○km를 비행하여 귀환한다는 세부적인 작전내용에 따라서 소모되는 연료의 양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전투기에 얼마나 많은 양의 무기를 탑재하는가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드포인트에 장착할 수 있는 폭탄의 무게는 설계단계에서 이미 결정되어버리기 때문에 100kg가 한계인 하드포인트에 200kg의 폭탄을 장착할 수는 없으니 이런 점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F-35의 무장스테이션은 모두 11개이고 1~3은 왼쪽 날개, 4와 5는 좌현 폭탄창(Bomb bay), 스테이션 6은 동체 아래 중앙, 7과 8은 동체 우현 폭탄창, 마지막으로 스테이션 9~11까지는 오른쪽 날개의 위치에 있으며 장착할 수 있는 각각의 무게가 좌우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장스테이션에서도 특히 기체중앙의 양옆에 있는 폭탄창에 탑재하는 무기는 무게뿐만이 아니라 길이의 제약도 받게 됩니다.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F-35에 탑재된 “AIM-120 암람” 공대공미사일인데 이것을 유럽판 암람이라고 하는 “MBDA 미티어”로 교체할 경우에는 날개가 커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미사일의 설계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 폭탄창의 우측은 “AGM-154 JSOW” 활공유도폭탄입니다.

 

MBDA 미티어

 

군에서는 최대한으로 무장을 하고 연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륙하여 비행하다가 중간에서 공중급유를 받아 연료를 보충하는 무장탑재량을 우선시하는 방법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기온의 영향을 받기 쉬운 제트엔진의 특성에 따라 온도의 상승에 따른 추력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최대이륙중량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현대전에서의 공중전은 공중급유기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으므로 미국은 항공모함에서 이륙할 수 있는 무인공중급유기 “MQ-25A”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투기의 컨포멀 연료탱크

전투기의 컨포멀 연료탱크

군용항공기 중에서 공중급유기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종이지만 공군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기종입니다. 항공모함에 탑재되는 F35의 항속거리는 2,200km이지만 실질적인 행동반경은 1,000km에 불과한데 공중급유를 받게 되면 행동반경이 1,500km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보잉 KC-46 페가수스”는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미국은 스텔스 기능을 가진 무인공중급유기 “MQ-25A”를 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MQ-25A

 

전투기에는 기본적인 연료탱크 외에도 추가로 탑재하는 연료탱크가 있는데 이전에는 주로 날개 밑에 장착하여 연료를 모두 사용하면 떨어뜨리는 드롭탱크(Drop tank)를 사용하였고 이외에도 날개의 끝에 장착하는 팁탱크(Tip tank)와 기체의 상부와 측면에 부착하는 컨포멀 탱크(Conformal fuel tank) 등의 추가 연료탱크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팁 탱크는 현재에 와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A-37 드래곤플라이” “F-104 스타파이터” “F-5 A/B” 등에서 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A-37 드래곤플라이

 

F-104 스타파이터

 

드롭탱크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항속거리를 늘이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지만 전략물자였던 두랄루민으로 만든 연료탱크를 회수하기가 어려워서 독일군에서는 현상금을 지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롭탱크로 인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서 어떠한 경우든 간에 시가지에서의 분리는 금지되어 있고 해상에서 떨어뜨릴 경우에도 주변에 선박은 없는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버려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규정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드롭탱크는 기체의 하드포인트 부분에 부착함으로써 탑재할 수 있는 무기의 양이 감소하게 되고 더불어 공기저항을 많이 받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드롭탱크 장착 전의 아파치 헬기

 

드롭탱크를 장착한 아파치 헬기

 

따라서 최근에는 전투기에 부착하는 추가 연료탱크들은 이러한 드롭탱크의 단점을 보완한 컨포멀 탱크(Conformal fuel tank)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컨포멀 탱크(Conformal fuel tank)의 단점은 연료가 소모되었을 때에는 전투기에는 추가적인 드랙 페널티가 발생하게 되는데 속도가 빠를수록 더 많이 생긴다는 점과 지상에서만 제거할 수 있다는 점 등은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컨포멀 탱크(Conformal fuel tank)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종으로는 F15C와 F15E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추가 연료탱크는 헬리콥터에도 부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드롭탱크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헬리콥터로는 UH-60 블랙호크와 CH-53 슈퍼 스탤리온, AH-64 아파치, 그리고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가와사키 OH-1 등이 있고 컨포멀 탱크(Conformal fuel tank)를 사용하는 헬기로는 러시아의 Mi-8과 CH-47 치누크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전투기의 상대전적

미국과 러시아 전투기의 상대전적

미국의 F-22와 F-35에 대적하기 위해 개발한 러시아의 Su-57의 성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Su-35의 구매량에 크게 떨어지는 20대만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Su-57의 스텔스기능이 F-22와 F-35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고 플라즈마를 방출하여 레이더 탐지를 피하는 기술에 대한 신뢰성도 의구심이 들기 때문에 미국 전투기의 제공권 장악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러시아의 전투기는 어느 것이 더 뛰어날까요? 이전의 전쟁에서 맞붙었던 미국과 러시아 전투기들의 상대전적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의 포스팅 “F-15의 격추율은 115대 0”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뛰어난 전적을 보여준 F-15도 전투기 자체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조종사들의 기량과 탑재하는 무기의 성능에 의해서도 전적은 달라질 수가 있어서 정확히 구분하여 분석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최근의 분쟁지역에서의 공중전에서 겨루었던 미국과 러시아 전투기의 전적을 알아보겠습니다.

세계최강이라는 F-22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공중전을 치루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데 F-22를 개발한 록히드 마틴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제공권을 지배한다는 의미의 “Air Dominance”지만 최초의 실전경험은 “이슬람국가(ISIS)”에 대한 지상폭격이었고 이와 마찬가지로 유로파이터와 다쏘, 라팔 등의 유럽 전투기와 러시아의 Su-34도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지상공격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공군에서도 도입할 F-35는 통상적으로 활주로를 이용하여 이·착륙하는 이른바 CTOL(Conventional TakeOff and Landing) 방식의 F-35A 기종이며, 그 외에 단거리 이륙 및 수직착륙 방식인 STOVL(Short TakeOff and Vertical Landing) 기종의 F-35B, 그리고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양 날개와 수직과 수평의 꼬리날개를 대형화 하고 착륙장치의 구조를 강화(어레스팅 기어 사용)한 F-35C가 있는데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이 실전에 배치한 것은 F-35A와 F-35B이고 아직 F-35C는 실전배치가 되지 않았으며 배치된 것들도 모두 지상공격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레스팅 기어

토네이도 IDS

토네이도 ADV

토네이도 ECR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전투기에 대한 평가는 운용하는 무기에 의해서도 달라지는데 “F-4팬텀“은 베트남전쟁 초기에는 소련의 MiG기에 밀렸지만 공중전술이 확립되고 탑재하는 미사일이 향상되면서 중기 이후로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고 위에서 알아보았던 토네이도 IDS도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하게 되면서 코소보전쟁과 리비아 공격에서 활약함으로써 걸프전의 오명을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F-4팬텀이 베트남전쟁 초기에 소련의 미그기에 밀렸던 이유는 조기경보레이더를 운용하던 소련이 폭탄을 소모하였거나 연료부족 또는 기체가 손상된 경우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던 것도 한 가지 원인이며 다음으로는 절반 이상의 미사일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오명이 높은 전투기로는 러시아의 MiG-29를 들 수 있는데 걸프전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던 러시아의 MiG-29는 이라크 공군이 운용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이것은 러시아가 외국에 수출할 때 의도적으로 성능을 저하시키는 이른바 “Monkey model”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다국적군과의 공대공 전투에서 이라크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체 33대 중에서 8대가 격추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기록하였으며 이후 1999년 코소보전쟁에서 MiG-29 5대가 출격하여 미국의 F-15C에 2대가 격추되고 1대는 네덜란드 공군의 F-16의 공격을 받고 크게 손상을 입고 기지로 귀환했고, 같은 해에 벌어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국경분쟁에서는 에티오피아 공군의 “수호이 Su-27”에 의하여 에리트레아 공군의 MiG-29 1~3기가 격추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오명을 안고 있는 대표적인 기종입니다.

참고로 “Monkey model”이란 말은 1978년 6월 10일 영국으로 망명하였던 전직 러시아정보총국(GRU) 장교인 “빅토르 수보로프(Viktor Suvorov)”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지면서 그 이후로 군사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자국의 우위를 지속하고 수출한 나라가 교전을 하면서 적국에 노획되어 기술이 유출되는 점 등을 우려하여 성능이 떨어지는 것을 수출하며 특히 중동지역에서 그 실태가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명을 안고 있는 기종과는 달리 큰 명성을 얻은 대표적인 기종으로는 6·25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미국의 F-86세이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투입한 F-86세이버는 당시 소련이 배치하였던 MiG-15가 전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북한과 중공의 조종사들이 늘어난 것도 한 가지 요인이겠지만 792대의 미그기를 격추시키고 78대만이 격추당하는 10대 1의 승률(Kill Ratio)을 올렸습니다.

물론 115대 0이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올린 F-15도 있지만 베트남전쟁에서 F-4팬텀이 MiG-21기 66대를 격추하고 37대가 MiG-21에 의해서 격추되는 2대 1의 승률(Kill Ratio)을 올렸던 것을 보면 F-86세이버가 얼마나 강한 기종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보도로 러시아의 Su-57은 성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고 중국이 개발한 스텔스기 J-20도 스텔스 기능이 떨어지고 엔진의 결함 등으로 인해서 앞으로도 미국의 제공권 우위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115대 0이란 경이적인 F-15의 격추율

115대 0이란 경이적인 F-15의 격추율

한국공군의 주력기종이기도 한 F-15는 1972년부터 투입되기 시작한 것으로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오늘은 F-15가 기록한 격추율(kill ratio)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중전의 기록은 단엽기로는 2차 대전 당시 “검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던 독일의 “에리히 하르트만”이 세운 352기 격추가 최고기록이고, 복엽기에 있어서는 “레드 바론”으로 더 잘 알려진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80기 격추가 최고기록입니다.

그 이후 초음속 전투기를 몰면서 세운 최고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기오라 엡스타인(Giora Epstein)”이 세운 17기인데 기오라 엡스타인은 “샤하크(미라지Ⅲ의 이스라엘 별칭)”와 미라지Ⅴ를 바탕으로 생산한 “IAI 네셔”를 몰고 헬기 1대와 MiG-21을 포함한 전투기 16기 등 도합 17기를 격추시킨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F-15가 실전에 배치된 이후 전쟁이 일어난 지역은 중동지역이 주를 이루다 보니 F-15의 격추기록도 이스라엘군이 많이 차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한편 걸프전쟁이 발발하고 미공군 중에서 가장 먼저 투입된 전투기는 제1전술전투항공단 제71전술전투비행대(1TFW 71TFS) 소속의 F-15C 24기로 미국의 기지에서 발진해 대서양과 지중해를 건너 12,800km라는 거리를 공중급유를 받으며 논스톱으로 비행하여, 도착 다음날부터 제공권을 장악하였는데 당시 이라크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투기는 당시로서는 최신예 기종이었던 MiG-29 30기와 미라주 F-1 90기 등 도합 600기에 달하는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3 센트리”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의 지원을 받는 미공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개전초기부터 제공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E-3 센트리

그 결과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입은 공중전의 손실은 MiG-25에 의해 격추된 F/A-18 호넷 1기가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중전의 승패는 전투기만의 능력보다는 입체적인 전술지원도 아주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F-15가 무조건 격추시킨 기종보다 우세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1979년부터 1999년 코소보전쟁까지 20년간 F-15가 실전에 투입되어 세운 경이적인 격추율(kill ratio)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F-15의 격추율(kill ratio)

격추한 숫자가 0.5인 것은 2기가 합동으로 공격하여 격추한 경우를 말합니다.

날 짜
소 속
기 종
소속국가
격추기종
비 고
1979. 6. 27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4기 격추
F-15B
0.5기 격추
1979. 9. 24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5기 격추
1980. 8. 24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1기 격추
1980. 12. 31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3기 격추
1981. 2. 13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5
1기 격추
1981. 7. 29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5
1기 격추
1982. 2. 10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1기 격추
1982. 4. 20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3
2기 격추
1982. 5. 25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2기 격추
레바논 침공
1982. 6. 6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3
1기 격추
1982. 6. 7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3
2기 격추
1962. 6. 8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3기 격추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3
2기 격추
이스라엘
F-15D
시리아
MiG-21
1기 격추
1962. 6. 9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3기 격추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1
2기 격추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3
2기 격추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3
2기 격추
1962. 6. 10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3기 격추
이스라엘
F-15B
시리아
MiG-21
1기 격추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1
1기 격추
이스라엘
F-15D
시리아
MiG-21
2기 격추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3
4기 격추
이스라엘
F-15C
시리아
SA.342 헬기
1기 격추
1982. 6. 11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2기 격추
이스라엘
F-15B
시리아
MiG-21
1기 격추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3
2기 격추
1982. 6. 24
이스라엘
F-15D
시리아
MiG-23
2기 격추
1982. 7. 2
이스라엘
F-15A
시리아
MiG-21
2기 격추
1982. 8. 31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3
1기 격추
1984. 6. 5
이스라엘
F-15A
이란
F-4E
2기 격추
1985. 11. 20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3
2기 격추
이스라엘
F-15D
시리아
MiG-23
1기 격추
1989. 6. 2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9
2기 격추
걸프전쟁
1991. 1. 17
미국
F-15C
이라크
MiG-29
3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미라쥬 F-1
3기 격추
1991. 1. 19
미국
F-15C
이라크
MiG-25
2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MiG-29
2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미라쥬 F-1
4기 격추
1991. 1. 26
미국
F-15C
이라크
MiG-23
3기 격추
1991. 1. 27
미국
F-15C
이라크
MiG-23
3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미라쥬 F-1
1기 격추
1991. 1. 28
미국
F-15C
이라크
MiG-23
1기 격추
1991. 1. 29
미국
F-15C
이라크
MiG-23
1기 격추
1991. 2. 2
미국
F-15C
이라크
IL-76
1기 격추
1991. 2. 6
미국
F-15C
이라크
MiG-21
2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Su-22
2기 격추
1991. 2. 7
미국
F-15C
이라크
Su-22
3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Su-7
1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헬기
1기 격추
1991. 2. 11
미국
F-15C
이라크
Mi-8 헬기
1기 공동격추
1991. 2. 14
미국
F-15E
이라크
Mi-24 헬기
2기 격추
1991. 3. 20
미국
F-15C
이라크
Su-22
1기 격추
1991. 3. 22
미국
F-15C
이라크
PC-9
1기 격추
미국
F-15C
이라크
Su-22
1기 격추
유고/코소보 전쟁
1999. 3. 24
미국
F-15C
유고
MiG-29
2기 격추
1999. 3. 23
미국
F-15C
유고
MiG-29
2기 격추
기 타
2001. 9. 14
이스라엘
F-15C
시리아
MiG-29
2기 격추

 

▶ F-15가 격추시킨 기종들(합계)

구 분
기 종
대수
비행기
MiG-21
42.5
MiG-23
30
MiG-25
5
MiG-29
13
수호이 Su-7
1
수호이 Su-22
5
수호이 Su-25
2
미라쥬 F-1
8
F-4E 팬텀II
2
PC-9
1
일류신 IL-76
1
헬기
Mi-8
1
Mi-24
2
SA.342
1
불명
2
합 계
115.5

 

※ F-15가 피격된 것에 대해서는 대립당사국 간에 이견이 존재하고 있어서 정확한 기록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시리아군의 발표에 의하면 1979년 9월 24일에 F-15A 2기를 MiG-21로 격추시켰으며 1981년에는 MiG-25로 F-15C 1기를 격추, 1기를 반파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발표로는 단 1기의 피격도 없었다고 합니다.

정정당당(正正堂堂)의 어원

정정당당(正正堂堂)의 어원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열리는 제18회 아시안게임이 오는 8월 18일에 개막되고 그보다 먼저 광복절인 오늘 바레인과의 축구 예선전이 열리게 됩니다.

스포츠경기에 언제나 따라붙는 단어 중에는 “정정당당(正正堂堂)”이란 것이 있는데 이 말이 작금의 한국사회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방송매체의 탐사보도를 통해 대기업에 의해서 자행되는 중소기업의 기술탈취에 관한 얘기를 접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저는 우리나라의 대기업들도 펩시콜라의 일화를 보고 무엇인가 배우기를 바라곤 합니다.

2006년 코카콜라의 직원이었던 조야 윌리엄스(Joya Williams)가 펩시콜라에 금전을 제공하면 코카콜라의 제조법을 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의 경영진에게 이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FBI에 신고를 함으로써 회사의 기밀을 팔아넘기려던 조야 윌리엄스(Joya Williams)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10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Dirk이란 이름으로 펩시콜라에 보낸 편지

 

코카콜라의 제조법이 보관된 금고 앞의 CEO 무타르 켄트(Muhtar Kent)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이런 제안을 받게 된다면 그들도 펩시콜라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의 생각도 여러분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공정(公正)과 정의(正義)를 발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지만 제18회 아시안게임의 개막을 앞두고 정정당당(正正堂堂)이란 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봅니다.

태도나 수단이 공정하고 떳떳하다는 뜻을 가진 정정당당(正正堂堂)이란 단어는 손자병법 제7편 군쟁편에서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손자병법의 제7편 군쟁편에는 “無邀正正之旗(무요정정지기), 勿擊堂堂之陣(물격당당지진), 此治變者也(차지변자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석하면 “깃발이 잘 정렬된 군대를 맞아서는 싸우지 말 것이며(無邀正正之旗), 기세가 당당하게 전열을 갖춘 군대를 공격하지 말 것이니(勿擊堂堂之陣), 이렇게 함으로써 상황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此治變者也).”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유래되어 정정당당(正正堂堂)은 정정지기당당지진(正正之氣堂堂之陣)의 준말이라고도 사전에서는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정정당당(正正堂堂)은 다시 말하면 전쟁에 이기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전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의미를 살펴보면 “깃발이 잘 정렬되고 기세당당하게 전열을 갖춘 군대”는 바로 정의를 기치로 내걸고 싸우는 군대로써 “우리에게 정의가 있다.”라는 명분 아래 싸우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라고 손자병법에서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정정당당(正正堂堂)은 비겁하거나 부끄러운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며 이 말을 한국의 재벌들과 파렴치한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다시 한 번 새겨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펩시콜라는 어떻게 세계 6위의 해군을 보유할 수 있었나?

펩시콜라는 어떻게 세계 6위의 해군을 보유할 수 있었나?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끝나면서 퇴임하게 될 트럼프가 맞게 될 각종 민·형사 소송과 관련하여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Case)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사임한 대통령이란 기록을 남긴 제37대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 언론에 소환되고 있다.

오늘은 정치적인 이슈보다는 닉슨 대통령 덕분에 펩시콜라가 한때는 세계 제6위의 해군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얘기를 해볼까 한다.

195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치열했던 시기였는데 양국은 긴장완화를 위해 문화를 교류하기로 하고 1958년에 미소문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1959년 6월에는 뉴욕에서 소련의 박람회가 개최되었으며 다음 달인 7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미국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이곳에서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닉슨과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소련의 흐루쇼프가 벌인 논쟁은 세간의 많은 화제를 낳았다.

당시 두 사람의 논쟁은 녹화되어 미국과 소련에서 방송되었는데 박람회장에 지어진 모델하우스의 부엌에서 논쟁을 한 것에서 유래하여 부엌 논쟁(Kitchen Debate)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당시 흐루쇼프는 “닉슨의 손자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 것”이라고 주장했고, 닉슨은 이를 맞받아 “흐루쇼프의 손자는 자유체제에서 살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흐루쇼프(니키타 흐루쇼프: Nikita Khrushchev)의 아들인 세르게이 흐루쇼프가 소련의 붕괴로 1991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96년에는 귀화를 했기 때문에 닉슨의 주장이 옳았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두 사람의 논쟁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 뒤에는 또 하나의 화젯거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오늘 얘기의 주제인 펩시콜라다.

모스크바에 지어졌던 미국의 박람회장에는 디즈니를 비롯하여 IBM 등 굴지의 기업들과 함께 펩시콜라도 부스를 설치하고 있었고 이때 펩시의 전시장을 총괄하던 인물인 로버트 켄달(Robert Kendall)은 닉슨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다.

 

좌측: 로버트 켄달 우측: 닉슨 대통령

그리고 닉슨과 흐루쇼프가 만나기로 되어있던 전날 로버트 켄달(Robert Kendall)은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닉슨을 만나 당일 흐루쇼프를 펩시콜라의 전시부스로 데리고 와줄 것을 부탁한다.

당시 펩시콜라 내부에서는 해외시장확대에 회의적이었으나 켄달은 펩시콜라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임을 확신하고 친구인 닉슨에게 흐루쇼프를 데리고 와줄 것을 부탁하였고 미국과 소련의 물로 만든 2종류의 펩시콜라를 준비해두었다.

당일 모스크바는 7월로 더운 날씨였으며 펩시의 부스를 찾은 흐루쇼프가 미국의 물과 소련의 물로 만든 2종류의 펩시콜라를 마시고 “소련 물로 만든 것이 더 맛있다.”고 발언하는 모습은 보도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고 공산주의자인 흐루쇼프가 자본주의의 상징인 콜라를 마시는 장면은 전 세계에 퍼져 펩시콜라의 광고효과는 그야말로 대박을 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1971년이 되면서 로버트 켄달(Robert Kendall)은 펩시콜라의 CEO에 취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절친이자 그가 후원하던 닉슨은 미국의 제36대 대통령이 되어있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고는 하지 못해도 닉슨과 켄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은 틀림없었는데 닉슨은 냉전 완화정책으로 소련과의 교역을 확대하려 하고 있었고 켄달은 소련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발판으로 코카콜라를 압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닉슨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펩시는 당시 소련 최고지도자였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의 협상 끝에 소련에서 콜라를 독점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그런데 소련의 루블화는 외화로 환전할 수 없었으며 소련을 제외한 외국에서는 사용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은 미국의 달러로도 지불할 수 없다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짜낸 방법이 펩시콜라를 소련정부가 생산하고 있던 보드카인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와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하기로 하였으며 펩시는 당연히 미국 내에서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를 독점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1974년 노보로시스크에 최초로 음료를 병에 담는 공장인 Bottling Plant가 세워졌고 이곳에서는 미국에서 보낸 펩시콜라의 원액에 소련의 물과 탄산가스를 더하여 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제조되고 판매된 최초의 자본주의 소비재가 되었다.

 

하지만 펩시와 소련이 맺었던 계약이 완료되는 시점인 1989년은 소련의 정세가 극적으로 변하는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소련공산당의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고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일환으로 소비재를 수입하여 소련경제와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한편 펩시는 소련에서의 사업을 확대하여 26개의 공장을 증설하고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는데 그 한 가지 방법에는 당시 보유하고 있던 피자헛을 소련에 진출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련 루블화의 가치는 국제시장에서 현저하게 낮은 가치를 형성하고 있었고 물물교환하던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는 판매되는 펩시콜라의 양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1979년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미국에서는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 불매운동이 전개되어 매출은 급격히 하락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콜라사랑 열기는 식을 줄을 몰라서 펩시와의 거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펩시가 서방세계에 판매할 수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소련으로서는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경제불안이 계속되던 소련으로서는 서방국가에서 판매될만한 소비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단 한 가지 예외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막대한 군사비로 인해 군에서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던 군사장비였다.

그리고 1990년, 마침내 소련은 17척의 디젤잠수함을 비롯하여 순양함, 구축함, 프리깃함 및 민간유조선을 펩시에 인도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당시 펩시가 소련과 체결한 계약의 내용은 소련에 피자헛 매장을 개설할 수 있는 허가와 함께 2000년까지 3억 달러의 펩시콜라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졸지에 펩시는 세계 6위의 해군을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조선을 제외한 배들은 사용하기에는 심각한 상태여서 펩시는 유조선은 임대하다가 나중에는 노르웨이에 팔고 잠수함과 20척의 군함은 모두 고철로 스웨덴의 조선소에 판매하게 된다.

 

다시 맺은 계약에 의해 모스크바에 2개의 피자헛 매장을 개설하였고 고르바초프가 피자헛에서 정치광고를 찍으면서 펩시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것 같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은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고 펩시와 구소련 간에 맺었던 계약은 너무 불공정하다는 소련의 판단에 따라 펩시의 독점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인플레와 민영화의 과정에 잽싸게 올라탄 코카콜라는 단돈 1센트에 공장을 인수하고 특별히 제작한 코카콜라를 러시아의 우주정거장에 보내는 등 활발한 마케팅에 나섰고 마침내 1996년에는 러시아에서 펩시를 추월하게 되었다.

 

언젠가 펩시의 이사회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Brent Scowcroft)를 만난 로버트 켄달(Robert Kendall)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당신들보다 먼저 소련을 무장해제시켰어.(I’m dismantling the Soviet Union faster than you are.)

홋카이도에는 가리비 껍질로 만든 하얀 길이 있다.

홋카이도에는 가리비 껍질로 만든 하얀 길이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끈한 국물과 함께 먹는 조개찜을 비롯하여 꼬막에 굴요리까지 맛있는 안주들이 술을 부르는 날이 잦아지곤 한다.

그러나 맛있게 먹는 대신 남는 조개껍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준다.

한 해 동안 버려지는 굴껍데기의 양만 대략 30만 톤을 상회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근래 와서는 재활용되는 비율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여전히 처리방법에 있어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굴껍데기를 비롯한 패각류의 껍질은 난연성이라 소각처리가 쉽지 않고 분해가 어려운 탄산칼슘으로 인해 자연상태에서 생분해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껍질에 부착된 염분으로 인해 그대로 매립할 수도 없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비료나 사료로 재활용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껍질에 묻어 있는 염분을 제거해야만 하기 때문에 길게는 야적한 상태로 1년간 방치한 채로 비를 맞게 하여 염분을 제거하고 그다음에 지상에 설치한 아래의 사진과 같은 수조에 넣어서 한번 더 염분을 제거하는 공정을 거친 뒤에 비료나 사료의 원료가 되는 분말을 제조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일본도 마찬가지로 특히 가리비의 생산으로 유명한 홋카이도에서는 버려지는 가리비 껍질을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대신에 도로에 깔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부상한 곳이 있다.

 

홋카이도 북부의 왓카나이(稚内)에 있는 소야구릉(宗谷丘陵)은 왓카나이 풋패스의 소야구릉코스가 있는데 그 중 숏코스의 후반부 3㎞에 2011년부터 가리비껍질을 분쇄해서 깐 것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는데 일본어로는 시로이 미치(白い道)라 부르며 우리말로는 ‘하얀 길’ 또는 ‘백조개의 길’로 불린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본산 가리비를 먹고 있을까?”란 포스팅을 통해서 2019년까지 증가일로에 있던 일본산 가리비의 수입실태를 알아본 바가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2022년에는 11,745톤을 수입하였고 그 금액은 오늘자 매매기준율로 환산하면 650여 억 원에 이르러 금액과 중량으로 모두 2019년도 대비 2배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양을 수입한 일본산 가리비를 비롯하여 우리가 음식점에서 먹는 패각류의 껍질은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일반쓰레기로 잘 처리가 되고 있을까?

앞으론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사해보아야겠다.

일본산 방어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식량이었다.

일본산 방어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식량이었다.

오래전 “우리는 일본산 방어회를 얼마나 먹었을까?”란 포스팅을 통해 해마다 증가하는 일본으로부터의 방어 수입에 대하여 알아본 바가 있었는데 일본불매운동이 한창이던 2019에도 일본산 방어의 수입은 증가세를 보였으며 작년, 2020년에도 전년 대비 물량은 8.5%, 금액은 9.4%가 증가한 2,247톤의 방어를 248억 원어치나 수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인터넷을 달구었던 한 장의 사진에 대하여 “등이 구부러진 일본산 방어는 안전할까?”란 제목으로 안정성에 대하여 알아보았는데 오늘은 우리의 간고등어와 유사한 일본의 염장방어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설날이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들 말하는데 우리의 이런 풍습과 유사한 일본의 풍습으로 토시토리(年取り)란 것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12월 31일, 섣달 그믐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먹는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가 있는데 이 때 소바 대신에 먹는 물고기를 토시토리자카나(年取り魚)라고 부른다.

토시토리자카나(年取り魚)는 동일본에서는 연어, 서일본에서는 방어가 대표적으로 특히 토야마(富山)의 히미시(氷見市)에서 정치망으로 잡는 방어를 최고로 치는데 예부터 이것을 엣츄부리(越中ブリ)라 불렀으며 최고급 방어의 대명사로 불린다.

옛날 방어의 토야마(富山) 산지가격이 한 마리에 현미 한 말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부리가도(ブリ街道)를 지나 마쓰모토(松本)에 도착하면 4배로 뛰어 현미 4말을 줘야 방어 1마리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 부리가도(ブリ街道)

토야마만(富山湾)에서 잡은 방어(부리: ブリ)를 타카야마(高山)와 노무기고개(野麦峠)를 넘어 마쓰모토(松本)까지 운반하는데 사용된 길을 말한다.

 

이처럼 비싼 토야마만(富山湾)에서 잡은 방어를 염장한 다음 임진왜란 당시 조선(朝鮮)을 침략한 왜군의 식량으로 사용하도록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진상하였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430여 년 전 이 땅을 피로 물들이고 수 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왜구의 침략에 사용된 전투식량이었던 방어가 지금은 수 많은 양식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해마다 증가하는 일본산 방어의 수입은 우리 스스로가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처럼 실제로 일어난 2차 대전 당시의 대탈주극

영화처럼 실제로 일어난 2차 대전 당시의 대탈주극

사진은 아일랜드 팜(Island Farm) 포로수용소의 실제 모습 

 

한국에서는 대탈주란 제목으로 1963년 개봉되었던 영화 “The Great Escape”는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연합군 병사들의 탈출기를 묘사한 것인데 이 영화는 1950년에 발간된 폴 브록힐(Paul Brickhill)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The Great Escape”는 1943년 연합군 포로들이 베를린에서 100마일 떨어진 곳(현재의 폴란드 Żagań 마을)에 있었던 스탈라그 루프트 제3 수용소(Stalag Luft III)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모두 76명의 포로들이 탈출하여 3명만이 탈출에 성공하고 10명은 다시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돌아오게 되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 당하고 마는데 실제로도 50명의 포로들이 사살되었다고 합니다.

스탈라그 루프트 제3 수용소(Stalag Luft III)

 

제게는 특히 주인공인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의 오토바이 씬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실제로도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은 프로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할 만큼의 오토바이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이유는 해병대원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의 한 장면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속의 스트브 맥퀸 오토바이 탈출 영상

이 영화를 아주 많이 보기는 했지만 볼 때마다 허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웹서핑 도중에 발견한 영국의 신문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익스프레스지의 2017년 9월 1일자 기사를 보면 2차 대전 당시 영화와 흡사한 방법으로 영국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감행한 독일군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 원문: Uncovered: The tunnel the Nazis used in WW2 to escape PoW camp in South Wales

 

실제로 독일군 포로들의 대탈주극이 감행된 것은 1945년 3월 10일 밤, 사우스 웨일즈(South Wales)의 브리젠드(Bridgend)에 있었던 아일랜드 팜(Island Farm) 포로수용소였다고 합니다.

 

아일랜드 팜(Island Farm) 포로수용소

 

1938년에 지어진 아일랜드 팜(Island Farm) 포로수용소는 원래는 인근 군수공장에 근무하는 여성들을 위한 기숙사의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미군의 캠프로 사용되다가 급증하는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전쟁포로수용소로 바뀌었다고 하며 당시에는 총 30개의 막사(Hut)에 2,000여 명의 독일군 포로들을 수용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9번 막사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9번 막사(Hut 9)

 

이곳에서 탈출을 감행한 독일군 포로들은 영화에서와 같이 칼 등을 이용하여 막사로부터 30피트나 떨어진 철조망 너머로 깊이 4미터에 달하는 땅굴을 팠다고 하며 사용한 땅굴의 갱목(받침대)은 벤치를 훔쳐서 만들거나 침대의 다리를 잘라 사용하였고 환기장치는 통조림을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 “The Great Escape”에서와 같이 땅굴을 파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음을 숨기기 위해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고 하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1명이 부주의로 떨어뜨린 흰색의 가방이 경계병에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70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포로들이 탈출하였을 것이라고 하는데 탈출이 있고부터 4시간이 지나서야 포로들의 탈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뒤늦게야 포로들의 탈출사실을 알게 된 영국은 경찰과 군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검문과 수색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모든 포로들을 다시 잡게 되었는데 가장 늦게 잡은 포로가 탈출 후 1주일 만에 사우샘프턴(Southampton)에서 잡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수많은 포로들이 사살되지만 탈출한 독일군 포로들은 사살되지 않았다고 하며 그 이후 아일랜드 팜(Island Farm) 포로수용소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의 피고들을 수용하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1990년에 철거되었고 환경보호론자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1년에 2회만 공개되는 9번 막사(Hut)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정부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터널은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2차 대전의 기록에도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치욕스런 일이라 생각하여 감추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