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낚시용 릴과 민물낚시용 릴은 어떻게 다를까?

바다낚시용 릴과 민물낚시용 릴은 어떻게 다를까?

낚시를 갓 시작한 분들로부터 심심찮게 듣는 질문으로 “이 릴을 바다에서 사용해도 되나요?”라거나 “SW란 말이 없는 것은 민물용인가요?” 하는 것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많은 낚시인들은 SW는 해수(海水: Salt Water)의 약자이고, FW는 담수(淡水: Fresh Water)의 약자이기 때문에 SW가 붙지 않은 것은 바다낚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민물전용의 릴은 있어도, 바다전용 릴은 없다고 하는 말이 맞다.

민물낚시용 릴과 바다낚시용 릴을 구분하는 기준은 방수성능인데 방수기능을 희생해서 회전성능을 높이는 것이 민물용 릴이지만 애초에 모든 릴들은 바다낚시를 전제로 설계되기 때문에 민물전용 릴은 있어도 바다전용 릴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SW와 FW의 의미는 해수(海水: Salt Water)와 담수(淡水: Fresh Water)가 맞지만 SW란 말이 없는 제품 중에도 바다에서 쓸 수 있다고 표시한 제품들이 있으며 특별하게 바다에서 사용해선 안된다는 제한이 없는 한 모든 릴은 바다낚시에서 사용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SW와 FW로 구분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위에서도 얘기한 바와 같이 모든 릴은 바다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인 방수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시마노사의 제품을 보면 하이엔드 모델이라고 하는 스텔라의 라인업에는 SW가 붙은 제품들이 있는데 여기에 붙은 SW는 바다낚시용이라는 의미보다는 보트낚시나 쇼어지깅과 같이 파도나 물보라가 직접 릴에 닿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만일 SW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은 바다낚시에 사용해서 안 된다고 하면 시마노의 스텔라나 트윈파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멘붕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모든 릴은 바다에서 사용할 수 있으나 특별하게 FW란 말이 붙은 제품은 가능하면 바다에서의 사용을 삼가는 것이 좋고, SW가 붙어 있지 않는 릴들은 바다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염분을 제거해주어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차이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시마노의 오콘과 캘콘이라는 모델을 꼽을 수 있는데 오콘이 방청베어링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캘콘은 일반 베어링을 사용하고 있으며 방청베어링을 채택한 오콘을 바다전용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외에도 다른 차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캘콘을 바다에서 사용하지 말라고는 홍보하지 않는다. 즉 모든 릴은 바다낚시를 전제로 만들어지고 있으므로 특별히 FW가 붙어 있거나 SW가 붙어 있지 않은 모델은 방수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세척하여 염분을 제거해주는 노력이 있어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

스피닝릴에 사용되는 웨이브와셔를 아십니까?

스피닝릴에 사용되는 웨이브와셔를 아십니까?

오늘은 스피닝릴의 분해조립에 사용하는 심조정와셔라는 부품을 주제로 낚시용품 업체들의 지나친 과장광고와 정확한 내용도 모르는 채 무조건 좋다고만 하는 맹목적이고 추종적인 소비자행태를 알아보고 스피닝릴의 제조에는 두 가지 형태의 와셔가 사용된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마노에서 14스텔라를 출시하면서 홍보했던 내용 가운데는 S다이렉트 기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술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핸들의 회전성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회전하는 방향으로의 덜컹거림을 억제하고 부품의 정밀도를 향상시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걸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어떤 릴도 핸들을 돌릴 때 회전방향으로 떨리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런 현상을 부품의 정밀도를 높이고 피니언 기어에 탄성이 있는 소재를 추가함으로써 억제한다는 것이 S다이렉트 기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기술이 집약된 S다이렉트 기어의 핵심은 지금 보시는 사진의 빨간색 네모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게 과연 무엇이길래 그토록 좋은 효과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그건 뒤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S다이렉트 기어가 적용된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구글번역기로 돌린 것을 보면 “이건 정말 감동이다. 이 기술이 적용된 릴을 돌리다가 다른 릴을 돌리면 어라! 하고 생각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라고 아주 극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의 기술이길래? 그리고 그토록 좋은 기술이 지금은 왜 보이지 않을까? 이런 두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은 소비자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럼, 그 실체를 살펴볼까요?

보이십니까? 피니언 기어의 아래에 들어있는 고무링이 바로 S다이렉트 기어의 핵심입니다. 그림의 빨간색 화살표는 시마노에서 표시한 것이고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즉 14스텔라에서는 O링을 피니언 기어의 아래에 추가하여 부품공차를 줄이도록 제작하였는데 고무링을 하나 넣어놓고는 이것이 대단한 기술인양 S다이렉트 기어란 이름을 붙인 제조사나 이것을 적용한 제품을 사용해보면 분명히 다른 것과 차이가 난다고 느낄 것이라 평가하는 소비자나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고 빨아도 너무 빨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처럼 좋은 기술이 왜 18스텔라에서는 보이지 않았을까요? 시마노는 18스텔라에서 O링을 웨이브 와셔(Wave Washer)로 교체하면서 이름을 사일런트 드라이브로 바꾸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은 이것이 서로 다른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이와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웨이브 와셔를 사용하고 있었죠.

앞에서 O링이 들어있던 제품을 사용하면서 극찬했던 그분은 웨이브와셔로 바꾼 제품은 무어라 평가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처럼 스피닝릴에는 일반적인 심 조정와셔 외에 심조정의 기능과 스프링의 기능을 함께 하는 웨이브와셔, 다른 말로는 파도와셔라고 하는 것이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웨이브와셔는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이 피니언기어의 아래와 웜샤프트에 주로 사용되지만 부품도에는 와셔의 종류는 표시하지 않고 있죠.

 

그러므로 0.1mm의 차이로도 덜컹거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비할 때에는 사용하는 와셔의 종류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스피닝 릴의 기술개발과 특허등록 실태

스피닝 릴의 기술개발과 특허등록 실태

금요일 밤낚시를 다녀온 피로가 아직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손맛을 보고 온 것에 힘을 얻어 스피닝 릴의 개발과 특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한 손만으로 베일을 열고 캐스팅할 수 있는 원 핸드 캐스팅 방식의 스피닝 릴이 아주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 대표적인 모델로는 다이와의 TD1355H가 있죠.

 

그리고, 이처럼 캐스팅할 때 라인을 잡는 검지만으로 베일을 열어 캐스팅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영어로 Fast Cast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시마노와 다이와는 Fast Cast란 표현을 미국에선 쓸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Fast Cast란 단어를 아부가르시아가 상표권으로 취득해버렸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시마노는 하는 수 없이 미국에서는 한 손으로 캐스팅할 수 있는 이런 기능을 가진 스피닝 릴에 Fast Cast 대신에 Quick Fire란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아부가르시아도 일본에서는 Fast Cast란 단어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시마노가 일본에서 Fast Cast에 대한 상표권을 취득해버렸기 때문에 아부가르시아는 일본에서 FC기구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런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 특허권으로 인해 벌어진 것입니다.

특허권은 20년의 존속기간이 끝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므로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업체들의 특허출원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며 출원건수가 많을수록 등록건수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한때 낚시용품이 수출산업의 효자품목으로 꼽히던 시절에는 스피닝 릴에 대한 국내기업들의 특허출원도 활발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스피닝 릴의 기술개발이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일본을 뛰어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현실을 국내업체들이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구요.

우리나라 최초의 스피닝 릴을 만들었던 서울조구를 예로 들면 모두 26건의 특허를 등록하였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멸되었고, 새롭게 공개되거나 등록된 특허가 전혀 없다는 것이 국내 스피닝 릴 생산에 대한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재 국내 낚시용품업계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바낙스는 낚시용 릴과 관련하여 11건의 특허가 공개되어 있지만 모두가 베이트 릴에 관한 것이고 이것을 다시 등록된 특허로 그 범위를 줄여보면 개인이 출원하여 등록된 것을 제외하면 국내업체가 개발하여 등록된 특허는 단 1건도 없다는 서글픈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스피닝 릴과 관련한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곳은 어디일까요?

예상하시는 대로 시마노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선두로 달리고 있으며, 시마노의 말레이시아 지사와 다이와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럼, 스피닝 릴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일본은 어떨까요?

2012년부터 올해 3월까지 스피닝 릴과 관련하여 공개되거나 등록된 특허의 건수는 다이와가 353건, 시마노 본사가 365건, 시마노 말레이시아가 39건이며 그 외에도 군소업체들의 기술개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일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원투낚시용 스피닝 릴들은 모두 제도권 밖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의 제품들로 공히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발(開發)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새로운 생각을 내어놓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과연 그 제품들은 개발이란 표현이 어울릴까요?

전동릴의 권상력(巻上力)이란 무엇일까?

전동릴의 권상력(巻上力)이란 무엇일까?

일본으로부터 많은 낚시용품들이 수입·판매되면서 사용하는 용어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초보낚시인들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전동릴에 사용되는 권상력(巻上力)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세계최초로 전동릴을 개발한 일본에서도 권상력(巻上力)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업체마다 표기하는 방법이 다른데 예를 들면 시마노는 ‘시마노 권상력’이란 표현을 쓰고 다이와는 ‘최대권상력’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의 바낙스는 ‘맥스 파워’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사단법인 일본조용품공업회(JFTMA: Japan Fishing Tackle Manufacturers Association)가 규정하고 있는 권상력(巻上力)의 기준도 실측값이 아닌 계산값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기준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세계최초의 전동릴은 일본의 미야마에(ミヤマエ)에서 1967년에 출시한 미야에퍽(Miya Epoch)이란 제품이다.

 

일본조용품공업회(JFTMA)의 권상력(巻上力) 측정방법은 아래의 그림과 같이 50㎝~100㎝ 정도의 길이를 주고 라인에 1㎏ 정도의 텐션을 주었을 때 정동토크의 값을 T라 하고 이것을 스풀의 외경과 내경을 기반하여 계산한 값을 kg으로 산출한 것을 표기하고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권상력이 무엇인지 더욱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용어부터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일본어로 권상(巻上)이라고 하는 것은 감아올린다는 뜻을 가진 마키아게루(巻(き)上げる)를 말한다.

이 정도만 알아도 권상력(巻上力)이 무엇인지, 릴의 핸들을 한 바퀴 감았을 때 감기는 라인의 양인 권상장(巻上長)이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업체마다 표기방법이 다른 최대권상력은 조금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아주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권상력(巻上力)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자.

전동릴이란 모터에 의해 구동되는데 고기가 물었을 때 모터의 회전에 의해 감아올리더라도 일정한 힘(부하)이 넘으면 모터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처럼 모터가 회전할 수 없을 정도의 부하가 걸린 상태를 일본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던 정동토크(停動torque)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영어로는 멈춘다는 뜻을 가진 Stall을 사용하여 스톨링 토크(stalling torque)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때의 모터의 순간적인 출력치는 최대가 되는데 이것과 업체가 홍보에 사용하는 최대권상력 또는 시마노권상력과는 차이가 있다.

둘의 차이점은 지렛대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데 다음 기회에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요점만 간단히 알아보고 마치도록 하자.

전동릴을 사용하면서 각각 1㎏와 5㎏의 물고기가 물었다고 가정하면 감아올리려는 모터의 회전속도는 감속하게 되는데 이때 부하에 따라 감속하는 속도가 다르고 감속속도가 빠를수록 감아올리는 데에는 더 큰 힘이 필요하게 된다.

즉 최대권상력(最大巻上力)이라고 하는 것은 모터의 감속하는 속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서 측정한 값인지에 대한 데이터를 보지 않고서는 신뢰도에 대하여 평가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끝으로 권상력(巻上力)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리해보면 감아올린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마키아게루(巻(き)上げる)의 힘(力)을 말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리와인더 파워(Rewind Power)라고 하며 전동릴의 모터가 감아올리는 힘(파워)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시마노 스피닝 릴 19뱅퀴쉬 탐구

시마노 스피닝 릴 19뱅퀴쉬 탐구

이 글은 2019-01-30 18:11:43에 티스토리에 올렸던 것을 재업하는 것이므로 현재 판매되는 제품과는 다소 상이한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예약판매에 돌입한 시마노의 스피닝릴 19뱅퀴쉬는 많은 사람들의 트윈파워 뉴 모델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새롭게 선을 보이는 기종입니다.

경쟁하면서 발전해온 시마노와 다이와란 글에서도 알아본 것처럼 시마노와 다이와 양사는 서로 경쟁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있는데 경량화라는 부분에서 톱을 차지하고 있던 시마노의 16뱅퀴쉬가 다이와에서 새롭게 들고 나온 LT개념의 18이그지스트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었지요.

그동안 16뱅퀴쉬의 1000S 모델이 155g의 자중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을 다이와의 18이그지스트가 150g의 자중을 실현함으로써 빼앗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뱅퀴쉬의 신규 모델을 출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시마노의 16뱅퀴쉬 1000S의 자중이 155g이던 것을 경량화를 실현하여 145g으로 낮춤으로서 다이와에 내주었던 경량화 1위의 자리를 다시 탈환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선을 보이는 New 뱅퀴쉬는 4000XG가 기존의 것에 비해 40g이나 무게를 줄임으로써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평균적으로는 20g의 경량화를 이루었다는 것이 시마노에서 홍보하는 가장 큰 핵심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19뱅퀴쉬와 16뱅퀴쉬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6뱅퀴쉬의 라인업이 13개였던 것에 비해 이번에 출시되는 19뱅퀴쉬의 라인업은 모두 15개로서 2개가 증가한 것이 눈에 띄고 이전의 모델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라인롤러와 베어링을 일체화 한 것은 개선을 하지 않고 기존과 같이 만든 것으로 판단되는 점은 비록 방수기능을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19뱅퀴쉬의 간략한 제원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델
기어비
자중
권사량(1회전당)
베어링 수
1000SSSPG
4.6
145g
58cm
11/1
C2000S
5.1
145g
69cm
11/1
C2000SSS
5.1
145g
69cm
11/1
C2000SHG
6.1
145g
82cm
11/1
C2500SHG
6.0
155g
81cm
11/1
2500S
5.3
165g
78cm
11/1
2500SHG
6.0
165g
89cm
11/1
C3000
5.3
170g
78cm
11/1
C3000SDHHG
6.0
175g
89cm
11/1
C3000MHG
6.0
170g
89cm
11/1
C3000XG
6.4
170g
94cm
11/1
3000MHG
5.8
185g
86cm
11/1
4000MHG
5.8
205g
95cm
11/1
4000XG
6.2
200g
101cm
11/1
C5000XG
6.2
220g
101cm
11/1

 

뱅퀴쉬가 자중의 경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요인은 로터의 소재로 CI4+를 사용하면서 매그넘 라이트 로터를 채택한 것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19뱅퀴쉬에서도 바뀌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18스텔라에 탑재되었던 마이크로 모듈기어Ⅱ를 채택하여 기존의 것과는 차별화를 이루었고 방수기능에 있어서는 기존의 코어 프로텍터 대신에 X프로텍터를 탑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은 경량화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기에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매그넘 라이트 로터를 다시 설계하고 핸들에도 CI4+를 사용하여 경량화(3g~7g)를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16뱅퀴쉬에서도 사용하고 있던 HAGANE 기어를 18스텔라에 탑재한 것과 같은 것으로 교체함으로써 2배나 높은 기어의 강도를 실현하였다고 하는데 이 점은 약간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19뱅퀴쉬는 기존의 모델과는 달리 스텔라와 같은 “롱스트로크 스풀”을 탑재하여 비거리를 4% 증가시켰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이전에 작성한 릴의 스트로크와 라인트러블 및 비거리의 관계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외에도 1,000~4,000번까지는 펠트소재의 드랙와셔를 사용하고 5,000번에서는 내구성을 중시하는 카본와셔를 사용하고 있으며 마찰이 적은 롤러클러치를 탑재하고 있는 등 모두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여러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의문이 드는 것은 시마노의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만으로 판단하는 것이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바디가 모두 마그네슘을 소재로 한 것이었던데 비해 혹시 하이브리드 바디를 채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과 여전히 베어링 일체형의 라인롤러를 채택하여 소음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기어의 강도는 과장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경량화와 비거리의 향상 및 릴을 감을 때의 부드러움과 가벼움 등은 지금까지 공개한 시마노사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개선된 것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의 스피닝 릴⑭ 번외편-셰익스피어

세계의 스피닝 릴⑭ 번외편-셰익스피어

실물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는데,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경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인한 고용불안은 서민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낚시용품 회사인 미국의 셰익스피어에 관한 얘기를 한다면서 무슨 경제를 논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연재를 마쳤던 세계의 스피닝 릴 번외편으로 미국의 셰익스피어(Shakespeare Fishing Tackle)에 관한 얘기를 적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상생경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모범 케이스가 바로 셰익스피어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 ⑨편에서 소개했었지만 다시 간략하게 셰익스피어(Shakespeare Fishing Tackle)를 소개하자면 지금은 퓨어피싱에서 소유하고 있는 낚시용품 브랜드인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베이트 릴에서 라인을 고루 감을 있도록 해주는 레벨 와인드(level wind)를 세계최초로 상용화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은 낚시용품이 아닌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와 그의 사업에 포커스를 맞추어 얘기를 해볼까 한다.

 

1929년~1933년의 대공황 당시 불황이 계속됨에도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는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고 대신에 근로시간을 3~4시간 단축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급여의 정상적인 지급이 어렵게 되자 주당 50달러 정도의 주식을 임금으로 지불하였는데, 돈이 급한 직원들은 그것을 내다 팔아 25센트를 마련하였고, 그나마 여유가 있던 직원들은 기다렸다가 급여를 지급받았다.

이처럼 기업과 근로자 간의 상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던 셰익스피어는 대공황이 휩쓸던 시기에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세계적인 낚시용품 회사인 셰익스피어의 창업자인 윌리엄 헨리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Henry Shakespeare, Jr)는 1869년 9월 21일 미시간 주의 칼라마주(Kalamazoo)에서 태어났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호기심과 자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아버지는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자원입대하였으며 그것은 칼라마주(Kalamazoo) 출신으로는 최초의 지원병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제대 후에는 변호사로, 나중에는 은행가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남북전쟁 참전 군인들을 위한 군인공제회인 공화국의 위대한 군대(Grand Army of the Republic)의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이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셰익스피어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보이고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다.

19세인 1888년에는 다니던 상점을 그만두고 치과용 드릴을 개발한 조지 그린(George F. Green) 밑에서 일을 배웠으나 1년 만에 다시 그만두고는 카메라의 셔터를 제작하는 회사를 공동으로 창업하여 여러 가지 특허를 취득하였는데 이때 그의 능력을 발휘하여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캐스팅 릴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조지 그린(George F. Green)

 

당시의 경제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역에서는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사진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바람에 셰익스피어의 카메라 셔터 사업은 날로 번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자 오랜 연인이었던 코라 먼로(Cora Monroe Shakespeare)와 1890년에 약혼을 하고 1892년 11월 10일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 시기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는 레벨 와인드(level wind)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1897년 5월에 특허를 신청하여 1897년 10월 5일에 특허권을 취득하게 된다.

그러나 특허가 있다고 해서 저절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한 일이었고 특허를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금이 있어야만 했었는데 이런 점에 있어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도 아빠찬스를 활용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그의 아버지가 은행가로도 활약했다고 잠깐 소개했었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의 아버지는 셰익스피어 중앙은행이란 이름의 은행을 설립하여 경영하고 있었으며 이런 아버지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레벨 와인드(level wind)를 세계최초로 실용화한 릴인 스타일 C(Style C)를 출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스타일 C(Style C)

 

1897년에는 The William Shakespeare, Jr. Company를 설립하고 4층 창고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 층에서는 의약품 판매사업을 있었으나 미국의학협회(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허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한 것이어서 접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의약품 판매사업을 중단하면서 생긴 여유자금을 이용하여 월터 마호프(Walter Marhoff)란 사람을 고용하였는데 이것은 셰익스피어란 낚시용품 회사의 발전에 아주 큰 공헌을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월터 마호프(Walter Marhoff)란 사람이 누구냐 하면 마호프 릴을 만든 사람으로 같은 마호프 릴이라 하더라도 셰익스피어에 고용되어 개발하기 이전의 제품은 MRC(Marhoff Reel Company)로 표시되어 있고, 이후부터는 SM(Shakespeare Marhoff) 또는 SMP(Shakespeare Marhoff Product)라는 코드가 표시되었다.

그리고 1908년에는 마호프 릴(Marhoff Reel Company)을 통째 인수하게 된다.

 

이어서 1913년에는 사무실을 이전하고 본격적으로 스포츠용품의 판매를 추진하는데 이런 내용은 다음 기회에 충분히 알아보기로 하겠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플루거(Pflueger)와의 미노우에 관한 특허분쟁에서도 승리했던 일화도 자못 흥미진진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낚시로부터 이어지는 스포츠란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서 크게 주목할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으나 생뚱맞게도 1차 대전 동안에는 모터에 들어가는 퓨즈를 생산하고, 이어서 카뷰레터(carburetor)의 제조에까지 뛰어들어 나중에는 벤츠에 부품을 공급하기에도 이르렀던 것은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빗자루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하여 캐나다에 6만 달러(현재가치로 150만 달러 정도)어치를 수출하기도 하였고 깡통따개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하였으나 수익성이 나빠 오래지 않아 처분하고 말았다.

뭐 이런 것들은 넓게 보면 기계류 사업이라고 봐줄 수 있으니 그렇다 손치더라도 느닷없이 모피류 사업에 손들 댄다든지 심지어는 여성용 속옷을 만드는 사업에까지 손을 대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호기심에 의한 것 때문만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셰익스피어란 회사와 창업자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에만 초점을 맞추어도 거의 책 한 권의 분량은 나올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그의 말년은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에 사망하였는데 그가 죽기 2년 전인 1948년에는 노조의 파업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폭도들이 공장을 습격하여 파괴하는 일이 일어나 급기야는 주 방위군이 투입되기에 이르렀고 1949년 9월에서야 법원의 판결로 파업이 불법임이 인정되었으나 대공황 당시에도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함께 고통을 나눌 정도로 노사간에 신뢰가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로서는 많은 직원들이 자기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면서 크게 실망하였다고 하며 이에 플로리다의 멜버른(Melbourne)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의 사업가적인 능력과 그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여러 차례의 포스팅을 통해서 자세히 알아본 다음 하겠지만 인생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의 스피닝 릴⑬ 번외편-대만의 오쿠마

세계의 스피닝 릴⑬ 번외편-대만의 오쿠마

작년 아베정권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대일의존도가 높은 낚시용품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해오고 있었는데, 특히 한국 낚시용품시장에서 일제 스피닝 릴이 독과점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할 국산품이 없다면 전 세계적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12회에 걸쳐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제목으로 시리즈를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2019년 일본제품의 수입액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제품 대신에 국산품을 사용하려는 낚시인들의 증가에 편승하여 저급한 중국산에 로고 하나 덜렁 인쇄하고는 무슨 큰 개발이라도 한 것처럼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보면 안씁을 넘어 화가 나기도 한다.

스피닝 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지조차도 의심될 정도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소규모라서, 역사가 짧아서 기술이 모자란다거나 무조건 나쁘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밝혀둔다.

또한 국내업체들 중에는 중국과 손잡고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곳들도 있는데 얄팍한 상술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부류를 크게 나누어보면 소규모 개인기업 형태와 여러 가지 브랜드가 합쳐진 집단브랜드 및 단일업체의 브랜드로 나눌 수 있는데 소규모 개인기업은 사업의 계속성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대표적인 스피닝 릴 브랜드로는 미국의 애큐리트를 들 수 있다.

한편 집단브랜드로는 널리 알려진 제브코(Zebco), 퀀텀(Quantum), 반스탈(Van Staal)과 같은 브랜드를 소유한 브래들리와 펜(Penn), 미첼(Abu-Garcia), 아부 가르시아(Abu-Garcia) 등을 소유한 뉴웰이 대표적이며 단일 브랜드로는 일본의 다이와, 시마노 및 대만의 오쿠마(Okuma)가 대표적이다.

특히 1986년 장 리앙 렌(張良任) 사장이 설립한 대만의 오쿠마는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큰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란 포스팅을 봐도 알 수 있고, 지금은 국내 최고의 낚시용품업체가 된 B사도 대만의 오쿠마보다 먼저 스피닝 릴의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대만의 오쿠마(OKUMA FISHING)가 세계 3위의 릴 제작업체로 도약한 반면 국내업체들의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할 따름이다.

오쿠마(Okuma)도 처음 출발은 여느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으로 시작하였는데 국내업체들이 일본과 손잡은 것과는 달리 오쿠마(Okuma)는 “세계의 스피닝 릴⑩편”서 소개했던 150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의 D.A.M과 손을 잡았다.

일본과는 달리 오쿠마(Okuma)가 독일로부터 많은 기술이전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독일의 D.A.M을 뛰어넘는 기업이 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면에는 꾸준한 기술개발과 같은 노력이 따랐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오쿠마(Okuma)가 OEM으로 생산했던 제품 중에는 미국의 티뷰론(TiburonFishingReels.com)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티뷰론에서 오쿠마(Okuma)를 위하여 릴을 설계해줄 정도였으니 고객에 대한 신뢰도 또한 아주 높았음을 알 수 있으며 미국의 티뷰론이 오쿠마를 위하여 설계한 릴은 마카이라(Makaira)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계적인 릴 제조업체들을 보면 가격이 고가일수록 사용한 부품의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하고 있는데 오쿠마는 일본의 미네베아미쓰미(MinebeaMitsumi)에서 생산하는 베어릴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것은 시마노의 스텔라와 다이와의 솔티가에 사용되는 베어링과 동일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다시금 스피닝 릴의 제조에 도전하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음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처음부터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처음에는 보급형이라고 하는 저가제품으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된 제품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중도에 멈추지 않고…

그러나 싸구려 중국산 제품에 마크 하나 달랑 바꿔 붙이고, 자체개발했다고 사기치는 업체는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그런 업체는 종국에는 국내 낚시인들에게 국산제품의 불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며 차제에 인터넷 동호회를 기반으로 공동구매라는 미명하에 탈세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낚시용품의 판매방식에 대해서도 당국의 규제와 단속이 있기를 바란다.

세계의 스피닝 릴⑫ 마지막 이야기

세계의 스피닝 릴⑫ 마지막 이야기

조금 더 오래 여러 나라의 스피닝 릴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할 생각이었으나 추후 각 업체 별로 다시 한 번 다루기로 계획을 변경하여, 이것으로써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의 연재를 마칠까 한다.

사실, 이 연재물은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를 대체할 수 있는 스피닝 릴에 대한 문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최근 들어 많은 낚시인들이 일제 스피닝 릴을 대신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스피닝 릴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던 나라는 수없이 많지만, 지금은 모두 도태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세계의 스피닝릴 시리즈에서 소개했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의 특허가 공개되면서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앞 다투어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었고 그 가운데는 여기서 소개하지 못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3국의 업체만 해도 100개가 넘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유일하게 체코 정도가 묵묵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라의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낚시용 장비를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스피닝 릴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경쟁하듯이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벨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벨기에의 낚시인들은 중에는 당시에도 얼리어답터가 존재했었고 그들은 세계적 흐름인 스피닝 릴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은 사진의 릴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경영하던 공장에서 실을 감을 때 사용하던 보빈(bobbin)에 착안하여 스피닝 릴을 개발했던 것처럼 벨기에에서 직접 스피닝 릴을 제작했던 사람들도 방직공장의 직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유럽이 선도하던 스피닝 릴의 생산은 일본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기업의 진출로 세계시장이 재편되고 말았는데 그 여파를 비켜가지 못한 나라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차츰 우리 업체들이 생산하는 낚시용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면의 양면과 같이 좋은 면이 있으면 좋지 않은 면도 노정되는 것이 세상사 이치란 것을 다시 한 번 목격하게 되는데 무슨 기념수건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직접 개발했다고 광고하면서 판매하는 릴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부품은 물론 분해도까지 똑같은 것을 보고는 실소가 아니라 분노를 금하지 못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피닝 릴 생산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는 업체의 과장광고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시마노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피니트 드라이브 기술은 토크를 26%나 개선해준다.(Infinity Drive Technology offers an improved winding experience, optimizing winding torque by 26%.)”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특히나 과장된 마케팅 용어의 사용을 싫어하는 내게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물론 홍보하는 2019년식이 이전 모델에 비해서 개선이 된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지만 26%까지는 결코 아니란 것이 유저들의 중론인데 시마노가 홍보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운동화만 바꾸어도 올림픽에서 100m 기록을 1/3이나 단축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힘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회전력을 증가시키는 일련의 기술적인 시스템이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을 부가하지는 않은 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 멈추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대세이기라도 한 것처럼 국내 업체들도 이와 비슷한 홍보를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언제나 낚시용품과 관련한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면 일본을 따라잡거나 추월하려고만 하지 말고 새로운 낚시문화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라는 조언을 하지만 크게 안중에는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업체이기는 하지만 에기의 생산으로 유명한 야마리아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스피닝 릴 시리즈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1941년 창업자인 야마시타 쿠스타로우(山下楠太郎)가 설립한 야마시타 낚시점이 모태인 야마리아는 쿠스타로우 형제가 빨간색의 천조각에 참치가 잡혔던 것에서 착안하여 가짜미끼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최초로 선보였던 것이 바로 아래의 골든 베이트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은 1956년 일본의 수출전시회에서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런 역사를 가진 야마리아가 오징어를 잡는데 사용하는 에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은 1969년부터의 일로 당시에는 낚시인이 아닌 어업용으로 외부에서 조달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낚시인들의 문의가 들어오면서 1981년부터 에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1982년에 2대 사장으로 취임한 야마시타 세이치(山下整治)는 에기를 낚시인들에게도 판매하기로 결정하지만 본격적으로 시판된 것은 1988년부터였다.

이와 함께 나무로 된 미끼를 뜻하는 에기(餌木:えぎ-egi)에 영어의 진행형 ing를 붙여서 에깅(Egiing)이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의 낚시를 홍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배스낚시를 배싱(Bassing)이라 부르고 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깅낚시를 야마리아 자체의 힘만으로는 널리 알릴 수 없었기에 낚시전문 잡지인 “월간 피싱(月刊フィッシング)”과 손을 잡고 홍보하기 시작했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합사(PE)의 출현과 맞물린 1990년대부터였는데 에기를 생산하고부터 10년이 걸려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야마리아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낚시용품업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고 하지만 모방에만 너무 맛들려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의 낚시용품업계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연재를 마친다.

세계의 스피닝 릴⑪ 펜(PENN)릴의 역사

세계의 스피닝 릴⑪ 펜(PENN)릴의 역사

국내 낚시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미국의 퓨어피싱이 소유하고 있는 브랜드인 펜(PENN)에서 생산하는 스피닝 릴은 그 세부적인 사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펜(PENN)의 역사와 펜의 스피닝 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내용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1932년에 펜 낚시용품 제조회사(Penn Fishing Tackle Manufacturing Company)를 창업한 오토 헨즈(Otto Henze)는 1897년 3월 20일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생활하다가 이민길에 올라 1923년 2월 23일 미국 뉴욕에 도착한다.

오토 헨즈(Otto Henze)는 독일에서 기계공학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데 그가 뉴욕에 도착하면서 작성한 출입국기록에는 자신의 직업을 기계공(machanician)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나이 25세에 낯선 타국 땅에 발을 디딘 오토 헨즈(Otto Henze)는 1922년에 설립된 필라델피아의 릴 제조업체인 오션시티(Ocean City Manufacturing Company)에 입사하여 릴을 제작하는 기술과 무역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그리고 1932년에 조지 헌트(George Hunt)라는 투자자를 만나 공동으로 펜 낚시용품 제조회사(Penn Fishing Tackle Manufacturing Company)를 창업하게 되지만 당시는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회사의 3층 다락을 빌려 회사를 차렸고 회사의 앞날을 낙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창업과 함께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면서 생산했던 모델 F와 K가 1932년에만 2천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사업은 발전하게 되었고 오토 헨즈(Otto Henze)는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마사 해커(Martha Haecker)라는 여성과 1935년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한편 오토 헨즈(Otto Henze)가 취직하여 기술과 실무를 배울 수 있었던 오션시티(Ocean City Manufacturing Company)는 1968년에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토 헨즈(Otto Henze)가 만들었던 펜(PENN)릴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는 당시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1933년에 7,526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다음해인 1934년에는 47,834달러로 비약적인 증가를 이루게 되고 1935년에는 66,161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된다.

당시의 화폐가치가 잘 실감이 가지 않기 때문에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해보면 1933년에는 14만8천 달러, 1934년에는 91만5천 달러의 매출을 올리다가 1935년에는 123만8천 달러라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업주인 오토 헨즈(Otto Henze)는 1949년 2월 11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아내인 마사 해커(Martha Haecker)가 뒤를 이어서 경영을 맡게 되는데 그녀가 회사의 경영을 맡으면서 펜은 더 크게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펜 최초의 스피닝 릴도 출시하기에 이른다.

 

낚시를 좋아하기도 했던 마사 해커(Martha Haecker)가 경영을 맡고나서 1961년에야 최초의 스피닝 릴 ‘스핀피셔 700(Spinfisher 700)’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것을 알아보기 이전에 국내의 낚시용품업체들도 언제나 블로그를 통해서 강조하는 국제게임피싱연맹(IGFA: International Game Fish Association)을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1955년 펜 릴을 사용하여 5개의 새로운 세계기록을 작성한 이후 1997년에는 800개 이상의 기록이 수립되었기에 외국의 낚시인들에게는 펜(PENN)이란 브랜드는 우수한 품질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점은 일본의 시마노와 다이와도 마찬가지다.

펜(PENN) 최초의 스피닝 릴 ‘스핀피셔 700(Spinfisher 700)’이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튼튼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큰 요인이지만 나는 이에 더하여 얄팍한 상술을 부리는 어떤 나라의 제품들과는 달리 모델변경의 주기가 길뿐 아니라 변경을 하더라도 사용하는 부품의 변경은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장점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스핀피셔 700(Spinfisher 700)

 

그런데 펜(PENN)의 스피닝 릴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것으로 모델명에 붙는 표현이 있는데 판매하는 곳들에서는 이런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한 번 알아볼까 한다.

모델명 뒤에 아무런 접미사 붙어있지 않는 제품은 기본제품임을 의미하며 그 외에 아래와 같은 접미사가 붙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HS: 하이 스피드(High Speed)의 약자로 하이기어라고 이해하면 된다.

BLS: 베일이 없는 모델

LC: 롱 캐스트(Long cast)의 약자로 원투낚시용이라 이해하면 된다.

C: 릴의 성능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내용물이 보이는 방식으로 포장(Clam shell pack)한 제품이라는 뜻의 약자다.

LL: 라이브 라이너(Live liner)의 약자로 보조드랙으로서 후면드랙을 갖춘 모델을 말한다.

LLC: 라이브 라이너(Live liner)가 있는 모델을 내용물이 보이도록 포장했다는 뜻이다.

 

Clam shell pack

 

라이브 라이너(Live liner)

다음으로 알아두면 좋은 것이 펜(PENN)의 방수등급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바닷물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방수방진(IP)시험은 ‘IEC 60529’란 국제규격에 따라 분류하는 등급으로서 IP뒤에 오는 숫자의 위치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IP6X, IPX7과 IP67의 차이점을 알아보면 IP6X는 방진등급이 6이라는 뜻이고 IPX7은 방수등급이 7이란 뜻이며 IP67은 방진등급은 6, 방수등급은 7이란 것을 의미한다.

방진등급은 0에서 6까지의 7단계로 나뉘고 방수등급은 0에서 8까지의 9단계로 나뉘는데 방진방수등급이 중요한 요소인 제품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스마트폰을 들 수 있는데 아이폰 7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침수로 인한 피해는 보증대상이 아니며 이러한 규정은 릴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니 알아두는 것이 좋다.

 

보증제외 대상

목욕탕: 상온의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온 천: 상온의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수영장: 염소와 같은 소독용 물질이 가미된 것으로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바닷물: 염분의 농도가 짙으며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아이폰에서 정하고 있는 규정을 보면 바닷물에 빠졌을 때의 피해는 보증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홍보하는 방수등급이라도 할지라도 실험의 방법이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염분의 농도가 짙은 바닷물에서는 방수성능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IPX1~IPX4까지를 흔히 생활방수라 표현하고 IPX5~IPX8까지를 완전방수라고 하는데 이의 실험방법을 알아보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등급
보호 정도
시험 방법
IPX0
없음
테스트를 실시하지 않음
IPX1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의 보호
200mm의 높이에서 분당 1mm의 유량으로 뿌리는 물에 10 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2
수직에서 15° 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의 보호
200mm의 높이에서 4개소에 각각 분당 3mm의 유량으로 뿌리는 물에 10 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3
수직에서 60° 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의 보호
200mm의 높이에서 연직 방향에서 60° 각도로 뿌리는 물에 10 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4
전 방향으로 비산되는 물로부터의 보호
300∼500mm 거리에서 모든 방향으로 뿌리는 물에 10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5
전 방향으로 쏟아지는 물로부터의 보호
내경 6.3mm의 노즐에서 분당 12.5리터의 물을 2.5~ 3m의 위치에서 3분 이상 뿌려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6
파도 등의 강력하게 쏟아지는 물로부터의 보호
내경 12.5mm의 방수 노즐에서 분당 100 리터의 물을 2.5 ~ 3m의 위치에서 3 분 이상 살수도 견딜 수
IPX7
일정한 조건으로 물에 잠겨도 사용 가능
정지된 수심 1m의 물속에 30분간 방치해도 물이 침투하지 않아야 한다.
IPX8
물속에서 사용가능
정지된 수심 1.5m의 물속에 30분간 방치해도 물이 침투하지 않아야 한다.

 

펜(PENN)릴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수등급을 보면 스핀피셔6(SpinfisherⅥ)가 IPX5 등급, 슬래머 3(SlammerⅢ)가 IPX6 등급, 고가의 기종이라고 할 수 있는 토크2(TorqueⅡ)가 IPX6 등급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상기의 표에서 본 것과 같이 이는 바닷물이 아닌 수돗물을 사용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등급이므로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세계의 스피닝 릴⑩ 독일의 D.A.M.

세계의 스피닝 릴⑩ 독일의 D.A.M.

정밀공업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나인 독일의 낚시용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국내낚시인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격과 품질 면에서 두루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의 낚시용품 중에서 특히 릴은 역사적으로 독일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유명 낚시인⑦ 스타 드랙의 개발자 윌리엄 보센”을 통해서 스타드랙의 특허는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란 사람이 취득하였다는 것을 알아보았는데 1836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는 1857년 릴을 제작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잘못된 정보로 실상은 그의 아버지인 프르드리히(Friedrich)가 시작한 사업에서 제작기술을 익히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가 은퇴한 1882년 이후에야 자신의 이름을 단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란 이름을 달고 릴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는 1867년 11월 26일 첫 번째 특허를 시작으로 윌리엄 보센(William Boschen) 대신에 등록하여 1911년 3월 21일에 취득한 특허까지 모두 9개의 릴에 관한 특허를 취득하였는데 미국에서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가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을 때인 1875년, 독일에서는 지겐스펙(Ziegenspeck) 형제에 의해 낚시용품의 제조와 유통을 하는 회사가 탄생하는데 바로 그 회사가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인 D.A.M.이다.

 

동생인 프리츠(Fritz)와 형인 오스카(Oskar)가 함께 만든 이 회사는 1902년에 독일낚시용품제조회사란 뜻을 가진 “Deutsche Anglers Equipment Manufactory”로 사명을 변경하고 같은 해인 1902년에 뉘른베르크의 어업전시회와 하노버의 스포츠용품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회사명을 다시 “Deutsche Anglers Manufacturer(Deutsche Angelgeräte Manufaktur)”로 변경하면서 줄여서 D.A.M.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1904년 뉘른베르크 전시회의 동메달

 

D.A.M.은 1946년에 유럽에서는 최초로 모노필라멘트 라인인 다이밀(Damyl)을 출시하였고, 그 이전인 1939년에는 독일 최초의 스피닝 릴 퀵(QUICK)을 출시하였는데 영국의 하디(Hary)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프랑스의 미첼 300과 마찬가지로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모델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퀵(QUICK)은 D.A.M.에서 만드는 릴의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첼 300

 

독일 D.A.M.의 퀵(QUICK)

그 후 직원 수만 350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D.A.M.은 지겐스펙(Ziegenspeck) 형제로부터 사업을 이어받았던 오토 쿤체 (Otto Kuntze)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이던 1943년에 사망하고 공장은 파괴되어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오토 쿤체 (Otto Kuntze)의 아들 헬무트 쿤체(Hellmuth Kuntze)와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군첸하우젠(Gunzenhausen)에서 다시 문을 열게 되었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독일 최초의 스피닝 릴 퀵(QUICK)도 개량된 모습으로 새롭게 출시되기에 이르렀으나 헬무트 쿤체(Hellmuth Kuntze)는 병으로 1967년에 사망하고, 이어서 그의 아들들인 루츠(Lutz)와 루페르트(Rupert)가 사업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의 자제들과는 달리 루츠(Lutz)와 루페르트(Rupert)는 열심히 경영을 하여 1973년에는 유럽최초로 카본로드를 제작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며 영국과 프랑스 등지의 낚시용품 제조사들과는 달리 동유럽을 공략하는 시도를 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회사를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게 된다.

D.A.M.은 1995년에 네덜란드의 보섬지(Borsumji)에 넘어갔다가 다시 하게마이어(Hagemeyer)로 주인이 바뀐 뒤 2001년에는 아예 파산하고 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외국의 수입거래처와 직원들이 합심하여 새로운 D.A.M이란 뜻의 ‘노이어 담 인터나치오날(Neue DAM International)’로 재건하고 덴마크의 투자회사(Lars Svendsen Holding ApS)와 손잡고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D.A.M.은 현재 릴 브랜드인 퀵(QUICK)과 잉어낚시용품 브랜드인 매드(MAD), 메기낚시용품 브랜드인 매드캣(MADCAT) 및 루어용품 브랜드인 에프제트(EFFZEET)를 생산하고 있다.

D.A.M.이 생산하고 있는 스피닝 릴 중에서 원투낚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보면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해서 정확한 평가는 할 수 없지만 제원으로만 본다면 일본 시마노의 액티브캐스트나 다이와의 크로스캐스트보다 싸고 품질 좋은 것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품들도 소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유통업체들이 수입을 꺼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지금 번지고 있는 일본불매운동을 계기로 많은 낚시인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낚시용품들에도 한 번쯤은 눈길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