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플라이 낚시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하디(Hardy)”란 글에서 하디사가 스피닝 릴을 생산한 것은 1932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출원했던 특허의 만료와 함께 출시했던 모델인 알텍스(Altex No.1)가 처음이란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면 세계최초의 스피닝 릴은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만든 것일까? 그리고 스피닝 릴의 베일은 처음부터 사용되었던 것일까? 이제부터 그 사실을 하나씩 알아보자.

스피닝 릴이 세계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스코틀랜드 아몬드뱅크(Almondbank) 출신으로 1875년부터 중부도시 퍼스(Perth)에서 박제사로 활동하면서 낚시용품 판매를 겸하고 있던 피터 말록(Peter Malloch)이라는 사람이 1884년에 개발하여 특허를 취득한 것이 역사적으로는 처음이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형태에 가까운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특허를 취득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스피닝 릴의 최초는 일링워스 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만든 최초의 릴 No.1(Illingworth No.1)보다는 베일을 개정하여 1910년에 새롭게 특허를 취득한 두 번째 릴 No2.(Illingworth No.2)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스피닝 릴의 형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링워스(Illingworth) No.1

일링워스(Illingworth) No.2

일링워스(Illingworth) No.3

아무튼 1905년에 특허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금방 다른 업체들에서 이를 카피한 것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특허를 침해했다고 치펜데일(Chippendale)이 고소를 당하면서부터 이런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마침내 1932년이 되면서 특허가 공개되자 하디에서도 스피닝 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1932년 하디사가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프랑스의 미첼에서는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미첼 300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하디사의 특허가 1954년에 공개되면서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를 본 따 만든 스피닝 릴들이 연이어 세상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스피닝 릴도 최근에 와서는 사용자들의 편의성과 기호에 맞게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다.

가장 첫 번째가 지난번에 알아본 “스피닝 릴 베일의 자동반환(오토 리턴) 기능”이란 것인데 이 기능은 특히 동양권에서 계류낚시를 할 때 좁은 지역에서 연속되는 동작을 조금이라도 빨리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사용하는 기능으로 원투낚시와 같은 대형 릴 중에는 이 기능이 없는 것들도 있고 더러는 개인이 이 기능을 하는 부품들을 제거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일의 이런 오토 리턴 기능은 다이와 제품의 경우에는 고질적으로 베일이 아래로 처지는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가급적이면 손으로 여닫는 것이 좋다.

※ 스피닝릴의 베일 처짐 현상과 대처법

 

일반적으로 캐스팅 도중에 핸들이 돌면서 베일이 자동으로 닫히게 되면 특히 원투낚시에서는 딱총이라고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낚시인들은 베일을 연 다음, 로터가 더 이상 회전하지 않는 지점까지 돌리고 캐스팅을 하는데 이것을 일컬어 베일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로터를 잠근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스풀과 로터를 혼돈할 수가 있는데 베일을 연 상태에서 반드시 로터를 돌려야만 멈추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가 있고, 공교롭게도 이 지점에서 베일을 열게 되면 베일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스피닝 릴에서 변화가 있는 부분은 과거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아예 베일을 없앤 제품들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오랜 시간에 걸친 낚시인들의 습관 때문에 저변의 확대가 그리 넓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으나 아무튼 사용자들의 요구와 기호를 반영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은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세계의 스피닝 릴④ 프랑스의 자존심 미첼

세계의 스피닝 릴④ 프랑스의 자존심 미첼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 3편에서 잠깐 소개를 했던 프랑스의 릴 브랜드 미첼(Mitchell)은 창업자인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의 사위 찰스 폰즈(Charles Pons)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 이름을 지금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로 변경하고 1939년에 첫 번째 스피닝 릴을 출시하였다.

그런데 3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미첼이 스피닝 릴의 제작에 뛰어들게 된 것은 한글로 번역하면 낚싯대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La Canne à Pêche)가 C.A.P라고 이름을 붙인 릴의 제작과 개발을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의뢰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 중에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이란 인물이 있었다.

당시 국립파리기계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을 찰스 폰즈(Charles Pons)가 모셔오다시피 해서 데리고 왔는데 그가 스피닝 릴을 개발하는 일에 참가하게 되었고 C.A.P릴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미첼 스피닝 릴이 태어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C.A.P릴이나 최초의 미첼 릴은 그야말로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것이어서 판매가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세 번째로 개발한 미첼 릴이 1946년에 완성되어 1947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미첼 릴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세계최초의 스피닝 릴”이라 홍보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과장광고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여기서 미첼 릴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보고 가도록 하자.

먼저 회사명은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인데 릴의 브랜드는 왜 미첼인가 하는 점으로 미첼이란 브랜드의 탄생배경을 알아보자.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서 릴을 개발하는 사업을 지휘한 사람은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이었고 그가 개발했던 릴은 스풀을 중심으로 릴을 설계하였던 관계로 스풀에 필요한 축의 길이 때문에 한 쪽이 긴 계란형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기존의 릴과 비교하여 독특한 것으로써 이후 타사에서 생산되는 스피닝 릴들도 모두 이 유형을 모방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스웨덴의 아부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스피닝 릴의 한 획을 긋는 제품의 개발에 성공했던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은 그가 만든 제품에 아들의 이름 미셀(Michel)을 붙이려고 하였으나 당시 프랑스의 법률이 정하고 있었던 “특정 제품명으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미셀(Michel)을 영어식으로 바꾸어 미첼(Mitchell)이라고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미첼(Mitchell) 릴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릴의 개발과 제작을 의뢰해왔었던 회사(La Canne à Pêche) 및 아부 가르시아와의 관계이다.

아부 가르시아라는 회사는 스웨덴의 아부사가 미국의 유통회사인 가르시아와 합치면서 변경된 상호명인데 그 이전에 아부사에서 만들었던 최초의 스피닝 릴인 레코드(RECORD) 와는 달리 1955년에 발매되었던 “ABU 444”는 외형이 미첼 릴을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아부 최초의 스피닝 릴이 “ABU 444”라고 하는 정보도 틀린 것이다.)

※ 아부가르시아(Abu Garcia)의 역사

 

아부 레코드(Abu Record)

 

ABU 444

 

물론 스피닝 릴을 제작하는 다른 업체에서도 미첼 릴을 모방한 제품들을 출시하였지만 스웨덴의 아부는 미첼과의 관계를 여는 서막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4천만 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는 미첼 300계열의 릴이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아부사에 합병되기 전의 가르시아란 회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미첼 300(Mitchell 300)은 1939년에 첫 번째 모델이, 1940년에 두 번째 모델이, 1946년에 세 번째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이때까지는 모두 현재와 같은 풀 베일을 갖추지 못하고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것들이었다.

그 이유는 1932년 영국의 하디사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미첼 300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하디사의 특허가 공개된 1954년 이후부터 지금과 같은 풀 베일 구조를 지닌 미첼 300을 출시할 수 있었고 대중의 큰 인기를 받으면서 누적 판매량 3천만 대, 300시리즈 전체로는 4천만 대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제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풀 베일 구조를 가진 모델이 출시되기 전에 1946년에 출시되었던 미첼 300(Mitchell 300)의 세 번째 버전도 모두 27만 대가 팔리는 히트를 쳤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면에 바로 미국의 유통회사 가르시아가 있었다.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CAP릴의 개발을 의뢰하였던 회사(La Canne à Pêche)는 프랑스에서 수출과 수입을 하고 있던 미국회사 임페코(Impecco)와 친분이 있었는데 임페코(Impecco)의 사장이었던 줄스 검프리치(Jules)의 형인 오토 검프리치(Otto Gumprich)가 바로 가르시아의 사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1955년에 1박스에 60개가 담긴 ‘미첼 300’ 1만 박스를 수출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가르시아가 미첼을 인수하고 다시 가르시아는 스웨덴의 아부에 합병되어 현재는 미국의 퓨어피싱이 소유하기에 이르게 된다.

아부 가르시아 이전의 가르시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프랑스의 미첼에 대하여 집중하도록 하자.

1955년 60만 개의 ‘미첼 300’을 미국으로 수출했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는 1957년에는 100만 개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하는데 1970년대 당시 하루에 1만 개 정도가 생산되었던 미첼 릴은 프랑스에서 15%가 판매되고 나머지는 83개국 5,300여개의 판매점을 통해 유통되었는데 전체 수출물량의 65%를 담당하고 있던 곳이 바로 가르시아였으며 마침내 1974년 6월 17일에는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로부터 미첼을 인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가르시아 미첼 300DL’이라는 모델을 출시하게 된다.

 

가르시아 미첼 300DL

 

그 후 가르시아 미첼이란 이름으로 릴을 출시하면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던 가르시아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한 문제를 뒤늦게 인식하고 릴을 판매하는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때는 늦어 결국 주식의 대부분을 다시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양도하고 1978년 8월 10일,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미첼을 인수한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 역시 가르시아의 파산으로 인한 여파를 넘지 못하고 미첼 릴을 유통하는 목적의 미첼 스포츠(Mitchell Sports)를 설립하지만 이 회사는 1990년에 미국의 JWA(Johnson Worldwide Associates)의 손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2000년에 퓨어피싱에 넘어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미첼 릴이 침체기에 빠지게 된 것은 가르시아의 파산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가르시아의 파산으로 인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출시했던 미첼의 모델들이 실패한 것도 1988년에 프랑스에서 모든 생산라인을 철수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전까지 계란형의 형태를 띠고 있던 본체의 모양을 사각형으로 만드는 것에 일견 병적일 정도의 집착을 보인 미첼은 제품의 완성도에서 떨어진 제품들을 출시하여 점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고 사각형의 바디를 가진 릴의 매출부진은 프랑스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미첼을 미국의 손에 넘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세계의 스피닝 릴들을 살펴보면 어느 업체든지 처음에는 기존의 제품들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본의 업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당시 세계적인 유행이었던 계란형도 아닌 원형의 바디를 가진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했던 시마노는 미첼에서 사각형의 바디를 가진 제품들을 출시하자 발 빠르게 바디의 모양을 사각형으로 교체한 덕스를 출시하다가 급기야는 덕스에 New를 붙인 ‘뉴 덕스(New Dux)’를 출시하기에 이르렀고 모방하던 단계를 벗어나 지금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다는 사실은 국내 관련업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덕스(Dux)

 

사각형 덕스(Dux)

 

뉴 덕스(New Dux)

세계의 스피닝 릴③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

세계의 스피닝 릴③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

이탈리아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축구? 사전적인 의미와는 동떨어진 사치품을 일컫는 명품? 아니면 2차 대전? 베니스의 낚시꾼?

낚시라는 관점에서 이탈리아를 쳐다보면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종종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국민성이 닮았다고 하는 글을 볼 때면 일정 부분 수긍이 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낚싯대 던져놓고 졸고 계시는 베니스의 낚시인~^^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나라와 그 업체에 대해서 얘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나라가 이탈리아지만 많은 낚시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세계의 스피닝 릴①편”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탈리아에는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만 해도 100개가 넘는 스피닝 릴 생산업체가 존재했었다.

이탈리아에서 스피닝 릴이 처음 탄생한 것은 1929년 주케티(Zucchetti)란 업체에 의해서였는데 이처럼 많은 제조업체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다고 할 수 있는 알세도(Alcedo)와 창업자 벨리오 장기롤라미(Velio Zangirolami)의 이름을 딴 잔지(Zangi)라는 업체를 비롯하여 많은 수의 스피닝 릴 제조업체들은 토리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토리노는 1899년 자동차업체 피아트의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금속·정밀기계공업의 중심지가 되는데 이러한 배경이 스피닝 릴을 제작하는 업체들이 토리노로 모이게 만든 요인이 되었으며 품질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낚시인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유명한 프랑스의 스피닝 릴 브랜드인 미첼도 토리노와 깊은 연관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낚시인들은 이탈리아 제품에 대해서는 몰라도 프랑스 미첼이란 스피닝 릴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1848년, 이탈리아 정부는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의 국경지역에 있는 끌류스(Cluses)에 왕립시계학교(Royal School of Watch Making)를 설립하였는데 바로 이 학교에 미첼의 창업자인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가 1851년에 입학을 하게 된다.(현재 끌류스(Cluses)는 프랑스령)

시계학교를 졸업한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는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 일하다가 1868년 다시 끌류스(Cluses)로 돌아와 기계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한 뒤 1902년 은퇴하고부터 1919년에 사망하기까지 토리노에서 살았다.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탈리아 출신인데 그를 소개하는 정보에는 프랑스의 시계제작자라고 나오지만 1860년에 이탈리아 국적으로 변경하여 이탈리아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정보는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가 세운 회사는 그의 사위인 찰스 폰즈(Charles Pons)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 사명(社名)을 지금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로 변경하고 1939년에 첫 번째 스피닝 릴을 출시하였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누구는 미첼 최초의 스피닝 릴은 1937년에 생산되었다고도 하고 또 누구는 1939년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맞는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37년에 C.A.P.란 이름으로 출시된 것을 두고 미첼 최초의 스피닝 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회사명이 C.A.P란 곳에서 만든 것으로 대량생산을 위해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의뢰를 하였던 것인데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C.A.P.가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처럼 많은 업체들이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업체로는 알체도(Alcedo), 카르젬(Cargem) 그리고 장기(Zangi)를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장기(Zangi)는 1940년에 설립되어 세계시장에서 스웨덴의 아부사와 어깨를 겨루던 업체였으며 1946년에 설립된 카르젬(Cargem)은 1945년에 설립되어 이탈리아 업체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알체도(Alcedo)와 쌍벽을 이루었던 곳이다.

 

알체도는 1975년 콥테스(Coptes)에 매각된 이후에도 1982년까지는 알체도(Alcedo)란 이름으로 제품이 생산되었는데 알체도에서 1950년에 출시하였던 당시로는 세계 최경량의 스피닝 릴이었던 마이크론(Micron)에 대항하기 위하여 카르젬(Cargem)에서는 미뇽(Mignon)을 출시하였던 것에서 보듯이 이들 두 업체는 지금의 시마노와 다이와 같은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

 

카르젬 미뇽(Cargem Mignon)

 

카르젬(Cargem)이란 회사명은 창업자인 카르발리(Carevalli)가 게모니오(Gemonio)에 세운 회사라는 뜻으로 만든 이름인데 이 회사에서는 1950년대 초에 이미 스텔라(Stella)란 모델명을 가진 릴을 출시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스피닝 릴 제조업체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알체도(Alcedo)는 1948년 롤란디(Rolandi)가 토리노에서 설립한 회사로 첫 번째 모델이었던 옴니아(Omnia)는 스러스트 베어링과 나선형의 헬리컬 기어(helical gear)를 장착한 기어비 1: 3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이어서 기어비 1: 3.5의 알체도 넘버2가 출시되었다.

이어서 1950년대 후반에 쥬피터(Jupiter)를 출시했던 알체도(Alcedo)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당시로는 세계 최경량의 스피닝 릴이었던 마이크론(Micron)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은 당시에 35달러에 현지에서 판매가 되었는데 2019년의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이란 별도의 모델을 개발했던 것은 아니고 알체도 2CS 기종의 작은 크기 모델을 마이크론(Micron)이란 이름으로 판매하였던 것이다.

 

Alcedo 2CS

 

이런 인기에 힘입어 알체도(Alcedo)는 대형 릴인 마크Ⅵ(아틀란틱)과 마크V(오세아닉)을 출시하는데 이것은 부흥하는 황금나침반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미국의 ‘Renascent Golden Compass’상을 1956년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Mark IV (Atlantic)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다양한 스피닝 릴을 접하기 어려운 국내시장에 이미 알체도(Alcedo)가 진출해 있다는 사실이다. 2017년에 국내에 진출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2002년에 알체도(Alcedo)를 인수한 현 사장인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알룩스(ALLUX)를 2013년도에 새롭게 선보였는데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다.(이 글을 작성하고 난 수년 뒤 알룩스는 코로나의 여파로 파산하고 말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많은 업체들이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피닝 릴을 제조하고 있었으나 일본제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수공업으로 생산되던 이리아의 스피닝 릴들은 “품질이 비슷하거나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일본산에 의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당하면서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일본으로부터 스피닝 릴의 제작기술이 도입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축적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비슷하지만 싼 가격 때문에 일제를 구입한다는 이탈리아 소비자들이나 같은 가격이면 일제를 구매하려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결과적으로는 자국산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이탈리아에서 택한 방법은 생산기지를 동구권으로 이전하여 자동화한다는 것이었지만 이탈리아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반대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일본산에 빼앗긴 소비자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우리나라의 실정은 이탈리아보다도 좋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발견하기는 정말 어렵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자녀들과 함께 낚시를 하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낚시인들이 있을까?

얘야, 2019년에 아베란 녀석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아주 못된 짓을 했었는데 그에 화가 난 우리국민들은 일본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을 자발적으로 전개했었단다. 그리고 그때 국산 낚시용품을 애용하자는 붐도 함께 일어났었지.

그러나 기대를 걸었던 국내 낚시용품 업체들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면서부터 낚시인들은 하나둘씩 지쳐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글로벌시대에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이 뭐가 중요해?” 라는 자조섞인 반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대나무낚싯대는 일본고유의 제작기법을 따른 것임을 너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고유의 것인 줄 아는 것처럼 이제는 일본의 낚시용품을 우리고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고 말았단다.(비약이 너무 심했을까?)

To be continued…

세계의 스피닝 릴② 이젠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세계의 스피닝 릴② 이젠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제목의 연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다른 낚시용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일본산 제품이 유독 독과점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스피닝 릴의 기형적인 소비문화를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낚시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요인으로 작용하여 일본의 낚시용품들이 우리나라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 거창하게 애국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만의 낚시문화와 역사의 체계적인 정리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낚시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부닥치게 되는 난관은 제품을 생산하던 업체가 존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대기 순으로 정리된 자료가 전무하다거나 생산했던 제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드물다는 것을 꼽을 수가 있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란 글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작년 11월에서야 국내 최초의 릴이라고 하는 바이킹 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일본의 전통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는 대나무낚싯대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낚시문화는 정립할 수가 없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해 보인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한국 대나무 낚싯대의 역사

 

일본의 다이와가 최초의 스피닝 릴인 “스피닝 1형”이란 모델을 출시한 것은 1955년, 시마노가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한 것이 1971년의 일이니 서울조구에서 순수한 국내기술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바이킹 시리즈를 출시한 1978년은 그리 늦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런 시장구조를 가지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는 누구의 책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더라도 소비자인 낚시인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가 보면 그 해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음식도 편식하면 몸에 좋지 않은 것처럼 특정국가의 제품만을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에 대하여 사회에 공헌하라거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경영에 임해달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수입선다변화’란 말은 1977년에 일본을 겨냥해 만들었던 ‘수입선다변화제도’에 기인하고 있는 것인데 일면 국내경제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대기업의 수익창출에 큰 역할을 했던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사회에서 수입선을 다변화 하는 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산업의 하나가 바로 낚시용품업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쳇말로 널린 게 스피닝 릴 업체인데 무엇 때문에 일본제품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지… “세계에서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업체가 널려있다고?”라고 반문할지도 모르는 업계 분들을 위해서 좋은 사례를 짚어보는 것으로 오늘의 얘기를 끝맺도록 하자.

스포츠용품 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는 미국의 경우, 애비 앤 임브리(ABBEY & IMBRIE)란 회사에서 최초로 낚시용 릴의 상표등록을 한 1877년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600여 개의 미국회사 제품들이 상표등록을 하였는데 이것은 수천 가지 모델이 생산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중에는 스피닝 릴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국내업체들 모두가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라인을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롤모델로는 스포츠용품의 강자 나이키를 떠올려도 되고 의류제품으로 유명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를 생각하면 된다.

나이키는 이해가 가지만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스피닝 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시장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릴의 유통사업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자체상표를 붙인 제품 외에도 에드워드 폼 호프(Edward vom Hofe)가 설립한 회사의 제품을 비롯하여 하디 등, 당시에는 유명했던 낚시용품업체들의 제품을 유통하고 있었다.

누군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계는 넓고 스피닝 릴 생산업체는 억수로 많다.”라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면 자신조차도 그다지 재미가 없는 무미건조함을 느끼는데, 그래서 오늘은 살짝 양념을 더해본다.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낚시용품을 유통하고 있을 때 눈엣가시 같은 경쟁업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있는 VL & A(Von Lengerke & Antoinne)란 곳이었다.

VL & A의 릴

 

회사의 이름 ‘본 렌게르케 앤 안토인네’에서 보듯이 이 업체는 이탈리아 출신이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1891년에 시카고에서 설립된 이곳은 1892년에 뉴욕에서 설립되었던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와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그야말로 피 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VL & A이 그 유명한 알 카포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두 회사는 낚시용품의 유통도 하고는 있었지만 그보다는 총기류의 유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VL & A은 알카포네가 이끄는 폭력조직의 무기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2년 알 카포네가 앨커트래즈에 수감되는데 결정적 동기가 되었던 사건의 하나가 1929년 밸런타이데이에 일어나는데 1929년 2월 14일, 알 카포네의 조직원 5명은 7명의 상대조직원들을 기관총으로 살해한 이 사건을 두고 미국에서는 ‘밸런타이데의 대학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에 사용된 총기류 가운데 2정이 VL & A이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면서부터 VL & A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1938년에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낼름 집어삼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부가 사파리 의류를 단골로 구매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번창했으며 아래의 사진은 당시 플라이릴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던 탈봇에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의 이름을 붙여 생산했던 모델이다.

To be continued…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

위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릴을 사용한 낚시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릴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홈페이지에도 해당업체의 역사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곳은 없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넘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오래된 낚시친구와도 같은 1971년 2월 15일에 창간된 낚시 전문 월간지 낚시춘추에 의하면 한국에서 릴을 최초로 생산한 곳은 이전의 포스팅 “낚시인들도 잘 모르는 시마노 릴의 다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의미”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서울조구라고 하는 회사이며 최초의 모델은 ‘바이킹 222, 333, 555 시리즈’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서울조구의 홈페이지에도 이런 자료는 없으며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되질 않는데, 이제는 이런 일들이 익숙하다 보니 당연한 것처럼도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서울조구에서 생산한 한국최초의 릴 이름이 “바이킹”이라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왜 바이킹으로 정했을까?라는…

 

다이와의 바이킹 77

 

서울조구의 홈페이지에 있는 회사의 연혁을 보면 1986년부터 시마노의 제품을, 1989년부터는 다이와의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나오는데 다이와가 서울조구와 거래를 하기 이전인 1975년에 이미 “바이킹 77”이란 이름의 릴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서울조구가 처음으로 출시한 ‘바이킹 시리즈’에 대해서 조금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바이킹이란 릴의 이름 때문에 또 다시 일본의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출처: 서울조구 홈페이지

 

일본최초의 릴의 생산은 우에노제작소란 곳에서 생산한 “피시 올림픽 릴”이라고 하는 것으로 1936년의 일이었으니 한국보다는 42년이나 앞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전후(戰後) 복구사업이 이루어지고 점차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릴이 멀리 던지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등의 이유로 1954년에 아웃 스풀 방식의 스피닝 릴을 개발하게 되고 1956년에 “올림픽 93”이란 이름으로 발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릴낚시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후지공업에서도 소형 스피닝 릴을 만들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이와가 릴을 처음으로 생산하는 것은 1955년으로 그 모델명은 “스피닝 1형”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뛰어든 시마노는 1970년부터 낚시용품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였으니 최초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2010년에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발표한 것을 본 기억이 나는데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시마노가 시장점유율 1위이며 다이와는 4위로 시마노의 절반 정도의 매출을 이루었다고 하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아무튼 1955년부터 릴을 생산하기 시작한 다이와가 1975년에 출시한 ‘바이킹 77’이란 모델명에 붙은 77은 스풀의 직경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도 있는데 기술력이 부족한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려면 기존업체들의 제품을 분석하고 모방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릴을 만들었다는 회사의 홈페이지에도 이런 영광스런 역사를 기록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의아함 마저 들며, 현재 릴을 생산하고 있는 은성사나 바낙스 또한 업체의 연혁을 연대기로 기록하고 소비자들에게 성장하는 모습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경영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쉽지만 한국최초의 릴이라고 하는 “바이킹 시리즈”를 실물로 보지도 못하였고(수정 2018년 11월에 2개를 구하였습니다.) 추후에라도 자료가 보강되면 내용을 수정·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제품의 성능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나중에 올릴 계획입니다.)

세계의 스피닝 릴① 미국의 반 스탈(Van Staal)

세계의 스피닝 릴① 미국의 반 스탈(Van Staal)

특정 업체의 특정 제품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글을 쓸 때면 언제나 지키려 노력하는 원칙 중의 하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동참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국내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글을 많이 적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은 많은 낚시인들이 일본제품에 비해 조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산 스피닝 릴을 사용하기가 마뜩치 않다고 하더라도 다이와와 시마노로 대변할 수 있는 일본 양사의 제품이 과점을 넘어 독점에 가까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맹목적으로 국내기업에서 생산하는 낚시용품을 사용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우수한 스피닝 릴들도 세상에는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림과 아울러 낚시용품의 유통에 종사하는 분들이 조금은 넓은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뜻을 전하고자 함이다.

지난번 “일제(日製)를 대신할 스피닝 릴은 없는 것일까?”란 글을 통해서 잠깐 언급했던 바와 같이 1932년에 하디사가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뒤 1954년에 기간이 만료되어 특허가 공개되면서부터 전 세계에서 다양한 스피닝 릴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업체들이 스피닝 릴을 생산했고 그 중에서 20여 개 업체는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 플라이 낚시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하디(Hardy)

 

유럽으로 출장을 갈 때면 시간을 쪼개어 들러보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 업체들인데 이에 관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은 국내 낚시인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어떤 곳들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첫 순서로 미국의 반 스탈(Van Staal)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세계의 스피닝 릴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게 될 내용의 글에서는 제품의 특성과 성능에 대해서는 자세한 얘기를 하지 못하고 추후 따로 연재하겠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처음으로 소개하는 업체가 왜 미국의 반 스탈(Van Staal)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일본 다이와와 시마노의 플래그쉽 모델의 가격이 백만 원 대를 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낚시인들은 이 가격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반 스탈(Van Staal)에서 생산하는 아니, 했던 제품들의 가격은 보통이 백만 원을 훌쩍 넘었다는 것이 그것이고, 둘째는 이외에도 다수의 미국업체들이 현지사정에 맞는 스피닝 릴을 생산함으로써 미국 낚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스피닝 릴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우직하고 섬세하다는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중심에 반 스탈(Van Staal)이 자리를 하고 있다.

 

반 스탈(Van Staal)

반 스탈(Van Staal)은 창업자인 로버트 콜레윈(Robert Koelewyn)이 1987년에 설립한 기업으로 원래는 알루미늄 정밀가공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였으며 항공기 좌석을 받치는 지지대나 식탁으로 사용하는 기내 트레이를 주력으로 생산하다가 낚시광인 로버트 콜레윈(Robert Koelewyn)에 의해서 스피닝 릴의 제조에도 발을 넓혀 나중에는 릴 부문을 따로 독립시켜 오클라호마에 본사를 두고 사업을 영위했었다.

전량을 미국에서 생산하던 체제에서 변경하여 현재는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어서 제품의 가격도 많이 내려갔었지만 경영하던 기업의 도산으로 로버트 콜레윈(Robert Koelewyn)은 반 스탈(Van Staal)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지금은 새로운 지배스(ZeeBaaS)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반 스탈(Van Staal)과 지배스(ZeeBaaS)는 동일한 기업의 제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

 

지배스(ZeeBaaS)

반 스탈(Van Staal)과 지배스(ZeeBaaS)에 대해서는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시간에 또 얘기하기로 하면서 중요한 점 하나만 마지막으로 적으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일본 다이와의 스피닝 릴은 베일의 처짐현상과 역회전이라는 2대 고질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역회전현상은 시마노의 제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스피닝 릴이 생산되던 초기에는 모든 제품들에서 역회전현상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을 세계최초로 개선했던 곳이 바로 바로 반 스탈(Van Staal)이었으며 그것은 1991년의 일이었다.

미국에 최초로 스피닝 릴이 소개된 것은 1947년의 일이고, 최초로 생산되었던 것은 펜사에 의해서였으며 일본의 시마노가 최초의 스피닝 릴 모델 덕스(DUX)를 출시했던 것은 1971년의 일이다. 그리고 1950~1960년대에는 스피닝 릴의 발상지인 유럽으로부터 많은 기술이 미국으로 이전되었으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시마노 덕스

 

여기서 한 가지 바로잡고 갈 내용은 국내 인터넷 정보를 보면 미국 최초의 스피닝 릴은 장난감회사인 라이오넬(Lionel)에서 만든 에어렉스(Airex)라고 하는 내용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정확한 것은 프랑스의 스피닝 릴 제조회사에서 일했던 바쉬 브라운(Bache Brown)이란 미국인이 그의 이름을 붙여 들여왔던 바쉬 브라운(Bache Brown) 릴이 최초였고 나중에 그가 만들었던 회사를 라이오넬(Lionel)에 팔면서 제품의 이름도 에어렉스(Airex)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바쉬 브라운(Bache Brown) 릴

 

에어렉스(Airex) 릴

 

아무튼 지역과 환경의 차이로 인해 바다낚시에서 잡히는 어종과 그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알맞도록 세부적인 기술이 발전해 왔을 것이기에 아직은 일본제품이 우리에게 더 맞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반 스탈(Van Staal)과 지배스(ZeeBaaS)가 제품을 생산하는 기지는 현재 중국에 있다. 중국에서 생산하니까 품질이 의심된다면 글로벌 낚시용품업체의 한국지사에서 만든 제품이 일본지사에서 판매될 때는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한 번 돌아보기를 권유한다.

단 하나의 가감도 없이 단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일본의 낚시인들에게서 “한국산인 줄 알았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반 스탈(Van Staal)과 지배스(ZeeBaaS), 이들 두 기업과의 전략적 또는 기술적 제휴를 통한다면 일본에 뒤졌다고 평가받는 스피닝 릴의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음에도 나서는 국내기업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다음 시간에는 반 스탈(Van Staal)과 지배스(ZeeBaaS)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고 이어서 반 스탈(Van Staal)의 제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랑스의 크랙 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크랙 릴

다이와 베이트 릴 모어댄 PE 유저들이 알아야 할 사항

다이와 베이트 릴 모어댄 PE 유저들이 알아야 할 사항

국내 낚시인들 중에서 다이와의 베이트 릴 모어댄 시리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018년 12월에 출시된 ‘18 모어댄 PE(MORETHAN PE)’ 시리즈는 아직 국내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 아직 판매되지 않고 있는 모델이다 보니 현재 일본에서 리콜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구매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서 다이와의 ‘18 모어댄 PE(MORETHAN PE)’ 시리즈를 구매하는 경우 어떤 점을 주의하여야 하는지를 알아본다.

이번에 문제가 되어 리콜이 진행 중인 모어댄(혹은 모어덴이라고도 표기를 한다)PE 시리즈는 기존의 스티즈 A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SH와 SHL 모델인데 사용함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 다이와의 홈페이지에 공지된 내용에 따르면 SH와 SHL에는 G1 두랄루민 드라이브 기어(G1 DURALMIN DRIVE GEAR)가 탑재되어 있으나 플레이트의 겉면에는 하이퍼 디지기어(HIPER DIGIGEAR)로 잘못 인쇄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 다이와에서 이러한 내용을 공지한 것이 2019년 5월 22일이니 그들로서도 초기제품의 오류를 뒤늦게야 알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실을 알 길이 없는 직구로 구매한 국내 유저들은 굳이 2~3주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 교환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도 구매대행 사이트들에 올라와 있는 사진은 잘못 인쇄된 하이퍼 디지기어(HIPER DIGIGEAR)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어서 앞으로 구매하려고 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점검하고 구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리콜이 진행 중인 모델은 하이기어인 1000SH-TW와 1000SHL-TW이며 엑스트라 하이기어 모델인 모어댄 PE1000XH-TW와 1000XHL-TW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델명
1회전/cm
기어비
자중
최대 드랙력
권사량(PE-m)
핸들 길이
베어링
1000SH-TW
75
7.1
195g
6㎏
1.5-200
100㎜
12/1
1000SHL-TW
75
7.1
195g
6㎏
1.5-200
100㎜
12/1
1000XH-TW
91
8.6
205g
6㎏
1.5-200
100㎜
12/1
1000XHL-TW
91
8.6
205g
6㎏
1.5-200
100㎜
12/1

 

즉 이 말은 SH와 SHL에는 G1 두랄루민 드라이브 기어(G1 DURALMIN DRIVE GEAR)가 탑재되어 있고 XH와 XHL 기종에는 하이퍼 디지기어(HIPER DIGIGEAR)를 채택하여 서로 다른 기어가 탑재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농어용 베이트 릴에서 “더 이상 좋은 제품은 없다.”는 뜻으로 no more than에서 이름을 따온 모어댄 시리즈가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고 있는 모델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인터넷을 통한 직접구매가 증가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한국다이와의 홈페이지에도 이런 내용을 전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시마노 릴의 이코노마이저(Economizer)

시마노 릴의 이코노마이저(Economizer)

“스피닝 릴의 부위 별 명칭과 기능이란 제목의 포스팅에서 시마노의 릴 중에는 바이오 마스터 등과 같은 모델에는 밑줄의 기능을 하는 이코노마이저(Economizer)라는 부품이 포함된 것들도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코노마이저(Economizer)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절약하는 장치”를 말하는데 릴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홈이 깊은 노멀 스풀보다 적은 양의 라인(낚싯줄)을 감을 수 있도록 노멀 스풀을 로우 스풀처럼 만들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많은 낚시인들은 이런 기능을 하기 위해서 밑줄을 감기도 하는데 밑줄을 왜 감는지? 얼마나 감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분들은 아래의 글을 한 번 읽어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 릴에 밑줄을 얼마나 감아야 할까?

즉, 시마노사에서 생산하는 일부 기종에 들어있는 부품인 이코노마이저(Economizer)는 쉽게 말하면 밑줄에 해당하는 부품인데 모든 제품에 포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이오마스터와 에어로CI4+의 부품으로 별도판매를 하고 있으며 스트라딕, 트윈파워, 나스키 등 다른 많은 릴들과 호환이 되고 가격도 우리 돈으로 5천원도 하지 않아서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코노마이저(Economizer) 호환표

 

물론 다이와에서도 이런 이코노마이저(Economizer)를 판매하고 있으며 이코노마이저 쉴(Sheel)이라고 하여 스티커 형태로 된 것도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시마노의 바이오마스터 C3000의 이코노마이저(Economizer)를 보면서 어떻게 생겼고 다른 기종과 호환이 되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두 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는 이코노마이저(Economizer)는 무게가 5.8g정도로 사용하는데 부담이 전혀 없으며 스풀에 장착을 하면 한 쪽이 틈새가 생기는데 이것은 정상입니다.

 

그리고 시마노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호환표에 따르면 바이오마스터 C3000의 이코노마이저(Economizer)는 서스테인 C3000HG 및 3000XG와 호환이 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아래와 같이 문제없이 장착이 됩니다.

 

이코노마이저(Economizer)가 없더라도 밑줄을 감아 사용하면 되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저렴한 가격이고 하니 국내에서도 판매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글을 마칩니다.

릴의 권사량은 실제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릴의 권사량은 실제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릴의 기어비란 무엇일까?”라는 글에서 릴의 기어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본 바가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상적으로 스피닝릴은 기어비가 5.5를 넘으면 하이기어, 베이트릴은 7.1이상이면 하이기어 모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이기어 릴을 사용하게 되면 핸들을 1회전시켜 감는 라인의 길이가 늘어나기 때문에 스피드를 중시하는 낚시에서 하이기어 릴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업체에서 홍보하는 기어비와 권사량은 얼마나 정확하며,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요?

“릴의 기어비란 무엇일까?”라는 글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릴의 1회전 당 감을 수 있는 라인의 길이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기어비와 스풀의 직경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풀의 직경은 라인을 감기 전과 라인을 감은 후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그 차이를 짚어보면서 하이기어 릴을 사용할 때에는 릴의 성능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무엇이 반드시 필요한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릴을 판매하는 업체에서 홍보하고 있는 핸들의 1회전에 따른 라인의 길이는 최대치를 바탕으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릴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체감은 훨씬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업체에서는 스피닝 릴과 베이트 릴, 공히 스풀의 최대직경으로 권사량을 산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점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이트 릴을 분해하여 스풀을 살펴보면 라인을 감기 위해서 스풀의 가운데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양은 스피닝 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핸들 1회전에 따라 라인이 감기는 양은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해야 맞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다 보니 업체들은 A가 아니라 B를 기준으로 산출한 양을 제품을 판매할 때 정보로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A와 B를 기준으로 함에 따라 발생하는 차이가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니면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차이가 나는지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제품은 기어비가 7.0인 제품인데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얼마 정도의 길이가 감기는가를 계산해보겠습니다.(정밀측정이 아니어도 검증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라인이 완전히 감겨 있을 때 스풀의 지름은 3cm 정도가 됩니다.

 

이어서 라인을 150m 풀고 난 뒤 스풀의 지름을 측정하니 2.5cm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인을 모두 풀고서 측정한 스풀의 지름은 1.5cm 정도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릴의 1회전에 따라 감기는 라인의 길이를 계산하는 공식 “스풀의 지름×π(3.14)×기어비(7.0)”에 대입해서 값을 산출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스풀의 지름
1회전당 감기는 라인의 길이(cm)
1.5cm
33cm
2.5cm
55cm
3.0cm
66cm

 

어떻습니까?

라인을 스풀에 처음으로 감을 때와 150m 정도를 감고 난 후의 1회전 당 감기는 라인의 길이가 무려 20cm 이상의 차이가 나고, 스풀의 지름이 3cm일 경우와는 무려 그 차이가 30cm 이상이나 난다는 것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따라서 하이기어 릴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릴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밑줄을 감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를 업체의 과장광고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 스풀의 지름을 최대치로 산출한 권사량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보다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쟁하면서 발전해온 시마노와 다이와

경쟁하면서 발전해온 시마노와 다이와

많은 낚시인들에게 국내최초의 낚시용 릴은 언제 어디서 만든 것인지를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과 함께 전해졌다거나 일본으로부터 오래전에 전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릴을 판매한 것은 이전의 포스팅 “낚시인들도 잘 모르는 시마노 릴의 다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의미”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서울조구라고 하는 회사이며 최초의 모델은 ‘바이킹 222, 333, 555 시리즈’로서 1978년에 출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조구의 바이킹 시리즈는 일본 다이와의 1975년 모델(바이킹 77)과 너무도 흡사하여 조금 더 자료가 보충되면 자세히 다루기로 하면서 일본의 조구업체의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경쟁으로 발전해온 시마노와 다이와의 릴에 대해서 잠깐만 살펴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최초의 릴은 우에노제작소란 곳에서 생산한 “피시 올림픽 릴”이라고 하는 것으로 1936년의 일이었으니 한국보다는 42년이나 앞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전후(戰後) 복구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짐과 함께 각 방면의 산업도 함께 발전하면서 낚시용품에 있어서도 기존의 릴이 가진 멀리 던지기에는 부족한 단점을 개선하여 1954년에는 아웃 스풀 방식의 스피닝 릴을 개발하게 되고 1956년에 “올림픽 93”이란 이름으로 발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릴낚시가 성행하게 되는데 크게 일조를 하였습니다.

 

그 후 후지공업에서도 소형 스피닝 릴을 만들기 시작했고, 다이와에서는 모델명 “스피닝 1형”이란 이름으로 1955년에 최초로 릴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뛰어든 시마노는 1970년부터 낚시용품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였으니 가장 후발업체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시마노 제품이 점유율 1위이며 다이와는 4위로 시마노의 절반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였습니다. 두 회사가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모델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데 금년 1월을 기하여 두 회사는 일제히 제품의 가격을 전격적으로 인상하는 조치를 동시에 단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금년의 라인업을 보면 우선 시마노에서는 플래그쉽 모델인 19스텔라의 출시가 눈에 띄고 19뱅퀴시는 기존의 모델에 비해 20~40g의 경량화를 이루었다는 것이 주목하게 되는 점입니다. 물론 다이와도 이에 질세라 19세르테이트와 같은 신모델을 출시하여 기존의 모델보다 30g 정도의 무게를 줄인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1970년대에 발을 디딘 시마노와 다이와의 릴을 비교해보면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1970년대~1980년대까지는 다이와의 제품이 품질과 시장지배력에서 앞서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처음 보실지도 모르는 1970~80년대의 시마노와 다이와에서 만들었던 대표적인 스피닝 릴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이와

▶ 오토매틱

1980년대 초반에 판매하던 스피닝 릴의 초기모델이며 기어비가 5.4대 1

 

▶ 프로스핀

다이와 최초의 소형 리어드랙 모델

 

▶ 팬텀

1982년에 출시된 이 모델은 세계최초의 카본 릴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3000번에 해당하는 당시의 모델의 자중이 240g으로 초경량 모델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 토너먼트

현재까지 고급 모델로 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 모델은 1989년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으며 최초로 베어링을 드랙과 라인롤러에 탑재하였습니다.

 

■ 시마노

▶ ML

1978년에 선보인 이 모델은 지금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한 2BB를 탑재하고 있었으나 당시로는 고급 모델에 속하였고 이후 KX시리즈로 발전하게 됩니다.

 

▶ KX

1980년에 발매된 제품으로 최고급 모델로서 주문 후 2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 커스텀

1983년에 발매한 시마노 최초의 리어 드랙 스피닝 릴이며 1984년에는 바디를 수지로 만든 카보매틱이란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1985년에는 더블 리어 드랙을 채용한 파이팅GT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 에어로 비스터마스터

1989년에 발매한 이 제품이 미국에서 최고급 모델로 인정을 받으면서부터 시마노가 다이와를 앞서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간략하게 살펴본 1970~1980년대의 시마노와 다이와의 가장 인기 있었던 릴 중에서 여러분은 몇 개나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