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마천루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두바이에 있는 높이 828미터의 버즈 칼리파 (Burj Khalifa)인데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높이 1,007미터의 지다 타워(Jeddah Tower)가 건설 중이어서 조만간 1위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건설하는 마천루는 우리가 모르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한 번 알아보자. 우선 고층건물 하면 우리는 도시의 중심부가 주변보다 온도가 높아지는 “열섬현상”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뿐만 아니라 “풍동터널”을 만들어 오염물질이 도시 주변에 축적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단일 건물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두 가지 사례를 한번 알아보자.

 

1. 대만의 타이베이 101은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다.

2005년 대만의 국립사범대학교의 지질학교수인 “Cheng Horng Lin”은 타이베이 파이낸셜 센터(Taipei Financial Centre), 즉 타이베이 101이 건설되기 전에는 규모 2 이하의 지진 외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건물이 들어서고 나서 규모 3.8과 3.2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내진설계를 한 건물의 무게가 70만 톤에 달해 이것이 지각에 심각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지진을 유발하는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캘리포니아대학의 존 비데일(John Vidale)은 타이베이 101의 무게가 지하응력을 변화시킬 정도는 되는 것이 맞지만 지진을 발생할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2. 고층건물은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타이베이 101이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보이지만 이번에 얘기하는 화재를 유발하는 건물은 검증할 필요가 없다.

영국과 런던에서는 고층건물로 인해 차량의 백미러가 녹아내리거나 사람들이 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무슨 이유로 어떤 건물이 화재를 유발했는지 살펴보자.

 

■ 런던의 워키토키(Walkie-Talkie) 빌딩

런던 중심부에 지어진 “20 펜처치 스트리트”는 그 생김새 때문에 흔히들 워키토키(Walkie-Talki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건물의 한쪽 면은 오목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구조가 돋보기 역할을 하여 2013년에는 건물 아래에 주차되었던 자동차의 백미러가 녹아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건물 아래에서 머리카락이 타버린 사람들도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계란프라이를 만들기도 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하자 2014년에 건물에서 반사되는 빛이 분산되도록 구조를 변경하였는데 사람들은 마천루를 뜻하는 “Skyscraper”에 빗대어 “Fryscraper”라고 비꼬아 불렀다.

 

■ 라스베이거스의 비다라(Vdara Hotel) 호텔

미국의 이 호텔도 영국의 워키토키(Walkie-Talkie) 빌딩과 마찬가지로 햇빛이 반사되는 오목한 형태를 가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이 “라파엘 비뇰리”로 같았기 때문이다.

비다라(Vdara Hotel) 호텔의 경우에는 반사되는 빛이 수영장을 향하고 있어서 투숙객들이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이 호텔의 수영장을 향해 반사되는 빛을 “죽음의 광선(death ray)”으로 불렀고, 결국 호텔 측에서는 반사되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수영장 위에 차양막을 설치하고서야 마침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우스갯소리: 마천루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마천루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으나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과학적인 의미 이외에는.

국제원자시(TAI: Temps Atomique International) 프로젝트의 연구에 의하면 지상 30미터 높이에서는 해수면보다 시간이 1피코 초(1조분의 1초) 빠르다. 따라서 지상 30미터의 높이에서 70년을 산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00분의 1초 빨리 사망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전혀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미국 CIA가 은밀히 운용했던 RB-69A

미국 CIA가 은밀히 운용했던 RB-69A

1960년 3월 25일, 군산 인근의 산비탈에 미 공군기가 추락하여 탑승했던 14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에 추락했던 기종은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미해군의 P2V-7 넵튠을 변형한 미공군의 RB-69A라고 알려졌었으나 사실은 미국 CIA가 운용하던 것이었다.

이에 관한 비밀은 2022년이 되어야 해제되지만 이미 그 이전에 관련 내용들은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었는데 오늘은 그중의 하나인 스컹크 웍스의 프로젝트(The Projects of Skunk Works)란 책을 통해서 미국 CIA가 한반도와 중국에서의 정보수집을 위해 은밀히 운용했던 항공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책을 쓴 스티브 페이스(Steve Pace)는 군용기와 관련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2016년 12월에 최초로 발간되었으며 원제는 ‘The Projects of Skunk Works: 75 Years of Lockheed Martin’s Advanced Development Programs’이다.

책의 제목에 있는 스컹크 웍스(Skunk Works)는 록히드 마틴 연구소의 공식적인 별칭이며 이전에는 Lockheed Advanced Development Projects로 불리고 있었으므로 책 제목은 간단히 ‘스컹크 웍스의 75년 역사’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제2장을 보면 미공군의 RB-69A는 해군의 P2V-7 넵튠을 개조하여 1954년 4월 26일에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서 첫 비행을 마친 이후 그해 말까지 모두 5대의 RB-69A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P2V-7 넵튠

 

RB-69A

 

CIA가 운용하는 항공기는 CIA 소식임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에 국적표시 등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거나 아니면 아예 표시를 하지 않기도 했고 때로는 공군이나 해군 소속으로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RB-69A를 공군이 운용하는 것으로 위장하였다 한다.

1962년까지 CIA는 모두 7대의 P2V-7 넵튠을 해군으로부터 양도받았는데 모델에 붙어있는 7은 P2V 버전의 마지막 버전이란 것을 뜻하며 여기에 해군은 다목적용도로 사용된다는 뜻의 U를 붙여 P2V-7U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미해군의 P2V-7U은 다시 RB-69A란 제식으로 공군에 양도되는데 RB는 폭격기를 기반으로 하는 정찰기라는 의미라고 하며 다른 나라들을 속이기 위해 해군에서 공군으로 양도하고 운용은 CIA가 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던 것이다.

미 해군의 P2V-7과 RB-69A의 외관상 가장 큰 차이는 P2V-7은 날개 끝에 연료탱크가 있지만 RB-69A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CIA의 RB-69A는 구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2대는 서독의 비스바덴(Wiesbaden)에 배치하고 다른 2대는 당시의 중공을 감시하기 위해 대만의 신주공군기지(Hsinchu Air Base)에 배치하여 제34 비행대의 블랙팀이 운영하도록 하였다.(대만 공군의 제34 비행대는 검은 박쥐 비행대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 뒤 1959년에 CIA가 유럽에서 비밀리에 운용하던 항공기 자산을 줄이면서 2대의 RB-69A를 포함하여 7대 모두를 대만에서 운용하였으며 공대공 미사일까지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형식적으로는 대만 공군에서 운용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CIA의 항공자산이었던 RB-69A는 전체 7대 중 5대가 추락 또는 격추되었는데 제일 첫 번째로 추락했던 것이 1960년 3월 25일 군산 인근의 산비탈에 추락한 것으로 대만의 신주공군기지(Hsinchu Air Base)를 출발한 RB-69A가 저공으로 페리비행(Ferry flying)을 하는 도중에 추락하여 탑승객 14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두 번째는 1961년 11월 6일 산동성 상공을 비행하던 도중 인민해방군이 쏜 SA-2(SA-75 DIVA)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되어 14명이 사망하였고, 세 번째는 1962년 1월 8일 인민해방군의 MiG-17에 의해 서한만(西韓灣) 상공에서 격추되어 14명의 승무원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군산 인근에서의 추락사고 1건을 비롯하여 모두 4대가 격추되어 전체 7대의 70% 이상인 5대의 RB-69A를 잃어버린 CIA는 1964년에 작전을 종료하게 되는데 CIA가 수행했던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와일드 체리(Project Wild Cherry)이다.

그러나 CIA는 다시 액시얼 프로젝트(Project Axial)라는 이름의 작전을 바로 이어서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4기의 AIM-9 사이드와인더로 무장한 P-3A 2대를 대만공군이 사용하는 형식으로 운용하였다. 그래서 EP-3B는 대만 공군 제34 비행대의 별칭인 검은 박쥐 비행대라는 이름을 따서 Bat Rack이라고도 불린다.

 

냉전시대로의 회귀라고까지 말하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지금, 우리가 모르는 모습의 CIA 항공자산이 한반도 상공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적국의 정찰이 아니라 우방국의 기밀을 수집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유조선의 피격과 선박의 기국주의

일본 유조선의 피격과 선박의 기국주의

6월 13일 오만 해상에서 발생한 유조선 2척에 대한 피격사건의 배후로 미국은 이란을 지목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이란은 각기 상대방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피격의 배후로는 4가지를 가정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이란의 혁명수비대 휘하의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Quds Force)이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조직을 사주하여 벌인 일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으나 여러 무장조직들의 세력에 미치지 않는 오만해상이란 점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을 높이기 위한 반이란 테러조직의 소행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2018년에 이란의 군사퍼레이드를 무장공격했던 아흐브즈민족저항(Ahvaz National Resistance)은 활동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배제되고 있고 그보다는 수니파의 반체제 무장단체인 ‘정의의 군대(Jaish al-Adl)’ 또는 ISIS(이슬람국가)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사건발생 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혀온 두 조직의 행동으로 볼 때 이것도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란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및 이스라엘 등의 제3국이 배후일 것이라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으며, 가능성이 제일 낮기는 하지만 해적들도 용의선상에 오르고는 있으나 아직은 배후로 지목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란 것이 현시점의 팩트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군이 유조선에서 불발된 기뢰를 회수하는 모습이라며 아래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 영상을 공개할 때까지 이란이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거를 인멸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피격당한 일본의 유조선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는 일부언론에서는 일본국적의 선박이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어제인 6월 14일 일본의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은 자위대를 파병할 계획이 없다는 발표를 했다.

자국의 선박이 피격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파병하지 않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언론의 보도가 틀렸음에 있다.

일본국적의 선박으로 알려진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는 미쓰비시가스화학의 자회사로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국화산업(国華産業)이 파나마로부터 용선하여 독일기업의 싱가폴 지사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선박으로서 공해상의 선박이나 항공기는 국적을 가진 국가의 배타적 관할권에 속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인 기국주의(旗國主義)에 따라 파나마 국기를 게양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자위대를 파병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격당한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에는 일본인 선원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도 자위대를 파병하지 않은 것인데 일본이 자위권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1.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있거나 동맹국이 공격을 받는 경우 및 일본국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 2. 자위권 발동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을 때라는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요건 중 어디에도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의 피격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자위대를 파병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많던 블록버스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블록버스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에서 주인공 캡틴 마블(Captain Marvel)과 닉퓨리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소는 1990년대 당시 대형 비디오대여 체인점이었던 ‘Blockbuster’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도 아파트의 상가나 동네에 반드시 하나씩은 있었던 비디오대여점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그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데 이런 사정은 영화의 배경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나오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사업이 가장 활황이던 2004년에는 미국에만 4,500개의 매장이 있었고 전 세계에서 9,094개의 체인점을 운영하였지만 VOD(Video On Demand)와의 경쟁에서 휘청이다가 마침내 넷플릭스의 출현과 함께 사망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에 나오는 블록버스터 매장의 씬은 지금은 70세와 60세를 각각 넘긴 ‘아놀드 슈왈제네거’ 선상님과 ‘제이미 리 커티스’ 여사께서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시절에 찍었던 영화, ‘트루 라이즈(True Lies)’의 비디오가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2019년을 맞으면서 그 많던 블록버스터의 매장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호주와 미국에 각각 한 개씩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호주에 있던 매장마저 2019년 3월에 문을 닫음으로써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매장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벤드의 매장: 출처 CNN

미군이 야전에서 볼일을 보는 5가지 방법

미군이 야전에서 볼일을 보는 5가지 방법

군생활을 하면서 야전에서의 훈련 도중에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 부대의 단위가 작은 경우에는 마땅한 준비를 하지 않고 그냥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각자가 알아서 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들은 아래의 사진과 같은 방법으로 일을 보기도 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생리적인 현상을 처리하는 일에도 미군들은 법으로 정한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같이 합동훈련을 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그다지 잘 실천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야전이라고 하더라도 미군은 남자 25명당 1개의 화장실 또는 1개의 소변기와 여군 17명당 1개의 화장실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규모가 작은 단위부대의 경우에는 이런 시설을 할 수가 없어서 기준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방법이나 주에서 정하는 법률로 화학적인 처리방법의 화장실 이외는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간이화장실을 반드시 화학적인 처리를 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설물은 매일 청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위생처리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배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설을 설치할 수 없을 경우에 각개병사들은 어떻게 볼일을 보도록 규정하고 있을까요? 아래에 열거하는 방법들에 대하여는 각각의 크기에 대한 기준과 땅을 파는 경우에는 얼마의 깊이로 파야 하는지 등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대표적인 것 5가지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태워서 처리한다. Burnout latrine

영화 플래툰에도 배설물을 태우는 작업 장면이 나오는데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반드시 양쪽에 손잡이를 만들어야 하고 매일 기름을 사용하여 소각해야 하는데 만일 냄새가 남아 있다면 다시 소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남자들만을 위한 Piss pipes

이것은 규정이 조금 느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파이프의 직경을 2.5c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크게 설치하지만 규정은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파이프의 길이는 1미터 이상으로 하고 각 구덩이의 모서리에 설치를 해야 하며 중앙에 설치를 해도 됩니다. 그리고 매설되는 깊이는 최소 20cm 이상으로 하고 지상으로 나와 있는 부분은 바깥쪽으로 기울여서 설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야생의 본능 그대로 Cat holes

야생의 고양이가 배변을 할 때 땅을 파는 것처럼 일을 보는 방식인데 길이, 폭, 깊이 모두 12인치가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신속하게 덮고 은폐하여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자기 것은 자기가 챙긴다. WAG Bags

이 방법은 봉투를 벌려서 고정할 수 있는 물건이 없을 경우에는 땅을 파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진과 같이 난감한 자세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 Straddle trenches

이 방법도 땅을 파는 것은 Cat holes와 같지만 그 크기가 훨씬 큰 것으로 깊이 75cm, 길이 120cm, 폭은 30cm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땅을 팔 수 없는 암석지대와 같은 곳에서는 흙을 쌓아서 만드는 Mound Latrine를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 문이 있는 화장실을 달라. Porta-Johns

가장 이상적인 야전화장실의 형태입니다. Porta는 문을 뜻하고 Johns가 화장실을 뜻하는데 16세기 후반에 수세식화장실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이 존 해링턴이어서 영어에서 “John”은 화장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존 해링턴이 수세식화장실을 고안했을 때 붙인 이름은 화장실을 뜻하는 속어인 “Jakes”를 붙여 “에이잭스(Ajax)”였는데 그의 발명동기를 설명한 책 “화장실의 탈바꿈(The Metamorphosis of Ajax)”이 래스터 백작을 Ajax에 비유하였다고 소송을 당하면서 “에이잭스(Ajax)”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미군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야전화장실 몇 가지를 알아보았는데 우리 한국군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머지않아 겨울이 오고 또다시 병사들은 혹한기훈련에 나설 텐데, 생리문제라도 편히 해결할 수 있도록 군에서는 조금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

독일이 통일되기 전인 1983년 봄, 세계는 서독의 주간지 슈테른(Der Stern)의 발표로 들썩이게 되는데 1932년부터 히틀러가 사망 직전까지 썼다는 일기를 입수하였다는 것이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이유였다.

930만 마르크(당시 환율로 미화 610만 달러)를 들여 ‘히틀러의 일기(Hitler Diaries)’를 입수한 슈테른지의 기자 게르트 하이데만(Gerd Heidemann)은 전 세계의 보도진 앞에서 모두 62권으로 이루어진 히틀러의 일기를 공개하기 전 영국의 유명한 사학자이자 나치독일의 전문가인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에 의뢰하여 진위여부에 대한 검증을 마쳤다.

그리고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는 기자회견이 열리기 이틀 전인 1983년 4월 23일, 히틀러의 일기는 진품임에 틀림없다는 글을 쓰게 된다.

 

1947년에 발간한 책 ‘히틀러의 마지막 날(The Last Days of Hitler)’로 명성을 얻고 있던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는 정작 기자회견 당일에는 자신의 검증이 미흡하였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급기야 1983년 5월 6일에는 히틀러의 일기가 가짜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독일 연방기관의 조사로 히틀러의 일기가 가짜라는 판명을 받게 되면서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의 명성은 추락하기 시작하였고 일기를 판매했다고 알려진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는 체포되기에 이른다.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

 

또한 930만 마르크를 일시불로 지불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나누어 대금을 지불하면서 일기를 사들였던 슈테른지의 게르트 하이데만(Gerd Heidemann)기자는 대금의 전달과정에서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고 2002년에는 그가 동독의 비밀경찰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됨으로써 또 다른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1985년 사기죄로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는 수감 중 후두암 판정을 받고 3년 만에 출소한 뒤, 역설적이게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개설하여 공식적으로 위조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위조하여 용돈을 벌었던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는 1957년에 드레스덴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게 되었고 1958년부터는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미술품 복원전문가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

 

그런 그가 만들었던 가짜 히틀러의 일기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에 있는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이다.

위조품 박물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1951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박물관을 들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예술품을 포함하여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으나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은 개인박물관이면서 독일어권에서는 유일한 위조품박물관으로 위조된 예술품만을 전시하고 있다.

2005년에 다이안 그로브(Diane Grobe)란 여성이 만든 이 박물관에는 예술품 위조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보다도 더 뛰어난 위조전문가였던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은 게슈타포를 창설한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을 상대로 사기를 친 사실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의 암염갱(岩鹽坑)에서 나치독일이 약탈하여 숨겨놓은 예술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전문가들도 처음 보는 바로크시대의 화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요하네스의 작품들이 어떻게 나치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이 판매한 것임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독일에 협력한 죄로 그는 재판에 회부되게 된다.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은 그것이 모두 자신이 위조한 가짜라는 사실을 실토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직접 그려보아야 믿을 수 있다는 수사당국에 의해 3개월 동안 가택에 구금당한 상태로 직접 그림을 그려 증명해야 했고, 법원의 의뢰로 국제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가짜라는 판명을 받음으로써 반역죄가 아닌 위조와 사기죄로 1년형을 선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32년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들을 위조하기 시작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은 1936년에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6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받고 ‘엠마우스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이란 위조품을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 판매하였고 1938년에 1400년대~1800년대의 네덜란드 화가들의 명작 450점과 함께 일반에 전시되었다.

엠마우스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

 

참고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는 알지 못해도 그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아래의 작품은 본 적이 아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이 자랑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화가로 소개되고 있는 ‘토마스 패트릭 키팅(Thomas Patrick Keating)’의 것들도 있다.

100명 이상의 화가들의 작품 2천 여 점을 위조했다고 알려져 있는 토마스 키팅은 미술품시장의 비리를 교란할 목적으로 전문가들을 속이기 위해 위조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였으나 그 진위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자신이 그린 위조품에는 시한폭탄(time bombs)이라 이름붙인 힌트를 숨겨두었던 ‘토마스 패트릭 키팅(Thomas Patrick Keating)’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많은 위조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의 설립목적은 저작권에 대한 이해와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지식을 널리 알리는 것에 있다고 한다.

현재는 8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은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바퀴 대신 무한궤도를 장착했던 폭격기

바퀴 대신 무한궤도를 장착했던 폭격기

여러 개의 강판(鋼板)조각을 벨트처럼 연결하여 바퀴로 사용하는 캐터필러(caterpillar)는 무한궤도라고도 하는데 군용장비 중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전차와 장갑차 등이 있다.

그런데 군용기들 중에는 바퀴 대신 무한궤도를 장착한 것들이 있었고 지금도 알래스카의 설원에서 이착륙에 사용하기 위한 캐터필러(caterpillar)가 개발 중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무한궤도를 장착했던 군용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보자.

군용기의 착륙장치(landing gear)를 캐터필러(caterpillar)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1930년대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부터였다.

2차 대전에서 미국은 4발 엔진의 대형 폭격기를 많이 운용하였는데 증가하는 기체의 중량 때문에 보다 길고 잘 정비된 활주로가 필요했으며 적의 폭격으로 손상된 활주로에서도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비포장을 달릴 수 있는 착륙장치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리하여 크리스티 서스펜션을 발명한 존 월터 크리스티(J. Walter Christie)는 1939년 11월 미국 공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아놀드(Henry H. Arnold)에 의해 더글러스 A-20 해벅(Douglas A-20B Havoc)에 무한궤도를 장착할 수 있는 설계를 의뢰받는다.

 

이 연구에는 미국의 굳이어(Goodyear Tire)나 파이어스톤(Firestone Tire)과 같은 타이어업체들을 비롯하여 영국의 다우티(Dowty Group)도 참가하여 1942년 2월에 설계를 마치고 6월에 시제품을 선보였지만 기존의 바퀴식에 비해 무게가 2배 가까이나 증가하여 활주로의 길이가 15% 이상 더 필요하게 되었다.

이후 비포장도로 뿐만 아니라 설원과 얼음 위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는 연구가 계속되었으나 A-20 해벅을 이용한 무한궤도 착륙장치의 시험은 1947년 8월에 끝나고 만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파이어스톤(Firestone Tire)은 1943년 6월, 커티스 P-40 워호크(Curtiss P-40 Warhawk)를 모래사장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착륙장치의 개발계약을 맺고 1944년 2월에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추운 날씨 때문에 벨트 사이에 얼음이 끼는 등의 문제로 추가시험을 하기로 하고 보관하던 중 손상되어 종료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A-20 해벅을 이용한 개발을 계속했던 것과는 별도로 페어차일드와 보잉에도 캐터필러 방식의 착륙장치 개발을 의뢰하였는데 1945년 페어차일드의 항공부문을 담당하던 부서는 페어차일드 C-82 패킷(Fairchild C-82 Packet)을 사용하여 무거운 수송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캐터필러 방식의 착륙장치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1949년 4월부터 착륙장치를 교체한 C-82 패킷(C-82 Packet) 10대가 납품되었지만 시험과정에서 고장이 속출하고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정식 채용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되고 만다.

 

끝으로 보잉의 경우에는 애초에 B-50에 장착하기 위한 예비단계로 B-29에 캐터필러 방식의 착륙장치를 장착한 시험을 할 수 있도록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굳이어에 날개 부분을, 파이어스톤에 기수부분의 장치를 하청주고 개발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굳이어는 높은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벨트 제작에 실패하여 시속 70마일 이상에서는 쓸 수도 없었고, 파이어스톤에 맡겼던 것도 시험비행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C-82와는 달리 B-50에 장착했던 캐터필러는 안으로 접어넣을 수 없는 고정된 방식이어서 기체하부에 있는 기관총의 사격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단점도 가지고 있어서 1950년 1월 계약만료와 함께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끝나게 된다.

 

그러나 캐터필러에 꽂혀서였는지는 몰라도 미공군은 대형 폭격기인 콘베어 B-36 피스메이커(Convair B-36 Peacemaker)의 착륙장치도 대체하기 위한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1950년 3월 26일, 처음으로 시험비행에 나서지만 이것이 마지막 비행이 되고 캐터필러 방식의 착륙장치는 개발자체가 중단되고 말았다.

시험비행 중인 XB-36

 

개발이 중단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형폭격기의 항속거리가 증가하면서 전선(戰線)에서 이착륙하지 않아도 된 점과 내구성과 정비 및 비용의 측면에서 바퀴가 훨씬 경제적이었던 것이 캐터필러 방식의 착륙장치 개발이 중단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의 학교에서 금지하는 의외의 것들

미국의 학교에서 금지하는 의외의 것들

1. 빨간색 잉크

시험답안지나 과제물의 실수를 표시하는 색깔로 오랫동안 빨간색 잉크를 사용해왔는데 2008년 영국의 켄트 주니어스쿨의 교감 리차드 사몬즈(Richard Sammonds)가 학생들의 의욕을 상실시키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므로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비롯되어 블랙 프라이데이가 유래된 것처럼 학생들에게 부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교육을 한다는 의미로 많은 학교들에서 빨간색의 잉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 어그 부츠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실 내로의 휴대폰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2012년 어그부츠 안에 휴대폰을 숨겨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다고 해서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포츠타운 중학교(Pottstown Middle School)에서는 어그부츠를 신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당연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대가 들끓었고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반대여론이 비등하였지만 학교 측은 이를 감행하였는데 현재도 시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을 못하였습니다.

 

3. 백팩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백팩은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리노이와 아이오와 주의 일부 학교에서는 교실의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복도에서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백팩의 사용을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백팩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때에 한하고 그런 경우라도 안이 보이는 시스루 형태의 백팩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4. 피구

플로리다 주를 비롯하여 뉴욕 주, 메인 주, 메사추세츠 주, 뉴햄프셔 주, 텍사스 주 등에서는 피구가 폭력적이며 왕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체력이 약한 학생의 경우에는 공에 맞아 부상을 입거나 자신감을 상실할 수 있으며 다른 학생을 해치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되는 규칙은 옳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합니다.

 

5. 술래잡기

캘리포니아 주의 골드 리지 초등학교(Gold Ridge Elementary School)의 교장 데이비드 프랭클 (David Frankel)은 학부모들에게 서신을 보내어 술래잡기가 너무 강한 신체접촉을 유발하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알린 다음 이를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6. 사전

음란서적을 교내에 반입하거나 보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사전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의외의 일입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학교에서는 구강성교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사전(Webster’s 10th Collegiate Edition)의 사용을 금지하였는데 이 사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후드티를 학교 내에서는 입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곳들도 있고 버몬트 주에 있는 학교(Orchard School)에서는 많은 시간을 밖에서 뛰어놀고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유치원생부터 5학년까지는 숙제를 내주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팜데일 전투: 뚫려버린 미국의 방공망

팜데일 전투: 뚫려버린 미국의 방공망

1956년 8월 16일 한 대의 항공기가 로스앤젤레스의 시가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2대의 F-89 전투기가 이를 격추시키기 위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요격은 실패로 끝났고, 연료가 부족했던 항공기는 로스앤젤레스로부터 60㎞ 떨어진 사막에 추락하여 이틀 동안 120만 평(400ha)의 면적을 불태우는 화재를 일으키게 된 사건을 일컬어 미국에서는 팜데일 전투(Battle of Palmdale)라고 부르고 있다.

1956년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극에 달하고 있던 시기로 미국은 소련의 전략폭격기가 북극해를 넘어 공격해오는 것에 대비하여 1954년부터 알래스카를 비롯한 각지에 F-89 스콜피온(F-89 Scorpion)을 배치해두고 있었는데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날아가던 비행기의 격추를 명받은 것도 바로 2기의 F-89D였다.

핵폭탄을 탑재한 전략폭격기를 공중에서 막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미공군은 1945년 8월, P-61 블랙위도우(P-61 Black Widow)를 대체하기 위한 예비사양을 발표하였으며 벨(Bell Aircraft)을 비롯하여 콘솔리데이트 에어크래프트(Consolidated Aircraft), 커티스 라이트(Curtiss-Wright),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Douglas Aircraft Company), 굳이어(Goodyear), 노스럽(Northrop) 등이 참가신청을 하였다.

P-61 블랙위도우(P-61 Black Widow)

 

그리고 최종후보였던 커티스 라이트(Curtiss-Wright)의 XA-43과 노스럽(Northrop)의 N-24 중에서 최종적으로 노스럽의 N-24가 결정되면서 이름도 XP-89라고 지정되었으며 1948년 8월 16일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첫 비행을 마친 다음에는 F-89라는 제식부호를 받고 시험기를 뜻하는 X를 앞에 붙여 XF-89로 부르게 된다.

한편 XP-87(XF-87 Blackhawk)을 제안하여 경쟁에서 탈락했던 커티스 라이트는 항공부문을 노스아메리칸(North American Aviation)에 매각하고 항공사업을 접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XF-87 블랙호크

 

이렇게 채택되었던 F-89의 초기형인 F-89A, F-89B, F-89C는 모두 20㎜ 기관포 6문을 탑재하고 있었으나 대형 전략폭격기를 요격하기에는 부족했다.

F-89A

 

F-89B

 

F-89C

 

그래서 F-89D는 공대공 로켓으로 주무장하게 되는데 이전까지의 A, B, C형의 날개 끝에 있던 연료탱크를 더 크게 만들어 로켓 포드를 겸할 수 있도록 하여 하나의 로켓 포드에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로 불리는 Mk 4 FFAR( Folding-Fin Aerial Rocket)를 52발씩 탑재하여 모두 104발의 공대공 로켓으로 무장하도록 제작되었다.

F-89D

 

그리고 1956년부터 적외선유도 미사일인 AIM-4 팔콘과 AIM-9 사이드와인더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F-89D도 팔콘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는 유형이 제작되었으며 F-89H에 이르러서는 Mk 4 FFAR( Folding-Fin Aerial Rocket)를 각 날개에 52발씩 탑재하던 것을 21발로 줄이면서 3발의 팔콘 미사일을 탑재하도록 개량된다.

F-89H

 

아무튼 F-89 스콜피온(F-89 Scorpion) 중에서 가장 많은 682대가 제작되었던 F-89D가 배치되어 있던 옥스나드(Oxnard) 공군기지는 1956년 8월 16일 전투기의 긴급발진 요청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1956년 8월 16일 11시 34분 포인트무구 해군비행장(Point Mugu Naval Air Station)을 이륙한 F6F 헬캣(F6F Hellcat) 무인조종기는 육안으로 관찰이 용이하도록 기체를 빨간색으로 칠하고 미사일 시험을 위해 비행구역으로 향한다.

F6F 헬캣(F6F Hellcat) 무인조종기

 

그러나 어떤 결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F6F 헬캣은 항로를 이탈하고 로스앤젤레스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는 계속 고도를 높였고 만일 이것이 도심에 추락하게 된다면 큰 희생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 따라, 이를 격추시키기 위해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던 포인트 무구에서는 급하게 공군에 전투기의 출격을 요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군의 요청을 받은 옥스나드(Oxnard) 공군기지에서는 2대의 F-89D를 출격시켰는데 그것은 2대에 탑재되어 있던 208발의 로켓이면 충분히 F6F 헬캣(F6F Hellcat) 드론을 격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두 4차례에 걸쳐 208발의 로켓을 전부 발사하였음에도 격추에 실패하였고, 게다가 이륙 후 애프터 버너를 사용했기 때문에 연료가 부족해진 F-89D는 기지로 귀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F-89D가 탑재하고 있던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 로켓은 파괴력은 뛰어났지만 정확도는 크게 떨어짐으로써 임무에 실패하고 말았으며 연료가 떨어진 F6F 헬캣(F6F Hellcat)도 팜데일(Palmdale) 근교의 사막에 추락하여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이틀 동안 500명의 소방관이 동원되어 화재를 진압해야만 했다.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로 불리는 Mk 4 FFAR( Folding-Fin Aerial Rocket) 로켓은 발사된 직후에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탄두를 탑재하고 있었고, 목표물을 놓치고 속도가 떨어지면 해제되도록 만들어져 있었으나 대부분 작동불량으로, 발사된 208발 중에서 15발만이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되었고, 나머지 193발은 모두 폭발하여 큰 화재를 일으켰던 것이다.

F-89D에서 발사되는 Mk 4 FFAR

 

지금 운용되는 군용 드론은 모두 페일 세이퍼(Fail-safe)가 장착되어 있어서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 그날 로스앤젤레스를 향했던 비행기가 미사일 시험을 위한 드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 공군 최초의 여성 주임원사는 한국계 여군!

미 공군 최초의 여성 주임원사는 한국계 여군!

요즘 언론기사를 보면 좌우 어느 한쪽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거나 사실관계의 확인조차도 하지 않고 기레기들이 작성한 쓰레기들이 넘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레기들의 눈과 귀에는 이런 자랑스러운 내용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을 것이기에 미국 공군 역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주임원사(CMSgt: Chief master sergeant)의 자리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을 소개한다.

자랑스러운 그녀의 이름은 조안 배스(JoAnne S. Bass)로 지난 8월 14일 미국 공군의 제19대 주임원사에 취임하였는데 아시아계 최초라는 타이틀까지 함께 얻게 되었다..

하와이 밀리라니(Mililani) 출신인 조안 배스(JoAnne S. Bass) 주임원사의 어머니는 한국인인데 요즘 같은 글로벌사회에서 한국계 미군이 진급한 것이 뭐가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취임한 자리의 중요성 때문에도 호들갑을 떨고 싶다.

조안 배스(JoAnne S. Bass)가 취임한 자리는 32만 명에 달하는 미 공군 중에서 오직 1명만이 오를 수 있으며 부사관과 병사들을 대표하여 참모총장에게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쉽게 말해서 부사관과 병사들의 대표로 미국 공군참모총장과 마주 앉는 카운트파트(counterpart)가 된다는 것으로 이렇게 자랑스런 기사는 단신(短信)으로라도 실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기레기들아~

사진 출처: 미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