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기에는 언제부터 단풍잎을 그려 넣었을까?

캐나다 국기에는 언제부터 단풍잎을 그려 넣었을까?

태평양이 보이는 밴쿠버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퀘벡의 몽졸리에 이르기까지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깨끗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제가 가지는 캐나다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캐나다의 국기에는 상징과도 같은 단풍잎이 그려져 있는데 오늘은 언제부터 캐나다의 국기에 단풍잎 그림을 사용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34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발견되어 당시 원주민들이 부르던 호칭(카나타: 마을이란 뜻)을 따라 캐나다로 부른 것이 국명의 유래인 캐나다는 카르티에가 이 땅이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음을 선언하기 위해 만든 아래와 같은 모양인 당시의 프랑스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프랑스인들이 누벨 프랑스(뉴 프랑스)라고 부르며 건너와 무역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그들이 조직한 길드사무소에서는 당시 프랑스의 해군기를 게양하였었는데 1663년 루이 14세가 누벨 프랑스를 국왕의 직할 식민지로 규정하면서 루이 14세의 깃발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영국인들도 캐나다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프랑스 상인들과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고 급기야는 영토분쟁으로 번지게 되었는데 ‘앤여왕전쟁’ ‘조지왕전쟁’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프랑스의 식민지 거점이었던 퀘벡이 함락되고 캐나다는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캐나다는 표면상으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인구는 프랑스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1841년에 영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어퍼 캐나다(Upper Canada)와 프랑스계가 많은 로어 캐나다(Lower Canada)를 통합하기 위해 ‘연합 캐나다의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유니온 잭을 국기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864년 ‘퀘벡결의’를 채택하여 “캐나다를 구성하는 주는 캐나다연방의 식민지이며, 캐나다연방은 영국의 식민지”라고 규정을 하면서 이 세 가지 구조가 반영된 깃발을 1867년부터 국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위의 깃발을 보면 왼쪽 위에 유니온 잭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편 아래에 있는 것이 당시의 캐나다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4개의 주를 나타내고 있는데 좌측 상단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샤, 뉴 브런즈윅 주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특히 온타리오 주를 나타내는 문양을 보면 단풍잎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부터 캐나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단풍잎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 데에는 1848년도에 여러 언론에서 캐나다의 상징으로 단풍잎을 규정하는 기사들이 있었고, 1860년에 창설한 제100연대의 마크에 단풍잎을 그리는 등 많은 계기가 있었지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알렉산더 뮤어(Alexander Muir)가 1867년에 만든 “단풍잎이여 영원하라.(The Maple Leaf forever)”라는 노래이며 이 노래는 당시 캐나다의 국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07년에 만들어진 국기에는 더 많은 주를 표기하게 되었으나 너무 복잡함에 따라서 단순화 시키고 하단에 녹색의 단풍잎을 그려 넣은 깃발이 1921년에 제정되게 됩니다.

1907년 제정

 

1921년 제정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캐나다는 영국연방의 다른 나라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아래와 같은 깃발을 사용했는데 프랑스계의 반발 때문에 백합문양의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is)”를 함께 그려 넣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부터 미국과의 군사적·경제적 관계가 급속도로 강화됨에 따라 캐나다도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총리의 임면권과 국회의 소집 및 해산권을 이양 받게 되는데 이 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캐나다의 독립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1945년에 당시의 총리였던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이 아래와 같이 황금 단풍잎이 그려진 디자인을 국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프랑스계의 반발로 무산이 되고 맙니다.

 

그 후 다시 제정된 국기는 1921년에 만들어진 것과 크게 차이가 없고 단풍잎의 색깔만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0% 이상이 새로운 국기의 제정을 바라고 그 중의 60%는 단풍잎을 사용하기를 원한다는 결과에 따라 1960년에 당시 야당인 자유당의 지도자였던 레스터 피어슨(Lester Pearson)이 “하루빨리 새로운 국기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1963년에 캐나다의 제14대 총리로 취임하고 나서 새로운 국기를 고안했는데 왼쪽의 파란색은 태평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파란색은 대서양을 상징하며 가운데의 단풍잎은 캐나다인과 영토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도 전에 언론에 유출됨으로써 많은 반발을 낳고 말았습니다.(언론 유출 이후 1964년 6월 15일에 국회심의에 회부함)

 

특히 야당에서 “반드시 유니온 잭을 넣어야 한다.”고 반발하면서 역사학자 조지 스탠리가 제안하고 캐나다 왕립군사대학이 디자인한 아래와 같은 것을 국기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게 됩니다.

 

그럼에 따라 1964년 9월 10일 위원회를 만들어 심의·결정하기로 의결하고 여야 1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35회의 심의를 거듭한 끝에 유니온 잭과 백합문양을 빼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 1964년 12월 15일 국회에서 투표를 하여 찬성 163대 반대 78표로 통과함으로써 아래의 디자인이 정식국기로 제정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플라스틱의 생산도 시작되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플라스틱의 생산도 시작되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날은 전 세계적인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던 날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제2차 대전과 같은 전쟁은 인류 역사에 다시는 있어선 안 될 비극이지만 전쟁이 시작된 날, 전쟁을 끝내는데 공헌한 플라스틱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이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 포스팅은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의 기사를 참고로 작성한 것이란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얘기를 시작할까 한다.

플라스틱은 1898년 독일의 화학자 한스 폰 페치만(Hans von Pechmann)이 발견한 것이지만 1933년 영국의 ICI(Imperial Chemical Industries: 임페리얼화학산업)란 회사의 직원이었던 레지날드 깁슨(Reginald Gibson)과 에릭 포셋(Eric Fawcett)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발견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인 1935년에 ICI의 다른 직원인 마이클 페린(Michael Willcox Perrin)에 의해서 생산방법의 특허를 취득하게 되었고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위닝톤(Winnington)에 있던 ICI의 공장은 플라스틱의 생산에 들어갔다.

 

1933년 3월 24일, 레지날드 깁슨(Reginald Gibson)과 에릭 포셋(Eric Fawcett)은 가스 액화 혼합물을 이용한 고압실험을 하던 도중, 기구의 압력이 떨어지면서 누수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고 장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흰색의 왁스 상태의 고체 물질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폴리에틸렌이었다.

그러나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분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폴리에틸렌(Polythene)도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에릭 포셋(Eric Fawcett)은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였고 1935년에는 캠브리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으나 주목을 받지 못했고, 회사에서 지원을 철회하는 바람에 포셋도 마침내 다른 연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는 플라스틱을 세상에 선보이는 쪽을 택했는지는 모르지만 포셋의 뒤를 이어 마이클 페린(Michael Perrin)이란 젊은 연구원이 고압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하게 되었고 그는 레지날드 깁슨(Reginald Gibson)과 에릭 포셋(Eric Fawcett)이 진행했던 연구를 기초부터 다시 검토하면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35년 12월 19일, 성공적으로 몇 그램(g)의 폴리에틸렌을 생산하게 된다.

 

마이클 페린(Michael Willcox Perrin)

 

마이클 페린(Michael Perrin)은 그가 생산한 샘플을 회사에 보고하여 평가를 받았는데 결과는 당시 케이블의 피복용으로 사용되던 구타페르카(Gutta Percha)와 유사하지만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얻는다.

그리고 100톤을 주문받은 ICI는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만들게 되는데 공장이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간 날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9월 1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산되기 시작한 플라스틱은 레이더의 동축케이블의 절연체로 사용되면서 영국군은 레이더를 탑재한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었고 독일의 야간공습을 봉쇄함은 물론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게 됨으로써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데 큰 공을 세운 플라스틱이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기 때문일까? 이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고 말았다.

일본 고베의 스타벅스 이진칸점

일본 고베의 스타벅스 이진칸점

일본 고베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한다는 스타벅스 이진칸점은 고풍스런 건물에서 마시는 커피라는 점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조금 색다르고 오래된 건물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 같아서 오늘은 일본 고베의 스타벅스 이진칸점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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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神戸北野異人館店)에 관한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보면 누구도 입구에 있는 키타노모노타리칸(北野物語館)이란 작은 건조물을 주목하지 않지만 스타벅스 이진칸점이 유명해진 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이진칸(異人館)을 표기하는 한자에서 보듯이 이진칸이란,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서 서양인들이 거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건물로 종래의 일본 가옥과는 다르게 지어져 이방인들이 산다는 뜻에서 이진칸(異人館)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진칸은 고베 외의 다른 지역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고베의 이진칸이 유명한 것은 바로 NHK에서 아침 드라마로 방영했었던 덕이 컸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스타벅스 이진칸점의 입구 우측에 있는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1907년에 지어진 것으로 최초의 소유자는 미국인이었으나 나중에 독일 출신의 제빵사인 하인리히 프로인트리브(Heinrich Freundlieb)가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를 모델로 하여 만든 드라마가 바로 NHK의 연속TV소설 카자미도리(風見鶏)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이진칸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역은 일본인 아라이하루미(新井晴み)가 맡았으며 드라마에서는 남편 역의 이름을 프로인트리브(Freundlieb)가 아니라 브룩마이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도쿠시마의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인리히 프로인트리브(Heinrich Freundlieb)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빵을 만드는 업무에 복무하던 도중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종전 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머물며 일본인과 결혼하였고 그의 아들이 1955년에 베이커리 회사를 만들면서 일본어로 프로인드리브(フロインドリーブ)라고 등록하면서 일본에서는 독일어 발음인 프로인트리브(Freundlieb)보다는 프로인드리브라고 많이들 알고 있다.

이런 역사를 지닌 프로인드리브의 본점은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로 등재되었고 가족들이 살았던 건물 역시 등록유형문화재로써 현재는 스타벅스의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 건물은 1907년 준공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던 건물을 고베시가 기증받은 다음 해체하여 보관하다가 2001년에 지금의 자리에 재건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1월 31일자로 효고현의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3월 27일부터 스타벅스가 입점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유형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나뉘는데 1996년 10월 1일 보존 및 활용에 대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재(건축물)를 문부과학대신이 문화재 등록 원부에 등록하도록 하는 것을 법률로 제정하였는데 이에 의거해 지정된 것이 등록유형문화재로써 보수가 필요한 경우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정유형문화재와는 달리 국가의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외관을 고치지 않고 실내를 개조하는 것은 자신의 부담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와 화려한 사진들이 넘쳐나는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 이진칸점(神戸北野異人館店)이지만 그 이면의 얘기들을 소개한 곳을 보기 어려워 몇 자 적어보았다.

커피 맛은? 스벅에선 언제나 샷을 추가하는 내겐 그냥 평범한 스벅맛일 뿐이더라는~

 

일본의 된장절임요리 사이쿄즈케(西京漬け)와 사이쿄야키(西京焼き)

일본의 된장절임요리 사이쿄즈케(西京漬け)와 사이쿄야키(西京焼き)

일식(日食)문화가 낯설지 않은 지금, 서경절임 또는 서경구이라는 말을 간간이 듣거나 보게 되는데 서경절임은 일본어 사이쿄즈케(西京漬け: さいきょうづけ)를, 서경구이는 사이쿄야키(西京焼き: さいきょうやき)를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사이쿄야키(西京焼き)는 사이쿄즈케(西京漬け)를 구운 요리여서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니지만, 오늘은 이 두 가지의 차이와 유래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서경절임, 즉 사이쿄즈케는 사이쿄미소(西京味噌)라는 된장을 사용하여 절이는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요리용 된장을 궁중에 진상했던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서경된장, 즉 사이쿄미소는 교토를 비롯한 간사이 지방에서 만드는 흰된장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의 된장에 비해서 염분이 적고 단맛이 특징으로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수도를 에도(江戸: 지금의 도쿄)로 천도하면서부터 교토(京都)를 사이쿄(西京)라고 부르게 된 것에서 유래하여 사이쿄즈케(西京漬け)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사이쿄미소라고 하면 특정 브랜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며 특히 관서지방에서는 흰된장이나 된장절임(味噌漬け)으로 부른다.

일본 된장의 종류는 크게 쌀된장, 콩된장, 보리된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쌀된장은 쌀로 만들고 보리된장은 보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원료는 콩이지만 발효시키는 누룩의 원료가 무엇인지에 따라 구분된다.(사용하는 누룩의 양에 따라서 된장의 맛을 3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코메코우지(米麹)라는 쌀누룩으로 만드는 쌀된장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보리된장 및 콩된장이 각각 4.5% 정도씩을 차지하며 나머지 10% 정도는 혼합된장이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일본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일본여행객의 숫자는 크게 감소했지만 언젠가 관계가 회복되어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보리된장은 큐슈나 쥬고쿠지방(中国地方)에서, 콩된장은 도카이지방(東海地方)에서 쉽게 맛볼 수 있으며 콩된장은 핫쵸미소(八丁味噌)가 특히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쌀된장을 사용하여 요리의 재료를 절이게 된 것은 헤이안 시대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물고기를 바다에서 먼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저장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나 지금은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 양고기 등 육류(肉類)에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서경된장, 즉 사이쿄미소에 술이나 맛술을 더하여 요리재료를 재운 다음 굽는 것을 서경구이, 일본어로는 사이쿄야키라고 부른다.

사이쿄야키는 보관용기에 담아 하루에서 길게는 사흘 정도를 서경된장에 재운 다음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즉석에서 맛술이나 술을 더한 서경된장을 발라서 굽기도 한다.

 

특별히 주의할 점은 없으나 며칠 재운 다음 요리하는 경우에는 재료의 표면에 묻은 된장을 닦아내지 않고 구우면 겉이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하고 구워야 한다는 점만 주의하면 된다.

   

 

또 한 가지만 덧붙이면 서경절임한 생선을 구울 때는 절이기 전에 소금을 뿌려 생선의 수분을 빼낸 후에 된장에 절이는 것이 좋다는 점만 신경 쓰면, 제법 비싼 요리인 일본의 사이쿄야키를 손쉽게 집에서도 맛볼 수 있다.

네이비씰은 베트남전쟁에서 청바지를 입었다.

네이비씰은 베트남전쟁에서 청바지를 입었다.

“네이비씰이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무슨 청바지를 입고 전투를 했느냐?” 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베트남전쟁에서 네이비씰은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미군의 보급품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네이비씰은 청바지를 입었던 것일까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하게 되는 것은 1964년 8월 2일에 있었던 통킹만에서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으면서부터이지만 그 이전부터 미국은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을 군사지원하고 있었고 네이비씰은 주로 자문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은 베트남민족해방전선 소속으로 정식명칭은 베트남공산주의자를 뜻하는 베트콩들의 게릴라전술과 마을주민으로 위장하면 식별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많은 혼란과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 CIA가 한 가지 작전을 수립하는데 그것이 바로 적게는 2만 5천여 명, 많게는 4만 명 이상을 고문·살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작전명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이란 것이었습니다.

CIA가 내세운 명분은 베트콩이나 정보원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무력화(neutralized)시킨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침투, 납치, 암살, 고문 등의 방법을 사용했으며 특히 고문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CIA의 사이공 지부장이었던 피터 드실바(Peter DeSilva)가 입안한 이 작전은 정보수집이란 명분과는 달리 베트콩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심문하면서 비행기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등의 잔인한 방법을 서슴지 않았는데 작전의 주된 목표는 공포심을 심어 베트콩에게 협력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에서 네이비씰이 침투, 납치, 암살이라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당시의 군복은 정글에서의 작전 도중에 찢어지는 일이 잦아 임무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작전에 참가하는 네이비씰 대원들은 더 내구성이 좋은 군복의 지급을 요구했고 그 대안으로 요구했던 청바지가 지급됨으로써 모든 네이비씰 대원들이 청바지를 입었던 것은 아니고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에 참가한 대원들만 청바지를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민간인의 무고한 희생은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것이라고는 해도 전투가 아닌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이 사건에 대하여 미국은 현재까지 베트남에 어떠한 사과를 한 적도 없습니다.

결국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은 1970년부터 그 실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71년에는 의회청문회가 열리게 되는데 거기에서 전직 CIA요원이었던 밀턴 오스본(Milton Osborn)이 “비인격적인 살인 프로그램”이라고 증언함으로써 미국 내의 반전여론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2년에 개봉되었던 로버트 레드포드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스파이 게임”에서 미 해병대의 정찰저격병(United States Marine Corps Scout Sniper)이었던 브래드 피트를 CIA요원으로 선발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바로 이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을 실행하는 요원으로 나오는데 극중에서 그는 “나는 피닉스 프로그램에서 함께 임무를 수행할 저격병을 찾기 위해 비행기로 날아왔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답니다.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엇갈리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며, 또 하나의 명백한 사실은 이 작전에 투입되었던 네이비씰의 대원들이 청바지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검은 유대인을 구출하라-모사드의 모세 작전

검은 유대인을 구출하라-모사드의 모세 작전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의 정식명칭은 ‘정보 및 특수임무연구소(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인데 1977년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메나헴 베긴은 모사드에게 “에티오피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에 의해 모사드가 수행한 작전이 바로 ‘모세 작전(Operation Moses)’이며 작전의 내용은 내전 중에 있는 에티오피아로부터 유대인들을 구출한다는 것이었다.

흔히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이라고 하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Ethiopian Jews)’을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작전은 에티오파아가 내전 중에 진행되었던 1984년의 ‘모세 작전(Operation Moses)’을 비롯하여 1985년의 ‘조슈아 작전(Operation Joshua)’ 및 내전이 끝난 후 정국이 불안정할 때 단행된 1991년의 ‘솔로몬 작전(Operation Solomon)’ 등이 있고 이보다 이전인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는 모로코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야친 작전(Operation Yachin)’을 통해 97,000명의 검은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구출시킨 사례가 있었다.

모세작전은 2018년 4월 19일 영국의 BBC를 통해 “스파이가 운영한 휴양지(The holiday village run by spies)”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되면서 자세하게 알려졌다.

그러나 검은 유대인들을 구출함에 있어서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에 있는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들에게는 추방을 명령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데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모세작전에 대해서만 알아보고자 한다.

1984년 11월 비밀 각료회의의 결정에 의해 모세작전을 실시하기로 함에 따라 모사드는 아랍국가인 수단의 지원을 얻어 다른 아랍의 적대국가들이 모르게 비밀리에 검은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구출하기 위해 수단관광공사가 1972년에 건설하였으나 전기나 수도 등의 인프라가 부족하여 방치되고 있던 홍해 연안의 ‘아로우스(Arous)’에 있는 15동의 방갈로로 구성된 리조트를 32만 달러에 3년간 임대하기로 한다.

모사드 요원들은 리조트의 관리자 또는 직원으로 위장하여 작전을 수행하면서 실제로 15명의 현지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하였는데 채용된 현지인들은 그들의 고용주가 이스라엘의 비밀요원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위장한 리조트를 운영한 모사드는 실제로 리조트를 홍보하는 인쇄물을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는데 경영을 너무 잘 해서였을까? 모사드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영국 인디펜던트

 

난민촌의 검은 유대인들을 일단 리조트로 데리고 온 모사드는 지금은 사라진 벨기에의 항공사 ‘Trans European Airways’를 통하여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이스라엘로 한 번에 약 200명의 난민을 30회 이상 탈출시키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도합 7천~8천명의 난민을 구출하는 성과를 올린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가 모세작전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통제하고는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비영리단체인 ‘The Jewish Agency’에 의해서 작전내용이 누출되면서 1985년 1월 5일 당시 총리였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는 보도를 자제할 것을 호소하게 되었고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작전은 다른 아랍국가들로부터 압력을 받은 수단정부가 협력을 중단하고 모사드는 수단을 떠나라는 명령을 함으로써 끝을 맺게 된다.

극적이었던 모세작전은 실제로 2005년에 이스라엘과 프랑스가 합작으로 ‘리브 앤 비컴(Live and Become)’이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하여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하여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최근에는 넷플릭스가 모세작전을 소재로 하여 ‘크리스 에반스’ 주인공의 영화 ‘Red Sea Diving Resort’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최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 Top 5

최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 Top 5

“세계최초의 저격부대 제95 라이플 연대”란 포스팅에서 토마스 플런킷(Thomas Plunkett)이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프랑스의 콜베르(Colbert)장군을 300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할 때 사용한 총은 베이커 라이플이었으며 1939년 11월 30일부터 1940년 3월 13일까지 핀란드와 소련 간에 벌어진 겨울전쟁(Winter War)에서 하얀 사신(White Death)으로 불리며 542명의 소련군을 저격한 것으로 유명한 시모 해위해가 사용한 총은 모신나강(Mosin-Nagant)이라고 하는 소총으로 모두가 스코프 없이 오직 가늠쇠만 이용하여 저격을 하였기 때문에 사거리가 짧았으나 총기와 장비의 발달로 인하여 현대에 와서는 스코프를 통해 반사되는 빛으로 적에게 노출될 수 있는 단점을 줄이면서도 먼 거리에서 목표물을 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2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2,310미터라는 최장거리 저격기록이 새로 세워지기 전까지의 기록은 베트남전쟁에서 93명을 저격하였으며 1968년에 2,286미터에서 저격을 성공하여 당시로서는 최고기록을 수립했던 미국인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이라는 미국 해병대원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의 기록은 2002년에 깨지게 되는데 이후에 수립된 모든 기록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립된 것들로써 지금부터 가장 먼 거리에서 저격을 성공시킨 스나이퍼를 5위부터 1위까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5위: 미국인 브라이언 캐머(Brian Kemer) 2004년 이라크, 2,300m

 

▶ 4위: 캐나다인 아론 페리(Arron Perry) 2002년 아프가니스탄 2,310m

아론 페리는 2002년 3월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캐나다군의 작전명 아나콘다에 투입된 저격팀의 일원이었으며 McMillan Tac-50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론 페리는 2002년 적군의 시체에 모욕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가 되었고 증거불충분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McMillan Tac-50

 

▶ 3위: 캐나다인 롭 펄롱(Rob Furlong) 2002년 아프가니스탄 2,430m

롭 펄롱도 아론 페리와 함께 아나콘다 작전에 투입되었던 저격수로서 알카에다 요원을 발견하고 마찬가지로 McMillan Tac-50을 사용하여 저격하였는데 첫 발은 맞추지 못했고 두 번째 발사에서는 알카에다 요원이 매고 있던 배낭을 맞추었으며 세 번째 발사에서 사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롭 펄롱(Rob Furlong)

 

▶ 2위: 영국인 크레이그 해리슨(Craig Harrison) 2009년 아프가니스탄 2,475m

영국 육군 근위기병대(Blues and Royals) 소속의 크레이그는 2009년 11월 작전 도중 탈레반 요원 2명을 발견하고 L115A3을 사용하여 저격하였는데 작전에 참가한 아파치 헬기에서 레이저 측정기를 이용하여 거리를 측정한 것이라고 하며 사살된 2명의 탈레반 요원들 시체는 아프가니스탄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크레이그 해리슨(Craig Harrison)

 

L115A3

 

▶ 1위: 성명불상의 캐나다인 2017년 이라크 3,450m

세계최고의 기록을 세운 사람의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가 속한 부대가 바로 비밀에 쌓인 JTF2(Joint Task Force 2)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JTF2는 1992년 기존에 있던 캐나다의 대테러 부대였던 SERT를 해체하고 새롭게 창설된 부대인데 워낙 비밀스럽게 운영되던 까닭에 당시 캐나다 총리였던 스티븐 하퍼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했던 연합군들조차도 개전 초기에는 JTF2가 투입된 사실을 모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JTF2의 존재가 일반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 바로 3,450m에서 저격에 성공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세계최초의 저격부대 제95 라이플 연대

세계최초의 저격부대 제95 라이플 연대

요즘 주말이면 tvN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당시의 역사를 돌이켜 보곤 하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9월 1일은 1923년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날이며,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사건이 일어난 관동대학살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잔인하게 학살당한 한국인들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전 세계에서는 수많은 구호물자를 보냈는데 가장 많은 지원을 한 나라는 미국으로써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캐나다와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구호물품을 보냈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일본이 저지른 한국인에 대한 만행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이 나라의 위정자들은 꼭 되새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드라마에서 배우 김태리가 맡은 여주인공 고애신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저격수(스나이퍼)로 나오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세계최초의 저격부대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세계적인 저격수들에 대해 얘기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핀란드의 “시모 해위해”인데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39년 11월 30일부터 1940년 3월 13일까지 핀란드와 소련 간에 벌어진 겨울전쟁(Winter War)에서 하얀 사신(White Death)으로 불리며 542명의 소련군을 저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덴만 여명작전”을 수행한 청해부대의 스나이퍼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데, 당시 흔들리는 링스헬기에서 삼호쥬얼리호에 승선하려는 동료들을 엄호 사격하는 과정에서 해적 1명을 사살한 것은 한국군의 실력을 세계에 과시한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저격에 특화된 부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세계최초의 저격부대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만들어진 “제95 라이플 연대”입니다. 전쟁에 총이 사용되고 나서 특정인을 노리는 저격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명중률이 극도로 낮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소총은 나선형의 홈, 즉 강선이 없는 활강포의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이후에 강선식으로 된 소총이 개발되었음에도 장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나폴레옹은 자기가 지휘하는 부대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당시 영국군이 가지고 있던 활강포 소총의 장전과 발사를 재현한 것인데 영국군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겪으면서 저격전술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었고 “저격수만으로 구성된 부대가 있다면 전세가 크게 변할 것이다.”는 존 무어 장군의 생각에 따라 쿠트 매닝햄(Coote Manningham) 대령과 윌리엄 스튜어트(William Stewart) 소령을 주축으로 하여 베이커 라이플을 소지한 “제95 라이플 연대”를 창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95 라이플 연대”를 가리켜 그린 재킷(Green Jackets)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영국보병들이 착용하던 빨간색 군복 대신에 녹색의 군복을 착용하고 흰색 대신에 검정색의 수장을 착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제95 라이플 연대”의 장병들이 소지한 베이커 라이플은 장거리 사격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장약을 많이 사용해야만 했고 그럼에 따라 장전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숙달된 보병들이 최대 분당 4발을 발사할 수 있었던 브라운 베스(Brown Bess) 소총에 비해 분당 1발이라는 제약을 가지고 있었지만 100야드 이내의 목표물을 3발 중 1발 꼴로 명중시킬 수 있고 최대 200야드의 거리에 있는 표적도 맞출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기본장비로 지급되었던 것입니다.

“제95 라이플 연대”의 명성은 1대대 소속의 토마스 플런킷(Thomas Plunkett)이라는 병사에 의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제95 라이플 연대”의 창설을 주도한 존 무어 장군의 지휘 하에 참가한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존 무어 장군은 포탄의 공격으로 전사하게 되지만 토마스 플런킷은 프랑스의 콜베르(Colbert)장군을 300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하고, 쓰러진 콜베르 장군을 도우러 달려가던 부관까지 저격함으로써 그 실력을 입증하였던 것입니다.

“제95 라이플 연대”의 이야기는 영국에서 숀 빈(Sean Bean)을 주인공으로 하여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는데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시리즈가 방영되었고 2008년 11월 2일에는 2부작 “Sharpe’s Challenge”를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세계각국의 대물저격용 저격총

세계각국의 대물저격용 저격총

첫 번째로 알아보았던 세계 각국의 대인(對人)저격용 소총”에 이어서 오늘은 대물저격용 총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로 “anti-materiel rifle”라고 하는 대물저격총은 기본적으로 대구경 탄환을 사용하는데 그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개발된 마우저M1918(Mauser M1918) 또는 탱크와 총을 합친 “Tankgewehr M1918”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TuF(Tank und Flieger)1918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M1918은 전차의 장갑판을 관통하고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살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당시 연합군 전차의 장갑 두께인 25mm를 뚫기 위해 13mm 구경의 철갑탄을 사용하였으나 사정거리가 65미터 이상이 되면 내부에 있는 승무원들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또한 일반보병이 사용하던 소총을 단순히 확대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병사들 사이에서는 코끼리 총 또는 코끼리를 잡는 총이란 뜻으로 “Elefant Gewehr”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전쟁을 통해 15,800여 자루가 보급되었는데 M1918에 의하여 파괴된 영국군의 전차는 전체의 1% 정도였다고 하지만 연합군 측에서는 아주 큰 위협으로 평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물저격총이 현대에 와서는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1899년 제1차 만국평화회의의 “육상전에 대한 법률과 관습에 대한 협약(Convention respecting the Laws and Customs of War on Land)”과 “인체 내에서 쉽게 확장되거나 형태를 변이시키는 탄환의 사용 금지에 대한 선언”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일부에서 사용하는 12.7mm탄이 체내에서 터지는 것은 186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선언”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있지 않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포스팅 “최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 Top5”에서 1위를 차지한 캐나다의 JTF2(Joint Task Force 2) 소속의 병사가 2017년 6월 23일 작성한 3,540미터의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할 때 사용한 총도 대물저격총인 맥밀란(McMillan) Tac-50이었습니다.

그러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어떤 총들을 대물저격용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미국

▶ Barrett M82

 

 

대구경 소총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전차무기로 등장하기는 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차의 장갑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테러사건이 증가하면서 비행장과 같은 곳에서의 원거리 저격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게 됨에 따라 각국에서는 특수부대가 휴대할 수 있는 무기의 수요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로니 바렛(Ronnie Barrett)이 설립한 회사가 .50BMG탄(12.7×99mm)을 사용하는 총을 1982년에 개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바렛 M82입니다.

Barrett M82가 사용하는 12.7mm탄은 탄도의 직진성이 높으며 7.62mm탄에 비하여 공의 저항을 덜 받아 속도의 저하가 적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2002년에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세계 최장거리의 저격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이 세운 1968년의 2,286미터 거리의 저격도 12.7mm탄을 이용하여 성공을 한 것이었습니다.

1982년에 개발된 Barrett M82는 1986년에 M82A1으로 개량되며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쟁에서 미군들이 사용하게 되는데 당시 미군은 이 총을 SASR(Special Applications Scoped Rifl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Barrett M82는 많은 개량 모델들이 출시되었는데 25x59Bmm NATO탄을 사용하는 XM109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 아머라이트 AR-50(ArmaLite AR-50)

 

50BMG탄(12.7×99mm)을 사용하는 이 총은 2014년에 제작한 홍보용 포스터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ArmaLite AR-50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제작하여 저작권문제가 발생하면서 널리 알려진 일이 있는 총입니다.

 

▶ McMillan TAC-50

 

 

맥밀란사(McMillan Firearms)가 만드는 이 총은 저격총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최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 Top5”에서 2위를 제외한 1위, 3위 4위를 한 3명은 바로 이 McMillan TAC-50을 사용하여 기록을 작성하였습니다.

 

McMillan TAC-50은 미국의 네이비씰은 Mk.15 Mod.0 SASR(Special Applications Sniper Rifle)라고 부르며 캐나다 군에서는 C-15 LRSW(Long Range Sniper Weapon)로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사용하는 탄환은 .50BMG탄(12.7×99mm)이며 2012년에 TAC-50 A1과 TAC-50 A1-R2의 파생형이 출시되었습니다.

 

▶ 해리스 M90(Harris M93)

 

1993년에 개발된 이 총은 길이 1,372mm, 무게 11.32kg으로 .50BMG탄(12.7×99mm)을 사용하며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야간투시경을 추가로 장착할 수 있습니다.

 

▶ 아이버 존슨(Iver Johnson) AMAC-1500

 

1981년부터 1982년에 걸쳐 미군의 요청으로 Jerry Haskins가 이끄는 팀이 개발한 총으로 최초에는 8.58×71mm탄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졌으나 나중에 .338 Lapua Magnum탄을 비롯하여 NATO의 7.62mm와 12.7mm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으나 많이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 영국

▶ Accuracy International AW50

Accuracy International이 개발한 L96A1을 50구경으로 재설계하여 만든 총으로 길이 1.420mm, 무게 15kg으로 12.7mm NATO 표준탄을 사용합니다.

AW50의 변형모델로는 AW50F, AW50FT, AX50, AS50 등이 있는데 AW50F는 한국군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AS50은 미국 네이비씰의 요청으로 만든 모델입니다.

■ 프랑스

▶ PGM 헤카테Ⅱ(PGM HécateⅡ)

 

프랑스의 PGM정밀(PGM Précision)사가 만드는 이 총은 울티마 레이쇼 시리즈(PGM Ultima Ratio) 중에서 가장 최대 구경의 모델이며 Hécat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이 총을 FR-12.7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12.7mm 구경의 저격총”을 뜻하는 프랑스어 “Fusil à Répétition de calibre 12,7”를 줄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길이 1,380mm, 무게 13.8kg의 이 총은 NATO표준의 .50BMG(12.7×99mm)탄을 사용하며 총구의 폭발을 옆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전체의 반동을 줄이도록 하는 소염기(muzzle brake)가 있어서 반동을 7.62mm NATO표준탄을 사용하는 정도로 줄일 수가 있으며 10배율의 SCROME LTE J10 F1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습니다.

 

■ 스위스

 

 

이 총은 스위스의 총기제조회사인 SIG(Schweizerische Industrie-Gesellschaft)에서 제작하지만 원래는 AMSD(Advanced Military System Design)라는 회사에서 만들고 있던 OM 50 네메시스(Nemesis)를 SIG에서 사들인 다음 전직 미 해병대원이던 제임스 B. 오웬스(James B. Owens)가 OM 50 네메시스를 바탕으로 설계하여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2011년 12월 OM 50 네메시스에 대한 모든 권리가 이양되면서 총의 이름도 SAN 511로 바뀌게 되었으며 SG 511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용하는 탄환은 50BMG (12.7x99mm)입니다.

 

■ 독일

▶ SIG 50

 

 

스위스 기업 SIG(Schweizerische Industrie-Gesellschaft)사의 총기사업부를 2000년에 독일의 자본인 SWISS ARMS가 인수하였는데 그 이전인 1985년에 SIG는 미국법인 “SIG Arms”를 설립하였었습니다.

2000년에 사업을 인수한 SWISS ARMS가 유럽시장을 담당하고 미국 현지법인에서 미주시장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미주시장의 사업이 크게 확장되면서 미국법인명을 “SIG Arms”에서 “SIG Sauer”로 변경하게 되는데 바로 이 “SIG Sauer”가 우리에게 익숙한 맥밀란 시리즈를 생산하는 “McMillan Firearms”와 함께 개발한 총이 바로 SIG 50입니다.

따라서 이 총은 “McMillan Firearms”가 생산을 하고 “SIG Sauer”가 판매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물저격용이기에 사용하는 탄은 NATO표준의 .50BMG (12.7×99mm)탄입니다.

 

■ 오스트리아

▶ Steyr IWS 2000

 

슈타이어 IWS 2000은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 만리허사(Steyr Mannlicher)가 만든 것으로 IWS는 “Infantry Weapon System”의 약자로 “보병무기체계를 뜻합니다.

길이 1,800mm, 무게 18kg인 총은 15.2×169mm탄을 사용하는데 1990년에 출시된 모델인 AMR 5075는 14.5mm탄을 사용합니다.

 

▶ Steyr HS .50

2004년에 개발된 이 총은 길이 1,370mm, 무게 12.4kg으로 50BMG (12.7×99mm)탄을 사용합니다.

 

 

■ 폴란드

▶ ZMT 12.7mm

길이 1,350mm, 무게 15.8kg이며 유효사거리는 2,000미터인 이 총은 .50BMG탄 (12.7x99mm)을 사용합니다.

 

■ 세르비아

▶ Zastava M93

 

세르비아의 총기제조회사 차스타바(Zastava Arms)가 만든 이 총의 애칭은 세르비아어로 검은 화살을 뜻하는 “Crna Strela”입니다. 그래서 총기의 영문이름 뒤에 Black Arrow가 있는 것입니다.

모델은 사용하는 탄에 따라 2가지가 있는데 .50BMG탄 (12.7x99mm)을 쓰는 것은 길이가 1,500mm, 무게가 14.6kg이며 12.7mm×108mm탄을 사용하는 것은 길이가 1,670mm, 무게는 15kg입니다.

현재 Zastava M93는 세르비아군을 비롯하여 요르단, 리비아, 마케도니아 및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 크로아티아

▶ RH-ALAN MACS M2

1991년에 개발된 길이 1,470mm, 무게 12.4kg의 이 총은 .50BMG탄 (12.7x99mm)을 사용하는데 1997년에 불펍(Bullpup)의 MACS M3가 개발되었고 현재는 크로아티아군을 비롯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군 등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MACS M4

 

▶ RH-ALAN RT20

 

 

이 총은 크로아티아의 RH-Alan사가 1990년대 중반에 개발한 것으로 모델명에 있는 RT-20(Ručni Top 20)은 “Handheld Cannon 20mm”를 뜻하는 말입니다.

길이는 1,330mm, 무게는 15.1kg이며 양각대와 조준경 등 모두를 장착하였을 때의 무게는 19.8kg이라고 하며 이름에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탄은 20mm입니다.

그러나 이 총은 명중률이 낮아 저격에 사용하기가 어렵고 파괴력은 유탄발사기에 한참 못 미치는 바람에 많이 보급되지는 못했습니다.

 

■ 헝가리

▶ Gepárd

헝가리어로 치타를 의미하는 Gepárd는 1987년 경장갑차량을 파괴하기 위한 휴대용 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단발식의 M1에서부터 반자동의 M2, M3, M4, M6와 볼트식의 M5 등 다양한 모델이 파생되었습니다.

이 총이 개발될 당시의 헝가리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사용하는 탄이 12.7x108mm이었으나 1999년에 NATO에 가입을 하면서 수출용을 포함하여 헝가리군에 보급된 Gepárd M1은 모두 .50BMG (12.7×99mm)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습니다.

 

M1

 

M3

 

■ 남아프리카공화국

▶NTW-20

 

영어로 Denel NTW-20이라고 하는 이 총은 1990년대에 남아공화국의 Denel Mechem사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NTW-20의 가장 큰 특징은 총기를 완전히 분해하지 않고도 구경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mm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마우저(Masuer)사가 개발한 것으로 이것은 개인이 사용하는 최고 크기의 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총은 20mm×82탄을 사용하는 NTW-20과 20mm×110탄을 사용하는 NTW-20×110과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대공경장갑차 중기관총용으로 채택하였던 14.5mmx114탄을 사용하는 NTW-20/14.5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발한 대물(對物)저격총으로는 Truvelo SR(Sniper Rifles)50을 포함하여 저격총을 주로 제작하는 Truvelo Manufacturers가 만드는 SR(Sniper Rifles) 시리즈와 CMS(Counter Measure Sniper)가 있습니다.

 

■ 러시아

▶ OSV-96

OSV-96은 러시아어로는 OCB-96인데 1994년에 공개되었던 V-94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1,746mm, 무게 12.9kg으로 12.7x108mm탄을 사용합니다.

 

 

▶ KSVK 12.7

 

KSVK는 러시아어(Крупнокалиберная Снайперская Винтовка Ковровская(Krupnokalibernaya Snayperskaya Vintovka Kovrovskaya)의 약자인데 영어로는 Large-Caliber Kovrov Sniper Rifle 즉 “대구경 코브로프 저격총”을 의미하며 줄여서 Degtyarev sniper rifle이라고도 합니다.

이 총은 1990년 후반 러시아의 코브로프(Kovrov)에 있는 데그챠레프 군수공장(Degtyaryov Plant)에서 개발되었는데 SVN-98 12.7mm라는 실험용 소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1,420mm, 무게는 12kg입니다.

세계각국의 대인저격용 저격총

세계각국의 대인저격용 저격총

저격용으로 특화시킨 소총으로 일반적으로 고배율의 망원조준경을 장착하여 원거리 사격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저격총은 대인(對人)과 대물(對物)용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대물저격총은 영어로 AMR(anti-materiel rifle)이라고 하는데 “material”이 아니고 “materiel”이라는 것에 주의하여야 하며 최초로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였는데 더욱 자세한 내용은 “세계의 저격총-대물저격용”에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저격총은 일반적으로 5.56mm나 7.62mm의 소총탄을 사용하며 더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338 Lapua Magnum(8.6×70mm or 8.58×70mm)탄이나 12.7mm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특히 12.7mm 이상의 탄환은 대물(對物)저격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12.7mm탄을 인명살상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조약이나 법률로 명문화 된 것이 없어서 대인저격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포스팅 “최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 Top5”에서 알아본 기록들은 2위를 차지한 영국인 크레이그 해리슨(Craig Harrison)이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2,475m의 기록을 수립할 때 사용한 L115A3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대물저격총으로 세운 기록들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용하는 저격총 중에서 대인저격용으로 사용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모델들은 자국에서 자체개발한 것들이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저격총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대한민국 K14

길이 1150mm, 총열길이 610mm, 무게 5.5.kg의 볼트액션식 소총으로 NATO표준의 7.62mm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S&T 모티브(구 대우정밀공업)에서 미국의 윈체스터(Winchester Repeating Arms)사의 M70을 참고하여 만들었습니다.

 

■ 미국

레밍턴(Remington) M40

M700을 베이스로 만든 것으로 NATO 표준의 7.62mm 탄을 사용하는 볼트액션식의 총입니다. 개머리판을 유리섬유로 바꾼 M40A1에 이어서 저격수의 체형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든 A3모델이 보급되고 있으며 조준기와 탄환을 포함한 총무게는 약 7.5kg 정도로 저격총으로는 다소 무거운 편입니다.

 

 

레밍턴(Remington) M24SWS(Sniper Weapon System)

레밍턴 M700을 기반으로 만든 것으로 1988년부터 일반보병과 저격수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볼트액션식 소총으로 본체와 조준기 및 바이포드와 정비도구를 하나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모델명에 SWS(Sniper Weapon System)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M24SWS의 사거리가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자 사거리를 연장한 모델인 M2010ESR로 교체를 하고 있습니다.

 

 

레밍턴(Remington) MSR(Modular Sniper Rifle)

총열과 기관부의 부품을 교체하여 상황에 맞게 .338 Lapua Magnum탄이나 NATO표준의 7.62mm 등 4가지의 탄환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M110 SASS(Semi-Automatic Sniper System: 반자동 저격소총)

Knight’s Armament에서 만든 것으로 쉽게 말하면 M16을 대형화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발배경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점차 증가하는 시가전에서는 정밀사격도 중요하지만 민첩하게 사격할 수 있어야 하는 점도 중요하여 500미터 이상의 사거리에서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민첩하게 사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DTA SRS

미국의 DTA(Desert Tactical Arms)사의 SRS(Stealth Recon Scout)는 독일의 DSR-1을 기반으로 제작하였으며 243 WIN, .308 WIN, .300 WIN MAG, .338 LM 4종류의 탄환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가 가능합니다.

 

 

맥밀란(McMillan) Tac-338

맥밀란 Tac 시리즈는 대부분이 다음번에 포스팅할 “세계의 저격소총 ②-대물저격용”에 해당하지만 .300 윈체스터 매그넘(Winchester Magnum)탄을 쓰는 맥밀란(McMillan) Tac-300과 .338 Lapua Magnum탄을 쓰는 Tac-338은 대인저격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ac-338은 길이 1,220mm, 총열 658mm, 무게 5kg으로 NATO표준 7.62mm 탄보다 강력한 .338 Lapua Magnum을 사용하기 때문에 저격수의 역량에 따라 1,600미터의 유효사정거리를 넘는 2,000미터에 있는 목표물도 명중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 영국

RPA Rangemaster

레인지마스터 시리즈는 견고하면서도 정비가 쉽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높은 정확도를 보이기 때문에 중남미 국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NATO표준의 7.62mm탄을 사용하는 일반형과 .338 Lapua Magnum탄을 사용하는 장거리형, 그리고 12.7mm탄을 사용하는 대물저격용이 있습니다.

L96A1

Accuracy International사가 제작하여 1984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길이 1158mm, 무게 6.6kg, 렌즈 직경이 42mm인 6배율의 조준경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 독일

OA10

M16의 특허권을 가진 미국의 콜트사의 특허기간이 끝남에 따라 1984년부터 각국의 총기 제조업체들이 앞다투어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독일에서는 “Oberland Arms”란 회사가 OA10이란 이름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개량형인 OA15가 보급되고 있습니다.

 

G29

독일 CG Haenel사가 개발한 것으로 2016년 독일연방군 특수부대의 저격용으로 채택되었으며 길이 1,275mm, 무게 7.5kg으로 .338 Lapua Magnum탄을 사용합니다.

 

 

Blaser R93 Tactical

독일 블레이저사가 생산하는 것으로 4종류의 탄환을 사용할 수 있으며 길이 1,130mm, 총열 627mm, 무게 4.8kg의 볼트액션식이지만 장전할 때 뒤로 밀어서 하는 스트레이트 풀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DSR-1

독일의 방산업체인 AMP기술서비스(AMP Technical Services)가 개발하였으나 2004년에 도산하는 바람에 DSR-정밀(DSR-Precision GmbH)이란 회사가 인수하게 되어 모델명에 DSR이 붙어 판매하게 된 것입니다.

사용하는 탄환은 NATO표준의 7.62mm이며 현재 DSR-1은 독일경찰을 비롯하여 룩셈부르크와 스페인의 경찰과 대만의 육군 등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H&K417

5.56mm탄을 사용하는 H&K416의 기관부를 대형화하여 NATO표준인 7.62mm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2017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707특임대”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H&K PSG-1

H&K는 “헤클러 운트 코흐(Heckler & Koch)”의 약자인데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무기제조회사 마우저(Mauser)의 자료를 프랑스군들이 소각할 때 전직 마우저 소속의 기술자였던 헤클러와 코흐 등이 몰래 자료를 빼내어 설립한 회사로서 유명한 무기생산업체입니다.

헤클러 앤드 코흐 PSG1는 이 회사에서 1972년에 만든 길이 1,208mm, 무게 8.1kg의 7.62mm NATO 표준탄을 사용하며 “헤클러 운트 코흐(Heckler & Koch)”에서 만든 총들은 종류가 아주 많으며 그 가운데 저격총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래의 것들이 있습니다.

 

H&K MSG-90

 

 

 

H&K SL-8/H&K SL-9

 

H&K G28

 

이외에도 가장 많은 저격총을 생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일의 저격총은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이쯤에서 멈추고 별도로 한 번 다루도록 할 생각입니다.

■ 프랑스

FR-F1/FR-F2

1967년에 개발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하던 MAS1936을 저격용에 맞도록 만든 것인데 1984년에 FRF2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길이는 1200mm, 무게는 5.1kg으로 조준기와 양각대를 기본장비로 하고 있습니다.

 

PGM Ultima Ratio

프랑스의 PGM정밀(PGM Précision)이란 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Ultima Ratio는 라틴어로 “최후의 수단(힘)”을 의미하며 모델로는 Intervention, CommandoⅠ, CommandoⅡ, Integral Silencieux의 4가지가 있고 인터벤션이 7.39kg으로 가장 무겁고 코만도Ⅱ가 6.12kg으로 가장 가볍습니다.

 

■ 벨기에

FN SCAR-H PR

SCARP는 “Special operations forces Combat Assault Rifle”의 약자로서 총열의 길이가 330mm, 406mm, 508mm의 3가지 종류가 있는 SCAR-H 가운데에서 508mm의 총열을 가진 모델입니다.

 

 

■ 스위스

SIG SG550 Sniper

Swiss Arms AG에서 만드는 것으로 모델명의 SG는 독일어 “Sturmgewehr”의 약자로서 영어로는 “assault rifle”이며 우리말로는 “돌격소총”에 해당합니다.

 

SIG Sauer SSG 2000/3000

이 총은 1989년에 스위스의 회사 SIG Arms(현재의 SAN Swiss Arms)와 독일의 회사 J.P.Sauer & Sohn가 공동으로 개발한 것으로7.62mm의 NATO표준탄을 사용하며 길이는 1,210mm, 무게는 6.6kg입니다.

 

Brügger & Thomet APR308

프랑스의 총기제조업체인 “PGM Précision”사의 제품을 판매하던 스위스의 “Brügger & Thomet”이라는 회사는 총기부품의 제작도 겸하고 있었는데 싱가포르 육군에 PGM 7.62mm를 납품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면서 프랑스의 “PGM Précision”로부터 기술협력을 얻어 개발한 것이 바로 APR300으로 .338 Lapua Magnum탄을 사용합니다.

 

■ 오스트리아

Steyr Scout(슈타이어 스카우트)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사가 만든 이 총은 1980년대 초반 미국인 제프 쿠퍼(Jeff Cooper)가 정의한 스카우트 라이플(scout rifle)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스카우트 라이플(scout rifle)이란 것은 길이 1,000mm 이하, 무게 3.5kg 이하로 휴대하기가 좋아야 하며 눈의 피로와 장전을 빠르게 하기 위하여 저배율의 조준경을 장착할 수 있는 마운트를 볼트 앞부분에 장착하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Steyr Scout는 이에 맞게 총을 제작하면서 NATO표준의 5.56mm와 7.62mm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탄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후속으로 나온 것이 슈타이어 엘리트(Steyr Elite)입니다.

 

■ 러시아

SVD

AK-47의 사거리 밖에 있는 적을 견제할 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드라구노프(Dragunov sniper rifle)라고도 하며 4배율의 적외선 탐지기능이 있는 조준경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고 지금도 일선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VSS Vintorez

소음기가 기본으로 장착된 구소련에서 개발된 총으로 9mm×39mm라는 특수한 탄환을 사용합니다. 이 탄환은 소음효과를 높이기 위해 초속은 저하되지만 탄두의 중량이 무거워 관통능력은 높은 탄입니다.

SVD와 마찬가지로 4배율의 적외선 탐지기능이 있는 조준경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거리가 짧기 때문에 은밀하게 목표물의 근거리에 접근하여 사격하여야 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ORSIS T-5000

2011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2012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는데 ISIS와의 실전에도 투입되었으며 사용할 수 있는 탄은 .300 WIN(윈체스터 매그넘 7.62mm)을 비롯하여 .338 Lapua Magnum탄과 NATO표준의 7.62mm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일본

호와(豊和)M1500

일본경찰의 경비부에 편성된 특수부대인 SAT(Special Assault Team)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특수총 I형”이며 수출용은 “Howa Model 1500 Rifle”이라고 합니다.

 

 

■ 이스라엘

IWI DAN .338

이 총은 이스라엘의 총기제조회사 IWI(Israel Weapon Industries)에서 제작한 것으로 모델명에 있는 DAN은 요르단 강 상류에 있는 성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아랍어로는 “심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338 Lapua Magnum탄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