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허용하는 나라들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허용하는 나라들

미국이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금지하게 됨으로써 현재,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19개국이 되었는데 이 중에서 쿠바와 태국은 제한적으로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국은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2005년부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지만 행정병으로서의 복무만 허용하고 있으므로 이런 태국과 쿠바를 제외하면 현재 세계에서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전면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17개국인데 지금부터 어떤 나라들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는지 알파벳순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스트레일리아

호주는 1992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나라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오스트리아는 2004년부터 허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벨기에

벨기에는 2003년부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볼리비아

볼리비아는 남미 최초로 2010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캐나다

캐나다도 호주와 마찬가지로 1992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체코

체코는 1999년부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덴마크

덴마크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1978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에스토니아

2000년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와 함께 에스토니아에서도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핀란드

2000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

프랑스도 2000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독일

프랑스도 2000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여성들도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쳐야 하는 이스라엘에서는 1993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대하여 명문화 된 규정은 없지만 1993년부터 인권법(Human Rights Act)으로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어서 트랜스젠더의 입대가 허용되고 있는데 특히 2012년에는 군에 복무하는 성적소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NATO 국가 중에서 최초로 여성들에 대한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이기도 하면서 1973년에 세계최초로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 스페인

스페인은 2005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스웨덴

스웨덴은 유럽에서는 두 번째로 1976년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영국

2000년부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기 시작한 영국군은 2017년에 열린 ‘London Pride Week’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은 2016년 시가행진을 하고 있는 영국군 성소수자들의 모습

 

클럽 버닝썬과 조안 트럼파우어를 생각해본다.

클럽 버닝썬과 조안 트럼파우어를 생각해본다.

클럽 버닝썬의 폭력사건으로 촉발된 사회적 파장은 날이 갈수록 더 크게 확산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연예인들의 행동은 반드시 법의 준엄한 심판이 따라야 할 것이지만 대중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경찰의 수사를 우리는 현재로선 지켜볼 수밖에는 없다.

권익위에서 검찰로 넘어간 정준영과 관련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찰 입장에서는 현재 경찰 고위층의 연루설까지고 제기되고 있다 보니 대검으로 넘어간 정보의 내용과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테니 피의자들의 휴대폰보다 포렌식을 한 업체를 우선적으로 압수수색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은폐를 위한 행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검경수사권조정에 관한 문제는 오늘의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으니 승리와 정준영을 비롯한 일부 연예인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서만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굳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의 조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엄한 가치를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즉 이것은 사회 속에서 인종에 따라, 혹은 여성이라는 등의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훼손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에 앞서 승리와 정준영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인식하여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얘기를 할 때면 흔히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예로 들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안 트럼파우어 멀홀랜드(Joan Trumpauer Mulholland)’라는 미국의 인권운동가를 알아보면서 이번의 사태와 한 번 비교를 해보볼까 한다.

올해로 77세인 그녀는 1875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 남부연맹의 모든 공공기관에서 ‘짐크로 법(Jim Crow laws)’에 의해 합법적으로 실시하던 인종을 분리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운송수단의 이용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프리덤 라이더(Freedom Riders)’에 참가하였다가 19살의 나이로 체포된 후 보석금의 납부를 거부하고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서 촬영한 사진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사진출처: ShareAmerica

 

그러나 그보다는 1963년 5월 28일 ‘프레드 블랙웰(Fred Blackwell)’이란 사람이 찍은 사진에 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일그러진 추악한 행동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데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시시피 주 잭슨의 백인전용 가게(five-and-dime store)에서 그녀는 백인들로부터 설탕, 케첩 그리고 겨자 등의 투척세례를 당하는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승리와 정준영을 비롯하여 그들의 단톡방에 있던 연예인들 모두가 ‘조안 트럼파우어 멀홀랜드(Joan Trumpauer Mulholland)’ 일행에게 폭력을 가했던 백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에 앉아 있는 조안을 비롯한 세 사람은 모두 미시시피 시민운동의 중심지가 된 역사적인 ‘투갈루 대학(Tougaloo College)’의 소속으로 가장 왼쪽에 앉은 남자는 사회학을 가르치던 ‘존 솔터(John Salter)’ 교수이며, 중앙이 ‘조안 트럼파우어 멀홀랜드(Joan Trumpauer Mulholland)’이고 오른쪽에 앉은 여성은 후에 반핵운동가로도 활동을 하였던 ‘앤 무디(Anne Moody)’로서 조안과 앤은 당시 학생이었다.

만일 승리와 정준영의 사건이 표면화 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이 사진을 그들에게 보여준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그들이 느끼게 될 ‘잘못된 행동’이라는 판단은 지금 그들의 행태를 보는 대중들이 느끼는 감정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부디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마천루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마천루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두바이에 있는 높이 828미터의 버즈 칼리파 (Burj Khalifa)인데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높이 1,007미터의 지다 타워(Jeddah Tower)가 건설 중이어서 조만간 1위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건설하는 마천루는 우리가 모르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한 번 알아보자. 우선 고층건물 하면 우리는 도시의 중심부가 주변보다 온도가 높아지는 “열섬현상”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뿐만 아니라 “풍동터널”을 만들어 오염물질이 도시 주변에 축적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단일 건물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두 가지 사례를 한번 알아보자.

 

1. 대만의 타이베이 101은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다.

2005년 대만의 국립사범대학교의 지질학교수인 “Cheng Horng Lin”은 타이베이 파이낸셜 센터(Taipei Financial Centre), 즉 타이베이 101이 건설되기 전에는 규모 2 이하의 지진 외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건물이 들어서고 나서 규모 3.8과 3.2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내진설계를 한 건물의 무게가 70만 톤에 달해 이것이 지각에 심각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지진을 유발하는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캘리포니아대학의 존 비데일(John Vidale)은 타이베이 101의 무게가 지하응력을 변화시킬 정도는 되는 것이 맞지만 지진을 발생할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2. 고층건물은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타이베이 101이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보이지만 이번에 얘기하는 화재를 유발하는 건물은 검증할 필요가 없다.

영국과 런던에서는 고층건물로 인해 차량의 백미러가 녹아내리거나 사람들이 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무슨 이유로 어떤 건물이 화재를 유발했는지 살펴보자.

 

■ 런던의 워키토키(Walkie-Talkie) 빌딩

런던 중심부에 지어진 “20 펜처치 스트리트”는 그 생김새 때문에 흔히들 워키토키(Walkie-Talki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건물의 한쪽 면은 오목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구조가 돋보기 역할을 하여 2013년에는 건물 아래에 주차되었던 자동차의 백미러가 녹아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건물 아래에서 머리카락이 타버린 사람들도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계란프라이를 만들기도 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하자 2014년에 건물에서 반사되는 빛이 분산되도록 구조를 변경하였는데 사람들은 마천루를 뜻하는 “Skyscraper”에 빗대어 “Fryscraper”라고 비꼬아 불렀다.

 

■ 라스베이거스의 비다라(Vdara Hotel) 호텔

미국의 이 호텔도 영국의 워키토키(Walkie-Talkie) 빌딩과 마찬가지로 햇빛이 반사되는 오목한 형태를 가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이 “라파엘 비뇰리”로 같았기 때문이다.

비다라(Vdara Hotel) 호텔의 경우에는 반사되는 빛이 수영장을 향하고 있어서 투숙객들이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이 호텔의 수영장을 향해 반사되는 빛을 “죽음의 광선(death ray)”으로 불렀고, 결국 호텔 측에서는 반사되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수영장 위에 차양막을 설치하고서야 마침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우스갯소리: 마천루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마천루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으나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과학적인 의미 이외에는.

국제원자시(TAI: Temps Atomique International) 프로젝트의 연구에 의하면 지상 30미터 높이에서는 해수면보다 시간이 1피코 초(1조분의 1초) 빠르다. 따라서 지상 30미터의 높이에서 70년을 산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00분의 1초 빨리 사망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전혀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일본 유조선의 피격과 선박의 기국주의

일본 유조선의 피격과 선박의 기국주의

6월 13일 오만 해상에서 발생한 유조선 2척에 대한 피격사건의 배후로 미국은 이란을 지목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이란은 각기 상대방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피격의 배후로는 4가지를 가정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이란의 혁명수비대 휘하의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Quds Force)이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조직을 사주하여 벌인 일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으나 여러 무장조직들의 세력에 미치지 않는 오만해상이란 점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을 높이기 위한 반이란 테러조직의 소행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2018년에 이란의 군사퍼레이드를 무장공격했던 아흐브즈민족저항(Ahvaz National Resistance)은 활동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배제되고 있고 그보다는 수니파의 반체제 무장단체인 ‘정의의 군대(Jaish al-Adl)’ 또는 ISIS(이슬람국가)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사건발생 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혀온 두 조직의 행동으로 볼 때 이것도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란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및 이스라엘 등의 제3국이 배후일 것이라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으며, 가능성이 제일 낮기는 하지만 해적들도 용의선상에 오르고는 있으나 아직은 배후로 지목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란 것이 현시점의 팩트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군이 유조선에서 불발된 기뢰를 회수하는 모습이라며 아래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 영상을 공개할 때까지 이란이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거를 인멸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피격당한 일본의 유조선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는 일부언론에서는 일본국적의 선박이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어제인 6월 14일 일본의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은 자위대를 파병할 계획이 없다는 발표를 했다.

자국의 선박이 피격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파병하지 않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언론의 보도가 틀렸음에 있다.

일본국적의 선박으로 알려진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는 미쓰비시가스화학의 자회사로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국화산업(国華産業)이 파나마로부터 용선하여 독일기업의 싱가폴 지사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선박으로서 공해상의 선박이나 항공기는 국적을 가진 국가의 배타적 관할권에 속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인 기국주의(旗國主義)에 따라 파나마 국기를 게양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자위대를 파병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격당한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에는 일본인 선원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도 자위대를 파병하지 않은 것인데 일본이 자위권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1.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있거나 동맹국이 공격을 받는 경우 및 일본국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 2. 자위권 발동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을 때라는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요건 중 어디에도 코쿠카 커레이저스(Kokuka Courageous)호의 피격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자위대를 파병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많던 블록버스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블록버스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에서 주인공 캡틴 마블(Captain Marvel)과 닉퓨리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소는 1990년대 당시 대형 비디오대여 체인점이었던 ‘Blockbuster’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도 아파트의 상가나 동네에 반드시 하나씩은 있었던 비디오대여점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그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데 이런 사정은 영화의 배경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나오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사업이 가장 활황이던 2004년에는 미국에만 4,500개의 매장이 있었고 전 세계에서 9,094개의 체인점을 운영하였지만 VOD(Video On Demand)와의 경쟁에서 휘청이다가 마침내 넷플릭스의 출현과 함께 사망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에 나오는 블록버스터 매장의 씬은 지금은 70세와 60세를 각각 넘긴 ‘아놀드 슈왈제네거’ 선상님과 ‘제이미 리 커티스’ 여사께서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시절에 찍었던 영화, ‘트루 라이즈(True Lies)’의 비디오가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2019년을 맞으면서 그 많던 블록버스터의 매장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호주와 미국에 각각 한 개씩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호주에 있던 매장마저 2019년 3월에 문을 닫음으로써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매장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벤드의 매장: 출처 CNN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

독일이 통일되기 전인 1983년 봄, 세계는 서독의 주간지 슈테른(Der Stern)의 발표로 들썩이게 되는데 1932년부터 히틀러가 사망 직전까지 썼다는 일기를 입수하였다는 것이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이유였다.

930만 마르크(당시 환율로 미화 610만 달러)를 들여 ‘히틀러의 일기(Hitler Diaries)’를 입수한 슈테른지의 기자 게르트 하이데만(Gerd Heidemann)은 전 세계의 보도진 앞에서 모두 62권으로 이루어진 히틀러의 일기를 공개하기 전 영국의 유명한 사학자이자 나치독일의 전문가인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에 의뢰하여 진위여부에 대한 검증을 마쳤다.

그리고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는 기자회견이 열리기 이틀 전인 1983년 4월 23일, 히틀러의 일기는 진품임에 틀림없다는 글을 쓰게 된다.

 

1947년에 발간한 책 ‘히틀러의 마지막 날(The Last Days of Hitler)’로 명성을 얻고 있던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는 정작 기자회견 당일에는 자신의 검증이 미흡하였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급기야 1983년 5월 6일에는 히틀러의 일기가 가짜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독일 연방기관의 조사로 히틀러의 일기가 가짜라는 판명을 받게 되면서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의 명성은 추락하기 시작하였고 일기를 판매했다고 알려진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는 체포되기에 이른다.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

 

또한 930만 마르크를 일시불로 지불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나누어 대금을 지불하면서 일기를 사들였던 슈테른지의 게르트 하이데만(Gerd Heidemann)기자는 대금의 전달과정에서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고 2002년에는 그가 동독의 비밀경찰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됨으로써 또 다른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1985년 사기죄로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는 수감 중 후두암 판정을 받고 3년 만에 출소한 뒤, 역설적이게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개설하여 공식적으로 위조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위조하여 용돈을 벌었던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는 1957년에 드레스덴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게 되었고 1958년부터는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미술품 복원전문가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

 

그런 그가 만들었던 가짜 히틀러의 일기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에 있는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이다.

위조품 박물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1951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박물관을 들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예술품을 포함하여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으나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은 개인박물관이면서 독일어권에서는 유일한 위조품박물관으로 위조된 예술품만을 전시하고 있다.

2005년에 다이안 그로브(Diane Grobe)란 여성이 만든 이 박물관에는 예술품 위조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콘라드 쿠야우(Konrad Kujau)보다도 더 뛰어난 위조전문가였던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은 게슈타포를 창설한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을 상대로 사기를 친 사실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의 암염갱(岩鹽坑)에서 나치독일이 약탈하여 숨겨놓은 예술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전문가들도 처음 보는 바로크시대의 화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요하네스의 작품들이 어떻게 나치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이 판매한 것임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독일에 협력한 죄로 그는 재판에 회부되게 된다.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은 그것이 모두 자신이 위조한 가짜라는 사실을 실토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직접 그려보아야 믿을 수 있다는 수사당국에 의해 3개월 동안 가택에 구금당한 상태로 직접 그림을 그려 증명해야 했고, 법원의 의뢰로 국제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가짜라는 판명을 받음으로써 반역죄가 아닌 위조와 사기죄로 1년형을 선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32년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들을 위조하기 시작한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은 1936년에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6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받고 ‘엠마우스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이란 위조품을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 판매하였고 1938년에 1400년대~1800년대의 네덜란드 화가들의 명작 450점과 함께 일반에 전시되었다.

엠마우스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

 

참고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는 알지 못해도 그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아래의 작품은 본 적이 아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이 자랑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화가로 소개되고 있는 ‘토마스 패트릭 키팅(Thomas Patrick Keating)’의 것들도 있다.

100명 이상의 화가들의 작품 2천 여 점을 위조했다고 알려져 있는 토마스 키팅은 미술품시장의 비리를 교란할 목적으로 전문가들을 속이기 위해 위조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였으나 그 진위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자신이 그린 위조품에는 시한폭탄(time bombs)이라 이름붙인 힌트를 숨겨두었던 ‘토마스 패트릭 키팅(Thomas Patrick Keating)’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많은 위조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의 설립목적은 저작권에 대한 이해와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지식을 널리 알리는 것에 있다고 한다.

현재는 8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오스트리아의 위조예술품 박물관(Museum of Art Fakes)은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미국의 학교에서 금지하는 의외의 것들

미국의 학교에서 금지하는 의외의 것들

1. 빨간색 잉크

시험답안지나 과제물의 실수를 표시하는 색깔로 오랫동안 빨간색 잉크를 사용해왔는데 2008년 영국의 켄트 주니어스쿨의 교감 리차드 사몬즈(Richard Sammonds)가 학생들의 의욕을 상실시키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므로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비롯되어 블랙 프라이데이가 유래된 것처럼 학생들에게 부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교육을 한다는 의미로 많은 학교들에서 빨간색의 잉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 어그 부츠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실 내로의 휴대폰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2012년 어그부츠 안에 휴대폰을 숨겨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다고 해서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포츠타운 중학교(Pottstown Middle School)에서는 어그부츠를 신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당연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대가 들끓었고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반대여론이 비등하였지만 학교 측은 이를 감행하였는데 현재도 시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을 못하였습니다.

 

3. 백팩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백팩은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리노이와 아이오와 주의 일부 학교에서는 교실의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복도에서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백팩의 사용을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백팩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때에 한하고 그런 경우라도 안이 보이는 시스루 형태의 백팩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4. 피구

플로리다 주를 비롯하여 뉴욕 주, 메인 주, 메사추세츠 주, 뉴햄프셔 주, 텍사스 주 등에서는 피구가 폭력적이며 왕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체력이 약한 학생의 경우에는 공에 맞아 부상을 입거나 자신감을 상실할 수 있으며 다른 학생을 해치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되는 규칙은 옳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합니다.

 

5. 술래잡기

캘리포니아 주의 골드 리지 초등학교(Gold Ridge Elementary School)의 교장 데이비드 프랭클 (David Frankel)은 학부모들에게 서신을 보내어 술래잡기가 너무 강한 신체접촉을 유발하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알린 다음 이를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6. 사전

음란서적을 교내에 반입하거나 보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사전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의외의 일입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학교에서는 구강성교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사전(Webster’s 10th Collegiate Edition)의 사용을 금지하였는데 이 사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후드티를 학교 내에서는 입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곳들도 있고 버몬트 주에 있는 학교(Orchard School)에서는 많은 시간을 밖에서 뛰어놀고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유치원생부터 5학년까지는 숙제를 내주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 공군 최초의 여성 주임원사는 한국계 여군!

미 공군 최초의 여성 주임원사는 한국계 여군!

요즘 언론기사를 보면 좌우 어느 한쪽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거나 사실관계의 확인조차도 하지 않고 기레기들이 작성한 쓰레기들이 넘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레기들의 눈과 귀에는 이런 자랑스러운 내용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을 것이기에 미국 공군 역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주임원사(CMSgt: Chief master sergeant)의 자리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을 소개한다.

자랑스러운 그녀의 이름은 조안 배스(JoAnne S. Bass)로 지난 8월 14일 미국 공군의 제19대 주임원사에 취임하였는데 아시아계 최초라는 타이틀까지 함께 얻게 되었다..

하와이 밀리라니(Mililani) 출신인 조안 배스(JoAnne S. Bass) 주임원사의 어머니는 한국인인데 요즘 같은 글로벌사회에서 한국계 미군이 진급한 것이 뭐가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취임한 자리의 중요성 때문에도 호들갑을 떨고 싶다.

조안 배스(JoAnne S. Bass)가 취임한 자리는 32만 명에 달하는 미 공군 중에서 오직 1명만이 오를 수 있으며 부사관과 병사들을 대표하여 참모총장에게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쉽게 말해서 부사관과 병사들의 대표로 미국 공군참모총장과 마주 앉는 카운트파트(counterpart)가 된다는 것으로 이렇게 자랑스런 기사는 단신(短信)으로라도 실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기레기들아~

사진 출처: 미공군

 

 

 

독일군 돌격대에서 따온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독일군 돌격대에서 따온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스톰트루퍼(stormtrooper)라는 단어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스타워즈가 나오면서부터 돌격대라는 뜻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나치 친위대인 SS(Schutzstaffel)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스톰트루퍼(stormtrooper)라는 용어는 스타워즈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독일군의 돌격대(Stoßtruppen)에서 따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This faceless corps of soldiers was inspired by the similar storm troops from the past.)

원문: From World war to Star wras: stormtroopers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이 운용한 돌격부대의 이름인 스톰트루퍼(영어: stormtrooper, 독일어: Stoßtruppen)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링크하는 나무위키의 자료를 참조하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는 나무위키의 일부 잘못된 정보와 빠져 있는 것들에 대해서 살펴본다.

※ 나무위키: 돌격대

 

일반적으로 특수훈련을 받은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폭풍(storm)이란 용어는 힘(power)과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역사적으로는 독일보다 이탈리아가 먼저 사용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왕립육군(Royal Italian Army)’ 휘하의 특수부대였던 ‘아르디티(Arditi)’가 ‘스톰(storm)’ 부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독일군이 운용하였던 돌격대의 초기 모습을 보면 이탈리아의 ‘아르디티(Arditi)’를 많이 참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탄복과 ‘파리나(Farina) 헬멧’을 착용한 ‘아르디티(Arditi)’의 개념은 독일군의 돌격대(Stoßtruppen)와는 조금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독일군의 돌격대가 사용한 명칭의 변천을 보아도 이탈리아에서 따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아르디티

 

독일군 돌격대

 

독일 최초의 돌격대는 1915년 3월 2일, 지휘관이었던 ‘칼조우(Calsow)’ 소령의 이름을 따서 창설된 ‘칼조우 돌격대(Sturmabteilung Calsow)’였지만 전술을 가다듬고 체계화 한 것은 1915년 8월에 돌격대의 지휘관으로 새롭게 부임한 ‘윌리 로어(Willy Rohr)’였다.

그래서 ‘칼조우 돌격대(Sturmabteilung Calsow)’ 이후 ‘윌리 로어(Willy Rohr)’가 재정비한 부대를 ‘로어 돌격대대(Rohr Assault Battalion)’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윌리 로어(Willy Rohr)

‘윌리 로어(Willy Rohr)’가 돌격대를 재정비 하면서 이룬 가장 큰 변화는 각개병사의 군장을 경량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용하는 화기는 물론이었고 이전까지 신던 무릎까지 올라오던 군화(jack boot)를 ‘오스트리아 산악화(Austrian mountain boots)’로 전면 교체하고 초기에 사용하던 피켈하우베(Pickelhaube) 철모 대신에 ‘슈탈헬름(Stahlhelm)’이라고 하는 헬멧(coal scuttle helmet)을 가장 먼저 사용하도록 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면 독일군은 언제부터 스톰트루퍼(stormtrooper)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으면 ‘스톰트루퍼(stormtrooper)=독일 돌격대’라고 혼돈할 수 있다.

또한 돌격대를 뜻하는 독일어인 ‘슈투맙타일룽(Sturmabteilung)’은 나치의 준군사조직이라고들 알고 있거나 혹은 이것을 스톰트루퍼(stormtrooper)라고들 알고 있는데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나 정확한 말도 아니다.

‘슈투맙타일룽(Sturmabteilung)’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Brownshirts’ 또는 ‘SA’가 있는데 ‘브라운 셔츠(Brownshirts)’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당의 ‘검은셔츠단(Blackshirts)’이 입었던 검정색의 제복 대신에 갈색의 제복을 착용하였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 ‘SA’는 ‘슈투맙타일룽(Sturmabteilung)’을 줄여서 쓰는 명칭이다.

 

그렇기 때문에 1919년에 창당된 나치의 전신인 독일노동자당의 준군사조직으로 만들어진 ‘돌격대(Sturmabteilung)’는 ‘스톰트루퍼(stormtrooper)’와는 다르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독일의 돌격대를 말하는 ‘스톰트루퍼(stormtrooper)’의 명칭은 어디서부터 비롯하였는지를 알아보자.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1915년 3월 2일에 처음으로 창설된 독일군 돌격부대인 ‘칼조우 돌격대(Sturmabteilung Calsow)’의 이름에는 분명히 ‘돌격대(Sturmabteilung)’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최초로 만들어진 ‘돌격대(Sturmabteilung)’는 본부와 2개의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후 그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이름을 ‘돌격대대(Sturmbataillon)’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고 이 부대에 속한 병사들을 ‘충격보병(슈토스트루페: Stoßtruppe)’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충격보병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독일어 ‘슈토스트루페(Stoßtruppe)’를 영어로 번역한 ‘shock troops’ 또는 ‘thrust troops’를 한국어로 다시 번역하면서 충격보병이라 부르게 된 것이며 독일에서는 또 다른 이름인 ‘스툼만(Sturmmann)’으로도 불렸는데 이것을 영어로 옮기면 ‘storm man’이 되는데 흔히 ‘스톰트루퍼(stormtrooper)’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타워즈에 의해 널리 알려진 ‘스톰트루퍼(stormtrooper)’라는 단어에는 미묘한 차이가 숨어 있다.

킹콩(King Kong)은 누가 죽였을까?

킹콩(King Kong)은 누가 죽였을까?

몬스터 영화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1933년에 만들어진 영화 킹콩(King Kong)의 마지막 씬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의해 킹콩이 떨어져 숨을 거두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킹콩을 죽인 비행사가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지금부터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네스트 B. 쇼드색(Ernest B. Schoedsack)”과 “메리언 C. 쿠퍼(Merian C. Cooper)”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았던 이 영화에서 킹콩을 죽이기 위해 포스터와는 달리 4대의 전투기가 출격을 하는데 이 중의 1대를 감독이었던 메리언 쿠퍼가 직접 조종을 하였고 그가 쏜 총에 의해 킹콩은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감독이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비행기를 직접 조종한 것은 아마도 메리언 쿠퍼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메리언 쿠퍼는 1916년 군에 입대하여 판초 비야의 토벌작전에 참가를 한 후 애틀랜타의 항공학교에 진학하여 파일럿이 된 다음.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모두 참전하였는데 특히 1차 대전 이후에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고 있던 폴란드 제7 비행중대에서 지원근무를 하였습니다.

폴란드 제7 비행중대는 1918년에 창설한 폴란드 공군의 모태가 된 부대인데 폴란드 조종사는 몇 명에 불과하였고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21명의 미군들이었으며 이 중의 한 명인 메리언 쿠퍼의 역할이 아주 컸기 때문에 폴란드 공군의 100주년 기념을 맞아 전투기에 쿠퍼의 초상화를 그려 넣어 그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메리언 쿠퍼가 폴란드에서 근무할 당시에 1919년 2월부터 1921년 3월까지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 간에 벌어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발발하였고 1920년 7월에 소련군에 의해 격추되어 메리언 쿠퍼는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메리언 쿠퍼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라트비아를 거쳐 폴란드로 귀환하였고 이런 그의 용맹성을 치하하여 당시 폴란드군의 원수였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Józef Klemens Piłsudski)”는 직접 훈장(The War Order of Virtuti Militari)을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메리언쿠퍼: 라트비아 국경에서

 

이처럼 비행경험이 풍부했던 메리언 쿠퍼는 킹콩의 공동 연출자인 어네스트 쇼드색을 태우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장면에 직접 출연하여 그가 만든 주인공 킹콩을 죽이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킹콩 앞의 두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