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예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표절은 예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담백한 문체의 원서를 읽거나 신문을 보는 것과는 달리 외국어로 된 시(詩)를 읽는다는 것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하물며 외국어로 된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힘든 작업임엔 틀림없습니다. 아이작 월턴의 ‘The Compleat Angler’를 번역하면서 그 안에 있는 많은 시들 중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초고를 올려봅니다.

탈고(脫稿)하면 윤문(潤文)의 과정을 거치면서 표현을 가다듬어야 하지만 지금 그대로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옮겨봅니다.

내 사랑이여 내 집으로 오소서

골짜기와 숲과 언덕과 들판과

우거진 수풀과 산들이

우리를 반기는 그곳으로.

바위에 함께 앉아

양 떼를 모는 양치기의 모습을 보면서

시냇물 소리와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듣고 싶어라.

그댈 위한 잠자리는 장미로 만들고

향기로운 꽃으로 꾸며 놓고서

꽃 모자와 도금양의 잎사귀로 장식한

커틀을 만들리.

어린양의 털로는

겉옷을 만들고

순금의 버클 달린 신발 만들어

추위에서 지켜주리라.

밀짚과 담쟁이덩굴론 벨트를 만들고

산호와 호박으론 단추를 달리

이 즐거움은 그대의 것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게 오소서

내 집으로 오소서.

주님의 성찬을 차리듯

은접시에 음식을 담아

상아 식탁 위에 올려놓으리

그대와 나를 위하여.

오월의 아침엔 그댈 위하여

양치기는 춤을 추고 노래 부르리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그리하여 나의 신부가 되어주기를

나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노라.

 

윗 시에 대한 답가

세상이 영원하고

생명도 영원하며

양치기의 말도 진실하다면

아름다운 기쁨에 몸을 맡기고

나 그대의 연인이 되리.

시간이 양 떼를 우리로 몰고

분노한 강물이 바위를 식히며

나이팅게일이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젊음도 끝은 있으리.

꽃은 시들고 들판은 휑해져

사나운 겨울에 짓밟히누나

달콤한 속삭임은 상처가 되고

행복한 봄은 서글픈 가을로 변하는구나.

그대의 겉옷, 그대의 신발, 장미의 잠자리,

그대의 모자, 그대의 커틀, 그대의 꽃다발,

덧없이 시들어 잊혀지누나

철없는 농익음은 썩고 마누나.

밀짚과 담쟁이덩굴로 만든 그대의 벨트

산호와 호박으로 만든 그대의 단추는

어느새 매력을 잃어버렸네

나 다신 그대에게 가지 못하리.

어떠한 산해진미도

주님의 은총에 어찌 비기랴

지나간 모든 것은 부질없어라

젊음이 지속되어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기쁨은 끝이 없고, 늙지도 않는다면

그 기쁨에 이끌려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살리라.

 

윗 시의 답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했건만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던가?

사랑해서 결혼했었고

사랑의 환상에 이끌렸었기에

조금의 아쉬움도 내겐 없다네.

그러나 가슴은 두려움에 싸이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간 곳 없어라

그래도 사랑은 서리처럼 눈처럼 쉬이 녹진 않누나

우유 담은 통을 나르는 내가

오늘도 그녀를 사모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어라.

아이작 월턴의 조어대전에 나오는 이 노랫가락은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가 지은 정열적인 목자의 사랑(The Passionate Shepherd to His Love)이란 제목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 아이작 선생은 약간의 창작을 가미하여 슬쩍 끼워놓고는 출처도 밝히지 않고 책에 삽입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제가 번역하여 올린 것은 말로의 작품과는 일부분이 상이합니다.

아이작 선생께서 누구의 작품인지 몰라서 작자를 밝히지 않은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작 월턴이 쓴 조어대전 옥의 티

아이작 월턴이 쓴 조어대전 옥의 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낚시계의 바이블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에는 잘못된 부분들이 더러 눈에 보이는데 오징어가 다리를 뻗는 것을 두고 목에서 창자를 꺼낸다고 적고 있는 것처럼 당시의 과학이나 기술력으로는 알기가 어려웠던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조금만 철저하게 교열(校閱)이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과 그가 죽고 난 뒤에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부정확한 것이 되고 만 것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조어대전의 제2장을 보면 금어기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Sir, they be principally three, namely, March, April, and May; for these be the usual months that Salmon come out of the sea to spawn in most fresh rivers, and their fry would about a certain time return back to the salt water, if they were not hindered by weirs and unlawful gins, which the greedy fishermen set, and so destroy them by thousands; as they would, being so taught by Nature, change the fresh for salt water. He that shall view the wise statutes made in the 13th of Edward I., and the like in Richard II., may see several provisions made against the destruction of fish; and though I profess no knowledge of the law, yet I am sure the regulation of these defects might be easily mended.”

“3월, 4월, 5월의 3개월을 말합니다. 이 시기는 보통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는데 거슬러 오르는 도중에 불법적인 둑이나 덫에 의해 남획(濫獲)되면 산란은 수포가 되고 맙니다. 에드워드 1세와 리차드 2세의 시대에는 금어기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남획을 막고 있었다는 것은 법률에 밝은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저처럼 법률지식이 없는 사람조차도 금어기를 정한 법률은 옳다고 생각합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2가지의 큰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첫째는 연어의 산란기를 봄철이라 적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에드워드 1세가 만든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더라면 연어의 산란기를 봄철로 적지는 않았을 것이란 점입니다.

1285년 에드워드 1세가 만든 금어기(禁漁期)에 대한 법을 보면 매년 9월 8일부터 11월 11일까지는 대부분의 강에서 연어를 잡는 것을 금하고, 4월 중순부터 6월 24일까지는 어린 연어를 잡는 것을 금지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아이작이 이 법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아보았더라면 3월~5월이 연어의 금어기라고 기록하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아이작 월턴도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이작 월턴은 낚시꾼의 희망과 행복한 생활에 대한 찬가로 조 다보스란 사람이 지은 시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시의 초반부만 잠깐 소개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Let me live harmlessly, and near the brink

Of Trent or Avon have a dwelling-place;

Where I may see my quill or cork down sink

With eager bite of Perch, or Bleak, or Dace;

And on the world and my Creator think:

Whilst some men strive ill-gotten goods t’ embrace,

And others spend their time in base excess

Of wine, or, worse, in war and wantonness.

Let them that list these pastimes still pursue,

And on such pleasing fancies feed their fill,

So I the fields and meadows green may view,

And daily by fresh rivers walk at will,

Among the daisies and the violets blue,

Red hyacinth, and yellow daffodil,

Purple Narcissus like the morning rays,

Pale gander-grass, and azure culver-keys.

남을 해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리라

트렌트 강이나 에이번 강가에 집을 지으리

퍼치와 블리크, 데이스의 힘센 입질에

물속으로 가라앉은 찌를 볼 수 있는 그곳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경외하며 살고파라.

누군가는 불법으로 돈을 모으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싸움과 여자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때

나 홀로

푸른 들과 목장을 바라보고

원할 때면 강가를 거닐면서

데이지와 제비꽃

파랗고 빨간 히아신스와 노란 수선화,

아침 햇살 같은 보라색 수선화와

창백한 갠더풀과 하늘색 컬버키를 보리라.

이것은 조어대전보다 40년이나 앞선 1613년에 출판된 ‘낚시의 비밀(The Secrets of Angling)’이란 책을 펴낸 사람이 쓴 것으로 아이작은 그 사람의 이름을 조 다보스(Jo. Davors, Esq.)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작 월턴의 상상력의 결과물로써 조어대전은 이 책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그런 사람의 이름을 창작해서 만들었다는 점은 아이작 월턴의 내면을 분석해보는 좋은 단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이작은 조어대전 초판에서는 그의 이름을 ‘Jo. Da’로 적었으나 3판부터는 조 다보스(Jo. Davors, Esq.)로 기록하였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낚시의 비밀(The Secrets of Angling)’이란 책은 출판될 당시에는 저자의 이름을 ‘J. D. Esquire’라고 이니셜로만 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작은 여기에다 자기 마음대로 성과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었죠.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인지, ‘낚시의 비밀(The Secrets of Angling)’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1613년에 나온 ‘낚시의 비밀(The Secrets of Angling)’을 쓴 사람의 이름이 존 데니스(John Dennys)였다는 것은 1811년에 밝혀졌으니 아이작으로서는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당당하게 조 다보스라 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계속해서 영국의 낚시문학으로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조어대전 제2장: 수달과 처브 이야기

조어대전 제2장: 수달과 처브 이야기

사냥꾼: 딱 맞춰서 오셨군요.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마침 해도 뜨는군요. 지금 개들이 수달 한 마리를 잡았는데 저 언덕 아래에 있습니다. 수련과 꽃냉이가 무성하죠. 보세요. 개도 사람들도 정신이 없어요.

낚시꾼: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오늘 사냥은 출발이 좋군요. 인사는 그만두고 우리도 빨리 가봅시다.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습니다. 울타리건 도랑이건 넘어서 갑시다.

사냥꾼: 어디서 수달을 잡았습니까?

수달사냥꾼: 여기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닥치는 대로 송어를 잡고 있던 걸 발견했는데 더 먹지도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송어를 잡고 있었죠. 그리고 마침 그때 우리가 도착했는데, 먹다 남긴 게 이만큼이나 있었습니다.

그 뒤 우리는 수달에게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쫓았죠. 이젠 개와 사람들이 있으니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니 조금만 있으면 숨통을 끊고 가죽을 벗길 수 있을 겁니다.

사냥꾼: 수달 가죽이 값어치가 있습니까?

수달사냥꾼: 장갑을 만들면 10실링은 받을 수 있어요. 비 오는 날엔 수달 장갑보다 좋은 게 없어요.

낚시꾼: 재미난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짐승을 사냥 중인가요? 아니면 물고기를 잡는 중인가요?

수달사냥꾼: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냥꾼: 살코기는 먹지 않는다고 맹세한 카르투시오 대학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문제는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 왔지만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군요. 그러나 수달의 꼬리는 물고기라는 것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입니다. 만일 수달의 몸통도 물고기라고 한다면 물고기가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게 되지요.

왜냐면 때때로 수달은 새끼에게도 먹이고 자기도 먹을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룻밤에 5~6마일에서 10마일까지 이동합니다. 비둘기가 아침을 먹으려고 40마일(64㎞)을 날아가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런데 수달은 물고기를 많이 먹기도 하지만 먹지 않으면서도 장난삼아 물고기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힌다는 점이 문제랍니다. 라틴어로 수달을 ‘개담비(Dog-fisher)’라고 하는 이유는 물속에서 100야드 떨어진 곳에 있는 물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콘라드 게스너의 말에 의하면 더 먼 곳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달의 음낭은 간질병에 좋다고 하며 베니오네라는 약초를 아마포에 싸서 수달이 나타나는 곳에 매달아 두면 그곳을 피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물속이나 땅에서 모두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죠.

콘월엔 용감한 수달이 아주 많은데 학식이 높은 캠던의 말에 의하면 오터시(Ottersey)라는 강이름은 수달이 아주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가 제가 수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수달이 숨을 쉬려고 올라왔군요. 사냥개가 달려들고 있어서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스위트립스란 이름의 개가 수달을 잡은 것 같으니 어서 가봅시다.

사냥꾼: 이런, 말을 탄 분들이 모두 강을 건너버렸네요. 어떡하죠? 우리도 따라서 건널까요?

수달사냥꾼: 이뇨.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셨다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말을 탄 사람들과 개들이 이쪽으로 불쑥 나타날 거고 수달도 분명히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까 킬벅이란 개에게 맡깁시다. 수달은 또 숨을 쉬러 나올 테니까요.

사냥꾼: 과연 그렇군요. 구석에서 숨을 쉬고 있어요. 방금 링우드란 이름의 개가 잡았어요. 앗, 수달에게 물리면서 놓쳤네요. 이제 스위트립스가 수달을 잡았고 개들이 모두 덤벼듭니다.

물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이젠 수달도 지쳤군요. 스위트립스, 수달을 가지고 와! 자, 보세요. 이 녀석은 암놈이고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으니 잡았던 곳으로 다시 가보면 분명히 새끼들이 있을 테니 잡아서 모조리 죽여야죠.

수달사냥꾼: 자 수달을 잡은 곳으로 가봅시다. 이 근처에서 서식했던 모양인데, 보세요, 정말 5마리의 새끼가 있죠? 모두 죽입시다.

낚시꾼: 잠깐만요. 길들여 보고 싶어서 그러니 한 마리만 산 채로 제게 주십시오. 레스터셔에 사는 닉 시그레이브란 분이 기발한 재주가 많은데 그분은 수달을 길들여 물고기를 잡게도 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난 일을 많이 시킨다고 해요.

수달사냥꾼: 네, 한 마리 가져가시면 나머진 죽일 겁니다. 그럼 이제 맥줏집에 가서 ‘올드 로즈’를 부르며 다 함께 건배를 합시다.

사냥꾼: 낚시꾼 양반, 함께 가시죠. 오늘 밤엔 제가 쏘겠습니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정도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낚시를 배우려면 제가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으니까요.

낚시꾼: 좋습니다. 서로 대접도 하고, 함께 즐기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사냥꾼: 그럼 함께 낚시를 하러 갑시다.

낚시꾼: 그럽시다. 수달사냥꾼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오늘 다시 암수달을 잡아서 새끼들과 함께 죽이는 재미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냥꾼: 그런데 어디서 낚시를 시작하죠?

낚시꾼: 아직 낚시하기엔 마땅하지 않고 1마일은 더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사냥꾼: 걸으면서 이야기하시죠. 어제 묵었던 숙소 및 주인과 일행들이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여관주인은 재미난 사람이었죠?

낚시꾼: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수달을 죽일 수 있어서 기뻤고, 수달사냥꾼들이 많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수달을 사냥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는 점과 어족보호를 위한 금어기(禁漁期)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강의 파괴는 심해질 겁니다. 법과 금육일을 지키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어육(魚肉)이 부족하면 육식을 강요당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냥꾼: 금어기란 언제를 말합니까?

낚시꾼: 3월, 4월, 5월의 3개월을 말합니다. 이 시기는 보통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는데 거슬러 오르는 도중에 불법적인 둑이나 덫에 의해 남획(濫獲)되면 산란은 수포가 되고 맙니다.

에드워드 1세와 리차드 2세의 시대에는 금어기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남획을 막고 있었다는 것은 법률에 밝은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저처럼 법률지식이 없는 사람조차도 금어기를 정한 법률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모두의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천관리인도 부끄러워할 정도로 작은 법적 기준 이하의 크기인 물고기와 그것을 잡을 수 있는 그물이 시장에서 매일 판매되는 양이 그토록 많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란기의 물고기를 잡는 것은 자연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새끼를 부화하고 있는 둥지에서 어미새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느님께서도 신명기(신명기 22장 6, 7절)에서 그런 행동을 금하는 율법을 만드셨습니다.

※ 원본에는 레위율법(신명기 22장 6, 7절)이라고 적혀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레위율법을 신명기로 해석하였다.(in the Levitical law (Deuteronomy xxii. 6, 7)

하지만 불쌍한 물고기들에게는 그런 잔혹한 어부들 외에도 적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까 말한 수달을 비롯하여 가마우지, 알락해오라기, 물수리, 갈매기, 왜가리, 물총새, 고라라, 푸엣, 백조, 거위, 오리, 그리고 물쥐라고도 하는 크래버 등등 모두가 없애고 싶은 것들뿐이지만, 저는 불필요한 살생은 싫어하기에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저는 물고기만 상대하고 나머지는 자연의 순리에 맡겨 둡니다.

이제 아까 하신 술집 주인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드리면, 사실 그분은 제 취향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성경을 모독하는 농담이거나 음란한 농담이어서 위트가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악마는 그와 비슷한 성격의 인간에게 다가가 그런 성정을 부추기거나 아니면 그런 사람은 스스로가 좋아해서 외설적인 언어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죠.

그러나 뛰어난 화술로 모두를 즐겁게 하고 불경스런 말은 하지 않은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진정으로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밤, 바로 그런 분들이 있는 곳으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이 근처에 송어회관이란 곳이 있는데 저의 좋은 낚시친구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좋은 친구와 좋은 이야기는 미덕의 근본이죠. 그러나 어젯밤에 들은 것과 같은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어제 묵었던 여관주인의 애들은 아마도 아버지를 흉내 내서 나쁜 말을 할 겁니다.

게다가 어젯밤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지위와 명예도 있다는 사람들이어서 더더욱 유감스럽습니다. 신앙이 부족한 사람은 거지보다 구원받기 어려우니 최후의 심판이 있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제적인 예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시는 모든 부모와 예의범절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신앙을 가지지만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르침 받은 자의 신앙심은

더 두터워지리라.

이것은 진리를 표현한 것으로 모두가 인정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얘기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저는 예절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남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제 낚시로 화제를 돌리죠. 저쪽에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곳에서 분명히 처브(Chub)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잡으면 제가 잘 아는 깨끗하고 저렴한 가게에 가서 여주인에게 요리를 부탁하고 쉬면서 저녁을 먹도록 하죠.

사냥꾼: 처브는 제일 맛없는 물고기 아닌가요? 저는 저녁에 송어를 먹고 싶거든요.

낚시꾼: 절 믿으세요. 이 근처에는 송어를 잡을만한 포인트가 없습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 수달사냥을 하는 당신의 친구분들과 헤어지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에 벌써 해가 높이 떠버리고 말았습니다.

송어낚시는 저녁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처브는 당신 말처럼 맛이 없다고 소문나 있지만 요리하는 방법에 따라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사냥꾼: 어떻게 요리를 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까?

낚시꾼: 그건 처브를 잡은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여길 보세요. 보이죠? 일어서야만 보일 겁니다. 저기 스무 마리 정도의 처브가 있는데 저 중에서 제일 큰 녀석으로 딱 한 마리만 잡을 겁니다. 내길 해도 좋습니다.

사냥꾼: 와! 선생은 마치 고수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선생이 정말 제일 큰놈을 낚아 올리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어요.

낚시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보세요. 제일 큰 처브의 꼬리에 상처가 있죠. 아마도 파이크(강꼬치고기)나 다른 뭔가에 당한 걸로 보이는데 흰 점처럼 보이는군요. 저 녀석을 잡아보겠습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만 기다리면 꼭 저 녀석을 낚아 올리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냥꾼: 그럼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해 하시니까요.

낚시꾼: 제 솜씨가 어떻습니까? 제가 잡겠다고 했던 꼬리에 흰 점이 있는 녀석입니다. 이젠 이 녀석을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 아까 얘기했던 맥줏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에는 깨끗한 방들이 있고, 창가엔 라벤더가 만발하며 벽에는 20개 정도의 민요가 걸려 있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얘기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깔끔하고, 미인이고, 예의 바르며 지금까지 여러 번 요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제 방식대로 요리를 부탁할 것인데 분명히 맛있다고 느끼실 겁니다.

사냥꾼: 기꺼이 가겠습니다. 슬슬 배도 고파오고 아침부터 4마일 밖엔 걷지 않았지만 피곤하기도 해서요. 어제 사냥의 피로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낚시꾼: 그렇군요. 이제 곧 쉴 수 있을 겁니다. 말씀드린 맥줏집이 저기 보이는군요. 아주머니 안녕하셨습니까? 제일 맛있는 맥주부터 주시고, 이 처브를 요리해 주실래요? 지난번 8일인가 10일 전에 친구와 함께 여기 왔을 때 한 것처럼 요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빨리 좀 부탁할게요.

여주인: 예, 금방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낚시꾼: 아주머니가 정말 빨리 만들어 주셨네요. 어때요?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사냥꾼: 정말 그렇군요. 그럼 이제 기도하고 식사를 시작해볼까요?

낚시꾼: 어떻습니까? 맛있죠?

사냥꾼: 이렇게 맛있는 건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을 위해 건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낚시꾼: 무엇입니까? 그렇게 겸손하게 말씀하시니 무엇인지 듣기도 전에 들어드리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사냥꾼: 다름이 아니고 앞으로 당신을 스승님이라 부르도록 허락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선생은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분이시고, 게다가 낚시 솜씨도 뛰어나시고, 요리 또한 일품이시니 꼭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낚시꾼: 손을 이리 주세요. 지금부터 나는 당신의 스승이 되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낚시인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어대전 원작자 서문 번역

조어대전 원작자 서문 번역

이 글은 아이작 월턴이 그의 저서 ‘The Compleat Angler’의 제5판에 실은 ‘To the reader of this discourse’를 번역한 것입니다.

독자에게-특히 열정적인 낚시인들에게

저 혼자의 만족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세상에 낚시의 기법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썼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이 책을 펴냄으로써 좋은 반응을 얻고자 하는 욕심은 없지만 지금까지 받아온 정당한 평가마저도 잃어버리는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칭찬받지는 못할지라도 너그러운 관심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책은 완벽한 것이 아니므로 잘못된 부분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조언을 드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어 숙독하신다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충분히 아실 것이라는 것이 제가 가진 확신이며 자신감이고 비평에 대한 저의 각오입니다.

그러나 비평은 자유지만 너무 지나친 비평을 받게 된다면 저자의 자유로 그런 것들은 지나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유의하실 사항은 제가 이 책을 쓰는데 있어서 저는 낚시를 통해 또 다른 오락을 즐길 수 있도록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곳곳에 많은 배려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천진난만한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비난하신다면 그런 사람은 너무나 까다로운 사람이므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런 분들의 비평은 사양하겠습니다.

덕망 높은 분들이 말씀하듯 실수란 저지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배려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마디로 제 기분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장사를 접고 낫(Nat)과 로우(R. Roe)와 함께 낚싯줄을 드리우는 그 기분 그대로를 꾸밈없이 쓴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러나 함께 낚시를 즐겼던 동료도 이제는 세상에 없고, 나의 즐거웠던 추억도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도 송어나 그 밖의 물고기의 그림만큼은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 그림들은 제가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칭찬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책의 실용적인 면에 대하여 말씀 드리면 물고기의 습성이나 산란, 제철, 잡는 방법 등에 대한 저의 의견에 이견을 제기할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산란의 시기와 방법도 다르고 제철도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몬머셔스(Monmouthshire)의 3대강으로 알려져 있는 세번 강(River Severn), 와이 강(Wye River), 어스크 강(Usk River)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와이 강에서는 9월부터 4월까지가 연어의 제철인 반면 템스 강(River Thames)과 트렌트 강(River Trent), 혹은 그 밖의 많은 강에서는 한여름을 포함한 6개월이 제철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번 강 (River Severn)

물고기를 잡는 기술을 책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유명한 펜싱 선수였던 조지 헤일즈(George Hales)씨가 ‘펜싱 방어술 자습서(The Private School of Defence)’를 통해 펜싱을 가르치고자 했을 때 주변에서 비웃음을 받았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일즈씨의 책에는 도움되는 내용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이란 말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서만 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샀던 것인데,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낚시의 기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낚시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많은 낚시인들이 모르는 방법 등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하였으며 낚시를 사랑하고 즐겨 하는 사람들의 경험에서 참고가 되는 많은 것들을 모으고 동시에 이삭을 줍고자 했습니다.

낚시는 수학과 같아서 완전히 배울 수는 없습니다. 무한한 것은 완전히 가르칠 수도 없고, 완전하게 배울 수도 없어서 후세에게는 익혀야 할 새로운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낚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 책값 정도의 무엇인가는 분명히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 책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약속을 하고도 제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연구와 수집의 성과는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쯤에서 독자에게 드리는 글을 마무리 지어도 괜찮겠지만 다음 사항은 약간 덧붙일까 합니다.

송어 플라이 낚시에서는 12개월마다 각각의 다른 날벌레를 사용해야 한다고 많은 낚시인들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 규칙을 따른다 하더라도 맑은 날을 골라 건초를 만드는 것처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많이 보이던 날벌레도 다음 해에는 춥거나 더움에 따라 한 달 일찍, 또는 한 달 늦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낚시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12마리의 날벌레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충분히 설명하였으니 날벌레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웨일즈나 다른 나라에는 일정한 지역에만 있는 날벌레들이 있기 때문에 말할 것도 없이 그곳에 서식하는 날벌레와 닮은 인조미끼를 만들지 못한다면 낚시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너 종류의 플라이는 여름 동안이라면 대부분의 하천에서 송어를 잡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겨울철 플라이 낚시의 경우에는 지나간 달력 정도의 효과뿐이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누구도 날 때부터 예술가가 아니듯이 태어날 때부터 낚시꾼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제5판에서는 저의 관찰과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해 얻은 것들을 많이 보충하였습니다. 비 오는 밤에는 이 책을 읽어주시기 바라며, 낚시를 하러 가실 때에는 동풍이 불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작 월턴

조어대전의 진실과 거짓

조어대전의 진실과 거짓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쓴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를 번역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동기 중에는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확대·재생산되어 전파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잘못된 정보는 네이버의 지식백과에도 나와 있는 “1653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가 25년에 걸쳐 다섯 번의 수정판이 나와 1676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역시 네이버의 지식백과에도 나오는 “낚시 친구인 C.코튼이 가필한 증정판(1676)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는 내용이다.

두 가지 내용이 일견, 동일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으나, 첫 번째는 조어대전이 21장으로 늘어난 것은 1676년이 아니란 점이며, 두 번째는 찰스 코튼이 가필한 증정판이 아니라 아이작 월턴이 가필한 것이라는 점이 잘못된 내용이란 것이다.

먼저 “1653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가 25년에 걸쳐 다섯 번의 수정판이 나와 1676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내용의 오류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이작 월턴의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은 1683년 아이작 월턴이 사망하기까지 1653년의 초판을 필두로, 1655년에 제2판이 나왔고, 제3판과 제4판은 1661년과 1668년에 각각 출판되었으며, 제5판은 1676년에 출판되었다.

초판에서 13장(章)에서 불과하였던 것이 전체 21장(章)으로 늘어난 것은 1676년의 제5판이 아니라 1655년의 제2판이었고, 페이지 수도 100페이지 이상이나 증가하였다. 그리고 1661년의 제3판은 변화가 없었으며, 1668년의 제4판은 단지 정오표(errata)만 추가된 것이었다.

그리고 1676년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제5판이 출판되었는데 아이작 월턴이 집필한 부분은 단지 내용만 10페이지가 추가되었을 뿐 장(章)수는 제2판과 같은 전체 21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1653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가 25년에 걸쳐 다섯 번의 수정판이 나와 1676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내용은 잘못된 정보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두 번째, 1676년의 제5판은 “낚시 친구인 C.코튼이 가필한 증정판”이 아니란 점이다. 제5판은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플라이피싱에 관한 내용을 쓰고 아이작 월튼이 가필(加筆)한 것을 제2부로 합본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조어대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소개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되므로 제5판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내용을 소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1676년에 나온 제5판은 아이작 월턴이 쓴 제1부와 찰스 코튼이 쓴 제2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베너블즈(Robert Venables)가 쓴 “능숙한 낚시인과 낚시기술의 향상(The Experience’d Angler or Angling Improv’d)”이란 책을 제3부로 합본하여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전체 장(章)수가 21장이라고 하는 정보도 아이작이 쓴 내용만 21장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이며 찰스 코튼이 가필한 것도 증정한 것도 아니란 것이 올바른 정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가가 아닌 군인이었던 로버트 베너블즈가 쓴 제3부는 아이작 월턴과 찰스 코튼의 글에 비해 문학성에 있어서 너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2쇄부터는 제외하고 출판됨으로써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쓴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의 제5판은 그가 쓴 1부와 찰스 코튼이 쓴 2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또한, 1676년에 나온 제5판의 1쇄는 제목도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가 아니라 ‘The Universal Angler, Made so by Three Books of Fishing.’였으며, 2쇄는 제1부와 제2부로만 구성되었고, 3쇄는 찰스 코튼이 쓴 제2부만으로 출판되었다.

다시 네이버의 지식백과로 돌아가 보면, 아래의 삽화가 다락원에서 출판한 조어대전에 삽입된 그림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삽화는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에 삽입된 것이 맞긴 하다. 그러나 조어대전을 출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위의 삽화는 아이작 월턴의 연재를 통해 소개한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라는 수녀가 쓴 성 알반스의 책(The Boke of St. Albans)의 1496년 증보판에 삽입된 것으로 줄리아나 수녀의 이름 앞에 수식어(Dame)를 붙인 윈킨 드 워드(Wynkyn de Worde)가 책을 출판하면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1760년에 존 호킨스(John Hawkins)란 사람이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을 출판하면서 이 삽화를 집어넣었던 것인데,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채 만들어진 정보들이 이 삽화를 조어대전에 수록된 것이라고만 소개하는 바람에 목판화의 진실은 가려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현실을 도피했던 것일까?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현실을 도피했던 것일까?

‘The Compleat Angler’를 쓴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청교도혁명 당시, 투쟁 대신 일신의 안위를 택하였다는 비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평가와는 달리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왕당파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일화가 있음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가 부족한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유보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작이 왕당파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화도 그의 친구를 통해 전해진 것이어서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일화를 하나만 살펴보도록 하자.

‘The Compleat Angler’의 초반부에서 아이작은 자기 친구 중에 엘리아스 애쉬몰(Elias Ashmole)이란 사람이 있으며 그가 신기한 자료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엘리아스 애쉬몰(Elias Ashmole)

 

애슈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

 

이 같은 인물이 1672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가터 훈장의 역사’에서 아이작 월턴이 왕당파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니 허구(虛構)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우스터 전투(Battle of Worcester)에서 올리버 크롬웰에게 패배한 찰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는데 도주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탄로날 것을 우려해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대령은 레서 조지(Lesser George: 일명 가터 훈장)를 조지 발로우(George Barlow)의 아내에게 맡겼다.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레서 조지(Lesser George)

 

그러나 찰스 2세는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대령은 붙잡혀 런던타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편 그가 맡겨놓았던 찰스 2세의 레서 조지(Lesser George)는 로버트 에스콰이어(Robert M. Esquire)에게 전해졌고, 그는 이것을 다시 아이작 월튼에게 건네주었다.

당시 도주하던 찰스 2세에게는 1천 파운드의 현상금이 걸려있었고, 그의 도주를 도운 사실이 드러나면 최대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작 월튼이 동료들이 피 흘려 싸울 때 유유자적했다는 평가와는 다른 행동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책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찰스 2세의 레서 조지를 전달받은 아이작은 런던타워에 갇혀 있던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대령에게 이것을 은밀하게 전달하였고 토마스 대령은 런던타워를 탈출하여 그것을 망명 중인 왕에게 전했다고 한다.

만일 아이작 월턴의 이런 행동이 발각되었더라면 그는 최악의 경우,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비겁자의 길을 택했다는 평가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보인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서 보듯이 아이작 월턴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상당히 부족하여 아직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기에는 모자란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이제 다시 번역하고 있는 ‘The Compleat Angler’로 돌아가 보자.

몇 차례 소개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초판과 5판을 번역한 두 권이 다락원과 강마을을 통해 출판되었다.

그런데 원본에 나오는 사냥꾼을 뜻하는 Venator를 역자(譯者)인 안동림 교수님과 이재룡씨 모두 나그네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나그네(旅人)라고 번역한 일본의 영향이 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10편으로 마무리하려는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에 대한 글이 벌써 8번째에 이르렀다.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쓰고 아이작이 가필(加筆)한 2부에서 찰스 코튼은 “책에 나오는 사냥꾼(Venator)은 바로 자신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인 낚시꾼(Piscator)은 아이작 월턴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만일 The Compleat Angler의 초판에 나오는 사냥꾼(Venator)도 찰스 코튼이었다면 60세의 스승과 23세 제자의 격의 없는 모습에서 얼마나 아이작이 찰스 코튼을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자녀들이 대부분 일찍 세상을 떠난 이유도 있겠지만 찰스 코튼을 아들이라고도 불렀던 아이작 월턴의 모습에서 찰스 코튼은 그에게 제자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잘 알 게 만든다.

비 내리는 일요일, 창가에 부딪는 빗방울을 보면서 스스로 자문해본다.

내겐 찰스 코튼 같은 사람이 있는가?

셰익스피어도 낚시를 즐겨 했을까?

셰익스피어도 낚시를 즐겨 했을까?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을 쓴 아이작 월턴(Izaak Walton)과 동시대에 살았던 문호(文豪) 셰익스피어도 낚시를 즐겨 했을까? 하는 것은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오래된 궁금증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에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사망하였고, 아이작 월턴이 1593년 8월 9일에 태어나 1683년 12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셰익스피어가 아이작 월턴보다 대략 30살이 더 많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을 때는 아이작 월턴이 낚시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던 시기도 아니었으며, 전기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도 셰익스피어가 죽고 난 뒤 25년 후의 일이니 두 사람 사이의 접점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작 월턴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었을 가능성은 아주 높으니, 그 속에서 대문호의 낚시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을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낚시에 관한 얘기들이 있다면.

셰익스피어가 과연 낚시를 즐겨 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영국인들의 생각은 정확하게 반반으로 나뉘어 있어서 아직은 그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으나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즐겨 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좋아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563년, 영국에서는 매주 수요일에는 생선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대중을 위해 제정되었던 것은 아니고, 어업을 통해 걷어 들이는 자금의 규모를 확대하여 정치자금 및 군사자금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법이 시행되고 있을 때 태어났던 셰익스피어는 생선을 어려서부터 자주 먹고 성장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생활하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회분위기는 ‘낚시란 시간을 낭비하고 시대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 것’이라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진 몰라도 영국 문예 부흥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란 평가를 받는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를 비롯하여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e) 같은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낚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낚시를 즐겨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의 하나인 것이죠.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 속에서 낚시에 대하여 언급을 한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관행을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낚시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어찌 보면 아전인수격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작품 속에서 낚시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는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소개한 것처럼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의 2막 5장에 나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오셀로의 2막 1장에는 ‘대구 대가리가 좋다고 연어 꼬리를 내주지는 않는 분별력을 갖추고 마음속을 다스릴 줄 아는 여자’라는 표현이 있고, 햄릿의 2막 1장에는 ‘거짓말을 미끼로 진실이라는 잉어를 낚자는 심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도 그가 낚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표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와 리어왕에서는 모두 6번이나 장어에 대한 표현이 나오고 있으며, 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는 적어도 12번 이상이나 물고기와 낚시에 관련된 표현이 나옵니다.

특히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The Merry Wives of Windsor)에서는 낚시용 부츠를 만드는 내용이 나오고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그 우울증을 미끼로 평판이라는 하찮은 모샘치를 낚는 흉내는 행여 말게나.” 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즐겨 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처럼 저 또한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다양한 어종에 대한 표현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낚시용 부츠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는 낚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어서 셰익스피어는 낚시를 즐겨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즐겨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셰익스피어는 낚시를 좋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저의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The Compleat Angler’는 출판된 지 300년이 훨씬 지난 책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문의 내용 중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어기(fence months)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연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오는 3, 4, 5월을 말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3월~5월은 연어의 산란기가 아니란 점이 그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는 3월에 산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4월과 5월에 산란하는 연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350여 년 전의 낚시인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부분까지 지금처럼 발달한 과학 수준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아마도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The Compleat Angler’는 문학서로만 가치를 지니게 되지 않을까?

또한 그가 했던 낚시방법을 보면 과연 저렇게 채비를 운용하고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하려 든다면 번역서보다는 차라리 비평서(批評書)를 내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이다.

오늘도 서론이 길어졌는데 오늘의 주제인 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의 얘기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은 ‘The Compleat Angler’에서 클레오파트라에 대하여 두 번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낚시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의 2막 5장에 나오기도 한다.

아이작이 썼던 원문을 보면 “And he that reads Plutarch shall find that angling was not contemptible in the days of Mark Antony and Cleopatra.”라고 적고 있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시대에도 낚시는 천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고 번역할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의 낚시하는 모습은 FTV의 다큐멘터리 ‘호모 하미오타-인류와 낚시’ 2부에서도 소개가 되고 있는데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과, 아마도 국내에서는 본인이 최초로 번역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줄리아나 버너스 수녀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낚시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시청을 권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래 제목은 대비열전(對比列傳)으로 라틴어로 비테 파랄렐레(Vitae Parallelae)가 원제(原題)인데 그 이유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명인들을 2명씩 서로 비교하면서 적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낚시하는 모습은 대략 아래와 같다.

어느 날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그녀의 배에 태우고 작은 어선들을 동반하여 나일강으로 낚시를 하러 나갔다. 이전에도 그녀와 낚시를 하면서 조과가 신통찮았던 안토니우스는 어부들에게 돈을 주고 물속으로 잠수하여 자신의 낚싯바늘에 물고기를 걸도록 시켰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하면서, 겉으로는 크게 감탄하며 내일은 훨씬 많이 잡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모든 사람들을 다시 초대했다.

그리고 다음날 클레오파트라는 하인들에게 명령하여 안토니우스의 낚싯바늘에 소금에 절인 생선을 걸도록 하였다.

이런 것을 몰랐던 안토니우스는 그날도 자신 있게 낚싯대를 올렸으나 걸려온 물고기는 소금에 절인 것이었으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꽤나 고생했을 것이 분명하다.

모멸감을 느꼈을 안토니우스를 달래기 위해서 클레오파트라는 “낚시는 가난한 이집트인에게 맡기십시오. 당신이 낚을 것은 많은 도시와 국가와 대륙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내용을 책에서 읽었던 아이작 월턴은 ‘The Compleat Angler’에서 이를 인용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었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2막 5장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And when good will is show’d, though’t come

too short,

The actor may plead pardon. I’ll none now:1060

Give me mine angle; we’ll to the river: there,

My music playing far off, I will betray

Tawny-finn’d fishes; my bended hook shall pierce

Their slimy jaws; and, as I draw them up,

I’ll think them every one an Antony,

And say ‘Ah, ha! you’re caught.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줄을 만드는 방법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줄을 만드는 방법

이 글은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가 쓴 ‘낚시에 관한 논문(The 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 중에서 낚싯줄을 만드는 방법 중의 일부분만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중세영어로 작성된 원문은 아래와 같으며 이하는 그것을 번역한 것이다.

낚싯대를 만든 후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낚싯줄을 염색하면 됩니다.

먼저 흰말의 꼬리털 중에서 가장 가늘고 긴 것을 고르는데 둥근 것일수록 좋습니다.

이런 것을 구하면 그것을 여섯 가닥으로 나누어 각각을 노랑, 초록, 브라운, 황갈색, 적갈색, 회색 등 마음에 드는 색으로 염색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싶을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 됩니다.

작은 냄비에 1쿼트의 에일(맥주)을 넣고 0.5파운드의 백반을 더한 다음, 말의 꼬리털을 넣고 30분 동안 끓인 다음 꺼내어 건조시킵니다.

그 다음에는 냄비에 물 0.5갤런을 넣고 목서초와 같은 염료식물을 두 줌 넣은 다음 돌로 눌러준 상태에서 30분 정도를 끓입니다. 그리고 노란색의 물이 떠오르면 이번에는 녹반가루 0.5파운드를 함께 넣어 반 마일 정도의 거리를 걷는데 소요되는 시간 만큼 더 끓여주십시오.

이 과정이 끝나면 불을 끄고 5시간~6시간 동안 천천히 식혀줍니다. 그리고 나서 털을 꺼내어 건조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낚시용으로는 최고의 녹색으로 염색되는데 이때 녹반을 많이 넣을수록 좋지만 산화한 구리의 겉에 있는 푸른 녹을 사용해도 됩니다.

이와는 별도로 다음과 같이 하면 더 밝은 녹색으로 염색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연한 납색의 나무통에 말의 꼬리털을 넣은 다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염색하면 되는데 이때는 위에서와 같이 녹반이나 산화한 구리의 겉에 있는 푸른 녹을 넣지 않아도 됩니다.

노란색으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작은 냄비에 1 쿼트의 에일(맥주)을 넣은 다음, 호두나무잎 세 줌을 넣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담가두면 됩니다.

(이하 생략)

대략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낚싯줄을 만들고 염색했다고 하며 책에는 낚싯줄을 어떻게 묶는지 하는 매듭법의 그림도 함께 기록하였다고 되어있으나 목판을 조각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도 번역한 것을 공개하려 하였으나 줄리아나 버너스와 관련한 책의 출판에 대한 제의가 있어서 그 결정에 따라 공개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지금은 생략한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대를 만드는 방법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대를 만드는 방법

이 글은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가 쓴 ‘낚시에 관한 논문(The 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 중에서 낚싯대를 만드는 법에 대한 부분만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중세영어로 작성된 원문은 아래와 같다.

9월 29일부터 시작되는 성 미카엘 축일로부터 주님의 봉헌 축일인 2월 2일까지 9피트(2m 70cm) 정도의 곧은 모양의 나뭇가지와 양팔을 뻗은 길이만큼의 자작나무, 버드나무, 물푸레나무의 가는 가지를 잘라와서 오븐에서 가열하여 바르게 펴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식힌 후 한 달 정도 건조시킨 다음 새를 잡기 위한 그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끈(콕슈트)으로 단단히 감아서 긴 나무의자 위나, 아니면 요철이 없는 평평하고 굵은 나무에 묶어두십시오.

※ 새를 잡는 그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끈을 cokshote(현대영어로 cockshoot)라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배관용 와이어의 한쪽 끝을 갈아서 숯불 속에 넣고 하얗게 될 때까지 가열한 뒤, 그것을 묶어 놓은 나무 막대기의 양쪽 끝으로 넣어 구멍을 뚫습니다. 이때 양쪽의 구멍이 잘 맞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새를 구울 때 사용하는 꼬챙이를 사용하여 갈수록 구멍이 가늘어지도록 테이퍼(Taper)가 지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틀 동안 식힙니다.

그런 다음엔, 감았던 콕슈트를 풀고 천장(다락)에 올려 연기로 충분히 말려주십시오.

다음은 같은 시기에 따온 녹색 개암나무의 가지를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가열하여 곧게 한 후, 손잡이 부분과 함께 건조시킵니다.

건조가 끝나면 그것을 정확히 손잡이의 절반 길이로 잘라, 손잡이 안에 딱 맞도록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게 깎아주십시오.

이것이 끝나면 자두나무, 돌능금나무, 모과나무, 향나무의 가지를 잘라와서 곧게 펴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먼저 만들어둔 손잡이 안에 넣은 다음 묶어주고 바깥쪽을 깎아 끝이 가늘어지도록 테이퍼를 줍니다.

그리고 양 끝에 쇠붙이나 라톤(구리, 아연, 납 및 주석의 합금)으로 만든 고리를 페룰 부위에 연결하여 보강해주십시오.

이때 손잡이 부분을 강하게 고정하고 페룰 부분을 깎아서 1절 부분이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6가닥의 말총으로 단단히 감아서 보강하고 초릿대의 끝에는 다른 실을 달아 매듭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렇게 하면 낚싯줄을 연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이상으로 낚싯대를 만드는 것이 끝났습니다. 이렇게 하면 낚싯대를 가지고 다녀도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할 때마다 언제든 손쉽게 낚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