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일본인을 모델로 했다고 주장하는 일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일본인을 모델로 했다고 주장하는 일본

낚시를 즐겼던 유명인사를 꼽으라면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인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로 친숙한 헤밍웨이는 낚시를 즐겨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헤밍웨이가 낚시를 좋아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된 동기는 쿠바에서 보낸 시절 동안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헤밍웨이 청새치 낚시대회(Ernest Hemingway Marlin Fishing Tournament)”에 쿠바의 지도자 피엘 카스트로와 80년대 그에 관한 책을 소지만 하고 있어도 잡혀가야 했던 체 게바라가 참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 청새치 낚시대회는 195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제10회 대회에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참여하였던 것이며, 이 대회 이전에는 낚시를 해본 경험이 없었던 카스트로가 우승을 하면서, 헤밍웨이가 카스트로에게 우승컵을 수여하는 사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70주년을 맞은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대회가 치러지지 못했으며 올해도 마찬가지로 대회는 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윗동네 사는 애들은 김치도 지네들 것이요, 한복도 지네들 것이라고 우기는데, 아랫동네 애들은 헤밍웨이가 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의 연구에 의해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라고 밝혀져 있고, 노인과 바다가 퓰리처상과 노벨상을 수상한 고마움으로 헤밍웨이가 푸엔테스에게 2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었다는 사실로도 증명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일본인이 노인과 바다의 모델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논문의 제목은 헤밍웨이와 동아시아: 일본과 중국이 헤밍웨이의 저술에 미친 영향으로, 2016년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하였으며, 논문의 저자인 히데오 야나기사와는 현재는 메이조 대학의 철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논문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논문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본문에서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이자와 미노루란 일본인이 헤밍웨이를 찾아간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객관적인 증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걔네들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일본인이 모델이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면 억지스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1897년 5월 10일 커피농장에서 일하기 위한 인력이 멕시코로 건너간 이후 남미로의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되었는데, 1907년에 코아우일라주의 에스페란자 탄광에서 일하기 위한 일련의 이민행렬이 일본을 떠났으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많은 인원이 근무지를 이탈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일본인 이민자들이 근무하던 곳은 멕시코가 아닌 미국인들이 경영하던 탄광이어서 그나마 나은 형편이었지만,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에 나오는 것과 같은 노동환경은 사람이 버티기엔 어려워서 고국을 떠난 일본 이민자들도 살기 위한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근무지를 벗어난 일본인 이민자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당시의 멕시코는 판초비야에 의한 멕시코혁명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던 관계로, 일본인들은 때론 정부군으로, 때론 혁명군에 가담하여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생활을 갈망하던 그들은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쿠바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행렬 중에 소설 속 주인공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키타자키 마사지로란 인물도 1915년 5월 5일, 이민행렬에 섞여 쿠바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쿠바에 도착은 했지만 먹고 살길은 막막하던 차에, 쿠바의 근해에는 물고기가 엄청나게 많지만, 그걸 잡는 사람은 없는 것을 보고, 이걸 잡아서 내다 팔면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일행과 함께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돈 많은 사람의 투자를 받아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쿠바인들에게 어업의 노하우를 전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 먹고살 만한 시기가 되자 2차 대전이 일어났고, 추축국이었던 일본의 국민이란 이유로 키타자키 또한 수용소에 끌려가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쿠바인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키타자키는 풀려날 수 없었고,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고 난 이후에야 어업지도자의 신분으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 그때는 그의 나이가 60을 넘긴 이후였지요.

키타자키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업을 진행하기가 벅찼던 관계로 일본에서 두 동생을 불러들였고, 열심히 노력하여 쿠바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키타자키란 한 인간의 노력과 관련해서는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쿠바 정부에서 제작할 정도였다고 하니 의심할 바는 아니란 생각입니다.

그런데, 키타자키가 쿠바에서 어업발전에 힘을 쏟고 있던 시기에 헤밍웨이 또한 쿠바에 있었고, 헤밍웨이가 자주 가던 사라고사란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에 일본인이 있는 것은, 헤밍웨이가 일본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증거라고 논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일본인은 사라고사에서 웨이터로 근무하던 히타노란 이름의 일본인으로 헤밍웨이와는 친분이 없다고 뒤에서 슬쩍 언급하고 있습니다.

 

쿠바의 어업발전에 크게 기여를 한 키타자키가 전수한 어업기술은 일본의 잇뽄츠리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을 바탕으로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썼다고 히데오 야나기사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멕시코를 떠나 쿠바로 향했던 일본인들도 그토록 오랜 세월을 쿠바에서 지내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겠으나 태평양전쟁과 연이은 미국과 쿠바의 관계악화로 인해 정착 아닌 정착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시간이 벌써 12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를 남미에서 활동하던 이자와 미노루란 이름의 일본인 학자가 찾아갔는데, 그때 헤밍웨이가 자신은 일본인에게서 낚시를 배웠고, 자기에게 낚시를 가르켜준 사람이 바로 키타자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는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며, 현지이름으로 마누엘로 불리던 키타자키를 만나기 전에, 이미 헤밍웨이는 현재가치로 5억 원에 달하는 돈을 에스콰이어로부터 원고료로 받아 그 유명한 필라(Pilar)라는 보트를 구입하였는데, 그런 헤밍웨이가 키타자키로부터 낚시를 배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때론 낚시에도 수학이 필요하다.

때론 낚시에도 수학이 필요하다.

수학(數學)이 과연 우리의 실생활에서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다는 것을 최근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재미없고 딱딱하게만 생각되는 수학이 우리 낚시인들에게도 때론 필요하다는 것을 한 번 얘기해볼까 한다.

선상낚시를 하거나 자연식좌대에서 내림낚시를 하는 경우에 조류가 빠르면 봉돌이 흐른다고들 하지만 과연 봉돌은 얼마나 흐르는 것인지를 수치로 정형화하여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조류가 빨라 봉돌이 엄청 흐른다고만 할뿐~

그런데 이럴 때 수학을 활용하여 조류가 초속 몇 m로 흐르는지와 사용하는 채비의 무게를 공학계산기에 입력하면 사용하는 낚싯줄(라인)의 규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각도로 흐를지를 계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상참돔낚시에서 사용하는 타이라바 채비나 내림낚시에서 사용하는 카고채비는 특히 조류의 세기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는 것 중의 하나인데 채비를 무겁게 사용할수록, 사용하는 라인의 호수를 줄일수록 조류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을 수학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아마도 선상낚시를 하거나 수상좌대에서 낚시를 하는 경우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이상적으로 채비가 안착하는 모습은 수직으로 똑바로 내려가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조류의 영향을 받아 실제로는 아래와 같이 수직이 아닌 상태로 바닥에 안착하게 된다.

 

이와 같이 조류에 의해서 채비가 흐르는 경우를 분석해보면 라인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려는 모멘트와 채비(봉돌)의 중력(정확히는 부력을 뺀 값)이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의 모멘트에 의해서 낚싯줄의 각도가 결정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많이 사용하는 합사(PE)에 걸리는 모멘트를 수면에서 채비(봉돌)까지의 모멘트를 합사에 작용하는 중력은 가볍기 때문에 계산을 조금이라도 단순화하기 위해 제외하고 적분하여 계산해보자.

우선 카고낚시의 채비나 선상낚시에서 사용하는 봉돌의 종단면적을 S, 액체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가 유체에서 받는 항력을 나타내는 항력계수를 Cd₁이라고 하고 그 값을 작은 원통형의 항력계수인 0.67 정도라고 하자.

그리고 그 다음으로 고려하여야 하는 유체밀도를 p(1024㎏/㎥), 유체속도(m/sec)를 U라고 하면 조류에 의한 채비(봉돌)의 항력계수는 아래의 수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합사(PE)의 모멘트는 아래의 공식에 의해 수면에서 채비(봉돌)까지의 모멘트를 적분하여 계산하면 된다.

한편 합사(PE)의 항력계수인 Cd₂(이 부분의 계산은 설명이 복잡하고 길기 때문에 생략)는 1.2가 되는데 이상의 계산에 의해 식을 산출하면

그런데 이런 복잡한 수식으로는 조류의 빠르기에 따라 수중에서 채비(봉돌)가 얼마나 흐르는지, 그리고 그 각도는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해하기 쉽게 상기의 수식을 사용하여 구한 수중에서 조류의 흐름에 의한 채비의 각도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이 수식으로 구한 그래프에서 봉돌(채비)이 무거울수록, 사용하는 라인의 직경이 작을수록 조류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조류의 속도가 1노트(51㎝/sec)인 경우

조류의 속도가 2노트(102㎝/sec)인 경우

물론 이런 계산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루어를 제작하는 업체에서는 이런 사항까지도 계산하여 설계에 반영하고 있으며, 수중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낚시를 하더라도 이제는 상기의 그래프에서 나오는 채비(봉돌)의 각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낚시할 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수학은 이처럼 실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요긴하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낚싯바늘에 의한 부상원인과 예방책

낚싯바늘에 의한 부상원인과 예방책

지난번에는 무단으로 폐기하는 낚싯바늘에 의한 동물들의 피해와 올바른 낚싯바늘의 폐기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았는데 오늘은 낚싯바늘에 의하여 사람이 부상을 당하게 되는 원인과 예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낚싯바늘에 의하여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를 열거하자면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 캐스팅 할 때 후방주시를 하지 못해 뒤에 있는 사람에게 날아가 박히는 경우

▶ 낚싯대를 강하게 세울 때 자신을 향해 날아와 박히는 경우

▶ 밑걸림이나 혹은 주변의 지형지물에 걸린 경우를 탈피하기 위해 낚싯대를 당길 때 자신을 향해 날아와 박히는 경우

▶ 낚싯바늘이 붙어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들 때 물고기가 날뛰어 손가락에 박히는 경우

▶ 잡힌 물고기에 걸린 바늘을 뺄 때 손가락에 박히는 경우

▶ 다른 사람과 라인이 얽혔을 때 풀면서 손에 박히는 경우

▶ 동행이 있을 경우 채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로드를 들어 바늘이 박히는 경우

▶ 바늘과 라인을 연결할 때 손가락에 박히는 경우

▶ 맨발로 낚시터를 걸을 때 발에 박히는 경우

이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상기의 원인으로 인해서 낚싯바늘로 인한 부상을 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낚싯바늘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낚시터는 위험한 장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낚시를 하지 않는 분들도 주변에 낚싯대를 던지고 있다거나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항상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낚싯대를 캐스팅할 때 일어나는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주의를 소홀히 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만 캐스팅하는 사람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캐스팅으로 인한 사고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낚시터에서는 낚시꾼의 움직임을 잘보고 캐스팅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캐스팅하는 사람이 반드시 안전을 확인할 것이라는 과신은 금물입니다.

그리고 낚시인의 경우에는 캐스팅 할 때는 반드시 주위에 사람이 있는 지를 확인 후 하여야 하며 만일 사람이 지나가고 있으면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캐스팅하지 않도록 하고 혹시라도 지나가려던 사람이 캐스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으면 “먼저 지나가십시오”라는 의사표시를 하여 안전을 확보하여야 합니다.

낚시인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 낚시터를 맨발로 걷거나 아니면 얇은 샌들 등을 신고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낚시터에는 함부로 버려진 낚싯바늘이 곳곳에 떨어져 있을 수 있으며 떨어져 있는 바늘은 찾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낚시터를 맨발로 걷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므로 금하여야 하며 갯벌과 밑걸림이 많은 해저면에도 버려진 낚싯바늘과 장치 등이 있을 수 있으므로 안전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낚시는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낚시는 물고기를 낚을 수도 있지만 반면에 물고기를 해칠 수도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낚싯바늘이 박혔다면 무리하게 빼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가 악화될 수 있으므로 즉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력으로 바늘을 빼는 방법은 올바른 대처법이 아닙니다.​

 

낚싯바늘에 의한 부상을 최소화하려면 상기의 부상이 생기는 원인을 숙지하고 본인의 액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낚시를 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잡힌 물고기에서 바늘을 제거할 때는 도구를 이용하도록 하며 낚싯바늘로 인한 부상을 당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응급처치약을 상비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장마도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와 함께 휴가철이 시작되면 강과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이와 함께 낚시터도 사람들로 붐빌 것입니다.

특히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의 경우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낚시를 하는 우리 낚시인들이 더욱 안전에 유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해수부의 ‘수산혁신 2030계획’에 한 마디

해수부의 ‘수산혁신 2030계획’에 한 마디

어제인 2월 13일자 해양수산부에서 발표한 보도자료 ‘수산혁신 2030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생산지원형에서 자원관리형으로 어업구조를 전면 개편한다고 합니다.

어촌의 소득을 증대하고 어촌을 재생하며 수산물 유통의 혁신으로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는 ‘수산혁신 2030 계획’이 낚시인들에게 크게 부각된 이유는 아마도 계획의 일환으로 실시하려는 연근해어업 부문의 TAC에 기반한 자원관리형 어업구조의 정착방안의 하나로써 급증하고 있는 낚시인구에 대응하여 낚시로 잡은 물고기의 상업적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한다는 것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 해수부 보도자료: 생산지원형에서 자원관리형으로 어업구조 전면 개편한다.

이미 배포한 보도자료를 비공개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한편 서삼석 의원이 2018년 11월 30일 대표 발의한 ‘낚시 관리 및 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낚시로 포획한 수산동물의 판매금지, 오물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등 낚시로 인한 금지행위 강화를 강화하고 낚시어선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여 해양안전을 확보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언론의 보도는 “낚시인들이 잡은 수산물을 판매함으로 인해서 어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으며 자원남획이 우려된다.”는 것만을 보도하고 있다 보니 언론기사를 접한 많은 낚시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해수부의 계획과 서삼석 의원이 발의한 법률개정안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알아보면서 일부 내용만을 문제 삼으려는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는 판단이 들기에 이제는 낚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 생각을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이슈가 되었던 낚시인들에게 부담금을 부과하려던 해수부의 정책도 사실을 들여다보면 언론의 보도처럼 낚시인들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라기보다는 낚시어선을 운영하는 분들의 반발에 묻혀 부담금문제도 휩쓸려 들어가면서 연기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전에 “해수부의 낚시부담금 부과 움직임에 대하여”란 글과 “해수부의 해명보도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란 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많은 낚시인들은 환경보호와 어족자원의 보호에 대하여 공감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부담금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낚시인들이 찬성하는 뜻을 표명하는 것도 사실임을 피력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삼석 의원이 주장하고 해수부가 밝히는 바와 같이 낚시인들에 의한 어족자원의 감소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달라는 것이 낚시인들의 생각이며, 가장 대표적인 예로써 주꾸미 어획량의 감소가 낚시인들의 가을철 낚시로 인한 영향에 의한 것인지, 어민들이 봄철 포란기의(산란기가 아닌) 주꾸미를 남획하는 것에 의한 영향이 더 큰가에 대한 조사와 검증된 연구결과도 없이 일방적으로 낚시인들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은 쉽게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정부에서도 낚시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28일 해수부 주최로 ‘낚시레저 발전방안 간담회’를 개최하여 의견을 청취하려는 노력을 하였고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한다는 것을 보도자료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선진국의 어떤 사례를 참조하고 있는지 이 자리를 빌어서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 낚시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낚시로 잡은 물고기의 상업적 판매에 대한 과태료 부과’ 문제는 극히 일부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저도 알고는 있지만 과연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안으로 지역어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불철주야 국민을 위하여 노력하시는 바쁘신 분들이시니 그분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들어드리기 위해서 멀지도 않은 일본에서 펼치고 있는 정책을 하나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시즈오카 현에 있는 유명한 관광도시인 아타미(熱海)시에서는 2018년 9월 15일부터 관광객들이 잡은 물고기를 매입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런 사실을 해수부가 모르지는 않았겠지요?

사실, 해수부가 금지하고자 하는 낚시인들의 물고기 판매는 방파제 등과 같이 육지에 연한 곳에서 하는 낚시로는 판매할 정도의 상품가치가 있는 물고기를 잡을 수가 없고 배를 이용하여야만 일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타미 시에서도 이와 같이 낚시어선을 이용한 고객들이 잡은 물고기를 매입하여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여 식당이나 기념품가게 및 숙박업소 등 현재 19개의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지역민들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하고 관광객들의 만족도도 높이는 그야말로 상생의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ツッテ熱海) 바로가기

아타미 시에서 펼치고 있는 이 정책은 2018년 5월 24일부터 서비스를 실시한 민간기업(上五島 SHOP)이 하고 있는 것을 따라 한 것인데 낚시인들이 잡은 물고기를 츠키지와 같은 어시장의 시세를 참고하여 가격을 책정하고 사용기한 6개월의 쿠폰을 발급해주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일본 onsennews

 

이미지출처: 일본 onsennews

 

자, 이제 다시 국내문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많은 낚시인들의 생각을 제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낚시로 잡은 물고기의 상업적 판매금지에 대해서는 동참할 의사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정부에서 입안하고 실시하려는 정책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정부나 언론에서 추정하고 있는 낚시인들의 숫자는 2016년의 한국수산회 자료(767만 명)를 인용하고 있으며 낚시용품과 관련한 시장규모는 3,000억 정도로 추산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시장규모가 그 정도인지 의문시됨을 “한국과 일본의 낚시용품 시장규모”란 글을 통해 지적하면서 낚시인구의 숫자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규모인데 반해 사용하는 용품의 시장규모는 1/5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적은 바가 있습니다.

아래 자료의 출처는 일본낚시용품산업협회이며

환율은 계산의 편의를 위하여 엔화:원화=1:1,000을 적용하였습니다.

구 분
2016년
2017년
2018년
합계
1조3,189억
1조3,520억
1조3,660억
낚싯대
3,067억
3,177억
3,264억
루어
278억
280억
288억
낚싯바늘
86억
87억
85억
낚싯줄
69억
71억
73억
12억
11억
11억
쿨러
25억
26억
27억
기타 11개 품목
1조3천43억
1조2천728억
1조2천550억

 

이제 낚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의 생각을 결론지으면 정부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수산혁신 2030 계획’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동참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이 담보된 자료를 제시하고 어느 일방의 주장만을 받아들이거나 함으로써 또 다른 사회적 불신을 야기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입니다.

“낚시인들이 잡은 수산물을 판매함으로 인해서 어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갈등인지 그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자료의 제시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저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해수부의 해명보도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

해수부의 해명보도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

낚시인에 대한 부담금 부과와 낚시어선에 대한 규제가 주요 골자인 금번의 사태로 낚시인들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여론이 들끓자 해양수산부에서는 2월 6일자 해명자료(바로가기)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해명하였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수산자원의 지속가능성 확보 및 낚시문화 성숙을 위해 낚시 이용권 제도 등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 중에 있음”이라는 것을 포함하여 “위의 제도들은 아직 도입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향후 낚시인 및 낚시어선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제도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낚시인의 한 사람인 제가 우려하는 바는 제도의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잘못되고 편향된 시각에서 출발한 첫 단추부터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많은 낚시인들은 환경의 보호와 어족자원의 보호에 대하여 공감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많은 낚시인들로 인한 쓰레기나 낚시용품의 무분별한 폐기에 따른 폐해가 많다는 여론의 지적에는 수긍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부담금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낚시인들이 찬성하는 뜻을 표명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시행을 위한 전제조건인 사전조사와 그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결과가 왜곡되고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낚시인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만들었다는 점을 당국은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수협중앙회 산하의 수산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수산자원 관리를 위한 바다낚시 관리 개선방안”이란 연구보고서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모집단의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연구결과가 얼마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인지는 행정당국의 실무자들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바다낚시를 해본 일이 있는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라고 봅니다.(1회 출조에 평균 6.5kg의 조과를 올린다는 결과)

또한 이와 관련하여 수산정책연구소의 정진호 박사가 작년 2017년 11월 14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수산자원관리를 위한 낚시관리 방안”에는 낚시신고제와 쿠폰제 등 관리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인용하고 있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수산경제원의 보고서란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발표에서 관리방안으로 제시한 것이 아래의 그림과 같은 절차이며, 낚시신고제를 통하여 낚시에 대한 인식을 ‘단순 취미 및 자유 접근이 가능한 활동’에서 ‘제도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질서 있는 활동’으로 전환하고, 낚시쿠폰제를 통하여 수산자원을 이용하는 낚시인에게 ‘이용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낚시어종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설명과 함께 대표적인 어종으로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주꾸미와 갈치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도 수산연구원의 결과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 낚시인들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법과 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규범을 준수하는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꾸미의 어획량 감소가 낚시인들의 가을철 낚시로 인한 영향에 의한 것인지, 어민들이 봄철 포란기의(산란기가 아닌) 주꾸미를 남획하는 것에 의한 영향이 더 큰가에 대한 조사와 검증된 연구결과도 없이 낚시인들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어획량의 감소가 높을수록 낚시에 대한 제한의 필요성이 높다”는 결론에 대하여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먼저 제시해달라는 것이 낚시인들의 정당한 요구인 것입니다.

레저이용객의 수산자원 이용에 대한 제한과 낚시어선업의 허가제 도입에 대하여는 제가 많은 내용을 알지 못하기에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행정당국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낚시인들의 대다수는 타당한 근거에 의하여 부담금을 부과하고, 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이란 과정을 거친 결과라면 기꺼이 수용할 자세가 이미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해수부의 해명자료에서 “향후 낚시인 및 낚시어선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제도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는 말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수산연구원의 설문조사에 인터넷에 개설된 국내제일의 낚시카페란 곳에서 단 한 사람의 회원조차도 설문조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또다시 그러한 왜곡된 설문조사와 같이 그저 미봉책의 일환으로 “향후~”를 운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앞으로 더 큰 반대에 봉착하게 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픈 말씀은 당국의 제도마련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타당하고 검증된 결과에 의한 설득과 당사자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의견수렴의 창구와 절차를 반드시 마련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행정당국에 근무하시는 분들 중에도 ‘1987’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계실 것으로 아는데,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으로 회의실에 몇 사람 불러 음료수 마시며 사진 찍는 것으로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바낙스의 매출액 변화(2002년~2022년)

바낙스의 매출액 변화(2002년~2022년)

한국을 대표하는 낚시용품업체라 할 수 있는 바낙스의 매출액은 일본 시마노와 다이와의 낚시용품 매출액의 5%가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연결재무제표가 아닌 개별기업의 재무제표로는 매출액 500억 원을 돌파한 해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도
억 원
2002년
278.5
2003년
291.6
2004년
352.2
2005년
308.2
2006년
235.8
2007년
281.0
2008년
345.0
2009년
317.8
2010년
345.8
2011년
367.0
2012년
325.5
2013년
309.5
2014년
276.6
2015년
330.9
2016년
323.1
2017년
373.6
2018년
422.8
2019년
370.5
2020년
405.3
2021년
481.3
2022년
447.4

미끼에 접근한 물고기는 몇 %의 비율로 바늘을 삼킬까?

미끼에 접근한 물고기는 몇 %의 비율로 바늘을 삼킬까?

낚시를 하고 있노라면 입질이 전혀 없는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이럴 때에 많은 사람들은 미끼가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채비를 회수하기도 하고, 미끼의 신선도가 떨어졌다고 판단해서 자주 미끼를 갈아주거나 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일견 번거로워 보일 수도 있는 이런 동작들 또한 낚시의 한 가지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살아있는 생미끼든 아니면 가짜미끼를 사용하든 간에 대상어종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끼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노리는 대물을 낚시로 잡기 위해서는 대상어종의 오감(五感)을 만족시켜야만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데 물고기들은 청각(聽覺)을 통해 미끼의 존재를 확인하고, 후각(嗅覺)으로 먹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인식한 다음, 접근하여 시각(視覺)을 통해 미끼의 크기와 모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후에 미각(味覺)으로 미끼를 확인하고 가볍게 씹는 과정의 촉각(觸覺)을 통해 미끼의 경도와 이물감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먹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민물과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각각 선호하는 미각에 차이가 있으며 바다낚시에는 아미노산과 핵산과 관련한 물질이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물을 노리고 살아있는 물고기를 미끼로 사용할 때 갑자기 진동을 느껴 입질인가? 하고 채비를 거두어보면 미끼가 그냥 그대로 있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입질인 것처럼 강력한 진동을 느꼈다면 그것은 물고기의 입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왜 입질만 하고 삼키지는 않은 것일까? 오늘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는 한 가지 실험을 소개할까 한다.

과연 미끼에 접근한 물고기는 몇 %의 비율로 바늘을 삼키는 것일까? 낚시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내용을 프랑스 툴루즈대학(Université de Toulouse)의 ‘스테파니 불에트로(Stéphanie Boulêtreau)’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몸길이가 80~220㎝에 이르는 웰스 메기(European catfish)를 대상으로 관찰한 실험결과를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스테파니 교수의 논문들은 공개된 것들이 많아서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물고기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유용하며 교수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자료를 찾을 수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실험에 사용한 방법은 길이 20㎝ 정도인 잉어과의 물고기를 미끼로 사용하여 바늘의 1.2m 위에 수중카메라를 부착하고 웰스 메기(European catfish)의 먹이활동을 관찰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관찰장소는 프랑스의 남부를 흐르는 길이 483㎞에 이르는 도르도뉴강(Dordogne River)이었고 실험은 총 13회로 17시간의 촬영시간을 통해 103마리의 웰스 메기의 행동을 관찰하였다고 하는데 관찰결과에 의하면 총 103마리가 촬영된 중에서 95마리가 미끼에 접근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95마리 중에서 바늘에 걸린 것은 12.5%에 불과한 12마리였다고 한다.

연구팀이 웰스 메기의 행동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은 아래와 같은데

1) 무시한다-미끼를 향해 다가가지 않고 지나친다.

2) 접근한다-미끼에 다가가지만 몸을 돌려 멀어진다.

3) 맛을 본다-미끼에 접근하여 수염이나 머리로 미끼를 만진다.

4) 뱉어낸다-미끼를 뱉어내고 헤엄쳐 멀어진다.

5) 바늘에 걸린다-미끼를 삼킴으로써 바늘에 걸린다.

위의 그림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실험결과를 보면 미끼에 접근한 95마리의 웰스 메기 가운데 모두 24마리가 미끼를 먹는 동작을 보여주었고 이 중에서 12마리가 완전히 삼킴으로써 바늘에 걸리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전체의 12.6%에 해당하는 것으로 8마리에 1마리의 비율로 먹이를 삼킨다는 것을 보여주어 우리의 예상보다는 아주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39%에 달하는 37마리의 웰스 메기가 미끼에 접근하여 수염이나 머리로 미끼를 만지기는 하지만 먹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웰스 메기가 미끼를 수염이나 머리로 더듬어보는 동작이 맛을 보는 행동인 이유는 미뢰(taste bud)라고 하는 미각기관이 수염과 머리의 피부표면에 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시야가 탁한 물에서도 먹잇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 물고기는 낚시로 잡혔던 것을 기억할까?”란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달아난 웰스 메기들의 행동은 이전의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논문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바늘이나 라인이 아닌 분명하게 미끼인 작은 잉어를 건드리는 동작을 함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일련의 과학적인 실험결과를 게재한 논문들을 접하게 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간 생각해온 낚시와 관련한 정보나 개인적인 경험들도 때론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미끼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먹는다는 것이 아님은 이 논문으로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논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웰스 메기가 먹이를 삼킬 때에는 미끼의 정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단 점으로, 육식동물들은 바다나 육지를 막론하고 먹이로부터 자신을 숨기려는 본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특히 육식어종의 경우에는 옆이나 뒤에서부터 접근하여 머리부터 삼키는 습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선회 밑에 무채를 까는 이유와 유래

생선회 밑에 무채를 까는 이유와 유래

10여 년 전, 무채 대신 사용하던 천사채를 재사용하는 횟집들의 실태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지금은 천사채를 사용하는 곳은 찾아보기가 어렵고 얇게 쓴 무채를 깔고 내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오늘은 무채를 생선회 밑에 깔게 된 유래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무채를 사용하는 이유를 복잡하고 어렵게 설명하면, 무채에 들어있는 비타민 C가 생선의 불포화지방산의 산화를 방지하고 항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식중독의 위험을 낮추고 회에서 나오는 물기를 무채가 흡수하여 끈적거림과 같은 느낌 없이 좋은 식감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생선회에 까는 무채의 유래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에도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생선을 날로 먹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이 냉장이나 냉동기술이 없었던 당시에 조금이라도 저장기간을 늘이기 위해 살균 및 항균작용이 있는 무를 생선회 밑에 깔아줌으로써 식중독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고자 했던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

물론 이런 기능 외에도 보기 좋게 한다거나 양이 푸짐하게 보이도록 하는 이유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생선회를 먹기 전에 무채를 먹으면 입안에 있던 다른 음식 맛을 제거할 수 있어서 생선회의 고유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그 기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생선회의 밑에 까는 무채를 일본에서는 츠마(つま)라고 하는데 츠마(つま)의 어원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내라는 뜻의 츠마(妻: つま)로 당시에는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였던 아내처럼 주역인 생선회에 곁들여진 것이란 의미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옷단의 끝을 가리키는 말인 츠마(褄: つま)처럼 생선회의 끝에 놓았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츠마의 유래가 아내를 뜻하는 말(妻)에서 유래된 것이건, 옷단의 끝을 가리키는 말(褄)에서 유래한 것이건 간에 츠마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선회에서 사용하는 츠마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텐고(転語)라고 하는 전어의 하나로 생선회에 곁들이는 것들의 총칭인 츠마(つま)와 오늘의 주제인 무채를 가리키는 켄(けん)과 매움을 뜻하는 카라미(辛み)로 나누어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이 세 가지 의미를 모두 츠마(つま)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본에서 생선회를 먹을 때 나오는 츠마는 무채뿐 아니라 오이나 인삼을 채썬 것이 나오기도 하고 미역이나 국화꽃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또한 와사비나 생강과 같은 것들도 통틀어 츠마라고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무채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생선회의 츠마는 통상 바닥에 까는 무채를 일컫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주로 칼이나 채칼을 이용해서 무채를 만들지만 더러는 일본에서 수입한 무채를 깎는 기계를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아이작 월턴의 유언장

아이작 월턴의 유언장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책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영어로 씌어진 책이 바로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쓴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이다.

그러나 아이작 월튼(Izaak Walton)과 그가 쓴 조어대전에 관한 정보들은 틀린 것들이 너무나 많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네이버에서 조어대전을 검색하면 런던에서 “철물상을 하다가 은퇴 후 낚시를 즐기며 문필생활에 몰두했다”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은퇴 후 낚시를 즐겼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철물상을 했다는 것도 절반만 맞는 것이기에 잘못된 정보라고 지적할 수 있다.(이유는 뒤에서 설명)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은 그가 83세가 되던 1676년에 발행된 제5판의 가필(加筆)이 현재 우리가 보는 한글판 조어대전의 원형을 가진 최초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제5판은 그의 낚시제자라고 할 수 있는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쓴 플라이낚시에 관한 내용의 추가가 가장 큰 변화이자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작 월튼이 쓴 초판본은 조어대전이 아니라 송어대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송어낚시에 관한 내용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데 “아이작 월튼이 전하는 말-Study to be quiet”이란 포스팅에서 “조어대전의 말미에 밑도 끝도 없이 적은 ‘Study to be quiet’는 어떻게 해석해야 정확하게 아이작 월튼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을까?”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Study to be quiet란 표현이 진짜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의 표현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은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을 번역해보고 싶은 것이지만 번역을 위해서는 그가 쓴 다른 책들을 함께 봐야 하고,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영국내전의 역사를 비롯하여 휘그주의와 토리주의 같은 역사관 및 영어의 고어표현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에 진전이 무척 더딘 형편이다.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생애와 그의 명저(名著) ‘The Compleat Angler’를 번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결과를 얻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오늘부터 대략 10회 정도에 걸쳐서 아이작 월튼의 생애와 그의 저서에 대한 글을 적어볼까 한다.

먼저 첫 번째로 아이작 월튼의 유언장을 소재로 삼은 것은 그를 이해하고 조어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것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번역한다는 것은 문자로만 나열된 것을 해석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겠으며 위에서 언급했던 아이작 월튼이 철물상을 했다는 것이 잘못된 정보라는 것은 추후 자세한 포스팅으로 이어지겠지만 챈서리 레인(Chancery Lane)과 플릿 스트리트(Fleet Street)의 두 곳에 상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작 월튼의 유언장으로 화제를 돌려 유언장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And first, I doe declare my beliefe to be, that their is only one God, who hath made the whole world, and me and all mankinde; to whome I shall give an acount of all my actions, which are not to be justified, but I hope pardoned, for the merits of my saviour Jesus. — And because [the profession of] Cristianity does, at this time, seime to be subdevided into papist and protestant, I take it to be at least convenient to declare my beleife to be, in all poynts of faith, as the Church of England now professeth. And this I doe the rather because of a very long and very trew friendship with some of the Roman Church.

처음에 저의 신앙은 다음과 같은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세상과 저와 모든 인간을 창조하신 유일한 신이 계시고, 그분께 저의 모든 행동을 속죄할 생각입니다. 저의 지난 행동은 의롭지 않은 것이었지만, 구세주 예수님께 용서받기를 희망합니다. 기독교는 현재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할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적어도 제 신앙의 신조는 모든 점에 있어서 영국 국교회가 공언하고 있는 것임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도 길고도 진정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밝히는 것입니다.

월튼은 종교에 관한 난해한 신학적 논쟁을 싫어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난해하지 않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서술되고 있는 사항이다.

이런 그가 유언장을 통해 왕당파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통해 우리는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을 발간한 것은 “은퇴 후 낚시를 즐기며 문필생활에 몰두했다.”고 하는 인터넷의 정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청교도혁명의 시기, 왕당파였던 월튼은 런던을 도망치다시피 떠나야만 했고, 일요일에는 사냥을 하거나 낚시를 하는 등의 일체의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던 시기였기에 낚시를 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펴내는 일은 청교도 정부에 반항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을 “Iz. Wa”란 익명으로 제4판까지 발행하였던 것이며 1676년 제5판에 와서야 본명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이작 월튼이 은퇴 후 낚시를 즐겼다고 말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편으로 끝내려 했으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작의 유언과 관련한 글을 1, 2편 정도는 더 작성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그의 유언장의 또 다른 일부를 살펴보면서 마치도록 하자.

1683년 8월 9일 작성을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수정을 거듭한 끝에 8월 16일에야 서명을 했던 그의 유언장에는 런던에 있는 두 채의 집과 스태퍼드(Stafford)에 있는 조그마한 주택과 윈체스터의 땅을 누구에게 나누어주라는 내용도 있다.

그 중에서 스태퍼드(Stafford)에 있던 작은집(Cottage)과 땅은 스태퍼드 디스트릭터(Stafford District)에 기증하였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지원하라고 유언했다.

그런데 스태퍼드(Stafford)에 있는 월튼의 작은집(Cottage)은 Stafford Borough Council이 운영난을 이유로 2003년에 폐쇄하기로 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영국인이 아닌 미국인들이 기금을 모아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여 지금도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아이작 월튼이 전하는 말-Study to be quiet

아이작 월튼이 전하는 말-Study to be quiet

원제는 The Compleat Angler, 한국판은 조어대전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을 쓴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쓴 표현이 바로 오늘 포스팅의 제목인 “Study to be quiet”다.

낚시를 통해 고요함을 배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이 표현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창작물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례명이 안드레아인 사람으로서 성경의 구절을 잠깐 인용하자면 이 표현은 신약성경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제4장 11절에 나오는 것으로 아래와 같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Make it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to mind your own business and to work with your hands, just as we told you.)”

책의 말미에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적었던 “Study to be quiet”란 표현은 현대를 살아가는 낚시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당시 편집자들에 의해서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라 해석되었고, 그 해석은 지금까지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란 인물을 조금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자.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동상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쓴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이 출판된 것은 1683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서 출판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책이 출판된 곳이 어디인지를 알면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에 대하여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헤밍웨이가 지은 것이 아니라 17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인 존 던(John Donne) 신부가 쓴 아래의 시를 인용한 것이었다.

For Whom The Bell Tolls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s tolls; it tolls for thee.”

그리고 성공회 사제였던 존 던(John Donne)과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아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연말 아이작 월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런던에서 사업을 하였다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존 던(John Donne)도 그때 만난 사람 중의 한 명이었으며 그를 만난 이후로 아이작 월튼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1624년부터 1631년에 사망할 때까지 존 던(John Donne)은 성 던스턴 서부교회(St Dunstan-in-the-West)의 교구신부(Rector)를 맡았었는데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1629년부터 1644년까지 이 교회에서 간사를 비롯한 여러 직책을 역임하였다.

존 던(John Donne)

존 던

그리고 존 던(John Donne)의 보좌신부였던 헨리 발렌타인(Henry Valentine)이 아이작의 조카 사라 그린젤(Sarah Grinsell)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존 던(John Donne)과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며 이러한 관계를 기반으로 그의 명저(名著)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을 편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에는 책을 인쇄하는 기계는 아주 귀한 것이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인쇄기를 성 던스턴 서부교회(St Dunstan-in-the-West)가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아이작은 그의 저서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존 밀턴의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도 성 던스턴 서부교회(St Dunstan-in-the-West)에서 인쇄가 되었다.

조어대전의 말미에 밑도 끝도 없이 적은 ‘Study to be quiet’는 어떻게 해석해야 정확하게 아이작 월튼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을까?

1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잉글랜드 내전을 겪으며 두 명의 아내와 대부분의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냈던 그가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했던 묵상(默想)은 영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서적 치유를 통한 평화를 얻기 위한 휴식이었을까?

최근 들어 1인 미디어의 유행으로 조용해야 할 낚시터에서 소란을 넘어 보기 민망할 정도의 광경이 연출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낚시의 바이블이라는 아이작 월튼이 쓴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려보았다.

아직도 그가 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그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앤 월튼(Anne Walton)의 비문에 ‘Study to be like her’란 글을 남겼다.

Study to be quiet와 Study to be like her이란 표현에 담긴 뜻은 아이작 외에는 그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조어대전(원제: The Compleat Angler)이 출판되고 10년 뒤인 1662년 4월 17일,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리는 비문에 적힌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Study to be like her’이란 표현에서, 아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넘은 존경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 어제는 사랑하는 내 아내의 생일이기도 했다.

끝으로 코로나가 종식되고 영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는 낚시인들은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이 잠들어 있는 윈체스터 대성당(Winchester Cathedral)을 방문하게 된다면 영국의 낚시인들이 기증하여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에 있는 아이작의 모습을 꼭 보고 오시길 바란다.

윈체스터 대성당(Winchester Cathedral)

이첸강(River Itchen)을 배경으로 낚시장비를 옆에 두고 책을 읽고 있는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모습 아래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 같은 ‘Study to be quiet’가 새겨져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절친이자 낚시제자인 찰스 코튼(Charles Cotton)과 함께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으로, 그들의 옆에는 당연히 낚시도구가 놓여있으며 그런 그들의 아래에는 성경의 한 구절인 범사에 감사하라(In everything give thanks)는 말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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