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고스트 네트(Ghost Net)

죽음을 부르는 고스트 네트(Ghost Net)

고스트 네트(Ghost Net)는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한 것이건 고의로 바다에 투기한 것이건 간에 바다에 버려진 어망을 말합니다. 이렇게 버려진 어망이 유령처럼 바다를 떠돌면서 해양동물들을 휘감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근래에 들어서는 “Drift Net”이란 단어 대신에 고스트 네트(Ghost Net)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스트 네트에 의해서 피해를 입는 동물은 고래, 바다표범, 돌고래, 상어, 산호 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현재까지 보고된 바로는 344종류 이상의 동물들이 3만 건이 넘게 피해를 당했다고 하며 버려진 그물에 얽혀버린 동물들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고통을 받으며 상처부위의 감염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아 서서히 죽어간다고 합니다.

※ The impact of debris on marine life

 

아시겠지만 그물은 모두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런 그물이 얼마나 바다에 버려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세계에서 고스트 네트가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한 호주 북부해안의 경우를 예로 들면 1km당 연간 3톤의 그물이 버려지고 있다고 하며 북부 하와이에서는 매년 52톤 이상의 고스트 네트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호주 북부에서 고스트 네트에 의해 사망한 바다거북의 숫자는 14,600마리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Ghostnet impacts on globally threatened turtles, a spatial risk analysis for northern Australia

※ Marine species mortality in derelict fishing nets in Puget Sound, WA and the cost/benefits of derelict net removal

고스트 네트가 해양쓰레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라고 하지만 해양동물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피해는 막대하여 북대서양에서는 1970년~2009년 사이(대부분은 1990년 이후)에 300여 마리의 대형 고래가 고스트 네트에 얽혀 사망했다고 하고 미국에서 고래의 상처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상처 입은 고래의 50%가 고스트 네트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새끼고래들이 피해를 입는 숫자가 많아 개체수 감소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아래의 유튜브 영상에서 버려진 그물이 몸을 휘감고 있는 혹등고래와 고래상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깊은 바다일수록 그물에 부착되는 생물의 내성이 강해서 고스트 네트가 더 오래도록 지속한다고 합니다.

Tangled Mother Humpback Whale Needs Help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에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한 쓰레기의 영상을 공개한 것이 바로 아래의 영상이며, 영국의 연구팀들은 마리아나 해구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아주 높은 농도의 유해 화학물질에 오염된 사실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중국에서 가장 심하게 오염된 강에 서식하는 생물보다 50배나 높은 오염도를 나타내었다고 하니 이제는 바다의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나를 전 세계인 모두가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Bioaccumulation of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in the deepest ocean fauna

 

Deepwater Exploration of the Marianas: Earth Day – Encounters with Trash

 

제가 가끔씩 짬이 날 때면 찾는 시화방조제에서도 함부로 폐기된 그물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때로는 바닥에 있는 폐그물에 채비가 걸려 라인을 끊어야만 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무단으로 그물을 폐기하는 행동은 절대 없어야 하겠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건 아니건 간에 낚싯줄을 바다에 버리게 되는 것도 해양동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해양동물들이 고스트 네트에 의해서 피해를 당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양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가를 바다에서 생산되거나 포획된 것들이나 그 가공품들 중에서 식탁에 올라온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해양플라스틱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핀란드의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

핀란드의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

2017년 기준으로 3,32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 4위의 낚시용품업체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핀란드의 라팔라(Rapala)란 기업의 사명(社名)은 1905년에 태어난 창업자인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낚시용품 업체들 중에서 라팔라를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먹먹할 때가 가끔씩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어깨를 짓눌렀을 가장이라는 책임을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하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총을 들고 싸웠던 평범하면서도 책임감 강한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인생역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세계적인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1905년에 핀란드의 쉬스메(Sysmä)에서 태어난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7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아시칼라(Asikkala)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으며 이사를 할 때에도 어머니와 단 둘이만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아버지에 대한 것이라고는 이름이 칼레 스텐(Kalle Sten)이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으로 이마저도 정확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하며 그의 생애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어머니는 부유층의 하녀로 일을 하면서 그를 키웠고 처음에는 성도 없이 그냥 라우리로만 불렸던 그가 라팔라(Rapala)란 성을 얻었던 것도 그에게는 행복한 기억이진 않았을 것 같다.

새롭게 이사를 한 아시칼라(Asikkala)로 교적(敎籍)을 옮기면서 이름을 기록할 때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어머니(Maria Eerikintytar)의 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성직자가 그들이 떠나온 마을의 이름인 라팔라(Rapala)를 성으로 기록함으로써 라우리는 뜻하지 않게 라팔라(Rapala)를 성으로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핀란드어로 진흙을 뜻하는 라팔라(Rapala)를 성으로 갖게 된 라우리(Lauri)는 평범한 당시의 여느 아이들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삶의 전선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육체노동 밖에는 없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남성들의 의무복무를 규정하고 있는 핀란드의 법률에 따라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1925년 9월 11일에 군에 입대하여 1926년 9월 3일에 제대를 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고, 복귀 후 힘든 일상 속에서도 엘마 레파넨(Elma Leppanen)이란 여성을 만나 사랑을 꽃피우고 마침내 1928년 9월 29일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가 신혼의 단꿈을 꾸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유럽 전체에 불어 닥친 경기침체와 미국의 대공황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기에 라우리는 겨울에는 벌목공으로, 여름에는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면서 힘든 삶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

 

결혼 후 모두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던 라우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본격적으로 낚시용품의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던 이유도 바로 금전적인 것이 가장 컸다.

어느 날 자신이 잡은 3.5㎏ 정도가 되는 송어 3마리를 판매한 금액이 2주일 동안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받는 금액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에 아마도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옳다구니 하면서 무릎을 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라우리는 물고기가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 다양한 관찰과 연구를 거듭하였고 마침내 1936년에 코르크에 은박지를 감싸서 만든 최초의 라팔라 루어를 만들게 된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

 

한편 1939년이 되면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핀란드는 소련의 침공으로 겨울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전쟁 이전부터 식량난이 심각했던 핀란드의 일반가정과는 달리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그가 만든 루어를 이용하여 많이 잡은 날은 270㎏에 달하는 물고기들을 낚시로 잡을 수 있어서 식량문제를 별로 겪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루어를 제작하는데 사용했던 코르크가 부족하게 되자 라우리는 벌목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소나무껍질을 사용하여 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전쟁의 위기는 라우리를 다시 군에 입대하게 만들었는데 군에서도 루어의 연구에 몰두했던 라우리는 직접 만든 루어를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다가 어느 날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루어를 이용하여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내기에서 훨씬 많은 78마리를 잡으면서부터 이 소문이 핀란드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알지만 겨울전쟁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여 발발한 겨울전쟁은 모두 542명의 소련군을 저격하여 세계최고의 저격수로 이름을 남기며 하얀 사신(White Death)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시모 해위해’가 활약한 바로 그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겨울전쟁은 1940년 3월, 평화협정의 체결로 끝을 맺고 나치가 소련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핀란드는 다시 독일과의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라우리는 몇 년을 더 복무한 뒤 6년 만에야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가 만든 루어의 인기가 핀란드에 널리 퍼져 주문이 쇄도하고 있어서 라우리는 그의 아들들에게 루어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게 되었는데 3남 엔시오(Ensio)가 만든 것은 핀란드 최고의 장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팔라(Rapala)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업체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최대의 시장인 미국에서의 높은 인기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고 그 이면에는 물론 좋은 루어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으나 운이 크게 작용했던 것도 부인할 수만은 없다.

1952년은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제15회 하계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참가한 미국선수단 중에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페이옌네 호수(Lake Päijänne)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 방문한 낚시점에서 라팔라 루어를 구입하여 써본 결과 아주 좋은 조과를 올리는 바람에 귀국하면서도 많이들 사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핀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제품들은 라팔라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냥 ‘핀란드 플러그’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지금의 라팔라가 있게 만든 주인공의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론 웨버(Ron Weber)라는 미국인이 낚시여행을 하던 도중 미네소타 주의 덜루스에서 라팔라 루어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 사람이 아주 쉽게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론 웨버(Ron Weber)

 

낚시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론 웨버는 낚시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던 친구 레이 오스트롬(Ray Ostrom)에게 그가 발견한 라팔라 제품을 보여주면서 함께 테스트를 했고 “이것은 반드시 대박이 날 것이다.”는 확신으로 1959년 9월 23일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에게 정식으로 수입을 의뢰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 2월, 첫 번째 주문으로 2,400개의 루어를 수입한 것을 시작으로 1961년까지 모두 31,135개의 제품을 수입하였으나 이 양은 대박났다고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정도의 대박은 1962년 여름에 그들 곁으로 다가오는데, 1962년은 유명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36세의 나이에 자살함으로써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해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다룬 기사가 당시 최고의 잡지인 라이프지 8월호에 게재가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 라팔라의 제품을 소개하는 기사가 ‘A Lure the Fish Can’t Pass Up’란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한글로 번역하면 물고기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도 뛰어난 루어란 의미)

1960년부터 1961년까지 2년 동안 미국으로 수입한 라팔라 루어를 모두 합쳐야 고작 3만 개를 조금 넘었는데 마릴린 먼로의 기사가 실린 잡지에 함께 소개됨으로써 론 웨버(Ron Weber)와 레이 오스트롬(Ray Ostrom)이 받은 주문량은 2년간 수입한 양의 100배에 달하는 3백만 개였다고 한다.

 

 

이에 론 웨버(Ron Weber)는 핀란드로 쫓아가 생산량을 늘여줄 것을 부탁하면서 너무도 큰 주문량에 놀란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가 원활하게 공급하기에는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재정지원을 제안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라팔라 루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면서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의 고향마을인 라팔라에는 은행의 지점이 개설되었다고 하니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는 1974년에 세상을 떠났고, 론 웨버(Ron Weber)는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 라팔라(Rapala)제품의 시장성을 발견하고 미국으로 수입했던 론 웨버(Ron Weber)는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번 돈을 좋은 곳에 기부하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 오늘은 라팔라의 역사를 알아보는 첫 순서이니 이쯤에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다.

어종별 낚시 장르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어종별 낚시 장르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초보자들이 낚시를 시작하면서 겪는 애로사항 중에는 너무나 많은 낚시의 장르 때문에 과연 어떤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지 선택장애를 겪는 것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언제부터 낚시의 장르가 지금처럼 이렇게 세분화되기 시작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은 지난번 낚시금지구역 지정의 남발은 낚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는 제목의 포스팅과 연관이 있으며 그 2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늬오징어를 잡는 낚시를 에깅, 볼락을 잡는 낚시를 메바링, 전갱이를 잡는 낚시를 아징이라 부르고 참돔을 잡는 타이라바 등 일본은 모든 물고기의 종류별로 별도의 로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낚시의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언제부터 이처럼 장르를 세분화하여 낚싯대를 비롯한 장비와 채비를 생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을까요?

일본 시마노의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먼저 보고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 내용을 번역기로 돌려보면 2000년대에 참돔낚시를 위한 타이라바를 개발하기로 결정했고 2007년에 로드를 출시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에기 하면 떠오르는 일본의 야마리아에서 만드는 어업용이 아닌 낚시용 브랜드 마리아는 1989년에 탄생했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사용하는 장비의 성능이 부족한 것에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의 에깅낚시는 주로 10피트 이상의 농어로드에 14~16파운드의 나일론 라인을 사용하였던 관계로 지금과는 달리 트롤링에 가까운 방법으로 무늬오징어를 잡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야마시타에서 만든 로드가 바로 더 에깅이라는 이름의 10피트와 8피트의 로드였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합사의 사용이 확대되면서부터 비거리의 향상과 액션을 주기가 쉬워지면서 에깅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와서 영어의 ing를 뒤에 붙인 동명사의 이름을 붙인 각종 낚시장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일본 낚시인구의 감소였습니다.

일본 낚시인구의 감소는 경기변동보다는 낚시터의 감소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은 통계로도 알 수 있는데 1996년 2,04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다음 1999년에는 2000년 대비 10.3%인 210만 명이 감소한 1,810만 명으로 크게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몇 년 전에 큰 붐을 일으켰던 배스낚시로 인해 배스낚시인들이 급격히 증가하여 낚시터가 포화상태를 이룸으로써 주변 낚시인들과의 마찰은 물론 조과를 올리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일과성의 붐에 편승하여 낚시를 시작한 사람들이 이탈함으로써 이런 큰 폭의 감소를 불러온 것이었죠.

그 뒤 2002년 12월에 개정된 솔라스조약에 따라 2003년 7월부터 시행된 법률에 의거하여 그동안 낚시를 즐기던 항만이나 부두에서의 낚시가 금지되는 것이 늘어남에 따라 2003년에도 2002년 대비 200만 명이 감소하여 12%란 큰 폭의 낚시인구가 더 이상 낚시를 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한편 가장 큰 감소를 가져왔던 2005년에는 2004년 대비 420만 명이란 숫자의 낚시인들이 감소하여 28%란 감소세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2005년부터 새롭게 시행된 외래생물법에 따라 많은 배스낚시인들이 더 이상 낚시를 하지 않게 됨으로써 이런 결과를 가져왔으나 일본 당국의 법률홍보가 크게 미흡했던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모두가 낚시터의 감소에서 비롯하여 낚시인의 급감을 가져왔고, 이것은 바로 낚시용품업체들의 매출감소로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다이와를 예로 들면 1998년의 매출액은 한화로 대략 6,880억이었지만 2004년에는 4,740억까지 감소했는데 불과 5~6년 만에 매출액이 30%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다이와로서는 방치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의 낚시인구 변동과 함께 소비자가격을 토대로 한 낚시용품 매출액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은데, 2011년에 바닥을 찍은 매출액이 서서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급격하게 감소한 낚시인구로 인한 매출감소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다이와는 물론 시마노를 비롯한 일본의 낚시용품업체들이 선택한 자구책은 다양했으나 모든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대응한 방식은 바로 제품 라인업의 확충이었습니다.

즉, 낚시의 장르를 세분화하여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2011년이 되어서야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초보낚시인들이 혼란을 겪는 수많은 낚시의 장르는 일본 낚시용품업체들의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거나 모방한 한국 낚시업체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낚시용품시장은 해양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이미 영국에서는 물에서 완전하게 생분해되는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직접 구해서 사용해본 바로는 만족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떡밥과 유사한 보일리라는 것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잉어낚시를 즐깁니다.

우리의 한강에서는 무조건 떡밥의 사용을 금지하지만 유럽에서는 떡밥의 제조에 화학물질의 첨가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모 업체의 경우에는 HACCP 인증을 받은 제품만을 판매하는 등 친환경제품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산업을 유도하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쓰레기의 무단폐기로 인한 낚금지역의 확대는 수용할 수 있다는 성숙한 낚시인의 의식수준에 맞게 규제일변도의 정책에서 탈피하는 당국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며 손쉬운 규제만을 남발하는 것은 낚시인구의 감소를 불러오고 이것은 결국 낚시용품산업의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낚시금지구역 지정의 남발은 낚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낚시금지구역 지정의 남발은 낚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낚시금지구역을 지정하는 지자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수반하여 법률적 절차상의 하자를 지닌 낚금지역의 지정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정기관이 새롭게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가장 큰 사유로는 환경문제와 해당 주민들과의 마찰을 들 수 있을 것인데 과연 낚시금지구역의 지정 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일까요?

몇 년 전 낚시를 주제로 하는 프로들이 인기리에 연이어 방송되면서부터 낚시 붐이 조성되었고 이에 편승하여 많은 기업들이 새롭게 낚시용품과 관련한 산업으로 신규진입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캠핑용품으로 유명한 기업에서 낚싯대를 출시한 것을 꼽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처럼 낚시인구의 증가는 낚시와 관련한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낚시인구의 감소는 낚시용품산업의 쇠퇴를 가져옵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정부기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하는 각종 보고서를 보면 특히 경제성 평가에서는 현실과 엄청난 괴리감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민자로 건설되는 도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낚시와 관련해서도 존재합니다.

몇 년 전 제가 목소리를 높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들었던 보고서의 내용 중에는 낚시인들은 1회 출조에 평균 6.5kg의 물고기를 잡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허황된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해외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도 이처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로 결론을 맺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저도 그들처럼 해외의 사례를 들어 낚금지역의 지정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해보겠습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잠재수요를 포함하면 낚시인구가 3,000만 명에 이를 정도였지만 2021년에 이르러서는 67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서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역시 유식한 분들은 가처분소득의 감소 때문이라거나 근래 들어서는 코로나로 인해 낚시인구가 다소 증가했다는 등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이 모두는 일시적인 것으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거나 아니면 모르고 있습니다.

낚시인구의 감소를 가져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족자원의 감소이며 어족자원이 감소하는 상태에서 낚시금지구역을 확대·지정하는 것은 더 많은 낚시인구의 감소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은 일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역민들과 낚시인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고 있으나 지방경제의 활성화에 낚시인들이 도움이 되고 향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당국의 설득과 안전에 관한 규칙을 엄격히 제정하고 단속하는 것이 방파제나 항만에서의 낚시를 금지하는 정책보다 사고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조사결과에 따라 모두 13개의 항만을 낚시금지구역에서 해제하고 ‘낚시문화진흥촉진모델항(釣り文化振興促進モデル港)’으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한편 일본생산성본부에서는 1977년부터 레저백서를 발행하고 있으며 이 백서에는 낚시에 관한 통계도 수록되어 있는데 1984년부터 일본의 낚시인구 추이는 지금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나름 한 분야에서 권위가 있다는 분들의 주장대로 경기변동에 따른 낚시인구의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일본의 경기동향지수를 그래프에 도입해보면 지금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버블경제가 붕괴되던 시기에도 일본의 낚시인구는 오히려 증가했으며 IT버블이 한창일 때는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고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전년도 대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의 낚시인구 감소에는 경기변동보다는 어족자원의 감소와 낚시금지구역의 확대지정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낚시 인구가 감소하면, 낚시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써 야노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스포츠용품 시장에 관한 조사 결과 2015’에 따르면 2014년 일본의 국내 낚시용품시장 규모는 1,251억 7,000만 엔으로 전성기의 1/3까지 축소되어 버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낚싯대를 들고 나가봐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고 그마저도 낚시할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면 낚시인구의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을 저들만 모르는 걸까요?

낚시금지구역의 지정만이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지역경제의 쇠퇴와 관련산업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당국자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볼락의 종류와 구별법

볼락의 종류와 구별법

구이로 만들면 어떤 생선보다도 맛있는 볼락은 한 자리에서 10마리까지는 먹어봤을 정도로 잡는 것도 좋아하지만 먹는 것도 좋아하는 대표적인 어종이다.

낚시인들 사이에서는 볼락이라고 이름 부르는 어종이 많지만 어류학적으로는 2008년 이전까지는 1종으로 분류되었던 것이 2008년부터는 3종으로 분류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에서부터 비롯되다 보니 볼락을 구분하여 부르는 이름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볼락의 종류를 검색하면 “흰 볼락, 붉은 볼락, 검은 볼락”의 3가지로 구분한다는 글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분류한 시로메바루(シロメバル), 아카메바루(アカメバル), 쿠로메바루(クロメバル)를 그대로 번역하여 부르고 있는 것이란 점은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야 이름을 별도로 만들어 붙이고 싶지만 이미 낚시인들과 현지의 어민들은 3종의 볼락을 순서대로 갈볼락, 금볼락, 청볼락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의 볼락의 몸 색깔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두에서 2008년부터 볼락을 3종으로 구분하게 되었다고 한 것부터 알아보면 그 이전까지는 일본의 어류학자 마츠바라 키요마츠(松原喜代松)가 볼락의 종류는 1가지라고 주장하면서부터 붉은 볼락의 학명(Sebastes inermis Cuvier, 1829)을 그대로 사용하여 왔는데 그 이후 대만의 첸러차이(陳樂才) 교수가 1985년에 처음으로 볼락은 여러 종으로 나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후 볼락은 1종이 아니라 여러 종으로 구분된다는 주장들이 잇달아 제기되었고 2008년 8월, 일본은 일본어류학회의 영문기관지인 Ichthyological Research를 통해서 지금까지 동일한 종으로 알려진 볼락은 DNA 분석을 통해 3종으로 나뉜다고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이런 발표를 하게 된 근거가 되었던 것은 교토대학의 나카보우 테츠지(中坊徹次) 명예교수와 연구원인 카이 요시아키(甲斐嘉晃)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볼락은 모두 3종으로 나뉘게 되었지만 이전까지 학자들도 구분하기 어려웠을 정도이니 일반인들이 볼락을 구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3종의 볼락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이전에 “우럭과 볼락을 구별하는 방법”에서 볼락의 생김새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았던 것처럼 3종의 볼락 모두 뺨 부위에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는 점을 알아두도록 하자.

■ 흰 볼락(일본어: 시로메바루)

학명: Sebastes cheni Barsukov, 1988

가장 개체수가 많은 종으로 몸 색깔은 밝은 갈색, 갈색, 암갈색을 하고 있다.

다른 종과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점은 가슴지느러미의 연조(軟条)가 대부분 17개란 것으로서 15개인 붉은 볼락과 16개인 검은 볼락보다 많다.

 

완전히 성장한 개체가 아닌 경우에는 갈색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3종의 볼락 중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흰 볼락은 성어가 되면서 몸 색깔은 짙어지고 갈색의 줄무늬는 옅어지는 경향이 있다.

 

■ 붉은 볼락(일본어: 아카메바루)

학명: Sebastes inermis Cuvier, 1829

몸 색깔은 적색을 하고 있으며 3종 중에서는 가장 소형이다.

가슴지느러미의 연조(軟条)는 대부분 15개이며 배지느러미의 색깔도 붉은 것이 특징이다.

 

성어가 되면 몸 색깔과 지느러미의 색깔이 더욱 붉게 변하는데 더러는 검정색을 띠는 개체도 있다.

 

어린 붉은 볼락은 흰 볼락과 비슷하기는 해도 지느러미의 색깔이 붉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 검은 볼락(일본어: 쿠로메바루)

학명: Sebastes ventricosus Temminck and Schlegel, 1843

몸 색깔은 검정색, 짙은 녹색, 감색을 띠고 있으며 가장 체고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가슴지느러미의 연조(軟条)는 대부분 16개를 보인다.

 

완전히 성장한 개체가 아닌 경우에는 갈색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이고 검은 볼락은 등지느러미가 대부분 푸른색을 띠고 있다.

 

이밖에 3종의 공통적인 점으로는 낚시로 잡은 다음 살림통 안에 보관하면 피부의 색깔이 옅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럭과 볼락을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

우럭과 볼락을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

월드컵 개막전을 보기 위해 아직도 2시간여를 기다려야 하는지라 오늘 어느 분께서 문의하신 “볼락과 우럭을 어떻게 구별하는지?”란 것에 대해 간단하게 적어볼까 합니다.

흔히 우리가 애럭(애기 우럭)이라고 부르는 우럭의 새끼는 볼락과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으며 특히 야간에는 더욱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볼락과 우럭을 아주 간단하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으니 이제부터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럭(조피볼락)의 눈 밑에는 날카로운 뼈가 3개 있는데 이것을 눈물뼈(누골)라고 합니다. 이처럼 눈물뼈가 있는 우럭과는 달리 볼락은 이런 눈물뼈가 없답니다.

 

먼저 우럭의 사진을 보면 눈밑에 3개의 날카로운 뼈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우리가 애럭이라고 부르는 새끼 우럭의 경우에도 눈물뼈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애럭의 눈물뼈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확대해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새끼우럭도 눈물뼈가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와는 달리 아래의 사진처럼 볼락의 경우에는 눈밑에 누골이라고 하는 눈물뼈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볼락이나 우리가 흔히 참우럭이라고 부르는 띠볼락도 마찬가지로 눈물뼈가 없으며, 볼락의 일부 종류에는 눈물뼈가 있는 것도 있지만 그 형태가 우럭과 같이 날카롭지 않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볼락도 아가미 앞쪽, 즉 뺨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래 2장의 사진에서는 아주 작은 애럭(새끼 우럭)도 누골이라고 하는 눈물뼈의 형태가 뾰족하지는 않지만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에 비하여 볼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볼락과 우럭을 확실하게 구별하실 수 있으시겠죠?

 

우리가 먹는 장어는 다 자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장어는 다 자란 것이 아니다.

장어의 생태에 관해서 소개한 자료들 중에서 가장 알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는 TED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원본영상의 주소는 아래에 기재해두었으며 여기서는 TED의 영상을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장어의 생태를 알아보겠습니다.

원본영상: No one can figure out how eels have sex – Lucy Cooke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한 학자들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찾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장어의 정소(精巢)였습니다.

지금까지 앙귈라 앙귈라(Anguilla anguilla)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유럽장어가 교미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한, 과학자들이 수많은 장어를 해부해보았지만, 아무도 장어의 알과 생식기관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장어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에 싸인 물고기여서 고대부터 과학자들은 다양한 추론을 세웠죠.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는 진흙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난다.”고 주장했고, 로마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는 “장어가 바위에 몸을 문지르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고 하기도 했죠.

그 밖에도, 지붕 위에서 부화한다거나 다른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탄생한다거나 딱정벌레의 몸에서 나온다는 설들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장어는 모두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첫 번째 단계는 유생의 렙토케팔루스이고, 다음이, 투명한 치어인 실뱀장어, 그 다음은 실뱀장어의 몸에 색깔이 생기는 엘버이고 엘버에서 성장한 황장어를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이죠. 그리고 황장어에서 더 성장한 것은 은장어라고 부르죠.

장어는 각 성장 단계마다 마치 다른 물고기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데 과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장어는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는 생식기를 발달시키지 않는다는 특징이었습니다.

즉, 과학자들이 장어가 교미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고, 해부를 해도 생식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강에 서식하는 장어는 성장하는 단계의 것이어서 생식기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장어는 민물고기로 여겨지지만, 그 일생은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은 염분이 강한 해역에서 시작됩니다.

1년에 한 번, 사이클론이 오면 몸길이 3mm 정도의 렙토케팔루스가 일제히 이동을 시작합니다.

장어의 치어는 사르가소 해에서 유럽 대륙에 이르기까지 300일 동안 6,500km의 먼 길을 여행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먼 여정을 끝낼 무렵에는, 체장 3mm였던 렙토케팔루스는 48mm 정도의 크기가 되는데, 바로 이것이 실뱀장어입니다.

많은 물고기들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도달하면, 세포가 파열해 죽음에 이르지만 장어의 유생인 렙토케팔루스는 실뱀장어로 단순히 외형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실뱀장어의 신장(腎臓)은 더 많은 염분을 유지하고 혈중 염분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변화합니다.

이렇게 담수에 적응한 실뱀장어는 ​​무리를 이루어 강에 흘러 들어가고 상류에 도달한 실뱀장어는 ​​잡식성이 되어, 수중의 식물이나 작은 동물 등,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고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10년 정도에 걸쳐 체장 80cm의 황장어로 성장하는데 우리가 먹는 양식한 장어도 바로 이 단계의 것이랍니다.

그 후 더 성장하여 은장어가 되면서 생식기가 발달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 번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마지막 단계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1896년, 렙토케팔루스가 장어의 유생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과학자들은, 장어는 대서양에서 태어나 유럽으로 건너온 것이라는 추론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해양조사가 필수적이었는데, 그 대규모 조사를 이뤄낸 것이 덴마크의 해양생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였습니다.

슈미트는 18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4대륙 해안에서 렙토케팔루스의 분포를 조사했고 마침내 1921년에 렙토케팔루스를 찾는데 성공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르가소 해의 남쪽 끝이었죠.

슈미트의 발견 이후에도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자연상태의 장어가 교미하는 모습이 관찰된 적은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이 ‘바다에 방출된 장어 알에 장어 정자가 접촉함으로써 수정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르가소 해의 해류 속도와 많은 해초는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는 조사를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사르가소 해(Sargasso sea)라는 말은 갈조류의 모자반 종류인 사라가섬(Sargassum)이 많은 바다라는 뜻에서 만든 이름이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완전히 성장한 장어의 추적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장소를 특정하지도 못한다는 애로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은 “이런 난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고대부터 이어지는 장어의 비밀은 미끄러운 장어처럼 우리의 손가락 사이를 계속해서 빠져나갈 것입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렙토케팔루스는 렙토세팔루스라고도 발음하는데 라틴어로 작다는 뜻의 렙토(Lepto)와 머리를 뜻하는 케팔루스(Cephalus)를 조합하여 만든 학명은 라틴어로는 렙토케팔루스라고 읽지만 케팔루스의 영어발음이 세팔루스여서 렙투세팔루스라고도 하는 것이랍니다.

그럼, 이것으로 장어의 생태에 관해 알아본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먹는 장어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가 먹는 장어는 어디서 왔을까?

2017년 2월 23일 영국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여 홍콩으로 출국하려던 길버터 쿠란 67세의 남성이 스페인에서 구입한 어떤 물건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스페인의 과르디아 시빌은 산탄데르에 있는 한 창고를 급습하였는데, 창고의 내부에는 여행용 가방들이 수북이 쌓여있었죠.

길버터씨가 스페인에서 구입했던 물건은 무엇이었고, 과르디아 시빌은 무슨 이유로 여행용 가방이 잔뜩 쌓여있는 창고를 급습했던 것일까요?

 

언제나 봄철이면 실장어 또는 실뱀장어라고 부르는 장어의 치어를 불법으로 포획하는 일이 횡행한다는 기사와 함께 가격이 한 마리에 얼마라는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두 사건은 이처럼 값비싼 실뱀장어를 밀수하려던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며 유럽에서 어획되는 실뱀장어의 25% 정도가 매년 아시아로 밀수출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국과 홍콩이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가 먹고 있는 장어도 유럽에서 밀수한 것을 키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실뱀장어라고 부르는 장어의 치어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와 많게는 5년에서 10년간 성장한 다음, 다시 산란을 위해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바다로 돌아간 이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산란은 어디서 하는지, 치어들은 어떻게 하구까지 오는지 등 장어의 생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양식한 것들을 포함해 강이나 호수에서 성장한 장어들이 산란하는 모습을 보거나 장어의 치어를 본 적이 없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는 암수가 따로 없고 진흙에서 탄생한다고 했을 정도로 장어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물고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명하면서도 버드나무잎처럼 생긴 장어의 유생인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가 뱀장어와는 다른 어종이 아니란 것도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한 덴마크의 해양학자 요하네스 슈미트(Johannes Schmidt)에 의해 북미 대륙의 동쪽에 있는 사르가소 해(Sargasso Sea)가 미국뱀장어와 유럽뱀장어의 산란장소라는 것이 1922년에야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먹는 장어는 대부분이 양식한 것이고 장어의 양식은 치어를 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장어의 가격은 매년 포획되는 실뱀장어의 양에 따른 변동의 폭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명이 앙귈라 앙귈라(Anguilla anguilla)인 유럽뱀장어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자 2007년에 워싱턴조약의 부속서 II에 등재되었고, 이로 인해 이전과는 달리 수출허가를 받아야만 유럽 뱀장어의 치어를 아시아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말이 좋아 허가지, 사실상의 수출금지라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유럽 각국에서 취해짐에 따라 밀수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죠.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1kg에 3천 5백 마리를 기준으로 300유로, 한화 40만 원 정도에 구할 수 있었던 유럽 실뱀장어를 국외로 반출하기만 해도 3배 이상인 1천 유로를 받을 수 있었고, 1년 정도 성장시키면 아시아에서 소매가로 26,000 유로, 한화로는 3천 5백만 원에 팔 수 있었으니, 중국인들이 밀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죠.

 

게다가 실뱀장어는 부피도 작아서 지금 보시는 것처럼 여행용 가방에 넣어서 운반하면 세관 검색에도 잘 걸리지 않았고, 유럽연합이 유럽 뱀장어의 수출입을 금지한 2010년 이후부터는 모든 역내거래가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장어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아시아로 밀수출된 것들이 우리가 즐겨 먹는 종인 앙귈라 자포니카(anguilla japonica)로 둔갑하여 판매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다고 알고 있는 자포니카종 장어는 2005년이 되어서야 도쿄대학 해양연구소에 의해 서 마리아나해령에서 산란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아직도 정확한 지역을 특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산란한 뒤의 이동경로는 규명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장어의 렙토세팔루스는 어디서 어떻게 실뱀장어로 성장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북적도해류와 쿠로시오해류를 타고 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유엔식량농업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는 매년 28만 톤 이상의 장어가 생산된다고 하며 아시아에서 장어양식이 시작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자포니카종 장어의 생산량이 유럽장어의 생산량을 뛰어넘게 되었고 지금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프를 보시면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장어양식은 자연에서 태어난 실뱀장어를 얼마나 잡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은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 자포니카종 장어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연간 2만 톤 내외의 장어를 양식한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1억 마리 정도의 실뱀장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만 일본에서 잡히는 실뱀장어의 양은 50년 전에 비해 20분의 1 수준인 형편이어서 많은 양을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입하는 실정이지요.

그런데 중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장어를 양식하는 양만장(養鰻場) 중에서 규모가 큰 한 곳에서만 연간 1만 톤 이상을 생산한다고 하고 2020년 중국에서 어획하거나 양식한 장어의 생산량이 250,740톤이라고 하니 이를 단순하게 계산하면 연간 12억 5천 마리의 실뱀장어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북적도해류와 쿠로시오해류를 타고 극동지역으로 이동하는 실뱀장어의 이동경로와는 달리 중국의 장어 양식장들은 대부분 홍콩과 가까운 남동부 지역에 몰려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실뱀장어가 밀수되는 중요한 루트가 바로 홍콩이고,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실뱀장어의 대부분도 홍콩에서 수입되고 있죠.

해마다 3억 5천 마리 이상의 유럽실뱀장어가 아시아로 밀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홍콩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며, 홍콩에 도착한 실뱀장어 중 일부는 중국 본토의 양만장에서 키워진 다음 자포니카종으로 탈바꿈되어 수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수출하는 장어가 유럽뱀장어와 같은 종이라고 하면 유럽 실뱀장어를 밀수입한 것임을 실토하는 꼴일 테니 중국으로서는 자포니카종이라 우길 수밖에 없겠지만 밀수한 것을 다시 수입해서 소비하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닐까요?

2021년 우리나라는 모두 3.1톤의 실뱀장어를 수출하고 6.4톤을 수입하였는데, 수출물량은 모두 미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수입물량의 50%가 넘는 3.4톤을 홍콩에서 수입하였고, 필리핀에서 1.5톤, 중국에서 1.2톤을 수입하여 3개국의 수입량이 6.1톤에 달해 95%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활어 상태의 장어는 2021년에 모두 1,337.4톤을 수입하였으며 그중 1,096.8톤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는데, 과연 중국에서 수입한 장어는 모두 자포니카 종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1970년대 이후 유럽으로 유입되는 장어의 개체수는 약 9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며 밀수에 강력하게 대처하면서부터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하며 2014년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자포니카종 장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였으나 멸종위기종의 지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적도 해류가 남북으로 나뉘는 분기점의 위도가 변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극동지역으로 회귀하는 실뱀장어의 숫자는 더 크게 감소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밀수를 전 세계적인 노력으로 근절시키지 못한다면 장어의 멸종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어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특히 불법행위로 생산된 장어의 수입과 유통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양식하는 장어의 치어량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본, 대만, 중국의 4개국이 참여하는 국제협의체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중국은 아직까지 참가를 미루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정부에서도 대만산 실뱀장어가 중국을 거쳐 홍콩으로 밀수출되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고 유럽산 실뱀장어가 홍콩으로 밀수출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통되는 장어는 자포니카종 외에도 몇 종류가 더 있음을 알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지만 어쩐 일인지 정부당국은 이런 사실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일명 홍콩루트라 불리는 실뱀장어의 유통경로에는 자포니카종 이외의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어서 생소하지도 않습니다. 2017년 우리나라는 총 11.2톤의 실뱀장어를 양식장에 입식하였으며 그 중 74%인 8.3톤의 수입 실뱀장으로를 입식하였는데 수입한 실뱀장어의 93%인 7.7톤을 홍콩으로부터 수입한 것을 입식하였죠.

그러나 홍콩에는 실뱀장어가 회귀할만한 강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대만이 실뱀장어의 수출규제를 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실뱀장어의 90% 이상을 대만산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유럽에서 홍콩으로 밀수출된 실뱀장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도 자포니카종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정부당국도 외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회유하는 실뱀장어의 어획량은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국내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관리가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자원관리를 향해 내딛는 한걸음은 그리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초보 낚시인들이 지렁이 미끼를 사용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초보 낚시인들이 지렁이 미끼를 사용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오래전,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울 때, 가능하면 뇌가 상하지 않도록 끼우면 조금이라도 오래 지렁이가 살아서 움직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원투낚시의 미끼로 지렁이를 사용할 때, 물고기의 활성도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한다는 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투낚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채비를 회수했을 때, 지렁이의 머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을 보신 적이 분명히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고기가 뜯어먹은 것일까? 아니면 떨어져 나간 것일까? 하고 궁금해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두 가지 생각이 모두 맞으며, 정확한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맞게 미끼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초보자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입질을 파악하는 법을 폭풍 검색해서 열공하거나, 입질감지 100%라는 감지기나 낚싯대를 찾아보지는 않으셨습니까?

저렇게 약하고 작은 입질은 원투낚시의 경력이 많은 분들도 초릿대의 움직임만으로 챔질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신에 경력자들은 지렁이의 머리를 떼고 바늘에 달아서 낚시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죠.

 

물고기의 입질이 작을 때는, 지렁이를 단번에 삼키지 않고 아주 조금씩 떼어먹습니다.

그러므로 물고기의 입질이 약할 때는, 지렁이의 머리를 잘라서 끼면, 미끼를 삼키는 것이 훨씬 부드러워져 낚싯바늘이 입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물고기의 활성도가 높을 때는, 단번에 지렁이를 삼킬 수 있도록 꼬리 부분을 잘라주면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답니다.

 

이렇게 물고기의 활성도에 따라서 지렁이의 꼬리를 자르거나 머리를 잘라서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렁이를 자르고 남은 부위를 지렁이통에 넣으면, 남아있는 지렁이들이 금새 힘을 잃고 비실거리게 됩니다. 조개 한 마리가 상하면 수조 안의 모든 조개들이 폐사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므로, 자르고 남은 머리나 꼬리는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원투낚시로 풀캐스팅을 할 때, 지렁이 머리를 잘라서 사용한다면, 반드시 지렁이를 목줄까지 올라오도록 끼워야 날아가는 도중에 바늘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초보 낚시인들은 미끼의 교환시기가 상당히 긴 편인데, 서해안에 특히 많은 망둥이들이 좋아하는 지렁이의 상태가 바로, 힘이 빠지고 부드러워진 상태의 것이기 때문에 채비를 회수하여, 지렁이의 머리만 남아있다면 다음부터는 지렁이의 머리를 잘라서 사용하시고, 미끼의 교환시기를 지금까지보다는 5~10분 정도를 당겨서 갈아주도록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초보자들이 지렁이를 사용할 때 물고기의 활성도에 따라서 머리를 자르거나 꼬리를 잘라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생미끼를 끼우는 방법

생미끼를 끼우는 방법

서해안에서 우럭낚시를 할 때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미끼로 사용하기도 하고, 영등철 하우스 낚시터나 유료 노지낚시터에서 많이 사용하는 빙어미끼의 경우에도 끼는 법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고, 더러는 꼬리지느러미의 위쪽에 바늘을 끼는 분들을 보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미끼를 머리부터 삼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꼬리지느러미 근처에 바늘을 끼는 것은 입질이 오더라도 제대로 입에 바늘이 걸리지 않을 수가 있어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살아있는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사용할 경우, 바늘을 끼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살아있는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사용하는 경우 주의할 점은 미끼가 오래도록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과, 미끼가 바늘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바늘에서 미끼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바늘이 물고기의 아래턱으로 빠져나오게 끼는 방법은 미끼가 쉽게 떨어지므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과, 물고기를 잡아서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신경절단(시메)을 할 때에 물고기의 뇌가 있는 부분을 찌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바늘이 통과하는 지점이 물고기의 뇌가 있는(눈 뒤쪽 머리 부분) 지점을 관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코로 끼우기

물고기는 입을 통해서 들어온 산소를 아가미로 흡수하는 호흡을 하기 때문에 코로 바늘을 끼우는 것은 물고기의 호흡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바늘을 끼우는 방법은 바늘 끝을 한쪽 코에서 다른 쪽 코로 나가게 끼우면 됩니다.

 

▶ 위턱 끼우기

바늘을 입으로 넣어 위턱으로 나오도록 끼는 방법으로 가장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위턱으로 바늘을 끼울 때는 위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물고기의 뇌가 있는 부분까지 닿도록 깊이 끼우게 되면 미끼가 금방 죽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 입 끼우기

입으로 끼우는 방법은 통상적으로 위에서 말한 위턱으로 끼우는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바늘이 통과하는 부분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입으로 끼는 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위턱으로 바늘을 끼는 방법과의 차이점은 아래턱으로 바늘을 찔러 위턱으로 바늘이 나오도록 끼운다는 것이며 물고기가 오래 살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주로 미끼를 자주 교환하는 선상에서 비교적 바늘을 쉽게 끼우기 위해 사용합니다.

 

▶ 등 끼우기

등지느러미가 있는 딱딱한 부분에 바늘을 끼우는 방법으로 멀리 던질 수 있고 미끼의 움직임이 자연스럽다는 장점은 있으나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미끼를 머리부터 삼키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 눈 끼우기

정확하게는 눈의 경계선에 바늘을 끼는 방법으로서 미끼가 오래 살 수 있고 움직임 또한 자연스럽다는 장점은 있으나 바늘을 끼우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바늘을 끼울 때에는 도구(바늘과 고무줄)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통상적으로 이 방법은 대물 부시리나 대방어를 노릴 때 주로 사용하는데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눈과 눈 사이를 바늘이 통과할 수 있도록 끼우면 됩니다.

눈 끼우기를 할 때 도구로 사용하는 바늘은 이전에 성게미끼를 끼울 때 사용한 성게꽂이와 끝이 비슷하게 생겼으며 그 끝에 먼저 고무줄을 연결한 다음 바늘을 사진과 같이 연결해서 사용하는데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바늘을 미끼의 눈이 있는 경계선으로 관통시킵니다. 이 때 바늘에 연결된 고무줄도 통과시키도록 합니다.

 

통과된 후에는 바늘을 분리하고 고무줄에 낚싯바늘을 연결합니다.

 

그런 다음 낚싯바늘을 돌려서 고무줄을 조아주고 고무줄과 물고기의 틈새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완료됩니다.

 

 

이상과 같이 살아있는 생미끼를 끼는 법을 살펴보았는데 주의할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생미끼를 끼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만 가능하면 빨리 끼우는 것이 미끼가 오래 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미끼를 너무 세게 쥐거나 건조한 손으로 만지게 되면 빨리 죽기 때문에 가급적 젖은 손으로 만지도록 하고 너무 세게 움켜쥐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미끼가 움직이기 때문에 세게 쥐게 되는데 물고기는 눈을 가리면 움직임이 덜하므로 눈을 가리고 끼우는 것이 좋습니다.

낚싯바늘을 끼운 후에는 가능하면 빨리 캐스팅하는 것이 좋으며, 선상에서 생미끼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낚싯바늘을 2개를 달기도 하는데 물고기의 아가미와 배 부분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