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천집(藥泉集) 제28권 잡저(雜著) 낚시이야기-조설(釣說)

약천집(藥泉集) 제28권 잡저(雜著) 낚시이야기-조설(釣說)

우리 선조들께서 사용했던 낚싯바늘에 관한 내용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었던 남구만(南九萬)이 쓴 약천집(藥泉集)에 있는 조설(釣說)에 나오는 것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조설(釣說)에 나오는 “(주부들이 사용하는)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들었다.”는 것은 최초의 문헌은 아니다.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두보(杜甫)가 쓴 강촌(江村)이란 시다.

그 시를 보면,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애는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다(老妻畫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 노처화지위기국 치자고침작조구).”는 내용이 있는데 이 구절을 차용하여 우리의 선조들께서도 많은 시문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려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요 정치가였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쓴 목은시고(牧隱詩藁)로 제6권의 즉사(卽事)에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 꾀는 엉성도 하여라.(고침작조계우소: 敲針作釣計迂疎)”는 구절이 나온다. 바로 이 표현이 두보의 시 강촌(江村)에서 따온 것이다.

따라서 두보의 시로 미루어볼 때 신라시대부터 이런 낚싯바늘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형태의 바늘인지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정확한 모양은 확인할 길이 없다.

한편 남구만(南九萬)이 쓴 조설(釣說)은 낚시를 소재로 하여 도를 깨닫는다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래도 당시의 낚시에 대한 다양한 면들을 볼 수 있어서 중요한 사료(史料)라고 생각이 된다. 이에 약천집 제28권 잡저(雜著)편에 있는 조설(釣說)을 원문과 함께 기록해본다.

■ 약천집(藥泉集) 제28권 잡저(雜著) 조설(釣說)

세경술여귀전결성(歲庚戌余歸田潔城) 가후유지(家後有池) 종광수십무(縱廣數十武) 이심천육칠척이하(而深淺六七尺以下) 여장하무사(余長夏無事) 첩왕견엄우지(輒往見噞喁之).

경술년(1670년, 현종11년)에 고향인 결성으로 돌아오니, 집 뒤에 넓이는 수십 보요 깊이가 6, 7척이 조금 못되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긴 여름철 할 일이 없을 때면 종종 연못에 가서 물고기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떼 지어 노는 것을 구경하곤 하였다.

일일인인작죽일간(一日隣人斫竹一竿) 고침위조이증여(敲鍼爲釣以贈余) 사수륜어련의간(使垂綸於漣漪間) 여재경사구(余在京師久) 미상지조구장단활협만곡지도여하(未嘗知釣鉤長短闊狹彎曲之度如何) 이린인지증위선야(以隣人之贈爲善也) 수지경일(垂之竟日) 부득일린언(不得一鱗焉).

하루는 이웃 사람이 대나무 하나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고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 다음 나에게 주면서 물결 사이에 낚싯줄을 드리우게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 살았던 터라 낚싯바늘의 길이와 너비와 굽은 정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으므로 그저 이웃 사람이 주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다. 하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는 못하였다.

명일유일객래견구왈(明日有一客來見鉤曰) 시의불득어야(是宜不得魚也) 구지말태곡이향내(鉤之末太曲而向內) 어탄지수역(魚吞之雖易) 토지역불난(吐之亦不難) 필사기말소언이향외내가(必使其末少偃而向外乃可) 여사객고이향외(余使客敲而向外) 우수지경일(又垂之竟日) 부득일린언(不得一鱗焉).

다음 날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고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낚싯바늘의 끝이 너무 굽어 안으로 향했으니, 이것은 물고기가 바늘을 삼키기도 쉽고 뱉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반드시 끝을 조금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고 알려주므로, 내가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 밖으로 향하게 한 뒤, 하루 종일 낚시를 하였으나 역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명일우일객래견구왈(明日又一客來見鉤曰) 시의불득어야(是宜不得魚也) 구지말기향외이곡지권차태활(鉤之末旣向外而曲之圈且太闊) 불가이입어지구의(不可以入魚之口矣) 여사객고이착기권(余使客敲而窄其圈) 우수지경일(又垂之竟日) 재득일린언(纔得一鱗焉).

다음 날 또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며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낚싯바늘의 끝이 밖으로 향하기는 하였으나 바늘의 굽은 둘레가 너무 넓어서 물고기의 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고 알려주므로, 나는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바늘의 둘레를 좁게 한 다음 또다시 하루 종일 낚시를 했지만 겨우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명일우이객래(明日又二客來) 여시이구(余示以鉤) 차어지고(且語之故) 기일객왈시의득어소야(其一客曰是宜得魚少也) 구지억이곡지야(鉤之抑而曲之也) 필단기곡첨(必短其曲尖) 사근가이벽립(使僅可以擘粒) 차측곡첨태장(此則曲尖太長) 어탄지불몰(魚吞之不沒) 필차토의(必且吐矣) 여사객고이단기첨(余使客敲而短其尖) 수지양구(垂之良久) 탄구자루의(吞鉤者屢矣) 연인륜이추지(然引綸而抽之) 혹탈이락언(或脫而落焉).

다음 날 또 두 명의 손님이 왔기에 나는 낚싯바늘을 보여주면서 그동안의 사연을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한 손님이 말하기를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낚싯바늘을 눌러서 굽힐 때에는 반드시 굽힌 곡선의 끝을 짧게 만들어 싸라기 하나를 끼울 만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굽힌 곡선의 끝이 너무 길어서 물고기가 삼키려 해도 삼킬 수가 없기 때문에 틀림없이 내뱉었을 것입니다.”고 하기에, 나는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뾰족한 부분을 짧게 한 다음 한동안 낚시를 하였다. 이에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여러 번 물기는 하였으나 낚싯줄을 당겨 들어 올리면 빠져서 떨어지곤 하였다.

방일객왈피객지언(旁一客曰彼客之言) 어구야득의(於鉤也得矣) 어추야유의(於抽也遺矣) 부륜지유계개야(夫綸之有繫䕸也) 소이정부침이지탄토(所以定浮沈而知吞吐) 범동이미침야(凡動而未沈也) 탄혹미진(吞或未盡) 이거추지측위미급(而遽抽之則爲未及) 침이소종야(沈而少縱也) 탄차부토(吞且復吐) 이서추지측위이과(而徐抽之則爲已過) 시이필어기욕침미침지간이추지가야(是以必於其欲沈未沈之間而抽之可也) 차기추지야(且其抽之也) 항기수이직상지(抗其手而直上之) 칙어지구방개(則魚之口方開) 이구지말미유소지(而鉤之末未有所搘) 어순구이장간(魚順鉤而張齦) 여상엽지탈조(如霜葉之脫條) 시이필측기수세(是以必側其手勢) 약범수연이추지(若汎篲然而抽之) 연칙어방탄구어후중(然則魚方吞鉤於喉中) 이구내전첨어합리(而鉤乃轉尖於呷裏) 좌격우촉(左激右觸) 필유소섬엽이파견언(必有所㨛擸而爬牽焉) 차소이필득무실야(此所以必得無失也).

이것을 본 옆의 또 다른 손님이 말하기를 “저 손님이 설명한 낚싯바늘에 대한 것은 맞기는 하나 낚싯줄을 당기는 방법이 빠졌습니다. 낚싯줄에 찌를 매다는 것은 부침(浮沈)을 일정하게 하여 물고기가 바늘을 삼켰는지 뱉었는지를 알기 위한 것으로 찌가 움직이기만 하고 잠기지 않은 것은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아직 다 삼키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때 갑자기 낚싯줄을 당겨 올리는 것은 너무 빠른 것이고, 찌가 잠겼다가 약간 움직이는 것은 바늘을 삼켰다가 다시 뱉을 때로 이때는 천천히 당기면 늦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잠길락 말락 하는 때에 당겨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당겨 올릴 때에도 손을 높이 들고 곧바로 들어 올리면 물고기의 입이 벌어져 있기 때문에 낚싯바늘의 끝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고기가 낚싯바늘을 따라 입을 벌리면 낙엽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손을 마치 비질하듯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여서 들어 올려야 하고, 이렇게 하면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목구멍으로 삼킨 다음이어서 낚싯바늘의 갈고리 부분이 목구멍에 걸려 좌우로 요동을 치면서 펄떡거릴수록 더욱 단단히 박힐 것이니,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여우용기법(余又用其法) 수지이귀(垂之移晷) 득삼사린언(得三四鱗焉) 객왈법칙진어시의(客曰法則盡於是矣) 묘유미야(妙猶未也) 취여간이자수지(取余竿而自垂之) 윤여륜야구여구야이여이야(綸余綸也鉤余鉤也餌余餌也) 좌지처우여처야(坐之處又余處也) 소역자특지간지수이(所易者特持竿之手耳) 어내영구이상(魚乃迎鉤而上) 병수이쟁선(騈首而爭先) 기추이취지야(其抽而取之也) 약탐지어광이수지어반(若探之於筐而數之於盤) 무류수언(無留手焉).

내가 그 방법대로 하였더니 낚싯대를 드리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너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손님이 말하기를 “법은 여기서 다하였지만 묘리는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는 내 낚싯대를 가져다가 스스로 드리우니, 낚싯줄도 나의 낚싯줄이요 낚싯바늘도 나의 낚싯바늘이고 미끼도 나의 미끼요 앉은 곳도 내가 앉은 자리였고 단지 낚싯대를 잡은 사람의 손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물고기가 미끼를 보고 올라와서 머리를 나란히 하고 서로 물기를 다투면서 잡혔다. 낚싯대를 들어 올려 물고기를 잡는 것이 마치 광주리 속에서 물고기를 집어서 소반 위에 올리는 것과 같아 손을 멈출 틈이 없었다.

여왈묘개지차호(余曰妙蓋至此乎) 차우가이교여호(此又可以敎余乎) 객왈가교자법야(客曰可敎者法也).

내가 말하기를 “기묘함이 이 정도란 말인입니까? 이것도 또한 저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손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묘기가교야(妙豈可敎也) 약가교야(若可敎也) 우비소위묘야(又非所謂妙也) 무이측유일설(無已則有一說) 자수오지법(子守吾之法) 조이수지(朝而垂之) 모이수지(暮而垂之) 전정적의(專精積意) 일루월구이습습이성(日累月久而習習而成) 수차적기적(手且適其適) 심차해기해(心且解其解) 부여시측혹가이득지(夫如是則或可以得之) 여(與) 기미득지여(其未得之與) 혹가이달기미이진기극여(或可以達其微而盡其極與) 오기일이매기이삼여(悟其一而昧其二三與) 기혹일미유소지이반유이자혹여(其或一未有所知而反有以自惑與) 기혹황연자각이불자지기소이각자여(其或恍然自覺而不自知其所以覺者與) 차칙재자오하여언(此則在子吾何與焉) 오소이고자자지어차의(吾所以告子者止於此矣.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법(法)이니, 기묘함을 어찌 말로 가르쳐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만일 가르쳐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기묘함이 아닌 것이지요. 기어이 말하라고 한다면 한 가지 할 말이 있으니, 그대가 나의 법을 지켜 아침에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저녁에도 낚싯대를 드리워서 온 정신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날이 쌓이고 달이 오래되도록 익힌다면 손이 우선 그 알맞음을 깨닫고 마음은 그 풀이를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하더라도 기묘함을 터득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으며, 혹 그 은미한 것까지 통달하고 지극한 묘리를 다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 중 한 가지만 깨닫고 두세 가지는 모를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 미혹될 수도 있고, 혹은 스스로 깨닫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흐릿하다면 깨달음의 이유를 자신도 알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는 모두가 그대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찌 제가 간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올시다.

여어시투간이탄왈선부(余於是投竿而歎曰善夫) 객지언야(客之言也) 추차도야(推此道也) 해특용어조이이재(奚特用於釣而已哉) 고인운소가이유대(古人云小可以喩大) 기약차류자비야(豈若此類者非耶).

이에 나는 낚싯대를 던지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손님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 도를 미루어 어찌 낚시하는 것에만 쓸 뿐이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비유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객기거(客旣去) 식기설이자성언(識其說以自省焉).

손님이 떠난 뒤에 나는 그 말을 기록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

세계의 유명 낚시인②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세계의 유명 낚시인②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우리에게는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노인과 바다라는 소설로 친숙한 헤밍웨이는 낚시를 즐겨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헤밍웨이가 낚시를 좋아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된 동기는 쿠바에서 보낸 시절 동안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헤밍웨이 청새치 낚시대회(Ernest Hemingway Marlin Fishing Tournament)”에 쿠바의 지도자 피엘 카스트로와 80년대 그에 관한 책을 소지만 하고 있어도 잡혀가야 했던 체 게바라가 참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 청새치 낚시대회(Ernest Hemingway Marlin Fishing Tournament)”는 195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제10회 대회에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참여하였던 것이며 이 대회 이전에는 낚시를 해본 경험이 없었던 카스트로가 우승을 하면서 헤밍웨이가 카스트로에게 우승컵을 수여하는 사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헤밍웨이의 낚시를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가 20여년 이상을 생활한 쿠바를 떠올리고 소설 노인과 바다를 연상하게 되는데 사실 헤밍웨이가 낚시에 심취하고 왕성한 집필로 큰 성과를 거둔 곳으로는 플로리다에 있는 키 웨스트(Key West)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28년 4월부터 1939년 12월까지 헤밍웨이의 30대 시절을 보낸 키웨스트의 생활 동안 그가 쓴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것들인데대충 살펴보면 1929년에 출판된 무기여 잘 있거라’,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1940년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들 수 있습니다물론 이들 외에도 1935년에 발표한 수필집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을 비롯하여 1938년에 발표한 그의 유일한 희곡 5(The Fifth Column)’ 등 가장 많은 작품을 발표한 시기가 바로 키웨스트에서 거주하는 기간 동안이었습니다.

사실헤밍웨이의 작품에 대하여 얘기를 하면 그의 여성편력에 대하여도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는 주된 내용이 낚시에 관한 것이니 생략하기로 하면서 조금만 살펴보면 그가 왕성한 집필을 하는 동안의 부인은 1926년 두 번째 결혼으로 만난 폴린과의 결혼생활 동안이었으며 그녀와 이혼하고 만난 세 번째 부인 마사와 1940년 쿠바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쿠바로 건너간 194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제가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하고 있는 국제게임피싱연맹(IGFA: International Game Fish Association)의 부회장직을 역임하였던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어려서부터 사냥과 낚시를 즐겨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본격적으로 대물 새치를 잡는 낚시에 빠지게 된 것은 키웨스트에 사는 동안에 구입한 필러(Pillar)’라고 명명된 보트를 구입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의 환율과 화폐가치로 계산해보면 현재 원화로 4억 5천만 원이 넘는 금액인 7,495$에 구입한 이 보트는 헤밍웨이가 3,195$를 지불하고 나머지 4,300$는 에스콰이어지로부터 원고료를 선불로 받아 인수하였는데 헤밍웨이는 1933년 가을부터 총 17편의 글을 에스콰이어지에 게재하였고 그 가운데 5편은 청새치 낚시와 관련한 것이며, 4편은 아프리카에서 사냥한 것에 대한 글이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보트를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동기는 금주법이 시행될 시기에 주류밀수를 하던 슬로피 조 바(Sloppy Joe’s Bar)’가 가지고 있던 배를 타고 낚시를 하면서라고 하는데 슬로피 조 바(Sloppy Joe’s Bar)’가 배를 소유한 것은 낚시를 하기 위함이 아니고 바다에서 술을 몰래 들여오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슬로피 조 바(Sloppy Joe’s Bar)’에서 술과 도박을 즐겼던 헤밍웨이와 그 친구들을 주변에서는 더 몹(The Mob)’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헤밍웨이는 소박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그들이 좋았다고 합니다.

낚시를 좋아했던 문호(文豪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심한 우울증으로 자신의 집에서 엽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의 낚시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노인과 바다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내 남자친구의 취미가 낚시인지 확인하는 방법

내 남자친구의 취미가 낚시인지 확인하는 방법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들의 취미생활이 낚시라는 여론조사결과를 모 방송사가 뉴스로 보도하는 바람에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영어에도 골프에 빠진 남편이 집을 비움으로써 홀로 남은 아내가 과부신세가 된다는 뜻의 골프 위도우(golf widow)란 표현이 있듯이 낚시를 즐기는 남편을 가진 대한민국의 아내들에게는 ‘낚시 과부’라는 수식어가 붙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부부가 함께 낚시를 즐기는 가정도 점차 늘어나는 것 같고, 미혼인 커플들도 함께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자녀가 태어난 뒤 남편이 주말에 낚시를 떠나버리면 힘든 육아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되고 마는 것이 여성들이 낚시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결혼 전에 내남자친구가 낚시를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이해하기 때문에 까짓 취미생활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면 아래의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원제는 ‘당신이 낚시꾼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10 Ways You Know You’re Dating a Fisherman”인데 국내실정과는 동떨어진 것도 있어서 우리 실정에 맞는 것들만 내용을 보충하여 추려보았다.

만일 남자친구가 아래의 내용 중에 한 가지라도 해당한다면 낚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가능하면 같이 취미생활로 즐기기를 추천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 금요일 밤에 일찍 잠을 잔다면 의심하라.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이용하여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려고 하는데 낚시인들은 조금 다른 패턴을 보인다.

일반인들이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등의 패턴을 보이는 것에 비해 낚시인들은 금요일 저녁 무렵이면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집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토요일에 전화했을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면 그것은 낚시를 못간 슬픔을 술로 달래는 것이니 혹시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 주머니에서 왕꿈틀이가 나온다면 의심하라.

결혼 전이라도 남자친구의 집에 갔을 때 벗어놓은 세탁물 주변에서 왕꿈틀이가 보인다면 무조건 의심하라! 그것은 아이들이 즐겨먹는 군것질거리가 아니고 낚시할 때 사용하는 가짜미끼인 웜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엄지손가락이 거칠어졌다면 의심하라.

험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유독 한 쪽 엄지손가락만 거칠어졌다면 남자친구의 취미는 낚시가 분명하니 의심하라. 바늘을 묶고 매듭을 짓고 써밍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엄지손가락의 피부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남자친구의 거칠어진 엄지손가락을 보고 절대 마음 아파하지 마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친구의 마음은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더 아프니까^^

■ 눈 주위만 타지 않았다면 의심하라.

분명 산악등반이 취미가 아니고, 야외에서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유달리 눈 주위의 피부만 하얗다면 낚시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미쳐있다는 증거이니 의심하라.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는 더위에 아주 약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데 궁금하면 버프라고 하는 낚시할 때 사용하는 자외선 차단용 패션아이템을 검색해보시길~

■ 네일아트의 컬러를 조언해준다면 의심하라.

당신이 손톱에 칠할 매니큐어의 색상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낚시인들은 사용하는 루어의 색상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 따라서 네일아트의 색상에 대해 물었을 때 일반적인 남성들의 무덤덤한 반응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면 의심해볼만 하다.

■ 어디에 있든지 의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혹시 전화라도 받지 않으면 남자친구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할 수도 하는데 남자친구의 취미가 낚시라는 심증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패턴은 아주 단순하여 일, 당신, 낚시 이 세 가지 밖에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 횟집이나 수산시장에서 자연산인지 구분하려 한다면 의심해도 좋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낚시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사항으로 항상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구분하려 드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들이 구분하는 기준과 방법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가수 김연자씨는 낚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수 김연자씨는 낚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10여 년 전, 웹서핑을 하던 도중, 일본의 연예인들 중에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명단에서 키무라 다쿠야 다음으로 나오는 김연자란 이름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김연자씨가 낚시를 좋아한다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낚시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는데…

그때부터 야후 재팬에서 폭풍검색을 했었으나 결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갑자기 다시 궁금증이 생겨 검색을 한 결과, 가수 김연자씨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오늘은 그와 관련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어로 김연자+낚시를 검색해보면 관련한 두 권의 책이 검색되는데, 두 권 모두 요시노 타카시(芳野隆)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작자는 1969년, 낚시인을 위한 숙박업소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나중에 동일본 낚시민숙연합회의 특별상담역과 관광협회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지금 보시는 사진의 가운데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얘기에 등장하는 스포니치라는 신문은 1948년에 창간한 일본 최초의 스포츠 일간지로서 마이니치 신문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이며, 정식명칭은 스포츠닛뽄이지만 줄여서 스포니치라 부릅니다.

그 전에 먼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에서 발행된 책들을 읽을 때면 자주 느끼게 되는 일로,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들을 버젓이 적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도 김연자씨와 관련한 부분은 틀린 곳들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럼, 책에 나오는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1989년 김연자씨는 가수활동을 쉬고 있던 미야코 하루미가 프로듀싱한 암야행로를 발매하였고, 일본에서 첫 히트작이 되어 NHK의 홍백가합전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속사 사장으로부터 지면은 어디라도 좋으니 김연자씨를 어필해달라는 전화가 스포니치의 낚시 담당기자에게 왔다고 하는데, 기자와 그 사장은 친구사이였다.

기자는 “연자씨를 낚싯배에 태우고 갈치를 잡자”고 제안하였고, 이렇게 해서 김연자씨는 갈치낚싯배를 운영하고 있던 연합회 소속의 가나자와팔경 가모시타마루호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뱃멀미를 했고,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고육지책으로 기자가 낚아 올린 대형 갈치를 연자씨에게 들려 겨우 촬영할 수 있었다.

이 사진이 스포니치 낚시면에 ‘이것으로 백팀(홍백의)을 한칼에’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되었다.

신문의 지면은 화려했고, 그로 인해 (작자가 운영하는) 낚시민숙의 인지도가 높아졌으며, 김연자씨는 인기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한 장의 연출된 사진으로 말미암아 김연자씨는 일본 최대의 낚시정보 사이트인 교넷(GyoNet)에 낚시를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고, 어떤 곳에서는 낚시를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탑 5에 이름이 올라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김연자씨가 출연했던 1989년의 제40회 홍백가합전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질 수 있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NHK의 15대 회장이었던 島桂次(시마 케이지)는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홍백가합전을 폐지하고, 미국의 CNN에 대항할 수 있는 GNN을 일본에서 실시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1986년에 60% 밑으로 떨어진 시청률도 한몫했다고 합니다. 시청률 60%가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기만 합니다.

그 대신에 시마 케이지 회장은 연말에 국제적인 아시아음악제를 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회장의 심기를 헤아린 불쌍한 NHK의 연예부 담당 실무진들은 홍백가합전에 아시아의 스타들을 5명, 참가시키는 것으로 기획하게 되었고, 그 결과 홍콩의 알란 탐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가수 4명이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1989년,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던 대한민국의 가수는 오늘의 주인공인 김연자씨를 비롯하여, 패티 킴씨가 처음으로 출연하였고, 계은숙씨는 두 번째 출연을 하게 되었으며, 조용필씨는 3회 연속으로 출연하는 기록을 세웠고 1990년에는 4회 연속으로 참가한 기록을 세웠답니다.

김연자씨의 낚시와 관련한 일화가 실려 있는 또 다른 책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데, 김연자씨의 전 남편, 이름은 岡宏(오카 히로시)인데, 책에서는 岡本(오카모토)라고 적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날은 내륙 출신인 인기가수 김연자씨의 남편 오카모토씨도 타고 있었다.

오카씨는 연자씨가 처음으로 NHK의 홍백가합전 출연이 결정되었을 때, 스포니치의 ‘김연자 백팀을 한칼에’라는 기획기사를 위해 처음으로 바다낚시를 체험하였다.

이후, 낚시에 빠지게 되어 연자씨로부터 “남편을 물고기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오카씨는 물고기를 먹는 것보다 단지 잡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연자가 광어의 지느러미살을 정말 좋아하니 열심히 해야지!”라며 진지함 그 자체였다.

두 번째 책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연자 누님께서는 광어 지느러미살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누님, 혹시 입맛이 변하지 않으셨다면 자연산 잡으면 연락 한 번 드리겠습니다.

배신자로 낙인 찍혔던 낚시인

배신자로 낙인 찍혔던 낚시인

어제 포스팅한 “가수 김연자씨가 낚시를 좋아한다고?”란 글의 말미에서 일본의 유명한 여성 낚시인 ‘코지마 레이코(児島玲子)’에 대하여 잠깐 언급했었다.

일본 내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낚시인이라고 부르는데 이견이 없는 ‘코지마 레이코(児島玲子)’에게는 2014년부터 한동안 배신자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그 이유는 10년 이상이나 후원관계를 맺어오던 시마노와 헤어져 2014년에 다이와의 필드테스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녀가 시마노에서 다이와로 옮겨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서 대중들은 그동안 ‘시마노 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그녀가 다이와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배신자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코지마 레이코(児島玲子)’가 낚시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던 도중 1997년에 TV도쿄에서 제작하던 ‘낚시로망을 찾아서(釣り·ロマンを求めて)’란 프로에 출연하게 되면서부터이다.

TV도쿄의 ‘낚시로망을 찾아서’란 프로그램은 1989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장수 프로로서 그녀는 3년 동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낚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2000년에 시마노사의 필드테스터가 되면서 ‘시마노 걸’이란 이미지를 쌓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시마노가 ‘낚시로망을 찾아서’란 프로그램의 제작을 후원하던 스폰서업체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시마노와 인연을 맺고 관계를 이어왔던 ‘코지마 레이코(児島玲子)’가 2014년에 다이와로 적을 옮긴 가장 큰 이유 또한 그녀가 새롭게 출연하기로 되었던 방송의 후원업체가 다이와였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마노가 후원하던 TV도쿄의 프로가 2010년에 폐지가 되면서 한동안 그녀는 고정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고 있던 차에 2014년부터 다이와가 후원하고 있던 TV오사카의 ‘THE 피싱’에 출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마노가 아닌 다이와를 후원업체로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시마노가 후원하던 방송이 폐지된 후에도 3년 동안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봐서는 ‘코지마 레이코(児島玲子)’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리고 다이와가 후원하는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마노의 후원을 받고 있던 그녀가 시마노 제품을 방송에서 전혀 쓸 수 없었던 것도 그녀에겐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란 추론은 충분히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녀는 다이와의 필드테스터가 되기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물론 더 깊은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만으로는 결코 그녀를 배신자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한다는 이유나 아니면 낚시관련 기업의 필드테스터라는 동질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호회나 다른 업체의 제품에 대하여 심하게 배척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삼성전자매장에서 LG제품이 좋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일임을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배척이 때로는 맹목적인 이유로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보다 더 염려스러운 일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고는 해도 낚시용품의 소비에 있어서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를 넘어 SNS의 발달과 함께 인기인이나 유명인들이 사용하는 제품과 같은 것을 사용하려는 수요가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가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위해 하는 취미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힐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취미생활로 만난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고립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도 여기저기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동질감으로 비롯된 사회생활의 관계가 공포감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집단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일 때면 어김없이 겪게 되는 일이란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좋으면 왜 좋은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고 해도 최소한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그저 “우리 것이 좋다.”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옳다.”로 귀결시켜 타사제품이나 경쟁사의 제품은 맹목적으로 폄하하는 일들은 이젠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러한 생각과 행동은 또 다른 우리사회의 ‘배신자 코지마 레이코(児島玲子)’를 만드는 일일 것이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사람은 어느 순간 당신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세계최초의 낚시학교, 하디사의 캐스팅 스쿨

세계최초의 낚시학교, 하디사의 캐스팅 스쿨

현대 낚시의 기초가 되는 이론이 책으로 처음 편찬된 것은 지난 번 “대나무 낚싯대의 역사와 여성 낚시인”이란 글에서 알아보았던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라는 수녀가 1496년에 펴낸 ‘성 알반스의 책(The Boke of St. Albans)’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낚시의 바이블이라고도 하는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이 편찬된 1653년보다 40년 전인 1613년에 문호 셰익스피어와 함께 낚시를 즐겼던 존 데니스(John Dennys)란 사람이 쓴 ‘낚시의 비밀(The Secrets of Angling)’이란 책도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서양의 낚시문화는 전통을 이어오면서 발전한 것에 비해 유교사상에 의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계급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낚시문화가 전통의 맥을 이어오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유럽과 이후에 미국에서도 성행하는 낚시의 장르는 우리에게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플라이낚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현대 낚시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고도 평가받는 ‘플라이 낚시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하디(Hardy)’라는 회사가 세운 캐스팅 스쿨이 공식적으로는 최초의 낚시학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는 플라이낚시를 지도하는 학교들(사설학원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겠지만)이 많이 운영되고 있고, 일본에는 2년 과정의 전문 낚시학교가 있으며 국내에서도 일부 프로들에 의해 낚시학교가 운영되기도 하지만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일본에는 낚시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하디사가 낚시학교의 문을 연 것은 1920년대 런던에 있던 매장에서 운영했던 것이라고 기록으로 남아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다.

학교가 문을 열 때 낚시를 지도하던 강사는 틸턴(Tilton)이란 사람이었고 1930년대 후반에 와서 플라이낚시계의 거장이라 알려져 있는 에드워즈(T.L. Edwards)가 강사로 부임하게 되는데 에드워즈는 1960년에 펴낸 ‘앵글러즈 캐스팅(The angler’s cast)’이란 책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에드워즈(T.L. Edwards)는 각종 낚시대회를 석권한 챔피언이기도 했지만 벤츠 자동차를 만드는 다임러의 테스트 드라이버이기도 했는데, 다방면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에드워즈(T.L. Edwards)의 부임과 함께 체계적인 수업이 진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수업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하디사의 낚시학교는 실전에 나서기 전에는 골프장에서 기본적인 이론과 실기를 배웠고 실제 연습은 영국 내의 전용낚시터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시온공원(syon park)이었다.

강의를 하는 에드워즈(T.L. Edwards)

그 뒤 캐스팅 스쿨은 조니 로건(Johnnie Logan)이 맡아서 1981년까지 운영하다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에게 물려주었고 현재는 하디사의 프로팀(Hardy Pro Team)에 소속된 사람들이 그 맥을 이어나가고는 있으나 이전처럼 그리 활발하지는 않고 프로팀 소속의 인원들이 저마다의 피싱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하디사 프로팀의 구성원 중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강의를 한 사람도 있는데 2010년 2월에 내한하여 충주호에서 플라이낚시 강의를 한 이안 고든(Ian Gordo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낚시를 즐기는 인구의 증가와 함께 환경문제가 대두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기를 잘 잡느냐 하는 것보다 낚시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익힐 수 있는 이런 기관은 우리나라에도 도입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글을 마친다.

일본에는 낚시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일본에는 낚시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낚시와 관련한 방송프로들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낚시인구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낚시와 관련한 산업분야는 우리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프로앵글러들의 숫자도 훨씬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보유한 낚시 관련 세계신기록”이란 포스팅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게임피싱연맹(IGFA: International Game Fish Association)에서 인정하는 세계기록을 보유한 우리나라 사람은 단 2명에 불과한데 비해서 일본은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에서는 낚시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있는데 오늘은 일본의 낚시학교(피싱 칼리지라고 함)에서는 과연 어떤 것들을 가르치는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낚시를 전문으로 교육하는 학교는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증시 자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휴먼홀딩스(Human Holdings Co., Ltd.)란 회사로서 오늘 종가기준으로 한화로 200억 정도의 시가총액을 가지고 있으며 휴먼 홀딩스(Human Holdings Co., Ltd.)의 자회사 중의 하나인 휴먼 아카데미(Human Academy Co., Ltd.)란 회사가 바로 낚시를 교육하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휴먼 아카데미(Human Academy Co., Ltd.)는 우리로 치면 직업전문학원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낚시뿐만 아니라 미용, 애니메이션, 성우, 메이크업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2017년까지 졸업한 학생들 모두가 100% 취업을 할 정도로 산학연계가 잘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휴먼 아카데미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금융기관을 통한 학자금대출은 물론이고 일본정부에서 운영하는 학자금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며, 입학금과 수강료를 납부한다고 해서 모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고등학교장의 추천이나 성적평균이 3.0 이상이어야만 지원할 수 있으며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면접에 합격하여야만 입학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낚시과정에 입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교장의 추천이나 성적이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낚시학교의 강사진은 일본낚시협의회 부회장인 히토시게 라이타씨를 비롯하여 각종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기록을 가지고 있는 낚시인 및 이론과 실전에 정통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낚시학교의 학과는 각종대회의 입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토너먼트프로 전공과 루어를 제작하는 학과, 낚시 가이드를 양성하는 학과, 낚시와 환경을 교육하는 학과 및 낚시와 관련한 경영을 지도하는 학과 등 모두 8개의 학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수하는 과목을 살펴보면, 자연환경에 대한 것과 낚시문화, 낚시관련 법률을 모두 공통으로 이수해야 하고 1년차에는 주로 어류학이나 기상학과 같은 이론을 학과 별로 배우게 되고 2년차에는 실습위주의 과목으로 교육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오사카를 비롯하여 후쿠오카와 후지카와구치코의 세 곳에 낚시학교가 있는데 낚시와 관련하여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과목 중에는 배스낚시개론Ⅰ·Ⅱ, 배스낚시의 기술Ⅰ·Ⅱ와 낚시장비의 전반에 대한 과정이 눈에 띕니다.

프로낚시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토너먼트프로 학과나 낚시가이드 학과를 지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낚시가이드 학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일본에서도 낚시대회의 상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낚시를 지도하면서 비용을 충당하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낚시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정부에서는 이런 학교가 생긴다고 해도 학자금대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낚시인들의 뜻과 마음이 모여서 작지만 전문교육기관이 우리나라에서도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자세한 내용은 휴먼 아카데미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행복하길 원한다면 낚시를 하라는 중국속담이 있다는 것은 일본인의 거짓말이다.

영원히 행복하길 원한다면 낚시를 하라는 중국속담이 있다는 것은 일본인의 거짓말이다.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지리와 공공과목 교과서 18종 모두에 독도는 일본 땅이며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일이지만 일본의 고등학생들이 계속해서 이런 교육을 받는다면 나중에는 모두가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낚시인의 시각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살펴보면서 일본 역사교과서의 심각성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낚시인들을 비롯해서 많지는 않아도 아래와 같은 중국속담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1시간을 행복하려면 술을 마시고, 3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돼지를 잡아먹고, 영원히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중국속담은 중국속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속담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부터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는 점층법(漸層法)으로 표현한 이와 유사한 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지인 중에 중국인이 있다면 “영원히 행복하길 원한다면 낚시를 하라.”는 속담이 중국에 있는지 물어보시면 모두가 처음 듣는다고 답할 것이며 혹시라도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속담이 아니라 최근에 알게 된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속담도 아닌 것이 어떤 연유로 중국속담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일까요?

그 뒤에는 카이코 다케시(開高健)라는 일본인 소설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인 카이코 다케시(開高健)는 60일간의 아마존 낚시여행에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1978년에 ‘오파’라는 제목의 책을 펴냅니다.

오파라는 제목은 브라질어 감탄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 책의 내용 중에 “1시간을 행복하려면 술을 마시고, 3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돼지를 잡아먹고, 영원히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一時間、幸せになりたかったら酒を飲みなさい。

三日間、幸せになりたかったら結婚しなさい。

八日間、幸せになりたかったら豚を殺して食べなさい。

永遠に、幸せになりたかったら釣りを覚えなさい。

하지만 당시에도 이것이 과연 중국속담이 맞는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속담의 진위여부에 관해 질문한 결과 작가인 카이코 다케시(開高健)는 중국속담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대답했으며, 2006년에 일본인 저널리스트, 타키타 세이이치로(滝田誠一郎)는 그의 저서 ‘장화 신은 카이코 다케시(長靴を履いた開高健)’에서 카이코 다케시(開高健)가 중국속담이라고 한 것은 영국책에서 읽은 것과 혼돈한 것이지만 미쓰이 물산 홍콩지점을 통해서 자세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중국에는 하루를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속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근거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본인들이 이를 중국속담이라고 믿고 있고, 또 그것이 물을 건너 우리나라에 닿은 뒤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공신력(公信力)이 그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카이코 다케시(開高健)는 1957년에 발표한 ‘벌거숭이 임금님(裸の王様)’으로 나오키상과 함께 일본문학계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으로 평가받는 아쿠타가와상의 38번째 수상자였다는 점이 중국속담이란 그의 주장을 여과 없이 수용하도록 만들었던 요인이 아니었을까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카이코 다케시가 영국책에서 봤다는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속담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아마도 그 유래는 토마스 풀러(Thomas Fuller)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영국의 가치사(History of the Worthies of England)에 실려있는 것일 것으로 판단되는데, 1662년에 펴낸 그 책에서 이탈리아의 재미있는 속담이라고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행복하고 싶다면 이발소에 가고

일주일을 행복하고 싶다면 아내를 맞아라

한 달을 행복하고 싶다면 말을 사고

일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지어라

그리고 평생을 행복하길 원한다면 정직하게 살아라.

I say the Italian humour, who have a merry proverb,

” Let him that would be happy for a day, go to the barber;

for a week, marry a wife ;

for a month, buy him a new horse ;

for a year, build him a new house;

for all his life time, be an honest-man.”….

여기서 유래하여 점층법의 표현으로 하루의 행복과 평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글들이 무수히 파생되어온 것으로 보이고, 그런 글귀들 중에서 카이코 다케시(開高健)는 창작의 산물로 “평생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미쓰이물산 홍콩지점을 통해 중국의 속담을 조사한 결과, 카이코 다케시(開高健)는 1년을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중국속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카이코 다케시(開高健)가 중국속담 중에 ‘1년을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을 책에 적어 발표한 것이 타키타 세이이치로(滝田誠一郎)의 2006년작 ‘장화 신은 카이코 다케시(長靴を履いた開高健)’였던 것에 비해 1994년에 이미 코나리 출판사(Conari Press)에서 펴낸 ‘More Random Acts of Kindness’에는 중국속담이라고 하면서 아래와 같이 적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시간의 행복을 원한다면, 낮잠을 자고

하루의 행복을 원한다면 낚시를 하고

한 달의 행복을 원한다면 결혼을 하고

1년의 행복을 원한다면, 유산을 상속받고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누군가를 도와주라.

“If you want happiness for an hour — take a nap.

If you want happiness for a day — go fishing.

If you want happiness for a year — inherit a fortune.

If you want happiness for a lifetime — help someone else.”

카이코 다케시(開高健)가 중국속담 중에서 ‘1년을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는 것을 찾았다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이런 표현을 중국인이 중국어로 적은 것이 활자화된 것은 2013년 임준(任俊)의 르샹(乐商)이 처음입니다.

如果你想快乐一小时, 就去睡个午觉

如果你想快乐一整天, 就去钓鱼

如果你想快乐一个月, 就去结婚

如果你想快乐一辈子, 那就去帮助别人吧

위와 같이 옮겨놓은 표현이 바로 코나리 출판사(Conari Press)에서 펴낸 책에서 중국속담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중국어로 번역해놓은 것이죠.

한 가지 예를 들어 중국의 바이두에서 ‘如果你想快乐一小时’를 검색하면 이 말을 누가 한 것인지 알려달라는 글이 검색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만일 중국의 속담이라면 누군가는 답을 하겠지만 전혀 답이 없고 누군가 농담 삼아 엘리자베스(伊丽莎白)라고 적어놓은 것만 보일 뿐입니다.

비유가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만 1978년에 일본인이 책에서 적어놓은 중국의 속담이 아닌 것을 우리들 중의 일부는 중국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일본의 자라나는 청소년들도 왜곡된 역사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면 종국에는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함께 하는 이웃으로 존재하길 원한다면 일본은 이러한 행태를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세계의 유명 낚시인⑦ 스타 드랙의 개발자 윌리엄 보센

세계의 유명 낚시인⑦ 스타 드랙의 개발자 윌리엄 보센

스피닝 릴의 드랙조정은 스풀노브를 돌려서 강약을 조절하는데 베이트 릴에서는 별(Star)모양의 손잡이(휠)을 돌려서 조절을 합니다. 생긴 모양이 별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스타 드랙(Star Drag)’은 욕심 없는 낚시인이었던 윌리엄 보센(William Boschen)이란 사람에 의해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낚시인들은 모르고 있어서 오늘은 그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타 드랙(Star Drag)’의 개발자인 윌리엄 보센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욕심이 없었던 윌리엄 보센이 특허를 취득하려 하지 않자 친분이 깊었던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란 사람이 특허를 신청·취득하는 바람에 그가 개발자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윌리엄 보센이 스타 드랙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우리나라의 낚시문화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일명 빅게임 피싱이라고 하는 100㎏을 훨씬 상회하는 참치류나 새치류를 잡는 낚시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중심에는 ‘카타리나 튜나 클럽(Catalina Tuna Club)’이라고 하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카타리나 튜나 클럽(Catalina Tuna Club)’은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카탈리나 섬(Santa Catalina Island)에 있는 도시인 아발론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다른 이름으로는 ‘아발론 튜나 클럽(Tuna Club of Avalon)’이라고도 불리는데 창립일(1898년 6월 15일)은 빅게임 피싱이 시작된 날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미국낚시의 역사에 있어서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카타리나 튜나 클럽(Catalina Tuna Club)’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낚시계의 중요한 일들과 인물들에 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서 포스팅할 생각으로 있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아우트리거(Outrigger)를 비롯하여 파이팅 체어와 하네스 등 수많은 장비의 개발과 기법이 이 클럽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클럽의 회원들이 개발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우트리거(Outrigger)

 

아무튼 윌리엄 보센도 이 클럽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당시에 주로 사용하던 릴에는 1902년에 특허를 취득한 ‘프란시스 라베스(Francis Rabbeth)’란 사람이 개발한 ‘라베스 드랙 핸들(Rabbeth Drag Handle)’이라고 하는 일종의 제동장치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라베스 드랙 핸들’을 포함하여 그 이후에 ‘에드워드 폼 호프(Edward vom Hofe)’란 사람이 개발했던 별모양의 휠을 채택한 ‘유니버설 스타(Universal Star)’라는 일종의 제동장치들은 낚시인들에게 큰 부상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고 당시 낚시를 다녀오는 클럽의 회원들을 위해서 항상 부두에는 2명의 의사들이 대기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무슨 릴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위험할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유니버설 스타(Universal Star)’를 예로 들어보면 현재와 같은 드랙의 기능을 하지는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미리 라인이 방출되는 강도를 렌치를 사용하여 조절하였고 이보다 큰 힘이 작용할 때에는 핸들이 역회전하면서 낚시를 하는 사람의 손에 심각한 부상을 발생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윌리엄 보센은 당시의 릴이 가지고 있던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핸들은 역회전 하지 않고 라인만 방출될 수 있도록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마침내 2년여의 시간 끝에 완성하여 율리우스 폼 호프의 회사에 제작을 의뢰, 아들인 ‘율리우스 폼 호프 주니어(Julius Vom Hofe Jr.)가 완성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윌리엄 보센은 특허와 로열티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기에 하는 수없이 율리우스 폼 호프가 특허를 신청하게 되어 1911년 3월 21일에 취득하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스타 드랙의 개발자가 율리우스 폼 호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아직 ‘스타 드랙(Star Drag)’이 사용되지 않았었고 이후에 ‘카타리나 튜나 클럽(Catalina Tuna Club)’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조셉 콕스(Joseph Coxe)’가 보센이 개발한 릴을 개량하면서 ‘별 모양의 너트(Stellar nut)’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보센이 개발한 스풀의 회전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제동장치를 ‘스타 드랙(Star Drag)’이라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한편 보센을 대신하여 특허를 신청하려던 율리우스 폼 호프는 개발자인 윌리엄 보센의 이름을 따서 새롭게 만드는 릴을 ‘보센 릴’이라고 명명하고 싶었으나 이마저도 윌리엄 보센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니셜만을 따서 ‘B-오션 릴(B-Ocean reel)’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윌리엄 보센(William Boschen)의 개발품이 나오기 전에는 스풀에 손가락을 대고 라인의 방출을 억제하고 렌치로 미리 조절한 강도 이상의 힘이 작용하면 핸들이 급격하게 역회전함으로 인해서 화상이나 타박상, 심하면 골절상을 당하기도 했었고, 부상을 염려한 낚시인들은 당시에는 꿈의 무게였던 1,000파운드(453㎏)의 대물에 대한 도전에 쉽게 나서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보센이 개발한 릴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스풀의 회전속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상에 대한 위험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빅게임 피싱은 비약적인 기록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보센이 개발하고 ‘율리우스 폼 호프’의 이름으로 취득했던 ‘스타 드랙(Star Drag) 릴’의 특허는 1931년에 만료되었고 PENN®을 비롯하여 ‘오션시티 릴(Ocean City Reel)’이란 회사들이 각각 생산에 뛰어들었는데 1968년에 문을 닫은 오션 릴과는 달리 현재까지도 펜(PENN)사는 빅게임 피싱용으로 ’세너터(Senator)‘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답니다.

잉어도 지자기(地磁氣)를 느낄까?

잉어도 지자기(地磁氣)를 느낄까?

잉어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지적은 ‘배스는 나쁘고 잉어는 착하다?’란 글에서 1948년 UN의 지원으로 설립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100 of the World’s Worst Invasive Alien Species)에는 잉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본 바가 있다.

잉어는 저서생물과 수생식물을 마구 먹어치우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저온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고, 크기가 60㎝를 넘으면 천적이 거의 없어지는데 이러한 특징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규정하고 있는 악성 침입 외래종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원래 잉어가 서식하고 있지 않은 곳에 잉어를 방류하는 것은 오히려 생태계를 해칠 수 있고 고유종과의 교잡으로 인한 유전자 오염에 의해 재래종의 멸종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08년에 위급(Vulnerable) 종으로 분류하였다는 것을 알아보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환경문제가 아닌 잉어의 습성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통해 잉어의 습성을 자세히 알아볼까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잉어튀김 거리가 있다.’란 제목의 포스팅에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지만 서유럽과는 달리 동유럽에서는 잉어를 먹는 나라들이 많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체코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잉어 튀김과 감자 샐러드를 먹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해마다 12월 20일을 전후하여 체코의 거리에는 잉어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늘어서고 산 채로 잉어를 사가는 사람도 있고 손질해달라고 해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이 체코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시장에서 판매하는 잉어를 관찰하여 작성한 것이 오늘 소개하는 논문으로 제목은 “Magnetic Alignment in Carps: Evidence from the Czech Christmas Fish Market”이며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찾아보실 것을 권한다.

다음 시간에 물고기의 지자기(地磁氣)를 감지하는 능력에 대하여 또 다른 논문을 바탕으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경골어류(硬骨魚類) 중에는 지자기를 인식하여 멀리 떨어진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회유하는 어종들이 있다.

잉어는 회유성 어종이 아니지만 지자기(地磁氣)를 느낄 수 있을까? 물고기들은 아주 작은 소음과 진동이나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기만 해도 순식간에 숨어버리는 것은 미세한 지자기를 감지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이 연구의 바탕이 되었다.

연구에 사용한 표본은 2011년 크리스마스 전에 체코 국내 25곳에서 7일간 14,537마리의 잉어를 8명이 분담하여 조사하고 817장의 사진을 촬영하였는데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는가는 14,537마리의 잉어가 저마다 어느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집계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학자들의 이같은 노력의 산물을 아무런 수고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25곳에서만 조사한 잉어가 14,537마리나 되는데 체코 전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얼마나 많은 잉어가 판매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한 대답도 논문에 기록되어 있다.

논문에 따르면 체코에서는 매년 약 1만4천 톤의 잉어가 판매된다고 하며 마릿수로는 약 5백만~6백만 마리에 달한다고 하니 정말 많은 양의 잉어를 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체코 사람들이 구입한 잉어를 모두 먹는 것은 아니고 일부는 크리스마스 풍습으로 연못이나 강에 잉어를 놓아주기도 하는데, 이 풍습을 잉어의 자기수용(magnetoreception) 가설로 실험한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논문인 것이다.

잉어가 지자기(地磁氣)의 영향을 감지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을 최소화해줄 필요가 있었으나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장은 사람의 왕래가 많고, 외부 수조에 보관하고 있어서 소음이나 진동 및 빛과 같은 자극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구진들은 가능한 바람이 없는 날을 선택하고, 폐점 이후에 매장을 방문하여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하는 물도 일정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조절한 다음 촬영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X고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분석하여 잉어는 어느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지 1마리씩 조사한 것이 아래의 사진이다. 모두 6장의 사진이지만 B와 C, D는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4장의 사진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각의 사진은 아래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원형 수조(水槽)의 바로 위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A), 각 개체가 어느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지를 나타낸 것이 (B, C, D), 이것을 수조의 중심에서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환산한 것이 (E), 그리고 전체의 값을 평균한 다음 각각의 수조의 평균 방향을 표시한 것이 (F)의 붉은 화살표이다.

한편 실험에 사용된 수조는 물을 공급하는 급수관(호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호스가 있는 수조의 잉어들은 물줄기가 나오는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빛에 의한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다음은 물을 공급하는 급수관(호스)이 없는 수조에 있는 잉어가 머리를 향하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집계한 것이 아래의 그림으로 0°, 180°, 360°에 몰려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이것은 북쪽과 남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 개체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실험은 한 가지 큰 결함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좁은 수조에 평균 20마리 전후의 잉어가 들어있어서 각 개체의 접촉에 의해 자유롭게 머리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결함이 있지만 각 수조에 있는 모든 잉어가 머리를 향하고 있는 방향의 평균을 구해보면 역시 남북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잉어는 지자기를 감지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때에도 동과 서가 아닌 남과 북쪽으로 머리를 두는 습성이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는데 특히 잉어의 활성도가 떨어지는 겨울철 잉어낚시에는 이 논문이 주는 정보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가까운 고삼지로나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