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노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한국시장의 비중

시마노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한국시장의 비중

“다이와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한국시장의 비중”에 이어서 이번에는 시마노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한국시장의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를 한 번 알아보자.

다이와가 낚시용품의 매출액을 구분하지 않고 공시를 함에 비해 시마노는 이를 구분하고는 있는데 시마노의 전체 매출에서 낚시용품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도 결산서를 기준으로 20% 정도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마노의 매출액은 2017년에는 3조3천580억을 기록하였고 이 중에서 낚시용품의 매출액은 6천522억을 차지하여 19.4%의 비중을 보였고 2018년에는 전체매출액은 3조4천804억으로 3.6%의 성장을 보였는데 낚시용품의 매출은 7천44억의 매출을 올리며 7.9%라는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였다.

한편 2018년도 시마노의 지역별 매출액 구성은 아래와 같은데 2018년도 윤성조구의 매출액에 관한 자료가 없어서 2017년도의 자료를 가지고 판단하면 아시아의 전체매출액 1조1천651억 중에서 한국에서의 매출액은 482억을 기록하여 아시아에서는 4.1%를, 시마노 전체매출액에서는 1.4%라는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아시아
미주
유럽
기타
합계
4,118억
1조1,522억
3,585억
1조4,005억
1,573억
3조4,803억

그러나 이것을 낚시용품만을 두고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7년도 시마노의 낚시용품 전체매출은 6천522억을 기록하여 한국에서의 매출액은 5% 정도에 달하는데 “낚시용품은 한국과 중국이 아시아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일부 의역)”고 시마노의 경영진들도 공시를 통하여 밝히고 있다.

시마노 제품의 병행수입액이 어느 정도 규모인가는 모르지만 개인의 직구 등을 포함한다면 전체금액은 윤성조구의 매출액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기에 한국시장이 차지하는 시마노의 낚시용품 사업부문의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낚시용품 시장규모”에서도 언급했던 바가 있지만 작년에 정부에서는 5,800만 원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들여 ‘낚시산업 부문별 통계조사 및 정책통계 개발’에 관한 용역을 의뢰하였는데 이의 주된 내용은 낚시와 연관한 사업의 규모를 분석하여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부문별 통계조사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으며 낚시용품의 유통·판매점과 낚시용품 제조업의 현황을 조사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저 정도의 예산으로 얼마나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질지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에 발표될 보고서의 내용에는 벌써부터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고서의 정확성과는 별개문제로 그것이 세수의 확대나 정치권의 표심을 얻기 위한 자료로만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과 함께 열악한 낚시용품업계를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자료로도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꼭 지적하고 싶고, 부탁하고 싶다.

한국시장이 다이와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한국시장이 다이와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낚시용품시장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다이와의 이름은 정확하게는 글로브라이드 주식회사(GLOBERIDE, Inc)이며 다양한 사업분야 중에서 낚시용품의 매출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세계 낚시용품시장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달성하여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계속해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지만 결산서에서 낚시용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몇 %나 되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언론의 보도는 내부자정보를 이용한 추정치에 가까운 것일 수가 있다.

아무튼 세계 1위부터 3위까지의 기업들의 매출액은 모두 6천억 원을 상회하고 있고 4위는 그 절반 정도의 매출에 머물고 있는데 자세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국내 업계들 중에서는 매출액 1위는 아마도 B사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점은 국내기업 중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의 매출액을 이미 글로브라이드 주식회사(GLOBERIDE, Inc)가 주식 100%를 소유하고 2005년에 한국에 설립한 ‘한국다이와 주식회사’가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국내에 지사를 두지 않은 시마노와 함께 일본의 브랜드인 다이와가 국내 낚시용품시장의 1위와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시마노의 국내 공식대리점인 윤성조구의 2017년 매출액 482억 중에는 낚시용품 이외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시마노와 다이와가 국내 낚시용품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시장지배력을 가진 시마노와 다이와에 대하여 “국내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과연 다이와나 시마노란 기업에게 있어서 한국이란 시장은 어떤 비중을 차지할까?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작은 규모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지금부터 다이와의 결산서를 인용하여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다이와는 중국에 2개의 공장과 베트남, 태국에 각각 1개씩의 생산법인을 두고 있으며 해외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현지법인은 미국에 1개, 유럽에는 제조를 겸하고 있는 영국을 포함하여 4개(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판매법인을 두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가장 많은 판매법인이 있는데 우선 호주에 1개가 있고 아시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중국, 대만, 싱가폴, 말레이시아에 1개씩의 판매법인을 두고 있고 특별히 홍콩에는 2개의 법인이 있다.

매출액의 비율을 보면 일본 71.2%, 유럽 11%, 미주 6%, 아시아·오세아니아 11.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데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매출액 중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5~40%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의 매출액이 미주 전체 매출액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서는 대형 유통체인점들과 도매상들이 계속해서 도산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시장의 정체현상이 계속되고 있어서 지금 다이와의 해외판매는 아시아가 주요한 시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아시아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시장이기에 그들로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아시아시장의 중요성은 2016년에 33%, 2017년에는 24.7%라는 전년대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다이와의 재무제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중심에 바로 한국시장이 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와에 대하여 일반소비자들의 불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은 A/S에 대한 것인데 소요되는 기간과 개인의 귀책사유에 대하여는 다이와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나 자국의 소비자들과 한국의 소비자들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국내에 설립한 법인의 주식을 100% 일본의 모기업에서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업을 하는 장소가 한국이라면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면에 소홀하다는 것은 한국다이와가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국내에 낚시 붐이 일기 시작한 2017년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증가하는 낚시인구와 함께 낚시용품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해였다.

2001년도에 2018년의 총 수출액인 1,304억 보다도 많은 1,635억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던 낚시용품산업은 점점 위축되어 작년에는 사상최고치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였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으나 고용창출효과는 타업종에 비해서 높은 것이 낚시용품과 관련한 업종이란 점을 정부에서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업계에 대한 정부차원의 정책지원을 수립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방송사 카메라에 얼굴 한 번 디밀고, “저도 낚시를 무척 좋아합니다.”라는 인터뷰를 하는 정치인들의 가식적인 행동으로는 사양산업으로 치부되고 있는 낚시용품의 고부가가치화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관련업계에서도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지난 2007년에 낚시춘추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당시 한국다이와의 대표이사였던 아베 코이치씨가 했던 아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조구업체는 단순히 경쟁사보다 한두 가지 기능을 향상시킨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창의성이 부족하다.”

 

물고기를 못 잡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물고기를 못 잡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 바다낚시의 역사에 대하여 올해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낚시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일본의 문화를 무조건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전통이 있다면 그것을 계승하여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우리 고유의 낚시문화와 도구에 대한 역사를 탐구하자면 필연적으로 일본의 낚시문화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일전에 “낚싯대 1칸은 왜 1.8미터일까?”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칸이 1.8미터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일본의 척관법을 수용한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많은 낚시인들이 알고 있는 찌낚시대의 호수는 사용하는 목줄의 호수를 규격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정확한 근거는 없는 추정에 불과한 것임에도 이 또한 일본의 G사가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대나무를 이용하여 낚싯대를 만들었던 역사를 더듬어보면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대나무 낚싯대에서 흔히 명간(名竿)이라고 하는 것은 5.4미터(3칸)의 경우에는 선경이 1.2㎝, 7.2미터(4칸)의 경우에는 1.8㎝ 정도의 규격을 표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과 현재 사용하는 목줄의 호수를 찌낚시대의 규격으로 정하게 된 것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하여 더 많은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역시나 더디기만 할뿐입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낚시문화와 역사를 비교하면서 최근에 일본인 하토리 나오타츠(服部直達)가 쓴 책, 낚시자료실(釣りの資料室)에서 섬뜩한 일본의 낚시문화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잠깐만 소개를 할까 합니다.

 

에도시대의 아와번에서는 영주의 낚시를 도와주는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봉건시대의 무사를 뜻하는 사무라이들로서 허리에는 칼을 차고 영주의 명이 있으면 낚시를 도와주는 일을 했다고 하며 처음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은 규조(久蔵), 토자부로(藤三郎), 세이베(清兵衛)의 3명이었는데 나중에는 모두 15명으로 증원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그들의 낚시문화에서 자랑하기를 사무라이들이 허리에 칼을 차고 약 7미터(3칸 5척)의 낚싯대와 도구를 들고 왕복 수십 리 길을 걸어 낚시를 다녔다고 하면서 그것은 체력의 증진과 심신의 단련을 위한 활동이었으며 이를 일컬어 낚시의 도, 즉 조도(釣道)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아와번 소속으로 영주의 낚시를 보조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사무라이들은 조과가 없을 경우에는 할복과 참수까지 각오해야만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정한 도(道)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에도시대의 영주들이 하던 낚시를 일컬어 흔히 다이묘낚시라고 하는데 채비부터 미끼를 달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하고 고기가 물었을 때 단지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 것만 영주가 할 뿐으로 대단히 사치스런 행사의 하나였다고 하며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영주가 고기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낚시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면 어디 겁이 나서 낚시를 다닐 수나 있겠습니까?

책에는 영주가 물고기를 잡지 못해 할복하거나 참수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없는 점으로 볼 때 다행히 무고한 인명의 희생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다시 내년의 힘찬 도전을 기약해봅니다.

죽음의 방파제

죽음의 방파제

우리나라에서도 테트라나 갯바위 등에서 낚시를 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낚시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진입을 봉쇄한 곳에서 낚시를 하다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경우도 가끔은 볼 수가 있다.

낚시인들의 입장에서야 좋은 포인트에서 대물을 하고 싶은 마음이야 모두 같겠지만, 낚시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있을까?

뿐만 아니라 건전한 낚시문화를 선도해야 할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에도 버젓이 낚시금지 구역에 진입하여 낚시를 하는 것을 방송하는 경우도 있으니(이 방송은 직접 시청한 것으로 출입이 금지된 수문을 넘어 배스낚시를 한 프로였다) 추후 이런 형식의 방송은 근절되기를 바란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금지구역에서의 낚시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사망사고가 많은 곳을 소개한다.

우리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안전하고 건전한 낚시문화 정착을 실천하는 낚시인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카시마 앞바다에 있는 위험한 코난방파제에는 침입자가 끊이지 않는다. 전체 길이 약 4킬로미터의 이 방파제는 출입금지구역으로 되어 있지만, 낚시명당으로 알려져 지금까지 68명(2013년 현재)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하였다.

무모한 낚시꾼이 늘어나는 여름을 앞두고는 경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무단 침입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발이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면 올라오지 못한다”고 해상보안서 방재대책관은 경고하고 있다.

출입금지이므로 입구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는데, 낚시인들에게는 더 이상의 좋은 낚시터는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명당으로 소문이 나서 무단으로 침입하여 낚시를 하고, 경찰의 단속에 의해 체포되기도 한다.

이곳은 도쿄전력의 시설에서 온수가 배출되고 있어 물고기가 많이 모여든다.

돔 종류와 고등어 가자미 우럭 광어 조기 등 이 지역에서 잡히는 어종은 다양하고 왕새우가 많이 잡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출입금지의 간판을 설치해 놓았지만 불법으로 잠금장치를 해제하거나 울타리를 넘고 심지어는 방파제에서의 이동용으로 스쿠터까지 운반하는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파제는 평상시에는 파도도 적고 온화하지만 일단 바다가 거칠어지면 파도가 방파제를 덮어 아래의 사진과 같이 되는 것이다.

암벽등반가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올라갔을까? 참…. ㅎㅎ 일본사람들도 대단하다…..

낚시를 좋아했던 성악가, 표도르 샬리아핀

낚시를 좋아했던 성악가, 표도르 샬리아핀

금세기를 대표하는 베이스 가수라는 평가를 받는 러시아의 성악가 표도르 샬리아핀이 낚시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덕분에 ‘한국 대나무 낚싯대의 역사’에서 살펴본 바 있는 동작(東作)이란 일본의 낚싯대가 유럽에 크게 알려지는 계기를 맞았습니다.

이 글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수한 품질의 낚시용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국내의 모든 분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습니다.

일본에서 황동파이프를 낚싯대의 이음 부분에 넣고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만든 것은 1793년 도쿠가와 가문의 무사였던 마츠모토 토오사쿠(松本東作)이며 그의 이름을 따서 동작(東作)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원조입니다.

그런데 1936년 1월 27일 러시아의 유명 성악가인 표도르 샬리아핀이 아사히 신문사의 초청으로 방일(訪日)하여 도쿄, 나고야, 오사카에서 공연을 합니다.

윤전기 앞의 샬리아핀

이 당시 치아가 좋지 못했던 표도르 샬리아핀을 위하여 고기를 얇게 두드려 만든 스테이크를 특별히 만들어 제공하였는데, 그것이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는 샬리아핀 스테이크입니다.

한편 표도르 샬리아핀은 낚시광이기도 했던 터라 일본을 방문한 기회를 활용해 이전부터 유럽에 수출되고 있던 동작(東作) 낚싯대를 직접 구하려는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내어 가게를 방문하여 낚싯대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리고 동작(東作)의 4대 점주였던 마츠모토 마사지로(松本政次郎)에게는 ‘낚싯대 제조의 스트라디바리’라는 찬사를 보내고, 일본의 낚싯대는 예술품이라는 극찬을 합니다.

당대의 최고 성악가가 극찬한 낚싯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럼, 또 하나의 사례를 볼까요?

‘핀란드의 낚시용품업체 라팔라(Rapala)의 역사’에서 소개한 내용인데 다시 한 번 설명 드리면 핀란드에서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던 라팔라(Rapala)의 제품들은 처음에는 라팔라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냥 ‘핀란드 플러그’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지금의 라팔라가 있게 만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론 웨버(Ron Weber)라는 미국인이 낚시여행을 하던 도중 미네소타 주의 덜루스에서 라팔라 루어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 사람이 아주 쉽게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론 웨버는 낚시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던 친구 레이 오스트롬(Ray Ostrom)에게 그가 발견한 라팔라 제품을 보여주면서 함께 테스트를 했고 “이것은 반드시 대박이 날 것이다.”는 확신으로 1959년 9월 23일 라우리 라팔라(Lauri Rapala)에게 정식으로 수입을 의뢰합니다.

그리하여 1960년 2월, 첫 번째 주문으로 2,400개의 루어를 수입한 것을 시작으로 1961년까지 모두 31,135개의 제품을 수입하였으나 라팔라(Rapala)의 입장에서는 대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정도의 대박이 1962년 여름에 그들 곁으로 다가오는데, 1962년은 유명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36세의 나이에 자살함으로써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해이기도 합니다.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기사가 당시 최고의 잡지인 라이프지 8월호에 게재가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 라팔라의 제품을 소개하는 기사가 ‘A Lure the Fish Can’t Pass Up’란 제목으로 실려 있었습니다.(한글로 번역하면 물고기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도 뛰어난 루어란 의미)

 

1960년부터 1961년까지 2년 동안 미국으로 수입한 라팔라 루어를 모두 합쳐야 고작 3만 개를 조금 넘었는데 마릴린 먼로의 기사가 실린 잡지에 함께 소개됨으로써 받은 주문량은 이전의 2년 동안 수입한 양의 100배에 달하는 3백만 개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동작(東作) 낚싯대와 핀란드의 라팔라(Rapala)에서 만든 루어가 공전의 빅 히트를 칠 수 있었던 것은 기술개발과 제품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매출난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제품의 품질만은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고 매진한다면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국내 조구업체들이 분발해주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역사서에 나오는 낚시의 흔적들

우리의 역사서에 나오는 낚시의 흔적들

은어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잘 아는 놀림낚시라는 용어는 꾐낚시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것을 토모즈리(友釣り: ともづり)라고 하는데 이 낚시방법의 발상지가 어디인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일본에서조차도 한국인지 일본인지 그 역사적인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일부 낚시인들 가운데에 이것이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더욱 우리나라만의 낚시문화와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립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수산학회지에 실린 은어낚시에 관한 논문의 일부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토모즈리는 일본만의 낚시법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 도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적으로 문화의 유입을 고려할 때 중국과 한반도에서 전해져 온 것이라고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으나, 그 기술을 높여 문화로 정착시킨 것은 일본이다.”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착시킨 것은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의 저자에게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질문하고,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가 이런 은어낚시방법의 발상지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자료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빈약하다는(아직 발굴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은어에 관한 우리나라의 사료 중 일부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숙종 때의 역관 김지남이 1682년 압물통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적은 동사일록(東槎日錄)에 이런 글들이 나온다.

“부사택(富士澤)은 부사산(후지산)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 것으로 그 둘레가 수십 리나 되며 여기서 나는 은어(銀魚)는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가운데에 있는 큰 호수의 이름은 비와호(琵琶湖)라 하며 길이가 4백여 리에 넓이는 1백 80리다. 물은 동북쪽에서 남해로 흘러가며 모두 이 호수의 물로 농사를 짓는데 여기서 나는 은어(銀魚)는 크기나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여기서 나오는 은어(銀魚)라는 표현으로 볼 때 1682년에는 일본에서도 은어잡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일본어로 토모즈리라고 하는 놀림낚시에 대한 자료가 가장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1832년의 일이다.

일본 에가와가문의 사료에는 야나료우(梁漁)라는 구조물을 설치하여 은어를 잡던 어부들이 놀림낚시(일본명 토모즈리: 友釣り)로 은어를 잡아대는 사람들 때문에 세금을 내지도 못할 형편에 처해 있으므로 이것을 금지시켜달라는 내용을 담은 일종의 탄원서가 전해지고 있다.

야나료우(梁漁)

이것으로 미루어 3백여 년 전에 이미 토모즈리가 성행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채비의 설명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1907년의 일본어류도설이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 등장하는 은어(銀魚)는 낚시에 관련한 내용은 전무하며 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공물의 진상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15년(1433년)에 은어(銀魚)를 천신(薦新)하기 위하여 특별히 저장시켰으나 진상한 생선이 썩어 문드러져서 쓰지 못하였기 때문에 얼음을 저장하던 곳을 혁파하였다고 나오거나 문종이 즉위한 해인 1450년에는 독약을 사용하여 은어를 잡는 것을 금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가 나오고 있다.

“은구어(銀口魚)를 진상(進上)하기 위해 독약(毒藥)을 사용하여 잡으므로 수족(水族)이 다 죽고, 또 천방(川防)을 터놓고 약(藥)을 타서 물을 흘려 넣으니, 화곡(禾穀)이 손상되어 그 폐단이 작지 않다.”는 내용의 상소문은 EBS에서 방영한 은어놀림낚시(제목은 정확하지 않음)라는 방송에서도 소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보다 오래 전에 은어를 먹거나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은 나오지만 독약을 사용했다는 것 외에는 어떻게 잡았는지 하는 자료는 거의 없는 형편인 우리의 은어놀림낚시에 대한 사료를 비롯하여 낚시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찾아 헤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며 가끔은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그냥 하루에 한 걸음씩이라도 가자는 생각으로 계속할 뿐이다.

생명력이 강한 광어의 습성과 생태

생명력이 강한 광어의 습성과 생태

서프루어의 주된 대상 어종인 광어는 대략 2월~6월 사이에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산란을 위해 연안의 수심이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봄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낚시인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산란기에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광어는 야행성의 어종으로 해가 뜨면 대부분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이런 광어의 습성에 대한 내용은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생략키로 하고 부레가 없는 광어가 먹이를 섭취하는 것과 얼마나 강한 생명력을 가진 물고기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성어가 되면 광어는 부레가 퇴화하여 없어지기 때문에 바닥에 몸을 숨기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위쪽에 있기 때문에 광어를 노리는 경우에는 바닥에서 조금 띄워서 채비를 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광어가 복어를 미끼로 삼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미끼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눈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미끼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2016년 가을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된 사진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에드워드 그랜트란 사람이 잡은 광어의 사진으로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어를 잡기 위한 시간대는 아침 해가 뜨기 전과 저녁에 해가 지기 전이 좋으며 물때는 간조와 만조가 시작되는 시기가 좋은데, 보다 상세한 노리는 시간대와 포인트 및 채비의 운용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연재하겠습니다.

주꾸미 내장을 먹지 않는 이유

주꾸미 내장을 먹지 않는 이유

제철을 맞은 주꾸미는 도다리와 함께 해수부가 선정한 3월의 수산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꾸미의 손질방법이란 글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주꾸미는 내장을 제거한 다음 요리를 한다. 물론 샤부샤부로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무엇 때문에 주꾸미의 내장을 먹지 않는지?’ 하는 이유를 알아볼까 한다.

주꾸미는 팔이 8개인 팔완목 문어과의 연체동물로 팔이 10개인 십완목의 오징어와 곧잘 비교되곤 하는데 문어의 내장은 드물게는 먹기도 하지만 문어과에 속하는 주꾸미의 내장을 잘 먹지 않는 이유는 그 양이 너무 적다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주꾸미를 비롯한 문어과의 먹이활동과 오징어의 먹이활동을 보면 왜 문어과의 내장은 잘 먹지 않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징어의 수영속도는 시속 40㎞인 반면, 문어는 시속 15㎞ 정도로, 속도의 차이는 먹이활동의 차이로 이어져 속도가 느린 주꾸미는 바닥에서 기어다니는 것처럼 움직이며 먹이활동은 주로 조개껍질이나 바위틈 등에 숨어서 먹잇감을 잡아먹는데, 빠르지 않기 때문에 주된 먹이가 갑각류나 조개류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헤엄치는 속도가 빠른 오징어는 무늬오징어의 먹이습성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로 어류와 갑각류를 잡아먹으며 생선이나 새우의 머리부분을 V자 형태로 물어뜯듯이 죄어 즉사시킨 다음 먹는 반면, 주꾸미를 비롯한 문어과는 붙잡은 먹이를 독성이 있는 타액을 주입하여 마비시킨 다음 잡아먹는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이 주꾸미를 비롯한 문어과의 내장을 잘 먹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오징어가 먹이를 먹는 모습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청산가리의 10배에 달하는 독성을 가진 테트로톡신을 지닌 파란고리문어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독성이 약할 뿐이지 모든 문어는 독성을 지니고 있으며 주꾸미 또한 마찬가지다.

문어과의 두족류가 가지고 있는 독성은 주로 침샘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티라민(tyramine)과 세팔로톡신(Cephalotoxin)으로 갑각류를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내장에도 들어있다.

만일 이 독을 사람이 먹게 될 경우에는 사망에까지 이르지는 않지만 마비나 통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하며, 길면 1~3주까지도 그 고통이 지속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주꾸미 내장을 먹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오징어와는 달리 주꾸미는 먹물주머니를 분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도 원인인데 오징어의 먹물주머니는 첫 번째 사진과 같이 쉽게 분리할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주꾸미를 비롯한 문어과의 먹물주머니는 내장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꺼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오징어도 먹을 수 있는 내장은 간과 먹물주머니 정도이지 그 외엔 먹지 않는 것이 좋으며 특히 ‘절대 날것으로 먹어서는 안 되는 오징어의 부위’에서 강조한 정포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글을 마친다.

갑각류는 삶거나 찔 때 고통을 느낀답니다.

갑각류는 삶거나 찔 때 고통을 느낀답니다.

동물보호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는 가장 앞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스위스에서는 기니피그와 앵무새와 같이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은 한 마리만 사육하는 것도 금지를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스위스에서 금년(2018년) 1월에 공포하여 3월부터는 새우와 가재, 게 등과 같은 갑각류를 산채로 찌거나 삶거나 굽는 등의 요리방법은 법률로써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갑각류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에 발표된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갑각류도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Bob Elwood교수가 수조에 90마리의 게를 넣은 다음 수조에 전기를 통하게 하는 실험을 하였더니 게들은 모두 전기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였다고 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실험결과들이 있으며 이런 실험결과에 따라 스위스에서는 반드시 갑각류의 뇌의 기능을 정지시킨 다음 요리를 하는 것을 법으로 제정하였다고 하는데 Bob Elwood교수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가공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갑각류의 뇌를 정지시킨 다음 가공한 것이라는 내용을 제품에 명시하도록 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였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호주에서는 바닷가재를 산채로 절단한 식품회사를 2017년 2월 동물학대방지법을 위반하였다고 유죄판결을 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즐겨먹는 꽃게가 이제 제철을 맞아 많은 사람의 입맛을 돋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 포스팅은 스위스나 호주와 같은 강력한 법률의 제정 및 시행을 촉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갑각류를 요리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동물들이 고통을 덜 느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개진하는 것입니다.

물고기의 신경을 절단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 것에 반하여 갑각류의 신경을 절단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저도 잘 모르는 내용이었는데 아래에서 그 방법을 소개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BBC나 호주의 RSPCA자료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 BBC: What’s the kindest way to kill a lobster?

※ RSPCA Australia

▶ 공통의 방법

① 얼음과 소금물을 3: 1의 비율로 한 물(-1℃)에 갑각류를 20분 이상 보관하여 기절시킨 다음 찌거나 절단하도록 합니다.

※ 단 바다에 사는 갑각류는 민물에 담가두면 삼투압에 의한 쇼크로 인해 죽기 때문에 고통을 받으므로 반드시 소금물에 담가두도록 합니다.

② 중추신경을 빠르게 파괴하여 고통을 적게 합니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은 전체 갑각류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제는 종류별로 절단하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사진은 모두 RSPCA Australia에 있는 것들입니다.)

▶ 바닷가재(랍스터)

바닷가재의 중추신경은 녹색과 같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절단하는 경우에는 그림과 같이 세로로 자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 게

게를 절단하는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얼음을 넣은 소금물에서 담가 기절시킨 후에 하는 것이 좋으며 바닷가재와는 달리 게의 경우에는 중추신경이 앞과 뒤에 두개가 있으므로 아래의 사진과 같이 한 번은 배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Tail flap 위에서 85° 각도로 자르고 한 번은 앞쪽에서 60°의 각도로 자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 낚시를 좋아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추운 겨울철이면 손맛을 보기 위해 하우스낚시터를 찾곤 하는데, 겨울철에 개장하는 대부분의 낚시터들은 주 어종이 바닷가재이며 그곳에서 잡은 바닷가재를 가족들과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본인이 직접 요리하는 경우라면 바닷가재와 산 꽃게를 찌거나 구울 때에는 먼저 소금물에 얼음을 넣고, 거기에 게나 바닷가재를 담가 기절시킨 다음 조리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다지 손이 많이 가는 일도 아니므로 저도 이제부터는 기절시킨 다음 조리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새우(대하)의 내장은 먹어도 될까?

새우(대하)의 내장은 먹어도 될까?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옴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하(大蝦)가 제철을 맞는 시기가 되었다.

금년 여름, 많은 비와 잦은 태풍으로 인해 어민들의 피해도 큰데 여기다 코로나의 여파가 겹쳐 대하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예년만 하지는 못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아무래도 산지에서 직접 대하를 먹는 일은 줄어들겠지만 가정에서 온가족이 대하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대하(大蝦)의 손질법과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새우의 손질법 중에서 정보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까 한다.

제일 먼저, 가정에서 새우를 손질할 때 소홀한 부분을 꼽으라면 냄새를 제거하는 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물에 씻기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생새우에서도 냄새가 날 수 있지만 냉동새우의 경우에 더 심할 수가 있으므로 냄새를 제거하는 손질을 해주는 것이 좋은데 새우의 냄새는 첫째 등쪽에 있는 내장에 먹이나 모래가 남아있는 경우, 둘째 새우 겉면에 오물이 묻어있는 경우, 셋째 시간의 경과로 인한 세균의 증가로 냄새가 나게 된다.

이런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가정에서는 술이나 소금 또는 밀가루(녹말)를 사용하면 된다. 술은 세균을 없애는 효과도 있으며 소금은 삼투압의 효과로 수분의 배출과 함께 냄새도 함께 배출시키는 것이며 밀가루(녹말)는 미세한 입자가 오염물질에 흡착되어 냄새를 제거해준다.

이때 가장 유의할 점은 새우의 머리와 껍질이 있는 경우에 껍질을 벗기고 씻으면 맛이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소금을 뿌리고 여러 번 씻어주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젠, 모 방송의 프로그램에서 새우의 내장을 이쑤시개로 제거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많은 주부님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새우의 내장은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먹어도 되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새우는 모래 속의 미생물을 먹기도 하고 죽은 물고기를 먹기도 하는데 이때 모래도 함께 흡수하기 때문에 내장에 남은 모래는 식감을 나쁘게 하고 남아있는 먹이는 냄새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가능하면 새우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디 사이에 이쑤시개를 넣고 내장(창자)을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쑤시개를 넣고 내장을 당기다 보면 끊어지기도 하고 손질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배 쪽을 보면 꼬리부분까지 검은 선이 남아있어서 이것도 제거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우선 자연산이 아닌 양식 대하의 경우에는 내장 속에 남아있는 것은 모래가 대부분으로 먹어도 문제가 없으며 자연산 대하의 내장(소화기관)에 남아있는 것들도 식감이나 냄새에 크게 민감하지만 않다면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내장 제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마디 사이로 이쑤시개를 넣어서 제거할 수도 있지만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새우의 머리와 첫째 마디는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디 사이로 이쑤시개를 넣어서 내장을 제거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다.

 

다음으로 배쪽에 있는 검은색의 선은 제거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질문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시는데 이것은 내장이 아니라 새우의 신경선이기 때문에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

 

내장과 신경선의 차이는 새우를 요리하면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가열한 다음 새우의 등과 배를 보면 등쪽에 있는 내장은 가열하면 꺼멓게 변하지만 배쪽에 있는 신경선은 붉게 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우를 손질할 때 보이는 배쪽의 검정색 선은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