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피닝 릴⑬ 번외편-대만의 오쿠마

세계의 스피닝 릴⑬ 번외편-대만의 오쿠마

작년 아베정권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대일의존도가 높은 낚시용품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해오고 있었는데, 특히 한국 낚시용품시장에서 일제 스피닝 릴이 독과점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할 국산품이 없다면 전 세계적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12회에 걸쳐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제목으로 시리즈를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2019년 일본제품의 수입액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제품 대신에 국산품을 사용하려는 낚시인들의 증가에 편승하여 저급한 중국산에 로고 하나 덜렁 인쇄하고는 무슨 큰 개발이라도 한 것처럼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보면 안씁을 넘어 화가 나기도 한다.

스피닝 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지조차도 의심될 정도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소규모라서, 역사가 짧아서 기술이 모자란다거나 무조건 나쁘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밝혀둔다.

또한 국내업체들 중에는 중국과 손잡고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곳들도 있는데 얄팍한 상술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부류를 크게 나누어보면 소규모 개인기업 형태와 여러 가지 브랜드가 합쳐진 집단브랜드 및 단일업체의 브랜드로 나눌 수 있는데 소규모 개인기업은 사업의 계속성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대표적인 스피닝 릴 브랜드로는 미국의 애큐리트를 들 수 있다.

한편 집단브랜드로는 널리 알려진 제브코(Zebco), 퀀텀(Quantum), 반스탈(Van Staal)과 같은 브랜드를 소유한 브래들리와 펜(Penn), 미첼(Abu-Garcia), 아부 가르시아(Abu-Garcia) 등을 소유한 뉴웰이 대표적이며 단일 브랜드로는 일본의 다이와, 시마노 및 대만의 오쿠마(Okuma)가 대표적이다.

특히 1986년 장 리앙 렌(張良任) 사장이 설립한 대만의 오쿠마는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큰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란 포스팅을 봐도 알 수 있고, 지금은 국내 최고의 낚시용품업체가 된 B사도 대만의 오쿠마보다 먼저 스피닝 릴의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대만의 오쿠마(OKUMA FISHING)가 세계 3위의 릴 제작업체로 도약한 반면 국내업체들의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할 따름이다.

오쿠마(Okuma)도 처음 출발은 여느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으로 시작하였는데 국내업체들이 일본과 손잡은 것과는 달리 오쿠마(Okuma)는 “세계의 스피닝 릴⑩편”서 소개했던 150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의 D.A.M과 손을 잡았다.

일본과는 달리 오쿠마(Okuma)가 독일로부터 많은 기술이전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독일의 D.A.M을 뛰어넘는 기업이 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면에는 꾸준한 기술개발과 같은 노력이 따랐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오쿠마(Okuma)가 OEM으로 생산했던 제품 중에는 미국의 티뷰론(TiburonFishingReels.com)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티뷰론에서 오쿠마(Okuma)를 위하여 릴을 설계해줄 정도였으니 고객에 대한 신뢰도 또한 아주 높았음을 알 수 있으며 미국의 티뷰론이 오쿠마를 위하여 설계한 릴은 마카이라(Makaira)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계적인 릴 제조업체들을 보면 가격이 고가일수록 사용한 부품의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하고 있는데 오쿠마는 일본의 미네베아미쓰미(MinebeaMitsumi)에서 생산하는 베어릴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것은 시마노의 스텔라와 다이와의 솔티가에 사용되는 베어링과 동일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다시금 스피닝 릴의 제조에 도전하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음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처음부터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처음에는 보급형이라고 하는 저가제품으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된 제품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중도에 멈추지 않고…

그러나 싸구려 중국산 제품에 마크 하나 달랑 바꿔 붙이고, 자체개발했다고 사기치는 업체는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그런 업체는 종국에는 국내 낚시인들에게 국산제품의 불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며 차제에 인터넷 동호회를 기반으로 공동구매라는 미명하에 탈세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낚시용품의 판매방식에 대해서도 당국의 규제와 단속이 있기를 바란다.

세계의 스피닝 릴⑫ 마지막 이야기

세계의 스피닝 릴⑫ 마지막 이야기

조금 더 오래 여러 나라의 스피닝 릴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할 생각이었으나 추후 각 업체 별로 다시 한 번 다루기로 계획을 변경하여, 이것으로써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의 연재를 마칠까 한다.

사실, 이 연재물은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를 대체할 수 있는 스피닝 릴에 대한 문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최근 들어 많은 낚시인들이 일제 스피닝 릴을 대신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스피닝 릴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던 나라는 수없이 많지만, 지금은 모두 도태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세계의 스피닝릴 시리즈에서 소개했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의 특허가 공개되면서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앞 다투어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었고 그 가운데는 여기서 소개하지 못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3국의 업체만 해도 100개가 넘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유일하게 체코 정도가 묵묵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라의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낚시용 장비를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스피닝 릴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경쟁하듯이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벨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벨기에의 낚시인들은 중에는 당시에도 얼리어답터가 존재했었고 그들은 세계적 흐름인 스피닝 릴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은 사진의 릴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경영하던 공장에서 실을 감을 때 사용하던 보빈(bobbin)에 착안하여 스피닝 릴을 개발했던 것처럼 벨기에에서 직접 스피닝 릴을 제작했던 사람들도 방직공장의 직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유럽이 선도하던 스피닝 릴의 생산은 일본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기업의 진출로 세계시장이 재편되고 말았는데 그 여파를 비켜가지 못한 나라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차츰 우리 업체들이 생산하는 낚시용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면의 양면과 같이 좋은 면이 있으면 좋지 않은 면도 노정되는 것이 세상사 이치란 것을 다시 한 번 목격하게 되는데 무슨 기념수건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직접 개발했다고 광고하면서 판매하는 릴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부품은 물론 분해도까지 똑같은 것을 보고는 실소가 아니라 분노를 금하지 못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피닝 릴 생산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는 업체의 과장광고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시마노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피니트 드라이브 기술은 토크를 26%나 개선해준다.(Infinity Drive Technology offers an improved winding experience, optimizing winding torque by 26%.)”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특히나 과장된 마케팅 용어의 사용을 싫어하는 내게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물론 홍보하는 2019년식이 이전 모델에 비해서 개선이 된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지만 26%까지는 결코 아니란 것이 유저들의 중론인데 시마노가 홍보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운동화만 바꾸어도 올림픽에서 100m 기록을 1/3이나 단축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힘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회전력을 증가시키는 일련의 기술적인 시스템이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을 부가하지는 않은 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 멈추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대세이기라도 한 것처럼 국내 업체들도 이와 비슷한 홍보를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언제나 낚시용품과 관련한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면 일본을 따라잡거나 추월하려고만 하지 말고 새로운 낚시문화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라는 조언을 하지만 크게 안중에는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업체이기는 하지만 에기의 생산으로 유명한 야마리아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스피닝 릴 시리즈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1941년 창업자인 야마시타 쿠스타로우(山下楠太郎)가 설립한 야마시타 낚시점이 모태인 야마리아는 쿠스타로우 형제가 빨간색의 천조각에 참치가 잡혔던 것에서 착안하여 가짜미끼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최초로 선보였던 것이 바로 아래의 골든 베이트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은 1956년 일본의 수출전시회에서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런 역사를 가진 야마리아가 오징어를 잡는데 사용하는 에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은 1969년부터의 일로 당시에는 낚시인이 아닌 어업용으로 외부에서 조달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낚시인들의 문의가 들어오면서 1981년부터 에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1982년에 2대 사장으로 취임한 야마시타 세이치(山下整治)는 에기를 낚시인들에게도 판매하기로 결정하지만 본격적으로 시판된 것은 1988년부터였다.

이와 함께 나무로 된 미끼를 뜻하는 에기(餌木:えぎ-egi)에 영어의 진행형 ing를 붙여서 에깅(Egiing)이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의 낚시를 홍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배스낚시를 배싱(Bassing)이라 부르고 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깅낚시를 야마리아 자체의 힘만으로는 널리 알릴 수 없었기에 낚시전문 잡지인 “월간 피싱(月刊フィッシング)”과 손을 잡고 홍보하기 시작했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합사(PE)의 출현과 맞물린 1990년대부터였는데 에기를 생산하고부터 10년이 걸려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야마리아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낚시용품업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고 하지만 모방에만 너무 맛들려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의 낚시용품업계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연재를 마친다.

세계의 스피닝 릴⑪ 펜(PENN)릴의 역사

세계의 스피닝 릴⑪ 펜(PENN)릴의 역사

국내 낚시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미국의 퓨어피싱이 소유하고 있는 브랜드인 펜(PENN)에서 생산하는 스피닝 릴은 그 세부적인 사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펜(PENN)의 역사와 펜의 스피닝 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내용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1932년에 펜 낚시용품 제조회사(Penn Fishing Tackle Manufacturing Company)를 창업한 오토 헨즈(Otto Henze)는 1897년 3월 20일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생활하다가 이민길에 올라 1923년 2월 23일 미국 뉴욕에 도착한다.

오토 헨즈(Otto Henze)는 독일에서 기계공학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데 그가 뉴욕에 도착하면서 작성한 출입국기록에는 자신의 직업을 기계공(machanician)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나이 25세에 낯선 타국 땅에 발을 디딘 오토 헨즈(Otto Henze)는 1922년에 설립된 필라델피아의 릴 제조업체인 오션시티(Ocean City Manufacturing Company)에 입사하여 릴을 제작하는 기술과 무역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그리고 1932년에 조지 헌트(George Hunt)라는 투자자를 만나 공동으로 펜 낚시용품 제조회사(Penn Fishing Tackle Manufacturing Company)를 창업하게 되지만 당시는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회사의 3층 다락을 빌려 회사를 차렸고 회사의 앞날을 낙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창업과 함께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면서 생산했던 모델 F와 K가 1932년에만 2천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사업은 발전하게 되었고 오토 헨즈(Otto Henze)는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마사 해커(Martha Haecker)라는 여성과 1935년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한편 오토 헨즈(Otto Henze)가 취직하여 기술과 실무를 배울 수 있었던 오션시티(Ocean City Manufacturing Company)는 1968년에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토 헨즈(Otto Henze)가 만들었던 펜(PENN)릴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는 당시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1933년에 7,526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다음해인 1934년에는 47,834달러로 비약적인 증가를 이루게 되고 1935년에는 66,161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된다.

당시의 화폐가치가 잘 실감이 가지 않기 때문에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해보면 1933년에는 14만8천 달러, 1934년에는 91만5천 달러의 매출을 올리다가 1935년에는 123만8천 달러라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업주인 오토 헨즈(Otto Henze)는 1949년 2월 11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아내인 마사 해커(Martha Haecker)가 뒤를 이어서 경영을 맡게 되는데 그녀가 회사의 경영을 맡으면서 펜은 더 크게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펜 최초의 스피닝 릴도 출시하기에 이른다.

 

낚시를 좋아하기도 했던 마사 해커(Martha Haecker)가 경영을 맡고나서 1961년에야 최초의 스피닝 릴 ‘스핀피셔 700(Spinfisher 700)’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것을 알아보기 이전에 국내의 낚시용품업체들도 언제나 블로그를 통해서 강조하는 국제게임피싱연맹(IGFA: International Game Fish Association)을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1955년 펜 릴을 사용하여 5개의 새로운 세계기록을 작성한 이후 1997년에는 800개 이상의 기록이 수립되었기에 외국의 낚시인들에게는 펜(PENN)이란 브랜드는 우수한 품질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점은 일본의 시마노와 다이와도 마찬가지다.

펜(PENN) 최초의 스피닝 릴 ‘스핀피셔 700(Spinfisher 700)’이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튼튼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큰 요인이지만 나는 이에 더하여 얄팍한 상술을 부리는 어떤 나라의 제품들과는 달리 모델변경의 주기가 길뿐 아니라 변경을 하더라도 사용하는 부품의 변경은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장점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스핀피셔 700(Spinfisher 700)

 

그런데 펜(PENN)의 스피닝 릴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것으로 모델명에 붙는 표현이 있는데 판매하는 곳들에서는 이런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한 번 알아볼까 한다.

모델명 뒤에 아무런 접미사 붙어있지 않는 제품은 기본제품임을 의미하며 그 외에 아래와 같은 접미사가 붙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HS: 하이 스피드(High Speed)의 약자로 하이기어라고 이해하면 된다.

BLS: 베일이 없는 모델

LC: 롱 캐스트(Long cast)의 약자로 원투낚시용이라 이해하면 된다.

C: 릴의 성능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내용물이 보이는 방식으로 포장(Clam shell pack)한 제품이라는 뜻의 약자다.

LL: 라이브 라이너(Live liner)의 약자로 보조드랙으로서 후면드랙을 갖춘 모델을 말한다.

LLC: 라이브 라이너(Live liner)가 있는 모델을 내용물이 보이도록 포장했다는 뜻이다.

 

Clam shell pack

 

라이브 라이너(Live liner)

다음으로 알아두면 좋은 것이 펜(PENN)의 방수등급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바닷물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방수방진(IP)시험은 ‘IEC 60529’란 국제규격에 따라 분류하는 등급으로서 IP뒤에 오는 숫자의 위치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IP6X, IPX7과 IP67의 차이점을 알아보면 IP6X는 방진등급이 6이라는 뜻이고 IPX7은 방수등급이 7이란 뜻이며 IP67은 방진등급은 6, 방수등급은 7이란 것을 의미한다.

방진등급은 0에서 6까지의 7단계로 나뉘고 방수등급은 0에서 8까지의 9단계로 나뉘는데 방진방수등급이 중요한 요소인 제품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스마트폰을 들 수 있는데 아이폰 7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침수로 인한 피해는 보증대상이 아니며 이러한 규정은 릴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니 알아두는 것이 좋다.

 

보증제외 대상

목욕탕: 상온의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온 천: 상온의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수영장: 염소와 같은 소독용 물질이 가미된 것으로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바닷물: 염분의 농도가 짙으며 수돗물이 아니기 때문.

 

아이폰에서 정하고 있는 규정을 보면 바닷물에 빠졌을 때의 피해는 보증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홍보하는 방수등급이라도 할지라도 실험의 방법이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염분의 농도가 짙은 바닷물에서는 방수성능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IPX1~IPX4까지를 흔히 생활방수라 표현하고 IPX5~IPX8까지를 완전방수라고 하는데 이의 실험방법을 알아보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등급
보호 정도
시험 방법
IPX0
없음
테스트를 실시하지 않음
IPX1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의 보호
200mm의 높이에서 분당 1mm의 유량으로 뿌리는 물에 10 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2
수직에서 15° 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의 보호
200mm의 높이에서 4개소에 각각 분당 3mm의 유량으로 뿌리는 물에 10 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3
수직에서 60° 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의 보호
200mm의 높이에서 연직 방향에서 60° 각도로 뿌리는 물에 10 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4
전 방향으로 비산되는 물로부터의 보호
300∼500mm 거리에서 모든 방향으로 뿌리는 물에 10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5
전 방향으로 쏟아지는 물로부터의 보호
내경 6.3mm의 노즐에서 분당 12.5리터의 물을 2.5~ 3m의 위치에서 3분 이상 뿌려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IPX6
파도 등의 강력하게 쏟아지는 물로부터의 보호
내경 12.5mm의 방수 노즐에서 분당 100 리터의 물을 2.5 ~ 3m의 위치에서 3 분 이상 살수도 견딜 수
IPX7
일정한 조건으로 물에 잠겨도 사용 가능
정지된 수심 1m의 물속에 30분간 방치해도 물이 침투하지 않아야 한다.
IPX8
물속에서 사용가능
정지된 수심 1.5m의 물속에 30분간 방치해도 물이 침투하지 않아야 한다.

 

펜(PENN)릴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수등급을 보면 스핀피셔6(SpinfisherⅥ)가 IPX5 등급, 슬래머 3(SlammerⅢ)가 IPX6 등급, 고가의 기종이라고 할 수 있는 토크2(TorqueⅡ)가 IPX6 등급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상기의 표에서 본 것과 같이 이는 바닷물이 아닌 수돗물을 사용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등급이므로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세계의 스피닝 릴⑩ 독일의 D.A.M.

세계의 스피닝 릴⑩ 독일의 D.A.M.

정밀공업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나인 독일의 낚시용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국내낚시인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격과 품질 면에서 두루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의 낚시용품 중에서 특히 릴은 역사적으로 독일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유명 낚시인⑦ 스타 드랙의 개발자 윌리엄 보센”을 통해서 스타드랙의 특허는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란 사람이 취득하였다는 것을 알아보았는데 1836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는 1857년 릴을 제작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잘못된 정보로 실상은 그의 아버지인 프르드리히(Friedrich)가 시작한 사업에서 제작기술을 익히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가 은퇴한 1882년 이후에야 자신의 이름을 단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란 이름을 달고 릴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는 1867년 11월 26일 첫 번째 특허를 시작으로 윌리엄 보센(William Boschen) 대신에 등록하여 1911년 3월 21일에 취득한 특허까지 모두 9개의 릴에 관한 특허를 취득하였는데 미국에서 율리우스 폼 호프(Julius vom Hofe)가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을 때인 1875년, 독일에서는 지겐스펙(Ziegenspeck) 형제에 의해 낚시용품의 제조와 유통을 하는 회사가 탄생하는데 바로 그 회사가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인 D.A.M.이다.

 

동생인 프리츠(Fritz)와 형인 오스카(Oskar)가 함께 만든 이 회사는 1902년에 독일낚시용품제조회사란 뜻을 가진 “Deutsche Anglers Equipment Manufactory”로 사명을 변경하고 같은 해인 1902년에 뉘른베르크의 어업전시회와 하노버의 스포츠용품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회사명을 다시 “Deutsche Anglers Manufacturer(Deutsche Angelgeräte Manufaktur)”로 변경하면서 줄여서 D.A.M.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1904년 뉘른베르크 전시회의 동메달

 

D.A.M.은 1946년에 유럽에서는 최초로 모노필라멘트 라인인 다이밀(Damyl)을 출시하였고, 그 이전인 1939년에는 독일 최초의 스피닝 릴 퀵(QUICK)을 출시하였는데 영국의 하디(Hary)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프랑스의 미첼 300과 마찬가지로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모델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퀵(QUICK)은 D.A.M.에서 만드는 릴의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첼 300

 

독일 D.A.M.의 퀵(QUICK)

그 후 직원 수만 350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D.A.M.은 지겐스펙(Ziegenspeck) 형제로부터 사업을 이어받았던 오토 쿤체 (Otto Kuntze)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이던 1943년에 사망하고 공장은 파괴되어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오토 쿤체 (Otto Kuntze)의 아들 헬무트 쿤체(Hellmuth Kuntze)와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군첸하우젠(Gunzenhausen)에서 다시 문을 열게 되었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독일 최초의 스피닝 릴 퀵(QUICK)도 개량된 모습으로 새롭게 출시되기에 이르렀으나 헬무트 쿤체(Hellmuth Kuntze)는 병으로 1967년에 사망하고, 이어서 그의 아들들인 루츠(Lutz)와 루페르트(Rupert)가 사업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의 자제들과는 달리 루츠(Lutz)와 루페르트(Rupert)는 열심히 경영을 하여 1973년에는 유럽최초로 카본로드를 제작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며 영국과 프랑스 등지의 낚시용품 제조사들과는 달리 동유럽을 공략하는 시도를 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회사를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게 된다.

D.A.M.은 1995년에 네덜란드의 보섬지(Borsumji)에 넘어갔다가 다시 하게마이어(Hagemeyer)로 주인이 바뀐 뒤 2001년에는 아예 파산하고 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외국의 수입거래처와 직원들이 합심하여 새로운 D.A.M이란 뜻의 ‘노이어 담 인터나치오날(Neue DAM International)’로 재건하고 덴마크의 투자회사(Lars Svendsen Holding ApS)와 손잡고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D.A.M.은 현재 릴 브랜드인 퀵(QUICK)과 잉어낚시용품 브랜드인 매드(MAD), 메기낚시용품 브랜드인 매드캣(MADCAT) 및 루어용품 브랜드인 에프제트(EFFZEET)를 생산하고 있다.

D.A.M.이 생산하고 있는 스피닝 릴 중에서 원투낚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보면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해서 정확한 평가는 할 수 없지만 제원으로만 본다면 일본 시마노의 액티브캐스트나 다이와의 크로스캐스트보다 싸고 품질 좋은 것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품들도 소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유통업체들이 수입을 꺼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지금 번지고 있는 일본불매운동을 계기로 많은 낚시인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낚시용품들에도 한 번쯤은 눈길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의 스피닝 릴⑨ 일본에서 만들었던 셰익스피어의 스피닝 릴

세계의 스피닝 릴⑨ 일본에서 만들었던 셰익스피어의 스피닝 릴

퓨어피싱에서 소유하고 있는 낚시용품 브랜드인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베이트 릴에서 라인을 고루 감을 있도록 해주는 레벨 와인드(level wind)를 상용화 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혹자들은 레벨 와인드(level wind)의 최초 개발자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고들 하는데 최초의 특허는 40여 년 전에 등록되어있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등록한 특허는 기존의 것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실용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 큰 차이점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전의 것들이 개념에 그치는 것들이었다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발명한 것은 실제 낚시를 하면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1897년 10월 5일에 허가를 받은 그의 특허는 세계 낚시용품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이었으며 레벨 와인드(level wind)를 개발하고 가능성을 확신했던 그는 특허출원과 동시에 다니던 회사를 나와 “The William Shakespeare Jr. Company”라는 이름으로 창업하게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에 관한 얘기만 한다고 하더라도 몇 차례의 포스팅으로 모자라지만 오늘은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시리즈의 주제에 맞게 스피닝 릴에 관해서만 집중해보려 한다.

셰익스피어는 베이트 릴에 역량을 집중했고 스피닝 릴이라고는 1952년에 출시한 ‘스핀캐스트 1850’이 처음이었다.

 

스핀캐스트 1850

 

스핀캐스팅 릴이란 이전에 “스피닝 릴과 베이트 릴의 차이점”이란 포스팅에서 잠깐 소개를 했지만 베이트 로드에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스핀캐스트 릴(또는 스핀캐스팅 릴)이라고 하고 스피닝 로드에 장착하는 것은 언더스핀(underspin)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스피닝 릴 부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셰익스피어에서 최초로 출시한 스피닝 릴을 만들었던 곳은 일본업체였다.(1960년대에 출시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1955년에 설립된 일본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라는 업체에서 만들어 셰익스피어 2200(Shakespeare 2200)이란 이름으로 수출되었던 것이 셰익스피어에서 출시했던 최초의 스피닝 릴인데 이것을 만들었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는 당시로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스피닝 릴 제조업체였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2200(Shakespeare 2200)

 

셰익스피어 2200(Shakespeare 2200)은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던 ‘다이아몬드 DX’란 모델의 수출형이었다고 보면 되는데 불행히도 아직 ‘다이아몬드 DX’는 찾지 못했다.

그 이후에 개량된 버전인 셰익스피어 2200Ⅱ(Shakespeare 2200Ⅱ)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의 일본명은 ‘마이크로 7 디럭스’였다.

 

일본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에서는 다이아몬드란 브랜드로 자국에서 릴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개발한 하이포이드 페이스 기어(Hypoid face gear)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스피닝 릴 제조사에서 이를 따르고 있으며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에서 사용했던 펠트 드랙 와셔 또한 이제는 세계의 표준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이 업체 또한 시마노와 다이와, 료비 등에서 릴을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제품의 내구성에 있었다.

언젠가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겠지만 당시 시마노와 다이와에서는 내구성을 시험하는 방법을 달리하여 저마다 자사제품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는 이 점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점과 자본력의 열세로 인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마이크로 7’이란 모델로 호주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는 현재는 잊혀진 기업이 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의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업체의 경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 한 예로써 일본의 다이와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직원을 미국에 파견하여 현지에서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R & D의 투자에도 열을 기울이고 있다.

이젠 국내업체들도 단순히 일제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시장의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점에서부터 되돌아보고 제품개발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세계의 스피닝 릴⑧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

세계의 스피닝 릴⑧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

연재하고 있는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 3편의 제목을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로 정했던 이유는 오늘 소개하는 알룩스(ALLUX)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5년 전에 이 글을 쓴 뒤 2022년 겨울 알룩스는 코로나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다.

 

나는 일본 아베정권의 수출규제로 인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국내 낚시용품시장이 일본제품의 독과점적인 지배하에 있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특정업체의 특정제품을 추천하는 것은 삼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견지하던 그 생각을 바꾸어, 일본의 낚시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소개하는 글들을 포스팅할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오늘은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를 소개한다.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는 시리즈의 3편인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와 7편인 “알체도와 미첼의 한 판 승부”에서 소개했던 알체도(Alcedo)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1950년대 당시 세계에서 제일 가벼운 스피닝 릴이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을 생산했던 이탈리아의 알체도(Alcedo)는 스페인어나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하여 알세도라고 적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앞으로도 알체도(Alcedo)로 표기토록 한다.

이탈리아에는 1929년 주께띠(Zucchetti)라는 회사를 필두로 모두 100여 개가 넘는 스피닝 릴 제조회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알체도(Alcedo)와 잔지(Zangi), 그리고 까르젬(Cargem)의 3곳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알체도(Alcedo)와 잔지(Zangi)는 한 기업에 의해 함께 인수가 되는데 1972년에 잔지(Zangi)를, 1975년에 알체도(Alcedo)를 인수했던 콥테스(CopTes)가 바로 그곳이다.

회사이름인 콥테스(CopTes)는 콥트인(Coptes)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창업자인 코폴라 지오바니(Coppola Giovanni)와 테사 실비오(Tessa Silvio)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알체도(Alcedo)보다 먼저 잔지(Zangi)를 인수했던 콥테스(CopTes)는 잔지(Zangi)에서 생산하던 스피닝 릴들을 계속해서 제작하였는데 잔지(Zangi)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짙은 회색의 바디에 파란색의 로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산된 펠리칸 시리즈부터는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의 바디에 크림색의 로터로 색상을 바꾸었는데 이런 추세는 1975년 인수했던 알체도(Alcedo)의 모델에도 적용되었다.

 

인수된 후에 생산된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

 

여기서 잠깐 한 가지만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1950년대 당시 세계 최경량의 스피닝 릴이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의 기어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누구는 1: 3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1: 5라고도 하는데 최초로 생산되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의 기어비는 1: 3이었으며 두 번째 버전인 넘버2에서는 1: 3.5로 바뀌었다가 콥테스(CopTes)에 인수된 이후에 생산되었던 모델부터 색깔도 바뀌고 기어비도 1: 5.2로 변경되었다.

콥테스(CopTes)의 창업자였던 코폴라 지오바니(Coppola Giovanni)는 2018년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알체도(Alcedo)의 기술력은 이전에 인수했던 잔지(Zangi)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밝혔는데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알체도(Alcedo)는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가 경영하는 이탈리아 피싱(Italia Fishing)에 의해 2002년에 인수되게 된다.

그리고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는 알체도(Alcedo)의 명맥을 이어나가면서도 축적된 알체도(Alcedo)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인 알룩스(Allux)를 2013년에 론칭하였던 것이다.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

 

알체도(Alcedo)의 초기 모델들을 보면서 감탄한 기억이 있던 나로서는 언젠가 꼭 알룩스(Allux) 릴을 구입해서 사용해보리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이미 2018년부터 알룩스코리아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국내에 판매업체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터라 직구를 통해 원투낚시용인 루테늄 캐스트 RS(Ruthenium Cast RS)와 소형 릴 Spin S6 및 벨벳을 구입하였고 마침내 어제 도착하였다.

이 세 가지 모델을 구입한 이유는 루테늄 캐스트 RS는 제원으로만 본다면 시마노의 스핀파워를 맞먹을 정도라는 점 때문이었고 벨벳은 가장 저렴한 릴을 보면 해당업체의 기술력을 판단하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Spin S6는 색깔이 다이와의 에메랄다스와 비슷한데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무게는 더 가볍고 성능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에 쥐고 살펴본 결과로는 “정말 좋은 제품이다!”는 말로 요약할 수가 있는데 더 정확한 것은 주말을 이용해 분해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분해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업체가 홍보하는 기술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 대답을 할 수 있다.

아무튼 오랜 역사를 지닌 알체도(Alcedo)를 새롭게 인수한 이탈리아 피싱(Italia Fishing)에서는 중국에 지사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생산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포장의 겉면에는 유럽연합 밖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문구와 릴풋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란 문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후기는 제품을 분해한 사진과 함께 포스팅하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비슷한 수준의 일제와 비교하면 품질은 오히려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싸다는 것을 장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구입한 세 가지 모델의 사진을 보면서 마칠까 하는데 가장 관심이 많았던 원투낚시용 루테늄 캐스트 RS(Ruthenium Cast RS)는 우리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미국의 PENN처럼 스풀을 하나 더(쉘로 스풀) 준다는 점과 스풀을 돌려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드랙노브에 있는 버튼을 누름으로써 쉽게 탈·부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싼 일제와 비교해서 그닥 품질에 손색이 없으면서도 저렴한 이 모델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무게가 시마노의 스핀파워에 비해 65g 정도 무겁다는 것인데 계속해서 들고 낚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캐스팅 후에는 삼각대에 거치시킬 것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외에는 시마노의 스핀파워와 스풀치수는 거의 동일하면서 기어비는 4.6: 1(스핀파워 3.5: 1)로 높고, 기어비가 높으니 권사량도 많을 수밖에 없어서 1회전 당 103㎝가 감기며(스핀파워 84㎝) 9BB(스핀파워 7BB)를 채택하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이탈리아 알체도(Alcedo)의 새로운 브랜드 알룩스(Allux)에 관한 글을 마친다.

 

Spin S6

 

벨벳(Velvet)

세계의 스피닝 릴⑦ 알체도와 미첼의 한 판 승부

세계의 스피닝 릴⑦ 알체도와 미첼의 한 판 승부

유럽 스피닝 릴 제조업계의 양대 산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알체도(Alcedo)와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여 스피닝 릴이란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두 업체 모두 일본제품에 의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아픈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일본의 다이와나 시마노의 대결구도와 같은 모양새를 형성하고 있었던 두 회사는 결론으로만 놓고 본다면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이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완벽한 승리였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의 스피닝 릴들이 가격을 무기로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많은 수의 이탈리아 업체들이 동구권으로 생산거점을 이전했던 것과는 달리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1980년대 대만에서 일부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품질관리의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 참고: 세계의 스피닝 릴④ 프랑스의 자존심 미첼

 

그리고 어쩌면 미첼이 알체도보다 험난한 역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란 이름의 회사에서 만들었던 미첼(Mitchell)이란 브랜드의 스피닝 릴은 아부 가르시아로 합병되기 이전의 가르시아가 1974년 6월 17일에 인수하였지만 연이는 실패로 1978년 8월 10일 도산하면서 다시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가 인수하게 되고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 역시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990년 미국의 JWA(Johnson Worldwide Associates)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었고 다시 2000년에는 퓨어피싱에 인수되었는데 퓨어피싱을 소유하고 있던 뉴웰 브랜즈(Newell Brands)는 2018년에 다시 사모펀드인 ‘시카모어 파트너스(Sycamore Partners)’에 13억 달러(1조 4천 623억)에 퓨어피싱을 넘김으로써 프랑스의 자존심과도 같은 미첼(Mitchell)의 험난한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알체도(Alcedo)와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1950년대 중후반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의 수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스피닝 릴의 역사에 있어서 이정표와 같은 때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이 미국으로 수출된 것은 1953년의 일이었고 프랑스의 미첼 300(Mitchell 300)이 그야말로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던 시기도 1955년으로 그 해에만 미국에서 6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아부 가르시아(ABU Garcia)의 전신인 스웨덴 아부(ABU: AB Urfabriken)에서 최초의 스피닝 릴인 ABU 444를 출시한 것도 1955년의 일이었다.

 

ABU 444

 

그러나 거대시장인 미국에서 ABU 444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그 이전에 알체도와 미첼은 미국의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있었는데 이것도 알세도와 미첼의 승부를 결정짓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미첼이 손을 잡았던 미국 파트너는 아부 가르시아로 합병되기 이전의 가르시아(Garcia Corporation)란 낚시용품 전문 유통업체였지만 알체도가 손을 잡았던 곳은 총기류를 유통하던 Continental Arms Corporation라는 곳으로서 이미 여기서부터 두 회사의 승패는 갈렸다고 봐도 좋다.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대 이상이 팔렸다는 미첼 300(Mitchell 300)은 전체 시리즈로 보면 4천만 대 이상이 팔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으나 2001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그 이유로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1980년대 생산되었던 것들에 비해 1990년대에 생산되었던 것들은 베일 스프링이 약해서 부러지는 등의 품질문제가 발생했던 것들도 크게 작용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의 미첼과 미국의 가르시아가 손을 잡은 것은 미첼 300(Mitchell 300)의 세 번째 버전이 출시될 때부터인데 1946년에 나온 세 번째 버전은 1947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하여 모두 27만 개가 팔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탈리아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의 미국 판매가격은 35달러였고 미첼 300(Mitchell 300)은 30달러 선에서 판매되었는데 이 가격이 얼마나 높은 것이었는지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1955년도를 기준으로 달러의 현재가치를 환산해보면 이후 매년 평균 3.59%의 인플레율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35달러는 2019년 현재로는 335달러 정도에 해당하며 이는 오늘자(2019년 9월 5일) 매매기준율로 보면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시마노의 바이오마스터와는 비슷한 가격이고 다이와의 루비아스보다는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처럼 비슷한 가격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제품의 판매고가 크게 차이 났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사용상의 편리함과 유지보수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이 갈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미첼 300(Mitchell 300)과는 달리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이 가진 장점은 우선 무게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마이크론이 200g, 미첼이 240g으로 무게에서는 알체도가 우위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다음으로 흔히 원웨이 클러치라고 하는 롤러베어링을 사용하여 로터의 역회전을 방지하는 기능을 미국의 반 스탈(Van Staal)이 개발하기 이전에 알체도와 미첼에 적용되었던 방식을 보면 사용자의 편리성이란 측면에서는 알세도가 크게 떨어진다.

먼저 미첼의 경우에는 동봉된 영문설명서에 스토퍼는 평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물고기를 살림망에 넣을 때에만 사용하라는 설명과 함께 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반면에 알체도의 스토퍼는 튀어나온 버튼을 당겨야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어서 불편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다.

 

미첼 300의 스토퍼

 

알체도 마이크론의 스토퍼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상식적일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알체도 마이크론은 분해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을 수가 있는데 사용하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를 해야 하지만 로터 너트를 일반적인 공구로는 분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아 기어에 문제라도 생기면 고치지도 못하고 처박아두어야만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큰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본체의 커버는 벗길 수가 있지만 로터를 분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어를 분해할 수는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단지 메인 기어에 구멍을 뚫어 둔 것은 무게를 줄이려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만 그치도록 만들었던 것이 미첼과의 승부에서 밀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하겠다.

세계의 스피닝 릴⑥ 영국: 진실과 거짓

세계의 스피닝 릴⑥ 영국: 진실과 거짓

사진은 1926년에 제작된 알콕 스탠리 릴

 

근대 낚시용품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은 여러 가지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데 릴은 물론이고 서양에서 사용하는 낚싯바늘(후크)의 모양을 현재와 같이 만든 것도 영국이다.

영국의 낚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라이낚시라고 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업체로 하디(Hardy)사와 오비스(Orvis)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하디(Hardy)는 1932년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출원한 스피닝 릴의 특허가 만료됨과 함께 알텍스(Altex No.1)란 스피닝 릴을 출시하면서 지금과 같은 풀 베일 암(full bail arm)의 특허를 취득하여 기간이 만료된 1954년까지는 스피닝 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의 제목이 “진실과 거짓”인 이유는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에 대한 사실이 영국에서조차 잘못 알려진 채로 전해져오고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서두에서는 영국의 낚시역사에서 중요한 부분 몇 가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1655년 찰스 커비(Charles Kirby)가 런던의 하프 앨리(Harp Alley)에 있는 매장에서 후크(hook)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의 후크는 현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을 일컬어 커비 벤드(Kirby bend)라고 불렀다.

그 후 1666년에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가 일어나 후크를 생산하던 기업들이 하나둘씩 레디치(Redditch)란 곳으로 모여들면서 나중에는 낚시용품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영국최초의 릴 제작사인 오네시무스 유스턴손(Onesimus Ustonson)이란 업체가 1761년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1823년에 레디치(Redditch)에만 모두 17개의 낚싯바늘을 만드는 업체가 모여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영국의 낚싯바늘 제조업은 모두 수공업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집약적이었던 때문으로 노르웨이의 머스터드(Mustad)란 기업이 1876년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도입하면서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편 영국 최초의 릴 제조업체였던 오네시무스 유스턴손(Onesimus Ustonson)은 1855년까지 약 백 년 동안 릴을 생산하였는데 초기의 모델은 2007년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880만 원 정도에 낙찰된 바가 있다.

그러나 오네시무스 유스턴손(Onesimus Ustonson)에서는 스피닝 릴을 생산하지 않았고, 하디(Hardy)의 스피닝 릴 알텍스(Altex) 시리즈가 출시되기 이전에는 치펜데일(Chippendale) 및 올콕 스탠리(Allcock Stanley) 등의 스피닝 릴이 선을 보이면서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이 나타나기까지는 영국의 스피닝 릴이 주를 이루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영국의 스피닝 릴은 현재까지도 많은 영국의 낚시인들이 스피닝 릴을 사용하는 큰 이유가 되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국의 베스트어드바이저(Bestadvisers)에서 선정한 최고의 낚시용 릴 Top5에는 스피닝 릴이 4개나 들어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에서도 일본의 스피닝 릴이 시장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는 우리와 같은 형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베스트어드바이저(Bestadvisers)가 선정한 최고의 릴 중에서 일본의 제품은 다이와에서 만든 닌자 4000A(Daiwa Ninja 4000A)가 유일하다.

개인적으로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를 연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제품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국내 스피닝 릴 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자 하는데 있다. 무조건 국산품을 사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수한 제품들이 많다는 사실을 국내 낚시인들이나 낚시용품 유통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 이 글을 연재하는 작은 바람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 오늘 포스팅의 제목을 무엇 때문에 “진실과 거짓”으로 정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피닝 릴에 가까운 것이 바로 1905년에 특허를 취득한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개발한 일링워스 넘버1(Illingworth No.1)이었는데 그는 No. 5까지 제품을 생산하였다.

Illingworth No.5

 

그런데 일링워스 릴을 개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검색하면 저명한 영국의 사이트에서조차도 정치인이었던 알버트 홀덴 일링워스(Albert Holden Illingworth)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면 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는데 사전을 보면 “홀덴 일링워스(Holden Illingworth)가 고정 스풀을 가진 릴을 특허출원한 1905년은 영국에서 섬유산업이 부흥하던 시기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영국에서는 고정스풀 릴(fixed spool reel)이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스피닝 릴(spinning reel)이라고 부르던 릴을 개발한 사람이 섬유업계 종사자라는 것을 짧게 설명해놓은 것인데 스피닝 릴을 개발한 일링워스는 정치가였던 알버트(Albert)가 아니라 영국의 섬유업자였던 알프레드(Alfred)란 사람이었다.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는 그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실을 감을 때 사용하던 보빈(bobbin)에 착안하여 릴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역사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함으로 해서 이런 잘못된 정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더욱 더 우리만의 낚시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는 일에 힘을 쏟을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세계의 스피닝 릴⑤ 일본의 침공

세계의 스피닝 릴⑤ 일본의 침공

스코틀랜드의 피터 말록(Peter Malloch)이 1884년에 세계최초로 스피닝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이후 1905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현대와 같은 형태에 가까운 스피닝 릴 No.1(Illingworth No.1)을 선보이게 된다.

※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Illingworth No.3

이후 유럽에서는 영국의 하디(Hardy)와 더불어 미첼(Mitchell)이란 브랜드를 선보인 프랑스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가 최고의 스피닝 릴 제조업체로 군림하게 되었지만 하디에서 1932년에 취득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었던 1954년까지는 하디의 일방적인 독주체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디 최초의 스피닝 릴 알텍스(Altex) No.1

 

카르파노 앤 폰즈 최초의 릴 미첼(Mitchell) 300

이 같은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하디와 일찍이 손을 잡았던 일본은 다양한 외국의 낚시용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55년에는 다이와가 스피닝 1형이란 이름의 스피닝 릴을 출시하고 1971년에는 시마노가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의 기술과 디자인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일본이 1970년대 후반에 와서 영국의 하디는 스피닝 릴 부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미국의 유통회사 가르시아의 파산으로 위기에 몰린 프랑스의 미첼은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는 틈을 타고 미국과 유럽에서 파상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조건 품질 좋고 싸다는 것만을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경제학계의 주류이론이었던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를 모토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일본의 전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고,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 번지고 있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우리 낚시용품업계에는 큰 기회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이 해외시장 전략으로 들고 나왔던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란 것은 기업의 존재목적을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고 본 이론으로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가 기업문화로 자리 잡고 있던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기업이 이윤을 확대하기보다는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경영전략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는 기업이 단기간의 주주이익을 위하는 것보다는 시장점유율을 확대함으로써 고용의 안정을 달성하여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 자기자본이익률과 매출이익률은 다소 낮아도 경상이익을 증가시켜 부채상환에 차질이 없는 것을 최고의 조건으로 삼았던 은행과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에서 힘을 얻게 되었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이 이론은 1990년대 미국 경영학자들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이런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마케팅 전략은 수평확장형 개념으로서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었는데 주변에서 가지고 있는 상품을 가지지 못하면 괜히 소외감을 느끼거나 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이런 사례는 일본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아래 브랜드의 가방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일본이 사용했던 수평확장형의 마케팅 개념은 지금 사용하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데 현재의 개념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 등의 자산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소에서 활용하여 사업을 확장한다는 것으로 프랜차이즈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낚시관련 블로그인 관계로 경제와 경영을 얘기하는 것은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하자.

일본업체들이 좋은 제품을 생산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미국과 유럽시장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적인 배경도 분명 호재로 작용하여 일본 낚시용품이 시장을 지배하는 지금의 구도가 마련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 다이와의 재무제표를 보면 경상이익은 예년에 비해 줄어든 6.9%가 성장하였고 순이익은 18.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자세한 것은 자료가 공개된 이후라야 알 수 있겠지만 순이익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는 점에서 향후 일본제품의 가격인상을 예견해볼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다른 기업들에게는 분명히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본다.

세계시장과 대한민국의 낚시용품시장을 파상적으로 지배했던 일본의 그림자가 사라질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해본다.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플라이 낚시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하디(Hardy)”란 글에서 하디사가 스피닝 릴을 생산한 것은 1932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출원했던 특허의 만료와 함께 출시했던 모델인 알텍스(Altex No.1)가 처음이란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면 세계최초의 스피닝 릴은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만든 것일까? 그리고 스피닝 릴의 베일은 처음부터 사용되었던 것일까? 이제부터 그 사실을 하나씩 알아보자.

스피닝 릴이 세계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스코틀랜드 아몬드뱅크(Almondbank) 출신으로 1875년부터 중부도시 퍼스(Perth)에서 박제사로 활동하면서 낚시용품 판매를 겸하고 있던 피터 말록(Peter Malloch)이라는 사람이 1884년에 개발하여 특허를 취득한 것이 역사적으로는 처음이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형태에 가까운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특허를 취득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스피닝 릴의 최초는 일링워스 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만든 최초의 릴 No.1(Illingworth No.1)보다는 베일을 개정하여 1910년에 새롭게 특허를 취득한 두 번째 릴 No2.(Illingworth No.2)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스피닝 릴의 형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링워스(Illingworth) No.1

일링워스(Illingworth) No.2

일링워스(Illingworth) No.3

아무튼 1905년에 특허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금방 다른 업체들에서 이를 카피한 것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특허를 침해했다고 치펜데일(Chippendale)이 고소를 당하면서부터 이런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마침내 1932년이 되면서 특허가 공개되자 하디에서도 스피닝 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1932년 하디사가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프랑스의 미첼에서는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미첼 300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하디사의 특허가 1954년에 공개되면서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를 본 따 만든 스피닝 릴들이 연이어 세상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스피닝 릴도 최근에 와서는 사용자들의 편의성과 기호에 맞게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다.

가장 첫 번째가 지난번에 알아본 “스피닝 릴 베일의 자동반환(오토 리턴) 기능”이란 것인데 이 기능은 특히 동양권에서 계류낚시를 할 때 좁은 지역에서 연속되는 동작을 조금이라도 빨리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사용하는 기능으로 원투낚시와 같은 대형 릴 중에는 이 기능이 없는 것들도 있고 더러는 개인이 이 기능을 하는 부품들을 제거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일의 이런 오토 리턴 기능은 다이와 제품의 경우에는 고질적으로 베일이 아래로 처지는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가급적이면 손으로 여닫는 것이 좋다.

※ 스피닝릴의 베일 처짐 현상과 대처법

 

일반적으로 캐스팅 도중에 핸들이 돌면서 베일이 자동으로 닫히게 되면 특히 원투낚시에서는 딱총이라고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낚시인들은 베일을 연 다음, 로터가 더 이상 회전하지 않는 지점까지 돌리고 캐스팅을 하는데 이것을 일컬어 베일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로터를 잠근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스풀과 로터를 혼돈할 수가 있는데 베일을 연 상태에서 반드시 로터를 돌려야만 멈추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가 있고, 공교롭게도 이 지점에서 베일을 열게 되면 베일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스피닝 릴에서 변화가 있는 부분은 과거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아예 베일을 없앤 제품들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오랜 시간에 걸친 낚시인들의 습관 때문에 저변의 확대가 그리 넓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으나 아무튼 사용자들의 요구와 기호를 반영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은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