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피닝 릴⑨ 일본에서 만들었던 셰익스피어의 스피닝 릴

세계의 스피닝 릴⑨ 일본에서 만들었던 셰익스피어의 스피닝 릴

퓨어피싱에서 소유하고 있는 낚시용품 브랜드인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베이트 릴에서 라인을 고루 감을 있도록 해주는 레벨 와인드(level wind)를 상용화 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혹자들은 레벨 와인드(level wind)의 최초 개발자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고들 하는데 최초의 특허는 40여 년 전에 등록되어있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등록한 특허는 기존의 것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실용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 큰 차이점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전의 것들이 개념에 그치는 것들이었다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발명한 것은 실제 낚시를 하면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1897년 10월 5일에 허가를 받은 그의 특허는 세계 낚시용품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이었으며 레벨 와인드(level wind)를 개발하고 가능성을 확신했던 그는 특허출원과 동시에 다니던 회사를 나와 “The William Shakespeare Jr. Company”라는 이름으로 창업하게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William Shakespeare Jr.)에 관한 얘기만 한다고 하더라도 몇 차례의 포스팅으로 모자라지만 오늘은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시리즈의 주제에 맞게 스피닝 릴에 관해서만 집중해보려 한다.

셰익스피어는 베이트 릴에 역량을 집중했고 스피닝 릴이라고는 1952년에 출시한 ‘스핀캐스트 1850’이 처음이었다.

 

스핀캐스트 1850

 

스핀캐스팅 릴이란 이전에 “스피닝 릴과 베이트 릴의 차이점”이란 포스팅에서 잠깐 소개를 했지만 베이트 로드에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스핀캐스트 릴(또는 스핀캐스팅 릴)이라고 하고 스피닝 로드에 장착하는 것은 언더스핀(underspin)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스피닝 릴 부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셰익스피어에서 최초로 출시한 스피닝 릴을 만들었던 곳은 일본업체였다.(1960년대에 출시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1955년에 설립된 일본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라는 업체에서 만들어 셰익스피어 2200(Shakespeare 2200)이란 이름으로 수출되었던 것이 셰익스피어에서 출시했던 최초의 스피닝 릴인데 이것을 만들었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는 당시로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스피닝 릴 제조업체였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2200(Shakespeare 2200)

 

셰익스피어 2200(Shakespeare 2200)은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던 ‘다이아몬드 DX’란 모델의 수출형이었다고 보면 되는데 불행히도 아직 ‘다이아몬드 DX’는 찾지 못했다.

그 이후에 개량된 버전인 셰익스피어 2200Ⅱ(Shakespeare 2200Ⅱ)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의 일본명은 ‘마이크로 7 디럭스’였다.

 

일본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에서는 다이아몬드란 브랜드로 자국에서 릴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개발한 하이포이드 페이스 기어(Hypoid face gear)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스피닝 릴 제조사에서 이를 따르고 있으며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에서 사용했던 펠트 드랙 와셔 또한 이제는 세계의 표준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이 업체 또한 시마노와 다이와, 료비 등에서 릴을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제품의 내구성에 있었다.

언젠가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겠지만 당시 시마노와 다이와에서는 내구성을 시험하는 방법을 달리하여 저마다 자사제품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는 이 점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점과 자본력의 열세로 인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마이크로 7’이란 모델로 호주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오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는 현재는 잊혀진 기업이 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의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업체의 경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 한 예로써 일본의 다이와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직원을 미국에 파견하여 현지에서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R & D의 투자에도 열을 기울이고 있다.

이젠 국내업체들도 단순히 일제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시장의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점에서부터 되돌아보고 제품개발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세계의 스피닝 릴⑧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

세계의 스피닝 릴⑧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

연재하고 있는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 3편의 제목을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로 정했던 이유는 오늘 소개하는 알룩스(ALLUX)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5년 전에 이 글을 쓴 뒤 2022년 겨울 알룩스는 코로나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다.

 

나는 일본 아베정권의 수출규제로 인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국내 낚시용품시장이 일본제품의 독과점적인 지배하에 있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특정업체의 특정제품을 추천하는 것은 삼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견지하던 그 생각을 바꾸어, 일본의 낚시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소개하는 글들을 포스팅할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오늘은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를 소개한다.

이탈리아의 알룩스(ALLUX)는 시리즈의 3편인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와 7편인 “알체도와 미첼의 한 판 승부”에서 소개했던 알체도(Alcedo)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1950년대 당시 세계에서 제일 가벼운 스피닝 릴이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을 생산했던 이탈리아의 알체도(Alcedo)는 스페인어나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하여 알세도라고 적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앞으로도 알체도(Alcedo)로 표기토록 한다.

이탈리아에는 1929년 주께띠(Zucchetti)라는 회사를 필두로 모두 100여 개가 넘는 스피닝 릴 제조회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알체도(Alcedo)와 잔지(Zangi), 그리고 까르젬(Cargem)의 3곳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알체도(Alcedo)와 잔지(Zangi)는 한 기업에 의해 함께 인수가 되는데 1972년에 잔지(Zangi)를, 1975년에 알체도(Alcedo)를 인수했던 콥테스(CopTes)가 바로 그곳이다.

회사이름인 콥테스(CopTes)는 콥트인(Coptes)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창업자인 코폴라 지오바니(Coppola Giovanni)와 테사 실비오(Tessa Silvio)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알체도(Alcedo)보다 먼저 잔지(Zangi)를 인수했던 콥테스(CopTes)는 잔지(Zangi)에서 생산하던 스피닝 릴들을 계속해서 제작하였는데 잔지(Zangi)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짙은 회색의 바디에 파란색의 로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산된 펠리칸 시리즈부터는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의 바디에 크림색의 로터로 색상을 바꾸었는데 이런 추세는 1975년 인수했던 알체도(Alcedo)의 모델에도 적용되었다.

 

인수된 후에 생산된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

 

여기서 잠깐 한 가지만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1950년대 당시 세계 최경량의 스피닝 릴이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의 기어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누구는 1: 3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1: 5라고도 하는데 최초로 생산되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의 기어비는 1: 3이었으며 두 번째 버전인 넘버2에서는 1: 3.5로 바뀌었다가 콥테스(CopTes)에 인수된 이후에 생산되었던 모델부터 색깔도 바뀌고 기어비도 1: 5.2로 변경되었다.

콥테스(CopTes)의 창업자였던 코폴라 지오바니(Coppola Giovanni)는 2018년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알체도(Alcedo)의 기술력은 이전에 인수했던 잔지(Zangi)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밝혔는데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알체도(Alcedo)는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가 경영하는 이탈리아 피싱(Italia Fishing)에 의해 2002년에 인수되게 된다.

그리고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는 알체도(Alcedo)의 명맥을 이어나가면서도 축적된 알체도(Alcedo)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인 알룩스(Allux)를 2013년에 론칭하였던 것이다.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

 

알체도(Alcedo)의 초기 모델들을 보면서 감탄한 기억이 있던 나로서는 언젠가 꼭 알룩스(Allux) 릴을 구입해서 사용해보리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이미 2018년부터 알룩스코리아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국내에 판매업체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터라 직구를 통해 원투낚시용인 루테늄 캐스트 RS(Ruthenium Cast RS)와 소형 릴 Spin S6 및 벨벳을 구입하였고 마침내 어제 도착하였다.

이 세 가지 모델을 구입한 이유는 루테늄 캐스트 RS는 제원으로만 본다면 시마노의 스핀파워를 맞먹을 정도라는 점 때문이었고 벨벳은 가장 저렴한 릴을 보면 해당업체의 기술력을 판단하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Spin S6는 색깔이 다이와의 에메랄다스와 비슷한데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무게는 더 가볍고 성능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에 쥐고 살펴본 결과로는 “정말 좋은 제품이다!”는 말로 요약할 수가 있는데 더 정확한 것은 주말을 이용해 분해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분해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업체가 홍보하는 기술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 대답을 할 수 있다.

아무튼 오랜 역사를 지닌 알체도(Alcedo)를 새롭게 인수한 이탈리아 피싱(Italia Fishing)에서는 중국에 지사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생산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포장의 겉면에는 유럽연합 밖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문구와 릴풋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란 문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후기는 제품을 분해한 사진과 함께 포스팅하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비슷한 수준의 일제와 비교하면 품질은 오히려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싸다는 것을 장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구입한 세 가지 모델의 사진을 보면서 마칠까 하는데 가장 관심이 많았던 원투낚시용 루테늄 캐스트 RS(Ruthenium Cast RS)는 우리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미국의 PENN처럼 스풀을 하나 더(쉘로 스풀) 준다는 점과 스풀을 돌려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드랙노브에 있는 버튼을 누름으로써 쉽게 탈·부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싼 일제와 비교해서 그닥 품질에 손색이 없으면서도 저렴한 이 모델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무게가 시마노의 스핀파워에 비해 65g 정도 무겁다는 것인데 계속해서 들고 낚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캐스팅 후에는 삼각대에 거치시킬 것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외에는 시마노의 스핀파워와 스풀치수는 거의 동일하면서 기어비는 4.6: 1(스핀파워 3.5: 1)로 높고, 기어비가 높으니 권사량도 많을 수밖에 없어서 1회전 당 103㎝가 감기며(스핀파워 84㎝) 9BB(스핀파워 7BB)를 채택하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이탈리아 알체도(Alcedo)의 새로운 브랜드 알룩스(Allux)에 관한 글을 마친다.

 

Spin S6

 

벨벳(Velvet)

세계의 스피닝 릴⑦ 알체도와 미첼의 한 판 승부

세계의 스피닝 릴⑦ 알체도와 미첼의 한 판 승부

유럽 스피닝 릴 제조업계의 양대 산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알체도(Alcedo)와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여 스피닝 릴이란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두 업체 모두 일본제품에 의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아픈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일본의 다이와나 시마노의 대결구도와 같은 모양새를 형성하고 있었던 두 회사는 결론으로만 놓고 본다면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이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완벽한 승리였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의 스피닝 릴들이 가격을 무기로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많은 수의 이탈리아 업체들이 동구권으로 생산거점을 이전했던 것과는 달리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1980년대 대만에서 일부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품질관리의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 참고: 세계의 스피닝 릴④ 프랑스의 자존심 미첼

 

그리고 어쩌면 미첼이 알체도보다 험난한 역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란 이름의 회사에서 만들었던 미첼(Mitchell)이란 브랜드의 스피닝 릴은 아부 가르시아로 합병되기 이전의 가르시아가 1974년 6월 17일에 인수하였지만 연이는 실패로 1978년 8월 10일 도산하면서 다시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가 인수하게 되고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 역시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990년 미국의 JWA(Johnson Worldwide Associates)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었고 다시 2000년에는 퓨어피싱에 인수되었는데 퓨어피싱을 소유하고 있던 뉴웰 브랜즈(Newell Brands)는 2018년에 다시 사모펀드인 ‘시카모어 파트너스(Sycamore Partners)’에 13억 달러(1조 4천 623억)에 퓨어피싱을 넘김으로써 프랑스의 자존심과도 같은 미첼(Mitchell)의 험난한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알체도(Alcedo)와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은 1950년대 중후반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의 수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스피닝 릴의 역사에 있어서 이정표와 같은 때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이 미국으로 수출된 것은 1953년의 일이었고 프랑스의 미첼 300(Mitchell 300)이 그야말로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던 시기도 1955년으로 그 해에만 미국에서 6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아부 가르시아(ABU Garcia)의 전신인 스웨덴 아부(ABU: AB Urfabriken)에서 최초의 스피닝 릴인 ABU 444를 출시한 것도 1955년의 일이었다.

 

ABU 444

 

그러나 거대시장인 미국에서 ABU 444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그 이전에 알체도와 미첼은 미국의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있었는데 이것도 알세도와 미첼의 승부를 결정짓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미첼이 손을 잡았던 미국 파트너는 아부 가르시아로 합병되기 이전의 가르시아(Garcia Corporation)란 낚시용품 전문 유통업체였지만 알체도가 손을 잡았던 곳은 총기류를 유통하던 Continental Arms Corporation라는 곳으로서 이미 여기서부터 두 회사의 승패는 갈렸다고 봐도 좋다.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대 이상이 팔렸다는 미첼 300(Mitchell 300)은 전체 시리즈로 보면 4천만 대 이상이 팔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으나 2001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그 이유로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1980년대 생산되었던 것들에 비해 1990년대에 생산되었던 것들은 베일 스프링이 약해서 부러지는 등의 품질문제가 발생했던 것들도 크게 작용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의 미첼과 미국의 가르시아가 손을 잡은 것은 미첼 300(Mitchell 300)의 세 번째 버전이 출시될 때부터인데 1946년에 나온 세 번째 버전은 1947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하여 모두 27만 개가 팔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탈리아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의 미국 판매가격은 35달러였고 미첼 300(Mitchell 300)은 30달러 선에서 판매되었는데 이 가격이 얼마나 높은 것이었는지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1955년도를 기준으로 달러의 현재가치를 환산해보면 이후 매년 평균 3.59%의 인플레율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35달러는 2019년 현재로는 335달러 정도에 해당하며 이는 오늘자(2019년 9월 5일) 매매기준율로 보면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시마노의 바이오마스터와는 비슷한 가격이고 다이와의 루비아스보다는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처럼 비슷한 가격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제품의 판매고가 크게 차이 났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사용상의 편리함과 유지보수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이 갈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미첼 300(Mitchell 300)과는 달리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이 가진 장점은 우선 무게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마이크론이 200g, 미첼이 240g으로 무게에서는 알체도가 우위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다음으로 흔히 원웨이 클러치라고 하는 롤러베어링을 사용하여 로터의 역회전을 방지하는 기능을 미국의 반 스탈(Van Staal)이 개발하기 이전에 알체도와 미첼에 적용되었던 방식을 보면 사용자의 편리성이란 측면에서는 알세도가 크게 떨어진다.

먼저 미첼의 경우에는 동봉된 영문설명서에 스토퍼는 평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물고기를 살림망에 넣을 때에만 사용하라는 설명과 함께 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반면에 알체도의 스토퍼는 튀어나온 버튼을 당겨야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어서 불편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다.

 

미첼 300의 스토퍼

 

알체도 마이크론의 스토퍼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상식적일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알체도 마이크론은 분해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을 수가 있는데 사용하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를 해야 하지만 로터 너트를 일반적인 공구로는 분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아 기어에 문제라도 생기면 고치지도 못하고 처박아두어야만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큰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본체의 커버는 벗길 수가 있지만 로터를 분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어를 분해할 수는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단지 메인 기어에 구멍을 뚫어 둔 것은 무게를 줄이려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만 그치도록 만들었던 것이 미첼과의 승부에서 밀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하겠다.

세계의 스피닝 릴⑥ 영국: 진실과 거짓

세계의 스피닝 릴⑥ 영국: 진실과 거짓

사진은 1926년에 제작된 알콕 스탠리 릴

 

근대 낚시용품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은 여러 가지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데 릴은 물론이고 서양에서 사용하는 낚싯바늘(후크)의 모양을 현재와 같이 만든 것도 영국이다.

영국의 낚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라이낚시라고 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업체로 하디(Hardy)사와 오비스(Orvis)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하디(Hardy)는 1932년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출원한 스피닝 릴의 특허가 만료됨과 함께 알텍스(Altex No.1)란 스피닝 릴을 출시하면서 지금과 같은 풀 베일 암(full bail arm)의 특허를 취득하여 기간이 만료된 1954년까지는 스피닝 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의 제목이 “진실과 거짓”인 이유는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에 대한 사실이 영국에서조차 잘못 알려진 채로 전해져오고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서두에서는 영국의 낚시역사에서 중요한 부분 몇 가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1655년 찰스 커비(Charles Kirby)가 런던의 하프 앨리(Harp Alley)에 있는 매장에서 후크(hook)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의 후크는 현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을 일컬어 커비 벤드(Kirby bend)라고 불렀다.

그 후 1666년에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가 일어나 후크를 생산하던 기업들이 하나둘씩 레디치(Redditch)란 곳으로 모여들면서 나중에는 낚시용품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영국최초의 릴 제작사인 오네시무스 유스턴손(Onesimus Ustonson)이란 업체가 1761년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1823년에 레디치(Redditch)에만 모두 17개의 낚싯바늘을 만드는 업체가 모여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영국의 낚싯바늘 제조업은 모두 수공업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집약적이었던 때문으로 노르웨이의 머스터드(Mustad)란 기업이 1876년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도입하면서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편 영국 최초의 릴 제조업체였던 오네시무스 유스턴손(Onesimus Ustonson)은 1855년까지 약 백 년 동안 릴을 생산하였는데 초기의 모델은 2007년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880만 원 정도에 낙찰된 바가 있다.

그러나 오네시무스 유스턴손(Onesimus Ustonson)에서는 스피닝 릴을 생산하지 않았고, 하디(Hardy)의 스피닝 릴 알텍스(Altex) 시리즈가 출시되기 이전에는 치펜데일(Chippendale) 및 올콕 스탠리(Allcock Stanley) 등의 스피닝 릴이 선을 보이면서 프랑스의 미첼(Mitchell)이 나타나기까지는 영국의 스피닝 릴이 주를 이루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영국의 스피닝 릴은 현재까지도 많은 영국의 낚시인들이 스피닝 릴을 사용하는 큰 이유가 되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국의 베스트어드바이저(Bestadvisers)에서 선정한 최고의 낚시용 릴 Top5에는 스피닝 릴이 4개나 들어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에서도 일본의 스피닝 릴이 시장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는 우리와 같은 형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베스트어드바이저(Bestadvisers)가 선정한 최고의 릴 중에서 일본의 제품은 다이와에서 만든 닌자 4000A(Daiwa Ninja 4000A)가 유일하다.

개인적으로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를 연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제품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국내 스피닝 릴 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자 하는데 있다. 무조건 국산품을 사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수한 제품들이 많다는 사실을 국내 낚시인들이나 낚시용품 유통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 이 글을 연재하는 작은 바람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 오늘 포스팅의 제목을 무엇 때문에 “진실과 거짓”으로 정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피닝 릴에 가까운 것이 바로 1905년에 특허를 취득한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개발한 일링워스 넘버1(Illingworth No.1)이었는데 그는 No. 5까지 제품을 생산하였다.

Illingworth No.5

 

그런데 일링워스 릴을 개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검색하면 저명한 영국의 사이트에서조차도 정치인이었던 알버트 홀덴 일링워스(Albert Holden Illingworth)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면 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는데 사전을 보면 “홀덴 일링워스(Holden Illingworth)가 고정 스풀을 가진 릴을 특허출원한 1905년은 영국에서 섬유산업이 부흥하던 시기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영국에서는 고정스풀 릴(fixed spool reel)이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스피닝 릴(spinning reel)이라고 부르던 릴을 개발한 사람이 섬유업계 종사자라는 것을 짧게 설명해놓은 것인데 스피닝 릴을 개발한 일링워스는 정치가였던 알버트(Albert)가 아니라 영국의 섬유업자였던 알프레드(Alfred)란 사람이었다.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는 그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실을 감을 때 사용하던 보빈(bobbin)에 착안하여 릴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역사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함으로 해서 이런 잘못된 정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더욱 더 우리만의 낚시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는 일에 힘을 쏟을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세계의 스피닝 릴⑤ 일본의 침공

세계의 스피닝 릴⑤ 일본의 침공

스코틀랜드의 피터 말록(Peter Malloch)이 1884년에 세계최초로 스피닝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이후 1905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현대와 같은 형태에 가까운 스피닝 릴 No.1(Illingworth No.1)을 선보이게 된다.

※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Illingworth No.3

이후 유럽에서는 영국의 하디(Hardy)와 더불어 미첼(Mitchell)이란 브랜드를 선보인 프랑스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가 최고의 스피닝 릴 제조업체로 군림하게 되었지만 하디에서 1932년에 취득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었던 1954년까지는 하디의 일방적인 독주체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디 최초의 스피닝 릴 알텍스(Altex) No.1

 

카르파노 앤 폰즈 최초의 릴 미첼(Mitchell) 300

이 같은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하디와 일찍이 손을 잡았던 일본은 다양한 외국의 낚시용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55년에는 다이와가 스피닝 1형이란 이름의 스피닝 릴을 출시하고 1971년에는 시마노가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의 기술과 디자인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일본이 1970년대 후반에 와서 영국의 하디는 스피닝 릴 부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미국의 유통회사 가르시아의 파산으로 위기에 몰린 프랑스의 미첼은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는 틈을 타고 미국과 유럽에서 파상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조건 품질 좋고 싸다는 것만을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경제학계의 주류이론이었던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를 모토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일본의 전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고,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 번지고 있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우리 낚시용품업계에는 큰 기회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이 해외시장 전략으로 들고 나왔던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란 것은 기업의 존재목적을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고 본 이론으로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가 기업문화로 자리 잡고 있던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기업이 이윤을 확대하기보다는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경영전략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는 기업이 단기간의 주주이익을 위하는 것보다는 시장점유율을 확대함으로써 고용의 안정을 달성하여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 자기자본이익률과 매출이익률은 다소 낮아도 경상이익을 증가시켜 부채상환에 차질이 없는 것을 최고의 조건으로 삼았던 은행과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에서 힘을 얻게 되었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이 이론은 1990년대 미국 경영학자들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이런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마케팅 전략은 수평확장형 개념으로서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었는데 주변에서 가지고 있는 상품을 가지지 못하면 괜히 소외감을 느끼거나 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이런 사례는 일본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아래 브랜드의 가방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일본이 사용했던 수평확장형의 마케팅 개념은 지금 사용하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데 현재의 개념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 등의 자산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소에서 활용하여 사업을 확장한다는 것으로 프랜차이즈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낚시관련 블로그인 관계로 경제와 경영을 얘기하는 것은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하자.

일본업체들이 좋은 제품을 생산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미국과 유럽시장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적인 배경도 분명 호재로 작용하여 일본 낚시용품이 시장을 지배하는 지금의 구도가 마련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 다이와의 재무제표를 보면 경상이익은 예년에 비해 줄어든 6.9%가 성장하였고 순이익은 18.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자세한 것은 자료가 공개된 이후라야 알 수 있겠지만 순이익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는 점에서 향후 일본제품의 가격인상을 예견해볼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다른 기업들에게는 분명히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본다.

세계시장과 대한민국의 낚시용품시장을 파상적으로 지배했던 일본의 그림자가 사라질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해본다.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

“플라이 낚시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하디(Hardy)”란 글에서 하디사가 스피닝 릴을 생산한 것은 1932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출원했던 특허의 만료와 함께 출시했던 모델인 알텍스(Altex No.1)가 처음이란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면 세계최초의 스피닝 릴은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만든 것일까? 그리고 스피닝 릴의 베일은 처음부터 사용되었던 것일까? 이제부터 그 사실을 하나씩 알아보자.

스피닝 릴이 세계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스코틀랜드 아몬드뱅크(Almondbank) 출신으로 1875년부터 중부도시 퍼스(Perth)에서 박제사로 활동하면서 낚시용품 판매를 겸하고 있던 피터 말록(Peter Malloch)이라는 사람이 1884년에 개발하여 특허를 취득한 것이 역사적으로는 처음이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형태에 가까운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영국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특허를 취득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스피닝 릴의 최초는 일링워스 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만든 최초의 릴 No.1(Illingworth No.1)보다는 베일을 개정하여 1910년에 새롭게 특허를 취득한 두 번째 릴 No2.(Illingworth No.2)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스피닝 릴의 형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링워스(Illingworth) No.1

일링워스(Illingworth) No.2

일링워스(Illingworth) No.3

아무튼 1905년에 특허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금방 다른 업체들에서 이를 카피한 것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특허를 침해했다고 치펜데일(Chippendale)이 고소를 당하면서부터 이런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마침내 1932년이 되면서 특허가 공개되자 하디에서도 스피닝 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1932년 하디사가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프랑스의 미첼에서는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미첼 300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하디사의 특허가 1954년에 공개되면서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를 본 따 만든 스피닝 릴들이 연이어 세상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스피닝 릴도 최근에 와서는 사용자들의 편의성과 기호에 맞게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다.

가장 첫 번째가 지난번에 알아본 “스피닝 릴 베일의 자동반환(오토 리턴) 기능”이란 것인데 이 기능은 특히 동양권에서 계류낚시를 할 때 좁은 지역에서 연속되는 동작을 조금이라도 빨리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사용하는 기능으로 원투낚시와 같은 대형 릴 중에는 이 기능이 없는 것들도 있고 더러는 개인이 이 기능을 하는 부품들을 제거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일의 이런 오토 리턴 기능은 다이와 제품의 경우에는 고질적으로 베일이 아래로 처지는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가급적이면 손으로 여닫는 것이 좋다.

※ 스피닝릴의 베일 처짐 현상과 대처법

 

일반적으로 캐스팅 도중에 핸들이 돌면서 베일이 자동으로 닫히게 되면 특히 원투낚시에서는 딱총이라고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낚시인들은 베일을 연 다음, 로터가 더 이상 회전하지 않는 지점까지 돌리고 캐스팅을 하는데 이것을 일컬어 베일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로터를 잠근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스풀과 로터를 혼돈할 수가 있는데 베일을 연 상태에서 반드시 로터를 돌려야만 멈추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가 있고, 공교롭게도 이 지점에서 베일을 열게 되면 베일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스피닝 릴에서 변화가 있는 부분은 과거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아예 베일을 없앤 제품들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오랜 시간에 걸친 낚시인들의 습관 때문에 저변의 확대가 그리 넓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으나 아무튼 사용자들의 요구와 기호를 반영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은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세계의 스피닝 릴④ 프랑스의 자존심 미첼

세계의 스피닝 릴④ 프랑스의 자존심 미첼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 3편에서 잠깐 소개를 했던 프랑스의 릴 브랜드 미첼(Mitchell)은 창업자인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의 사위 찰스 폰즈(Charles Pons)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 이름을 지금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로 변경하고 1939년에 첫 번째 스피닝 릴을 출시하였다.

그런데 3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미첼이 스피닝 릴의 제작에 뛰어들게 된 것은 한글로 번역하면 낚싯대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La Canne à Pêche)가 C.A.P라고 이름을 붙인 릴의 제작과 개발을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의뢰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 중에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이란 인물이 있었다.

당시 국립파리기계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을 찰스 폰즈(Charles Pons)가 모셔오다시피 해서 데리고 왔는데 그가 스피닝 릴을 개발하는 일에 참가하게 되었고 C.A.P릴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미첼 스피닝 릴이 태어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C.A.P릴이나 최초의 미첼 릴은 그야말로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것이어서 판매가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세 번째로 개발한 미첼 릴이 1946년에 완성되어 1947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미첼 릴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세계최초의 스피닝 릴”이라 홍보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과장광고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여기서 미첼 릴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보고 가도록 하자.

먼저 회사명은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인데 릴의 브랜드는 왜 미첼인가 하는 점으로 미첼이란 브랜드의 탄생배경을 알아보자.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서 릴을 개발하는 사업을 지휘한 사람은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이었고 그가 개발했던 릴은 스풀을 중심으로 릴을 설계하였던 관계로 스풀에 필요한 축의 길이 때문에 한 쪽이 긴 계란형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기존의 릴과 비교하여 독특한 것으로써 이후 타사에서 생산되는 스피닝 릴들도 모두 이 유형을 모방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스웨덴의 아부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스피닝 릴의 한 획을 긋는 제품의 개발에 성공했던 모리셔스 자끄맹(Maurice Jacquemin)은 그가 만든 제품에 아들의 이름 미셀(Michel)을 붙이려고 하였으나 당시 프랑스의 법률이 정하고 있었던 “특정 제품명으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미셀(Michel)을 영어식으로 바꾸어 미첼(Mitchell)이라고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미첼(Mitchell) 릴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릴의 개발과 제작을 의뢰해왔었던 회사(La Canne à Pêche) 및 아부 가르시아와의 관계이다.

아부 가르시아라는 회사는 스웨덴의 아부사가 미국의 유통회사인 가르시아와 합치면서 변경된 상호명인데 그 이전에 아부사에서 만들었던 최초의 스피닝 릴인 레코드(RECORD) 와는 달리 1955년에 발매되었던 “ABU 444”는 외형이 미첼 릴을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아부 최초의 스피닝 릴이 “ABU 444”라고 하는 정보도 틀린 것이다.)

※ 아부가르시아(Abu Garcia)의 역사

 

아부 레코드(Abu Record)

 

ABU 444

 

물론 스피닝 릴을 제작하는 다른 업체에서도 미첼 릴을 모방한 제품들을 출시하였지만 스웨덴의 아부는 미첼과의 관계를 여는 서막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4천만 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는 미첼 300계열의 릴이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아부사에 합병되기 전의 가르시아란 회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미첼 300(Mitchell 300)은 1939년에 첫 번째 모델이, 1940년에 두 번째 모델이, 1946년에 세 번째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이때까지는 모두 현재와 같은 풀 베일을 갖추지 못하고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것들이었다.

그 이유는 1932년 영국의 하디사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베일(full bail arm)을 갖추고 자동으로 개폐되는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미첼 300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하디사의 특허가 공개된 1954년 이후부터 지금과 같은 풀 베일 구조를 지닌 미첼 300을 출시할 수 있었고 대중의 큰 인기를 받으면서 누적 판매량 3천만 대, 300시리즈 전체로는 4천만 대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제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풀 베일 구조를 가진 모델이 출시되기 전에 1946년에 출시되었던 미첼 300(Mitchell 300)의 세 번째 버전도 모두 27만 대가 팔리는 히트를 쳤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면에 바로 미국의 유통회사 가르시아가 있었다.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CAP릴의 개발을 의뢰하였던 회사(La Canne à Pêche)는 프랑스에서 수출과 수입을 하고 있던 미국회사 임페코(Impecco)와 친분이 있었는데 임페코(Impecco)의 사장이었던 줄스 검프리치(Jules)의 형인 오토 검프리치(Otto Gumprich)가 바로 가르시아의 사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1955년에 1박스에 60개가 담긴 ‘미첼 300’ 1만 박스를 수출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가르시아가 미첼을 인수하고 다시 가르시아는 스웨덴의 아부에 합병되어 현재는 미국의 퓨어피싱이 소유하기에 이르게 된다.

아부 가르시아 이전의 가르시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프랑스의 미첼에 대하여 집중하도록 하자.

1955년 60만 개의 ‘미첼 300’을 미국으로 수출했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는 1957년에는 100만 개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하는데 1970년대 당시 하루에 1만 개 정도가 생산되었던 미첼 릴은 프랑스에서 15%가 판매되고 나머지는 83개국 5,300여개의 판매점을 통해 유통되었는데 전체 수출물량의 65%를 담당하고 있던 곳이 바로 가르시아였으며 마침내 1974년 6월 17일에는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로부터 미첼을 인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가르시아 미첼 300DL’이라는 모델을 출시하게 된다.

 

가르시아 미첼 300DL

 

그 후 가르시아 미첼이란 이름으로 릴을 출시하면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던 가르시아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한 문제를 뒤늦게 인식하고 릴을 판매하는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때는 늦어 결국 주식의 대부분을 다시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양도하고 1978년 8월 10일,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미첼을 인수한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 역시 가르시아의 파산으로 인한 여파를 넘지 못하고 미첼 릴을 유통하는 목적의 미첼 스포츠(Mitchell Sports)를 설립하지만 이 회사는 1990년에 미국의 JWA(Johnson Worldwide Associates)의 손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2000년에 퓨어피싱에 넘어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미첼 릴이 침체기에 빠지게 된 것은 가르시아의 파산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가르시아의 파산으로 인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출시했던 미첼의 모델들이 실패한 것도 1988년에 프랑스에서 모든 생산라인을 철수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전까지 계란형의 형태를 띠고 있던 본체의 모양을 사각형으로 만드는 것에 일견 병적일 정도의 집착을 보인 미첼은 제품의 완성도에서 떨어진 제품들을 출시하여 점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고 사각형의 바디를 가진 릴의 매출부진은 프랑스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미첼을 미국의 손에 넘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세계의 스피닝 릴들을 살펴보면 어느 업체든지 처음에는 기존의 제품들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본의 업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당시 세계적인 유행이었던 계란형도 아닌 원형의 바디를 가진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했던 시마노는 미첼에서 사각형의 바디를 가진 제품들을 출시하자 발 빠르게 바디의 모양을 사각형으로 교체한 덕스를 출시하다가 급기야는 덕스에 New를 붙인 ‘뉴 덕스(New Dux)’를 출시하기에 이르렀고 모방하던 단계를 벗어나 지금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다는 사실은 국내 관련업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덕스(Dux)

 

사각형 덕스(Dux)

 

뉴 덕스(New Dux)

세계의 스피닝 릴③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

세계의 스피닝 릴③ 부활을 꿈꾸는 이탈리아

이탈리아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축구? 사전적인 의미와는 동떨어진 사치품을 일컫는 명품? 아니면 2차 대전? 베니스의 낚시꾼?

낚시라는 관점에서 이탈리아를 쳐다보면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종종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국민성이 닮았다고 하는 글을 볼 때면 일정 부분 수긍이 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낚싯대 던져놓고 졸고 계시는 베니스의 낚시인~^^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나라와 그 업체에 대해서 얘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나라가 이탈리아지만 많은 낚시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세계의 스피닝 릴①편”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탈리아에는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만 해도 100개가 넘는 스피닝 릴 생산업체가 존재했었다.

이탈리아에서 스피닝 릴이 처음 탄생한 것은 1929년 주케티(Zucchetti)란 업체에 의해서였는데 이처럼 많은 제조업체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다고 할 수 있는 알세도(Alcedo)와 창업자 벨리오 장기롤라미(Velio Zangirolami)의 이름을 딴 잔지(Zangi)라는 업체를 비롯하여 많은 수의 스피닝 릴 제조업체들은 토리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토리노는 1899년 자동차업체 피아트의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금속·정밀기계공업의 중심지가 되는데 이러한 배경이 스피닝 릴을 제작하는 업체들이 토리노로 모이게 만든 요인이 되었으며 품질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낚시인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유명한 프랑스의 스피닝 릴 브랜드인 미첼도 토리노와 깊은 연관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낚시인들은 이탈리아 제품에 대해서는 몰라도 프랑스 미첼이란 스피닝 릴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1848년, 이탈리아 정부는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의 국경지역에 있는 끌류스(Cluses)에 왕립시계학교(Royal School of Watch Making)를 설립하였는데 바로 이 학교에 미첼의 창업자인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가 1851년에 입학을 하게 된다.(현재 끌류스(Cluses)는 프랑스령)

시계학교를 졸업한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는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 일하다가 1868년 다시 끌류스(Cluses)로 돌아와 기계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한 뒤 1902년 은퇴하고부터 1919년에 사망하기까지 토리노에서 살았다.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탈리아 출신인데 그를 소개하는 정보에는 프랑스의 시계제작자라고 나오지만 1860년에 이탈리아 국적으로 변경하여 이탈리아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정보는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루이 카르파노(Louis Carpano)가 세운 회사는 그의 사위인 찰스 폰즈(Charles Pons)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 사명(社名)을 지금의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로 변경하고 1939년에 첫 번째 스피닝 릴을 출시하였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누구는 미첼 최초의 스피닝 릴은 1937년에 생산되었다고도 하고 또 누구는 1939년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맞는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37년에 C.A.P.란 이름으로 출시된 것을 두고 미첼 최초의 스피닝 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회사명이 C.A.P란 곳에서 만든 것으로 대량생산을 위해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에 의뢰를 하였던 것인데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C.A.P.가 카르파노 앤 폰즈(Carpono & Pon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처럼 많은 업체들이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업체로는 알체도(Alcedo), 카르젬(Cargem) 그리고 장기(Zangi)를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장기(Zangi)는 1940년에 설립되어 세계시장에서 스웨덴의 아부사와 어깨를 겨루던 업체였으며 1946년에 설립된 카르젬(Cargem)은 1945년에 설립되어 이탈리아 업체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알체도(Alcedo)와 쌍벽을 이루었던 곳이다.

 

알체도는 1975년 콥테스(Coptes)에 매각된 이후에도 1982년까지는 알체도(Alcedo)란 이름으로 제품이 생산되었는데 알체도에서 1950년에 출시하였던 당시로는 세계 최경량의 스피닝 릴이었던 마이크론(Micron)에 대항하기 위하여 카르젬(Cargem)에서는 미뇽(Mignon)을 출시하였던 것에서 보듯이 이들 두 업체는 지금의 시마노와 다이와 같은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

 

카르젬 미뇽(Cargem Mignon)

 

카르젬(Cargem)이란 회사명은 창업자인 카르발리(Carevalli)가 게모니오(Gemonio)에 세운 회사라는 뜻으로 만든 이름인데 이 회사에서는 1950년대 초에 이미 스텔라(Stella)란 모델명을 가진 릴을 출시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스피닝 릴 제조업체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알체도(Alcedo)는 1948년 롤란디(Rolandi)가 토리노에서 설립한 회사로 첫 번째 모델이었던 옴니아(Omnia)는 스러스트 베어링과 나선형의 헬리컬 기어(helical gear)를 장착한 기어비 1: 3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이어서 기어비 1: 3.5의 알체도 넘버2가 출시되었다.

이어서 1950년대 후반에 쥬피터(Jupiter)를 출시했던 알체도(Alcedo)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당시로는 세계 최경량의 스피닝 릴이었던 마이크론(Micron)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었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은 당시에 35달러에 현지에서 판매가 되었는데 2019년의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알체도 마이크론(Alcedo Micron)이란 별도의 모델을 개발했던 것은 아니고 알체도 2CS 기종의 작은 크기 모델을 마이크론(Micron)이란 이름으로 판매하였던 것이다.

 

Alcedo 2CS

 

이런 인기에 힘입어 알체도(Alcedo)는 대형 릴인 마크Ⅵ(아틀란틱)과 마크V(오세아닉)을 출시하는데 이것은 부흥하는 황금나침반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미국의 ‘Renascent Golden Compass’상을 1956년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Mark IV (Atlantic)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다양한 스피닝 릴을 접하기 어려운 국내시장에 이미 알체도(Alcedo)가 진출해 있다는 사실이다. 2017년에 국내에 진출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2002년에 알체도(Alcedo)를 인수한 현 사장인 안젤로 로벨로(Angelo Rovello)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알룩스(ALLUX)를 2013년도에 새롭게 선보였는데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다.(이 글을 작성하고 난 수년 뒤 알룩스는 코로나의 여파로 파산하고 말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많은 업체들이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피닝 릴을 제조하고 있었으나 일본제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수공업으로 생산되던 이리아의 스피닝 릴들은 “품질이 비슷하거나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일본산에 의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당하면서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일본으로부터 스피닝 릴의 제작기술이 도입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축적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비슷하지만 싼 가격 때문에 일제를 구입한다는 이탈리아 소비자들이나 같은 가격이면 일제를 구매하려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결과적으로는 자국산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이탈리아에서 택한 방법은 생산기지를 동구권으로 이전하여 자동화한다는 것이었지만 이탈리아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반대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일본산에 빼앗긴 소비자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우리나라의 실정은 이탈리아보다도 좋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발견하기는 정말 어렵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자녀들과 함께 낚시를 하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낚시인들이 있을까?

얘야, 2019년에 아베란 녀석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아주 못된 짓을 했었는데 그에 화가 난 우리국민들은 일본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을 자발적으로 전개했었단다. 그리고 그때 국산 낚시용품을 애용하자는 붐도 함께 일어났었지.

그러나 기대를 걸었던 국내 낚시용품 업체들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면서부터 낚시인들은 하나둘씩 지쳐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글로벌시대에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이 뭐가 중요해?” 라는 자조섞인 반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대나무낚싯대는 일본고유의 제작기법을 따른 것임을 너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고유의 것인 줄 아는 것처럼 이제는 일본의 낚시용품을 우리고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고 말았단다.(비약이 너무 심했을까?)

To be continued…

세계의 스피닝 릴② 이젠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세계의 스피닝 릴② 이젠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제목의 연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다른 낚시용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일본산 제품이 유독 독과점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스피닝 릴의 기형적인 소비문화를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낚시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요인으로 작용하여 일본의 낚시용품들이 우리나라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 거창하게 애국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만의 낚시문화와 역사의 체계적인 정리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낚시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부닥치게 되는 난관은 제품을 생산하던 업체가 존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대기 순으로 정리된 자료가 전무하다거나 생산했던 제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드물다는 것을 꼽을 수가 있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란 글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작년 11월에서야 국내 최초의 릴이라고 하는 바이킹 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일본의 전통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는 대나무낚싯대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낚시문화는 정립할 수가 없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해 보인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한국 대나무 낚싯대의 역사

 

일본의 다이와가 최초의 스피닝 릴인 “스피닝 1형”이란 모델을 출시한 것은 1955년, 시마노가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한 것이 1971년의 일이니 서울조구에서 순수한 국내기술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바이킹 시리즈를 출시한 1978년은 그리 늦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런 시장구조를 가지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는 누구의 책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더라도 소비자인 낚시인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가 보면 그 해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음식도 편식하면 몸에 좋지 않은 것처럼 특정국가의 제품만을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에 대하여 사회에 공헌하라거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경영에 임해달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수입선다변화’란 말은 1977년에 일본을 겨냥해 만들었던 ‘수입선다변화제도’에 기인하고 있는 것인데 일면 국내경제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대기업의 수익창출에 큰 역할을 했던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사회에서 수입선을 다변화 하는 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산업의 하나가 바로 낚시용품업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쳇말로 널린 게 스피닝 릴 업체인데 무엇 때문에 일본제품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지… “세계에서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업체가 널려있다고?”라고 반문할지도 모르는 업계 분들을 위해서 좋은 사례를 짚어보는 것으로 오늘의 얘기를 끝맺도록 하자.

스포츠용품 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는 미국의 경우, 애비 앤 임브리(ABBEY & IMBRIE)란 회사에서 최초로 낚시용 릴의 상표등록을 한 1877년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600여 개의 미국회사 제품들이 상표등록을 하였는데 이것은 수천 가지 모델이 생산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중에는 스피닝 릴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국내업체들 모두가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라인을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롤모델로는 스포츠용품의 강자 나이키를 떠올려도 되고 의류제품으로 유명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를 생각하면 된다.

나이키는 이해가 가지만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스피닝 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시장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릴의 유통사업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자체상표를 붙인 제품 외에도 에드워드 폼 호프(Edward vom Hofe)가 설립한 회사의 제품을 비롯하여 하디 등, 당시에는 유명했던 낚시용품업체들의 제품을 유통하고 있었다.

누군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계는 넓고 스피닝 릴 생산업체는 억수로 많다.”라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면 자신조차도 그다지 재미가 없는 무미건조함을 느끼는데, 그래서 오늘은 살짝 양념을 더해본다.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낚시용품을 유통하고 있을 때 눈엣가시 같은 경쟁업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있는 VL & A(Von Lengerke & Antoinne)란 곳이었다.

VL & A의 릴

 

회사의 이름 ‘본 렌게르케 앤 안토인네’에서 보듯이 이 업체는 이탈리아 출신이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1891년에 시카고에서 설립된 이곳은 1892년에 뉴욕에서 설립되었던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와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그야말로 피 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VL & A이 그 유명한 알 카포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두 회사는 낚시용품의 유통도 하고는 있었지만 그보다는 총기류의 유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VL & A은 알카포네가 이끄는 폭력조직의 무기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2년 알 카포네가 앨커트래즈에 수감되는데 결정적 동기가 되었던 사건의 하나가 1929년 밸런타이데이에 일어나는데 1929년 2월 14일, 알 카포네의 조직원 5명은 7명의 상대조직원들을 기관총으로 살해한 이 사건을 두고 미국에서는 ‘밸런타이데의 대학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에 사용된 총기류 가운데 2정이 VL & A이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면서부터 VL & A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1938년에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낼름 집어삼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부가 사파리 의류를 단골로 구매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번창했으며 아래의 사진은 당시 플라이릴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던 탈봇에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의 이름을 붙여 생산했던 모델이다.

To be continued…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

위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릴을 사용한 낚시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릴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홈페이지에도 해당업체의 역사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곳은 없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넘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오래된 낚시친구와도 같은 1971년 2월 15일에 창간된 낚시 전문 월간지 낚시춘추에 의하면 한국에서 릴을 최초로 생산한 곳은 이전의 포스팅 “낚시인들도 잘 모르는 시마노 릴의 다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의미”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서울조구라고 하는 회사이며 최초의 모델은 ‘바이킹 222, 333, 555 시리즈’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서울조구의 홈페이지에도 이런 자료는 없으며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되질 않는데, 이제는 이런 일들이 익숙하다 보니 당연한 것처럼도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서울조구에서 생산한 한국최초의 릴 이름이 “바이킹”이라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왜 바이킹으로 정했을까?라는…

 

다이와의 바이킹 77

 

서울조구의 홈페이지에 있는 회사의 연혁을 보면 1986년부터 시마노의 제품을, 1989년부터는 다이와의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나오는데 다이와가 서울조구와 거래를 하기 이전인 1975년에 이미 “바이킹 77”이란 이름의 릴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서울조구가 처음으로 출시한 ‘바이킹 시리즈’에 대해서 조금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바이킹이란 릴의 이름 때문에 또 다시 일본의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출처: 서울조구 홈페이지

 

일본최초의 릴의 생산은 우에노제작소란 곳에서 생산한 “피시 올림픽 릴”이라고 하는 것으로 1936년의 일이었으니 한국보다는 42년이나 앞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전후(戰後) 복구사업이 이루어지고 점차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릴이 멀리 던지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등의 이유로 1954년에 아웃 스풀 방식의 스피닝 릴을 개발하게 되고 1956년에 “올림픽 93”이란 이름으로 발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릴낚시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후지공업에서도 소형 스피닝 릴을 만들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이와가 릴을 처음으로 생산하는 것은 1955년으로 그 모델명은 “스피닝 1형”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뛰어든 시마노는 1970년부터 낚시용품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였으니 최초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2010년에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발표한 것을 본 기억이 나는데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시마노가 시장점유율 1위이며 다이와는 4위로 시마노의 절반 정도의 매출을 이루었다고 하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아무튼 1955년부터 릴을 생산하기 시작한 다이와가 1975년에 출시한 ‘바이킹 77’이란 모델명에 붙은 77은 스풀의 직경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도 있는데 기술력이 부족한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려면 기존업체들의 제품을 분석하고 모방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릴을 만들었다는 회사의 홈페이지에도 이런 영광스런 역사를 기록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의아함 마저 들며, 현재 릴을 생산하고 있는 은성사나 바낙스 또한 업체의 연혁을 연대기로 기록하고 소비자들에게 성장하는 모습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경영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쉽지만 한국최초의 릴이라고 하는 “바이킹 시리즈”를 실물로 보지도 못하였고(수정 2018년 11월에 2개를 구하였습니다.) 추후에라도 자료가 보강되면 내용을 수정·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제품의 성능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나중에 올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