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어대전 제2장: 수달과 처브 이야기

조어대전 제2장: 수달과 처브 이야기

사냥꾼: 딱 맞춰서 오셨군요.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마침 해도 뜨는군요. 지금 개들이 수달 한 마리를 잡았는데 저 언덕 아래에 있습니다. 수련과 꽃냉이가 무성하죠. 보세요. 개도 사람들도 정신이 없어요.

낚시꾼: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오늘 사냥은 출발이 좋군요. 인사는 그만두고 우리도 빨리 가봅시다.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습니다. 울타리건 도랑이건 넘어서 갑시다.

사냥꾼: 어디서 수달을 잡았습니까?

수달사냥꾼: 여기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닥치는 대로 송어를 잡고 있던 걸 발견했는데 더 먹지도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송어를 잡고 있었죠. 그리고 마침 그때 우리가 도착했는데, 먹다 남긴 게 이만큼이나 있었습니다.

그 뒤 우리는 수달에게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쫓았죠. 이젠 개와 사람들이 있으니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니 조금만 있으면 숨통을 끊고 가죽을 벗길 수 있을 겁니다.

사냥꾼: 수달 가죽이 값어치가 있습니까?

수달사냥꾼: 장갑을 만들면 10실링은 받을 수 있어요. 비 오는 날엔 수달 장갑보다 좋은 게 없어요.

낚시꾼: 재미난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짐승을 사냥 중인가요? 아니면 물고기를 잡는 중인가요?

수달사냥꾼: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냥꾼: 살코기는 먹지 않는다고 맹세한 카르투시오 대학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문제는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 왔지만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군요. 그러나 수달의 꼬리는 물고기라는 것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입니다. 만일 수달의 몸통도 물고기라고 한다면 물고기가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게 되지요.

왜냐면 때때로 수달은 새끼에게도 먹이고 자기도 먹을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룻밤에 5~6마일에서 10마일까지 이동합니다. 비둘기가 아침을 먹으려고 40마일(64㎞)을 날아가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런데 수달은 물고기를 많이 먹기도 하지만 먹지 않으면서도 장난삼아 물고기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힌다는 점이 문제랍니다. 라틴어로 수달을 ‘개담비(Dog-fisher)’라고 하는 이유는 물속에서 100야드 떨어진 곳에 있는 물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콘라드 게스너의 말에 의하면 더 먼 곳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달의 음낭은 간질병에 좋다고 하며 베니오네라는 약초를 아마포에 싸서 수달이 나타나는 곳에 매달아 두면 그곳을 피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물속이나 땅에서 모두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죠.

콘월엔 용감한 수달이 아주 많은데 학식이 높은 캠던의 말에 의하면 오터시(Ottersey)라는 강이름은 수달이 아주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가 제가 수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수달이 숨을 쉬려고 올라왔군요. 사냥개가 달려들고 있어서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스위트립스란 이름의 개가 수달을 잡은 것 같으니 어서 가봅시다.

사냥꾼: 이런, 말을 탄 분들이 모두 강을 건너버렸네요. 어떡하죠? 우리도 따라서 건널까요?

수달사냥꾼: 이뇨.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셨다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말을 탄 사람들과 개들이 이쪽으로 불쑥 나타날 거고 수달도 분명히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까 킬벅이란 개에게 맡깁시다. 수달은 또 숨을 쉬러 나올 테니까요.

사냥꾼: 과연 그렇군요. 구석에서 숨을 쉬고 있어요. 방금 링우드란 이름의 개가 잡았어요. 앗, 수달에게 물리면서 놓쳤네요. 이제 스위트립스가 수달을 잡았고 개들이 모두 덤벼듭니다.

물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이젠 수달도 지쳤군요. 스위트립스, 수달을 가지고 와! 자, 보세요. 이 녀석은 암놈이고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으니 잡았던 곳으로 다시 가보면 분명히 새끼들이 있을 테니 잡아서 모조리 죽여야죠.

수달사냥꾼: 자 수달을 잡은 곳으로 가봅시다. 이 근처에서 서식했던 모양인데, 보세요, 정말 5마리의 새끼가 있죠? 모두 죽입시다.

낚시꾼: 잠깐만요. 길들여 보고 싶어서 그러니 한 마리만 산 채로 제게 주십시오. 레스터셔에 사는 닉 시그레이브란 분이 기발한 재주가 많은데 그분은 수달을 길들여 물고기를 잡게도 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난 일을 많이 시킨다고 해요.

수달사냥꾼: 네, 한 마리 가져가시면 나머진 죽일 겁니다. 그럼 이제 맥줏집에 가서 ‘올드 로즈’를 부르며 다 함께 건배를 합시다.

사냥꾼: 낚시꾼 양반, 함께 가시죠. 오늘 밤엔 제가 쏘겠습니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정도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낚시를 배우려면 제가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으니까요.

낚시꾼: 좋습니다. 서로 대접도 하고, 함께 즐기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사냥꾼: 그럼 함께 낚시를 하러 갑시다.

낚시꾼: 그럽시다. 수달사냥꾼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오늘 다시 암수달을 잡아서 새끼들과 함께 죽이는 재미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냥꾼: 그런데 어디서 낚시를 시작하죠?

낚시꾼: 아직 낚시하기엔 마땅하지 않고 1마일은 더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사냥꾼: 걸으면서 이야기하시죠. 어제 묵었던 숙소 및 주인과 일행들이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여관주인은 재미난 사람이었죠?

낚시꾼: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수달을 죽일 수 있어서 기뻤고, 수달사냥꾼들이 많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수달을 사냥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는 점과 어족보호를 위한 금어기(禁漁期)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강의 파괴는 심해질 겁니다. 법과 금육일을 지키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어육(魚肉)이 부족하면 육식을 강요당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냥꾼: 금어기란 언제를 말합니까?

낚시꾼: 3월, 4월, 5월의 3개월을 말합니다. 이 시기는 보통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는데 거슬러 오르는 도중에 불법적인 둑이나 덫에 의해 남획(濫獲)되면 산란은 수포가 되고 맙니다.

에드워드 1세와 리차드 2세의 시대에는 금어기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남획을 막고 있었다는 것은 법률에 밝은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저처럼 법률지식이 없는 사람조차도 금어기를 정한 법률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모두의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천관리인도 부끄러워할 정도로 작은 법적 기준 이하의 크기인 물고기와 그것을 잡을 수 있는 그물이 시장에서 매일 판매되는 양이 그토록 많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란기의 물고기를 잡는 것은 자연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새끼를 부화하고 있는 둥지에서 어미새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느님께서도 신명기(신명기 22장 6, 7절)에서 그런 행동을 금하는 율법을 만드셨습니다.

※ 원본에는 레위율법(신명기 22장 6, 7절)이라고 적혀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레위율법을 신명기로 해석하였다.(in the Levitical law (Deuteronomy xxii. 6, 7)

하지만 불쌍한 물고기들에게는 그런 잔혹한 어부들 외에도 적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까 말한 수달을 비롯하여 가마우지, 알락해오라기, 물수리, 갈매기, 왜가리, 물총새, 고라라, 푸엣, 백조, 거위, 오리, 그리고 물쥐라고도 하는 크래버 등등 모두가 없애고 싶은 것들뿐이지만, 저는 불필요한 살생은 싫어하기에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저는 물고기만 상대하고 나머지는 자연의 순리에 맡겨 둡니다.

이제 아까 하신 술집 주인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드리면, 사실 그분은 제 취향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성경을 모독하는 농담이거나 음란한 농담이어서 위트가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악마는 그와 비슷한 성격의 인간에게 다가가 그런 성정을 부추기거나 아니면 그런 사람은 스스로가 좋아해서 외설적인 언어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죠.

그러나 뛰어난 화술로 모두를 즐겁게 하고 불경스런 말은 하지 않은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진정으로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밤, 바로 그런 분들이 있는 곳으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이 근처에 송어회관이란 곳이 있는데 저의 좋은 낚시친구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좋은 친구와 좋은 이야기는 미덕의 근본이죠. 그러나 어젯밤에 들은 것과 같은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어제 묵었던 여관주인의 애들은 아마도 아버지를 흉내 내서 나쁜 말을 할 겁니다.

게다가 어젯밤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지위와 명예도 있다는 사람들이어서 더더욱 유감스럽습니다. 신앙이 부족한 사람은 거지보다 구원받기 어려우니 최후의 심판이 있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제적인 예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시는 모든 부모와 예의범절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신앙을 가지지만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르침 받은 자의 신앙심은

더 두터워지리라.

이것은 진리를 표현한 것으로 모두가 인정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얘기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저는 예절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남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제 낚시로 화제를 돌리죠. 저쪽에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곳에서 분명히 처브(Chub)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잡으면 제가 잘 아는 깨끗하고 저렴한 가게에 가서 여주인에게 요리를 부탁하고 쉬면서 저녁을 먹도록 하죠.

사냥꾼: 처브는 제일 맛없는 물고기 아닌가요? 저는 저녁에 송어를 먹고 싶거든요.

낚시꾼: 절 믿으세요. 이 근처에는 송어를 잡을만한 포인트가 없습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 수달사냥을 하는 당신의 친구분들과 헤어지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에 벌써 해가 높이 떠버리고 말았습니다.

송어낚시는 저녁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처브는 당신 말처럼 맛이 없다고 소문나 있지만 요리하는 방법에 따라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사냥꾼: 어떻게 요리를 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까?

낚시꾼: 그건 처브를 잡은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여길 보세요. 보이죠? 일어서야만 보일 겁니다. 저기 스무 마리 정도의 처브가 있는데 저 중에서 제일 큰 녀석으로 딱 한 마리만 잡을 겁니다. 내길 해도 좋습니다.

사냥꾼: 와! 선생은 마치 고수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선생이 정말 제일 큰놈을 낚아 올리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어요.

낚시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보세요. 제일 큰 처브의 꼬리에 상처가 있죠. 아마도 파이크(강꼬치고기)나 다른 뭔가에 당한 걸로 보이는데 흰 점처럼 보이는군요. 저 녀석을 잡아보겠습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만 기다리면 꼭 저 녀석을 낚아 올리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냥꾼: 그럼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해 하시니까요.

낚시꾼: 제 솜씨가 어떻습니까? 제가 잡겠다고 했던 꼬리에 흰 점이 있는 녀석입니다. 이젠 이 녀석을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 아까 얘기했던 맥줏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에는 깨끗한 방들이 있고, 창가엔 라벤더가 만발하며 벽에는 20개 정도의 민요가 걸려 있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얘기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깔끔하고, 미인이고, 예의 바르며 지금까지 여러 번 요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제 방식대로 요리를 부탁할 것인데 분명히 맛있다고 느끼실 겁니다.

사냥꾼: 기꺼이 가겠습니다. 슬슬 배도 고파오고 아침부터 4마일 밖엔 걷지 않았지만 피곤하기도 해서요. 어제 사냥의 피로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낚시꾼: 그렇군요. 이제 곧 쉴 수 있을 겁니다. 말씀드린 맥줏집이 저기 보이는군요. 아주머니 안녕하셨습니까? 제일 맛있는 맥주부터 주시고, 이 처브를 요리해 주실래요? 지난번 8일인가 10일 전에 친구와 함께 여기 왔을 때 한 것처럼 요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빨리 좀 부탁할게요.

여주인: 예, 금방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낚시꾼: 아주머니가 정말 빨리 만들어 주셨네요. 어때요?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사냥꾼: 정말 그렇군요. 그럼 이제 기도하고 식사를 시작해볼까요?

낚시꾼: 어떻습니까? 맛있죠?

사냥꾼: 이렇게 맛있는 건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을 위해 건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낚시꾼: 무엇입니까? 그렇게 겸손하게 말씀하시니 무엇인지 듣기도 전에 들어드리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사냥꾼: 다름이 아니고 앞으로 당신을 스승님이라 부르도록 허락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선생은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분이시고, 게다가 낚시 솜씨도 뛰어나시고, 요리 또한 일품이시니 꼭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낚시꾼: 손을 이리 주세요. 지금부터 나는 당신의 스승이 되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낚시인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어대전 원작자 서문 번역

조어대전 원작자 서문 번역

이 글은 아이작 월턴이 그의 저서 ‘The Compleat Angler’의 제5판에 실은 ‘To the reader of this discourse’를 번역한 것입니다.

독자에게-특히 열정적인 낚시인들에게

저 혼자의 만족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세상에 낚시의 기법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썼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이 책을 펴냄으로써 좋은 반응을 얻고자 하는 욕심은 없지만 지금까지 받아온 정당한 평가마저도 잃어버리는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칭찬받지는 못할지라도 너그러운 관심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책은 완벽한 것이 아니므로 잘못된 부분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조언을 드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어 숙독하신다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충분히 아실 것이라는 것이 제가 가진 확신이며 자신감이고 비평에 대한 저의 각오입니다.

그러나 비평은 자유지만 너무 지나친 비평을 받게 된다면 저자의 자유로 그런 것들은 지나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유의하실 사항은 제가 이 책을 쓰는데 있어서 저는 낚시를 통해 또 다른 오락을 즐길 수 있도록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곳곳에 많은 배려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천진난만한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비난하신다면 그런 사람은 너무나 까다로운 사람이므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런 분들의 비평은 사양하겠습니다.

덕망 높은 분들이 말씀하듯 실수란 저지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배려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마디로 제 기분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장사를 접고 낫(Nat)과 로우(R. Roe)와 함께 낚싯줄을 드리우는 그 기분 그대로를 꾸밈없이 쓴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러나 함께 낚시를 즐겼던 동료도 이제는 세상에 없고, 나의 즐거웠던 추억도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도 송어나 그 밖의 물고기의 그림만큼은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 그림들은 제가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칭찬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책의 실용적인 면에 대하여 말씀 드리면 물고기의 습성이나 산란, 제철, 잡는 방법 등에 대한 저의 의견에 이견을 제기할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산란의 시기와 방법도 다르고 제철도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몬머셔스(Monmouthshire)의 3대강으로 알려져 있는 세번 강(River Severn), 와이 강(Wye River), 어스크 강(Usk River)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와이 강에서는 9월부터 4월까지가 연어의 제철인 반면 템스 강(River Thames)과 트렌트 강(River Trent), 혹은 그 밖의 많은 강에서는 한여름을 포함한 6개월이 제철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번 강 (River Severn)

물고기를 잡는 기술을 책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유명한 펜싱 선수였던 조지 헤일즈(George Hales)씨가 ‘펜싱 방어술 자습서(The Private School of Defence)’를 통해 펜싱을 가르치고자 했을 때 주변에서 비웃음을 받았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일즈씨의 책에는 도움되는 내용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이란 말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서만 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샀던 것인데,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낚시의 기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낚시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많은 낚시인들이 모르는 방법 등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하였으며 낚시를 사랑하고 즐겨 하는 사람들의 경험에서 참고가 되는 많은 것들을 모으고 동시에 이삭을 줍고자 했습니다.

낚시는 수학과 같아서 완전히 배울 수는 없습니다. 무한한 것은 완전히 가르칠 수도 없고, 완전하게 배울 수도 없어서 후세에게는 익혀야 할 새로운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낚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 책값 정도의 무엇인가는 분명히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 책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약속을 하고도 제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연구와 수집의 성과는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쯤에서 독자에게 드리는 글을 마무리 지어도 괜찮겠지만 다음 사항은 약간 덧붙일까 합니다.

송어 플라이 낚시에서는 12개월마다 각각의 다른 날벌레를 사용해야 한다고 많은 낚시인들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 규칙을 따른다 하더라도 맑은 날을 골라 건초를 만드는 것처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많이 보이던 날벌레도 다음 해에는 춥거나 더움에 따라 한 달 일찍, 또는 한 달 늦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낚시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12마리의 날벌레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충분히 설명하였으니 날벌레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웨일즈나 다른 나라에는 일정한 지역에만 있는 날벌레들이 있기 때문에 말할 것도 없이 그곳에 서식하는 날벌레와 닮은 인조미끼를 만들지 못한다면 낚시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너 종류의 플라이는 여름 동안이라면 대부분의 하천에서 송어를 잡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겨울철 플라이 낚시의 경우에는 지나간 달력 정도의 효과뿐이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누구도 날 때부터 예술가가 아니듯이 태어날 때부터 낚시꾼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제5판에서는 저의 관찰과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해 얻은 것들을 많이 보충하였습니다. 비 오는 밤에는 이 책을 읽어주시기 바라며, 낚시를 하러 가실 때에는 동풍이 불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작 월턴

조어대전의 진실과 거짓

조어대전의 진실과 거짓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쓴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를 번역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동기 중에는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확대·재생산되어 전파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잘못된 정보는 네이버의 지식백과에도 나와 있는 “1653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가 25년에 걸쳐 다섯 번의 수정판이 나와 1676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역시 네이버의 지식백과에도 나오는 “낚시 친구인 C.코튼이 가필한 증정판(1676)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는 내용이다.

두 가지 내용이 일견, 동일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으나, 첫 번째는 조어대전이 21장으로 늘어난 것은 1676년이 아니란 점이며, 두 번째는 찰스 코튼이 가필한 증정판이 아니라 아이작 월턴이 가필한 것이라는 점이 잘못된 내용이란 것이다.

먼저 “1653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가 25년에 걸쳐 다섯 번의 수정판이 나와 1676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내용의 오류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이작 월턴의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은 1683년 아이작 월턴이 사망하기까지 1653년의 초판을 필두로, 1655년에 제2판이 나왔고, 제3판과 제4판은 1661년과 1668년에 각각 출판되었으며, 제5판은 1676년에 출판되었다.

초판에서 13장(章)에서 불과하였던 것이 전체 21장(章)으로 늘어난 것은 1676년의 제5판이 아니라 1655년의 제2판이었고, 페이지 수도 100페이지 이상이나 증가하였다. 그리고 1661년의 제3판은 변화가 없었으며, 1668년의 제4판은 단지 정오표(errata)만 추가된 것이었다.

그리고 1676년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제5판이 출판되었는데 아이작 월턴이 집필한 부분은 단지 내용만 10페이지가 추가되었을 뿐 장(章)수는 제2판과 같은 전체 21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1653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가 25년에 걸쳐 다섯 번의 수정판이 나와 1676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내용은 잘못된 정보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두 번째, 1676년의 제5판은 “낚시 친구인 C.코튼이 가필한 증정판”이 아니란 점이다. 제5판은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플라이피싱에 관한 내용을 쓰고 아이작 월튼이 가필(加筆)한 것을 제2부로 합본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조어대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소개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되므로 제5판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내용을 소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1676년에 나온 제5판은 아이작 월턴이 쓴 제1부와 찰스 코튼이 쓴 제2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베너블즈(Robert Venables)가 쓴 “능숙한 낚시인과 낚시기술의 향상(The Experience’d Angler or Angling Improv’d)”이란 책을 제3부로 합본하여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전체 장(章)수가 21장이라고 하는 정보도 아이작이 쓴 내용만 21장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이며 찰스 코튼이 가필한 것도 증정한 것도 아니란 것이 올바른 정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가가 아닌 군인이었던 로버트 베너블즈가 쓴 제3부는 아이작 월턴과 찰스 코튼의 글에 비해 문학성에 있어서 너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2쇄부터는 제외하고 출판됨으로써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쓴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의 제5판은 그가 쓴 1부와 찰스 코튼이 쓴 2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또한, 1676년에 나온 제5판의 1쇄는 제목도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가 아니라 ‘The Universal Angler, Made so by Three Books of Fishing.’였으며, 2쇄는 제1부와 제2부로만 구성되었고, 3쇄는 찰스 코튼이 쓴 제2부만으로 출판되었다.

다시 네이버의 지식백과로 돌아가 보면, 아래의 삽화가 다락원에서 출판한 조어대전에 삽입된 그림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삽화는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에 삽입된 것이 맞긴 하다. 그러나 조어대전을 출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위의 삽화는 아이작 월턴의 연재를 통해 소개한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라는 수녀가 쓴 성 알반스의 책(The Boke of St. Albans)의 1496년 증보판에 삽입된 것으로 줄리아나 수녀의 이름 앞에 수식어(Dame)를 붙인 윈킨 드 워드(Wynkyn de Worde)가 책을 출판하면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1760년에 존 호킨스(John Hawkins)란 사람이 The Compleat Angler(조어대전)을 출판하면서 이 삽화를 집어넣었던 것인데,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채 만들어진 정보들이 이 삽화를 조어대전에 수록된 것이라고만 소개하는 바람에 목판화의 진실은 가려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현실을 도피했던 것일까?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현실을 도피했던 것일까?

‘The Compleat Angler’를 쓴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청교도혁명 당시, 투쟁 대신 일신의 안위를 택하였다는 비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평가와는 달리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이 왕당파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일화가 있음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가 부족한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유보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작이 왕당파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화도 그의 친구를 통해 전해진 것이어서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일화를 하나만 살펴보도록 하자.

‘The Compleat Angler’의 초반부에서 아이작은 자기 친구 중에 엘리아스 애쉬몰(Elias Ashmole)이란 사람이 있으며 그가 신기한 자료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엘리아스 애쉬몰(Elias Ashmole)

 

애슈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

 

이 같은 인물이 1672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가터 훈장의 역사’에서 아이작 월턴이 왕당파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니 허구(虛構)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우스터 전투(Battle of Worcester)에서 올리버 크롬웰에게 패배한 찰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는데 도주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탄로날 것을 우려해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대령은 레서 조지(Lesser George: 일명 가터 훈장)를 조지 발로우(George Barlow)의 아내에게 맡겼다.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레서 조지(Lesser George)

 

그러나 찰스 2세는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대령은 붙잡혀 런던타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편 그가 맡겨놓았던 찰스 2세의 레서 조지(Lesser George)는 로버트 에스콰이어(Robert M. Esquire)에게 전해졌고, 그는 이것을 다시 아이작 월튼에게 건네주었다.

당시 도주하던 찰스 2세에게는 1천 파운드의 현상금이 걸려있었고, 그의 도주를 도운 사실이 드러나면 최대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작 월튼이 동료들이 피 흘려 싸울 때 유유자적했다는 평가와는 다른 행동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책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찰스 2세의 레서 조지를 전달받은 아이작은 런던타워에 갇혀 있던 토마스 블레지(Thomas Blagge) 대령에게 이것을 은밀하게 전달하였고 토마스 대령은 런던타워를 탈출하여 그것을 망명 중인 왕에게 전했다고 한다.

만일 아이작 월턴의 이런 행동이 발각되었더라면 그는 최악의 경우,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비겁자의 길을 택했다는 평가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보인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서 보듯이 아이작 월턴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상당히 부족하여 아직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기에는 모자란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이제 다시 번역하고 있는 ‘The Compleat Angler’로 돌아가 보자.

몇 차례 소개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초판과 5판을 번역한 두 권이 다락원과 강마을을 통해 출판되었다.

그런데 원본에 나오는 사냥꾼을 뜻하는 Venator를 역자(譯者)인 안동림 교수님과 이재룡씨 모두 나그네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나그네(旅人)라고 번역한 일본의 영향이 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10편으로 마무리하려는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에 대한 글이 벌써 8번째에 이르렀다.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쓰고 아이작이 가필(加筆)한 2부에서 찰스 코튼은 “책에 나오는 사냥꾼(Venator)은 바로 자신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인 낚시꾼(Piscator)은 아이작 월턴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만일 The Compleat Angler의 초판에 나오는 사냥꾼(Venator)도 찰스 코튼이었다면 60세의 스승과 23세 제자의 격의 없는 모습에서 얼마나 아이작이 찰스 코튼을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자녀들이 대부분 일찍 세상을 떠난 이유도 있겠지만 찰스 코튼을 아들이라고도 불렀던 아이작 월턴의 모습에서 찰스 코튼은 그에게 제자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잘 알 게 만든다.

비 내리는 일요일, 창가에 부딪는 빗방울을 보면서 스스로 자문해본다.

내겐 찰스 코튼 같은 사람이 있는가?

셰익스피어도 낚시를 즐겨 했을까?

셰익스피어도 낚시를 즐겨 했을까?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을 쓴 아이작 월턴(Izaak Walton)과 동시대에 살았던 문호(文豪) 셰익스피어도 낚시를 즐겨 했을까? 하는 것은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오래된 궁금증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에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사망하였고, 아이작 월턴이 1593년 8월 9일에 태어나 1683년 12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셰익스피어가 아이작 월턴보다 대략 30살이 더 많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을 때는 아이작 월턴이 낚시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던 시기도 아니었으며, 전기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도 셰익스피어가 죽고 난 뒤 25년 후의 일이니 두 사람 사이의 접점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작 월턴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었을 가능성은 아주 높으니, 그 속에서 대문호의 낚시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을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낚시에 관한 얘기들이 있다면.

셰익스피어가 과연 낚시를 즐겨 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영국인들의 생각은 정확하게 반반으로 나뉘어 있어서 아직은 그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으나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즐겨 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좋아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563년, 영국에서는 매주 수요일에는 생선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대중을 위해 제정되었던 것은 아니고, 어업을 통해 걷어 들이는 자금의 규모를 확대하여 정치자금 및 군사자금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법이 시행되고 있을 때 태어났던 셰익스피어는 생선을 어려서부터 자주 먹고 성장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생활하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회분위기는 ‘낚시란 시간을 낭비하고 시대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 것’이라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진 몰라도 영국 문예 부흥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란 평가를 받는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를 비롯하여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e) 같은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낚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낚시를 즐겨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의 하나인 것이죠.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 속에서 낚시에 대하여 언급을 한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관행을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낚시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어찌 보면 아전인수격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작품 속에서 낚시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는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소개한 것처럼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의 2막 5장에 나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오셀로의 2막 1장에는 ‘대구 대가리가 좋다고 연어 꼬리를 내주지는 않는 분별력을 갖추고 마음속을 다스릴 줄 아는 여자’라는 표현이 있고, 햄릿의 2막 1장에는 ‘거짓말을 미끼로 진실이라는 잉어를 낚자는 심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도 그가 낚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표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와 리어왕에서는 모두 6번이나 장어에 대한 표현이 나오고 있으며, 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는 적어도 12번 이상이나 물고기와 낚시에 관련된 표현이 나옵니다.

특히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The Merry Wives of Windsor)에서는 낚시용 부츠를 만드는 내용이 나오고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그 우울증을 미끼로 평판이라는 하찮은 모샘치를 낚는 흉내는 행여 말게나.” 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즐겨 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처럼 저 또한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다양한 어종에 대한 표현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낚시용 부츠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는 낚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어서 셰익스피어는 낚시를 즐겨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낚시를 즐겨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셰익스피어는 낚시를 좋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저의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

아이작 월턴과 조어대전-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The Compleat Angler’는 출판된 지 300년이 훨씬 지난 책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문의 내용 중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어기(fence months)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연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오는 3, 4, 5월을 말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3월~5월은 연어의 산란기가 아니란 점이 그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는 3월에 산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4월과 5월에 산란하는 연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350여 년 전의 낚시인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부분까지 지금처럼 발달한 과학 수준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아마도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The Compleat Angler’는 문학서로만 가치를 지니게 되지 않을까?

또한 그가 했던 낚시방법을 보면 과연 저렇게 채비를 운용하고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하려 든다면 번역서보다는 차라리 비평서(批評書)를 내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이다.

오늘도 서론이 길어졌는데 오늘의 주제인 셰익스피어와 클레오파트라의 얘기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은 ‘The Compleat Angler’에서 클레오파트라에 대하여 두 번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낚시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의 2막 5장에 나오기도 한다.

아이작이 썼던 원문을 보면 “And he that reads Plutarch shall find that angling was not contemptible in the days of Mark Antony and Cleopatra.”라고 적고 있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시대에도 낚시는 천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고 번역할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의 낚시하는 모습은 FTV의 다큐멘터리 ‘호모 하미오타-인류와 낚시’ 2부에서도 소개가 되고 있는데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과, 아마도 국내에서는 본인이 최초로 번역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줄리아나 버너스 수녀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낚시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시청을 권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래 제목은 대비열전(對比列傳)으로 라틴어로 비테 파랄렐레(Vitae Parallelae)가 원제(原題)인데 그 이유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명인들을 2명씩 서로 비교하면서 적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낚시하는 모습은 대략 아래와 같다.

어느 날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그녀의 배에 태우고 작은 어선들을 동반하여 나일강으로 낚시를 하러 나갔다. 이전에도 그녀와 낚시를 하면서 조과가 신통찮았던 안토니우스는 어부들에게 돈을 주고 물속으로 잠수하여 자신의 낚싯바늘에 물고기를 걸도록 시켰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하면서, 겉으로는 크게 감탄하며 내일은 훨씬 많이 잡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모든 사람들을 다시 초대했다.

그리고 다음날 클레오파트라는 하인들에게 명령하여 안토니우스의 낚싯바늘에 소금에 절인 생선을 걸도록 하였다.

이런 것을 몰랐던 안토니우스는 그날도 자신 있게 낚싯대를 올렸으나 걸려온 물고기는 소금에 절인 것이었으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꽤나 고생했을 것이 분명하다.

모멸감을 느꼈을 안토니우스를 달래기 위해서 클레오파트라는 “낚시는 가난한 이집트인에게 맡기십시오. 당신이 낚을 것은 많은 도시와 국가와 대륙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내용을 책에서 읽었던 아이작 월턴은 ‘The Compleat Angler’에서 이를 인용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었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2막 5장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And when good will is show’d, though’t come

too short,

The actor may plead pardon. I’ll none now:1060

Give me mine angle; we’ll to the river: there,

My music playing far off, I will betray

Tawny-finn’d fishes; my bended hook shall pierce

Their slimy jaws; and, as I draw them up,

I’ll think them every one an Antony,

And say ‘Ah, ha! you’re caught.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줄을 만드는 방법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줄을 만드는 방법

이 글은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가 쓴 ‘낚시에 관한 논문(The 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 중에서 낚싯줄을 만드는 방법 중의 일부분만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중세영어로 작성된 원문은 아래와 같으며 이하는 그것을 번역한 것이다.

낚싯대를 만든 후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낚싯줄을 염색하면 됩니다.

먼저 흰말의 꼬리털 중에서 가장 가늘고 긴 것을 고르는데 둥근 것일수록 좋습니다.

이런 것을 구하면 그것을 여섯 가닥으로 나누어 각각을 노랑, 초록, 브라운, 황갈색, 적갈색, 회색 등 마음에 드는 색으로 염색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싶을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 됩니다.

작은 냄비에 1쿼트의 에일(맥주)을 넣고 0.5파운드의 백반을 더한 다음, 말의 꼬리털을 넣고 30분 동안 끓인 다음 꺼내어 건조시킵니다.

그 다음에는 냄비에 물 0.5갤런을 넣고 목서초와 같은 염료식물을 두 줌 넣은 다음 돌로 눌러준 상태에서 30분 정도를 끓입니다. 그리고 노란색의 물이 떠오르면 이번에는 녹반가루 0.5파운드를 함께 넣어 반 마일 정도의 거리를 걷는데 소요되는 시간 만큼 더 끓여주십시오.

이 과정이 끝나면 불을 끄고 5시간~6시간 동안 천천히 식혀줍니다. 그리고 나서 털을 꺼내어 건조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낚시용으로는 최고의 녹색으로 염색되는데 이때 녹반을 많이 넣을수록 좋지만 산화한 구리의 겉에 있는 푸른 녹을 사용해도 됩니다.

이와는 별도로 다음과 같이 하면 더 밝은 녹색으로 염색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연한 납색의 나무통에 말의 꼬리털을 넣은 다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염색하면 되는데 이때는 위에서와 같이 녹반이나 산화한 구리의 겉에 있는 푸른 녹을 넣지 않아도 됩니다.

노란색으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작은 냄비에 1 쿼트의 에일(맥주)을 넣은 다음, 호두나무잎 세 줌을 넣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담가두면 됩니다.

(이하 생략)

대략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낚싯줄을 만들고 염색했다고 하며 책에는 낚싯줄을 어떻게 묶는지 하는 매듭법의 그림도 함께 기록하였다고 되어있으나 목판을 조각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도 번역한 것을 공개하려 하였으나 줄리아나 버너스와 관련한 책의 출판에 대한 제의가 있어서 그 결정에 따라 공개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지금은 생략한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대를 만드는 방법

줄리아나 버너스의 낚싯대를 만드는 방법

이 글은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가 쓴 ‘낚시에 관한 논문(The 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 중에서 낚싯대를 만드는 법에 대한 부분만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중세영어로 작성된 원문은 아래와 같다.

9월 29일부터 시작되는 성 미카엘 축일로부터 주님의 봉헌 축일인 2월 2일까지 9피트(2m 70cm) 정도의 곧은 모양의 나뭇가지와 양팔을 뻗은 길이만큼의 자작나무, 버드나무, 물푸레나무의 가는 가지를 잘라와서 오븐에서 가열하여 바르게 펴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식힌 후 한 달 정도 건조시킨 다음 새를 잡기 위한 그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끈(콕슈트)으로 단단히 감아서 긴 나무의자 위나, 아니면 요철이 없는 평평하고 굵은 나무에 묶어두십시오.

※ 새를 잡는 그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끈을 cokshote(현대영어로 cockshoot)라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배관용 와이어의 한쪽 끝을 갈아서 숯불 속에 넣고 하얗게 될 때까지 가열한 뒤, 그것을 묶어 놓은 나무 막대기의 양쪽 끝으로 넣어 구멍을 뚫습니다. 이때 양쪽의 구멍이 잘 맞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새를 구울 때 사용하는 꼬챙이를 사용하여 갈수록 구멍이 가늘어지도록 테이퍼(Taper)가 지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틀 동안 식힙니다.

그런 다음엔, 감았던 콕슈트를 풀고 천장(다락)에 올려 연기로 충분히 말려주십시오.

다음은 같은 시기에 따온 녹색 개암나무의 가지를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가열하여 곧게 한 후, 손잡이 부분과 함께 건조시킵니다.

건조가 끝나면 그것을 정확히 손잡이의 절반 길이로 잘라, 손잡이 안에 딱 맞도록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게 깎아주십시오.

이것이 끝나면 자두나무, 돌능금나무, 모과나무, 향나무의 가지를 잘라와서 곧게 펴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먼저 만들어둔 손잡이 안에 넣은 다음 묶어주고 바깥쪽을 깎아 끝이 가늘어지도록 테이퍼를 줍니다.

그리고 양 끝에 쇠붙이나 라톤(구리, 아연, 납 및 주석의 합금)으로 만든 고리를 페룰 부위에 연결하여 보강해주십시오.

이때 손잡이 부분을 강하게 고정하고 페룰 부분을 깎아서 1절 부분이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6가닥의 말총으로 단단히 감아서 보강하고 초릿대의 끝에는 다른 실을 달아 매듭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렇게 하면 낚싯줄을 연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이상으로 낚싯대를 만드는 것이 끝났습니다. 이렇게 하면 낚싯대를 가지고 다녀도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할 때마다 언제든 손쉽게 낚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첨부합니다.

낚시할 때 참고하는 해수면 온도는 수심 몇 m에서 측정한 것일까?

낚시할 때 참고하는 해수면 온도는 수심 몇 m에서 측정한 것일까?

바다낚시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특히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의 바닷물 온도를 출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실 때가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흔히 보시는 해수면 온도를 나타내는 사진은 얼마나 되는 수심에서 측정한 것인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은 바로 이 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해수온이란 표현은 바다의 표면에 가까운 물의 온도를 말하는 것으로 해수면온도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해수면과 표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해수면과 표층은 같은 의미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해양과학기술연구원의 문의게시판에 좋은 질문과 답변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에 주소를 기재해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해양과학기술연구원의 답변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해양과학기술연구원 문의게시판

“문의하신 해수면 수온과 관련하여 ‘해수면’, ‘해수 표층’ 또는 ‘해표면’에 대해서 명확한 구분을 가지고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영어로는 모두 SST(sea surface temperature)로 표현합니다.

다만, 관측 방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수의 수온은 해양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된 것은 해양학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수온측정은 1990년대 직전에 개발된 전도온도계가 시초입니다.

현재는 전기적인 센서를 이용한 CTD가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바다에 나가 여러 위에서 많은 관측을 하여야만 공간적인 분포를 얻을 수 있기에 많은 자원과 시간이 요구됩니다.

또한 수심에 따른 수온의 구조를 관측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지만 표면에 아주 가까운 수심의 수온을 관측하는 것에 제한이 있습니다.

때문에 표층에서 가장 가까운 수심의 수온을 ‘표층(surface layer)’으로 보고 분석합니다.

이때의 표층은 환경에 따라 1~3m 정도의 수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에는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넓은 영역에 대한 수온의 공간 분포를 관측합니다.

인공위성은 해수의 흑체복사에 의한 적외선을 분석하여 수온을 측정하는 원리입니다.

이론적으로 해양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적외선의 경우 수 mm를 넘을 수 없어 인공위성에서 관측되는 수온은 해수 표면의 1mm 이내의 수온으로 간주되므로 해수면(또는 표면, skin) 수온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현재는 두 수온값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는 해양 상층은 지속적인 혼합이 유지되고 있어 표층 내에서의 수온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혼합이 활발하여 수온의 변화가 크지 않은 상층 부분을 표면혼합층이라고 부르는데 해역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경우에 따라 수십 또는 수백 미터까지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CTD, 인공위성 원격탐사 등 관측에 사용한 방법을 명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지만 ‘해수면 수온’ 또는 ‘해수 표층 수온’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답변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으로는 낚시인들이 쉽게 접하는 해수면온도를 나타낸 사진은 인공위성에 의해 관측된 것으로 해수 표면의 1mm 이내의 수온이란 것과 표면혼합층의 수온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해수 표면의 1mm 이내의 수온과 수심 5m, 10m의 수온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사실 이 부분이 바로 낚시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수온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해수 표면의 1mm 이내의 수온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심까지를 표층이라 부르는데 더 정확하게는 표층혼합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표층혼합층은 그 깊이가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기상관측에서 정의하는 것이 다르므로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해면 부근에는 깊이 방향으로 수온 변화가 적은 층이 있는데 이것을 표층혼합층이라 하며 겨울철에는 표층혼합층이 두껍게 형성되지만 여름철에는 두께가 얇아집니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정의하자면 표층은 표층혼합층에 섭입대(subduction zone)의 깊이를 더한 것을 말하며 아열대에서는 0~100m의 표층혼합층+섭입대 600m인 700m가 표층을 이루고, 아한대에서는 0~200m의 표층혼합층+섭입대는 0이므로 200m가 표층이 되고 우리나라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광범위하게 정의하다 보면 사실 해수온도를 실생활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바닷물의 밀도가 해수면보다 0.5℃ 낮은 바닷물의 밀도와 같아지는 깊이까지를 표층혼합층의 두께로 정의하여 사용하고 있답니다.

1982년부터 2010년까지 29년 동안 우리나라 연근해의 표층혼합층의 두께는 여름철에는 지금 보시는 사진과 같이 10m 이하를 기록하고 있으며, 겨울철은 남서해는 여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동해에서는 100m를 넘기는 곳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의 포스팅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해안이나 방파제에서 원투낚시나 루어낚시, 찌낚시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인공위성에 의해 관측된 해수면온도를 그대로 참고하시면 되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글을 올리느냐고 물으실 수 있으실 텐데 앞으로 갯바위낚시나 선상낚시를 하실 수도 있을 것이므로 인공위성 사진에 나타낸 데이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조과에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함이었다고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해수면온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잖습니까?

약천집(藥泉集) 제28권 잡저(雜著) 낚시이야기-조설(釣說)

약천집(藥泉集) 제28권 잡저(雜著) 낚시이야기-조설(釣說)

우리 선조들께서 사용했던 낚싯바늘에 관한 내용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었던 남구만(南九萬)이 쓴 약천집(藥泉集)에 있는 조설(釣說)에 나오는 것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조설(釣說)에 나오는 “(주부들이 사용하는)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들었다.”는 것은 최초의 문헌은 아니다.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두보(杜甫)가 쓴 강촌(江村)이란 시다.

그 시를 보면,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애는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다(老妻畫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 노처화지위기국 치자고침작조구).”는 내용이 있는데 이 구절을 차용하여 우리의 선조들께서도 많은 시문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려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요 정치가였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쓴 목은시고(牧隱詩藁)로 제6권의 즉사(卽事)에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 꾀는 엉성도 하여라.(고침작조계우소: 敲針作釣計迂疎)”는 구절이 나온다. 바로 이 표현이 두보의 시 강촌(江村)에서 따온 것이다.

따라서 두보의 시로 미루어볼 때 신라시대부터 이런 낚싯바늘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형태의 바늘인지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정확한 모양은 확인할 길이 없다.

한편 남구만(南九萬)이 쓴 조설(釣說)은 낚시를 소재로 하여 도를 깨닫는다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래도 당시의 낚시에 대한 다양한 면들을 볼 수 있어서 중요한 사료(史料)라고 생각이 된다. 이에 약천집 제28권 잡저(雜著)편에 있는 조설(釣說)을 원문과 함께 기록해본다.

■ 약천집(藥泉集) 제28권 잡저(雜著) 조설(釣說)

세경술여귀전결성(歲庚戌余歸田潔城) 가후유지(家後有池) 종광수십무(縱廣數十武) 이심천육칠척이하(而深淺六七尺以下) 여장하무사(余長夏無事) 첩왕견엄우지(輒往見噞喁之).

경술년(1670년, 현종11년)에 고향인 결성으로 돌아오니, 집 뒤에 넓이는 수십 보요 깊이가 6, 7척이 조금 못되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긴 여름철 할 일이 없을 때면 종종 연못에 가서 물고기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떼 지어 노는 것을 구경하곤 하였다.

일일인인작죽일간(一日隣人斫竹一竿) 고침위조이증여(敲鍼爲釣以贈余) 사수륜어련의간(使垂綸於漣漪間) 여재경사구(余在京師久) 미상지조구장단활협만곡지도여하(未嘗知釣鉤長短闊狹彎曲之度如何) 이린인지증위선야(以隣人之贈爲善也) 수지경일(垂之竟日) 부득일린언(不得一鱗焉).

하루는 이웃 사람이 대나무 하나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고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 다음 나에게 주면서 물결 사이에 낚싯줄을 드리우게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 살았던 터라 낚싯바늘의 길이와 너비와 굽은 정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으므로 그저 이웃 사람이 주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다. 하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는 못하였다.

명일유일객래견구왈(明日有一客來見鉤曰) 시의불득어야(是宜不得魚也) 구지말태곡이향내(鉤之末太曲而向內) 어탄지수역(魚吞之雖易) 토지역불난(吐之亦不難) 필사기말소언이향외내가(必使其末少偃而向外乃可) 여사객고이향외(余使客敲而向外) 우수지경일(又垂之竟日) 부득일린언(不得一鱗焉).

다음 날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고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낚싯바늘의 끝이 너무 굽어 안으로 향했으니, 이것은 물고기가 바늘을 삼키기도 쉽고 뱉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반드시 끝을 조금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고 알려주므로, 내가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 밖으로 향하게 한 뒤, 하루 종일 낚시를 하였으나 역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명일우일객래견구왈(明日又一客來見鉤曰) 시의불득어야(是宜不得魚也) 구지말기향외이곡지권차태활(鉤之末旣向外而曲之圈且太闊) 불가이입어지구의(不可以入魚之口矣) 여사객고이착기권(余使客敲而窄其圈) 우수지경일(又垂之竟日) 재득일린언(纔得一鱗焉).

다음 날 또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며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낚싯바늘의 끝이 밖으로 향하기는 하였으나 바늘의 굽은 둘레가 너무 넓어서 물고기의 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고 알려주므로, 나는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바늘의 둘레를 좁게 한 다음 또다시 하루 종일 낚시를 했지만 겨우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명일우이객래(明日又二客來) 여시이구(余示以鉤) 차어지고(且語之故) 기일객왈시의득어소야(其一客曰是宜得魚少也) 구지억이곡지야(鉤之抑而曲之也) 필단기곡첨(必短其曲尖) 사근가이벽립(使僅可以擘粒) 차측곡첨태장(此則曲尖太長) 어탄지불몰(魚吞之不沒) 필차토의(必且吐矣) 여사객고이단기첨(余使客敲而短其尖) 수지양구(垂之良久) 탄구자루의(吞鉤者屢矣) 연인륜이추지(然引綸而抽之) 혹탈이락언(或脫而落焉).

다음 날 또 두 명의 손님이 왔기에 나는 낚싯바늘을 보여주면서 그동안의 사연을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한 손님이 말하기를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낚싯바늘을 눌러서 굽힐 때에는 반드시 굽힌 곡선의 끝을 짧게 만들어 싸라기 하나를 끼울 만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굽힌 곡선의 끝이 너무 길어서 물고기가 삼키려 해도 삼킬 수가 없기 때문에 틀림없이 내뱉었을 것입니다.”고 하기에, 나는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뾰족한 부분을 짧게 한 다음 한동안 낚시를 하였다. 이에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여러 번 물기는 하였으나 낚싯줄을 당겨 들어 올리면 빠져서 떨어지곤 하였다.

방일객왈피객지언(旁一客曰彼客之言) 어구야득의(於鉤也得矣) 어추야유의(於抽也遺矣) 부륜지유계개야(夫綸之有繫䕸也) 소이정부침이지탄토(所以定浮沈而知吞吐) 범동이미침야(凡動而未沈也) 탄혹미진(吞或未盡) 이거추지측위미급(而遽抽之則爲未及) 침이소종야(沈而少縱也) 탄차부토(吞且復吐) 이서추지측위이과(而徐抽之則爲已過) 시이필어기욕침미침지간이추지가야(是以必於其欲沈未沈之間而抽之可也) 차기추지야(且其抽之也) 항기수이직상지(抗其手而直上之) 칙어지구방개(則魚之口方開) 이구지말미유소지(而鉤之末未有所搘) 어순구이장간(魚順鉤而張齦) 여상엽지탈조(如霜葉之脫條) 시이필측기수세(是以必側其手勢) 약범수연이추지(若汎篲然而抽之) 연칙어방탄구어후중(然則魚方吞鉤於喉中) 이구내전첨어합리(而鉤乃轉尖於呷裏) 좌격우촉(左激右觸) 필유소섬엽이파견언(必有所㨛擸而爬牽焉) 차소이필득무실야(此所以必得無失也).

이것을 본 옆의 또 다른 손님이 말하기를 “저 손님이 설명한 낚싯바늘에 대한 것은 맞기는 하나 낚싯줄을 당기는 방법이 빠졌습니다. 낚싯줄에 찌를 매다는 것은 부침(浮沈)을 일정하게 하여 물고기가 바늘을 삼켰는지 뱉었는지를 알기 위한 것으로 찌가 움직이기만 하고 잠기지 않은 것은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아직 다 삼키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때 갑자기 낚싯줄을 당겨 올리는 것은 너무 빠른 것이고, 찌가 잠겼다가 약간 움직이는 것은 바늘을 삼켰다가 다시 뱉을 때로 이때는 천천히 당기면 늦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잠길락 말락 하는 때에 당겨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당겨 올릴 때에도 손을 높이 들고 곧바로 들어 올리면 물고기의 입이 벌어져 있기 때문에 낚싯바늘의 끝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고기가 낚싯바늘을 따라 입을 벌리면 낙엽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손을 마치 비질하듯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여서 들어 올려야 하고, 이렇게 하면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목구멍으로 삼킨 다음이어서 낚싯바늘의 갈고리 부분이 목구멍에 걸려 좌우로 요동을 치면서 펄떡거릴수록 더욱 단단히 박힐 것이니,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여우용기법(余又用其法) 수지이귀(垂之移晷) 득삼사린언(得三四鱗焉) 객왈법칙진어시의(客曰法則盡於是矣) 묘유미야(妙猶未也) 취여간이자수지(取余竿而自垂之) 윤여륜야구여구야이여이야(綸余綸也鉤余鉤也餌余餌也) 좌지처우여처야(坐之處又余處也) 소역자특지간지수이(所易者特持竿之手耳) 어내영구이상(魚乃迎鉤而上) 병수이쟁선(騈首而爭先) 기추이취지야(其抽而取之也) 약탐지어광이수지어반(若探之於筐而數之於盤) 무류수언(無留手焉).

내가 그 방법대로 하였더니 낚싯대를 드리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너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손님이 말하기를 “법은 여기서 다하였지만 묘리는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는 내 낚싯대를 가져다가 스스로 드리우니, 낚싯줄도 나의 낚싯줄이요 낚싯바늘도 나의 낚싯바늘이고 미끼도 나의 미끼요 앉은 곳도 내가 앉은 자리였고 단지 낚싯대를 잡은 사람의 손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물고기가 미끼를 보고 올라와서 머리를 나란히 하고 서로 물기를 다투면서 잡혔다. 낚싯대를 들어 올려 물고기를 잡는 것이 마치 광주리 속에서 물고기를 집어서 소반 위에 올리는 것과 같아 손을 멈출 틈이 없었다.

여왈묘개지차호(余曰妙蓋至此乎) 차우가이교여호(此又可以敎余乎) 객왈가교자법야(客曰可敎者法也).

내가 말하기를 “기묘함이 이 정도란 말인입니까? 이것도 또한 저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손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묘기가교야(妙豈可敎也) 약가교야(若可敎也) 우비소위묘야(又非所謂妙也) 무이측유일설(無已則有一說) 자수오지법(子守吾之法) 조이수지(朝而垂之) 모이수지(暮而垂之) 전정적의(專精積意) 일루월구이습습이성(日累月久而習習而成) 수차적기적(手且適其適) 심차해기해(心且解其解) 부여시측혹가이득지(夫如是則或可以得之) 여(與) 기미득지여(其未得之與) 혹가이달기미이진기극여(或可以達其微而盡其極與) 오기일이매기이삼여(悟其一而昧其二三與) 기혹일미유소지이반유이자혹여(其或一未有所知而反有以自惑與) 기혹황연자각이불자지기소이각자여(其或恍然自覺而不自知其所以覺者與) 차칙재자오하여언(此則在子吾何與焉) 오소이고자자지어차의(吾所以告子者止於此矣.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법(法)이니, 기묘함을 어찌 말로 가르쳐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만일 가르쳐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기묘함이 아닌 것이지요. 기어이 말하라고 한다면 한 가지 할 말이 있으니, 그대가 나의 법을 지켜 아침에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저녁에도 낚싯대를 드리워서 온 정신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날이 쌓이고 달이 오래되도록 익힌다면 손이 우선 그 알맞음을 깨닫고 마음은 그 풀이를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하더라도 기묘함을 터득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으며, 혹 그 은미한 것까지 통달하고 지극한 묘리를 다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 중 한 가지만 깨닫고 두세 가지는 모를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 미혹될 수도 있고, 혹은 스스로 깨닫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흐릿하다면 깨달음의 이유를 자신도 알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는 모두가 그대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찌 제가 간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올시다.

여어시투간이탄왈선부(余於是投竿而歎曰善夫) 객지언야(客之言也) 추차도야(推此道也) 해특용어조이이재(奚特用於釣而已哉) 고인운소가이유대(古人云小可以喩大) 기약차류자비야(豈若此類者非耶).

이에 나는 낚싯대를 던지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손님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 도를 미루어 어찌 낚시하는 것에만 쓸 뿐이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비유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객기거(客旣去) 식기설이자성언(識其說以自省焉).

손님이 떠난 뒤에 나는 그 말을 기록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