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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미군이 전사한 전투는?

미국이 참전한 전쟁 중에서 단일전투나 작전으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기록한 것은 아마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미국의 역사에서는 4번째로 기록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전사자를 기록한 전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26,277명의 전사자를 낸 “모이제-아르곤느 대공세”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통틀어서 전사자의 숫자를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서는 현격하게 적은 수의 전사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전한 미군이 가장 많이 사망한 2차 대전은 모두 291,557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는데 1차 대전의 전사자는 모두 53,402명으로 순위로는 세 번째에 해당하고 두 번째로 많은 전사자를 기록한 전쟁은 남북전쟁으로 모두 214,938명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많은 미국인 병사들이 숨진 남북전쟁 동안 가장 많은 전사자를 기록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숫자는 3,155명인데 이보다도 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은 전투가 2차 대전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참전한 전쟁으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꼽을 수 있기에 분명 이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는데 지금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군이 가장 많은 전사자를 기록한 전투는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겨울의 초입에 있는 11월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포털의 검색어와 뉴스에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관련한 세일에 관한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추위가 시작되는 11월 하순에 미국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10개의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국전쟁의 “장진호 전투”를 비롯하여 4개의 한국전쟁에서 있었던 전투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미군이 전사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베트남전쟁에서 치러진 전투 중에서 가장 많은 미군 전사자가 발생한 것을 5개만 추려보면 이 중 4개가 한국전쟁에서 일어났는데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전사자의 집계가 한국과 미국이 계산한 것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데 여기서는 미국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부산 교두보 전투(1950년 8월 4일~9월 18일)

북한군의 파상공세로 후퇴를 거듭하다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벌인 전투로 아직도 정확한 참전 병력의 숫자나 희생자에 대한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미군은 모두 4,599명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미군이 전사한 전투로 남아 있습니다.

 

2. 중공군 2차 대공세(1950년 11월 25일~12월 24일)

1950년 11월 28일 맥아더 장군은 “완전히 새로운 전쟁에 직면하였다”고 했을 정도로 전세가 역전되었던 전투인데 그 결과 중공군은 북한영토의 대부분을 탈환하게 되며 이로 인해 미군은 4,538명이 전사하였습니다.

 

3. 베트남전쟁 구정 대공세(1968년 1월 30일~9월 23일)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연합하여 베트남공화국과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대하여 벌인 공세로 3,178명의 미군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금방이라도 끝날 것만 같았던 전쟁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는데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7개 사단과 충돌하여 전투를 벌이며 철수한 작전이 바로 장진호 전투입니다.

 

그리고 전세가 불리해진 연합군사령부는 1950년 12월 8일 흥남철수를 지시하게 되었고 이것은 1·4후퇴의 시작이었는데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의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는 선적하고 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 1만 4천명을 태우고 12월 4일 부산항에 입항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레너드 라루 선장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면에는 미군 제10군단장의 민사고문으로 있던 의학박사 현봉학 선생의 노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며 미국 측의 기록으로는 모두 2,840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5. 제2차 청천강 전투(1950년 11월 25일~12월 2일)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중공군과 처음으로 치른 전투였던 온정리 전투에서 승리한 중공군은 청천강 방어선의 종심 깊숙이 침투를 감행하며 계속 남하를 기도하였고 중공군이 두 번째로 청천강에서 유엔군과 벌인 제2차 청천강 전투의 결과, 미 8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38선 이남으로 철수하게 되었는데 1,489명의 미군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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