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게 되고, 다가오는 6월 13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지게 되는데, 북한과 선거를 동시에 생각하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남북 민간교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1998년 6월 소떼를 몰고 방북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사에서 재벌들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여도는 논외로 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만 놓고 본다면 그들의 공을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재벌 창업주들 가운데 자서전을 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예를 들자면 단연코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주영 회장에 관한 일화는 많지만, 여기서는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주영 회장이 정치권에 몸을 담게 된 동기는 박상하씨의 저서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이란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정주영 회장은 “전두환의 5공화국 동안 기업에 어렵지 않을 때가 별로 없었지만, 창업자였던 아우 인영이가 옥고까지 치르면서 1전 한 푼 못 건지고 창원중공업 공장을 강탈당했던 기막힌 사건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 경제를 꾸준하게 발전시키려면 기업인의 능력만 가지고는 역부족이니까 언젠가는 정치를 해야겠다. 정치를 해서 정치가 열심히 기업을 이끌어 자기 기업을 성장시키는 모든 사람들한테 지장을 주거나 방해가 되는 일은 안 해야 되겠다. 그래야만 이 나라 경제가 경쟁력을 갖추고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새롭고 창의적이며 능력 있는 정치가들이 나와서 이 나라 경제를 수렁에서 건지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영원히 재기의 기회를 놓친다고 생각해서 정계에 나왔습니다.”라고 정계진출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계진출의 진정한 이유인지 검증할 수는 없지만, 이리하여 정주영 회장은 당시 일반대중의 많은 인기를 받던 김동길 교수를 영입하여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급기야는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까지 출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금권선거가 당시에는 노골적으로 자행되던 시절이어서 정주영 회장의 금권선거도 노골적이었으며 현대그룹의 임직원을 비롯하여 협력업체들을 동원하려는 시도 또한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의 하나가 대주주로 있던 “한국경제신문”을 동원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1964년 10월 일간스포츠신문이란 이름으로 창간한 현재의 한국경제신문은 1965년 10월에는 “현대경제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였는데 미디어오늘의 기사에 나와 있는 한국경제신문의 지배구조를 보면 현재의 대주주가 20.55%의 지분을 보유한 “현재자동차”인 것에서 보듯이 현대그룹의 자회사였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당시의 지분구조는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됨)
이런 한국경제신문을 통하여 자신의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정주영 회장의 캠프에서는 “1년 무료구독권”을 발행하여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도 60세를 전후하신 분들께서는 당시에 현대그룹에서 배포하던 무료구독권을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대선캠프에서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이 무료구독권이 사용되고 말았으니 정주영 회장으로서는 잘못된 판단을 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글을 적을 때 원래 사용하려던 제목은 “죽 쒀서 개 준 정주영 회장의 판단”이었으나 작고하신 분에 대한 내용의 글을 작성하면서, 조금은 지나치다는 판단이 들어 제목을 “현대 정주영 회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친 것입니다.
당시에는 가정마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은 세대가 없을 정도로 신문의 구독률이 높았지만, 한국경제신문의 경우에는 전국적인 배달체계를 갖추지 못해서 조선일보에 위탁하여 각 가정으로 신문을 배달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의 경제신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구독률을 자랑하던 매일경제신문은 동아일보의 배달망을 이용하고 있었고, 경쟁지였던 “한국경제신문”은 조선일보의 배달망을 이용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주영 회장 캠프에서 배포한 “1년 치 무료구독권”이 일선 신문보급소에서는 무료구독권을 받고 한국경제신문을 배달하는 대신에 구독권 소지자가 원하는 신문을 배달해주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이것은 결국 조선일보사에 경제적인 이득을 안겨다줌은 물론 정주영 회장에 대한 비판적인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도록 만드는 형국이 되어 선거에 도움은커녕 악영향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현대그룹의 임직원들을 비롯하여 통일민주당의 당원 수가 1,200만에 달했던 것에 비해 실질적으로 거둔 득표수는 380만 표에 그친 것으로도 알 수가 있듯이 돈을 뿌리고도 혜택은 엉뚱한 곳에서 받는 패착을 범하고 만 것이었지요.
한국경제신문을 보라고 무료로 나누어준 구독권으로 조선일보를 구독함으로써 정주영 회장의 선거에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성균관대 백선기 교수가 작성한 “2007 대통령 선거보도 주요 이슈 점검”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백선기 교수의 글을 보면 조선일보의 논조는 정주영 회장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 중 일부를 보면 “조선일보 역시 제1정당인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긍정적인 기호들을 활용하여 우호적인 이미지를 양산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제2정당인 민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에게는 아주 부정적인 기호들을 중심으로 활용하여 적대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제3정당인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에게는 이들 두 후보자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적으며 정통의 정치인이 아닌 경제인의 대통령직에 대한 도전에 다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정주영 후보에게는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긴 하나, 정책이나 비전 제시에 대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두 후보자들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어 ‘초조해 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선일보는 김영삼 후보에게는 ‘아주 우호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면서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으나 제3정당인 정주영 후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서울신문에 비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랑치고 가재 잡으려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만 금권선거의 한 자락을 보면서 오는 6.13 지방선거에 반드시 참가하여 주권을 행사함은 물론 불법·탈법이 자행되지는 않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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