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USS Pavlic

전장(戰場)에서 항복을 상징하는 백기(白旗)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백기가 항복의 의미로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218년부터 201년까지 벌어졌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카르타고를 침공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흰색 양모와 올리브 가지를 내건 적함을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배에 타고 있던 카르타고 병사 10여명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하였다는 것이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AD 56년~AD117년)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타키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69년 로마 내전 당시 일어났던 제2차 베드리아쿰 전투(Second Battle of Bedriacum)에서도 항복한 장병들이 백기를 내걸었다고도 한다.

따라서 로마 제국 시절부터 백기가 항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중세에 와서 서유럽의 나라들에서는 백기가 교전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어 포로의 모자에 흰색의 종이나 천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 후 포르투갈의 역사학자 가스파르 코레이아(aspar Correia)의 기록에 따르면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의 캘리컷(현재의 지명은 코지코드: Kozhikode)에 도착했을 때 영주였던 자모린(Zamorin)이 사람을 보내어 평화회담 개최를 요청하였는데 이때 사신이 흰색 천을 두른 지팡이를 들고 왔다고 한다.

물론 인도인들이 이런 백기를 들게 된 데에는 바스쿠 다 가마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면이 동기가 되었지만 그것은 오늘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쯤에서 멈추도록 하자.

한편 1625년에는 ‘자연법의 아버지’ 또는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가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의 법(De jure belli ac pacis: On the Law of War and Peace)’에서 백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백기를 드는 것은 회담의 개최를 요구하는 암묵적인 표시로써 말로 표시된 것과 동등한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말하는 백기는 무조건항복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전투의사가 없는 일방이 상대방과 회담을 하기 위해 백기를 들었다는 것은 회담이 결렬되면 다시 전투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항복이 아니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패배한 측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전쟁의 역사를 지닌 서유럽에서는 백기는 항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어 있었지만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 해군은 전통적인 백합문양인 플뢰르 드 리스(fleur-de-lis) 외에도 백기를 깃발로 사용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는데 아래의 그림은 1779년 12월 18일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 간의 마르티니크 전투(Battle of Martinique)를 묘사한 것으로 백기를 달고 있는 프랑스의 전함은 항복의 의미가 아니라 프랑스 해군의 상징으로 백기를 달고 있다.

 

그리고 아래의 그림은 미국 2달러 지폐의 도안으로 유명한 화가인 존 트럼불(John Trumbull)이 그린 것으로 미국독립전쟁을 사실상 끝냈던 요크타운 전투에서 벤저민 링컨(Benjamin Lincoln) 장군이 이끄는 미군과 미국을 지원하였던 프랑스군에 패한 영국군의 찰스 콘월리스(Charles Cornwallis) 장군이 이끌던 영국군이 항복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항복하는 장면이라고 하니 대부분은 왼쪽에서 백기를 들고 있는 군대가 영국군이라 생각하겠지만 왼쪽에 있는 군대는 프랑스군으로 백기는 그들의 상징이고, 중앙에서 말을 타고 있는 벤저민 링컨(Benjamin Lincoln) 장군의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것이 항복한 영국군들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백기는 1899년 네덜랄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1차 만국평화회의에서 국제적인 규칙으로 명문화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헤이그 제2협약)’이다.

이 협약(Convention with Respect to the Laws and Customs of War on Land (HagueII)의 32조는 ‘An individual is considered a parlementaire who is authorized by one of the belligerents to enter into communication with the other, and who carries a white flag. He has a right to inviolability, as well as the trumpeter, bugler, or drummer, the flag-bearer, and the interpreter who may accompany him.’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를 우리나라의 법전에서는 ‘교전자 일방의 허가를 받아 타방과 교섭하기 위하여 백기를 들고 오는 자는 군사로 인정된다. 군사와 그를 따르는 나팔수, 고수, 기수 및 통역은 불가침권을 가진다.’고 번역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협약의 제3장을 군사(軍使)로 표현하고 있으며 영문판에서는 휴전 깃발(On Flags of Truce)에 관한 것이라 되어있는데 이것은 백기를 거는 것은 엄밀하게는 항복의 의미가 아니라 협상을 요구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규정을 악용하여 백기를 들고 적을 방심시킨 다음 기습하는 등의 전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전시국제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휘관의 의사에 따라 백기를 걸더라도 일부 부하병력이 이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때에는 교전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해군의 경우에는 적함이 백기를 게양하더라도 포격을 중지하거나 포구를 아래로 내려 전투의지가 없음을 명확히 하기 전까지는 공격을 계속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백기를 드는 쪽은 전체의 일치된 의견으로 항복의사를 통일할 필요가 있지만, 상대방이 항복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육군도 마찬가지다.

이상으로 전쟁에서 항복의 의사표시로 사용되는 백기(白旗)의 역사와 유래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사족으로 몇 마디만 덧붙이고 글을 마칠까 한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19일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2020년 외교청서를 각의에 보고함으로써 그들의 망동은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었는데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백기를 들었던 일본은 그들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특기를 지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시 보여주마. 그날의 기억들을~

 

※ 연합뉴스의 사진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으며 일본의 입장에서 쓴 문서이므로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라고 번역하였다.

“한일 간에는 다케시마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다케시마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