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도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이것은 술을 즐기는 내가 좋아하는 안주인 생굴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계절이 왔다는 말과도 같다.^^
생굴과 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다.
원제는 ‘만일 우리의 말이 위스키였다면’이라는 뜻을 가진 ‘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であったなら(Supposing My Words Are Whiskey)’인데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レストランで生牡蠣の皿といっしょにダブルのシングル・モルトを注文し、殻の中の牡蠣にとくとくと垂らし、そのまま口に運ぶ。うーん。いや、これがたまらなくうまい。牡蠣の潮くささと、アイラ・ウィスキーのあの個性的な、海霧のような煙っぽさが、口の中でとろりと和合するのだ。どちらが寄るでもなく、どちらが受けるでもなく、そう、まるで伝説のトリスタンとイゾルデのように。それから僕は、殻の中に残った汁とウィスキーの混じったものを、ぐいと飲む。
“레스토랑에서 생굴 한 접시와 상글 몰트를 더블로 주문해서, 껍질 속에 든 생굴에 싱글 몰트를 쪼로록 끼얹어서는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정말이지 환상적인 맛이다.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굴맛과 아일레이 위스키의 그 개성 있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톡톡한 맛이 입 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 두 가지 맛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본래의 제 맛을 지키면서도 절묘하게 화합한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그런 다음 나는 껍질 속에 남은 굴즙과 위스키가 섞인 국물을 쭈욱 마셨다.”
물론 이전에도 생굴에 위스키를 따라서 먹는 문화가 있기는 했지만 이 책이 발간되고부터 일본의 오이스터 바(Oyster Bar)에서는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그러나 무라카미가 소개한 이 방법은 그 원조를 거슬러가면 ‘굴에는 샤블리’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설과도 같은 굴을 먹는 방법이 있다.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북부에 위치한 와인의 산지로, 여기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즉 생굴에는 와인이 어울린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종류의 굴을 먹는가에 따라서 샤블리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무조건 정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와인과 어울리는 굴은 우리가 이맘때면 쉽게 맛볼 수 있는 굴과는 조금 다른데 우리가 먹는 굴보다는 조금 납작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름도 유러피안 플랫 오이스터(European flat oyster)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프랑스에서 나는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로 진정한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는 벨롱강 하구에서 나오는 것을 일컬으며 여기서 나는 굴은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롤레(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의 인증과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는 1970년대에 멸종되어버렸고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나는 같은 종을 이용하여 전성기의 1% 정도만이 유통되고 있는데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가 얼마나 유명한가는 구글에서 벨롱 리버(Belon River)란 검색어로 이미지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자라지 않고 생명력도 약하며 갯벌에서 키워야 하는 벨롱 오이스터(Belon Oyster)는 양식에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품종이라 원래부터 비쌌지만 멸종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가격이 치솟았는데 지금은 중국에서도 대량으로 수입해가는 바람에 더 크게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거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생굴이라고만 했지 어떤 품종의 굴인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가 먹었던 굴은 귀한 벨롱 오이스터가 아니라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참굴의 한 종류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그런 다음 나는 껍질 속에 남은 굴즙과 위스키가 섞인 국물을 쭈욱 마셨다. 그것을 의식처럼 여섯번 되풀이한다.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인생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それから僕は、殻の中に残った汁とウィスキーの混じったものを、ぐいと飲む。それを儀式のように、六回繰り返す。至福である。人生とはかくも単純なことで、かくも美しく輝くものなのだ。)”라고 찬미한, 위스키를 굴에 따라서 먹는 방법은 이미 아일랜드에서는 오래전부터 먹어오던 방법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위스키 사랑은 커피에 위스키를 넣어 마시는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아일랜드의 위스키를 소개한 책 한 권으로, 일본의 레스토랑에서 위스키를 굴에다 따라서 먹는 새로운 문화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참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나 굳이 위스키를 따라 마실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미 즐겨오던 소라와 멍게껍질에 따라 마시던 것처럼 소주를 따라 마셔도 굴과 환상의 조합을 이루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