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Philip Halling이 찍은 브론테 자매의 동상
중학생 시절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원제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는 7번을 내리 읽었을 만큼 내게는 감명적인 소설이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을 꼽으라면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제인 에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샬롯 브론테는 우리에게 브론테 자매로 알려진 세 사람 중의 한 명이고 흔히들 맏이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녀의 위로 두 명의 언니들이 있었으나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사망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와 함께 소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쓴 에밀리 브론테와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를 쓴 막내 앤 브론테의 세 사람을 우리는 흔히 ‘브론테 자매’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들 자매는 소설을 출간하기 전에 공동으로 시집(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출판할 때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이 필명들이 모두 남자의 이름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앤 롤링이 2013년에 발표한 범죄소설 Cuckoo’s Calling은 ‘Robert Galbraith’라는 남자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고 출판사 편집자였던 David Shelley는 “여자가 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나중에 밝힌 바가 있었다. 이후 조앤 롤링이 쓴 것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변호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판매가 부진하던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조앤 롤링이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한 이유는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이와는 달리 오늘의 주인공들인 브론테 자매는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남자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즉 샬롯 브론테는 ‘Currer Bell’을 에밀리 브론테는 ‘Ellis Bell’을 막내인 앤 브론테는 ‘Acton Bell’이란 남자이름을 각각 필명으로 사용하였고 유명한 소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또한 본명이 아닌 그녀들의 필명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문학비평가들로부터 관대한 평을 받게 되면서 이들 자매는 필명이 아닌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폭풍의 언덕’의 4판의 서문에서 언니인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는 남자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Averse to personal publicity, we veiled our own names under those of Currer, Ellis, and Acton Bell; the ambiguous choice being dictated by a sort of conscientious scruple at assuming Christian names positively masculine, while we did not like to declare ourselves women, because — without at that time suspecting that our mode of writing and thinking was not what is called ‘feminine’-we had a vague impression that authoresses are liable to be looked on with prejudice 하략”
샬롯 브론테가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확실하게 남자의 이름이라고 알 수 있는 크리스천 네임이 아닌 애매한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남자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양심적인 망설임과 여성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 때문에 여성임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혼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 년도 훨씬 이전인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던 그녀들과는 달리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은 어떨까?
‘남녀 임금격차지수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글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세계의 성별 격차지수(The Global Gender Gap Index)에서도 대한민국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남녀의 임금격차는 2017년까지 15년간이나 연속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브론테 자매가 필명을 버리고 자신들의 본명을 사용한 것과 같이 우리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게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의 벽은 언제쯤 허물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