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탱크를 몰고 남편의 복수에 나섰던 여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첩보원으로 혹은 저격수로, 조종사로 전쟁에서 활약한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탱크를 몰고 전사한 남편의 복수에 나섰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05년 8월 16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가난한 소작농의 집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마리아 옥타브르스카야(Mariya Oktyabrskaya)”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였습니다. 지주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조차 없는 노예와도 같은 생활이었기에 마리아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공산주의를 따르게 되고 당원이 되어 통조림공장과 전화교환수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25년 “일리아 옥타브르스카야(Ilya Oktyabrskaya)”라는 육군장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군인 아내들의 단체인 “Military Wives Council”에 가입하여 간호교육과 무기와 운전 등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달콤한 결혼생활이었겠지만 둘 사이에 자녀는 태어나지 않았고 그러던 중 1941년 6월 22일 히틀러의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해오는데 3개월 정도면 소련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병력 380만, 탱크 3,350대, 항공기 2,770대, 야포 7,200문을 앞세우고 돌격해오고 이에 맞서 스탈린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탱크와 병력을 출동시킵니다.

그러나 며칠 전의 포스팅 “전차는 왜 포탑이 한 개만 있을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떨어지는 기동력과 얇은 장갑의 두께 그리고 고장이 속출하면서 소련군의 T-34, T-35전차는 독일군의 기민한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참패하면서 개전초기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탄약을 비롯한 보급품과 이를 운반할 수단이 부족하여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밀리게 됩니다.

T-34

전쟁이 발발하자 안전을 위해 시베리아의 톰스크(Tomsk)로 이주했던 마리아는 통신이 좋지 않았던 당시의 사정 때문에 남편 일리아가 1941년 8월에 키예프의 전투에서 벌써 사망했다는 사실을 거의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됩니다.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에 꿈에 그리던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펜을 들어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내 남편은 조국을 지키다가 전사했습니다. 나는 남편의 죽음과 파시즘 신봉자들로부터 고통 받는 인민들을 위해 파시스트의 개들에게 복수를 하기 원합니다. 이에 저는 그간 모은 돈 5만 루블을 기탁하오니 이 돈으로 탱크를 사서 이름을 ‘Fighting Girlfriend’로 해주시고 저를 그 탱크의 운전병으로 임명하여 내가 최전선선에 싸울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은 스탈린 휘하 국방위원회에서는 대국민 선전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겨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는데 러시아어로 “Боевая подруга”라고 하는 ‘Fighting Girlfriend’란 글자가 그녀가 탑승한 전차의 포탑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병력문제로 전차운전병에 대한 교육을 속성으로 마치던 관행과는 달리 그녀를 전장에 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선전수단으로 이용하려던 정부의 속셈 때문에 그녀는 운전교육만 5개월 이상을 받은 끝에 비로소 1943년 9월이 되어서야 제26 전차여단에 배속되어 운전병과 정비사로 복무할 수 있게 됩니다.

자대에 배치 받은 그녀를 향한 남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그들의 비아냥거림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스탈린의 무모한 명령에 따라 독일군에게 개박살이 나는 스몰렌스크의 전투에 그녀도 참가하게 됩니다.

 

그녀가 몰던 소련 T-34전차는 독일군의 저지선을 밀어내는 큰 역할을 하지만 손상을 입고 화염에 휩싸이게 되는데 다른 병사들과 달리 마리아는 침착하게 불을 끄고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여 다시 전투에 임해 독일군 3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행동 때문에 그녀는 상사로 진급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달여 뒤 비테브스크(Vitebsk)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군사퍼레이드 용으로는 번지르르한 외양으로 안성맞춤 이었는지는 몰라도 전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고장이 잦았던 T-34전차의 궤도가 끊어진 채 진흙탕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다시 그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차 밖으로 나갔고 이때 독일군이 쏜 포탄의 파편을 머리에 맞고 의식을 잃게 됩니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던 마리아는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2개월 동안의 혼수상태 끝에 1944년 3월 15일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고 그녀의 용맹성은 칭찬받아야 할 일임은 맞지만 이것을 선전수단으로 이용하려던 소련정부는 많은 여성들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마리아의 사후에 영웅칭호와 함께 골드메달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메달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며 그녀를 기리기 위해 톰스크에는 그녀의 흉상이 건립되었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든 게임까지도 등장하였습니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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