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낚시 이야기-찌의 역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파장이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요즘, 일본산 낚시용품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낚시인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전부터 나는 낚시용품의 대일본 무역역조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제품명에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안일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국내 조구업체들 및 낚시를 주제로 하는 무분별한 방송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오고 있었다.
낚시용품의 생산과 공급은 단지 한 가지 재화의 생산과 공급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는다는 점 때문에 특히 낚시용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문화를 창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삼성이나 LG 것을 사용하라거나 BMW나 벤츠를 모는 사람에게 현기차를 타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낚시용품의 사용도 강제하거나 애국심에만 기댈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이러한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내 낚시용품 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것이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제품의 출시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
차제에 일부 연예인들이 협찬이라는 미명하에 온통 도배하다시피 외국 브랜드의 용품을 입고, 들고 나오는 낚시를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들도 사회적 공익에 대하여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짐과 아울러 우리 낚시인들이 국내업체의 제품에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국내기업들에게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찌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의 서론이 너무 길어진 것 같지만 낚시용품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은 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찌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 사설이 길어진 이유이다.
찌낚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얼마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를 알아보는 것이 오늘의 주제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하여 미리 말씀을 드리고 시작할까 한다.
낚시의 역사, 그 중에서도 찌낚시의 역사는 서양보다 동양이 앞선다고 생각하거나 서양에서는 찌낚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어로 찌는 미국에서는 바버(bobber), 영국에서는 플로트(float)로 부르며 일본어로는 우키(浮き), 중국어로는 유퍄오(鱼漂)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모두 물에 뜬다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낚시에 사용하는 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질과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천차만별인데 오히려 그 명칭의 다양성은 동양보다 서양이 더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새의 깃털이나 나뭇가지 등을 찌로 사용하였다는 정보들은 전해지고 있으나 그 근거를 명확하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문헌으로 나타난 것을 근거로 동서양의 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찌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문헌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우리나라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영국인데, 글을 통해서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줄리아나 버너스(Juliana Berners)란 수녀가 1496년에 쓴 낚시에 관한 논문(Treatyse of Fysshynge Wyth an Angle)에 찌에 대한 얘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뒤로 제럴드 벤틀리의 책과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에도 찌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는데 주로 개인들이 자작(自作)하여 사용하던 것이 1920년경에 와서는 대량으로 생산한 제품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찌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문헌 상으로 찌가 처음 나타난 것은 1670년(현종 11년)에 지은 남구만(南九萬)의 문집 약천집(藥泉集) 권28 조설(釣說)이다.
그 책을 보면 부륜지유계개야(夫綸之有繫䕸也), 소이정부침이지탄토(所以定浮沈而知吞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해석하면 “낚싯줄에 찌를 다는 것은 떠오르고 가라앉는 것을 일정하게 하여 물고기가 바늘을 삼켰는지 뱉었는지를 알기 위함”이란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륜(綸)은 낚싯줄을 가리키는 것이고 겨릅대(䕸: 껍질을 벗긴 삼대)를 낚싯줄에 묶는다(䕸)는 것에서 이것이 찌를 말함이라는 것과 1670년대 이전부터 찌낚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찌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820년경 조선후기의 실학자 유희(柳僖)가 여러 가지 사물을 한글과 한문으로 풀이한 일종의 사전인 유씨물명고(柳氏物名攷)다.
한편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 초기에 물에 뜨는 돌인 경석(輕石)에 구멍을 뚫은 다음 실을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이것을 찌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는 있으나 이는 신뢰도가 현저히 낮은 것이며 현재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찌가 생산된 것은 1931년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교토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던 스가하라 쿠루마토라지로우(菅原寅次郎)란 사람이 이전까지 사용되던 누울찌가 아닌 자립형의 찌를 취미로 만들고 있었는데 1931년에 그가 사망하자 아들인 스가하라 요이치(菅原与一)가 본격적으로 이것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면서 바이스케(馬井助)란 이름의 찌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관동에서까지 큰 인기를 끌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1931년이란 연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02년에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고 1904년 2월 8일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으로부터 전쟁물자를 수송하기 위하여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신의주까지의 철도 건설을 계획하게 되는데 선로의 폭, 즉 궤간(軌間)을 일본 내에서와는 달리 동맹을 맺었던 영국이 청나라에 건설한 표준궤와 동일한 선로를 건설하는 것이 군수물자의 수송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1,435mm의 표준궤로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8년 10월 17일에는 영국이 개발한 “마크Ⅳ”전차가 일본 고베항에 도착하게 됨으로써 일본의 전차개발 100년의 역사가 시작됨과 함께 그들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조선침탈이 극에 달했던 시기의 일본은 영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였고 이것은 민간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바, 1920년경부터는 영국의 유명한 하디(Hardy)에서는 낚싯줄의 소재로 사용하기 위한 비단(실크)을 일본에서 대량으로 수입하였고 고베에 그들의 대리점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하디의 역사를 소개한 책을 보면 1937년에 고베에 설치했던 대리점에 관한 정보가 나오는데 이 시기를 통해 영국에서 생산한 찌들이 일본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럼으로써 이전까지는 없었던 지금의 구멍찌와 유사한 형태의 찌들이 일본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577년 제럴드 벤틀리(Gerald Eades Bentley)가 쓴 책 아트 오브 앵글러(Arte of Angling)에는 백조의 깃털을 이용하여 찌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는데 키스 하우드(Keith Harwood)의 책(The Float)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찌의 보급이 대중화 되었던 것으로 나온다.
서양의 찌를 소개하고 있는 위키피디어의 글을 보면 찌의 종류로 워글러(waggler)라는 것이 있는데 이 이름은 딕 보우커 주니어(Dick Bowker Junior)란 사람이 붙인 것으로 1975년에 빌리 레인(Billy Lane)이 쓴 책 ‘Match Fishing to Win’을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씩 알려졌다.
왜 워글러(waggler)를 꼬집어 얘기하는가 하면 수많은 찌의 종류들 중에서 워글러(waggler)를 사용하는 낚시를 ‘워글러 피싱(waggler fishing)’이라고 부르며 이를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려는 영국의 시도를 우리나라의 조구사들도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2007년 한국다이와의 대표이사였던 아베 코이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한국 조구업체는 단순히 경쟁사보다 한두 가지 기능을 향상시킨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말처럼 일본제품을 능가하는 것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낚시문화를 창달(暢達)하려는 시도가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언젠가 대한민국(Korea)에서 만든 찌(Float)가 코플로트(Kofloat)란 이름의 새로운 낚시문화를 창조하지 못하란 법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 일고 있는 일본불매운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강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에 기대어 안주한다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오징어를 대신할 표현을 찾지 못해 이카란 단어를 제품명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창의력 부족의 몽매한 마케팅으로는 절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아니 국내 낚시인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제품을 만들 수 없음을 대한민국의 조구사들은 알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