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진주만공습과 지키지 않은 미국의 약속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4차 회의가 종료되고 다시 한국에서 5차 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들으면서 과연 미국에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피로 맺은 혈맹국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한 것인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써의 임무가 우선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 목적이 순수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자 함에 있다고 하더라도 트럼프가 요구하는 방위비의 증액은 도가 지나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비단 트럼프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70년 이상이나 목숨을 바쳐 싸운 참전군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통해서 과연 미국에게 동맹이란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고 이어서 다음 날에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공격하였는데 당시 미국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필리핀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1942년 5월, 필리핀 주둔 미군이 일본군에 패퇴함으로써 그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당시 필리핀은 미연방이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필리핀 국민들은 미국의 국민이었으므로 일본군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던 필리핀인들도 당연히 미국재향군인의 혜택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은 바탄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호주로 퇴각하게 되는데 이때 포로가 되었던 미군과 필리핀군 전쟁포로 7만여 명이 오도널 수용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7,000~10,000명에 달하는 사람이 구타와 굶주림을 당하고 낙오된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죽음의 바탄 행진(Bataan Death March)이다.

이후 1944년 10월 20일 시작된 “레이테 전투”에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미군이 일본군에게 승리함으로써 필리핀제도 전역은 수복되었고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필리핀군 참전용사들에게 재향군인의 혜택을 제공하겠다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미의회에서도 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던 비용에 대한 우려로 필리핀의 재향군인과 유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미국의 우선순위는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었고 미국은 마지못해 생색을 내는 수준인 2억 달러만을 필리핀 정부에 던져주고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행태를 연출하였다.

루즈벨트의 뒤를 이어서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리 트루먼은 들끓는 여론에 못 이겨 법안(HR 5158)에 서명하면서도 1946년 2월 20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미국 국민으로서 미국의 국기 아래,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싸운 그들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굴의 용기로 싸웠습니다. 나는 필리핀 참전용사들의 복지를 돌보는 것은 미국의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참으로 거시기하고 뻔뻔한 말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약속은 계속해서 지켜지지 않았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경기부흥을 위해 마련한 법인 미국경제 부흥 및 재투자법(2009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법안에 포함된 바에 따라 필리핀군 참전용사에 대하여 시민권자에게는 15,000달러, 비시민권자에게는 9,000달러를 일시불로 지급하는 것이 결정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신청자 중 18,000여 명 정도만 수령할 수 있었고 24,000여 명은 지급이 거절되고 말았는데 현재 2차 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했던 필리핀군 생존자는 1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미국은 이들의 생전에는 돌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미국인이었던 필리핀군 참전용사들에 대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반도의 평화만을 목적으로 미군이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자국의 국민이었던 사람들도 돌보지 않는데 과연 우리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을까?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갖고 가라!”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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