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벨기에의 레오폴 2세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시위의 여파로 전 세계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동상이 철거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레오폴 2세의 동상이 벨기에의 항구도시 앤트워프에서 철거되었다고 한다.

벨기에의 국왕이었던 레오폴 2세는 콩고를 식민지배하면서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그가 지배하고 난 이후 콩고의 인구가 이전의 3천만 명(콩고자유국 설립 시점)에서 70% 가까이나 줄어든 1천만 명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콩고의 국민들이 받았던 고통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오폴 2세(Leopold II)

 

그러나 각종 정보와 언론기사는 콩고와 레오폴 2세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 가운데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알아볼까 한다.

 

■ 탐험가 스탠리에게 콩고 탐사를 지시했다?

탐험가였던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에게 콩고의 탐사를 지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자칫하면 모든 것이 레오폴 2세에 의해서 수립되었고 단지 탐사만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가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으로, 정확한 것을 알아보도록 하자.

잘 알려진 것처럼 스탠리는 아프리카에서 실종되었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찾은 인물로 유명한데 당시 스탠리에게 탐험을 의뢰했던 뉴욕 헤럴드의 출판인 제임스 고든 베넷 주니어(James Gordon Bennett Jr.)가 지불한 금액은 계약금과 성공보수가 각각 1,000파운드였다고 한다.

1869년 의뢰할 당시의 1,000파운드는 인플레를 계산하고 한화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대략 1억8천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런 성과의 결과로 스탠리는 1874년에 뉴욕 헤럴드와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공동 지원으로 다시 한 번 아프리카의 탐험에 나서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878년에 ‘암흑대륙 횡단기(Through the Dark Continent)’란 제목의 책을 펴내었는데 이 책이 스탠리와 레오폴 2세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암흑대륙 횡단기(Through the Dark Continent)

■ 레오폴 2세와 스탠리의 만남

리빙스턴을 찾아 떠난 아프리카의 탐험으로 오랜 기간 곁을 비웠던 연인(戀人)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자 스탠리는 더욱 탐험의 결과물을 알리기 위해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스탠리는 무궁한 자원과 잠재력을 가진 콩고를 식민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당시 영국의 중산층에서는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아프리카의 한 가운데에 식민지를 가지는 것에 대하여 반대여론이 높았다.

게다가 영국정부에서도 기후가 비교적 온난하면서 도달하기가 용이한 남부 아프리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기에 스탠리의 노력은 결실을 거둘 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 식민지를 가지는 것을 거의 광적으로 갈망하고 있던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2세가 스탠리의 ‘암흑대륙 횡단기(Through the Dark Continent)’를 읽고 나서 연락을 취하게 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레오폴 2세는 즉위와 동시에 식민지 획득의 필요성을 상원에 호소했으나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그가 노리고 있던 곳들은 열강의 점령으로 기회를 잃게 되었는데 마침 그때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콩고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계기가 바로 스탠리가 쓴 책이었던 것이다.

이에 레오폴 2세는 1876년 9월 ‘브뤼셀 지리학 회담(Brussels Geographic Conference)’을 개최하고 콩고의 탐험을 지원하는 국제아프리카협회(International African Association)를 창설하게 된다.

그러나 명칭만 국제단체였지 실상은 레오폴 2세의 개인기관이나 마찬가지였고, 바로 이 단체의 지원으로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있던 탐험가 스탠리는 콩고의 탐험에 다시 나서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 부족들과 독점적인 무역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5세기부터 이미 콩고와 관계를 맺고 있던 포르투갈이 레오폴 2세를 경계하여 콩고강 하구 주변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고 이에 영국이 포르투갈을 지지하고 나서자 영국과 프랑스를 대립시키려 하던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 프랑스와 결탁하여 레오폴 2세를 지지하고 나서게 되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이처럼 콩고를 둘러싼 대립이 깊어지자 1884년, 이해관계의 조정을 위해 비스마르크의 중재로 아프리카의 분할을 논의하는 베를린회담이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콩고는, 문호를 개방하고 자유무역지역으로 하며 중립을 취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레오폴 2세의 사유지로 인정받는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콩고자유국이었으나 여전히 벨기에 의회는 식민지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벨기에는 콩고의 통치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레오폴 2세의 사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콩고의 통치에 벨기에의 국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조건으로 레오폴 2세의 콩고 통치를 찬성해주게 된다.

 

■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원주민의 신체를 절단하게 했다?

콩고의 학살자라는 악명을 가진 레오폴 2세가 고무채취 작업에 동원된 원주민들이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신체를 절단하게 했다는 내용의 정보는 사실인지 살펴보자.

의회로부터 제대로 된 승인도 얻지 못한 콩고의 통치로부터 재산상의 이득은커녕 막대한 손실만 보고 있던 레오폴 2세는 19세기말 일대전기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동차와 자전거에 사용되는 고무로 된 타이어의 탄생이었다.

대기업들이 고무 타이어를 판매하고 나서자 1892년에 칙령으로 콩고의 천연고무를 자신의 독점사업으로 만들어놓았던 레오폴 2세는 본격적인 고무채취에 나서, 1893년까지 250톤 미만이었던 생산량을 1901년에는 6천 톤까지 확대하기에 이른다.

우선 레오폴 2세는 콩고분지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와 수로에 기자들의 출입을 봉쇄하고 분지 내부로부터 밖으로의 탈출도 못하도록 만든 다음 현지의 주민들은 모두가 작업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중노동의 과정에서 작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은 하마가죽으로 만든 채찍으로 매질을 하였으며 심한 경우에는 부부 중 아내는 기둥에 묶어두고 남편이 할당량을 완수할 때까지는 풀어주지 않음으로써 죽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레오폴 2세가 원주민들의 신체를 절단하게 지시했다는 내용은 정확하게는 아래와 같은 것이었으며 이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콩고는 레오폴 2세 개인의 사유지에서 벨기에의 공식적인 식민지로 변하게 된다.

레오폴 2세는 원주민들을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작업현장의 관리인들에게는 “원주민을 폭력으로 진압해도 좋지만 귀중한 총알은 낭비하지는 말라.”는 지시가 하달되었고 총알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증거자료로 원주민들의 신체 일부, 구체적으로는 손목을 제출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손목만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인인지, 아동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나중에는 남성의 중요부위를 잘라내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 잔인함은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어서 1902년에 영국의 소설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가 쓴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이란 책이 발간되어 중노동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실상에 알려지게 된다.

※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은 블랙우즈 매거진(Blackwood’s Magazine)이란 잡지에 3부작으로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발간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어서 과장된 부분이 많다는 평가로 아프리카 식민지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1903년이 되면서부터는 세간의 주목을 받고 원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가 유럽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에드먼드 모렐(Edmund Dene Morel)이라는 사람과 그가 만든 신문사 및 콩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단체인 콩고개혁협회가 큰 공헌을 하였고 이러한 활동은 코난 도일과 마크 트웨인 같은 유명인들의 지지를 얻어 더 큰 여론을 형성하게 되면서 레오폴 2세에게는 큰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에드먼드 모렐(Edmund Dene Morel)

 

국제적인 비판에 견디지 못한 벨기에 의회는 마침내 콩고를 벨기에의 식민지로 전환할 것을 논의하게 되고 이에 반대하던 레오폴 2세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1908년 10월 18일, 콩고를 자신의 사적인 소유물이 아닌 벨기에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레오폴 2세의 손에서 벨기에의 식민지로 바뀐 콩고는 의회의 결정에 따라 손목을 절단하는 것과 같은 잔인한 형벌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강제노동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당시 레오폴 2세가 지배하고 있던 콩고에서의 착취가 얼마나 심했던가 하는 것은 중노동을 견디지 못한 원주민들이 스스로 자청하여 손목을 잘라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하며 아래의 첫 번째 사진은 손목이 잘린 원주민들의 모습이며 두 번째 사진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자신에 대한 벌로 잘려버린 어린 딸의 손과 발을 바라보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다.

그리고 아래의 그림은 에드워드 린리 샘번(Edward Linley Sambourne )이란 사람이 펀치란 만화책에 기고한 것으로 콩고 원주민을 착취하여 고무를 채취하는 레오폴 2세를 뱀으로 묘사한 것과 원주민들의 손목이 잘려나가도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만 혈안이 된 레오폴 2세를 풍자한 것이다.

레오폴 2세의 동상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면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을 바라보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다이아몬드와 상아, 초콜릿을 착취하려는 서구의 기업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미국에서는 또다시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인종차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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