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니월드를 통해 번역본을 올린 바 있는 조어대전(釣魚大全)의 작자인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에 대하여 몇 자 적어본다.
조어대전(釣魚大全)이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은 1683년 12월 15일에 사망하여 윈체스터 대성당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출생일자는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보들은 그가 1593년 8월 9일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생일이 1593년 8월 9일이라는 것은 완벽한 낚시인(The Complete Angler)의 두 번째 판을 편찬하면서 당시 유명한 전기작가였던 해리스 니콜라스(Sir Harris Nicolas)가 1593년 8월 9일이 아이작 월턴(Izaak Walton)의 생일이라고 해석하면서부터였는데 아이작 월턴의 출생일자가 불분명한 것은 부친의 신분이 낮았던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스 니콜라스(Sir Harris Nicolas)가 아이작 월턴의 생일이라고 해석한 근거는 아이작 월턴의 유언장인데 유언장의 첫 부분에 기록된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나 윈체스터 대성당의 원로인 아이작 월턴은 오늘 현재 90세로~: In the name of God. Amen. I, Izaak Walton, the elder, of Winchester, being this present day in the neintyeth yeare of my age.”라는 부분을 근거로 하고 있다.
아이작 월턴의 초반 생애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들이 불명확하지만 15세에서 20세까지는 누나를 따라 런던에서 재봉사의 도제공으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후 토마스 그린젤(Thomas Grinsell)의 견습생이 되어 1618년 11월 12일에는 철기상(Ironmongery)조합의 자유조합원(freebrother)으로 가입하면서부터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이작 월턴의 전기를 보면 저자에 따라 그의 직업은 재봉사(sempster)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 모자를 제작·판매하는 사람(milliner)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1629년과 1635년에 있었던 런던시장의 장례식에 길드의 조합원 자격으로 참석하여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것으로 볼 때는 철기상(철물상)조합의 회원이면서 원단과 재봉업을 함께 운영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술집을 운영하는 하층민의 아들로 태어나 재봉일을 배우면서 어렵게 런던생활을 이어가던 아이작 월턴이 상하의 귀천이 엄격히 분리된 시대에 상류층으로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성정(性情)은 누구에게 아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는 것은 그의 친구이자 유명한 낚시제자이기도 했던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조어대전에 기록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찰스 코튼(Charles Cotton)이 기록한 바를 요약하면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두 번 동석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매우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 외에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작 본인도 그에게 있어서 우정은 제2의 종교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한편 영국의 서지학자(書誌學者)인 조프리 케인즈(Geoffrey keynes)는 아이작 월턴을 일컬어 우정의 천재(genius for friendship)란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친구의 수도 많을 뿐 아니라 그 다양함에도 놀랐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조어대전의 본문에 나오는 낚시 친구(Brotherhood of the Angle)란 표현은 영국국교회(英國國敎會)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아이작 월턴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글쓰는 것이 능숙하지는 않았으며 특히 라틴어 실력은 많이 부족한 편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펴낸 전기의 서문에 기록된 “내가 받은 교육과 초라한 능력을 생각해 볼 때 내가 공개적인 출판물을 내놓게 된 것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면 겸손을 넘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흙수저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노력과 두터운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런던의 성공한 사업가(상인)로, 문학과 낚시를 취미로 즐기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또 그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수정해나간 노력가였다는 표현만으로는 아이작 월턴의 평가로썬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작 월턴에 대하여 자세히 얘기하려면 종교와 정치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쯤에서 멈출까 한다.
스코틀랜드의 피터 말록(Peter Malloch)이 1884년에 세계최초로 스피닝 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이후 1905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세계의 스피닝 릴 시리즈 3편에서 잠깐 소개를 했던 프랑스의 릴 브랜드 미첼(Mitchell)은 창업자인 루이 카르파노(Lou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