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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오염된 국제 스포츠(5-4편)

쿠베르탱은 제1차 대전 당시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의 로잔으로 이주했고 프랑스의 국내 스포츠계에 존재감이 옅어진 가운데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한 스포츠지 로토(L’Auto)에서도 쿠베르탱에 대한 언급이 크게 감소하고 있었다.

1차대전이 끝나고 전쟁 전부터 개최될 예정이었던 1920년 올림픽에 대해 쿠베르탱은 벨기에 관계자들과 독자적으로 회담하고 1920년 올림픽대회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전쟁이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유럽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벨기에도 거절했지만 만일 벨기에가 계속 거절하면 프랑스 파리나 리옹 등에서 개최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쿠베르탱은 언급했다.

한편 쿠베르탱에 비판적이었던 CNS는 프랑스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로부터 반환받은 알자스에서 올림픽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쿠베르탱에 대한 항의를 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IOC의 토론과 관련하여 정작 프랑스에서 올림픽에 관한 결정을 내릴 프랑스 올림픽위원회(COF)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IOC에 대한 프랑스 대표는 쿠베르탱에 의해 선출되었다.

한때 존재했던 전국 올림픽위원회는 오로지 쿠베르탱에 의해 선정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각종 경기 연맹의 활동으로 1913년에 설치된 COF는 다양한 연맹의 대표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IOC에 파견할 프랑스로 대표는 쿠베르탱이 독단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IOC의 결정을 프랑스 올림픽위원회가 전혀 모르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즉, 쿠베르탱은 프랑스 스포츠계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으며 당시 COF 회장이었던 주스티니엔 클레리(Justinien Clary)는 쿠베르탱의 독재적인 자세를 비판하면서 IOC는 쿠베르탱의 생각대로 구성하고 지휘한다고 지적했다.

주스티니엔 클레리(Justinien Clary)

 

또한 쿠베르탱이 프랑스인의 의사를 묵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올림픽에 관한 정보를 프랑스 스포츠계에 제공하지 않는 쿠베르탱을 강하게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1차대전 당시 적대 국가였던 나라들에 대한 쿠베르탱의 관용적인 태도도 비난했다.

1차대전 이후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고조됨에 따라 쿠베르탱의 평화적인 자세는 스포츠계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나 중립국인 스위스 로잔에서 IOC 회의가 열렸기 때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도 배제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셔널리즘이 높아지는 프랑스 스포츠계에서는 과거의 적대국이었던 나라들에 대해 쿠베르탱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쿠베르탱이 가지고 있던 올림픽에 대한 그의 평화적 철학을 보면 동맹국에 대한 이러한 관대한 태도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아있는 프랑스의 여론이나 정치화하는 스포츠계의 생각과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와 같이 프랑스 스포츠계의 새로운 핵심 인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주제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1920년 앤트워프가 IOC에 기증하여 사용해오던 올림픽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우리나라가 새로 제작하여 기증한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21년 도쿄올림픽 폐막식에서 차기 대회 개최지인 파리시에 수여한 깃발 역시 1988년에 우리나라가 기증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쿠베르탱을 비난했던 것은 아니고 일부에서는 1차대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프랑스의 모든 경기 연맹이 올림픽을 준비하기에는 여력이 없으며 재정적으로도 부족했다는 분석을 내놓는 저널리스트들도 있었다.

한편 쿠베르탱은 교육부의 체육 스포츠 과장을 맡고 있던 가스통 비달(Gaston Vidal)을 비롯하여 국내외 경기 연맹이 IOC의 특권을 침식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었다.

IOC를 주도하는 쿠베르탱과 프랑스 국내 스포츠계의 핵심을 담당하게 된 사람들 및 각종 경기 연맹들과의 갈등의 골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한편 1920년 대회가 끝나면서 1924년 제8회 대회의 개최지와 초청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스포츠는 국가의 일이 되었다고 말한 가스통 비달은 앤트워프 대회 직후부터 1924년 올림픽대회는 파리에서 열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비달은 1924년 올림픽을 파리에서 개최하는 것은 프랑스 스포츠의 존재감을 국제무대에 보여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IOC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쿠베르탱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원래 1924년 대회의 후보지로는 프랑스 파리 외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이탈리아의 로마가 거론되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가장 유력했고 쿠베르탱도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쿠베르탱은 1924년이 IOC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라는 이유로 파리 개최를 희망했는데 이런 내용을 기록한 프랑스 관계자의 서한이 1921년 3월 20일 로토에 소개되었습니다.

“1894년 6월 23일 올림픽의 부흥이 성대하게 선언되었던 태생지인 파리에 대해 예외적으로 특별한 계획이 수립되기를 바라는 것을 요청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중략) 따라서 제9회 대회를 암스테르담에 할당하고 제8회 대회의 파리 개최를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고 싶습니다.”

유력했던 후보지였던 암스테르담을 제치고 파리를 개최지로 하고 싶다는 것은 쿠베르탱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이전까지 앤트워프 대회를 둘러싸고 쿠베르탱에 비판을 전개하고 있었던 로토지의 논조도 바뀌어 쿠베르탱의 제안을 환영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프랑스 관계자의 서한을 보면 “나머지는 6월 2일 로잔에서 소집되는 회의에서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만 남았지만 쿠베르탱씨의 제안이 그가 30년 이상 친분을 쌓아온 위원회의 멤버들에 의해 통과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라고 끝을 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여 1924년 올림픽대회는 파리에서 개최되는 것이 IOC 총회에서 결정되었으며 대회 종료 후에 쿠베르탱이 IOC의 회장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것도 공개되었다.

한편 10월 27일 로지에는 파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쿠베르탱이 했던 담화가 소개되었다.

쿠베르탱은 “스포츠는 그 뒤에 스포츠맨이 숨어있는 것 같은 인위적인 옷차림밖에 없으며 스포츠는 아직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지적 엘리트가 스포츠의 중요성에 매료되기를 바라지만 스포츠가 물질적인 프로정신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1차대전 이후 스포츠계가 변화해 나가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쿠베르탱은 올림픽이 대중화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1922년에 들어서면서 파리시의 재정부족으로 정부에서 재정지원을 해야만 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쿠베르탱의 생각과는 달리 프랑스의 제2 도시인 리옹에서의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되기에 이르렀고 파리대회의 개최위기는 정부와 국민회의, 즉 프랑스 전체의 정치문제로 발전해나갔다.

이미 파리에서 개최한다는 것이 결정된 이상 올림픽대회를 파리에서 개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프랑스의 위신과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체육계의 중진이자 정치인이었던 가스통 비달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COF 회장인 주스티니엔 클레리(Justinien Clary)와 함께 총리를 방문하여 실무자와 회담을 나누고 난 뒤 “만약의 경우 파리 대신 제8회 올림픽대회의 개최지로 리옹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쿠베르탱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발표하였다.

즉 프랑스의 정치인도 스포츠 관계자들도 모두 개최지를 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프랑스에서 개최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5편에 계속.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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