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5월에 만들어진 프랑스국가스포츠위원회(CNS: Comité national des sports)의 결성에는 USFSA의 협력이 있었지만, 프랑스 체조 연맹이나 프랑스 사격연맹 등, 원래 USFSA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던 경기 연맹도 순수한 경기 지향이라는 점에서 CNS에 찬동하는 자세를 표명하기 시작했고 CNS는 각각의 경기연맹이 자립하는 형태를 인정하면서 결집하는 조직으로 1913년에는 올림픽 대표에 관한 결정권을 획득하여 그 산하에 프랑스 올림픽위원회를 설치했다.
CNS는 설립 경위에서 통일된 규칙에 따라 프랑스와 세계의 스포츠를 통합하는 보편적인 모델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단일 경기를 총괄하는 각종 연맹을 통일된 규칙하에서 동등하게 관리한다는 ‘1경기 1연맹’이란 시스템이 CNS에 의해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도입되어 각종 경기 연맹의 설립이 증가함에 따라 프랑스의 보편주의적 가치관에 따른 CNS는 1차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 반면 USFSA의 영향력은 감소하였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던 축구에 관하여 USFSA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프랑스 연방간 위원회(CFI: Comité français interfédéral)는 1913년에 국제축구연맹(FIFA: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으로부터 프랑스 챔피언십을 개최할 권한을 얻게 된다.
CFI에는 1차대전 전인 1910년부터 축구의 전문화를 둘러싸고 USFSA를 떠난 쥘 리메가 가입하고 있으며, FIFA에서도 영향력이 컸던 쥘 리메의 생각은 프랑스 축구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쥘 리메(Jules Rimet)
CFI는 1919년 4월 7일 쥘 리메를 회장으로 프랑스 축구연맹으로 모습을 바꾸고 명실공히 프랑스에서 축구를 총괄하는 경기연맹이 되었으며 축구 연맹의 설립을 시작으로, 경기마다 연맹의 설립이 잇따라 1920년에는 USFSA의 럭비커미션이 해산하고 프랑스 럭비 연맹을 설립했으며 이어서 필드하키, 육상경기, 동계스포츠, 테니스, 수영과 그 밖에도 롤러스케이트, 바스크 펠로타 (Basque pelota) 등이 잇따라 독립적인 경기연맹을 설립했다.
바스크 펠로타 (Basque pelota)
각종 경기연맹의 설립에 따라 USFSA는 급속히 힘을 잃어 1921년 조직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각종 경기연맹의 설립에 비례하여 CNS는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 CNS를 구성하는 연맹은 1919년에는 22개 단체였지만 1921년에는 31개 단체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연맹을 총괄하는 성격상 CNS의 회원들은 대부분 선수출신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프랑스 국내에서의 스포츠계의 지도자는 쿠베르탱과 같은 귀족이나 USFSA를 주도한 엘리트층으로부터 1차대전 후에는 쥘 리메와 같은 스포츠 전문가들로 바뀌고 있었다.
스포츠를 둘러싼 이러한 변화는 1차대전 후 프랑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일어난 것으로 스포츠 미디어의 발전과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욕구가 커짐에 따라 이전까지 엘리트층의 독점적인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스포츠가 일반대중에게로 확대되었고 일부 종목에서 진행된 스포츠의 프로화를 프랑스 스포츠계로서도 무시할 수 없었으며 이런 와중에 1908년 5월에 만들어진 국가스포츠위원회(CNS: Comité national des sports)가 1922년 3월 정부에 의해 정식 승인되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CNS 아래 하나의 연맹이 하나의 경기를 통괄한다는 모델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승국이었음에도 엄청난 희생자를 내었으며 국토 또한 황폐화되어 국민들의 정신적 충격 또한 컸다.
특히 국내에서 반독일 정서의 여론이 강해지는 가운데 국력의 쇠퇴를 만회하고 싶었던 프랑스는 국제연맹 등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에 주도적 입장을 취해 국가의 위신회복을 회복하려 스포츠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즉, 스포츠의 국제적인 조직화를 주도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위신을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미 1차대전 이전부터 프랑스 파리는 영국에서 유래한 스포츠를 세계에 펼친 ‘제2의 스포츠 중심지’로 여겨지며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스포츠의 국제화에 크게 공헌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인한 것으로써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출신의 유학생들 중에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스포츠의 묘미를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국제올림픽위원회 뿐만 아니라 많은 국제 경기연맹이 프랑스인의 영향력으로 1차대전 전부터 설립되었는데 1904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자동차연맹(FIA: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이 프랑스인을 회장으로 설립되었으며 프랑스인이 회장직에 맡지 않았지만 1908년 국제수영연맹(FINA: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Natation)과 1913년 국제펜싱연맹(FIE: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crime) 등이 설립될 때 프랑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런 프랑스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이들 연맹의 약어가 프랑스어 FI(Fédération Internationale)로 시작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통일된 규칙에 따른 국제조직의 형성은 CNS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보편주의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법률에 따라 종교와 문화, 인종과 민족에 관계없이 평등을 보장하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국제 스포츠계에 이 보편주의 모델의 도입을 추진했고 1차대전 이후 정치적 맥락에서 가속화되었다.
이미 본 것처럼 1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고 싶었던 프랑스로서는 국제대회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 국제 스포츠 조직을 통한 영향력의 확대도 큰 의미를 두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국내에서 확립된 ‘하나의 연맹이 하나의 경기를 통괄한다’는 모델에 따라 각종 국제 경기연맹을 차례로 조직화해나감으로써 1927년에 14개의 국제경기연맹의 본부가 파리와 프랑스 국내에 자리 잡게 되었다.
쿠베르탱이 설립한 IOC는 민주적인 선거가 아니라 귀족과 일부 엘리트층이 상호 추천하는 형태로 멤버를 선출하였는데 이러한 IOC의 비민주성뿐만 아니라 엄격했던 아마추어리즘에 대해서도 스포츠의 대중화 속에서 전문화를 용인하는 경기연맹을 통괄하고 있던 CNS의 모델이 보급되어 가는 것을 IOC로써는 간과할 수 없었다.
한편 경기 연맹의 주도와 함께 프랑스는 각 경기연맹마다 세계선수권을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국제 대회를 주도적으로 조직해나갔는데 예를 들면 FIFA에서 회장을 맡고 있던 프랑스인 쥘 리메가 1930년에 월드컵을 창설한 것을 들 수 있다.
1차대전 이후 국제경기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은 이미 말했지만 이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도 프랑스였다.
1920년부터 1924년 사이에 프랑스 대표팀이 실시한 국가대항전은 총 84회에 달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축구, 럭비, 육상경기였다.
그러나 이 세 경기의 상대는 모두 1차대전의 연합국들로 특히 영국과의 대항전이 41회로 제일 많았으며 벨기에와 17차례의 국가대항전을 가졌고 그 외의 국가들도 이탈리아, 스위스 등 1차대전의 연합국 또는 중립국들이었다.
1차대전에서 적대관계였던 나라들과의 대항전은 1925년에 오스트리아와 가진 축구 대항전이 최초였으며 독일과의 경기는 육상경기의 대항전이 치러진 1926년으로 1926년은 독일이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해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정치가 국제 스포츠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스포츠의 국제적인 조직화에 프랑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924년 파리올림픽의 개최는 프랑스가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파리올림픽 유치의 성공에는 쿠베르탱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지만 1차대전 이후 쿠베르탱은 프랑스의 스포츠계에서 더 이상 핵심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파리올림픽 개최를 향해 프랑스 스포츠계와 쿠베르탱 사이에 어떤 논의가 있었으며 쿠베르탱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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