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은 미국에선 콜럼버스 데이라는 기념일이다. 이날은 1492년 10월 12일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는 날로 정확히는 미국의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라고 해야 한다.
미국 외에 10월 12일을 기념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이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태어난 이탈리아에서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사용하는 표현들이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벨리즈와 우루과이에서는 아메리카의 날(Día de las Américas), 바하마에서는 Discovery Day라고 부르며 아르헨티나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날이라는 Día del Respeto a la Diversidad Cultural로 부르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국경일이라는 의미로 Festa Nazionale di Cristoforo Colombo 또는 Giornata Nazionale di Cristoforo Colombo라고 부른다.
그 외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민족의 날(Día de la Raza)로 부르고 있는데 스페인에서는 문화유산의 날(Día de la Hispanidad)이나 종교적인 축일을 뜻하는 피에스타 나씨오날(Fiesta Nacional)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에서 10월 12일이 종교적인 축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서기 40년 10월 12일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야고보가 현재 스페인의 사라고사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성모마리아의 발현(필라의 성모)을 본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제264대 교황이었던 바오로 2세는 필라의 성모를 히스패닉 민족의 어머니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보게 되는 필라 성모 대성당이 성모마리아의 발현을 계기로 만들어진 성당이며 역사상으로는 성모마리아께 봉헌된 최초의 성당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국의 콜럼버스 데이도 미 전역에서 인정되는 기념일은 아니어서 하와이, 알래스카, 오레곤 및 사우스 다코다 주에서는 이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Discoverers’ Day로 부르는 하와이에서는 명칭의 변경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우스 다코다에서는 공휴일로 지정하였지만 콜럼버스 데이가 아닌 Native American Day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날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Native American Day는 아메리칸인디언 운동(AIM: American Indian Movement)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매년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이면 미국 각지에서 체포되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즉 인디언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으며 아예 콜럼버스 데이란 명칭을 변경하기 위해 콜럼버스 데이 변경을 위한 동맹(TCAD: Transform Columbus Day Alliance)이 결성되어 있기도 하다.
AIM의 깃발
아메리칸 인디언의 날(American Indian Day)로 부를 것을 주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11년에 결성된 아메리칸 인디언 협회(Society of American Indians)로부터 시작되었다.
1914년부터 1915년까지 이 단체의 대표를 맡았던 아서 파커(Arthur C. Parker)는 미국의 보이스카우트 연맹을 3년 동안이나 설득시키는 노력을 한 끝에 1915년 12월 14일에 24개 주정부로부터 받은 인증서를 백악관에 전달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16년 뉴욕주를 시작으로 1919년에는 일리노이주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날(American Indian Day)을 의원입법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아서 파커(Arthur C. Parker)
한편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을 검색하면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수두와 콜레라, 장티푸스와 같은 질병이 전염되어 원주민의 80%가 줄어들었다는 내용을 볼 수가 있다.
통설에 의하면 유럽인들이 오기 전에는 대략 4천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산되는 인디언들의 숫자가 500만 명까지 감소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염병이 맞지만 이외에도 강철로 만든 칼과 소총을 앞세운 무력에 의해 숨진 숫자도 상당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유럽인들에게는 새로운 대륙으로 천국이었을지 모르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지옥이었을 것이고 흑인노예를 해방시켰다는 링컨 대통령도 인디언에게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댈 정도였으니 콜럼버스 데이는 결코 정의롭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정의를 앞세우는 미국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디언들의 오래되고 지속적인 저항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에 더하여 2015년 10월 11일자 워싱턴 포스트의 인터넷판 기사는 콜럼버스 데이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1492년에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하였으며 산타마리아, 니나, 핀타란 3척의 배로 항해를 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콜럼버스는 미국을 발견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을 리도 없으며 배의 이름도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콜럼버스보다 500년 전에 북유럽의 탐험가인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on)이 북미(캐나다)에 최초로 발을 디뎠으며 이보다도 훨씬 이전에는 페니키아의 선원들이 대서양을 건너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적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미국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으며 그가 사용한 배의 이름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날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는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님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리 아저씨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재선(再選)을 위해 날뛰는 모습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不正義한 나라임을 실감하게 된다.
더 길게 적으면 국내정치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이만 주절거림을 끝낸다.
사진은 운디드 니(Wounded Knee Massacre) 대학살로 살해되어 매장된 인디언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