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가 개발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차가 개발된 배경에는 철조망을 설치한 다음 깊게 참호를 파고 기관총으로 방어하는 적을 뚫는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적의 총알을 막아 아군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을 공격하며 참호를 건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영국이 개발한 최초의 실용 전차 “마크Ⅰ” 이후에 각국은 전차의 중요성을 느껴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마크Ⅰ

 

특히 많은 포나 기관총이 있으면 더욱 강력할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 주포탑과 여러 개의 부포탑을 가진 다포탑전차와 함께 한 개의 포탑에 2개의 주포를 장착한 다주포전차 등의 연구로 이어지는데 최초로 영국에서 1925년에 다포탑전차인 “A1E1 인디펜던트”를 개발하게 되고 이것은 나중에 다른 나라들의 전차개발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특히 소련의 T-35는 디자인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모델의 하나입니다.

A1E1 인디펜던트

 

“A1E1 인디펜던트”전차는 47mm의 주포와 4개의 비커스 기관총을 갖추고 있어서 앞에 비커스를 붙여서 “비커스 A1E1 인디펜던트(Vickers A1E1 Independent)”라는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영국의 영향으로 독일, 프랑스, 소련, 심지어는 일본까지도 다포탑전차의 개발에 나서지만 실제로 제작하려면 복잡하고 제작기간도 오래 걸려 대량생산이 불가하고 당시의 엔진 제작기술로는 크고 무거워지는 무게 때문에 기동력이 저하되는 등의 문제점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중량을 줄이면 전차의 장갑이 얇아져 방어에 취약하게 되고 큰 포는 탑재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포탑에는 각각의 인원이 필요하여 좁은 실내에서 작전능력이 현저히 감소하는 단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제품을 개발해보면 실제 작전에서는 각각의 사수들이 공격하는 목표에 맞추어 전차를 움직이기도 어렵고 적들이 사방에 산재하고 있을 경우에는 전차의 움직이는 방향과 공격목표를 정하기가 힘들다는 단점과 함께 구조가 복잡하여 고장이 자주 발생하고 정비도 힘들다는 문제점들이 노출되어 영국은 다포탑전차의 개발을 “비커스 A1E1 인디펜던트(Vickers A1E1 Independent)”를 끝으로 중단하게 됩니다.

한편 소련은 1933년에 처음으로 다포탑전차인 “T-28” 503대를 생산하고 그 해 8월 11일에 제식화 하였는데 그보다 대형인 “T-35″도 같은 날 동시에 제식화 하였고 총 생산은 63량을 하였습니다.

T-35

 

T-35는 길이 9.7미터, 높이 3.4미터, 무게 45톤에 이르며 76.2mm의 포탑 1개와 45mm 포탑 2개 및 7.62mm 기관총 2정을 탑재한 그야말로 당시의 전차로서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소련군의 퍼레이드에는 빠지지 않고 동원되는 그야말로 스타급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웅장한 외관과는 달리 중량에 비해서 장갑의 두께는 얇고 기동력은 떨어지며 고장이 잦아 1940년이 되면서부터 소련에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T-35의 후속으로 개발한 SMK전차와 T-100을 보고는 개발자들에게 스탈린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지요!

“귀관들은 전차 내부에 백화점을 만들려고 하는가?”

SMK

 

T-100

 

한편 일본에서는 1935년에 “95식 중전차”를 제식화 하였으나 중형전차의 대량생산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4대만을 생산하고 중단하게 됩니다.

일본의 95식 중전차

 

독일은 “노이바우파르조이크(Neubaufahrzeug)”라는 이름의 다포탑전차를 개발하였으나 무겁고 기동력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단 5량만 생산하고 중단하였는데 5대 중에서 실전에 투입된 3대 가운데에서 그마저도 2대는 고장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1대만이 참가하였으나 영국군의 “보이스 대전차총(Boys Anti-tank rifles)”에 의해 장갑이 관통당하고 전사자가 발생하는 참패를 겪고 후퇴하게 됩니다.

보이스 대전차총

 

그 뒤 “노이바우파르조이크(Neubaufahrzeug)”는 독일의 제1 기갑부대에 소속되어 있다가 1941년 6월 소련의 “BT-7″과의 교전에서 무참히 파괴되고 맙니다. 그러나 독일이 개발한 다포탑전차는 1934년의 2대, 1935년과 1936년에 걸쳐 3대 등 모두 5대만 생산한 프로토타입이었으며 독일군은 “노이바우파르조이크(Neubaufahrzeug)”의 참패를 소련군의 T-35를 무찌름으로써 되갚아주게 됩니다.

노이바우파르조이크(Neubaufahrzeug)

 

독소전쟁에서 떨어지는 기동력과 얇은 장갑의 두께 그리고 고장이 속출하면서 소련군의 T-35는 독일군의 기민한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참패하면서 개전초기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결국 소련의 T-35전차는 군사퍼레이드 용으로는 번지르르한 외양으로 안성맞춤 이었는지는 몰라도 전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다포탑전차의 발상은 좋았지만 실제 운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단점들이 노출되는 바람에 현대에 와서는 다포탑전차를 개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