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전쟁영웅도 차별받아야 했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1994년 5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이 같은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쟁영웅마저도 차별 받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은 이 얘길 해볼까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군사조직은 지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방위군(SANDF: South African National Defence Force)’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이전인 1957년부터 1994년까지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방위군(South African Defence Force)’으로 불렀고, 지금과 같은 공화국체제가 수립되기 이전에 연방을 형성하고 있었던 시기인 1912년부터 1957년 사이에는 ‘남아프리카연방 방위군(UDF: Union Defence Force)’이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군대는 바로 ‘남아프리카연방 방위군(UDF: Union Defence Force)’이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부대도 바로 UDF였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으로 1940년 이전까지는 흑인들의 입대는 금지되어 있었고 1940년 이후에도 입대는 허용되었으나 비전투원의 신분만 허용되었기에 군사훈련은 무조건 백인들만 받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남아프리카연방 방위군(UDF: Union Defence Force)’에는 12만에 달하는 흑인들이 자원입대를 희망하였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이들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법으로 총기의 지급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전투지원업무만을 맡았던 흑인들에게 지급된 무기라곤 창이 전부였다.

 

그리고 입대한 흑인들은 모두 별도로 조직된 ‘원주민 부대(NMC: Native Military Corps)’ 소속이었고 이 부대는 모두 4개의 대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시지역 출신 흑인들로 편성된 제4대대(Witwatersrand Battalion) 소속이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할 당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멀지 않은 스프링스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잡 마세코(Job Maseko)’는 자원입대한 후 1942년에 일병의 계급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었다.

잡 마세코(Job Maseko)-출처: Roelof Uys 페이스북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원주민 부대(NMC: Native Military Corps)’ 소속의 병사는 1,200명 정도에 달했는데 그들이 주둔하고 있던 곳이 바로 독일의 롬멜에 의해서 철저하게 발리는 리비아의 항구도시 ‘토브루크(Tobruk)’였다.

물론 ‘토브루크(Tobruk)’에는 흑인병사들만 주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남아프리카연방 방위군(UDF: Union Defence Force)’의 제2 보병사단을 비롯하여 제11 인도보병사단 및 기갑연대, 근위여단 등의 많은 영연방부대들이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휘관은 ‘헨드릭 클로퍼(Hendrik Klopper)’ 소장이었다.

1942년 6월 20일 5시 20분부터 시작된 롬멜이 지휘하던 독일군의 전차부대를 앞세운 공격은 공중에서 ‘융커스 Ju 87과 88’ 폭격기의 지원을 받으며 파죽지세로 몰려왔고 마침내 방어를 하기 위해서 ‘헨드릭 클로퍼(Hendrik Klopper)’ 소장은 흑인병사들에게도 총기를 지급하게 되었다.

 

융커스 Ju 88

 

총을 지급받기 전까지는 독일군의 파상공세로 인한 부상병들을 돌보고 운반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었던 ‘원주민 부대(NMC: Native Military Corps)’ 소속의 흑인병사들에게 총을 지급하였다고 해서 전세는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롬멜의 공격이 시작된 다음날인 1942년 6월 21일에 ‘헨드릭 클로퍼(Hendrik Klopper)’ 소장은 항복을 하게 된다.

‘헨드릭 클로퍼(Hendrik Klopper)’ 장군

 

항복했을 당시 포로가 되었던 숫자는 모두 3만2천 정도에 달했으며 그 중에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잡 마세코(Job Maseko)’가 소속되었던 ‘원주민 부대(NMC: Native Military Corps)’의 흑인병사들 1,20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잡 마세코(Job Maseko)’를 포함해 포로가 된 흑인들은 포로수용소에서도 인종차별을 겪게 되는데 백인들은 유럽인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보내는 대신 흑인들은 이탈리아의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것이다.

슈뢰더 소령이 지휘하던 이탈리아 포로수용소의 경비병들은 포로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고 백인포로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으나 흑인병사들은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먹을 것이라고는 하루에 두 번 나눠주는 쿠키가 고작이었다.

이런 와중에 하루는 롬멜이 ‘잡 마세코(Job Maseko)’가 있던 포로수용소를 방문하여 포로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없었는지를 조사하였는데 ‘잡 마세코(Job Maseko)’의 차례가 왔을 때 그는 수용소의 실상을 그대로 폭로했고 그 결과는 롬멜이 돌아간 후 끔찍한 고문과 폭행이 되어 그에게 되돌아왔다.

 

이로 인해 ‘잡 마세코(Job Maseko)’는 어떻게 하든지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동료 2명과 함께 선박에서 화물을 내리는 작업도중에 독일군들의 눈을 피해 그동안 익혀둔 폭발물제조기술로 총알에서 분리한 탄약과 우유캔 및 전선을 이용하여 폭발물을 만든 다음 배에 실려 있던 휘발유통에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배에서 내린 후 몇 분 뒤에 마침내 굉음과 함께 폭발하면서 독일군의 배는 침몰하였다. 그러나 독일군은 누가 배를 침몰시켰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잡 마세코(Job Maseko)’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뒤 버려진 라디오를 수리하여 소지하고 있었던 ‘잡 마세코(Job Maseko)’는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승리하였다는 소식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고 마침내 사막을 가로지르는 탈출을 감행하여 연합군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공을 인정받아 빅토리아 훈장에 추천되지만 오로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보다 낮은 ‘군사훈장(Military Medal)’을 수여 받게 된다.

군에 입대해서도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별도의 조직에서 총도 없이 근무를 해야만 했고, 포로수용소에서도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중노동과 폭력에 시달렸는데 백인이라면 당연히 받았을 빅토리아 훈장마저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란 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잡 마세코(Job Maseko)’는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영국에서 이에 대한 재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훈장(Military Medal)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연합군에 합류하였던 ‘잡 마세코(Job Maseko)’는 오래지 않아 귀국하였지만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가 1952년에 열차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장례비조차 없어서 겨우겨우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유해는 스프링스에 있는 묘지에 안장되었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콰테마(KwaThema)’란 마을에서는 ‘잡 마세코(Job Maseko)’의 이름을 따서 1899년에 설립된 초등학교의 이름을 ‘Job Maseko Primary School’로 바꾸었다고 한다.

국가적인 영웅조차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했던, 이제는 사라져야할 인종차별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지구상의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음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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