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 금상고로케의 진실’에 이어서 오늘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후인에 대해서 몰랐던 것들을 알아보자.

유후인을 표기하는 한자는 湯布院과 由布院 두 가지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인터체인지에는 湯布院이라 표기하고 역이름은 由布院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유후인(由布院)을 다녀온 것일까? 유후인(湯布院)을 다녀온 것일까? 지금부터 그 차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1955년 2월 1일, 유후인쵸(由布院町)와 유노히라무라(湯平村)를 합쳐 유후인쵸(湯布院町)가 되었고, 2005년 10월에는 오이타군의 하사마마치(挾間町)와 쇼나이마치(庄内町) 및 유후인쵸(由布院町)를 합쳐서 유후시(由布市)가 되었으므로 행정구역상으로 유후인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유후인영와제와 유후인음악제를 비롯해 우시쿠이젯큐타이카이(牛喰い絶叫大会)라는 오이타현에서 나는 소고기(豊後牛: 분고규)를 먹고 누가 소리를 크게 지르는가를 겨루는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는 3대 원칙인 녹색, 공간, 평온을 고수하면서 유후인을 지켜나가고 있다.

일본은 온천법에 근거하여 환경대신이 지정하는 온천을 국민보양온천지(国民保養温泉地)라고 하는데 유후인온천은 1959년 5월 5일 유노히라온천(湯平温泉)과 함께 유후인온천(由布院温泉)으로 지정되었고 2019년 10월 4일에는 유후시내의 츠가하라온천(塚原温泉), 쇼나이온천(庄内温泉), 하사마온천(挾間温泉)까지를 합하여 유후인온천향(湯布院温泉郷: 유후인온센쿄우)로 확대지정되었다.

이에서 보듯 유후인이란 이름의 한자표기는 일본정부에서조차도 由布院과 湯布院을 병용하고 있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유노히라쵸(湯平町)를 포함하면 유후인(湯布院)이고 포함하지 않으면 유후인(由布院)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조차도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적어지면서 지금은 가타카나로 유후인(ゆふいん)이라 표기하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유후인쵸(湯布院町)로 이름이 바뀌기 이전의 유후인쵸(由布院町)의 유후인이란 지명은 예로부터 닥나무와 꾸지나무로 만든 목면(木綿)이 많이 나던 곳이라 해서 유후(木綿: ゆふ)라 불리었으며 일본의 만엽집에는 지금의 유후다케(由布岳)를 유후노야마(木綿の山)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후에 율령제 시대에 정창원(正倉院)과 같은 큰 창고(院)가 생기면서 원(院)자가 붙어서 유후인(由布院)이란 지명으로 되었다.

1952년 유후인에 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들이 뜻을 모으면서부터 청년단장 이와오 히데카즈(岩男額一)를 중심으로 골프장 건설을 저지하였고 독일 바덴바일러(Badenweiler)를 50일 동안 방문하여 배운 것을 접목하여 지금의 온천마을로 만들었던 역사는 오이타현청에 근무하면서 이를 지켜보았던 키타니 후미히로(木谷文弘)가 쓴 책 ‘유후인의 작은 기적(由布院の小さな奇跡)’에 잘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