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날조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은어낚시
제가 낚시를 주제로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은어 놀림낚시 또는 꾐낚시를 일본에서는 토모즈리(友釣り)라고 부르며, 일본이 발상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일본의 허위·날조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은어낚시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일본의 역사기록에서 토모즈리(友釣り)란 말이 등장하는 것은 1832년이 처음입니다. 물론 이전부터 은어를 잡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일본 에가와 가문의 사료에는 야나료우(梁漁)라는 구조물을 설치하여 은어를 잡던 어부들이 토모즈리로 은어를 잡아대는 사람들 때문에 세금을 내지도 못할 형편에 처해 있으므로 이것을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을 담은 일종의 탄원서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나료우(梁漁)는 지금 보시는 사진과 같은 것으로 산란을 위해 하류로 내려가는 은어를 잡는 데에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는 지자체들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운영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임나일본부설입니다.
4세기경 삼한(三韓)을 정벌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물은 진구황후(神功皇后)로 일본에서조차 지어낸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사기(古事記)와 더불어 일본 고대사 연구의 핵심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일본서기(日本書紀)는 가짜(위서:僞書)라는 평가를 일본 내에서도 받고 있지만, 오늘은 은어낚시에만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은어낚시는 진구황후에 대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진구황후가 신라 원정에서 돌아온 다음 현재 사가현의 가라쓰시(唐津市) 강가에서 옷의 실을 뽑아 낚싯줄을 만들고, 바늘을 구부려 낚싯바늘을 만든 다음, 밥알을 미끼로 은어를 잡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진구황후가 밥알을 끼운 낚싯바늘을 강에 던지며 “신라 정벌이 성공한다면 물고기가 이것을 먹을 것이다.”고 말했고, 은어가 잡히자 “신은 우리 편이다. 정벌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고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민물고기 중 일본에서 가장 많이 먹는다는 은어는 민물어획고의 25%를 차지할 만큼 일본인에게 사랑받아온 물고기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날조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겠지요.
진구황후가 정벌이 성공할 것이라면 물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말한 뒤 은어가 잡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일본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4세기 경 일본에서 배를 타고 신라로 오기 위해서는 동풍이 불어야만 했을 것임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은어를 아유(あゆ)라고 하는데, 이전에는 동풍(東風)도 아유(あゆ)라고 불렀죠.
이런 이유로 일본의 사학자들 중에는 진구황후가 “동풍은 아직인가?”라고 물은 것을 “은어는 아직인가?”라고 생각하여 날조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봐도 이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나무위키의 표현을 빌면 과장과 주작이 많다는 일본서기에는 은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얘기가 나옵니다.
일본의 초대 진무천황(神武天皇)은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아마노카구야마(天香久山)에서 나는 흙으로 술병을 만들고, 술을 담아 강에 가라앉힌 뒤 물고기가 떠오르면 무기가 없어도 일본을 평정할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그의 시종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이에서 비롯되어 일왕의 즉위식에 등장하는 깃발인 만세번(万歳幡)에도 은어가 그려져 있는 것이죠.
이처럼 은어는 일본인의 생활과 밀접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이었기에 은어낚시와 관련한 것들은 모두가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에서는 3백여 년 전에 이미 토모즈리가 성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채비의 설명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1907년의 일본어류도설이 최초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 등장하는 은어(銀魚)는 낚시에 관련한 내용은 전무하며 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공물의 진상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죠.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15년인 1433년에 은어를 천신(薦新)하기 위하여 특별히 저장시켰으나 진상한 생선이 썩어 문드러져 쓰지 못하였기 때문에 얼음을 저장하던 곳을 혁파하였다고 나오거나 문종이 즉위한 해인 1450년에는 독약을 사용하여 은어를 잡는 것을 금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보다 앞서 은어를 먹거나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은 나오지만 독약을 사용했다는 것 외에는 어떻게 잡았는지 하는 자료는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죠.
고기만 잘 잡으면 되지 낚시에서 무슨 역사를 논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냐고 힐난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의 고유한 낚시문화와 역사를 기록하고 제대로 전달하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