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인종차별에 맞섰던 마릴린 먼로

1962년 8월 5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섹스심벌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릴린 먼로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당시는 짐크로법(Jim Crow laws)이라고 하는 흑인분리정책이 실시되고 있던 시기였는데 공공장소와 대중교통에서의 인종 분리는 물론이고 화장실, 식당 등과 같은 장소에서 흑인을 격리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크로법(Jim Crow laws)은 “분리되어 있으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궤변과 같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 마디로 말해서 인종차별주의적인 법률이었습니다.

 

이 법률이 시행되던 시기에 59년 동안 가수로 활동하면서 13번이나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과 국립예술훈장을 각각 수여받았던 “재즈의 여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도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는 변변한 무대에 설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으며 1935년 1월 할렘 오페라 하우스 (Harlem Opera House)에서 있었던 “티니 브로드쇼(Tiny Bradshaw)”밴드와의 공연으로 호평을 얻고 나서 1942년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엘라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1941년에 문을 연 모캄보(Mocambo) 나이트클럽에 출연을 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

 

모캄보(Mocambo) 나이트클럽은 1943 년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솔로 데뷔무대를 가진 곳으로 유명하며 수많은 당시의 유명연예인들이 드나들던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습니다. 하지만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는 짐크로법(Jim Crow laws) 때문에 모캄보(Mocambo) 나이트클럽에 출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캄보(Mocambo)

 

그러나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 출연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고 어사 키트(Eartha Kitt)와 같은 경우에는 모캄보의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은 아마도 클럽의 소유주였던 찰리 모리슨(Charlie Morrison)이 엘라의 가능성을 낮게 보았기 때문이란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의 팬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이런 사정을 알고 나서 클럽의 주인인 찰리 모리슨에게 전화를 걸어 “엘라가 라이브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준다면 나(마릴린 먼로)는 매일 앞자리 중앙의 테이블을 예약하여 그녀의 공연을 보겠다.”고 말을 했고 찰리 모리슨이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인 후 마릴린 먼로는 그녀의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후에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는 “나는 먼로에게 큰 빚을 졌으며 모캄보에 선 이후 더 이상은 작은 무대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엘라만 일방적으로 마릴린 먼로에게 도움을 받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 먼로도 엘라의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화 속의 노래하는 모습과 1962년 존 F 케네디의 생일파티에서 노래를 부른 마릴린 먼로의 모습과 함께 그녀가 당시에 입었던 드레스가 480만 달러에 경매에서 팔려다는 사실만 크게 남아 있는데 먼로가 가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의 노래를 연구한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마릴린 먼로의 보컬 트레이너는 엘라의 레코드를 100번이나 들으라고 먼로에게 주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의 음악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칙 웹(Chick Webb)”이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노먼 그란츠(Norman Granz)” 또는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를 얘기하겠지만 사실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을 해봅니다.

엘라와 마릴린 먼로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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