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이오지마(硫黄島)의 숨은 이야기들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1,200㎞ 떨어진 곳에 있는 화산섬 이오지마(硫黄島)의 공식명칭은 2007년에 공식적으로 이오지마(いおうじま)가 아닌 이오토(いおうとう)로 결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합동태풍경보센터(JTWC: Joint Typhoon Warning Center)에서도 이오지마를 이오토(Iwo To)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3월 11일에 제정된 결정에 따라 이오지마(硫黄島)의 영어표기는 섬이름에 Island를 붙여서 Ioto Island로 표기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포털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도 이런 결정에 따라 일본의 유황도(硫黄島)를 이오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태평양전쟁 당시 치열했던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 친숙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냥 이오지마(いおうじま)로 부르기로 한다.

금년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다. 즉 이 말은 우리가 광복을 맞은 지 75주년이 되는 해가 2020년이라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를,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때문에 감추기에만 급급하는 아베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최후의 발악을 했던 이오지마의 전투(Battle of Iwo Jima)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본의 결정에 따라 이오지마의 영어표현을 미국에서도 이오토(Iwo To)라고 하기로 하자, 미국의 해외참전전우회(Veterans of Foreign Wars)는 공식적으로 반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의 논란은 있었지만 수리바치산(摺鉢山)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했던 1945년 2월 23일을 전쟁이 끝나고 해병대의 날로 제정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 군 별로 별도의 기념일을 제정하지 않고 매년 5월 셋째 주 토요일을 국군의 날(Armed Forces Day)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으며 미국 해병대의 창설일인 11월 10일과는 다르다는 점을 덧붙인다.

아울러 이오지마 전투에서는 2차 대전 동안 명예훈장을 받은 총 82명 가운데 28%인 27명이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그 중 해병대원은 모두 23명이라는 일부의 정보와는 달리 22명의 해병대원들이 명예훈장을 수상하였는데 현재 유일한 생존자는 화염방사기를 들고 싸웠던 올해 96세의 허셀 윌리엄스(Hershel W. Williams)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섬인 유황도(硫黄島), 즉 이오지마(いおうじま)의 이름은 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황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일본이 정한 이름이 아니라 서양의 탐험가들이 붙인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오지마는 1543년 스페인 동양함대의 전함 중 하나인 ‘산 후안 데 레트란(San Juan de Letran)’호의 선장이었던 베르나르도 데 라 토레(Bernardo de la Torre)가 발견하였는데 섬에 유황이 많아서 유황을 뜻하는 당시의 스페인어 수프레(Sufre)라고 이름붙인 것에서 비롯되어 1779년에 제임스 쿡의 3차 탐험에 사용되었던 레졸루션호와 디스커버리호에 발견되어 공식적으로 유황도(Sulphur Island)로 표기가 되었다.

그러나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크게 이용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터라 어느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아 이후로도 이 섬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1494년 6월 7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고 있어서 지구에 선을 하나 그은 다음 동과 서를 나누어 가지자는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을 맺었는데 대항해시대에 탐험에 나서면서 둥근 지구 때문에 아시아에서 서로 만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아시아를 두고 또 다시 경계선을 긋는 조약을 맺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라고사 조약(Treaty of Zaragoza)이고 이로 인해 콜럼버스가 황금의 나라로 생각하고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일본을 가리키는 지팡구(ジパング)는 포르투갈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버려진 섬이었던 이오지마는 메이지시대에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1887년 당시 도쿄부의 지사였던 타카사키 고로쿠(高崎五六)의 지휘로 탐사를 마치고 1889년 어업과 유황의 채굴을 시험하기 위해 다나카 에이지로(田中栄次郎)를 비롯한 10여 명이 섬에 들어간 것이 최초의 입도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에서 나름 큰 의미를 지니는 유황도(硫黄島)라는 섬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외에도 존재한다.

 

10세기 무렵 일본과 중국 송나라의 교역에 있어서 유황은 처음에는 송나라에서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었으나 송나라 시대에 화약을 만드는 기술이 크게 발달하면서 화약의 주원료인 유황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유황을 생산할 수 있는 화산이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큰 문제점과 함께 특히 금나라의 압력을 받고 있던 남송(南宋)은 일본과의 해상무역으로 유황을 조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남송으로 수출하던 일본 유황의 주된 생산지가 바로 가고시마 현에 있는 또 다른 유황도(硫黄島)로, 이 섬은 가고시마 항에서 배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평양전쟁의 격전지였던 이오지마와 구분하기 위해 사츠마이오지마(薩摩硫黄島)로 부르고 있다.

1964년에 유황을 채굴하던 사츠마이오지마(薩摩硫黄島)의 광산은 폐광이 되었지만 해안에 있는 노천탕인 히가시온센(東温泉)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2번 방문하고픈 히토우(秘湯: 깊은 산속과 같이 접근이 어려운 곳에 위치한 온천)로 소문나 있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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