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맥커너히가 주인공인 타일러 대위 역을 맡아 독일 유보트로 위장한 채 U-571에 접근하여 총격전 끝에 암호해독기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지만, 이를 눈치챈 독일구축함의 공격으로 위기를 맞고, 가까스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잠수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수작으로 꼽히는 U-571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 많습니다.
실제와는 달리 허구인 것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아래의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U-571이란 잠수함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것은 U-505라는 IXC형 잠수함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최초로 암호해독기인 에니그마를 탈취한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IXB형의 U-110으로 미국이 아닌 영국해군에 의해 1941년 5월 9일, 격렬한 전투 끝에 포획되어 견인되던 도중 침몰하였으며, 영화의 전체적인 모델이 된 U-505에서는 독일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잠수함에 들어가서 들고나오기만 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U-505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전사한 사람은 독일군 고트프리트 피셔(Gottfried Fischer) 뿐이었으며, 부상자 3명을 포함한 잠수함 승조원 58명은 전원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 가지 사실을 차례대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영화 U-571의 마지막에 소개하고 있는 것과 같이, 최초로 에니그마를 탈취하는데 성공한 것은 1941년 5월 9일, 영국해군의 작전명 프림로즈(Operation Primrose)였습니다.
영국해군의 구축함 불독(HMS Bulldog)의 폭뢰 공격을 받은 독일 U-110의 함장 렘프는 잠수함을 버리고 모두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도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독일군 포로에 따르면 수중에서 영국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았으며 전투과정에서 함장이었던 렘프(Lemp)를 포함하여 모두 15명이 전사하였고, 32명이 포로가 되었는데, 이것이 영화 U-571에서 묘사하고 있는 탈취과정에서의 전투장면인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1944년 6월 4일, 미 해군 특공대가 U-505에서 암호해독기와 암호문서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고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영화 U-571의 전체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U-보트의 IXC형인 U-505는 인도양에서 연합군을 타격할 목적으로 히틀러가 일본에 2척을 양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려호제500(呂号第五百)과 려호제501(呂号第五百 잠수함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려호제501은 1944년 2월 15일에 일본 해군에게 양도되었는데, 1달 보름 뒤인 1944년 3월 30일, 미 해군 구축함 프란시스 로빈슨에 의해 격침되었고, 승무원은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다시 U-505 얘기로 돌아가면, 1943년 10월 24일, 포르투갈령 아소로스제도에서 영국의 구축함에 발각되어, 폭뢰의 공격을 받자 장시간에 걸쳐 공격을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함장인 페터 체헤(Peter Zschech) 대위는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는데, 이것은 불명예스럽게도 전투 중에 잠수함 함장이 자살한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어서 제3대 함장으로 하랄트 랑어(Harald Lange)가 부임하였고, 1944년 6월 4일, 스페인령 리오 데 오로(Río de Oro) 근해, 241km에서 소나에 의해 탐지되어, 미 해군 호위항공모함 과달카날(USS Guadalcanal)과 5척의 구축함으로 편성된 태스크포스 그룹 22.3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U-505의 함장이었던 하랄트 랑어(Harald Lange)는 모든 승무원에게 퇴함명령을 내리고, 자침(自沈)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미 해군 소위 알버트 데이비드(Albert David)가 인솔하는 8명이 U-505의 내부로 들어가서 자폭장치를 해제하고, 엔진을 정지시켰으며, 함내에서 암호문서 등을 노획하였던 것입니다.
영화 U-571에서는 독일군과의 총격전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독일군은 퇴함(退艦)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 해군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U-505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코닝 타워에서 발견된 유일한 독일군 전사자인 고트프리트 피셔(Gottfried Fischer)는 승선과정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전투에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한편, 자폭장치를 해제한 U-505는 미 해군에 의해 견인되어 버뮤다의 포트 로열베이에 입항하였고, U-505의 승무원들은 러스턴 수용소(Camp Ruston)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암호문서를 빼앗긴 것을 독일군이 알아차리고, 암호의 설정을 변경할 것을 우려하여, U-505의 노획과 승무원들을 포로로 잡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습니다.
그래서 포로가 된 U-505의 승무원들을 다른 전쟁포로들과 철저하게 격리시켰으며, 적십자사의 면회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독일 해군은 U-505를 침몰된 것이라 인정하고 승무원의 가족들에게는 작전 도중에 전사하였다는 통보를 하게 되었던 것이었죠.
이런 과정을 거쳐 노획되었던 U-505는 버뮤다 기지에서 USS 니모라는 위장명으로 정박하고 있다가, 포츠머스 해군기지로 옮겨져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었고 급기야는 연습사격의 목표물로 사용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U-505를 포획하는 작전을 지휘했던 갤러리 제독(Admiral Gallery)이 U-505를 포격과 어뢰의 목표물로 사용하려는 계획에 반대하여, 시카고의 과학산업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는 일을 추진하였고, 이에 호응하는 시카고 주민들이 이전에 드는 비용 25만 달러를 모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9월, 미국 정부가 U-505를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에 기증하여 지금도 일반에게 전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에기와 에깅낚시란 무엇인가?”란 글에서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에기의 유래와 역사에 대하여 살펴본 것을 시작으로 무늬오징어의 습성과…
인도네시아 인근의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향유고래의 배 속에서 6㎏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