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개봉했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황제 코모두스와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숨을 거둔, 주인공 막시무스를 루실라는 “명예롭게 모셔라!”고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막시무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황제의 누이인 루실라의 명령이었으니 비록 허구이긴 해도 예를 갖춘 장례를 치루었겠지요.

그러면, 실제 검투사들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치루었을까요?

사망한 검투사들은 들것에 실려 옮겨졌는데, 이때 사용한 문을 포르타 리비티넨시스(Porta Libitinensis)라 불렀습니다.

Porta는 문을 뜻하고, Libitinensis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과 장례의 여신인 리비티나(Libitina)를 뜻하는 것으로 죽음의 문을 통해 운반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죠.

 

비록 결투에서 패배하여 죽게 되더라도,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처리는 크게 달랐는데, 로마시민들에게 영웅적으로 비쳐진 검투사들은 사후에 화장된 다음, 친구나 친지들에 의해 수습되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검투사들을 위한 별도의 묘지를 마련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명예스럽게 사망한 검투사들은 강에 버려지거나 황무지에 버려졌는데, 이것은 흙이 유골을 덮을 때까지는 영혼이 쉴 수 없다는 당시의 믿음에 기인했던 것으로 모욕적인 처리를 했던 것이죠.

또한 불명예스럽게 사망한 검투사들은 들것에 실려서 운반되지 않고, 땅바닥에 질질 끌려나가는 수모를 당했는데, 이것 또한 비겁함으로 스스로를 더럽혔기 때문에 고인을 들것에 싣고 나가는 것은 사치라는 당시의 인식에서 기인되었던 것이랍니다.

한편, 영화를 보면 주인공 막시무스가 당시 최고의 검투사였던 티그리스와 싸우는 장면에서 호랑이가 막시무스를 공격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영화적인 허구이고, 실제로 로마에서 동물과 검투사들이 싸웠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동물과 싸우는 검투사들은 특별히 베스티아리(bestiarii)라고 불렀으며, 이것도 두 가지 유형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실제로 동물들과 싸우는 사냥꾼이란 의미를 지닌 베나티오(Venatio)라는 검투사들이 있었고, 두 번째로는 검투사가 아닌 동물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하는 형벌을 뜻하는 담나티오 아드 베스티아스(damnatio ad bestias)형을 받은 담나티오가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베나티오로는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경기장에서 맨손으로 20마리 이상의 맹수를 죽였다고 전해지는 카르포포로스(Carpophorus)가 있습니다.

베나티오와는 달리, 담나티오는 검투사가 아닌 사형수들이었는데, 담나티오와 함께 로마 사회의 최하층 신분이었던 녹시(Noxii) 또한, 그들의 범죄에 대한 형벌로 검투사들의 사냥감이 되거나, 산채로 맹수들에게 던져져 처참한 죽음을 맞기도 했었습니다.

 

녹시(Noxii)의 유형에는 기독교인, 유대인, 탈영병, 살인자 등이 있었으며, 당시의 로마인들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을 즐겼던 것에서 이미 로마의 몰락은 예견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폴란드 화가, 헨리크 시에미라츠키(Henryk Siemiradzki)가 그린, 기독교인 디르케(Christian Dirce)란 작품을 보면, 네로 황제의 명령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한 여인을 들소에 묶어 죽게 만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녹시를 죽이는 것을 즐긴 이면에는 법과 질서의 지배를 확립하고, 사회 계층 구조에서의 위치를 ​​상기시키기 위해 공포를 이용하려 했던 정치적인 이유도 숨어있는 것이죠.

영화에서도 공포에 휩싸인 사람이 경기장에 나서기 전, 소변을 지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검투사들이 느꼈을 공포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검투사 교육을 받지 않고 경기장에 나서게 되었던 전쟁포로들과 같은 경우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극에 달하여,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4세기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는 20명에 이르는 검투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경기장에 나가 싸울 시간이 되자,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은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인 막시무스를 비롯한 검투사들은 사후에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와 검투사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알아본 이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