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by vasse nicolas,antoine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에 있는 리츠호텔은 세계토픽에 종종 등장하는 유명한 호텔입니다.
호텔 소유주의 아들인 도디 알파예드는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연인이었고 그녀의 마지막 만찬이 바로 이곳에서 있었으며 2018년 1월에는 호텔에 보관 중이던 60억 원 상당의 보석을 강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범인들 중의 3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아무튼 파리의 리츠호텔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스파이로 활동했었던 전력이 알려진 디자이너 코코샤넬을 비롯하여 문학가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곤 하는데 오늘은 프랑스 파리의 리츠호텔과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의 유명 낚시인 시리즈에서 두 번째로 알아보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편에서 헤밍웨이는 금주법이 시행될 시기에 주류밀수를 하던 ‘슬로피 조 바(Sloppy Joe’s Bar)’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낚시를 즐겼다는 것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술을 아주 좋아했던 헤밍웨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의 잡지 콜리에(Collier)의 종군특파원으로 전쟁에 참가를 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서도 술을 좋아했던 그의 모습이 드러나는 일화가 한 가지 있지만 이런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를 않은데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파리 리츠호텔에 있는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에 관한 것인데 흔히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기 때문에 이 바의 이름이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일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헤밍웨이가 즐겨 찾아서 붙은 이름이 아니고 헤밍웨이가 이곳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에 의해 4년 동안 점령되었던 파리를 프랑스군이 해방시켜야 한다는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Eisenhower)장군의 주장에 따라 미군이 먼저 입성할 것을 주장했던 패튼(Patton) 장군의 주장은 뒤로 밀리게 되고 프랑스의 제2기갑사단이 파리 입성의 주력부대로 선정되게 됩니다.
이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프랑스에 와있던 헤밍웨이는 일련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부대가 무기도 없고 조직적이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그가 미군의 대령인 것처럼 속이고 랑부예(Rambouillet)로 레지스탕스를 이동하여 주둔시키고 미군의 도움을 받아 기관총과 수류탄 등의 무기로 무장을 시킵니다.
중앙이 헤밍웨이, 가장 왼쪽이 OSS의 데이비드 브루스(David Bruce)
당시 파리에만 2만여 명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무장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독일군과의 직접적인 전투를 꺼려하고 대신에 독일군이 사용하는 차량의 바퀴에 구멍을 내거나 통신선을 자르는 등의 소극적인 활동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드디어 1944년 8월 25일 프랑스군과 일부 미군이 입성함으로써 파리는 해방을 맞게 되는데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가 있는 리츠호텔에 처음으로 입성한 사람이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였던 것입니다.
그가 지휘하던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OSS의 데이비드 브루스(David Bruce)와 미육군 대령이었던 마샬(Marshall)과 함께 8월 24일 랑부예(Rambouillet)에서 파리로 진격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카페를 발견하면 헤밍웨이는 “술을 찾았는가?(Marshall, for God’s sake, have you got a drink?)”라고 마샬 대령에게 소리쳐 묻곤 하였다고 마샬(Marshall)은 회고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파리로 진격했던 레지스탕스 대원은 헤밍웨이가 “나는 파리에서 최초로 리츠를 해방시킨 사람이 될 것이다(to be the first American in Paris and liberate the Ritz)”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의 와중이라 그들이 파리로 가는 도중에 발견한 것이라곤 한 병의 스카치와 몇 병의 샴페인에 불과하였습니다.
드디어 리츠호텔이 있는 캄봉거리(Rue Cambon)에 차량이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뛰어내리면서 헤밍웨이는 “리츠를 해방시키러 왔다(Come to liberate the Ritz.)”고 말했다고 당시 호텔의 중역이었던 클로드 라울렛(Claude Roulet)은 회고하고 있으며 이전부터 헤밍웨이를 알고 있었던 당시의 매니저인 클로드 오젤로 (Claude Auzello)는 헤밍웨이에게 “총을 두고 들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특히 클로드 오젤로 (Claude Auzello)는 독일의 스파이로 활동했던 코코샤넬로 인해서 큰 불행을 겪었는데 그녀의 아내 블랑쉬 오젤로(Blanche Auzello)는 호텔에서 취득한 정보를 연합군과 레지스탕스에게 전달하거나 추락한 연합군 조종사들의 탈출을 돕는 등 독일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코코샤넬의 밀고로 유태인이란 사실이 발각되어 게슈타포에 체포, 고문을 받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악명이 높았던 “Fresnes Prison”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맙니다.
블랑쉬 오젤로가 구금될 당시에 공산주의자였던 그녀의 친구도 함께 붙잡혔는데 블랑쉬는 친구에 대한 정보와 그녀가 유대인인라는 것을 실토한 후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호텔을 떠나 은퇴하기를 희망했던 남편과는 달리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호텔을 떠나기를 극구 반대했던 블랑쉬는 그녀의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져가자 1969년 5월 29일 남편 클로드 오젤로(Claude Auzello)가 권총으로 그녀를 먼저 죽인 다음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블랑쉬 오젤로(Blanche Auzello)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는 “파리에서 리츠호텔에 머물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할 정도로 그가 즐겨 찾았던 리츠호텔에 있는 지금은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로 이름 붙여진 술집은 이전까지는 그냥 자그마한 바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파리에 입성한 다음날인 8월 26일 헤밍웨이는 그렇게 좋아하던 호텔의 바에서 그가 좋아하는 술을, 그와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어윈 쇼(Irwin Shaw)를 비롯한 언론사의 기자들과 어울려 마셨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리츠호텔의 작은 바는 1994년부터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로 불리게 되었으며 2012년 보수공사를 시작하면서 문을 닫았다가 2016년 6월 8일 다시 개장함과 동시에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는 그의 흉상과 그가 즐기던 낚시를 하는 사진들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참고로 리츠호텔에는 총 4개의 바가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헤밍웨이 바(Hemingway Ba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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