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하면서 본인이 사용하는 장비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각종 포털에서 제공하고 있는 낚시 관련 정보들 중에는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공하고 있는 정보들 중에는 많은 오류를 가진 것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루어낚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웜을 예로 들면, 1970년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고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로서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번 “라팔라(Rapala)의 역사”란 제목을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기 위함이었는데 글을 작성한 후 각종 루어의 역사에 관한 정보들을 검색해보니 아예 없거나 혹은 태부족하거나 아니면 있다고 해도 잘못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바로잡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루어낚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프트 베이트 루어인 웜(worm)의 역사를 첫 번째로 다루어본다.

앞으로 다루게 될 ‘루어의 역사’ 시리즈에서는 반드시 문헌이나 기타의 자료를 바탕으로 고증(考證)할 수 있는 것들만을 해당 루어의 역사로 인정하기로 한다는 것을 먼저 밝혀둔다.

낚시를 하면서 장비의 역사에 대한 것까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느끼는 재미도 쏠쏠한데 예를 들어보면 루어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로 미국의 헤던(Heddon)이란 회사가 있다.

원래 양봉을 하던 제임스 헤던(James Heddon)이란 사람이 빗자루를 개구리 모양으로 깎아 최초의 프로그(Frog)를 만들었던 것이 1898년의 일이고 그 후 1902년에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그 회사에서 만든 제품 중에 빅 버드란 것이 있다.

빅 버드? 큰 새 모양의 루어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마시는 맥주의 이름(Bud)에서 따온 것인데 미국의 맥주제조업체인 앤하이저부시가 버드와이저(Budweiser)의 노블티 아이템(Novelty item)을 만들어달라고 헤던(Heddon)에 의뢰를 하면서 태어나게 되었다.

의뢰를 받은 헤던(Heddon)에서는 여러 차례 거절을 하다가 할 수 없어서 소량만 제작을 해주었는데 노블티 아이템(Novelty item)이란 것이 참신하기는 하지만 실용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특별히 제작된 물건을 말하는 것과는 달리 제작한 빅 버드(Big Bud)는 실제 낚시를 해보니 효과가 좋아서 아예 1975년부터는 정식으로 판매를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웜의 역사를 살펴보면 웜은 지식백과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1877년에 최초로 등장하였는데 특허의 사본을 구할 수는 없지만 1877년에 생고무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특허를 취득하였다고 미국행정부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비록 널리 일반화 되지는 못했으나 이것이 웜에 관한 최초의 특허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돼지껍데기(pork rinds)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사용되었다.

돼지껍데기(pork rinds)를 사용하여 만든 루어는 소금물에 돼지껍데기를 담가 부드럽게 하여 사용하면서 지그 앤드 피그(jig and pig)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여 1922년에 엉클 조쉬(Uncle Josh)란 업체에서 만든 것이 최초다.

엉클 조쉬(Uncle Josh)란 회사는 알란 존스(Allan Jones)와 어반 슈라이너(Urban Schreiner)란 두 사람이 만든 것인데 1920년에 두 사람이 돼지껍데기로 직접 루어를 만들어 사용하다가 조과가 좋자 아예 이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로 하면서 설립한 것이었다.

그러나 웜(worm)이란 단어가 뜻하는 것처럼 벌레나 지렁이 모양을 한 것이 아니고 헤던(Heddon)사의 영향을 받아 개구리 모양의 프로그(Frog) 형태로 만들었다가 최근에 올수록 그 모양에 변화가 왔다.

창업 이래 한동안은, 농장주이기도 했던 알란 존스(Allan Jones)가 원료인 돼지껍데기를 제공하였으나 이후 외부에서 구입하게 되면서 품질기준에 맞추지 못한 것들이 많아지자 원료부족으로 이 제품은 2015년에 단종되고 말았다.

물론 엉클 조쉬(Uncle Josh)에서 처음으로 만든 개구리 모양의 소프트 베이트 루어는 엄밀하게는 웜(worm)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 갈수록 모양이 변형되는 것들은 웜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엉클 조쉬(Uncle Josh)의 제품과는 달리 웜에 대한 정의의 종지부를 찍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루어가 드디어 1949년에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다.

미국 오하이오 주 애크런(Akron)에 거주하던 닉 크림(Nick Creme)과 그의 아내 코스마 크림(Cosma Creme)은 그의 집 지하에서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움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플라스틱을 성형하여 만든 웜의 개발에 성공하는데 그 때가 바로 크림 루어 컴퍼니(Creme Lure Company) 역사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하이오 주는 자동차 타이어의 생산거점 지역이었는데 이곳에는 파이어 스톤(Firestone)과 굿 이어(Goodyear)와 같은 타이어 제조업체들의 공장이 있었고 닉 크림(Nick Creme) 또한 이 공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닉이 웜의 개발에 나설 수 있었던 동기 중의 하나는 애크런(Akron)의 굿 이어(Goodyear)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본격적으로 루어의 제작에 뛰어들었던 프레드 아보가스트(Fred Arbogast)의 영향을 받았던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1926년 하와이 훌라춤의 의상에 착안하여 만든 하와이안 위글러(Hawaiian Wiggler)의 출시와 함께 창업을 한 프레드 아보가스트(Fred Arbogast)는 1937년에 러버 스커트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게 되는데 이런 모습에 자극을 받아 닉 크림(Nick Creme)은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 대량의 루어를 생산하는 것에 몰두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으로 가정을 돌보아야만 했던 닉은 고등학교도 중퇴를 하고 공장에 취직을 했던 관계로 웜의 제작에 필요한 화학적인 지식은 전무하다시피 해서 플라스틱의 냄새를 없애는 방법은 전적으로 일일이 소재를 태우면서 그 해법을 찾았던 그의 아내 코스마 크림(Cosma Creme)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적인 호기심도 많고 노력파이기도 했던 닉 크림(Nick Creme)은 도서관에서 관련서적을 탐독하며 지식을 쌓고 실험을 계속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할까? 듀폰(DuPont)의 실험실에 근무하는 사람으로부터 여러 가지 화학물질에 대한 노하우와 샘플을 받음으로써 그의 노력은 결실을 이루게 된다.

1949년 처음으로 플라스틱 웜의 생산에 성공했던 닉은 1951년에 스포츠 에어필드(Sports Afield)란 잡지에 광고를 싣고 ‘크림 위글 웜(Creme Wiggle Worm)’이라 이름붙인 제품을 5개에 1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판매는 저조하였는데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반전의 계기를 닉에게 가져다준다.

오하이오 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스포츠관련 전시회인 클리브랜드 스포츠맨 쇼(Cleveland Sportsman’s Show)에 참가했던 닉의 웜을 판매하던 업자가 전시회의 수족관 위에 닉이 만든 웜을 걸어두었는데 이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모두 9,600개의 웜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주문량이 늘어나자 지하에서 만드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닉 크림(Nick Creme)은 지상으로 올라와 텍사스의 타일러(Tyler)에 공장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런데 오하이오에서 이사하여 굳이 텍사스 주에 공장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배스낚시로부터 저변이 확대된 루어낚시는 미국에 건설된 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전에 포스팅한 “소프트루어(웜) 각종 리그의 종류”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에서는 전력공급을 늘이기 위해 1940~1950년대에 많은 댐들을 건설하였는데, 텍사스 주에 있는 타일러 호수(Lake Tyler)도 이런 댐 건설로 생겨난 호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타일러 호수(Lake Tyler)의 수몰지역에 있던 나무에 채비가 걸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여 이를 피하고자 고안된 채비가 바로 텍사스 리그인 데 이처럼 낚시인들이 많은 지역에 공장을 설립했던 것은 닉으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닉 크림(Nick Creme)은 낚시용품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프로 낚시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필드 테스터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도 평가를 받아야 하며, 1967년에는 배스마스터(Bassmaster)의 초대 멤버이기도 했던 존 파월(John Powell)에게 자신이 만든 크림 웜을 사용하는 대가로 1만8천 달러를 제공하였는데 이 금액은 지금의 환율과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억6천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계약은 낚시업계 최초의 스폰서계약이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웜은 1972년에는 컬리 테일 웜이 첫 선을 보였고 이어서 1980년대에는 소금이 함유된 것들이 주종을 이루다가 최근에 와서는 환경문제를 감안하여 생분해되는 웜이 생산되고 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웜의 세부적인 역사를 비롯하여 각종 루어용품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앞으로 계속해서 알아보기로 하면서 그 첫 번째 순서인 웜(worm)의 역사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한다.